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잡힌 이낙연의 대권 새 판짜기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8.24 10:03:59
  • 호수 128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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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리니까 독해졌다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들어 ‘엄중 낙연’이 달라졌다. 신중함은 여전하지만, 발언의 수위를 높였다. ‘고구마 화법’이라는 세간의 평가를 의식한 변화로 읽힌다.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최근 대권레이스서 이재명 경기도지사에게 추월당했다. 정치권 안팎에선 참모 라인이 이 의원의 변화를 주도했다고 전한다. ‘대권 새 판짜기’의 막이 올랐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국회사진취재단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낙연 의원의 발언이 선명해졌다. 김원웅 광복회장의 ‘친일 청산’ 광복절 기념사에 대해, 광복회장으로서 그 정도의 문제 의식을 말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입장을 밝혔다. 해당 발언이 보수진영서 논란이 되는 부분에 대해서는 “차분하게 따져보지 않고 호들갑 떤다”고 꼬집었다.

2인자?
1인자!

광복절 집회 참가를 독려한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담임목사를 겨냥해서는 “담당 재판부가 바로 재구속해 법의 엄정함을 보여주길 바란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립현충원에 있는 친일 인사의 묘를 이장하는 내용의 국립묘지법 개정안을 두고는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이다.

이는 “지금은 너무 이르다”고 밝힌 당권 경쟁자 민주당 김부겸 전 의원의 입장보다 한발 나아간 것이다.

앞서 이 의원은 변화를 예고했었던 바 있던 그는 ‘새로운 이낙연’을 보게 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했다.


그는 “총리는 2인자지만, 당 대표는 1인자다.(당 대표가 되면) 새로운 이낙연을 보게 될 것”이라고 변신을 알렸다. 윤석열 검찰총장과 최재형 감사원장의 항명 논란이 불거지자 “윤 총장이나 최 원장은 좀 더 직분에 충실했으면 좋겠다”며 “(추 장관은)개성이 강한 분”이라고 말한 점이 대표적이다.

이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를 의식한 변화로 읽힌다. 분명 이 의원은 독주 중이었다. 각종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서 1위를 달렸으며 2위와의 격차는 컸다. 이 의원은 민주당을 177석 ‘공룡여당’으로 만든 일등공신이다. 민주당 코로나19국난극복위원장을 맡아 방역 대책 강구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런 그에게 최근 이상신호가 감지됐다. 대권에 적신호가 켜졌다. 하락세가 심상치 않다. 복수의 여론조사서 3개월째 하락세를 보였다. 여론조사 업체 ‘한국갤럽’이 8월 둘째주(지난 11∼13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차기 대통령 선호도를 조사한 결과, 이 지사가 19%를 기록해 17%를 얻은 이 의원을 제치고 1위에 올랐다.

이 지사의 상승세가 무섭다. ‘사법 족쇄’를 풀어낸 결과로 풀이된다. 대법원은 이 지사의 허위사실 공표 혐의에 대해 무죄 취지로 파기환송 판결을 내렸다. 특유의 ‘사이다 화법’은 이 지사의 상승세에 탄력을 더했다.

차기 1→2위 레이스 적신호
발언 수위↑ 친문에게 구애

현 정권보다 한발 빠른 대처가 눈에 띈다. 재난지원금 지급, 공공임대주택 공급 방안 등 문재인정부가 정책 방향을 고민할 때 이 지사의 경기도는 선제적으로 실행에 옮겼다. 모든 도민에게 1인당 10만원씩 재난지원금을 지급했으며, 중산층용 고급 공공주택을 무주택자 누구나 30년 이상의 장기로 입주할 수 있도록 한다는 방침이다.

실행력은 사이다라는 별명을 있게 한 핵심이다. 코로나19 대확산의 시발점이 된 ‘신천지 사태’ 당시 이 지사는 신천지 과천본부에 대한 강제조사 행정명령을 발동한 바 있다. 신천지에 대한 강제수사에 정치권이 입을 다물고 있을 때 이 지사는 목소리를 높여 강제수사의 필요성을 외쳤다.
 

