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다리 목사’ 기부금 횡령 의혹

성착취에 대기업 돈 빼돌렸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해 부모가 없는 이들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다던 인물이 있었다. 2020년 4월28일 KBS1 <인간극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에 출연했던 안모 목사다. 그는 두 아이를 입양해 법적보호자가 됐고 자신이 운영하는 아동보호센터 소속 아이들에게 선행을 이어온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상은 달랐다. 여성들을 향한 성폭력과 폭언은 기본이었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장학금까지 갈취한 정황도 있다. <일요시사>는 안 목사가 아이들에게 자행한 행태에 대해 알아봤다.

보육원에서 자란 아이들은 이른바 ‘보호 종료 아동’으로 불린다.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사회로 냉정하게 던져진다. ‘키다리 아저씨’로 유명한 ‘보호 종료 아동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센터(센터)’ 대표 안모 목사는 홀로서기에 내몰린 아이 여럿에게 선행을 베푸는 척 지옥을 선물했다. 부모가 없는 청년들에게 지원되는 국가지원금을 갈취하고 폭행한 데 이어 성폭력까지 저질렀다. 아이들에게 그는 이른바 ‘사탄’이었던 것이다.

“악마이자
금수였다”

센터는 경기도 양주에 위치한다. 만 24세 이후 아동복지시설을 퇴소해야 하는 아이들을 보호하는 좋은 재단으로 알려져 있었다. 지금까지 이름만 들어도 알법한 기업들이 안 목사의 행태에 대해 알지 못한 채 센터에 수억원이 넘는 거액을 기부해왔다.

안 목사는 백석대학교 신학과를 졸업해 2018년까지 성령과 율법교회 목사로 활동했다. 직접 기독교 관련 책까지 썼고 자신이 만든 성경학습을 끝낸 아이에게는 센터 ‘리더’라며 임명장을 수여하기도 했다. 2020년 4월 KBS1에서 방영된 <인간극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 편에서 안 목사는 2016년 보육원에서 나와 갈 곳 없는 A씨의 법적 보호자가 됐다.

안 목사는 A씨에 대해 “한 달에 한 번 월차 때 같이 노니까 좋더라”며 “내가 축구를 좋아하는데 인원이 부족했다. 마침 지인이 축구를 좋아하는 애가 있다고 말하며 데려온 게 A씨였다. 할 수 있겠냐고 그랬더니 축구부에 있었다고 하더라. 잘하더라”고 말했다.


이어 “그게 인연이 돼서 축구를 하면서 몇 개월 알고 지내다가 A씨의 아픈 과거와 부족했던 면을 듣게 됐다. 그 얘기를 듣고 가슴이 너무 아파 그렇게 지내 오다가 A씨에게 키다리 아저씨가 돼주기로 했다”고 언급했다.

A씨는 안 목사에 대해 “자주 만나게 되고 ‘내 딸 할래?’라고 물어봐 줬는데, 남자 어른을 대하는 게 처음이었다. 시설 안에는 수녀님과 선생님이 여자다. 그래서 어려웠다”면서도 “자주 만나면서 많은 모습을 보게 되고 또 내 고민을 털어놓으며 많은 말을 듣게 되고 가까워지면서 ‘이분이면 내 인생이 변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기회를 붙잡았다”고 밝혔다.

A씨를 포함한 많은 이들이 안 목사를 믿고 있었다. 갈 데 없는 이들에게 희망인 줄 알았던 센터는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지옥으로 변했다.

타락 아닌 거룩함이라고?
거부했는데 생일날 강간

<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영상에서 안 목사는 아이들에게 폭언을 일삼았고 성추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 목사는 “XX 가슴은 내 가슴과 같아” “XX랑 XX을 하고 싶었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도 이어갔다.

