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 의혹 키다리 목사 <일요시사> 단독 보도 후…

수사 6개월 만에…결국 쇠고랑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키다리 아저씨’로 알려진 안모 목사가 구속됐다. 경찰 수사가 시작된 지 6개월여 만이다. 그간 성폭력 혐의와 관련된 물적 증거가 충분함에도 수사가 제자리걸음 수준이라는 지적이 제기돼 왔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진술한 내용의 사실관계 확인을 위해 여러 차례 안 목사를 소환조사하고 압수수색까지 진행했다. 아직 수사가 끝나지 않았지만 이제야 한 걸음 정도 내딛게 됐다는 평가다.

‘보호 종료 아동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센터’(이하 센터) 대표 안모 목사에게 폭행 또는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는 약 10명이다. 이들은 지난해 11월 고소장을 접수하고 성폭력 혐의 입증을 위해 물적 증거 제출과 피해 사실을 경찰에 진술해왔다. 안 목사가 구속되면서 그의 최측근들에 대한 수사도 시작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인정된
물적 증거

경기북부경찰청 여성·청소년 수사대는 안 목사를 준강간 등 혐의로 구속했다고 지난 11일 밝혔다. 피해자들은 주로 안 목사에게 ‘그루밍(grooming) 성폭력’을 당했다. 그루밍이란 단어 뜻 그대로 ‘길들이기’를 의미한다.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를 친분 혹은 호감을 기반으로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피해자에게 성적 가해를 하는 범죄를 말한다.

일반적인 협박이나 폭행 등으로 발생한 성폭행·성추행이 아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지하도록 만든 뒤 관계성을 강조하며 성적 착취를 가하기 때문에 입증하기가 매우 힘든 편이다.

경찰 출신 한 변호사는 “경찰 수사 단계서 그루밍 성폭력 혐의가 인정돼 구속영장이 발부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며 “물적 증거가 인정됐고 수사 과정서 피해자들의 진술과 일치하는 확실한 정황이 발견됐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안 목사의 성폭력 사실은 이미 언론에 여러 차례 보도됐다. <일요시사>가 입수했던 영상 속 안 목사는 폭언을 일삼았고 성추행도 마다하지 않았다. 안 목사는 “XX 가슴은 내 가슴과 같아” “XX랑 XX을 하고 싶었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도 일삼았다.

한 센터 피해자는 “안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다. 안 목사의 생일이 7월16일인데 그날 여자아이가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요구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배가 끝나면 항상 술을 마셨다. 안 목사가 ‘벗어야지! 벗어야지!’라고 말할 때 저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안 목사는 이 같은 성폭력을 성경에 비유하면서 본인이 하는 행동이 “세상이 바라볼 때 타락이겠지만 하늘이 볼 때는 거룩”이라고 자기 합리화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안 목사의 비상식적 행태에 치를 떨던 일부 아이는 센터를 피했다. 안 목사는 센터를 피하거나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불러 쇠몽둥이로 폭행을 일삼기도 했다.

한 아이는 몸에 안 목사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기까지 했다. 다른 피해자는 “‘넌 나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넌 내 말 안 들으면 뇌혈관 세포가 터질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또 안 목사는 ‘네 인생에서 최고의 선물은 본인 영어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입증 어려운 ‘그루밍 성폭력’ 피해자 진술 일치
경찰 “수차례 압수수색에 소환조사로 오래 걸려”

실제 안 목사는 설교 예배 중 신도들에게 “내 말에 집중 안 하면 뇌혈관 세포를 터트려 버린다. 기절해봤어, 안 해봤어?”라고 겁을 줬다. 피해자는 “센터에서는 처음부터 딸, 엄마, 아빠 이렇게 부르니까 처음에는 너무 행복했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과의 관계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딸의 가슴을 만지는 아빠는 없지 않나”라면서 “진짜 가족이 없어서 원래 가족이 이런 건지 모르겠다. 근친상간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돼야겠다고 한 건 센터를 홍보하기 위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대부분은 꿈나무마을 출신이었다. 이들이 꿈나무마을서 퇴소한 이후 센터서 자리 잡을 수 있게 해 준 인물이 안 목사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모씨다.

