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터닝포인트’ 이낙연 11월 위기론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10.12 10:53:10
  • 호수 129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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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개의 태풍이 몰아친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국정감사 이후 정치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는 예상이 정가로부터 들려온다. 당 대표로서는 물론 대권주자로서도 중대한 사건이 예정돼있다. <일요시사>는 이 대표가 맞닥뜨릴 운명의 11월을 미리 살펴봤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ㄱ지ㅏ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안팎에선 ‘이낙연 체제’가 순항하고 있다고 평가한다. 취임 후 곧바로 의료계 파업 사태를 해결했다. 코로나19 재확산 추세로 국민의 불안감이 높던 상황서 강경했던 의료계와의 갈등을 해결해낸 점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각종 사안
정면 돌파

4차 추가경정예산(이하 추경)이 역대 최단기간에 국회 문턱을 넘게 한 일은 백미였다. 이낙연 대표는 앞선 취임 일성서 야당과의 ‘원칙 있는 협치’를 강조했다. 코로나19로 야당이 추경안을 마냥 반대하기 힘든 환경이었지만, 이 대표는 취임 일성을 통해 한 자신의 말을 지키는 데 성공했다.

추석 연휴 전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집행을 약속한 정부여당에 선물보따리를 안긴 셈이다.

‘제2의 조국 사태’로 확전될 수 있었던 추미애 법무부 장관 아들 군복무 특혜 논란도 미풍에 그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이 대표는 해당 논란에 ‘검찰 수사 우선’이라는 기조로 정면 돌파를 선언했고, 추 장관과 그의 아들은 검찰 조사서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 민주당 입장에서는 오히려 반격의 실마리를 찾게 됐다.

북한의 해양수산부 공무원 사살 사건도 발 빠르게 대처해 주목받았다. 이 대표는 국회서 박재민 국방부 차관 등 국방부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보고를 받은 뒤 “북한군 행위는 용납될 수 없는 만행”이라며 규탄했다.

관련 상임위인 국회 국방위원회 소집도 지시했다. 주말 동안 북한에 남북 공동조사 수용을 촉구하는 메시지도 내놨다.

전당대회 후 발생할 수 있는 후유증도 미연에 차단하는 모습을 보였다. 당권 경쟁상대였던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을 국민통합위원장으로 기용한 일이 대표적이다. 추 장관을 방어하는 과정서 나온 자당 의원들의 설화 문제도 “과잉대응은 자제하라”는 지시로 해결, 리더십을 보여주는 데 성공했다.

서울·부산시장 공천 여부 초읽기
‘친문 적통’ 항소심 선고 임박해

민주당이 발목 잡힐 만한 사안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철퇴를 가하는 모습도 보였다. ‘이낙연판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로 불리는 윤리감찰단은 이스타항공 대량 해고와 비리 의혹의 주역인 이상직 의원, 10억원대 재산을 숨긴 김대중 전 대통령의 3남 김홍걸 의원을 1차적 윤리감찰 대상으로 선정했다.

결국 김 의원은 제명됐으며, 이 의원은 “선당후사의 자세로 더 이상 당에 폐를 끼치지 않겠다. 잠시 당을 떠나 있겠다”며 탈당했다. 배임 횡령 등의 혐의로 기소된 윤미향 의원은 당직 정지에 이어 당원권 정지가 결정됐다. 이 대표 특유의 ‘위기의 리더십’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이처럼 순항하고 있는 이 대표지만, 정치권에선 ‘11월 위기설’이 감지된다. 이달 당 대표로서는 물론 대권주자로서도 중대한 사건이 예정돼있기 때문이다.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과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항소심 선고가 11월에 결정 난다.
 

