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중국통’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의 APEC 총평

“옛 친구와 새 친구 사이에 섰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전 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APEC 정상회의가 마무리됐다. 의장국을 맡은 한국은 대형 외교 이벤트를 무난하게 치렀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일요시사>는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과 만나 미국과 중국, 일본 등 세계 강대국의 외교 전쟁 무대가 된 경주 APEC 정상회의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1일까지 양일간 경북 경주 등에서 열린 아시아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끝났다. APEC은 무역과 투자 등에 대해 정부 간 논의하는 지역경제협력체로 1989년에 설립됐다. 우리나라는 20년 만에 의장국을 맡아 외교무대를 진두지휘했다.

경주에 쏠린
세계인의 눈

이번 APEC 정상회의의 관심사는 단연 미·중 정상회담이었다. 패권국인 미국과 그 뒤를 바짝 쫓는 중국 정상 간의 만남이 성사될지를 두고 전 세계의 이목이 모였다. 실제 미국과 중국은 APEC 참석과 정상회의를 두고 신경전을 벌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한 직후 시작된 무역 전쟁의 연장선이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이 결정되면서 관세 문제가 어떤 방향으로 진행될지 관심이 집중됐다. 미국과 중국은 한쪽이 관세를 부과하면 그에 더해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갈등을 빚었다. 이 과정에서 양국이 서로에게 부과한 관세가 수백~수천%에 이르기도 했다.

중국은 전 세계 생산량의 80%를 차지하고 있는 희토류를 무기로 미국을 압박했다. 희토류는 희귀 광물로 반도체 제작 등에 사용된다. 지난 9월9일 중국 상무부가 역외로 나가는 희토류의 수출을 통제하면서 미국과의 긴장 수위가 높아졌다.


AI를 앞세운 정보 전쟁의 시대인 만큼 희토류 확보가 중요한 시점이었다. 당장 미국은 관세 부과로 응수했다.

이번 APEC에서 진행된 미·중 정상회담은 이 같은 배경에서 이뤄졌다. 지난달 30일 김해공항에서 미·중 정상회담이 진행됐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만난 건 6년 만이다. 이날 회담에는 양안(대만-중국) 문제 등 민감한 이슈 대신 무역과 경제 관련 논의가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은 이날 공군기지 의전실인 나래마루에서 만나 약 100분간 회담 후 ‘휴전, 확전 자제’ 수준의 합의를 이뤄냈다. 미국은 중국을 상대로 시행 중인 합성 마약 펜타닐 관련 징벌적 세를 기존 20%에서 10%로 낮추고, 중국은 희토류 수출 통제를 1년간 유예하기로 했다.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던 부분에서 어느 정도 합의가 나온 것이다.

6년 만에 트럼프-시진핑 만나
희토류·관세 한발 물러섰나

지난달 30일 서울 금천구의 한 사무실에서 만난 윤석헌 아시아경제개발위원회 회장은 “미국과 중국 모두 APEC 정상회의를 무대로 부담이 덜한 선택을 했다”고 분석했다. 양국이 따로 정상회담을 진행하려 했다면 의전이나 장소, 의제 등을 두고 오래도록 논의가 이어졌을 가능성이 큰데 APEC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그런 부분이 단숨에 정리됐다는 설명이다.

윤 회장은 “관세 협상을 하는 방식을 보면 트럼프 대통령이 다자주의보다는 양자주의를 지향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각국 정상과 1대 1로 만나 이른바 ‘거래의 기술’을 통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식이다. 그런 트럼프 대통령이 APEC 정상회의에 참석한 중요 이유는 시 주석을 만나기 위해서였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국 역시 APEC 다음 의장국으로서 한국방문이 예정돼있는 상황에서 북한과의 관계 등 다양한 사항을 고려했을 때 나름 최선의 방법을 택했다”고 언급했다.