김씨는 안 목사와 일하기 이전 꿈나무마을서 활동했다. 2020년 4월28일 KBS1서 방영된 <인간극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에 출연했던 A씨도 꿈나무마을서 커왔다. 안 목사는 2016년부터 A씨의 법적 보호자가 됐다.

꿈나무마을과 센터가 자주 왕래하지는 않았다. 각 단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간부들끼리 서로 비난하기 바쁜 각자도생 상태였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그러다 <일요시사> 단독 보도로 꿈나무마을의 아동학대·폭행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이후부터 각 단체의 간부가 모여 오해를 풀었다며 연계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앞서 꿈나무마을 보육원 출신 B씨는 지난해 8월 아동학대 혐의로 이 시설 보육교사 3명을 고소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1까지 6년간 이들로부터 장기적인 학대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B씨는 꿈나무마을서 핸드폰 등으로 맞아 머리가 찢어진 일도 다수 있었고 몽둥이로 폭행을 당한 데 이어 강제로 정신병원에도 입원되는 등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폭력이 일어났다고 주장해왔다.

빼앗긴
기부금

B씨는 2020년, ‘꿈나무마을 내 집단 아동학대 사건과 시설관계자의 은폐’에 관해 조사해달라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꿈나무마을 보육시설 생활관서 보육교사가 아동학대와 성폭력을 저질렀고 ▲시설관계자의 방임과 사건 축소 등으로 100여명이 아동학대 피해를 봐 심각한 사회 부적응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국가인권위는 진정 원인이 된 사실이 발생한 날부터 1년 이상 지났다며 이를 반려했다. 18세가 되면 꿈나무마을서 퇴소해 자립해야 하는 피해자와 아이들 입장에서는 안 목사가 센터에서 머물게 해주는 등의 지원사격이 희망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센터 출신 C씨는 “꿈나무마을과 센터의 사이가 좋지 않고 서로 도우려 하지 않았던 건 관련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내부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고 <인간극장>에도 언급됐던 센터가 좋은 곳이라 믿고 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센터 출신 관계자도 “꿈나무마을서 사실상 탈출을 선택하고 더 나은 환경서 자립을 준비하려 했다”며 “당시에만 해도 꿈나무 출신인 갈 곳 없는 우리를 받아준 안 목사가 고마웠다. 그가 우릴 이용할 줄 알았겠냐”고 되물었다.

안 목사는 부자가 아니다. 센터를 운영하면서 벌어들인 수익이 크지 않았으나 <인간극장>에 출연한 이후 사정이 달라졌다. 대기업과 사회복지 관련 기관들의 후원 금액이 몇 배로 늘면서 센터를 운영하는 사람이라고 보기엔 어려운 수천만원 상당의 자동차와 오토바이까지 끌고 다녔다는 풍문이 파다했다.

회유·사기
혐의 수사?


꿈나무마을과 센터 간 연계 활동이 안 목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안 목사의 횡령 의혹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6월 센터에 다니던 C씨의 통장에 국내 한 기업으로부터 들어온 특별 장학금 500만원이 3분 만에 센터 상임이사 계좌로 송금됐다.

한 달 후에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병원비 명목 후원금 1000만원이 들어왔다. 이 중 700만원도 센터 상임이사에게 보내졌는데 C씨는 지금까지 자신이 써야 할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년에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이 누적됐다면 행정안전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하지 않았다면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서초동 소재의 한 변호사도 “기부 목적 이외에 금전이 유용됐다면 횡령으로 볼 수 있고 대기업과 개인 후원자를 기만한 것이기에 사기죄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며 “사정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횡령 금액이 커진다면 처벌은 더 무거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단체나 개인이 후원금을 받는 단체를 검증하면 좋겠지만 외부서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단체는 후원금을 받은 곳에 대해 자금 흐름 및 사용처 감사를 정부기관에 요청할 수는 있으나 개인은 권한 자체가 없다.

심지어 단체가 요청해도 후원금을 받은 센터가 형식적 자료만 제출하기에 문제점을 파악하기 어렵다.