▲ 윤미향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서울·부산시장 재보궐선거는 내년 4월에 열린다. 오거돈 전 부산시장과 박원순 전 서울시장이 권력형 성비위로 물러났다. 오 전 시장은 지난 4월23일 예정에 없던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기자회견서 부산시 직원을 강제 추행한 사실을 인정했다. “소셜미디어 계정 비밀번호가 변경돼 로그인이 안 된다”며 직원을 집무실로 불러 강제로 추행했다는 것이다. 피해자는 지난 4월 초 부산시 관계자에게 피해 사실을 알리고, 4월 중순 오 전 시장의 사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오 전 시장에게 강제추행 혐의를 적용해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미투’ 의혹에 휩싸였던 박 전 시장은 끝내 숨진 채 발견됐다. 전직 비서로부터 성추행 혐의로 피소된 후 하루 만에 벌어진 일이다.

오 전 시장 사건이 그랬던 것처럼 박 전 시장 사건 또한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다. 청와대와 정부, 민주당은 한마디로 패닉 상태에 빠졌다. 민주당은 박 전 시장의 시신이 발견된 당일 주요 일정을 모두 취소했다. 박 전 시장이 민주당의 유력한 대권주자였다는 점에서 충격은 더욱 크게 느껴졌다.

두 사건 이후 정치권의 관심은 민주당이 과연 서울·부산시장 후보를 공천하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모아졌다. 야권은 잇단 성비위를 저지른 광역단체장들이 민주당 소속이라는 점을 들어 압박하고 있다.

민주당 내부도 시끄러웠다. 민주당 소속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지난 7월 “공당이 문서로 규정했으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게 맞다”고 말했다. ‘당 소속 선출직 공직자 부정부패 사건 등 중대 잘못으로 그 직위를 상실해 재보궐선거를 하게 되는 경우 해당 선거구에 후보자를 추천하지 않는다’고 규정한 민주당 당헌 96조 2항을 의미한다.

이는 서울·부산시장 후보 공천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제1야당인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이 지사의 발언에 “정말로 옳은 말씀”이라고 밝힌 반면, 민주당 이해찬 당시 대표는 비공개 회의서 “왜 지금 그런 말을 하냐”는 취지로 이 지사의 발언을 질타한 것으로 전해졌다.
 

▲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의원

이 지사는 자신의 발언이 도마 위에 오르자 서울·부산시장 무공천 발언은 의견일 뿐 주장이 아니라고 입장을 선회했다.

예정된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내년 4월로 예정된 재보궐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내년 2월에는 경선을 치러야 한다. 늦어도 올해 연말쯤에는 민주당이 후보를 낼지 말지 결정해야 한다. 현재 가장 유력한 시나리오는 21대 국회 첫 국정감사가 끝난 직후인 11월 초에 공천 여부를 결정하는 것이다.

민주당 홍익표 민주연구원장은 지난 6일 CBS라디오와의 인터뷰서 사견을 전제로 “(후보 공천 결정은)11월 초를 넘기지 않는 게 좋다”고 밝혔다. 이어 “공개적인 논의가 적절한 시점에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며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결정하는 게 좋다”고 덧붙였다.

이 대표 역시 지난 전당대회를 앞두고 “공천 여부를 결정해야 하는 게 연말쯤 될 테고 그 전에 해야 할 일이 많이 남았는데, 먼저 끄집어내 당내서 왈가왈부하는 게 현명한 일인가”라고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선 정치적 부담이 상당하다. 민주당 소속 광역단체장의 성비위로 치러지는 재보궐선거에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낸다면 국민적 지탄을 받을 수 있다.

야권의 공세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다. 국민의힘 서범수 의원은 재보궐선거 비용만 약 1000억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는 주장을 지난 7월 펼친 바 있다. 만약 후보를 냈다가 선거서 패배한다면, 이 대표에 대한 책임론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반대로 후보를 내지 않는 결정 역시 상수가 아니다. 재보궐선거는 대선을 1년여 앞둔 시점서 치러진다. ‘미니 대선’인 셈이다. 1000만명이 넘는 유권자의 투표가 예상되는 상황서 민심을 점검하지 않고 넘어가기에는 민주당 지도부가 느낄 부담이 크다. 무엇보다 대선 전 야권과의 기싸움서 밀렸다는 인상을 줄 수 있다.