이어 “각국 정상이 공항 의전실에서 만나 회담을 진행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그런데 미·중 정상회담은 김해공항 의전실에서 열렸다. 한국을 떠나는 트럼프 대통령과 한국으로 들어오는 시 주석이 상호 가장 효율적으로 만날 수 있는 장소였기에 그곳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미·중 정상회담에 많은 관심이 집중된 이유는 두 나라가 전 세계에 끼치는 영향이 엄청나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우리 근대사를 보면 패권국이 독주 체제로 갈 때보다 경쟁국이 존재할 때 더 발전했다. 일례로 미국과 러시아가 패권국을 놓고 경쟁했던 시기를 생각하면 된다. 그러다 러시아가 몰락한 뒤 미국이 패권국으로 전 세계를 좌지우지했으나 9·11 테러가 일어나는 등 반작용이 나타난 것도 그 시기”라고 말했다.

고래 싸움
새우 등은?

이어 “중국이 미국을 위협할 만큼 성장하면서 세계는 G1과 G2라는 경쟁 체제를 보게 됐다. 패권국의 지위를 지키려는 나라(미국)와 그 자리를 차지하려는 나라(중국) 간의 건전한 경쟁은 결국 세계질서 재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이런 경쟁은 작게는 국가 발전에, 크게는 인류 발전에 영향을 줄 것”이라고 해석했다.

우리나라 역시 미·중 정상회담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한국은 ‘영원한 우방’인 미국과 ‘결코 멀어져서는 안 될’ 중국 사이에서 끊임없이 긴장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특히 다른 나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외교 스탠스가 명확한 미국에 비해 중국과의 관계는 정권 성향에 따라 달라지는 점이 문제로 지적돼왔다.

윤 회장은 시 주석의 방한 시기에 주목했다. 시 주석은 2014년 박근혜정부 때 한국을 찾은 이후 11년 동안 걸음을 하지 않았다. 윤 회장은 “한국과 중국의 관계가 가장 좋았던 때는 박근혜정부 시기다. 시 주석의 방문으로 전략적 협력 동반 관계에서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로 한중 사이가 격상됐다”고 전했다.

그는 당시 시 주석이 서울대에서 강연한 내용을 언급하면서 “시 주석은 ‘금 100냥으로 집을 사고 금 1000냥으로 이웃을 산다’는 중국 속담을 인용해 정말 좋은 이웃은 금으로도 바꾸지 않는다며 중국인들이 신라 왕자 김교각을 존경한다고 하는 등 한국 친화적인 연설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줬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하지만 문재인정부, 윤석열정부를 거치면서 중국과의 관계가 소원해졌다. 개인적으로는 이 시기에 시 주석이 한국을 방문할 만한 분위기가 성숙하지 않았다고 봤다. 정상회담을 진행한다는 건 양측 모두 굵직한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부담을 안은 상태인데, 그 논의가 이뤄지기엔 (그 당시)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않았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미 회담
진전 있어

윤 회장은 한국 정부가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명확한 외교 스탠스를 잡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진보 정권일 때와 보수 정권일 때 중국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부분을 정리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1992년 수교 이후 한국과는 경제적으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인 것도 맞지만 정치, 외교 부분에서는 복잡하고 미묘한 관계인 만큼 분명한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번 시 주석의 방한 의미를 잘 들여다봐야 한다고 짚었다.

윤 회장은 “시 주석의 방한은 급변하는 세계정세와 빨간불이 켜져 있는 세계 경제의 불확실성 앞에서 양국의 경제협력이라는 새로운 길을 찾게 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며 “특히 내수시장을 확대하겠다는 중국 정부의 방침과 한국 기업의 중국 내수시장 진출 전략이 맞아떨어지면 양국 간 ‘윈-윈’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윤 회장은 ‘미국은 옛 친구, 중국은 새 친구’라는 개념을 꺼냈다. 그는 “윤석열 전 대통령 시기에는 중국 입장에서 미국에 기울어진 외교를 펼치면서 중국 대사들이 곤란함을 토로했다. 하지만 이제는 세계 10대 경제 강국에 걸맞은 21세기형 선진 한국에 맞는 외교 스탠스로 대중 관계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과는 1945년 해방 이후 정치, 사회, 군사, 문화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상호 밀접한 관계다. 중국은 1992년에야 수교를 맺은 한국의 새 친구다. 새 친구가 생긴다고 옛 친구를 버리지 않고, 옛 친구가 있다고 새 친구를 사귀지 않는 게 아니지 않나. 옛 친구(미국)에 대한 예의, 새 친구(중국)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20년 만에 의장국으로
“전체적으로 무난했다”


윤 회장은 윤석열 전 대통령과 조 바이든 전 미국 대통령이 캠프 데이비드에서 만난 일을 거론했다. 당시 한국 정부는 외교 루트를 통해 언론에 보도된 정도의 내용만 중국 측에 전달했다고 한다.

