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또 구속된 정명석 JMS 총재

믿음 밟고 성욕 채운 교주님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지난 4일, 신흥종교단체 기독교복음선교회(JMS) 수장 정명석이 구속됐다. 출소 4년 만에 여신도들을 성폭행하고 추행한 혐의다. 정명석은 과거 같은 혐의로 징역 10년을 선고받고 복역한 뒤 2018년 2월 출소한 바 있다. 이 같은 정명석의 비상식적 행태에도 불구하고 그를 응원하거나 믿고 따르는 이가 수천명이나 된다. 정명석 어떤 삶을 살았을까?

어렸을 때부터 찢어질 정도로 가난을 경험하며 살아온 정명석이 믿고 기댈 곳은 주일학교였다. 그렇게 수도생활을 이어가다 1978년 기독교복음선교회(JMS)라는 종교를 만들었다. 그는 자신이 곧 신과 같다며 신도들을 세뇌시켰고 결국 성범죄자로 전락하기까지 했다. 정명석의 인면수심 행보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여신도 성폭행
상습준강간 혐의

정명석은 1945년 3월16일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석막리에서 부친 정팔성과 모친 황길례 사이에서 6남1녀 중 3남으로 태어났다. 초등학교 때 친구들에게 따돌림에 당해 혼자 놀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당시 먹을거리가 없을 정도로 찢어지게 가난해 굶은 경험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첩첩산중인 석막리에서 사실상 외부와 단절된 채 자랄 수밖에 없었고, 집안 사정으로 다니던 학교마저 졸업하지 못했다. 고단한 어린 시절 정명석이 믿고 기댄 건 종교였다.

주일학교에 나가면서 대둔산과 용문산 등지에서 수도생활을 이어간 그는 1978년 6월1일에 상경, 서울 서대문구 남가좌동에 교회를 세웠으나 쫓겨났다. 이후 1980년 신촌에서 대학생 4명을 전도, 이들을 주축으로 점차 세를 불려나갔다.


어린 시절 잘못된 믿음 때문이었을까? 정명석은 1999년부터 다수의 성폭행 혐의로 수사기관의 내사를 받던 중 대만으로 도주한 뒤 홍콩·중국을 전전하며 도피 행각을 벌였다. 2003년에는 한국 검찰의 요청으로 인터폴 적색 수배 대상에 올랐다.

홍콩에서 중국으로 도피한 그는 2007년 5월 중국 공안에 체포됐고, 이듬해 2월 한국으로 강제송환됐다.

정명석의 여신도 성폭행은 엽기적이었다. 10여년 전 그에게 적용된 혐의는 준강간·강제추행·준강제추행·강간치상죄 등이다. 대법원 항소심에서 혐의가 확정된 정명석은 2018년 2월18일, 10년간 복역을 마치고 대전교도소에서 출소했다.

2009년 대법원이 유죄를 확정한 사건은 정명석이 한국에서 저지른 성폭력이 아니다. 모두 그가 해외 도피 중일 때 가했던 성폭력이었다. 판결문에 등장하는 피해자는 다섯명. 이들 중 법원이 최종적으로 피해를 인정한 사람은 네명이다.

판결문을 보면, 피해자들은 정명석을 ‘메시아라고 믿고 그의 절대적인 권위에 복종’했다. 재판 과정에서 정명석은 법정 진술, 자필 진술문 등을 통해 자신이 메시아가 아니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는 형량을 줄이기 위한 것이었을 뿐, 실제로 신도들은 그를 이 땅의 재림주 메시아라 믿고 있었다.

피해자 A씨와 B씨는 자매다. 정명석은 도피 생활 초기였던 2003년경 두 사람을 홍콩으로 불러들였다. 정명석이 누구에게도 홍콩에 간다고 말하지 말라고 하자, 자매는 부모를 속이고 출국했다. 정명석은 그의 절대 권위에 복종하던 자매를 자기 성욕을 해소하는 데 이용했다.

