‘키다리 목사’ 기부금 횡령 의혹

성착취에 대기업 돈 빼돌렸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해 부모가 없는 이들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다던 인물이 있었다. 2020년 4월28일 KBS1 <인간극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에 출연했던 안모 목사다. 그는 두 아이를 입양해 법적보호자가 됐고 자신이 운영하는 아동보호센터 소속 아이들에게 선행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달랐다. 여성들을 향한 성폭력과 폭언은 기본이었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장학금까지 갈취한 정황도 있다. <일요시사>는 안 목사가 아이들에게 자행한 행태에 대해 알아봤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른바 ‘보호 종료 아동’으로 불린다.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사회로 냉정하게 던져진다. ‘키다리 아저씨’로 유명한 ‘보호 종료 아동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센터(센터)’ 대표 안모 목사는 홀로서기에 내몰린 아이 여럿에게 선행을 베푸는 척 지옥을 선물했다. 부모가 없는 청년들에게 지원되는 국가지원금을 갈취하고 폭행한 데 이어 성폭력까지 저질렀다. 아이들에게 그는 이른바 ‘사탄’이었던 것이다.

“악마이자
금수였다”

센터는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다. 만 24세 이후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좋은 재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기업들이 안 목사의 행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센터에 수억원이 넘는 거액을 기부해왔다.

안 목사는 백석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해 2018년까지 성령과 율법교회 목사로 활동했다. 직접 기독교 관련 책까지 썼고 자신이 만든 성경학습을 끝낸 아이에게는 센터 ‘리더’라며 임명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2020년 4월 KBS1에서 방영된 <인간극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 편에서 안 목사는 2016년 보육원에서 나와 갈 곳 없는 A씨의 법적 보호자가 됐다.

안 목사는 A씨에 대해 “한 달에 한 번 월차 때 같이 노니까 좋더라”며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데 인원이 부족했다. 마침 지인이 축구를 좋아하는 애가 있다고 말하며 데려온 게 A씨였다. 할 수 있겠냐고 그랬더니 축구부에 있었다고 하더라. 잘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게 인연이 돼서 축구를 하면서 몇 개월 알고 지내다가 A씨의 아픈 과거와 부족했던 면을 듣게 됐다.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파 그렇게 지내 오다가 A씨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돼주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A씨는 안 목사에 대해 “자주 만나게 되고 ‘내 딸 할래?’라고 물어봐 줬는데, 남자 어른을 대하는 게 처음이었다. 시설 안에는 수녀님과 선생님이 여자다. 그래서 어려웠다”면서도 “자주 만나면서 많은 모습을 보게 되고 또 내 고민을 털어놓으며 많은 말을 듣게 되고 가까워지면서 ‘이분이면 내 인생이 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회를 붙잡았다”고 밝혔다.

A씨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안 목사를 믿고 있었다. 갈 데 없는 이들에게 희망인 줄 알았던 센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지옥으로 변했다.

타락 아닌 거룩함이라고?
거부했는데 생일날 강간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영상에서 안 목사는 아이들에게 폭언을 일삼았고 성추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 목사는 “XX 가슴은 내 가슴과 같아” “XX랑 XX을 하고 싶었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도 이어갔다.

센터 피해자 B씨는 “안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안 목사의 생일이 7월16일인데 그날 여자아이가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요구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배가 끝나면 항상 술을 마셨다. 안 목사가 벗어야지! 벗어야지! 라고 말할 때 저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 목사는 이 같은 성폭력을 성경에 비유하면서 본인이 하는 행동이 “세상이 바라볼 때 타락이겠지만 하늘이 볼 때는 거룩이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고 한다. 안 목사의 비상식적 행태에 치를 떨던 일부 아이는 센터를 피했다. 안 목사는 센터를 피하거나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불러 쇠몽둥이로 폭행을 일삼기도 했다.


한 아이는 몸에 안 목사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기까지 했다.

