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물의 일으킨 ‘국내 5대 사이비 종교’ 추적

  • 구동환 기자 9dong@ilyosisa.co.kr
  • 등록 2020.03.02 14:01:06
  • 호수 1260호
  • 댓글 0개

돈, 섹스, 살인…잔인한 교주

[일요시사 취재1팀] 구동환 기자 =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으로 인해 ‘중국 혐오’가 ‘신천지 혐오’로 옮겨갔다. 코로나19 환자 절반 이상이 신천지와 연관돼있다고 파악되기 때문이다. 현재 코로나19 확진 환자가 대거 발생하면서 보건당국은 이들에 대해 신천지 연관 가능성을 열어두고 조사하고 있다. 비평가들 사이에선 신천지를 사이비 종교라 부르고 있는 가운데 <일요시사>는 이전부터 국내서 세를 떨쳤던 종교들에 대해 알아봤다.
 

▲ 영화 백백교 스틸 컷

코로나19 확산의 주범으로 꼽히는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이하 신천지)이 국제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다. 외신들도 “예배 방식이 코로나19를 확산시켰다”며 신천지 문제를 집중적으로 보도했다. 미국 공영 라디오 NPR은 지난달 24일(현지시각) ‘한국의 코로나19 발생의 중심은 교회 분파’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한국의 코로나19 확산 상황을 전했다.

코로나19 확산
신천지 때문?

NPR은 신천지에 대해 “1984년 카리스마 넘치는 이만희 목사가 세운 교회로 전 세계적으로 24만명으로 추산되는 신도를 가졌다”며 “신천지는 ‘새로운 하늘과 땅’이라는 뜻으로, 비평가들은 이를 ‘사이비 종교’라 말한다”고 설명했다.

신천지라는 이름은 요한계시록 21장1절의 ‘새 하늘 새 땅’서 비롯됐으며 신천지는 교회의 교주가 예수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신천지 창립 이전 교주 이만희가 몸담았던 장막성전서 발생한 사건이 요한계시록 예언을 증명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신천지 피해자들은 사이비 종교라고 주장하고 있다.

사이비 종교는 사이비 집단으로 낙인찍힌 종교단체를 의미하는데 국내에 100여개가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문상희 전 연세대학교 신학과 교수의 저서인 <사이비 종교란 무엇인가?>에 따르면 사이비 종교는 일반적으로 정치적 불안, 사회적 혼란, 경제적 파탄을 틈타 일어난다.


또 가치관의 몰락, 사상의 분열, 기성종교의 무력, 교주들의 광신적 영웅주의, 민중의 무지, 신앙 자유의 남용 등의 복합적인 요인이 존재한다. 또 기독교 주변서 사이비 종교가 일어나는 특수한 요인으로는 교회의 분열, 계층화 등이 작용한다고 기술하고 있다.

국내 사이비 및 이단 신흥종교의 발호는 멀리 일제 강점기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일제의 강점에 삶의 좌표를 잃은 사람들이 정신적 위안을 찾으려 했고, 이를 이용한 사이비 종교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1930∼1940년대 백백교가 교주를 신격화하고 집단생활을 하는 신앙의 형태를 취하며 대표적인 사이비 종교로 부각됐다.

▲백백교 = 백도교 교주였던 전정운의 아들 전용해가 만든 종교다. 전정운은 “세상이 곧 멸망하니 자신을 따르라”며 사람들을 꾀어내고 신도들의 돈을 갈취했다. 신도들의 돈을 들고 도주한 전정운이 1919년에 죽자 뒤를 이어 아들 전용해가 이어 받으면서 백백교로 명칭을 바꿨다.

평안북도 영변서 태어난 교주 전용해는 1923년 가평서 백백교를 창시했다. 이 사이비 종교는 백도교와는 다르게 남자는 전 재산을 바쳐야 했으며 여성은 교주 전용해에게 성상납을 해야 하는 등의 까다로운 가입 조건이 있었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백백교에 가입했다. 