어린 시절부터 주일학교 다녀 잘못된 믿음?
80년부터 신촌서 적극적으로 전도 세 불려


정명석은 두 사람을 차례로 성폭행했다. 정명석은 검찰 조사에서, 두 사람을 홍콩으로 불러 방에서 안마를 받고 양옆에서 팔베개하고 눕도록 한 사실은 인정했으나 “강간 사실은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정명석과 변호인의 주장이 합리적이지 않다며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당시 두 사람이 ‘항거불능’ 상태였다는 점을 적시했다.

판결문에는 ‘피해자들이 메시아로 여기며 그 권위를 절대적으로 신봉해오던 피고인과의 관계나, 피해가 일어난 아파트에는 정명석을 신봉하는 소수의 신도밖에 없었던 사정 등에 비추어 심리적으로 반항하기 현저히 곤란한 상태에 있었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시돼있다. 법원은 정명석의 준강간 사실을 인정했다.

인터폴에 적색 수배 중이던 정명석은 2003년 7월 홍콩 이민국에 구속됐다. 이후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정명석은 배를 타고 중국으로 밀항했다. 피해자 C씨는 중국에서 2006년 4월경 정명석을 만났다. 정명석은 이때 C씨와 단둘이 목욕탕으로 가, C씨에게 속옷을 벗으라고 강요하고 강제로 성관계를 가졌다.

재판부는 정명석이 C씨에게 한 행위는 강간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C씨 역시 A·B씨와 마찬가지로 정명석을 메시아로 믿고 있었고, 정명석이 피해자에게 언행으로 협박을 가한 점 역시 피해자의 항거 곤란하게 할 정도의 폭행과 협박이라고 봤다.

1심에서는 피해자 세 명에게 가한 성폭력만 인정돼 징역 6년을 선고받았으나, 항소심 재판부는 또 다른 고소인 D씨의 피해 역시 인정해, 정명석에게 4년을 얹어 10년을 선고했다.

D씨는 2001년 말레이시아에 머무르던 중 추행을 당했다. 판결문에 따르면, 정명석은 “의학박사 자격증도 있고 하나님을 통해 검사해주니 너희들에게도 (부인과)검사를 해주겠다”며 D씨를 추행했다. 1심 재판부는 “정명석이 피해자의 항거를 곤란하게 할 정도의 협박을 가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 없다”며 무죄로 판단했다.

하지만 항소심 재판부는 피해 발생 당시, 주위에 있는 사람들 때문에 피해자가 정신적 혼란이 가중돼 반항이 곤란한 상황이었다고 인정했다.

재판부는 “정명석이 특수 지위에 있는 종교 지도자라고 믿는 회원을 상대로 성 접촉을 한 점, 피해자들이 비교적 어린 나이였던 점 등을 볼 때 정명석이 고령(당시 63세)이라 하더라도 1심보다 중한 형을 내려야 한다”며 10년을 선고했다.

가난한 일상
종교에 기대

정명석은 10년형을 선고받은 것 외에도, JMS 탈퇴 여성 두 명에게 성폭력을 가한 사실이 인정돼 손해배상한 사실이 있다. 정명석은 한국에 있을 때도 여신도 성폭행이 법원에서 인정된 바 있다.

JMS 탈퇴 여성 7명은 2000년, 정명석에게 피해를 봤다며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이 소송은 무려 8년간 지속된 끝에 정명석과 합의한 4명, 공소시효가 만료된 1명을 제외한 2명에게 각각 1000만원과 5000만원 손해배상 판결이 나왔다.


법조계에 따르면 정명석은 자신을 메시아로 믿게 하고, 그 믿음을 이용해 성욕을 채운 성범죄자다. 하지만 JMS 신도들은 정명석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살이했다고 믿고 있다.

JMS가 제작한 팸플릿에는 ‘언론과 방송이 조성한 여론의 영향을 받은 종교 편향적 재판, 증거 없는 자유 심증주의에 의한 편파적 판결’ ‘유죄의 결정적 증거는 없고, 무죄를 입증할 증거는 철저히 배제된 형사재판의 기본원칙이 무시된 결과’라고 적혀 있다.