자신이 써야 할 돈을 돌려받지 못한 이들은 C씨만이 아닌 것으로 전해진다. 안 목사에게 사실상 세뇌를 당해 언론과의 접촉을 피하거나 본인의 후원금이 증발해도 문제라고 자각하지 못하는 피해자가 여럿 있다는 설명이다.

횡령·공갈죄도 인정되나
최측근·방관자 오리무중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꿈나무마을서 퇴소한 아이들이 센터로 갔기 때문에 안 목사 측이 갈취하거나 횡령할 수 있는 돈의 액수가 늘어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안 목사가 구속되면서 그에게 제기됐던 기부금 횡령과 최측근들에 대한 수사도 시작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안 목사의 최측근이자 센터 소속 주모씨는 현행법상 금지된 겸임을 유지하다가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경기도북부청사 어린이집 원장직서 물러난 상태다.

김씨는 경기도 인권위원이었다. 2019년 3월부터 센터서 일한 김씨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 시절인 2021년 위촉됐다. 김씨도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안 목사의 행태를 세세히 알고 있었다.

김씨는 한 언론 인터뷰서 “아이들은 마음의 여유가 없고 너그럽지 않으며 믿음마저 없는 상태라는 것을 유념해야 한다. 호의와 좋은 의도를 가지고 직접 교류를 희망하는 분들도 아이들에 대한 인식변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내면에 숨겨져 있는 깊은 상처를 먼저 헤아리지 못하고 우리의 방식과 바람대로 다가간다면 2차, 3차로 상처받게 되어 마음을 닫아버리게 될 수 있다”며 “센터에서는 후원자와의 교류, 활동 이전에 ‘보호 종료 아동에 관한 인식개선 교육’을 실시해 편협되고 잘못된 인식을 먼저 바꾸고 아이들의 편에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피해자들은 안 목사를 폭행죄 및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주씨를 사기죄, 횡령·공갈죄로 고소하기로 했다. 경찰은 구속된 안 목사에게 횡령과 폭행 혐의에 대해 캐물은 바 있지만 주씨에 대한 수사는 착수한 바 없다. 피해자 측은 주씨가 자신들이 안 목사에게 세뇌돼있다는 사실을 이용해 돈을 교부받기로 마음먹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숨어 지내는
주변 사람들