또 민주당에는 서울·부산시장을 노리는 후보들이 많다. 서울시장 후보로는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우상호 의원, 박주민 의원, 부산시장 후보로는 김영춘 국회 사무총장, 김해영 전 최고위원 등이 거론된다.

만약 이 대표가 공천을 하지 않는다면 서울·부산시장을 원하는 이들의 불만이 폭발할 수 있다.

이 대표 등 민주당 지도부는 11월쯤 입장을 정리한 후 전 당원을 대상으로 무공천을 명시한 당헌 개정에 대해 투표 방식으로 의견을 묻는 절차를 거칠 것으로 전망된다. 

정치적 부담 
끌어안을까

앞서 이 대표는 조만간 공천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그는 지난달 23일 “후보를 낼 것인지 늦지 않고 책임 있게 결정해서 국민들에게 보고한 뒤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현재로서는 이 대표가 후보를 내는 방향으로 결정을 내릴 것이라는 예상이 힘을 받고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항소심 선고가 오는 11월6일로 다가왔다. 정치권이 그의 선고 결과에 주목하는 이유는 현재 이 대표와 이재명 경기도지사가 선두 경쟁을 벌이는 양강 구도를 3파전으로 만들 수 있는 파급력을 지녔기 때문이다. 
 

▲ 김경수 경남도지사

<경향신문>이 여론조사업체 ‘한국리서치’와 지난 3~4일 실시해 6일 공개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범여권 대권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이 대표와 이 지사가 각각 24%의 응답을 받아 공동 1위를 차지했다. 해당 조사서 김 지사는 1%에 그쳤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

선두를 달리는 두 사람과 김 지사의 격차는 커 보인다. 그러나 차기 대선은 아직 1년5개월이나 남았다. 이 지사는 지난 7월 ‘사법족쇄’를 풀어내는 데 성공, 이 대표와 선두 경쟁을 벌이고 있다. 김 지사 역시 사법족쇄를 풀면 차기 대권주자로서 부상할 공산이 크다. 

재보궐 패배하면…
친문 표심 이동하나

민주당 이해찬 전 대표는 지난달 16일 언론 인터뷰서 김 지사의 대권 가능성에 대해 “일단 재판 결과를 봐야 한다. 만약 살아 돌아온다면 지켜봐야 할 주자는 맞다”며 “김 지사가 동안이라 그렇지, 대선 때 55세면 어리지도 않다. 이 지사하고 별 차이도 안 난다”고 언급했다.

친노 좌장이자, 친문의 핵심인 이 전 대표의 발언으로 정치권은 김 지사의 선고 결과에 더욱 주목하고 있다.

김 지사는 친노·친문을 가리지 않고 흡수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닌 주자로 꼽힌다. 그는 노무현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의 측근이다. 노 전 대통령의 마지막 비서관이었으며, 문 대통령이 당선됐던 지난 2017년 대선에서 인수위원회 역할을 한 국정기획자문위원(기획분과)으로 활동했다.

당시 김 지사가 몸담았던 기획분과는 해당 위원회서 정책 총괄을 맡는 등 중추적인 자리였다.

앞서 김 지사는 경남 스마트산업단지 보고대회(지난달 17일)서 문 대통령과 함께 모습을 드러내 정치권의 큰 주목을 이끌어냈다. 당시 김 지사가 “문 대통령께서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주셨다.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자 문 대통령은 “뜨거운 응원의 박수를 보낸다”고 화답했다. 

김 지사는 ‘친문 적통’이다. 그가 만약 사법족쇄를 풀어내 대권 경쟁에 뛰어든다면 유일한 친문 대권주자로 분류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동교동계로 중립적 대권주자에 가까우며, 이 지사는 비문으로 통한다.

정치권은 이 대표와 친문이 ‘시한부 동거’를 하고 있다고 분석한다. 친문의 지지는 지난 전당대회서 이 대표가 당권을 잡을 수 있었던 주요 요인으로 꼽힌다. 당시 이 대표는 민주당 권리당원으로부터 63.73%의 득표율을 얻었다. 이 대표가 친문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았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양강 구도
3파전으로?