산에 데려가 살해 뒤 암매장
예수 상징 ‘아가야’로 바꿔

민심 교화와 광명 세계의 실현을 명분으로 포교를 시작한 전용해는 이후 신도들을 현혹해 금품을 갈취하거나 여신도를 속여 간음을 일삼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잔인한 교주였다. 자신에게 불만을 품거나 반기를 드는 신도들은 ‘벽력사’ 직책을 가진 심복을 시켜 무참하게 살해했다. 전용해가 선호하는 살해 수법은 일단 죽이고자 하는 대상이 된 사람을 지목해 기도해야 한다는 명목을 내세우며 산속 깊은 곳으로 끌고 가, 미리 준비한 몽둥이로 뒤통수를 내려 죽인 다음 시체를 암매장하는 방식이었다.
 

▲ ▲▲ 드라마 <구해줘> 스틸컷

행여 피살자가 지르는 비명이 새어나갈 것을 우려해 살해와 동시에 화약을 터뜨려 소리를 감췄다고 한다. 

백백교의 끔찍한 살인 행각은 언론을 통해 크게 보도됐고, 경찰은 8개월 동안 백백교 교단과 전용해가 은신해 있을 법한 별장들을 모두 수색했다.

경찰 수사 결과 강원 평강, 경기 연천 등에 이어 1937년 6월8일 양평 지역까지 시체 발굴작업이 계속됐는데 당시 발견된 유골만 무려 380구였다. 전용해는 수사망을 피해 도주하다가 1937년 4월7일 경기도 양평 용문산서 숨진 채 발견됐다. 동쪽을 향해 누운 채 칼이 목에 꽂힌 상태였고, 코 아랫부분이 산짐승에게 뜯겨 있는 등 흉한 모습이었다. 1941년 1월에 마무리된 백백교 사건의 선고 공판서 백백교 교단에 의해 살해된 사람이 무려 464명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중 전용해는 간부 문봉조 등 18명과 함께 신도 314명을 죽였으며, 다른 간부인 김서진은 170명, 이경득은 167명, 문봉조는 127명의 살인에 직접적으로 책임이 있는 것으로 밝혀져 모두 사형을 선고받았다. 

▲아가 동산 = 아가동산은 1982년 김기순이 만든 사이비 종교로, 1978년 전북 익산의 주현교회서 신앙생활을 했다. 당시 교회를 이끌었던 이교부가 ‘나체 댄스 사건’을 일으키며 감옥살이를 하게 되자 김기순은 1982년 경기도 이천시 대월면 대리리, 도리리 일대의 땅 4000평을 구매해 ‘아가농장’을 세우고 종교를 만들었다.

재산 바치고
성상납까지

김기순은 자신이 이교부의 영혼을 계승했다며 후계자를 자처했고, 주현교회 해산으로 갈 곳이 없어진 신도들을 유혹하며 ‘아가동산’의 규모를 키웠다. 교주 김기순이 이끈 아가동산은 전형적인 사이비 종교였는데 얼핏 일반적인 개신교 종파로 보이지만 개신교서 ‘예수’ 자리에 ‘아가야’인 김기순을 대입했다.

찬송가에 나오는 예수의 상징을 ‘아가’ ‘아가야’라는 말로 바꿔 본인을 찬송하게 만들고, 기성 종교를 무차별하게 비난하며 ‘신’인 자신을 따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가야는 3살짜리 아기이기 때문에 김기순이 하는 행동과 말은 무엇이든 죄가 되지 않는 ‘아가야법’을 만들어 따라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아가동산은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노동착취의 전형이라고 볼 수 있다. 신도들은 오전 6시부터 오후 12까지 일했으며, 낮에는 논밭서 농사를 짓고 밤에는 CD 및 테이프를 만들며 공장서 일했다. 아가동산 교주 김기순은 신도들의 사유재산을 교단의 공동 재산으로 귀속시켰고, 노동력을 착취해 6년 만에 아가동산의 4000평 땅을 13만평 규모로 확장했다.