실제 피해자가 기업으로부터 특별장학금 500만원을 지원받게 되자 그에게 “네가 원래 못 받을 돈인데, 센터가 추천해줘서 받게 된 것”이라며 “3000만원이 법인 통장에 있어야 사단법인 유지가 되는데, 다들 돈이 없다. 네가 받은 특별장학금 전액을 센터에 지급하라”며 계좌이체를 요구했던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들은 이들 모두가 처벌받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경찰이 안 목사를 구속하는 데 6개월이 흐른 만큼 최측근들에 대한 수사도 짧지 않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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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또 빅텐트 타령 국민의힘, 왜?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이 당심 반영 비율을 늘린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이어 장동혁 대표를 필두로 지방선거 전략으로 ‘반명 빅텐트론’을 지난 대선에 이어 또 거론했다. 국민의힘이 6년째 내리 실패한 전략을 또 끌고 오는 이유는 무엇일까? 국민의힘이 지난달 25일 지방선거 경선 규칙을 발표했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 대변인을 맡은 조지연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진행된 기획단 회의 후 “내년 지방선거 경선에서 당원투표 비중을 기존 50%에서 70%로 늘리기로 했다”고 밝혔다. 민심보다 당심으로? 국민의힘 지방선거 공천은 당원투표 70%와 국민 여론조사 결과 30%가 혼합돼 결정된다. 만 44세 이하 청년은 가점을 부여받고, 여성 신인은 만 45세 이상이어도 가산점이 부여된다. 광역의원 비례대표 후보자는 청년 인재 오디션을 거쳐 선출해 최우선 순위로 당선권에 배치할 예정이다. 지난 2022년 지방선거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시행했던 공직 후보자 기초 자격 평가는 기초자치단체장·기초의원 후보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된다. 국민의힘 지방선거 총괄기획단장은 5선 나경원 의원이 맡고 있다. 나 의원은 서울시장 출마 후보군 중 1명으로 거론된다. 현 시점에선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로 오세훈 서울시장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일각에선 “나 의원이 사심 때문에 경선 규칙을 정한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대중적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평가로부터 비롯되는 의심이다. 새로 정한 경선 규칙에 대해선 당내에서도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았던 김용태 의원은 지난 2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내년 지방선거를 시작으로 실질적인 수권 전략을 실현하려면, 공직선거 후보자 선출 규칙은 국민경선 100% 제도를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윤상현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비판했다. 윤 의원은 “민심이 곧 천심이고, 민심보다 앞서는 당심은 없다”며 “민의를 줄이고 당원 비율을 높이는 것은 민심과 거꾸로 가는 길이고, 폐쇄적 정당으로 비칠 수 있는 위험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사법부 압박 논란과 대장동 항소 포기 문제까지 있었는데도 우리 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여당 지지율이 오르는 이유는 무엇이겠느냐”며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 진정성 있는 성찰과 혁신 없이 표류하는 야당에 대한 국민적 실망이 더 크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라고 강조했다. 한국갤럽이 지난 18일부터 20일까지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정당 지지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지지율은 43%였고,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4%였다. 지난 7월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만 18세 이상 1003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화 면접 여론조사 당시 국민의힘 지지율이 19%를 기록했던 것에 비하면 높지만, 두드러진다고 보긴 어렵다. 내부 비판 이어지는데 당심 비중↑ 비상계엄 사과 두고도 ‘옥신각신’ “국민의힘의 지지율이 당분간 크게 오르긴 어렵다”는 일각의 예측도 있다. 다음 달 3일은 비상계엄 1주년이라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재임 중 실정과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불참 ▲윤 전 대통령 체포 저지 시도 ▲심야 대선후보 교체 시도 등 지난 1년 동안 국민의힘이 여론으로부터 비난을 받았던 행보들이 다시 주목받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국민의힘 일부 소장파 의원들은 비상계엄 사과 등을 통한 윤 전 대통령과의 확실한 절연을 요구하고 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지난 24일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좀 더 명확한 메시지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가 당내에서도 나온다”고 말했다. 