B씨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넌 나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넌 내 말 안 들으면 뇌혈관 세포가 터질 거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안 목사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은 본인 영어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는 거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실제 안 목사는 설교 예배 중 신도들에게 “내 말에 집중 안 하면 뇌혈관 세포를 터트려 버린다고 했다. 기절해봤어, 안 해봤어?”라고 겁을 줬다. 또 다른 피해자 C씨는 “센터에서는 처음부터 딸, 엄마, 아빠 이렇게 부르니까 처음에는 너무 행복했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희망 아닌
지옥이었다

C씨는 “딸의 가슴을 만지는 아빠는 없지 않나”라면서 “진짜 가족이 없어서 원래 가족이 이런 건지 모르겠다. 근친상간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돼야겠다고 한 건 센터를 홍보하기 위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목사가 성범죄와 관련된 물적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C씨는 “센터가 아닌 외부에서 움직일 때는 CCTV가 없는 곳에서 성폭력을 당한 이들도 있다”며 “하지 말라고 거부해 쫓겨나는 순간 갈 곳이 없이질까 불안해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 목사는 언론을 통해 “아이들에게 폭행은 있었지만 훈육 차원이었고, 성추행과 성폭력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들이 먼저 나한테 와서 ‘대표님, 대표님’이랬다. 얘네가 막 만지고 이러니까 친해지고 싶은 그런 것들에서…”라며 자신은 친밀감을 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 목사의 만행은 성폭력으로 끝나지 않았다. 본인의 사진을 피해자를 포함한 센터 아이들에게 경매로 부쳐 사게 하기도 했다.

JTBC 단독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센터에 다니던 D씨의 통장에 국내 한 기업으로부터 들어온 특별 장학금 500만원이 3분 만에 센터 상임이사 계좌로 송금됐다. 한 달 후에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병원비 명목 후원금 1000만원이 들어왔는데 이중 700만원도 센터 상임이사에게 보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 목사가 기부금 일부를 고가 차량과 오토바이를 구입하는 데 쓴 정황도 포착됐다. 법조계에서는 안 목사에게 횡령과 갈취·사기죄 등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부장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기부한 목적 이외에 금전을 유용했다면 횡령죄가 적용된다”며 “개인 후원자와 기업을 기만한 것이기에 사기죄 적용도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센터 간부·아이들 사실상 세뇌
자신의 이름 몸에 문신도 새겨

1년에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이 누적됐다면 행정안전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하지 않았다면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서초동 변호사는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등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사정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횡령 금액이 커진다면 처벌은 더 무거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던 윤미향 의원의 후원금 횡령 사건이다. 앞서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최지석)은 2020년 9월14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대협) 회계 부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윤 의원을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윤 의원에게 적용한 혐의는 총 6가지로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와 지방 보조금을 교부받아 편취한 혐의 ▲무등록 기부금품 모집 혐의 ▲개인계좌로 모금한 기부금과 단체 자금을 유용한 혐의 ▲치매 상태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돈을 기부하게 한 행위 ▲위안부 할머니 쉼터로 사용할 주택을 비싸게 사들여 정대협에 손해를 끼친 혐의 ▲위안부 할머니 쉼터를 미신고 숙박업에 이용한 혐의 등이다.

검찰에 따르면 윤 의원은 정대협이 운영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법률상 박물관 등록 요건인 학예사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학예사가 근무하는 것처럼 허위 신청, 등록하는 방법으로 2013년부터 올해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로부터 보조금 약 3억원을 부정하게 수령했다.

또 정대협 상임이사이자 정의연 이사와 함께 관할 관청에 등록하지 않고 단체 계좌로 총 41억원의 기부금품을 모집했다. 이 외에도 해외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나비기금’과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명목으로도 총 1억7000만원의 기부금품을 윤 의원 개인계좌로 받았다.

특히 윤 의원이 단체 기부금 중 개인 용도로 쓴 돈은 1억여원에 달한다. 윤 의원은 2012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개인 계좌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해외여행, 나비기금, 조의금 등 명목으로 모집한 약 3억3000만원 중 5755만원을 개인적으로 썼다.

기업 기부금
사적 사용?