센터 피해자 B씨는 “안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안 목사의 생일이 7월16일인데 그날 여자아이가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요구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배가 끝나면 항상 술을 마셨다. 안 목사가 벗어야지! 벗어야지! 라고 말할 때 저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 목사는 이 같은 성폭력을 성경에 비유하면서 본인이 하는 행동이 “세상이 바라볼 때 타락이겠지만 하늘이 볼 때는 거룩이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고 한다. 안 목사의 비상식적 행태에 치를 떨던 일부 아이는 센터를 피했다. 안 목사는 센터를 피하거나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불러 쇠몽둥이로 폭행을 일삼기도 했다.


한 아이는 몸에 안 목사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기까지 했다.

B씨는 JTBC와의 인터뷰에서 “‘넌 나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넌 내 말 안 들으면 뇌혈관 세포가 터질 거다’라고 말한 적도 있다. 안 목사가 내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은 본인 영어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는 거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실제 안 목사는 설교 예배 중 신도들에게 “내 말에 집중 안 하면 뇌혈관 세포를 터트려 버린다고 했다. 기절해봤어, 안 해봤어?”라고 겁을 줬다. 또 다른 피해자 C씨는 “센터에서는 처음부터 딸, 엄마, 아빠 이렇게 부르니까 처음에는 너무 행복했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희망 아닌
지옥이었다

C씨는 “딸의 가슴을 만지는 아빠는 없지 않나”라면서 “진짜 가족이 없어서 원래 가족이 이런 건지 모르겠다. 근친상간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돼야겠다고 한 건 센터를 홍보하기 위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목사가 성범죄와 관련된 물적 증거를 남기지 않으려 했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C씨는 “센터가 아닌 외부에서 움직일 때는 CCTV가 없는 곳에서 성폭력을 당한 이들도 있다”며 “하지 말라고 거부해 쫓겨나는 순간 갈 곳이 없이질까 불안해 공개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안 목사는 언론을 통해 “아이들에게 폭행은 있었지만 훈육 차원이었고, 성추행과 성폭력은 사실이 아니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들이 먼저 나한테 와서 ‘대표님, 대표님’이랬다. 얘네가 막 만지고 이러니까 친해지고 싶은 그런 것들에서…”라며 자신은 친밀감을 표시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안 목사의 만행은 성폭력으로 끝나지 않았다. 본인의 사진을 피해자를 포함한 센터 아이들에게 경매로 부쳐 사게 하기도 했다.

JTBC 단독 보도에 따르면 지난해 6월 센터에 다니던 D씨의 통장에 국내 한 기업으로부터 들어온 특별 장학금 500만원이 3분 만에 센터 상임이사 계좌로 송금됐다. 한 달 후에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병원비 명목 후원금 1000만원이 들어왔는데 이중 700만원도 센터 상임이사에게 보내졌다.

이뿐만이 아니다. 안 목사가 기부금 일부를 고가 차량과 오토바이를 구입하는 데 쓴 정황도 포착됐다. 법조계에서는 안 목사에게 횡령과 갈취·사기죄 등의 혐의가 적용될 수 있다고 분석한다. 부장검사 출신인 한 변호사는 “기부한 목적 이외에 금전을 유용했다면 횡령죄가 적용된다”며 “개인 후원자와 기업을 기만한 것이기에 사기죄 적용도 가능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센터 간부·아이들 사실상 세뇌
자신의 이름 몸에 문신도 새겨

1년에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이 누적됐다면 행정안전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하지 않았다면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서초동 변호사는 “사기죄는 10년 이하의 징역 등 실형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사정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횡령 금액이 커진다면 처벌은 더 무거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도 유사한 사례가 있었다. 과거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던 윤미향 의원의 후원금 횡령 사건이다. 앞서 서울서부지검 형사4부(부장검사 최지석)은 2020년 9월14일 정의기억연대(정의연, 옛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정대협) 회계 부정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윤 의원을 업무상횡령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검찰이 윤 의원에게 적용한 혐의는 총 6가지로 ▲부정한 방법으로 국고와 지방 보조금을 교부받아 편취한 혐의 ▲무등록 기부금품 모집 혐의 ▲개인계좌로 모금한 기부금과 단체 자금을 유용한 혐의 ▲치매 상태인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의 돈을 기부하게 한 행위 ▲위안부 할머니 쉼터로 사용할 주택을 비싸게 사들여 정대협에 손해를 끼친 혐의 ▲위안부 할머니 쉼터를 미신고 숙박업에 이용한 혐의 등이다.