박 의원은 “역사와 국민 앞에 누군가 사과해야 할 상황이고, 국민의힘이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예측할 수 없었던 돌발적인 계엄이 있었고, 탄핵에 이어 정권을 잃은 후 국정의 주도권을 넘겨줬다”고 강조했다. 반면 같은 당 김재원 최고의원은 같은 달 2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일회성 사과로 과거의 잘못을 끊어내고 새로 출발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며 “사과를 자꾸 하는 것은 오히려 현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은 역사적 공과를 안고 가면서 어떤 정치를 할 것인지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며 “사과하는 것보단 앞으로 국민에게 믿음을 드리는 게 더 낫다”고 역설했다. 장 대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히고 있다. 그는 같은 달 25일, 경북 구미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후 “사과 메시지를 내는 것은 지금 말씀드릴 단계는 아닌 것 같다”며 “국민의힘이 지금 싸워야 할 대상은 무도한 이재명정권과 의회 폭거를 이어가는 민주당”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구미역 광장에서 진행된 민생 회복·법치 수호 경북 국민대회에 참석해 “저들이 똘똘 뭉쳐 우리를 공격하고 손가락질할 때, 우리가 우리를 향해 손가락질·비판하는 게 부끄럽다”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대한민국과 자녀 세대를 위해 소리치는 우리가 아스팔트 세력이라고 손가락질당하는 게 부끄러운 게 아니라, 나라가 쓰러져가는데도 한마디도 못하는 게 부끄러운 것”이라고 강조했다. 해당 발언은 “사과해야 한다”는 일부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풀이된다. 돌발적인 계엄이다? 이재명 대통령·민주당에 대한 투쟁을 강조하는 장 대표의 주장은 빅텐트론으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나 의원도 지난 1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과 민주당을 비판하면서 “국민의힘은 네 탓 공방을 벌이면서 분열에 빠져 있다”며 “정당의 뿌리를 흔드는 내부는 경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하나로 뭉쳐 민주당의 독재 완성 계략에 단호히 맞서야 한다”고 했다. 국민의힘에선 각종 선거와 정국에 대응할 때마다 빅텐트론이 거론됐다. 시작은 황교안 당시 자유한국당 대표가 재임했던 지난 2019년이다. 이듬해엔 “각 정당·정파가 참여하는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해 모든 자유민주 세력과 손을 맞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황 전 대표는 “통합 없이는 절대 이길 수 없단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며 “이 나라를 망치려는 사람들은 통합을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황 전 대표가 주장했던 빅텐트론은 “자유민주주의·시장경제란 헌법 가치를 공유한다면, 태극기 세력부터 중도 보수 인사까지 아우른다”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을 토대로 자유한국당은 미래통합당으로 바뀌었다. 황 전 대표는 제21대 총선 패배 후 물러났다. 이 대표는 빅텐트론에 일관적으로 반대하면서 세대 포위론을 토대로 지난 2022년 대선을 지휘했다. 지난 6월 대선에 출마했던 이 대표는 국민의힘 등 보수 각계로부터 후보 단일화 요구를 받았다. 이 대표는 당시에도 국민의힘 등에서 주장했던 ‘반명 빅텐트론’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대선을 완주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의 빅텐트론을 놓고 “혁신 요구가 나올 때마다 제기되는 주장”이라고 비판한다. 빅텐트론의 핵심은 통합이다. 통합은 정치권에서 반대 계파·의견을 억압하는 수사로 활용되는 예가 잦다. 빅텐트의 핵심은 조정 능력이다. 여기엔 다양한 계파·의견을 조율해 갈등을 최소화하는 리더십이 필요하다. 장 대표는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체제 전쟁 깃발 아래 모일 수 있는 모든 우파가 함께 모여서 이재명정권이 사회주의 독재체제로 가려는 걸 막기 위해 연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체제 전쟁’의 근거는 ▲검찰의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민주당의 배임죄 폐지·대법관 증원 시도 등이다. 장 대표는 공식적으로 국민의힘과 관계없는 황 전 대표가 지난 12일 내란 선동 혐의를 받아 내란 특검에 의해 체포되자 “우리가 황교안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어지는 재탕 삼탕 이어 “국민의힘만으로 이재명정부·민주당과 싸우긴 어렵다”며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주도하는 자유통일당 ▲고영주 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장이 주도하는 자유민주당 ▲새누리당 조원진 전 의원이 주도하는 우리공화당 ▲황 전 대표가 주도하는 자유와혁신 등을 연대 대상으로 지목했다. 이들은 모두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다. 그에 반해 개혁신당과 이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강하게 비판한다. 장 대표가 주장하는 빅텐트론은 김문수 전 대선후보 등이 주장했던 빅텐트론과 큰 차이가 없다. 당시 김 전 후보는 “민주당 이재명 후보를 이기기 위해선 어떤 경우든 힘을 합쳐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한덕수 전 총리 ▲황 전 대표 ▲이낙연 전 총리 ▲이 대표 등을 통합 대상으로 지명했다. 