JMS는 2012년 다시 여론의 주목을 받았다. JMS 핵심 간부로 활동했던 탈퇴자들이 2012년 3월 기자회견을 열고, 정명석이 감옥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JMS에서 26년간 활동한 조경숙씨는 JMS 내 다양한 여성 그룹이 존재하고 정명석의 신부로 준비된 여성들을 ‘상록수’라고 부른다고 폭로했다.

이들은 JMS가 여성들 프로필을 정명석에게 보내고, 정명석이 감옥에서 자필 편지를 보내 직접 상록수를 선발한다고 말했다. 탈퇴자들이 공개한 프로필에는 후보 여성들의 비키니 사진과 신상정보가 적혀 있다. 이 중에는 미성년자도 있었다.

기자회견에서 공개한 영상에는, 젊은 여신도들이 나체 상태로 정명석을 “주님” “여보” 등으로 칭하며 교태를 부리는 장면이 담겨있었다.

JMS는 일부 여신도가 영상을 자체 제작한 것이지, 교단 차원에서 관여한 적이 없고 이 영상을 정명석에게 보낸 적도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탈퇴자들이 여론몰이를 위해 영상을 이용했을 뿐, 성상납의 증거가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탈퇴자들과 이단 전문가들은 정명석이 출소하면 다시 성범죄를 저지를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JMS 사무국장을 역임했던 김진호씨는 “상록수로 뽑힌 여성들은 정명석이 출소하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정명석이 출소하면 똑같이 범죄의 대상이 될 것”이라고 했다.

정명석은 달라지지 않았다. 그는 최근 4년 만에 또 여신도 성폭행 혐의로 구속됐다. 대전지법 신동준 영장전담 판사는 상습준강간 등 혐의를 받는 정명석에 대해 “증거인멸과 도주의 우려가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정명석은 영장실질심사가 끝난 뒤 ‘혐의를 인정하느냐’는 취재진 질문에 답하지 않고 자리를 떠난 것으로 알려졌다.

정명석은 일본에서도 비슷한 행태를 보였다. 일본 JMS는 주로 대학교를 중심으로 포교활동을 벌여 왔으며 이들은 소위 엘리트들을 전도의 주요 대상으로 삼고, ‘평소 생활과 인생관을 살펴보고 긍정적인 사람을 찾아라’ ‘거리에서 수준 높은 사람을 전도하라’ ‘외모가 괜찮은 사람과 만날 수 있게 하라’ 등과 같은 지침을 세워 치밀하게 포교활동을 벌여왔다.

수차례 스캔들
징역 10년 선고

정명석은 2000년대 초 일본 오사카나 지바의 측근 자택에 머무르며, 하루에 두세 명에서 열 명까지 여학생들을 매일같이 불러 ‘건강 체크를 한다’는 핑계를 대며 성적인 행위를 반복했다고 한다.

측근들은 여성 신도들에게 ‘교주가 만나고 싶어 한다’며 은신처로 불렀다. 이때 측근들은 여성들에게 ‘이 사실을 누군가에게 말하면 지옥에 떨어진다’는 식으로 강하게 입막음했다.

그중 한 명은 “성폭행을 당하고 있을 때는 무엇이 일어나는지 이해하지 못했고, 머릿속이 혼란해 교주가 하라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 같은 일본 언론들의 대대적인 보도 이후 대학가엔 비상이 걸렸다고 한다.

‘위험한 종교단체 주의’라는 포스터가 대학 캠퍼스 곳곳에 붙어 왕성하게 활동하던 JMS 교회들은 문을 닫고 잠적했다. 한편 JMS를 탈퇴해 만든 ‘안티 JMS’ 엑소더스 관계자는 “정명석의 만행이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자행돼온 것은 실로 개탄할 노릇”이라며 “하루빨리 정명석이 저질러온 범죄에 합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이제까지 엑소더스 회원들은 국내에 있는 JMS 신도들에게 갖은 협박과 피해를 봤다”며 “그들도 정명석의 실체를 받아들이고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JMS를 포함한 사이비 종교의 만행이 지속되자 종교계 일각에서는 정치권에서 입법을 통해 규제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유사종교피해대책범국민연대(상임대표 진용식 목사)는 최근 서울 중국 프레스센터에서 ‘반사회적 사이비 종교의 법적규제 촉구를 위한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주최 측 발제자들은 아베 전 일본 총리 피격사건과 관련 일본 통일교의 헌금 강요 정황, 정명석의 해외 성범죄 피해 현황 등을 보고했다.