검찰에 따르면 윤 의원은 정대협이 운영하는 전쟁과여성인권박물관이 법률상 박물관 등록 요건인 학예사를 갖추지 못했음에도 학예사가 근무하는 것처럼 허위 신청, 등록하는 방법으로 2013년부터 올해까지 문화체육관광부와 서울시로부터 보조금 약 3억원을 부정하게 수령했다.

또 정대협 상임이사이자 정의연 이사와 함께 관할 관청에 등록하지 않고 단체 계좌로 총 41억원의 기부금품을 모집했다. 이 외에도 해외 전시 성폭력 피해자 지원을 위한 ‘나비기금’과 김복동 할머니 장례비 명목으로도 총 1억7000만원의 기부금품을 윤 의원 개인계좌로 받았다.

특히 윤 의원이 단체 기부금 중 개인 용도로 쓴 돈은 1억여원에 달한다. 윤 의원은 2012년 3월부터 올해 5월까지 개인 계좌를 통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 해외여행, 나비기금, 조의금 등 명목으로 모집한 약 3억3000만원 중 5755만원을 개인적으로 썼다.

기업 기부금
사적 사용?


검찰은 윤 의원이 길원옥 할머니가 치매를 앓는 점을 악용, 길 할머니가 받은 상금 가운데 7920만원을 정의연에 기부하게 만든 점도 ‘준사기’에 해당된다고 판단했다.

당시 단체나 개인이 후원금을 받는 단체에 대해 제대로 검증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번 안 목사의 횡령 의혹에도 비슷한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안 목사가 운영하는 단체의 분위기와 좋은 곳이라는 풍문을 들을 순 있어도 외부에서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금융범죄수사대 소속 한 경찰은 “단체가 후원금을 받은 곳에 대해 돈의 사용처에 대한 감사를 정부기관에 요청할 수는 있다”면서도 “후원금을 받은 곳이 여러 통장을 만들어 받은 후원금을 나눠 관리하고 페이퍼컴퍼니 형태의 법인을 설립해 우회하는 등 조직적으로 움직였다면 수사기관이 나서기 전까지는 일반인 또는 단체가 범죄에 대해 자각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실제 센터에 약 1억원의 돈을 후원한 단체는 센터의 후원금 관리에 대해 전문가들과 분석한 결과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결론 내려왔다고 한다.

해당 단체의 관계자는 “돈이 제대로 입금이 됐는지와 수천만원의 돈을 어떤 용도로 썼는지는 사정기관이 아니기에 알 길이 없다”며 “돈이 아이들에게 입금된 후 안 목사의 손에 들어가 사적 용도로 쓰였다는 건 현실적으로 파악하기 힘들다”고 토로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센터의 한 피해자는 안 목사에 대한 고소장을 지난 10일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수사대에 접수했다. 경기북부청 관계자는 “수사 초기 단계고 2차 고소인 조사가 마무리된 이후 최종 사실관계가 확인되면 피고소인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후원금 갈취 정황도
기부 목적 외 사용?

고소장에는 안 목사가 입소자들을 상대로 술자리 등에서 신체 접촉을 하며 추행하는 등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는 내용이 적시된 것으로 전해진다. 다만 경찰은 아직 안 목사의 횡령 의혹과 사기죄에 대한 고소장이 접수되지 않아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있다.