윤 회장은 “한국과 미국의 정상이 만나는데 중국에는 기사에 나온 내용 정도만을 알린 점 등은 대중 외교의 패착이라고 생각한다.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어떤 식으로든 미리 언질을 줬어야 한다”며 “그것이 외교의 본질”이라고 했다.

윤 회장은 “옛 친구인 미국에 대한 예의와 함께 새 친구인 중국에 대한 배려를 갖춘다면 피할 수 없는 미중 양국의 패권 경쟁에서도 중국과의 관계 증진은 물론, 불확실성의 시대에 시시때때로 바뀌는 국제 정세 속에서도 양국의 우의를 지켜나갈 수 있을 것”이라며 “경제, 외교, 문화 속에서도 협력의 길을 찾게 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일요시사>는 서면을 통해 APEC 정상회의에 대한 총평을 부탁했다.

윤 회장은 “전반적으로 성공적으로 치러졌다”고 평가했다. 이재명정부 출범 이후 한국에서 진행된 첫 대형 외교 이벤트를 무난하게 치렀다는 설명이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에 대한 의전, 한·미 정상회담에서의 성과 등을 높게 봤다.

윤 회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는 게 굉장한 관심사였고, 한국 정부로서는 사활을 걸어야 할 문제였다. 일본에서는 2박3일을 보냈는데 한국에서는 숙박도 하지 않고 잠깐 들렀다 가는 수준으로 방한했다면 외교적으로 실패했다는 인상을 줄 수 있었는데 그 부분이 잘 정리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미 정상회담 과정에서 관세 협상이 일정 수준 정도로 타결됐고 무엇보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미국과 논의가 이뤄진 점은 아주 높은 현실적 성과라고 볼 만하다.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방폐장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군비 경쟁에서 앞서나갈 수 있는 등 여러 가지로 한국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결정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한국군의 ‘숙원’이라고 할 정도로 오랜 시간 추진한 이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소셜미디어 트루스소셜을 통해 “한미 군사동맹은 어느 때보다도 강력하다”며 “그것에 기반해 나는 한국이 보유한 구식이고 기동성이 떨어지는 디젤 잠수함 대신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앞으로가
중요하다