권성동 당시 원내대표는 김 전 후보·한 전 총리의 단일화를 지지하면서, 당시 당내 주류와 불화했던 국민의힘 김상욱 당시 의원(현 민주당 의원)에게 “스스로 거취를 결정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장 대표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에게 당원 게시판 의혹 관련 압박을 가한 것과 비슷하다. 당시 권 전 원내대표는 “당원 대부분은 민주당 이 후보에게 대항하기 위해선 반명 빅텐트가 필요하단 의견을 갖고 있다”며 “지도부는 당원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는 부정선거론을 주장하는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연대를 주장하면서, 개혁신당과의 연대설도 공개적으로 부정하진 않는다. 일각에선 “오 시장이 장 대표·이 대표의 가교 역할을 한다”고 관측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 9월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한 이후 꾸준히 개혁신당과의 연대를 주장하고 있다. 이후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서울시장으로 다시 출마하고,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 야권 단일 후보로 출마하면 수도권에서 보수 진영이 선전할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다. <미디어토마토>가 지난달 28일부터 이틀 동안 서울특별시 거주 만 18세 이상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무선·ARS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오 시장은 보수 진영에서 민심 27.5%·당심 50.3%의 지지를 얻어 서울시장 후보 중 가장 앞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를 선출한 후 ‘여당 프리미엄’을 앞세워 오 시장에 대한 공세를 이어간다면, 재선을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민심을 끝내 얻지 못하면, 오 시장으로선 힘겨운 선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체제 전쟁” 명분으로 사과 거부 홍 “국힘은 보수 참칭 사이비 레밍” 당내에서도 나 의원 등 막강한 경쟁자가 있어 본선행을 확실하게 장담하기 어려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대표는 지난달 23일 “국민의힘 내부에서 변화·쇄신 목소리가 전혀 안 나온다”며 “연대를 함께할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국민의힘은 지난 대선에 이어 1990년대식 ‘뭉치면 이긴다’ 구호만 내세운다”며 “그 전략으로 패배한 사람은 황 전 대표였는데, 같은 선택을 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기대하는 건 이해가 안 간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내부에도 연대를 반대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국민의힘 지도부에서 강경 보수의 주장을 가장 강하게 내세우는 김민수 최고위원은 같은 달 25일, 채널A 유튜브 채널 ‘정치시그널’에 출연해서 “이 대표는 당내 많은 분쟁을 가져온 사람이라서 화합을 해칠 가능성이 있다”며 “개혁신당과의 연대는 득보다 실이 더 많을 수도 있다”고 주장했다. 김 최고위원의 주장은 오 시장의 주장에 대한 반박으로 해석되고 있다. 김 최고위원은 “개혁신당은 보수 정당인지, 진보 정당인지 모르겠고, 그 사이에 있다고 생각한다”며 “저는 최고위원이 되기 전부터 우측으로의 연대를 주장했다”고 설명했다. 대선은 기동전·총력전 성격이 강한 반면, 지방선거는 진지전 성격이 강하다. 선거의 성격이 다르지만, 국민의힘에선 똑같이 ‘반명 빅텐트’라는 구호를 거론하고 있다. 역사엔 위기 상황에서 변화를 거부했다가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맞이한 사례가 다수 기록돼있다. 변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그 집단을 주도할 때, 이 사례는 더욱 빈번하게 재현된다. 중국 청나라에선 수구파를 이끌던 서태후가 변법자강운동을 주도하던 광서제에게 반대해 정변을 일으켜 성공한 후 광서제를 유폐했다. 중국 정부가 지난 2008년 광서제의 능을 공식 발굴 조사한 결과, 광서제는 급성 비소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어 3세 나이로 즉위한 청나라 황제는 베르나르도 베르톨루치 감독의 영화 <마지막 황제>의 주인공인 선통제다. 선통제는 영화 제목 그대로 마지막 황제였다. 광서제의 개혁 시도는 청나라의 마지막 몸부림이었다. 자신에게 유리한 정보만 취사 선택해 그 정보를 근거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고, 불리한 정보는 의도적으로 외면하는 성향을 확증편향이라고 한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지역구 관리에만 능하고, 기득권·이익 추구에만 관심을 두는 의원들이 당을 주도하고 있다”는 의미에서 ‘언더 찐윤’이란 집단이 거론된다. 확증편향 소탐대실 일각에선 국민의힘이 변화·혁신에 거부감을 느끼면서 같은 선택을 반복하는 핵심 이유로 언더 찐윤을 거론한다. 홍준표 전 대구시장은 지난 6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은 이념도 없는, 보수를 참칭한 사이비 레밍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이미 여러 번 선거에서 패배한 전략임에도 확증편향·소탐대실을 근거로 같은 선택을 고집한다면, 무리 지어 절벽에서 떨어지는 레밍과 비교되는 수모를 또 겪을 수도 있다. 하지만 국민의힘에선 또 빅텐트론이 반복되고 있다. 빅텐트는 국민의힘 주변을 배회하는 유령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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