<일요시사>가 파악한 센터 피해자는 10명 가까이 된다. 이들은 언론과의 접촉을 줄인 채 외부에도 적극적으로 나가지 못하고 있다. 그만큼 센터에서의 생활이 지옥이었던 것으로 풀이된다.

지난 19일 안 목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대화명에는 “지금은 내가 쓰레기다. 이제는 기대해라. 다 죽여주마, 하하하 맞아주니 좋았냐? 나의 시간이다”고 적혀 있었다. 센터 피해자들 입장에서 안 목사의 카카오톡 프로필 대화명은 협박이나 위협으로 다가오기 충분하다.

안 목사의 측근으로 알려진 센터 간부는 피해자의 지인을 통해 “고소하지 마라” “얼마면 되냐”는 등의 회유를 시도하기도 했다. 센터 간부 대부분은 그동안 안 목사의 성폭력과 비상식적 행위를 지켜보기만 했다. 피해자가 아닌 안 목사의 편에 서서 피해자들을 회유하기만 한 것이다.

사실과 다른 왜곡된 발언들이 퍼지면서 2차 가해도 이뤄지고 있다. 일부 센터 직원들은 지금까지 보도된 언론 보도가 사실이 아니라며 안 목사와 피해자들과의 관계가 “합의하에 이뤄진 것”이라는 주장을 주변에 퍼뜨리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센터 내부사정에 정통한 관계자는 “최근에 ‘사실이 아니고 합의하에 이뤄진 관계라며 이제 와서 폭로를 이어가고 있는 이유가 뭔지 아느냐’고 연락이 왔었다”며 “소름이 돋았던 것은 통화에서도 일부 센터 직원들이 안 목사에게 세뇌를 당했다는 게 느껴졌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서는 센터 간부들이 안 목사에게 이른바 ‘그루밍(grooming)’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그루밍이란 단어 뜻 그대로 ‘길들이기’라는 뜻을 담고 있다.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분을 쌓거나 호감을 얻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피해자에게 성적 가해를 하는 범죄를 말한다.

일반적인 협박이나 폭행 등에 의한 성폭행·성추행이 아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지하도록 만든 뒤 관계성을 강조하며 성적 착취를 가하기에 입증하기가 매우 힘들다.

최근 일부 종교단체에서 성직자들이 신도들을 대상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다가 그루밍 성폭력의 가해자로 돌변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이재록 만민성결교회 목사나 정명석 JMS 교주 등의 사례도 같은 범주에 속한다.

그루밍 성폭력은 종교단체 외에도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 성인과 미성년자 등 주로 서열이 확실하며 예속될 수밖에 없는 관계에서 주로 일어난다. 피해자들은 성직자나 교사, 상사들과 어느 정도의 친밀한 관계가 이뤄지면 그들에 의한 성적 접근을 거부하기 힘든 지경까지 이르게 된다.

“고소 마라”
회유와 협박

그루밍 성폭력의 문제 중 하나는 가해자들이 조직 내에서 존경받는 인물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의 지위를 이용해 피해자들을 성적 도구로 착취한다. 믿고 따르는 성직자나 교사 등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이 느끼는 좌절감과 배신감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남는다.

