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그루밍 성폭력’ 키다리 목사의 최후

장애 아동도 건드렸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키다리 아저씨’라고 불린 안모 목사가 실형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성폭력 및 특수폭행 혐의를 받는 안 목사에게 징역 6년9개월을 선고했다. 그는 지금까지 혐의를 부인해왔다. 일부 피해자가 항거불능 상태가 아니었고 강압적 성폭행은 없었다는 주장이었다. 그러나 재판부는 피해자들의 일관된 진술 등의 이유로 ‘그루밍 성폭력’을 사실로 판단했다.

‘보호종료아동을 위한 커뮤니티 케어 센터’(이하 센터) 대표 안모 목사는 2020년 4월28일 KBS 1TV <인간극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에 출연한 바 있다. ‘키다리 아저씨’를 자처해 부모가 없는 이들에게 따뜻한 존재가 되고 싶다던 인물은 어느새 악마가 됐다. 자신이 보호하던 이들에게 선행을 베푸는 척 지옥을 선물했다.

녹취에 담긴
저속한 발언

의정부지법 형사11부 지난달 30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및 특수폭행 혐의를 받는 안 목사에게 징역 6년9개월을 선고했다. 또 성폭력 치료프로그램 80시간 이수와 아동·청소년 및 장애인 관련 기관 취업을 10년간 제한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안 목사에 관한 재판은 피해자 보호를 위해 일부 비공개로 진행됐다. 안 목사 측 변호인은 지난 공판서 “증인신문 과정서 성 관련 부분이 언급될 수 있기 때문에 비공개 재판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재판부도 이 같은 주장을 받아들여 해당 사건과 관련 없는 사람들의 방청을 제한하고, 피고인 측이 요청한 증인 2명에 대한 신문을 진행한 바 있다.

안 목사는 지난해 4~5월 자신이 운영하는 보호종료아동센터서 입소자 4명을 상대로 신체접촉하며 추행하는 등 상습적으로 성범죄를 저질렀다.

한 피해자가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에 나선 경기북부경찰청은 안 목사가 심리적 항거불능 상태에 놓인 입소자를 대상으로 성폭력을 저지른 것으로 판단했다. 항거불능 상태는 심신상실 이외의 원인 때문에 심리적·물리적으로 반항이 불가능한 경우를 말한다.

사실상 ‘그루밍(Grooming) 성폭력’을 행한 안 목사에게 피해를 입은 피해자는 10명 가까이 된다. 그루밍이란 단어 뜻 그대로 ‘길들이기’를 의미한다. 그루밍 성폭력은 가해자가 피해자와 친분을 쌓거나 호감을 얻어 심리적으로 지배한 뒤 피해자에게 성적 가해를 하는 범죄를 말한다.

일반적인 협박이나 폭행 등에 의한 성폭행·성추행이 아닌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의지하도록 만든 뒤 관계성을 강조하며 성적 착취를 가하기에 입증하기가 매우 힘들다.

피해자 중 1명은 뇌전증 장애가 있는 데다 가족도 없었다. 경찰은 안 목사가 이 입소자에게 폭행을 가하며 위력으로 간음한 것으로 봤다.

안 목사는 지난 7월 열린 첫 재판서 공소사실 일부를 부인하며 “수사기관이 언론의 기사 내용을 증거자료로 첨부했지만 인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일요시사>가 입수했던 영상 속 안 목사는 폭언을 일삼았고 성추행도 서슴지 않았다. 안 목사는 “XX 가슴은 내 가슴과 같아” “XX랑 XX을 하고 싶었다”는 등의 성희롱 발언도 일삼았다.

한 센터 피해자는 “안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게 한두번이 아니다. 안 목사의 생일이 7월16일인데 그날 여자아이가 보는 앞에서 성관계를 요구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배가 끝나면 항상 술을 마셨다. 안 목사가 ‘벗어야지! 벗어야지!’라고 말할 때 저게 가족이라고 할 수 있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본인 행위 “거룩한 타락” 성경에 비유
혐의 부인…재판부 6년9개월 실형 선고

안 목사는 이 같은 성폭력을 성경에 비유하면서 본인이 하는 행동이 “세상이 바라볼 때 타락이겠지만 하늘이 볼 때는 거룩”이라고 자기합리화를 하기도 했다고 전했다. 안 목사의 비상식적 행태에 치를 떨던 일부 아이는 센터를 피했다. 안 목사는 센터를 피하거나 나오지 않는 아이들을 불러 쇠몽둥이로 폭행을 일삼기도 했다.

한 아이는 몸에 안 목사의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기까지 했다.