먼저 김경천 목사(상록교회 부목사, 전 JMS 부총재)는 ‘JMS 피해사례 및 상황’이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성범죄 전력으로 인해 10년형을 선고받고 최근 전자발찌를 찬 채 만기출소한 정명석 JMS 교주는 또 다시 영국, 호주 등 서구에서 자행한 성범죄 혐의로 피소된 상태”라며 “아시아뿐만 아니라 서구에서도 보고되고 있는 그의 성범죄 피해 사례로 대한민국 이미지는 크게 실추됐다”고 주장했다.

준강간·강제추행 의혹 받자
홍콩·중국 등으로 해외 도주
감옥살이 10년…다시 성폭행

이어 “정명석의 행각은 통일교 원리 강론에서 비롯된 JMS 교리로 인한 것”이라며 “이에 따르면 첫째 아담의 선악과 범죄는 미성숙한 성관계로 인한 타락으로, 둘째 아담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은 현재 죽어 실존하지 않는 상태이기에, 예수의 영이 빙의된 셋째 아담 정명석 교주를 사랑하고 성관계를 맺는 것이 비로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치고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단·사이비에 빠진 이들을 구출하고, 보편 타당한 윤리에 기초해야 할 종교의 자유가 이단 사이비 집단의 범죄를 방관하는 방패로 전락되지 않도록 사이비종교 처벌법을 제정해달라”고 호소했다.

이어 와타나베 변호사(현 일본 전국 영감상법 변호사연락회 부회장)가 현장 줌(ZOOM) 연결을 통해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과 일본의 통일교 피해사례’에 댇해 발제했다. 와타나베 변호사는 “아베 전 일본 총리 피격 사건의 원인은 통일교 피해자의 원한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 통일교는 사유재산 모두가 하나님의 것이라고 가르치는데, 여기서 하나님은 교주 문선명을 지칭한다”며 “어머니가 헌금을 통일교에 과도하게 납부한 나머지, 가정 형편이 악화되고 대학 진학이 좌절되는 등 가정파탄을 경험한 용의자 야마가미의 원한이 이번 아베 전 총리 피격 사건의 주요 원인이라고 본다”고 했다.

특히 “일본 통일교는 신도로부터 걷은 헌금 중 약 400억엔(한화 약 3800억원)을 매년 한국 통일교에 송금하고 있다”며 “이 금액은 한국 통일교가 현재 진행하고 있는 리조트 건설 등 여러 가지 사업에 필요한 자본금으로 투입되고 있는데, 이 과정에서 리조트 건설을 위한 별도의 헌금 명목으로 각 신자에게 약 120만엔(한화 약 1200만원)을 헌금할 것을 요구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단·사이비처벌법 제정이 자칫 헌법상 종교의 자유를 침해할 우려와 관련해선 “이단들이 자기 정체를 감춘 채 포교활동을 하는 것 자체가 상대방이 종교를 선택할 자유를 침해하는 행태”라며 “때문에 상대방이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종교를 선택할 자유를 보장하는 전제에서 종교의 자유가 성립된다”고 언급했다.

또 “일본 내 JMS 피해 사례도 간간이 보고되고 있다. 이들 가운데 기업 CEO, 변호사, 의사, 대기업 직장인 등도 있으며 통일교에 비하면 헌금 규모는 작지만 월급의 상당 부분을 바치고 있다고 한다”며 “현재 일본 JMS 신도 수십 명이 성적 피해를 봤다고 자백한 경우는 많지만, 아직까지 민형사 고발까지 이어지지 않은 상황이다. 왜냐면 현재 일본에는 내부 고발자를 보호할 시스템이 부재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오명현 목사(예장 합동 이단대책위 연구분과장)는 ‘정읍살인사건의 실상’이라는 제목의 발제에서 “저는 지난 6월16일 전라북도 정읍에서 신천지에 빠져 이혼을 요구한 아내를 살해한 혐의로 체포된 노모씨와 사건 발생 수일 전까지 이단 상담을 이어간 장본인”이라며 “저는 노씨에게 흥분하지 말고 절제와 인내 등 차분한 마음을 가질 것을 신신당부를 했다”고 했다.