센터 피해자들은 안 목사에게 세뇌를 당한 이가 적지 않다고 입을 모은다. B씨는 “안 목사에게 피해를 입은 여자아이가 있는데 그 아이는 나서지 않으려 하고 본인이 피해자라고 생각도 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C씨도 “여러 피해자가 더 있을 수 있다. 센터 간부들 중 안 목사의 행동에 대해 문제 제기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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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 밥도 아닌 트럼프 따라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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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강경 보수와의 밀착을 밑바탕 삼아 용꿈을 현실화하는 작업을 이어가고 있다. 장 대표에게 영감을 준 것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공화당 장악·대권 도전 과정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30년 넘게 이어진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었다. 장 대표도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빙글빙글 정치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와 국민의힘 지도부는 지난 6일 광주를 방문해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려고 했다. 그러자 광주전남촛불행동 등 광주 시민단체 회원들과 일부 시민들은 장 대표 일행의 참배를 막았다. 결국 장 대표 일행은 추념탑 앞에서 5초 동안 묵념한 후 발길을 돌려야 했다. 같은 콘셉트 다른 행보 장 대표의 참배 시도엔 ▲국민 통합 ▲호남 구애 및 지역 현안 해결 ▲강경 보수 이미지 희석 등 이유가 담겨있었다. 하지만 장 대표의 이후 행보는 참배를 시도했던 이유에 대한 의문을 자아낼 가능성이 있다. 광주북부경찰서는 장 대표 등의 참배를 막은 시민들에게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위반·재물손괴 등 혐의를 적용해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국민의힘 광주시당은 지난 18일 광주시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당일 집회는 신고되지 않은 불법 시위였고, 각종 욕설과 모욕으로 일관된 폭언·폭력이 난무한 아수라장이었다”며 “시민을 가장한 과격 단체와 특정 인사들이 국민의힘 당 대표의 참배를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지난 12일 내란 특검에 체포됐다가 이틀 후 구속영장 청구가 기각돼 석방된 황교안 전 국무총리를 두둔했다. 황 전 총리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당시 자신의 페이스북에 “우원식 국회의장을 체포하라. 대통령 조치를 정면으로 방해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도 체포하라”는 내용의 비상계엄 동조 게시글을 올리는 등 행동으로 말미암은 내란 선전·선동 혐의를 받고 있다. 장 대표는 국회에서 대장동 항소 포기 규탄대회를 진행하던 중 황 전 총리 체포에 대해 “전쟁이다. 우리가 황교안이다. 뭉쳐 싸우자”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선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황 전 총리가 활발하게 부정선거론을 주장했기 때문이었다. 비판이 이어지자, 장 대표는 지난 13일 의원총회에서 부정선거론에 선을 그으면서 “전략적으로 한 발언”이라고 해명했다. 장 대표·황 전 총리의 행적을 되새겨보면,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이 구호는 미국 정치 드라마 <웨스트윙>에서 크게 화제가 됐던 대사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대비되기 때문이다. <웨스트윙>에선 미국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 매튜 산토스가 상대 후보 에릭 베이커의 약점을 감싸는 연설을 한다. 에릭 베이커는 부인의 만성 우울증을 숨겼다. 이 때문에 논란이 발생하자, 매튜 산토스는 “어차피 우리는 모두 망가져 있는데, 아닌 척 위선을 할 뿐”이라며 “지도자에게 완벽하다는 환상을 요구하면, 이는 단지 거짓을 종용하는 것”이라고 연설했다. 