피해자들은 노동착취와 더불어 폭행, 살인 및 암매장을 당한 사람도 있었다고 증언했으며, 실제로 신도 3명을 살해한 것이 발각돼 아가동산의 핵심 간부 4명이 구속됐다. 반면 김기순의 살해는 무혐의로 밝혀졌으며, 조세포탈 및 횡령과 폭행 등 여섯 가지 죄목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 4년 및 벌금 56억원을 선고받았다. 
 

▲ ▲

출소 후 교주로서 권력을 잃었지만 ‘신나라레코드’라는 음반 판매 매장을 운영하며 현재까지도 잘 살아가고 있다.

▲영세교 =1970년대 초반 최태민이 창시한 종교다. ‘살아 영생’이라는 교리를 표방한 최태민은 자신을 미륵이나 단군으로 칭하면서 사람은 원래 신이었고 사람이 원래의 신체로 돌아가 신이 되면 불사의 영생체가 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또 ‘사람이 하느님이 돼야만 하늘나라에 들 수 있고, 구원받을 수 있다’며 신으로 태어난 인간이 살아생전 신체를 회복해 하느님이 돼야 한다는 것이 영세교의 주장이다.

말 안 듣는 
신도 살해

영세교는 불교, 기독교, 천도교 등의 종교를 종합했다. 일반적인 종교는 사람의 육신이 죽고 난 뒤의 세계인 ‘사후영생’ ‘사후극락’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에 반해 영세교는 ‘사람은 원래 신이었고, 현재의 사람이 원래의 신체로 돌아가 신이 되면 불사의 영생체가 된다’고 주장했다.

최태민은 처음에는 승려로, 나중에는 목사라 불렸다. 어떤 종교나 종파서 공식적으로 임명 받은 적이 없지만 본인 스스로 승려라 했고 목사라 칭했을 뿐이다.

최태민은 ‘영세교칙사관’이란 간판을 내걸고 ‘영혼합일법’을 창시했다. 이단·사이비 연구가였던 고 탁영환 소장에 따르면 최태민은 치병과 주술 행위에 탁월했다. 최태민은 탁 소장에게 자신을 원자경, 칙사마 등으로 소개했고 교인들에겐 태자마마로 부르도록 했다. 특히 그는 주술 행위에 몰입했는데 벽에 동그란 원을 그려놓고 ‘나무자비조화불’이란 주문을 연속적으로 외웠다고 전해진다. 

교인들이나 치병을 위해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색색의 원을 벽에 붙여 놓고 나무자비조화물이란 주문을 계속 외우게 했는데, 이런 둥근 원을 중시하는 종교 전통은 이후 영적 후계자 최순실에게로 이어진다. 이후 박근혜 전 대통령 통해 청와대를 들락거리게 되면서 최태민은 갑자기 목사란 신분으로 탈바꿈한다.


▲영생교 = 조희성에 의해 1981년 경기도 부천서 영생교 하나님의 성회 승리재단이라는 이름으로 창설됐다. 영생교 승리재단은 1989년 5월, 열성 신도였던 신진규 경북대 공법학과 교수가 영생교를 그만두자, 그를 납치해 20일 동안 감금하고 폭행하기도 했다. 

조희성은 “나는 유불선을 통합한 완성자 하나님으로서 마귀 세상을 뒤집어버리고 하나님인 나의 뜻을 이 세상에 이룩해 사람이 영원히 죽지 않고 늙지 않는 신서동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여러 종교 표방 ‘살아 영상’ 교리
한국의 기독교인 위주로 포교 활동

조희성은 한국 사회의 모든 영역서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기독교의 세계관, 성경, 그리고 예수를 부정했고, 예수를 ‘마귀새끼’, 자신을 ‘천상천하의 하나님’이라고 주장했다. 영생교는 ‘근화실업’이라느 기업을 세우고 신도 200명을 고용했다. 그러나 근화실업은 사원들에게 지급해야 할 임금을 영생교의 활동자금으로 빼돌렸던 것으로 밝혀졌다. 