김 지사가 사법족쇄를 풀면 친문 지지층 다수가 이 대표에게서 김 지사로 옮겨갈 수 있다. 이 대표 역시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로서 문 대통령과 오랜 기간 호흡을 맞추며 친문의 눈도장을 얻는 데 성공했지만, 노 전 대통령 시절부터 ‘동고동락’해온 김 지사를 향한 친문 진영의 호감도 만큼은 아니라는 것이 정치권의 중론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김경수 항소심 쟁점은?

‘드루킹’ 일당과 공모해 포털사이트 기사 댓글 추천 수를 조작한 혐의로 기소된 김경수 경남도지사의 항소심 선고가 약 한 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1심과 다른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집중된다.

쟁점은 김 지사가 과연 댓글 조작 매크로 프로그램인 ‘킹크랩’을 시연하는 장면을 봤느냐다.

김 지사 측은 재판부에 시연회 당일인 지난 2016년 11월9일 수행비서의 ‘구글 타임라인’과 ‘닭갈비 영수증’을 증거로 제출하며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사무실을 방문해 드루킹 일당 등 경공모 회원들과 닭갈비를 먹었을 뿐 시간 관계상 시연회를 볼 수 없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허익범 특별검사팀은 김 지사 측이 제출한 영수증은 경공모 회원들이 가게서 식사한 것이며, 김 지사는 시연회를 봤다고 맞섰다.

목격자들의 증언도 엇갈린다.

증인으로 나온 당시 닭갈비 가게 사장은 “닭갈비 15인분을 가게에서 먹고 갈 수 없다. 포장해 간 것이 맞다”며 김 지사 측 주장을 뒷받침한 반면, 경공모 사무실서 식사 준비를 도왔던 드루킹 동생 김모씨와 경공모 회원 조모씨는 당시 김 지사의 식사가 없었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또 다른 쟁점은 ‘역작업’에 대한 판단이다.

특검팀이 제출한 증거 중에는 드루킹 일당이 더불어민주당이나 문재인 당시 대선후보에 대한 부정적인 댓글에 ‘공감’ 버튼을 클릭한 이른바 역작업도 포함돼있다. 

특검팀은 역작업 비율이 전체의 0.7%도 되지 않는다고 주장, 그마저도 드루킹이 김 지사에게 경공모 회원 도모 변호사를 오사카 총영사로 추천해줄 것을 요구했다가 거절당한 것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했다.

반면 김 지사 측은 특검팀이 제출한 댓글 조작 증거의 30% 이상이 역작업이라고 주장하며 오히려 드루킹과 공모 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증거라고 맞서고 있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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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맛대로’ 양당의 선동 역사학