이어 “완벽한 후보·특혜를 줄 후보가 아니라 이상·희망·꿈을 공유하는 후보에게 투표해야 한다”며 “그렇게 하면 우린 자랑스럽게 ‘나는 민주당원이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호소했다. 광주 방문 시도 이어“우리가 황교안이다” 트럼프 당선엔 30년 밑밥…어설픈 표절? “나는 민주당원이다”는 상대의 약점을 감싸면서 정치의 본질을 호소하는 이상적인 정치인의 상징으로 통한다. 하지만 황 전 총리는 윤 전 대통령의 뜬금없는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폭력적인 정적 숙청을 요구했다. “우리가 황교안이다”는 “나는 민주당원이다”와 극단적으로 대비될 수밖에 없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지난 9월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장동혁 대표에 대해선 충청도에서 몇 안 되는 용꿈을 꾸는 분이란 평이 있었다”며 “그 용꿈을 망상에 가깝다고 보기엔 유연하게 정치를 한 분”이라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대표 취임 후 김도읍 정책위의장 임명 등 중도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한 행보를 보였다. 하지만 그에게서 ▲장외 집회 집착 ▲황 전 총리 두둔 ▲한 전 대표 퇴출 시도 등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들이 좋아할 만한 행보가 더욱 두드러졌다. 이 때문에 그는 빙글빙글 회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광주 5·18 민주묘지 참배와 황 전 총리 두둔이란 극단적인 행보를 불과 며칠 사이에 보인 것도 장 대표 특유의 빙글빙글 정치를 상징한다. 강경 보수에 더욱 치중하는 것처럼 보이는 장 대표의 행보는 트럼프 대통령의 당선 과정과 비교할 만하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과정엔 미국 민주당에 모여 정치적 올바름에 집착하는 리버럴 엘리트들에 대한 보수 성향 유권자들의 반발이 큰 역할을 했다. 국민의힘 박민영 대변인은 지난 12일 유튜버 감동란의 개인 방송에 출연해 같은 당 시각장애인인 김예지 의원을 원색적으로 비판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알려진 김 의원은 윤 전 대통령 탄핵 표결 당시 찬성표를 던졌고, 특검법 3개에도 모두 찬성했다. 박 대변인은 “김 의원은 눈 불편한 것 빼고는 기득권인데, 장애인이라서 배려받는 걸 너무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다”며 “장애인에게 너무 많은 할당을 하는 게 문제”라고 주장했다. 이어 “한 전 대표가 김 의원을 일종의 에스코트용 액세서리 취급을 했다”고 지적했다. 김 의원은 지난 17일 박 대변인을 경찰에 고소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박 대변인에게 엄중하게 경고할 뿐, 징계는 하지 않았다. 박 대변인의 발언과 장 대표의 미지근한 대응은 김 의원에게 강한 반감을 갖는 강경 보수 성향 유권자를 의식함에서 비롯된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시각장애인이자 여성이란 김 의원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박 대변인의 공격은 미국에서 만성 구조화된 정치적 올바름 논쟁의 흐름과 정확히 일치한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쟁취는, 진보 진영이 신자유주의·정치적 올바름을 추진하면서 민주당이 월스트리트와 강하게 연계하자 국민이 여기에 반감을 갖게 된 것으로부터 비롯됐다.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딕 체니 전 부통령·도널드 럼즈펠드 전 국방부 장관으로 상징되는 네오콘에 대한 반감도 큰 역할을 했다. 드라마 대사 표절? 빌 클린턴 전 대통령 재임 당시 강하게 추진된 신자유주의로 인해 산업 패러다임은 제조업에서 금융업으로 바뀌었다. 월스트리트의 힘이 더욱 막강해졌고, 미국 내 제조 기업은 비용 절감을 위해 인건비가 저렴한 해외로 이전하는 흐름이 가속화됐다. 지난 2008년 발생한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미국 내 중산층 몰락에 쐐기를 박았다. ‘테러와의 전쟁’을 명분으로 막대한 세금을 대외 전쟁에 쏟아부었던 네오콘도 유권자의 큰 반감을 사서 몰락했다. 고립주의를 선호하는 미국 보수의 전통적인 흐름과 달리, 네오콘은 막대한 세금을 쏟아부어 미국의 가치를 퍼트리는 것을 선호한다. 