▲전능신교 = 중국서 발생한 개신교 계열의 사이비 종교다. ‘전능신교’라고도 하며 국내에선 ‘전능하신 하나님 교회’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는 맥도날드 살인 사건’으로 인해 일반에 알려졌다. 중국 공안부서도 한국산 사이비 종교인 ‘JMS ’및 일본서 건너온 ‘옴진리교’와 함께 악질 사이비 종교로 규정하고 있다.

이들은 비자 없이 입국 가능한 제주도로 입국 후 위장결혼 등을 통해 국내서 활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최근 이 종교의 동영상 온라인 점유율이 급증하고 있다. 합창, 무용, 연주 등을 담은 (왠지 어색하지만)완성도 높은 고화질의 포교 동영상이 각국 언어들로 제공되고 있고, 심지어는 기독교 사이트로 철저히 위장된 곳들도 등장하고 있다. 
 

▲ 아가동산 ⓒMBC

전능신교의 한국 진출 의도는 처음에 중국을 대신할 본부 거점을 구축하려는 시도로 분석됐지만, 최근 인터넷에 넘쳐나는 한국어 포교 동영상에는 한국의 기독교인들을 포교하려는 의도가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다. 서울 구로지역을 비롯, 강원도 횡성과 충북 보은, 괴산에도 근거지를 마련한 전능신교의 국내 침투는 점점 더 조직화될 조짐이다.

지금까지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사이비 종교로는 300여명의 교도를 살해 또는 간음한 것으로 드러난 백백교(1940)를 비롯, 용화교(1962)·동방교(1974)·장막성전(1975)·만교통화교(1980년)가 있으며 일명 섹스교로 알려진 하나님의 자녀교(1981)·칠사교(1983)·다미선교회(1992) 등이 있다.

혼란할수록
사이비종교↑

사이비 종교들은 교주들의 사기, 간음 등 비윤리적 생활이 사회적인 문제가 되지 않는 한, 여간해서는 겉으로 잘 드러나지 않는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사이비 종교의 등장 이유에 대해 정치, 경제, 사회적 혼란이 심해지면서 현세에 대한 위기의식의 고조 등이 중론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9dong@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신천지피해연대 이만희 고발장 보니…

신천지 피해자 모임이 코로나19 역학조사를 방해한 혐의 등으로 신천지 교주 이만희 총회장을 검찰에 고발했다. 

전국신천지피해자연대는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감염병예방법 위반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배임 등의 혐의로 이 총회장을 고발한다고 지난달 27일 밝혔다.

이들은 신천지가 집회장과 신도 숫자를 축소해 제출하는 등 정부의 역학조사를 조직적으로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신천지대구교회를 중심으로 번진 집단 감염이 더 확산되지 않도록, 신천지교회로부터 신도 21만여명의 명단을 제출 받아 지방자치단체별로 코로나19 감염 진단 검사를 벌이고 있다.

정부는 전날 확보한 명단을 각 지자체에 전달했고, 예비 신도인 ‘교육생’ 명단도 제출하라고 신천지교회에 추가 요청했다. 