‘입맛대로’ 양당의 선동 역사학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정치가 역사·문화를 소비하는 방식은 진영마다 다르다. 하지만 결론을 먼저 정해놓고 사실과 검증을 뒤따르게 만든다는 공통점은 있다. 더불어민주당 일각은 정치적으로 친화적인 영화에 역사적 의미와 권위를 부여하고, 국민의힘 일각은 이미 확립된 역사적 판단을 다시 논쟁의 영역으로 끌어낸다. 서로 다른 길을 걷지만 종착지는 같다. 양당의 ‘선동 역사학’은 결국 반지성주의를 마주보게 한다. 영화사에 걸작으로 남은 선전·선동 영화로 구소련의 1925년 작 <전함 포템킨>과 나치 독일의 1935년 작 <의지의 승리>를 거론할 수 있다. 이 영화들은 관의 전폭적인 제작 지원을 받은 관제 영화였지만, 당시로서는 참신하고도 획기적인 촬영 기법을 통해 극한의 선전·선동을 수행하면서 역사에 남았다. 말보다 강한 장면 <전함 포템킨>은 각각의 쇼트를 연결하면 제3의 감정·개념이 발생한다는 판단 아래 몽타주 기법을 선보였다. 포템킨 전함의 수병이 먹을 고기에 구더기가 득실거리면, 구 러시아 제국의 체제가 부패했다는 감각이 만들어진다. 오데사 계단에서 벌어지는 학살극은 군인들의 군화와 겁에 질린 사람들의 얼굴 등을 빠르게 교차하며 묘사한다. 이어 어머니가 쓰러지고 아기를 태운 유모차 한 대가 계단을 내려간다. 실제 화면에 등장하는 폭력의 양보다 관객이 체험하는 학살의 규모가 훨씬 크게 느껴지는 것이다. <의지의 승리>는 아돌프 히틀러의 초월적 지도자상을 시종일관 강조한다. 하지만 직접 강조하지는 않는다. 히틀러가 탄 비행기가 구름 위를 날아오고, 그 아래로는 독일의 도시가 펼쳐져 있다. 비행기가 착륙한 후에는 히틀러가 등장한다. 그야말로 웅장한 신의 강림이다. 이어 펼쳐지는 것은 ‘하나의 지도자’와 질서정연한 수십만의 군중이다. 이 구도에 개인은 없다. 지도자와 군중은 하나의 유기체처럼 움직이는 민족 공동체인 것이다. “전체주의가 옳다”는 말 대신 ‘하나의 지도자’와 수많은 사람이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렇듯 권위주의 체제에서는 국가가 문화 생산·배급에 직접 개입해 선전·선동을 수행할 수 있었다. 나치 독일도 영화산업을 강하게 통제·지원하면서 영화를 이데올로기 전달 수단으로 적극 이용했다. 하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정부·정당이 특정 영화를 직접 주문 제작해 자신의 역사관을 주입하는 방식은 일반적이지 않다. 정치와 문화는 보다 간접적으로 만난다. 대표적인 방법은 정치인이 특정 영화를 관람한 후 의미를 부여하거나 공개적으로 추천·평가하는 것이다. 반대로 자신이 두둔하는 영화가 비판을 받으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규정하면서 방어하기도 한다. 자신의 세계관과 친화적인 작품에 정치적 의미를 부여하면서 공개적으로 찬양·추천·옹호하고, 작품이 가진 정치적 메시지의 확산을 돕는 것이다. 정치적 지위와 진영의 상징 자본을 이용해 특정 작품에 역사적·도덕적 권위를 부여하는 방향이라고 볼 수 있다. 영화 <암살자(들)> 개봉 이후 많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치인이 영화를 두둔하면서 표현의 자유를 언급했다. 하지만 작품의 역사적 암시를 둘러싼 반발도 거세다. <암살자(들)>은 육영수 여사를 암살한 범인 문태광(박정민 분)을 움직였을 수도 있는 배후로 ‘중정 윗선’을 거론한다. ‘중정 윗선’은 중의적인 의미를 가진 말이다. ‘중앙정보부 내 윗선’으로 해석하면 신직수 당시 중앙정보부장 등 간부들로 해석할 수 있다. 반대로 ‘중앙정보부를 움직이는 더 높은 권력’으로 해석하면 박정희 당시 대통령까지 연상할 수 있다. 영화는 영화라더니 픽션에 역사 입히는 정치 예술의 진영 가치화…국힘에 대가·책임·처벌? 