하지만 그 “막대한 세금을 쏟아붓는다”는 것 때문에 네오콘은 오래 지나지 않아 몰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구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엔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가 함축됐다. 미국의 역사는 이주·개척의 역사다. 지금과 같은 세계 경찰의 위상은 제2차 세계대전 승전 이후 확보했다. 제1차 세계대전 이전엔 지역 강국 정도의 위상을 가졌고, 현재의 미국 영토를 개척하는 과정에서 주로 얻었다. 이 때문에 미국에선 서부 개척 시대를 다룬 영화가 흔하게 제작된다. 미국인이 광적으로 열광하는 시리즈 <스타트렉>과 <스타워즈>도 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은유해 제작됐다. 건국 신화가 따로 없는 미국에선 이 양대 시리즈가 신화로 통한다. 미국 고보수주의의 핵심은 다른 나라의 전쟁·정치 개입에 반대하는 외교 정책이다. 아메리카 대륙을 인위적으로 고립시켜 대륙 내 미국의 기득권을 지키자는 것이다. 미국의 국력이 지금과 같지 않았던 19세기엔 생존이 걸린 문제였다. 미국 제5대 대통령 제임스 먼로 전 대통령은 1823년 “유럽은 아메리카에 새 식민지를 만들지 말고, 미국은 유럽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먼로 독트린을 발표했다. 이어 ‘명백한 운명’이란 구호하에 서부 개척에 몰두했다. 트럼프 대통령·JD 밴스 부통령은 지난 2월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젤렌스키 대통령에게 “왜 감사하단 말을 하지 않느냐”고 몰아붙였다. 미국이 지난 2022년 2월 이후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지원 규모는 약 820억달러(약 113조4880억원)이고, 전비는 670억달러(약 98조4591억원) 규모로 확인된다. 미국 상원은 지난해 4월 608억달러(약 89조3480억원) 규모의 우크라이나 지원 예산을 승인했다. 이에 따라 첨단 무기 등 대규모 군사 지원이 계속되고 있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 지지자들이 바라는 바가 아니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지지자들을 달랠 거대한 쇼가 필요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상징 중 하나는 제1기 행정부 당시 멕시코 국경에 설치한 거대한 장벽이다. 미국 내 블루칼라들이 갖는 불만 중 하나는 “멕시코 불법 이민자들이 일자리를 잠식한다”는 것이었다. 아울러 미국·멕시코 접경지역에선 멕시코 마약 카르텔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를 실질적 효과와 정치적 이벤트를 모두 거둘 수 있는 일거양득 상황으로 인식했을 가능성이 크다. 로망의 정치화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우리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7월 우리에게 방위비 분담금 100억달러(약 14조6942억원)를 요구했다. 내년에 우리가 부담해야 할 방위비 분담금은 1조5192억원이다. 지난 14일 공개된 한미 정상회담 조인트 팩트시트엔 주한미군에 대한 330억달러(약 48조4948억원) 규모의 종합적 지원 내용이 담겨있다. 또 우리는 오는 2030년까지 미국산 군사 장비 구매에 250억달러(약 36조7385억원)를 지출해야 한다. 일본도 지난 5월부터 미국으로부터 주일미군 분담금 인상 압박에 시달려 매년 증액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부터 캐나다·그린란드·파나마 등 아메리카 대륙과 그 인근 지역으로 사실상 영토를 확장하려 하고 있다. 미국인에겐 영국·멕시코 등과 전쟁하면서 중·남부로 영토를 확장했던 19세기의 재림으로 인식될 가능성이 크다. 트럼프 대통령의 고보수주의 성향은 각국에 안기는 관세 폭탄에서도 잘 드러난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그린란드 주민이 투표를 통해 미국 편입·독립을 결정한 상황에서 덴마크가 이를 방해하면 덴마크에 고액 관세를 부과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관세를 군사·외교 목적으로 활용할 수 있단 의지를 드러낸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에 대해 “포퓰리즘”이란 지적이 이어지는 이유는 관세 폭탄에서 잘 드러난다. 공화당은 지난 6일 진행된 뉴욕시장·버지니아 주지사·뉴저지 주지사 선거에서 참패했다. 선거의 핵심 쟁점은 생활비 부담이었다. 뉴욕시에선 주거비가 급등했고, 뉴저지주에선 전기요금이 연 20% 상승했다. 특히 버지니아주에선 트럼프 대통령의 연방정부 인력 감축 방침과 셧다운 여파로 공무원들이 급여를 받지 못했다. 