신천지피해자연대는 유튜브 채널인 ‘종말론사무소’의 자료 등을 근거로 신천지가 위장교회와 비밀센터(비밀리에 진행하는 포교 장소) 429곳, 선교센터를 수료한 입교 대기자 7만여명과 주요 인사들의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고발장을 통해 “신천지는 지역사회 감염은 전혀 아랑곳하지 않고 오직 신천지의 보호와 신천지인이 밝혀지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다”며 “조직적으로 역학조사를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신천지의 밀행성이 계속되는 한 코로나19의 확산은 계속될 것”이라며 신천지 본부 등에 대한 압수수색을 통해 정확한 전체 신도 명단 등을 확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피해자연대는 “이만희 총회장은 이단 사이비 교주 역할 이외에 별다르게 재산을 형성할 능력이 없는 자”라며 이 회장의 100억원대 부동산 취득 과정서의 횡령 의혹을 수사해달라고도 요청했다. <구>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변곡점’ 의정 갈등 엔드게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구성원의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된 수장이 반년 만에 끌려 내려왔다. 막말에 가까운 강한 발언과 제멋대로인 행보가 탄핵을 불렀다. 강성 수장이 물러나면서 변화를 기대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대화의 문이 열릴 것인가, 더 높은 벽이 쌓일 것인가. 임현택 대한의사협회(이하 의협) 전 회장이 3년 임기를 다 채우지 못하고 탄핵당했다. 지난 5월 취임 이후 6개월 만으로 의협 역사상 2번째, 최단기간 내 불명예 퇴진한 회장이 됐다. 첫 번째는 2014년 4월 임기 1년여를 앞두고 탄핵당한 노환규 전 회장이다. 두 번째 최단기간 의협은 지난 10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의협회관서 임시대의원총회를 열고 임 전 회장의 불신임안을 처리했다. 참석 의원 224명 가운데 170명(75.9%)이 찬성했다. 반대는 50명, 기권 4명이다. 전체 대의원 249명 가운데 224명(91.1%)이 표결에 참여했다. 의협 정관에 따르면, 회장 불신임안은 제적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출석하고, 출석 대의원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면 가결된다. 지난 3월 임 전 회장은 선거서 유효 투표수 3만3084표 중 2만1646표를 받아 당선됐다. 65.43%의 압도적인 지지다. 의협 회장 선거는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발표로 의정 갈등 수위가 높아지고 있을 무렵에 치러졌다. 전공의가 병원을 떠났고 정부가 ‘2000명’을 강조하던 시기였다. 의협 회원들은 강성 중의 강성으로 분류되는 임 전 회장에게 힘을 실었다. 임 전 회장의 어깨에 너무 힘이 들어갔던 것일까? 임 전 회장의 언행은 사사건건 도마 위에 올랐다. SNS에 올린 글, 공식 석상서 했던 발언 등이 막말 논란으로 번졌고, 단식투쟁 등의 행보는 ‘쇼’라는 비판을 받았다. 무엇보다 박단 대한전공의협의회(이하 대전협) 비대위원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의료계 내부 분열을 조장한다는 지적이 뼈아팠다. 임 전 회장이 8개월 동안 보여준 모습은 고스란히 탄핵 사유가 됐다. 의협 회원 사이에서는 임 전 회장이 SNS로 막말과 실언을 해 의사단체의 명예를 훼손했다는 비판이 일었다. 또 ‘임 회장이 전공의 지원금을 빼돌렸다’는 허위 비방 글을 올린 시도의사회 임원에게 고소 취하 대가로 1억원을 요구한 사실이 녹취록을 통해 알려져 논란이 불거졌다. 특정 인물에 대한 수위 높은 비판은 여론의 역풍을 불렀다. 장상윤 대통령실 사회수석을 겨냥해 “정신분열증 환자 같은 개소리”라고 비난하는 글을 올렸다가 환자를 비하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임현택, 6개월 만에 탄핵당해 막말 논란·의대 증원 못 막아 또 2021년 한 의사가 80대 환자에게 ‘맥페란’ 주사제를 투여한 뒤 부작용이 나타나 기소된 재판에 대해서도 도 넘는 발언을 쏟아냈다. 이른바 ‘맥페란 재판’ 항소심서 판사가 1심의 금고 10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은 해당 의사의 항소를 기각하자 “이 여자 제정신입니까?”라는 글을 SNS에 올린 것이다. 임 전 회장의 발언에 법원은 이례적으로 “재판장의 인격에 대한 심각한 모욕일 뿐 아니라 국민의 신뢰를 크게 훼손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명했다.