연출자 허진호 감독은 지난 2일 JTBC <뉴스룸>에 출연해 “이 영화가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을 지시한 영화라는 어떤 재단을 해놓고 보신다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저는 애초부터 분리해서 생각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권력을 지키는 게 아내의 목숨보다 중요하다면?”이라는 대사가 나온다. 이 때문에 허 감독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가라앉지 않고 있다. 아울러 당시 사건과 직접적인 인과관계가 없는 <동아일보> 자유언론실천선언을 사건과 하나의 서사로 연결해 의문을 제기하는 주인공들에게 정당성을 부여한다. 그런데 유신 정권의 언론탄압은 이전부터 존재했고 자유언론운동도 이미 진행되고 있었다. 오히려 긴급조치는 육 여사 사망 이후 일부 해제됐고, 유신 비판 운동은 이후 더욱 확산됐다. 이 같은 ‘시간차 눈속임’ 때문에 허 감독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논란이 이어지는 측면이 있다. 또 제작사 하이브미디어코프가 <야당> <남산의 부장들> <메이드 인 코리아> <서울의 봄> 등 군사 정권·정보기관·권위주의 시대의 권력을 비판적으로 다룬 영화·드라마를 반복적으로 제작해온 점도 논란을 증폭시키는 배경으로 자리 잡는다. 이 때문에 보수 진영에서는 작품 자체를 넘어 제작사의 역사관을 의심하는 반응까지 나오고 있다. 민주당 정치인의 <암살자(들)> 두둔도 영화에 대한 비판과 함께 강해지고 있다. 민주당 박지원 의원은 지난 5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암살자(들)> 극우 정치권 홍보가 아니라 작품성으로 매일 매진 매진!”이라며 “대박 납니다. 신납니다”라고 썼다. 이어 “극우들이 바라는 대로 육영수 여사도 제작하고 박정희 대통령의 편력도 만들면 히트? 육 여사님은 우아하시겠지만, 박정희의 편력은?”이라며 “영화는 영화입니다”라고 덧붙였다. 같은 당 서영교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주연 배우 유해진씨가 자택 앞 시위에 대해 강경 대응하기로 결정했다는 언론 보도를 공유하면서 “극우와 국힘(국민의힘)에 그 대가를! 책임을! 처벌을!”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극우 그리고 국힘, 그 영화 보기는 했나? 보면 감동할 걸? 영화 진짜 잘 만들었어. 작품성 최고!”라고 강조했다. 나치 독일의 문화·예술관은 정치적 세계관을 최상위 가치에 둔 후 그 세계관에 얼마나 기여하는지에 따라 문화·예술의 가치를 평가했다. 우호적인 문화에는 권위를 부여했고 적대적인 문화에는 ‘퇴폐적’이라는 낙인을 찍고 배제했다. 물론 민주주의 국가 정치인의 영화 추천과 국가 권력으로 문화 생산 자체를 통제했던 나치의 문화 정책은 그 성격과 강도가 전혀 다르다. 비교할 수 있는 것은 정치적 세계관이 예술의 가치 판단에 개입하는 방식이다. 예술의 진영화 박 의원은 먼저 “영화는 영화”라고 전제하면서도 “양식 있는 국민 모두가 관람하는 게 영화를 살리고 유해진을 돕는 길”이라면서 <암살자(들)> 재관람 캠페인까지 제안했다. <암살자(들)>의 흥행 추이도 정치적 공방의 일부로 해석했다. 박 의원은 <암살자(들)>을 정치적 연대 행위의 매개물로 만들었다. 예술작품을 진영 연대의 상징으로 소비한다는 측면에서 나치 문화 정치와 추상적인 공통점이 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작품의 미학적·역사적 타당성을 독립적으로 평가하는 게 아니라 ‘누가 공격하고, 우리 진영이 방어해야 할 작품인지’라는 정치적 좌표가 작품의 가치 판단에 개입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예술의 진영적 가치화’라고 할 수 있다. 서 의원의 발언은 “국민의힘과 극우는 책임·처벌의 대상이고, 그들이 공격하는 문화상품은 감동적이고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이라는 문장으로 독해될 수 있다. 