윤 회장은 “APEC 정상회의는 정상이 모여서 무언가를 결정하기보다 정상끼리 얼굴을 맞대고 관계의 물꼬를 트거나 돈독하게 만드는 자리다. 한국은 이번 APEC을 통해 미국, 중국, 일본 등 세계 강대국과 연달아 회담을 진행했다.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미·중 정상회담의 무대도 제공했다. 이제 이 관계를 건전하고 국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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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단독] 김건희-정재관-박종철 ‘낙하산 고리’ 추적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10·29 이태원 참사 당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정재관 현 군인공제회 이사장(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에게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한 사실이 드러났다. 정 이사장은 대한토지신탁의 박종철 대표이사를 ‘낙하산으로 임명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박 대표가 김건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이 뒤늦게 밝혀지면서다. 국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관련 청문회에서 공개된 자료에 따르면, 2022년 10월29일 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당시 대통령경호처 소속이던 정재관 이사장에게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전단지를 제거했음을 보고하는 취지의 문자메시지와 사진을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공공기관 인사를 둘러싼 윤석열정부의 정치권 인맥 논란이 다시 불거지고 있다. 이태원 참사 개입 정황들 이날 오후 10시51분 박 구청장이 보낸 문자에는 ‘전단지 제거 완료’라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정 이사장은 ‘ㅋ 고생하셨습니다’라는 취지의 답장을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메시지가 오간 시간대는 소방 경찰 시민이 뒤엉켜 사람들을 끄집어내고 심폐소생술을 하던 10시49분과 겹친다.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수백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지방자치단체가 대통령실 인근 전단지 제거 상황을 보고하고 있었다면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뒤바뀐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이태원 참사 이후 인파 관리 실패와 초기 대응 부실이 핵심 책임 논쟁으로 이어졌던 만큼, 참사 당일 용산구청이 어떤 업무에 행정력을 투입했는지에 대한 의문도 다시 제기되고 있다. 박 구청장은 청문회에서 해당 문자와 관련해 “전단지를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이 아니”라고 해명했다. 그는 “우리 업무인 것 같아 전화해 보라고 한 것일 뿐 바로 나가서 제거하라고 지시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청문위원들은 문자 내용과 상황을 근거로 사실상 조치 지시가 있었던 것 아니냐며 강하게 추궁했다. 또 참사 상황에서 대통령실 인근 문제를 별도로 챙기고 이를 대통령경호처 인사에게 보고한 정황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이어졌다. 사고 우려 민원 전화가 쇄도하던 때 박 구청장은 대통령실 인근 담벼락에 붙은 진보 단체 전단지를 다 떼어냈다며 사진과 함께 보고 형식의 문자를 보냈다. 이를 받은 정 이사장은 웃으며 “고생했다. 이태원 압사사고 안타깝고”라고 답한 것이다. 이번 문자 공개로 이태원 참사 당시 지방자치단체의 대응 판단과 대통령실 주변 기관과의 관계, 그리고 재난 상황에서 행정 대응의 우선순위가 어떻게 작동했는지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 박 구청장이 문자를 보낸 정 이사장은 김용현 당시 대통령경호처장과 절친한 육사 38기 동기다. 윤석열 캠프에서 ‘국방정책자문단 육사 8인회’로 통했으며 용산 ‘대통령실 이전 TF’에서 활동했다. ‘21세기 하나회’나 다름없다. 이태원 참사 전단지 제거 의혹 제기 보고받은 정, 대토신 사장 임명 개입? 박 구청장은 수사와 재판에서 이날 오후 10시51분에야 이태원참사를 인지했다고 주장했다. 느낌표까지 쓰며 “전단지 제거 완료”를 보고한 바로 그 시각과 분 단위까지 일치한다. 박 구청장이 참사 현장에 도착한 건 8분 뒤인 10시59분. 그 사이 박 구청장이 어디에 몰두했는지 그리고 대통령실 측근들과 어떤 소통을 한 건지 처음 드러났다. 지난 12일 서울 중구 은행회관에서 10·29 이태원참사 진상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한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에서 양성우 이태원 특조위 위원은 “정재관이 전단지 제거를 요청했기 때문에 자랑하려고 보낸 것인가요?”라고 물었다. 이에 박 구청장은 “전혀 아니”라고 답했다. 양 위원이 “정재관을 통해서 경호처장 김용현, 나아가 대통령 내외에게 전달될 것을 의식하고 보고한 것 아닙니까”라고 재차 질문하자, 박 구청장은 아니라고 답했다. 