검찰은 윤 의원이 길원옥 할머니가 치매를 앓는 점을 악용, 길 할머니가 받은 상금 가운데 792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하게 만든 점도 ‘준사기’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당시 단체나 개인이 후원금을 받는 단체에 대해 제대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안 목사의 횡령 의혹에도 비슷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안 목사가 운영하는 단체의 분위기와 좋은 곳이라는 풍문을 들을 순 있어도 외부에서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금융범죄수사대 소속 한 경찰은 “단체가 후원금을 받은 곳에 대해 돈의 사용처에 대한 감사를 정부기관에 요청할 수는 있다”면서도 “후원금을 받은 곳이 여러 통장을 만들어 받은 후원금을 나눠 관리하고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법인을 설립해 우회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면 수사기관이 나서기 전까지는 일반인 또는 단체가 범죄에 대해 자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센터에 약 1억원의 돈을 후원한 단체는 센터의 후원금 관리에 대해 전문가들과 분석한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려왔다고 한다.

해당 단체의 관계자는 “돈이 제대로 입금이 됐는지와 수천만원의 돈을 어떤 용도로 썼는지는 사정기관이 아니기에 알 길이 없다”며 “돈이 아이들에게 입금된 후 안 목사의 손에 들어가 사적 용도로 쓰였다는 건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센터의 한 피해자는 안 목사에 대한 고소장을 지난 10일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에 접수했다. 경기북부청 관계자는 “수사 초기 단계고 2차 고소인 조사가 마무리된 이후 최종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피고소인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후원금 갈취 정황도
기부 목적 외 사용?

고소장에는 안 목사가 입소자들을 상대로 술자리 등에서 신체 접촉을 하며 추행하는 등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적시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경찰은 아직 안 목사의 횡령 의혹과 사기죄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지 않아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가 파악한 센터 피해자는 10명 가까이 된다. 이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줄인 채 외부에도 적극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센터에서의 생활이 지옥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9일 안 목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대화명에는 “지금은 내가 쓰레기다. 이제는 기대해라. 다 죽여주마, 하하하 맞아주니 좋았냐? 나의 시간이다”고 적혀 있었다. 센터 피해자들 입장에서 안 목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대화명은 협박이나 위협으로 다가오기 충분하다.

안 목사의 측근으로 알려진 센터 간부는 피해자의 지인을 통해 “고소하지 마라” “얼마면 되냐”는 등의 회유를 시도하기도 했다. 센터 간부 대부분은 그동안 안 목사의 성폭력과 비상식적 행위를 지켜보기만 했다. 피해자가 아닌 안 목사의 편에 서서 피해자들을 회유하기만 한 것이다.

사실과 다른 왜곡된 발언들이 퍼지면서 2차 가해도 이뤄지고 있다. 일부 센터 직원들은 지금까지 보도된 언론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며 안 목사와 피해자들과의 관계가 “합의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을 주변에 퍼뜨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센터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최근에 ‘사실이 아니고 합의하에 이뤄진 관계라며 이제 와서 폭로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고 연락이 왔었다”며 “소름이 돋았던 것은 통화에서도 일부 센터 직원들이 안 목사에게 세뇌를 당했다는 게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센터 간부들이 안 목사에게 이른바 ‘그루밍(grooming)’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그루밍이란 단어 뜻 그대로 ‘길들이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분을 쌓거나 호감을 얻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피해자에게 성적 가해를 하는 범죄를 말한다.

일반적인 협박이나 폭행 등에 의한 성폭행·성추행이 아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지하도록 만든 뒤 관계성을 강조하며 성적 착취를 가하기에 입증하기가 매우 힘들다.

최근 일부 종교단체에서 성직자들이 신도들을 대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그루밍 성폭력의 가해자로 돌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재록 만민성결교회 목사나 정명석 JMS 교주 등의 사례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루밍 성폭력은 종교단체 외에도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성인과 미성년자 등 주로 서열이 확실하며 예속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주로 일어난다. 피해자들은 성직자나 교사, 상사들과 어느 정도의 친밀한 관계가 이뤄지면 그들에 의한 성적 접근을 거부하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고소 마라”
회유와 협박

그루밍 성폭력의 문제 중 하나는 가해자들이 조직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성적 도구로 착취한다. 믿고 따르는 성직자나 교사 등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배신감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센터 피해자들은 안 목사에게 세뇌를 당한 이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B씨는 “안 목사에게 피해를 입은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나서지 않으려 하고 본인이 피해자라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C씨도 “여러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 센터 간부들 중 안 목사의 행동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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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