결국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4일 커피·바나나·쇠고기·견과류 등 생활필수품에 대한 상호 관세를 면제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부과 방침 이후 생활필수품 물가가 급상승한 여파로 선거에서 패배하자 뒤늦게 상호 관세를 면제한 것이다. 특히 쇠고기는 미국 축산농가의 반발을 무시하면서 관세를 면제했다. 장 대표는 이 같은 트럼프 대통령의 ‘겉’만 빌리는 것으로 해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1990년대 이후 미국 정치권이 주도한 변화의 여파로 서민의 삶이 악화한 흐름을 날카롭게 찌르면서, 이들의 바람을 선동적 언어로 표현해 대권을 거머쥔 것이다. 불만 조직화한 트럼프 지지율↓ 원인 장동혁 30년 넘게 진행된 신자유주의·개입주의에 대한 반감 때문에 강경 보수가 대규모 조직화한 영향도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에 날개를 달아줬다. 하지만 국내에선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전한길씨 등이 주도하는 강경 보수에 대한 대중의 거부감이 매우 크다. 이들의 언행은 강경 보수의 틀을 벗어나면, 조롱 대상이 될 뿐이다. 아울러 미국에선 민주당이 신자유주의 질서를 주도했다. 이 때문에 공화당은 미국 특유의 고보수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대통령을 통해 신자유주의를 비판하면서 정권을 잡을 수 있었다. 반면 국민의힘은 시장경제·기업 경영의 자유 등 신자유주의 질서를 지지하는 의견을 유지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재임 당시부터 신자유주의 성향의 경제 정책을 유지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양당의 의견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아울러 양당은 특히 젊은 남성들이 민감하게 여기면서 비판하는 각종 검열을 적극적으로 진행한다. ▲셧다운제 도입 ▲확률형 아이템 규제 ▲게임물관리위원회 검열 논란 등 검열 논란은 정당을 불문하고 꾸준히 일어났다. 미국에선 민주당과 지지자들이 주도하는 정치적 올바름 논쟁이 영화계로 이어져 <백설공주>와 <인어공주> 등 영화에 유색인종 주인공이 발탁돼 큰 논란으로 확산했다. 이런 논란을 주도하면서 서민을 훈계한 대표 세력은 월스트리트·각계 엘리트·언론이었다. 이 논란들은 트럼프 대통령의 대권 도전 과정에 큰 영향을 줬다. 국민의힘은 각종 검열 논란과 관련해 더불어민주당과 별 차이가 없다.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처럼 젊은 보수 성향 유권자들을 유인하기가 쉽지 않다. 아울러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세력 중엔 불법 이민을 통해 미국에 입국한 멕시코인을 경계하는 기존 유색인종 유권자도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대선에서 ▲흑인 중 8% ▲히스패닉 중 28% ▲아시아계 중 27% 등 득표율을 보였다. 지난해 대선에선 ▲흑인 중 13% ▲히스패닉 중 46% ▲아시아계 중 40%가 그에게 투표했다. 반면 장 대표는 지난 6일, 광주에서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지 못했고 국민의힘은 장 대표를 비난하는 시위를 한 시민들을 강하게 비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완전히 장악해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만, 장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언더 찐윤(진짜 친윤)’에 의해 옹립된 재선 의원에 불과하다. 국민의힘은 장 대표 취임 이후에도 지지율을 올리지 못하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1일부터 13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이는 전주보다 2% 낮아진 수치며, 지지율 42%를 기록한 민주당보다 18% 낮다. 심지어 전통적인 표밭 대구·경북에서도 지지율 42%를 얻는 데 그쳤다. 표밭도 위험하다 어설픈 표절은 죽도 밥도 안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30여년 동안 누적된 미국의 문제점과 유권자의 불만을 꿰뚫은 후 유권자들이 향수를 느끼는 옛 로망을 자극해 대권을 거머쥐었다. 정치에 대한 유권자의 불만을 투표로 연결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진정한 ‘트럼프 벤치마킹’은 아닐까? 장 대표는 꾸준히 정체되고 있는 국민의힘의 지지율에서 뭘 보고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