겉으로는 유씨의 자택 앞 시위에 대한 책임·처벌을 주장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다만 문법적으로는 ‘극우’뿐 아니라 국민의힘까지 책임과 처벌의 대상으로 병렬해 놓은 것으로도 읽힌다. 서 의원은 긍정적 문화와 부정적 정치집단을 한 문맥 안에 동시에 설정했는데 의미심장한 대목이다. 나치는 자신의 세계관에 맞는 작품에 ‘건강한 독일 예술’이라는 권위를 부여하면서 반대편에는 ‘퇴폐적’ ‘볼셰비키적’ ‘유대적’이라는 정치적·도덕적 낙인을 찍었다. 박 의원은 개인적 영화 감상을 진영적 집단행동으로 전환했다. 서 의원은 정치적 가치 판단과 미학적 가치 판단을 결합했다. 예술을 정치·진영의 영역으로 확장해 그 작품을 공격하는 반대 세력과의 전투를 동시에 이야기한 것이다. 이들의 미학적 평가는 정치적 소속감과 분리돼 제시되지 않았다. 이들 외에도 민주당에서는 최민희·김영배·노종면·박성준·전용기·강득구 의원 등이 영화 <암살자(들)>을 두둔했다. 이들의 논리는 대체로 묘한 긴장 관계를 형성한다. 겉으로는 “영영봐(영화는 영화로 봐)”를 거론하고 ‘표현의 자유’를 명분으로 내세우면서, 일부는 “역사를 되돌아보는 뜻깊은 시간”이라며 작품에 실제 역사적 의미까지 부여하기 때문이다. 역사적 정확성에 대한 책임은 ‘픽션’이라는 말로 낮추면서 작품의 정치적·도덕적 권위는 ‘역사적 성찰’이라는 말로 높이는 셈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 9장에서 시인의 일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단순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개연성 또는 필연성에 따라 일어날 수 있는 일을 구성하는 것이라고 봤다. 허구의 힘은 사실을 마음대로 바꾸는 데 있는 게 아니라 개연성을 통해 인간과 세계에 대한 보편적인 인식을 만들어내는 데 있다. 그래서 문학에서는 핍진성이 중요하다. 허 감독은 분명히 ‘박 전 대통령 사주설을 암시한다’는 해석을 부인했지만 사주설을 암시하는 독해는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그렇다면 감독의 의도만으로 작품이 실제 만들어낸 독해를 봉합하기는 어려워진다. 책임은 빼고 권위 높이고 영화가 어떤 추론을 만들어냈느냐는 문제에 더 강한 의미가 붙었고, 그 의미를 정치인들이 다시 증폭시키고 있다. 예술의 자율성보다 사상적·사회적 기능을 우선했던 일제강점기 카프의 목적문학론도 일부 연상되는 대목이다. <암살자(들)>을 연일 비판하는 국민의힘도 여기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국민의힘에서는 전신 자유한국당 시절부터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비하·왜곡하는 발언들을 반복해 왔기 때문이다. 지난 2019년 열린 공청회에서 자유한국당 이종명 전 의원은 “5·18은 폭동이었다가 정치 세력 때문에 민주화운동이 됐다”고 주장했다. 자유한국당 김순례 전 의원도 “5·18 유공자는 괴물 집단”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이진숙 의원은 최근 5·18을 성역화했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이 참여한 토론회를 개최해 논란을 불렀다. 국민의힘 김태규 의원은 지난달 30일 JTBC 유튜브 채널 ‘장르만 여의도’에 출연해 “윤석열은 내란이냐, 아니냐?”라는 질문에 “아니”라고 답변했다. 이어 “전두환은 내란이냐”라는 질문에도 “내란 아니다. 저는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답변했다. 김 의원은 판사 출신이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1997년 전두환·노태우씨에 대해 12·12 군사 반란과 5·18 과정의 내란죄를 확정했다. 