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와 관련해 기각·각하 결정을 내린 재판장이 ‘회유’받았을 것이라는 주장으로도 입길에 올랐다. 서울고등법원 재판부가 결정을 내린 다음 날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재판장의 실명을 거론하면서 “지난 정권에서는 고법 판사들이 차후 승진으로 법원장으로 갈 수 있는 그런 길이 있었는데 제도가 바뀐 다음에는 그런 통로가 막혀서 이분이 아마 어느 정도 대법관에 대한 회유가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있다” 말했다. 서울고법은 법원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해당 단체장의 아무런 객관적 근거가 없는 추측성 발언은 재판장의 명예와 인격에 대한 심대한 모욕”이라면서 “사법부 독립에 관한 국민의 신뢰를 현저히 침해할 수 있는 매우 부적절한 언사다. 깊은 유감을 표명한다”고 밝혔다. 여기에 결정적으로 정부의 2025학년도 의대 증원을 막지 못한 점, 간호법 제정을 저지하지 못한 점이 탄핵 사유로 꼽혔다. 임 전 회장은 총회를 앞두고 의사 회원들에게 사과하고 페이스북 계정을 삭제하는 등 재신임을 호소했지만 반전은 없었다. 회장을 탄핵한 의협은 비대위원회 체제로 전환하고 지난 13일 새로운 회장 선거 전까지 단체를 이끌 비대위원장을 뽑았다. 그 결과 박형욱 대한의학회 부회장이 1차 투표서 총 유효 투표수 233표 중 123표(52.8%)를 얻어 과반으로 당선이 확정됐다. 임기는 내년 1월 차기 회장이 선출될 때까지다. 뒤늦게 호소했지만…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정부는 의료 파탄이란 시한폭탄을 장착해놨다”며 “정말 대화를 원한다면 정부는 먼저 시한폭탄을 멈춰야 한다. 그래야 진정한 대화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비대위원들의 합의에 기초해 입장과 행동을 결정할 것”이라며 “비대위 운영서 소외돼왔던 전공의들과 의대생들의 견해가 충분히 반영될 수 있게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임 전 회장이 물러나고 새로운 비대위원장이 등장하면서 의협의 투쟁 방향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커졌다. 일각에서는 의협의 이번 행보를 의정 갈등의 중요한 변곡점으로 보고 있다. 강성 회장을 필두로 정부와 강하게 대립했던 이전 모습서 벗어나 대화에 참여할 것이라는 의견과 이전보다 더 수위 높은 대정부 투쟁이 예상된다는 의견으로 갈리는 중이다. 후자의 배경에는 대전협이 있다. 앞서 박단 비대위원장 등 전공의 70여명은 전날 의협 대의원들에게 “비대위원장으로 박형욱 교수를 추천한다”는 메시지를 보내 공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대의원회서도 박단 비대위원장의 공개 지지에 대해 경고하는 등 잡음이 일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대전협의 지지를 등에 업은 박형욱 비대위원장이 당선되면서 전공의의 영향력이 상대적으로 커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됐다. 의협과 대전협의 공조가 본격화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이유다. 문제는 양측의 교류가 정부와의 대화로까지 이어질 수 있느냐는 점이다. 박형욱 비대위원장은 당선 소감부터 정부의 태도 변화를 요구하고 나섰다. 또 윤석열 대통령의 변화도 필요하다고 언급했다. 의정 갈등서 줄곧 선봉에 선 전공의들은 ‘의대 정원 증원 백지화’라는 요구사항서 앞으로도 뒤로도 움직인 적이 없다. 전공의의 행보는 의대생, 의대 교수 등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영향력 커진 전공의 단체 의료계가 전공의 중심으로 굴러가고 있는 셈이다. 실제 대전협은 지난 11일 출범했던 여야의정협의체(이하 협의체)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다. 협의체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불참하고 의료계에서는 학술 단체인 대한의학회와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만 참석하는 등 ‘반쪽 출범’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협의체의 운영 기한은 올해 말까지로, 다음 달 22~23일 전에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는 태도다. 하지만 박단 비대위원장은 협의체에 대해 ‘무의미하다’고 평가했다. 