다른 피해자는 “‘넌 나에게 복종해야 된다’는 말부터 시작해서 ‘넌 내 말 안 들으면 뇌혈관 세포가 터질 것’이라고 말한 적도 있다. 또 안 목사는 ‘네 인생서 최고의 선물은 본인 영어 이름을 문신으로 새기는 거라고 말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안 목사는 설교 예배 중 신도들에게 “내 말에 집중 안 하면 뇌혈관 세포를 터트려 버린다. 기절해봤어, 안 해봤어?”라고 겁을 줬다. 피해자는 “센터에서는 처음부터 딸, 엄마, 아빠 이렇게 부르니까 처음에는 너무 행복했다”면서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빠라고 불리는 사람과의 관계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고 토로했다.

그는 “딸의 가슴을 만지는 아빠는 없지 않나”라면서 “진짜 가족이 없어서 원래 가족이 이런 건지 모르겠다. 근친상간당하는 기분”이라고 말했다. 이어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가 돼야겠다고 한 건 센터를 홍보하기 위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안 목사는 센터 설교 도중 “루시퍼가 나쁘지만은 않다. 일부 악마의 행위는 타락이 아닌 거룩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한 피해자는 “안 목사는 성폭행이 발생한 그날(지난 7월16일) 술자리를 ‘거룩한 타락’으로 합리화했다”며 “평소 폭력을 가하거나 성희롱할 때 자신의 행동을 성경에 비유하면서 ‘세상이 바라볼 때 타락이겠지만 하늘이 볼 때는 거룩’이라는 말로 자신의 죄를 정당화했다”고 주장했다.

또 다른 피해자는 “안 목사는 자신만의 세계관을 만들고, 그곳에서 왕처럼 군림하고 싶었던 셈”이라며 “새 율법이라는 자신만의 율법을 만들고 ‘영적 멘토’(안 목사 자신)를 하나님 다음으로, 하나님과 같이 섬겨라’라는 의미를 가르쳤다”고 말했다.

십자가로
길들이기

이어 “센터에 근무하는 선생님과 보호아동들에게 각각 뜻이 있는 이름과 숫자를 부여했다”고 덧붙였다.

안 목사에게 성폭력을 당한 피해자 대부분은 꿈나무마을 출신이었다. 이들이 꿈나무마을서 퇴소한 이후 센터서 자리 잡을 수 있게 도와준 인물이 안 목사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김모씨다.

김씨는 안 목사와 일하기 이전 꿈나무마을서 활동했다. 2020년 4월28일 KBS1서 방영된 <인간극장> ‘그렇게 가족이 된다’에 출연했던 A씨도 꿈나무마을서 커왔다. 안 목사는 2016년부터 A씨의 법적 보호자가 됐다.

꿈나무마을과 센터 간 연계 활동이 안 목사에게 어떤 도움이 될까? 안 목사의 횡령 의혹을 보면 알 수 있다. 지난해 6월 센터에 다니던 C씨의 통장에 국내 한 기업으로부터 들어온 특별 장학금 500만원이 3분 만에 센터 상임이사의 계좌로 송금됐다.

한 달 후에는 대한적십자사로부터 병원비 명목 후원금 1000만원이 들어왔다. 이 중 700만원도 센터 상임이사에게 보내졌는데 C씨는 지금까지 자신이 써야 할 돈을 돌려받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1년에 1000만원 이상의 기부금이 누적됐다면 행정안전부 또는 지방자치단체에 등록을 해야 한다. 등록하지 않았다면 기부금품법 위반 혐의가 적용될 가능성도 있다.

서초동 소재의 한 변호사도 “기부 목적 이외에 금전이 유용됐다면 횡령으로 볼 수 있고 대기업과 개인 후원자를 기만한 것이기에 사기죄도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며 “사정기관의 수사 결과에 따라 횡령 금액이 커진다면 처벌은 더 무거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단체나 개인이 후원금을 받는 단체를 검증하면 좋겠지만 외부서 돈의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단체는 후원금을 받은 곳에 대해 자금 흐름 및 사용처 감사를 정부기관에 요청할 수는 있으나 개인은 권한 자체가 없다.

재판 넘겨진
꿈나무마을

심지어 단체가 요청해도 후원금을 받은 센터가 형식적 자료만 제출하기에 문제점을 파악하기 어렵다.

한 시민단체 관계자는 “꿈나무마을서 퇴소한 아이들이 센터로 갔기 때문에 안 목사 측이 갈취하거나 횡령할 수 있는 돈의 액수가 늘어나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안 목사가 구속되면서 그에게 제기됐던 기부금 횡령과 최측근들에 대한 수사도 시작돼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안 목사의 최측근이자 센터 소속인 주모씨는 현행법상 금지된 겸임을 유지하다가 <일요시사> 취재가 시작되자 경기도북부청사 어린이집 원장직서 물러났다.