옥살이 불구
지속적 만행

오 목사는 “물론 살인은 어떤 경우든 정당화될 수 없다”며 “그러나 신천지는 자신들의 모략 포교로 인해 부부간 불화 등 가정파탄을 일으킨 책임을 반성하고 피해 유족을 위한 대책 마련을 강구하기는커녕, 일간지 광고·언론사 앞에서 신도를 동원한 대규모 시위 등을 통해 사건의 책임을 다른 데로 돌리며 적반하장의 파렴치한 행위를 일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회는 사이비 종교로 인해 이혼, 학업 포기 등 일상과 가정의 화목이 깨지는 일을 막기 위해 사이비 종교 규제법을 제정해달라”고 강조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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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계엄 1년’ 여전히 요동치는 정치판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2024년 12월3일 오후 10시27분, 윤석열 전 대통령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 국가 최고 통수권자의 선택은 정치권을 넘어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했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탄핵의 강을 건너 마침내 대선 정국까지 넘었다. 1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여의도 곳곳에 계엄의 여파가 남아 있다. 그날 오후 10시 무렵 윤석열 전 대통령이 예산안 관련 긴급 발표를 진행할 예정이라는 정보지가 돌았다. 얼마 뒤 정장 복장으로 대통령실 브리핑룸 카메라 앞에 나타난 윤 전 대통령은 다소 격양된 어투로 당시 야당이었던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강하게 비판했다. 스스로 걸어간 자멸의 길 민주당이 주요 예산을 전액 삭감해 국가 기능을 훼손하고 대한민국을 공황 상태로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더니 돌연 야당을 반국가 세력으로 몰아세웠다. 윤 전 대통령은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 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 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밝혔다. 1979년 이후 45년 만에 내려진 비상계엄이었다. 한 시간도 지나지 않아 국회가 봉쇄됐고 헬기를 타고 도착한 무장 군인들이 안으로 들이닥쳤다. 국회 밖에서는 시민이, 안에서는 야당 보좌진들이 군인과 대치하면서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상황이 이어졌다. 먼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가 입장을 냈다. 한 전 대표는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는 잘못된 것”이라며 “국민과 함께 막겠다”고 밝혔다. 이후 한 전 대표는 탄핵을 찬성한다는 의미의 ‘찬탄파’로 찍혀 친윤(친 윤석열)계의 거센 비난을 받았다. 민주당 당시 이재명 대표는 실시간 방송을 통해 “대통령의 불법적인 비상계엄 선포는 무효”라며 민주주의의 마지막 보루인 국회를 지키기 위해 신속히 국회로 와달라는 말을 남겼다. 내란 사태가 지나고 난 뒤 이 대통령은 이날을 회상하며 “이 상황을 최대한 빨리 많은 시민에게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 실시간 방송을 시작했다”고 전했다. 뒤이어 국민의힘 추경호 전 원내대표가 비상 의총을 소집했다. 추 전 원내대표는 국회 예결위 회의장으로 의총을 소집했다가 10분 뒤 장소를 여의도 당사로 옮겼다. 그리고 약 20분 뒤 다시 국회 예결위장으로 바꿨다. 이는 현재 추 전 원내대표가 받는 ‘비상계엄 해제 표결 방해 의혹’과 연결된다. 다음 날 새벽인 4일 오전 1시 비상계엄 해제 요구안이 국회에 상정됐다. 국회경비대가 국회 출입을 통제하자 담을 넘어서 국회로 진입한 우원식 국회의장은 결의안 상정에 앞서 “(윤 전 대통령이) 계엄령을 선포하면 국회에 지체 없이 통보해야 한다는 의무조항이 있으나 통보가 없었고, 이는 대통령의 귀책사유”라며 “우리는 그와 관계없이 (비상계엄 해제 의결을 위한)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결의안은 여야 의원 190명이 참석한 가운데 190명 전원이 찬성해 가결됐다. 