그는 협의체가 첫발을 뗀 11일 SNS에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는 전공의와 의대생, 당사자 없이 대화나 하겠다는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며 “한 대표는 2025년 의대 모집 정지와 업무개시명령 폐지에 대한 입장부터 명확히 밝히시길 바란다”고 일갈했다. 이어 “눈치만 보며 뭐라도 하는 척만 하겠다면 한동훈의 ‘여야의정 협의체’ 역시 임현택 전 의협 회장의 ‘올바른 의료를 위한 특별위원회(올특위)’와 결국 같은 결말일 것”이라고 우려했다. 올특위는 의료계의 입장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의협 주도로 구성한 범의료계 특별위원회다. 전공의와 의대생이 해당 위원회에 불참하면서 파행 운영되다 지난 7월 해체됐다. 정부는 협의체서 의료계가 제안한 내용에 대해 “진정성 있게 검토하겠다”는 견해를 밝혔다. 지난 11일 협의체서 의료계는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보장, 추가 합격 제한 등을 통한 2025학년도 의대 선발 인원 축소 등을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윤순 보건복지부 보건의료정책실장은 지난 14일 의사 집단행동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이하 중대본) 회의를 주재하면서 “마주 앉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 만큼 활발한 대화와 소통을 통해 누적된 갈등을 해소하고 신뢰를 회복해 국민이 원하는 결과를 끌어낼 수 있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의협과 전공의 등 다른 의료계 단체의 참여를 호소했다. 박단 공개 지지 새 비대위원장 강경 투쟁이냐 VS 노선 변화냐 의료계 내부 상황은 크게 바뀌었지만 향후 상황은 여전히 ‘시계 제로(0)’ 상태다. 임 전 회장과 박단 비대위원장 간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살아있다.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공개적으로 요청하는 등 ‘(임 전 회장과)같이 갈 수 없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실제 대전협은 임 전 회장의 탄핵을 요청하면서 “이해와 소통이 가능한 새로운 회장을 필두로 의협과 대전협 두 단체가 향후 상호 연대를 구축할 수 있길 기대한다”는 입장문까지 냈다. 임 전 회장의 탄핵안 가결 직후 박 비대위원장이 “결국 모든 길은 바른 길로”라는 내용의 SNS 글을 올리기도 했다. 문제는 임 전 회장이 박단 비대위원장을 상대로 반격을 진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임 전 회장은 탄핵 사흘 만에 닫았던 페이스북 계정을 다시 열고 “박단과 그 뒤에서 박단을 배후 조종해 왔던 자들이 무슨 일을 해왔는지 전 의사 회원들에게 아주 상세히 밝히겠다”며 박단 비대위원장을 저격하는 글을 올렸다. 그러면서 “의협 대의원회 비대위원장과 의협 회장 선거가 더 이상 왜 필요한가”라면서 “박단이 의협 회장 겸 비대위원장을 맡아 모든 권한과 책임하에 의료 농단을 해결하면 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지지해주셨던 모든 분에게 우선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이유가 어떻든 회장 취임 전부터 탄핵하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자들에게 빌미를 주어 넘어간 것 자체가 제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또 의협의 근본적인 개혁의 첫걸음으로 의협 대의원회 폐지 등을 내용으로 하는 민법상의 사원총회를 개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사원총회는 민법에 규정된 사단법인의 최고의사결정 기관이다. 의협 최고의결기구로 알려진 대의원총회보다 상위에 있고 정관의 규정으로 폐지할 수 없다. 사원총회는 이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경우나 총 사원 5분의 1 이상이 회의의 목적 사항을 제시해 청구하는 경우 소집될 수 있다. 반격 시작 내부 갈등? 올해 2월 시작된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10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온갖 말이 오갔지만 되짚어보면 조금도 좁혀지지 않은 평행선 상황이 계속되는 모양새다. 정부와 의료계의 대치 상황이 길어질수록 ‘의료 붕괴’는 가시화되고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이제는 정말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