김씨는 경기도 인권위원이었다. 2019년 3월부터 센터서 일한 김씨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재직하던 시절인 2021년 위촉됐다. 김씨도 다른 인물들과 마찬가지로 안 목사의 행태를 세세히 알고 있었다.

꿈나무마을과 센터가 자주 왕래하지는 않았다. 각 단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간부들끼리 서로 비난하기 바쁜 각자도생 상태였다는 게 피해자들의 주장이다.

피해자들은 꿈나무마을과 센터가 그간 왕래가 거의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각 단체가 어떻게 운영되는지 관심도 없었을뿐더러 간부들끼리 서로 비난하기 바쁜 각자도생 상태였다고 한다.

그러다 꿈나무마을의 아동학대·폭행 의혹이 사실로 드러난 이후부터 각 단체의 간부가 모여 오해를 풀었다며 연계 활동을 하기 시작했다.

꿈나무마을 보육원 출신 B씨(22)는 지난해 8월 아동학대 혐의로 이 시설 보육교사 3명을 고소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고1까지 6년간 이들로부터 장기적인 학대를 받았다는 주장이다. B씨는 꿈나무마을서 핸드폰 등으로 맞아 머리가 찢어진 일도 다수 있었고 몽둥이로 폭행을 당한 데 이어 강제로 정신병원에도 입원되는 등 장기적이고 지속적인 폭력이 일어났다고 주장해왔다.

아동센터 입소자들 상대로 신체 접촉
성희롱 등 상습적으로 성범죄 저질러

B씨는 2020년, ‘꿈나무마을 내 집단 아동학대 사건과 시설관계자의 은폐’에 대해 조사해달라는 진정을 국가인권위원회에 제기하기도 했다. 여기에는 ▲2010년부터 2018년까지 꿈나무마을 보육시설 생활관서 벌어진 보육교사의 아동학대와 성폭력 ▲시설관계자의 방임과 사건축소 등으로 100여명이 아동학대 피해를 입어 심각한 사회 부적응을 겪고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하지만 국가인권위는 진정 원인이 된 사실이 발생한 날부터 1년 이상 지났다며 이를 반려했다.

센터 출신 C씨는 “꿈나무마을과 센터의 사이가 좋지 않고 서로 도우려 하지 않았던 건 관련 업계에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내부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고 <인간극장>에도 언급됐던 센터가 좋은 곳이라 믿고 갔던 것”이라고 말했다.

꿈나무마을의 아동폭행 학대 사건도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다. 서울경찰청 아동학대특별수사팀은 지난해 10월24일 아동복지법 위반, 아동학대범죄의처벌등에관한특례법 위반 등 혐의를 받는 꿈나무마을 보육교사 3명을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들은 꿈나무마을서 자란 B씨를 지난 2011~2016년 지속적으로 학대한 혐의를 받는다.

경찰의 수사결과통지서에 따르면 보육교사 성모씨는 2011~2016년 동급생들 앞에서 B씨를 ‘저능아’ 등으로 부르며 상습적으로 정서적 학대 행위를 했다. 2012년 9~10월에는 기분이 좋지 않다는 이유로 B씨의 뺨을 10차례 때렸고, 휴대폰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5회 가량 내리찍었다.

성씨의 학대 행위는 이듬해에도 계속됐다. 2013년 여름에도 같은 방식으로 B씨에게 폭력을 행사했다. 2015년 여름에는 동급생들에게 B씨를 때리라고 지시하고, 휴대폰으로 B씨의 머리를 내리찍었다.

다른 보육교사 장모씨는 2016년 8월 동급생과 싸웠다는 이유로 쇠파이프 재질의 대걸레 봉으로 B씨의 엉덩이를 10~30회가량 때린 혐의를 받는다. 정모씨에게는 2011년 동급생과 싸우라고 시키는 등 B씨에게 정서적 학대를 가했다는 혐의가 있다.

침묵하는
방관자들

다만, 성씨 등 3명이 다른 동급생에게 지시해 B씨를 학대하게 한 일부 사건은 증거불충분으로 불기소 처리됐다. 목격자 등 동료들이 증언을 번복했기 때문이다.

보육교사 3명은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겨진 것으로 확인됐다. 서울서부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검사 정현승)는 이들을 아동학대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아동복지시설종사자등의아동학대가중처벌)으로 불구속 기소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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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