▲ 이재명 경기도지사 ⓒ고성준 기자

정치적 유불리를 가리지 않는 모습도 높은 점수를 받았다.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에 민주당 후보를 공천해서는 안 된다는 메시지를 밝히기도 했다. 비록 해당 발언은 이틀 만에 “(서울·부산시장 무공천 문제는)당원 의견수렴을 통해 당 지도부가 결정할 일”이라고 한발 물러섰지만, 기존 정치인들과는 다른 모습을 유권자들에게 보이기에는 충분했다.

또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의 새 정강·정책안에 기본소득이 명시되자 이 지사는 “기본소득이 경제정책으로서 효과가 크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체험했다. 매우 시의적절하고 적확한 선택”이라고 평가, 확장성을 보였다.

현 정권에게는 냉철한 목소리를 냈다. 노영민 대통령비서실장의 부동산 논란이 불거지자 이 지사는 ‘부동산백지신탁제’ 도입을 주장하고 나섰다. 필수부동산(주거용 1주택 등)을 제외한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소유를 모두 금지해야 한다는 취지다.

이재명 인기
칼 갈았나?

반면 이 의원은 21대 총선서 당선된 후 각종 이슈서 지나치게 신중한 언행을 보였다. ‘고구마’ ‘엄중 낙연’ 등 부정적인 별명까지 생겼다. 노 실장 부동산 논란에 대해 이 의원은 “아쉽다는 생각이 든다. 합당한 처신과 조치가 있길 바란다”는 식의 원론적인 입장을 밝혔다.

인천국제공항 문제와 관련해서는 6월 말까지 침묵했다.

고 박원순 전 서울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서도 신중 모드는 여전했다. 이 의원은 국회서 관련 질문을 받자 “당에서 정리된 입장을 곧 낼 것으로 안다”며 말을 아꼈다. 이후 이해찬 대표의 공개사과가 있고 나서야 “국민이 느끼는 실망과 분노에 공감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피해 고소인’ 논란은 이 의원 지지율의 하락세를 부른 결정적 계기 중 하나다. 박 전 시장을 고소한 전직 비서를 피해 고소인이라고 표현해 지적을 받았다. 이 의원 역시 다른 민주당 의원들처럼 성추행 피해를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습을 보였다는 지적이다.
 

▲ 이개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서울·부산시장 보궐선거 무공천 문제에 대해서도 현 민주당 지도부의 소관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후보들이 말하기 부적절한 사안”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지사는 ‘변방 장수’다. 민주당 소속이지만, 광역단체장으로서 여의도 중앙정치서 떨어져 있다. 이는 이 지사 입장서 장점인 동시에 약점이다. 현 정권이 큰 지지를 받을 때는 빛을 보기 힘들지만, 실정이 부각되면 독자노선을 걸으며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반면 이 의원은 ‘최전선 장수’다. 피 튀기는 정치판 중앙서 현 정권과 운명을 같이 한다. 현 정권이 큰 지지를 받을 때는 동반상승하지만, 실정이 이어지면 타격도 함께 받는다. 게다가 이 의원은 문재인정부 초대 국무총리를 지냈다. 현 정권과 운명공동체다. 이 의원 지지율 하락의 주요 원인 중 하나로 민주당 지지율 급락이 꼽힌다. 이 의원은 이 지사와 달리 독자노선을 걷기 힘들다.

과거로의
회귀 조언


국면전환이 필요하다. 이에 꺼내든 카드가 선명성 부각으로 읽힌다. 잇단 고구마 평가에 이 의원의 참모라인이 위기감을 느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의원은 “직분에 충실하자는 원칙에 따른 결과”라고 말하지만, 일각에선 잇단 지지율 하락이 ‘부자 몸조심’의 결과라고 평가한다. 대권에 적신호가 켜진 셈이다.

남평오 전 국무총리실 민정실장은 이 의원의 복심으로 꼽힌다. 핵심 참모 중 한 명이다. 이 의원이 전남도지사이던 시절 서울사무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지난 총선 때까지 이 의원을 밀착 보좌했다. 남 전 실장은 캠프 외곽서 이 의원의 선거운동을 돕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현역 국회의원들 중에는 설훈·이개호·박광온·오영훈·최인호 의원 등이 전략을 가다듬는 주축으로 꼽힌다. 그중 오 의원은 원내 참모장 역할, ‘부산 친문’인 최 의원은 공보참모 격으로 캠프에 합류했다.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조순용 한국TV홈쇼핑협회장도 이 의원의 조언자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고 한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 의원의 참모라인이 ‘과거로의 회귀’를 이 의원에게 조언했다고 한다. 한때 ‘사이다 총리’로 불렸던 시절로 돌아가자는 의미다.