국회 본청에 투입됐던 계엄군은 철수했고 이로써 윤 전 대통령이 선포한 비상계엄은 약 세 시간 만에 무효가 됐다. 비상계엄의 끝은 탄핵 정국의 시작으로 이어졌다. 민주당을 비롯한 ▲조국혁신당 ▲개혁신당 ▲진보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등 야6당은 계엄이 해제된 당일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들은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내란’으로 규정하고 “하야하지 않으면 탄핵소추를 진행할 것”이라고 압박했다. 국민의힘은 탄핵 반대를 당론으로 추인했다.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이 탄핵되는 과정을 겪으며 당이 벼랑 끝까지 몰렸던 점 등을 의식했다는 해석에 힘이 실렸다. 대통령에서 내란수괴 피의자로 썩은줄 알면서도 못 놓는 윤 동아줄 이날을 기점으로 국민의힘에서는 분열의 조짐이 보였다. 탄핵을 반대하는 ‘반탄파’의 친윤계와 찬탄파 친한(친 한동훈)계로 당원들이 갈라서면서 내부 총질이 시작된 것이다. 당초 한 전 대표 역시 탄핵에 반대하는 입장이었지만 비상계엄 당시 자신을 포함한 주요 정치인을 체포하려고 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입장을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여기서부터 시작된 두 계파의 갈등 또한 현재진행형이다. 비상계엄이 선포된 나흘 뒤인 7일,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정족수 미달로 국회에서 부결돼 자동 폐기됐다. 재적 의원 300명 중 195명이 참석한 가운데 탄핵이 상정됐지만 국민의힘 의원 대다수가 불참하면서 투표가 불성립된 것이다. 이날 표결에 참여한 국민의힘 의원은 김예지, 김상욱, 안철수 의원뿐이었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은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의원 105명의 이름을 한 명 한 명 호명하며 본회의장으로 와줄 것을 요구했다. 두 번째 탄핵소추안은 일주일 뒤인 14일 국회에 상정됐다. 당시 국민의힘은 “표결 참석을 제안한다”면서도 탄핵 반대 당론을 유지했다. 결국 300명 가운데 ▲찬성 204표 ▲반대 85표 ▲기권 3표 ▲무표 8표로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 11일 만에 윤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가결됐다. 공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로 넘어갔고 긴 진통 끝에 지난 4월4일 헌법재판관의 만장일치로 윤 전 대통령이 파면됐다. 현직 대통령의 파면에 따라 조기 대선이 치러졌고 민주당에서는 이변 없이 이재명 대표가 대선주자로 나섰다. 국민의힘에서는 여전히 찬탄파와 반탄파가 대립했고 어느 날 늦은 밤을 틈타 ‘대선후보 날치기’를 시도하는 등 웃지 못할 촌극도 벌어졌다. 민주당은 ‘내란 세력 청산’을 앞세웠다. 이 후보는 대통령으로 당선되면 비상 경제 대응 태스크포스(TF) 구성을 약속하는 등 경제 성장을 강조하면서도 “내란 세력의 죄는 단호하게 벌하겠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역시 “이번 선거는 내란 정권에 대한 준엄한 심판”임을 강조하며 윤 전 대통령과 국민의힘 심판론을 부각시켰다. 두 번의 선거 강경파만 남았다 6·3 조기 대선 투표 결과 이재명 후보가 49.42%를 득표하면서 21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41.15%로 이 후보가 8.27%p 차이로 앞섰다. 계엄 극복과 내란 청산을 외친 민주당이 국민의 선택을 받은 것이다. 국민의힘이 윤 전 대통령과 완전히 절연하지 못한 점 또한 보수가 정권 재창출에 실패한 원인으로 꼽힌다. 탄핵 정국 당시 앞장서서 윤 전 대통령을 엄호한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표결 불참’에 따른 역풍을 우려하던 당 의원에게 자신이 박 전 대통령 탄핵에 앞장서서 반대한 점을 언급하며 “나는 끝까지 갔다. 그때 욕 많이 먹었다. 그런데 1년 후에는 ‘윤상현 의리 있어 좋아’(라고 하면서) 무소속으로 나와도 다 찍어줬다”고 말했다. 