당시 대법원은 신군부가 군 지휘권과 정보기관을 장악하고 비상계엄 전국 확대·국보위 설치 등을 통해 헌법기관의 권능을 강압적으로 무력화했다고 판단했다. 논란이 되자 김 의원은 지난 2일 입장문을 통해 “제 발언은 비록 진의는 그렇지 않더라도 오해를 초래할 빌미를 제공한 부분에 대해 유감으로 생각하고 있다”며 “앞으로 표현에 더욱 신중을 기하겠다”고 밝혔다. 김 의원이 “윤석열·전두환은 내란이 아니”라고 주장한 계기는 영화 <암살자(들)> 비판 과정에서 비롯됐다. 김 의원 스스로도 “발언을 한 현장은 영화 <암살자(들)>이 객관적으로 입증된 사실을 문제 삼아 패륜적이고 반인륜적인 영화를 창작이라는 허울 속에서 만든 것을 문제 삼는 자리였다”고 밝혔다. 이어 “6·25나 육영수 여사 저격 사건과 같은 사안에 대해서는 창작의 자유라는 핑계 뒤에 숨어서 무자비한 난도질을 하고, 5·18에 대해서는 형사 처벌이 가능한 입법을 만들어 성역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였다”고 덧붙였다. 다시 흔드는 5·18…판결보다 정치적 확신 금기 파괴의 정치학…확신이 검증 이긴다? 유감을 표하면서도 김 의원은 ‘5·18 성역화’라는 문제의식은 유지했다. 영화라는 장르 예술의 틀을 빌려 역사적 의미를 확장하는 민주당 일부의 방식과 달리, 국민의힘 일부에서는 확립된 역사적 판단 자체를 다시 논쟁의 영역으로 돌리려는 특징이 나타난다. 이 같은 ‘금기 파괴의 정치’는 나치 돌격대가 보여준 행동주의적 정치 문법의 일부를 연상시킨다. 물론 오늘날 정치인의 발언과 준군사 조직이 행사했던 물리적 폭력을 동일시할 수는 없다. 비교 가능한 것은 복잡한 현실을 적과 아군으로 단순화하고 논증·절차보다 진영의 확신과 행동성을 앞세우는 태도다. 국민의힘 일각에서 제기하는 ‘5·18 성역화’ 프레임 역시 역사적 사실의 재검증과 별개로 “남들이 말하지 못하는 것을 내가 말한다”는 금기 파괴 자체에 정치적 가치를 부여할 수 있다. “우리의 정치적 적이 독점한 역사이므로 다시 깨뜨려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한다면, 무엇을 새로 밝혀냈느냐보다 금기에 도전했다는 행동성 자체가 중요해진다. 양당이 역사·문화를 정치적으로 소비하는 방식은 서로 다르지만 반지성주의로 수렴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이미 필요한 정치적·도덕적 결론을 정한 후 지식을 그 목적에 종속시키는 것이다. 이 회로는 진영적 욕망 → 동기화된 추론 → 반증 저항 → 독립적인 검증 절차의 가치 하락 → 반지성주의 순서로 움직인다. 정치학·정치심리학 연구에서 반지성주의는 대체로 전문가·지식인·전문적 지식에 대한 일반화된 불신 또는 가치 절하를 뜻한다. 동기화된 추론 자체가 곧 반지성주의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에게 불리한 전문가 판단과 판결, 검증 절차의 권위를 지속적으로 낮추는 방향으로 이어지면 반지성주의와 만날 수 있다. 한쪽은 진영에 친화적인 역사 서사를 접하면서 사실성과 허구의 경계를 느슨하게 허용하고, 작품의 역사적 효용을 적극적으로 소비하거나 권장한다. 다른 한쪽은 대법원 확정 판결과 축적된 역사 연구보다 정치적 확신을 우선시해 기존 판단 자체를 다시 의견의 영역으로 되돌리려고 한다. 양당 일부 정치인의 역사 소비가 ‘선동 역사학’이라 부를 만한 정치 문법으로 기울고 있는 셈이다. 진실 판정을 내 손 안에? 정치가 진실을 판정할 권리를 자신에게 가져오려고 하는 순간 좌우를 막론하고 반지성주의가 시작된다. 원하는 정치적 결론 때문에 증거의 자격 자체를 선택적으로 인정하거나 거부한다면, 이 역시 반지성주의다. 반지성주의는 나치 정치 문화의 핵심 태도 중 하나였다. 무엇이 진실인지 독립적으로 탐구하도록 두지 않고 어떤 역사와 예술에 권위를 부여할지를 정치적 세계관이 결정했다. 양당은 그렇게 서로 반지성주의와 선동 역사학으로 마주 보고 서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