이 의원 입장에선 격세지감을 느낄만하다. 사이다 총리는 국무총리이던 시절 야당의 날선 공세를 품격 있고 절제된 언행으로 되받아치는 모습에 민주당 지지층이 붙여준 별명이다.
 

▲ 박광온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지난 2017년 9월 대정부질문 당시 자유한국당(통합당 전신, 이하 한국당) 김성태 의원이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문 대통령이)대화를 구걸한다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말했다”고 비판하자, 이낙연 당시 총리는 “의원님이 대한민국 대통령보다 일본 총리를 더 신뢰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고 되받아쳤다.


이어 한국당 함진규 의원이 “남조선은 대화 자격이 없다. 핵은 우리와 미국 사이의 문제”라는 북한의 입장을 전하자, 이 총리는 “오히려 되묻고 싶다. 미국이 대화를 말하면 전략이라 하고, 한국이 대화를 말하면 구걸이라 하는 기준이 무엇인가”라고 반격했다.

이 의원의 선명성 부각은 ‘집토끼’를 잡는 전략으로 읽힌다. 즉 민주당 핵심 지지층인 친문(친 문재인)을 잡는 전략이다.

참모라인 조언에…
'집토끼’ 사냥 전략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이 의원의 지지율이 이 지사에게 추월당했을 당시, 그 이유로 민주당 지지층의 이탈을 꼽았다. 특히 호남, 젊은층 등 그간 민주당을 지지해 온 전통적 지지층의 이탈현상을 막기 위한 전략으로 풀이된다.

이 의원은 당내 세력이 약하다는 점이 줄곧 약점으로 꼽혀왔다. ‘NY(이낙연)계’는 21대 총선 이후 세 확장에 성공했지만, 아직 독립적인 목소리를 내기에는 시기상조다. 즉 당권과 대권을 모두 차지하기 위해서는 당내 주류인 친문과 함께해야 한다는 판단이 가능하다.

야당을 향한 공격이 이를 뒷받침한다. 통합당 주호영 원내대표가 지난달 21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서 문정부를 “독재 정권”이라고 비판하자, 이 의원은 지난 17일 장준하 선생 추도식에 참석해 “독재 권력을 잘 아는 사람들이 민주 정부를 독재라고 부른다”며 “그런 암울한 시대를 이어받은 사람들이 지금을 독재라 부른다. 통탄스럽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 원내대표의 발언에 대한 반격의 성격이 짙어 보인다.
 

▲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병희 기자

이 의원이 플레이어로 뛰고 있는 민주당 전당대회는 ‘친문 경연장’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낙연·김부겸·박주민 후보 모두 친문 표심에 호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전당대회 흥행 부진과 맥을 함께한다. 코로나19와 수해 등으로 전당대회 주목도가 떨어진 상황이다. 결국 열성 권리당원의 표심이 이번 당 대표 선거를 판가름할 전망이다.

친문 경연장으로 퇴색된 이번 전당대회의 흐름에 민주당 내부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 당내 소장파인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이번 전당대회 후보들의 유세전에 세 가지가 없다고 평가했다. 관심·논쟁·비전이다.

당 대표 선거
이후 판가름

조 의원은 “(전당대회 후보들이) 몇몇 (여권) 주류 성향의 유튜브, 팟캐스트에는 못 나가서 안달들”이라며 “이름만 가려놓으면 누구 주장인지 구분할 수도 없는 ‘초록동색’인 주장들만 넘쳐나고 있다”고 꼬집었다. 민주당의 열성 지지자들, 즉 친문 지지자들에게만 구애하는 전당대회 출마자들의 언행을 지적한 것이다. 당 대표 후보로 나선 이 의원 역시 이 같은 비판서 자유롭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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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