김문수 후보 역시 대선 투표 직전까지 윤 전 대통령에게 단호히 탈당을 요구하지 못했다. 김 후보는 “대통령 탈당(여부)은 본인 뜻”이라며 “자기가(국민의힘이) 뽑은 대통령을 탈당시키는 방식으로 책임이 면책될 수 없고, 도리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은 대선에서 패배했지만 아직도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지 못했다. 친윤계를 비롯한 중진 의원의 지역구가 보수의 심장인 TK(대구·경북)임을 고려했을 때, 윤 전 대통령과 결별하는 것은 핵심 지지층을 놓는 것과 같다는 우려에서다. 지난 8월 국민의힘 전당대회서도 반탄파인 장동혁 후보가 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됐다. 장 후보는 탄핵 정국 당시 극우 색채가 짙은 탄핵 반대 집회를 찾아가 강성 지지층에게 표심을 구애하는가 하면 찬탄파들을 향해 “내부 총질 세력과는 같이 갈 수 없다”는 발언도 서슴치 않았다. 당선 직후에는 “우파 시민들과 연대해 이재명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모든 것을 바치겠다”며 강경 노선을 예고하기도 했다. 그의 말처럼 장 대표는 지난 9월 장외투쟁을 통해 이정부와 본격적으로 각을 세우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장외투쟁에 나선 것은 ‘조국 사태’ 이후 6년 만이다. 당 지도부는 대구를 시작으로 전역을 돌며 여론전을 통해 반격에 나설 기회를 보고 있다. 민주당은 “내란 옹호 대선 불복 세력의 장외‘투정’”이라고 비꽜다. 마찬가지로 지난 8월 강성 지지층의 지지를 받아 대표로 당선된 정청래 대표는 “윤어게인 내란 잔당의 역사 반동을 국민과 함께 청산하겠다”며 국민의힘 청산을 강조했다. 강경파인 정 대표와 장 대표가 당권을 잡으면서 국회는 점차 극한으로 치달았다. 정면충돌 치킨 게임 계엄 1년을 앞두고는 민주당의 ‘내란 세력 척결’에 국민의힘이 ‘내란 팔이’라고 맞불을 놓는 지경에 이르렀다. 국민의힘 강경파 의원들의 입은 점점 더 거칠어지고 있고, 민주당은 그때마다 계엄 카드를 꺼내며 “내란 옹호 세력과 협치할 수 없다”고 반격했다. 내란 팔이라는 단어는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의 메시지로 시작됐다. 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특검 연장은 오로지 내란 정국을 연장하려는 민주당의 정략일 뿐”이라며 “내란팔이 없이는 국민의 마음을 얻을 자신도, 국정을 책임질 정책 능력도 없으니 이 지경”이라고 몰아세웠다. 민주당 주도로 ‘더 센 특검법’이 통과하자 이를 지적한 것이다. 나 의원은 “에라잇, 맨날 내란, 내란하다 보면 국민들도 결국 지쳐버릴 것”이라며 “소위 내란 약발도 곧 떨어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계엄 1년이 지나도록 제대로 된 사과나 해명도 없이 여전히 민주당 뒷다리만 잡는 게 국민의힘”이라며 “내란팔이라는 말을 하기 전에 그동안 국민의힘이 보여준 태도를 돌아보시라. 윤 전 대통령을 면회하기 위해 구치소로 뛰어간 것이며 극우 집회에서 마이크를 든 것까지, 사과의 기미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지겹다’는 경솔한 표현은 국민께 비판받을 일”이라고 지적했다. 오는 3일 계엄 1년 메시지를 통해 양당의 향배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가운데 민주당은 정당해산 심판을 꺼내든 반면, 국민의힘은 메시지 톤을 놓고 여전히 갈팡질팡하면서 하나의 목소리를 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지난달 26일 “내일(27일) 국회 본회의에서 추경호 전 원내대표 체포동의안 표결이 이뤄진다. 추 전 원내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불법 계엄 당시 의원총회(이하 의총) 장소를 여러번 변경하며 국회의 계엄 해제 표결을 의도적으로 방해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며 “총을 든 계엄군이 국회 창문을 깨고 진입하는 긴박한 상황 속에서 의총 장소를 국회 밖으로 공지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할 수 없는 처사”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것은 다분히 의도적이고 적극적인 계엄 해제 방해로밖에 볼 수 없는, 충분히 의심되는 상황”이라며 거듭 위헌정당 해산심판 청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강경파만 살아남은 포스트 탄핵 여의도 계엄 1년 메시지, 여야 모두 주목 국민의힘 내에서는 메시지의 세기를 놓고 충돌 조짐이 보인다. 강성 지지층을 의식한 지도부는 강경 메시지를 주장한 반면, 원내지도부를 비롯한 일부 초선 의원들 사이에서는 사과를 포함한 톤다운된 메시지를 요구하는 등 온도 차가 생긴 것이다. 초선인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은 한 라디오를 통해 “지난해 극한 여야 대립 속에 다수 야당(민주당)의 입법 전횡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계엄으로 군대를 동원해서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 국가 발전이나 국민통합, 보수 정치에 있어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다. 불법적이고 무모하고 과격한 행동”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간 1년 동안 국민의힘이 비상계엄을 어떻게 생각해 왔는지 등에 대한 규명이 필요하다. 그것이 규명되면 사과와 반성은 당연한 일”이라며 “단순히 사과와 반성으로만 끝나서도 안 된다. 앞으로 국민의힘이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대한 메시지까지 내놔야 한다”고 주장했다. 비상계엄이 지난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현재 여야가 보이는 양상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후와 비슷하다는 평이다. 탄핵 이후 조기 대선에서 당선된 문재인 전 대통령은 해결 과제로 적폐 청산을 내걸었고, 이 대통령은 ‘내란 청산’을 주장했다. 사면초가인 국민의힘 상황 역시 10년 전 탄핵 후폭풍을 직면하고 분열한 새누리당과 닮아있다. 이듬해 6월 지방선거가 예정된 점까지, 지금의 여야가 과거를 그대로 답습할지 이목이 쏠린다. 당시 새누리당은 자유한국당으로 간판까지 교체했지만 2018년 지방선거에 참패하면서 국회 바닥에 무릎을 꿇고 국민에게 사죄했다. 지금 국민의힘이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의 운명이 달라질 것이란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이와 관련해 국민의힘 김재원 최고위원은 CBS 라디오에서 ‘중도층 등 외연 확장을 위해 계엄에 대한 사과가 필요하지 않느냐’는 진행자의 질문에 “투표율을 55%에서 60% 정도로 봤을 때 중도층은 투표를 하지 않는 계층일 경우가 많다. 오히려 진영에 속한 사람들이 투표한다”고 분석했다. 김 최고위원은 “정치 고관여층보다는 정치 무관심층을 따라가야 한다고 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질 건가. 보수는 아직도 분열돼있고 내부 싸움도 있는 상황에서 지금 당장 이동해 갔을 때 벌어질 손실도 굉장히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같은 발언은 선거에 직면하면 중도층 포섭을 위한 전략을 세워야 하지만, 아직 당이 불안정한 만큼 중심이 되는 지지층을 단단히 잡아야 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10년 전 데자뷔? 비상계엄 사과 메시지에 대해서는 “우리가 배출한 대통령이 탄핵당한 것이 우리 숙명인데 그분들이 탈당했다고 해서 벗어나 지겠느냐”며 “자꾸 절연, 절연하는데 인연이 끊기겠느냐. 없어지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일회성 사과로 과거 잘못을 끊어내고 새롭게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우리가 어떤 정치를 할 것인가를 보다 고민하는 그런 모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쉽게 사과하고 끝날 문제가 아니”라며 “사과하는 모습보다는 우리가 앞으로 이런 정치를 해나가고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겠다는 것이 더 낫다”고 주장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