앞서 정 이사장은 특조위 조사에서 “박희영 용산구청장이 대통령실에 협조한 걸 자랑하려고 일방적으로 보낸 것 같다”고 진술했고, 이날 청문회에 불출석했다. 현재 정 이사장이 이끌고 있는 군인공제회는 약 17만명 군인 회원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대형 기관이다. 자산 규모는 20조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산하 기업 가운데 하나인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한 부동산 신탁회사다. 사실상 공제회의 핵심 투자 및 사업 플랫폼 역할을 한다. 문제의 중심에는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대표 박종철의 인사 흐름이 있다. 정 이사장은 2023년 1월 제16대 군인공제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는 예비역 육군 준장 출신으로 통상 소장 또는 중장급이 맡아왔던 자리에 임명된 이례적 인물이다. 군 안팎에서는 그의 발탁 배경에 윤 정부 핵심 인맥으로 꼽히는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영향력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20조 책임진 원스타 준장 실제로 군인공제회가 창립된 1984년 이래 준장급이 이사장을 맡은 건 정 이사장이 처음이다. 예비역 준장 출신인 정 이사장이 발탁된 데에는 ‘김용현의 입김이 크게 작용했다’는 게 군 인사에 정통한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군인공제회 이사장은 현역 군인 및 군무원 37명으로 구성된 제113차 대의원회의에서 선출, 국방부 장관의 승인을 받아 취임하기 때문이다. 또 정 이사장은 육군사관학교 38기 출신으로 한미연합사 민군작전처장, 합참 민군작전과장,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등을 거친 군 경력 인사다. 특히 국방부 국회협력단장 시절 정치권과의 연결고리를 구축하며 윤정부 핵심 라인과 가까운 인물로 분류됐다. 논란은 그로부터 약 4개월 뒤 이어진 박 대표를 선임하는 과정에서 불거졌다. 대표이사 선임 과정 역시 공제회 이사회 추천과 국방부 승인 절차를 거치는 구조이기 때문에 사실상 모회사인 군인공제회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내부에서는 이 같은 인사 흐름을 두고 “군인공제회 수장 교체 이후 산하 기업 인사까지 연쇄적으로 바뀌는 전형적인 권력 인사 패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로 대한토지신탁 대표 선임 과정은 공개 채용 형식을 취하지만, 최종 후보자는 군인공제회 이사회의 추천을 받아야 하고 국방부 승인까지 거쳐야 한다. 결과적으로 공제회 수장의 의중이 크게 반영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박 대표의 과거 이력까지 다시 조명되면서 정치적 논란이 확대됐다. 박 대표는 과거 양평 공흥지구 개발사업을 담당했던 대한토지신탁 실무 책임자로 알려져 있다. 이 사업은 윤석열 전 대통령 장모 최은순씨 일가가 연루된 특혜 의혹 사건과도 연결된 사업이다. 당시 윤석열 측은 대선 과정에서 공흥지구 개발사업이 대한토지신탁 주도로 진행된 만큼 특혜 가능성이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그러나 이후 자료에서 박 대표가 해당 사업 담당자로 확인됐다. 2018년 12월 사업1본부장으로 퇴사한 박 대표가 정권 출범 이후 다시 복귀한 배경을 둘러싸고 ‘낙하산 인사’ 의혹이 제기됐다. 대한토지신탁은 지난 11월 초 <일요시사>와 통화하며 “2014년 양평 공흥지구 사업은 오래된 만큼, 담당자를 알 수 없다”고 일축했다. 반면, 더불어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요청한 ‘대한토지신탁 양평 공흥지구 개발 담당자 명단’에는 박 대표를 비롯한 양평 공흥지구 사업 실무자들의 이름이 정확하게 기재돼있다. 김건희 일가 집사로 활동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김건희의 가족 회사인 이에스아이엔디(ESI&D)가 양평 공흥지구 개발 과정에서 특혜를 받았다고 의심하고 있다. 민주당 한준호 의원이 대한토지신탁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박 대표는 2014년 5월27일 양평 공흥지구 사업 담당자였던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박 대표는 대한토지신탁 사업1본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8년 12월 퇴사했다. 2019년과 2020년에는 에이치에스파트너스그룹 사장과 비전알이 대표이사를 역임했다. 그는 윤 전 대통령 당선 이후인 2023년 5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로 복귀했다. 이 같은 의혹은 대한토지신탁의 최근 경영 상황과 맞물리며 더욱 확대되는 분위기다. 대한토지신탁은 부동산 경기침체와 PF 부실 여파로 유동성 압박을 겪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최근 수천억원 규모의 재무 지원을 단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로부터 지급보증과 채권 인수 등을 통해 수차례 자금 지원을 받았지만 경영지표 개선은 제한적이었다. 이 때문에 “군인들의 노후자금이 부실 자회사 방어에 사용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대한토지신탁은 군인공제회의 100% 전액 출자를 바탕으로 부동산 신탁 및 개발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다.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주요 자금 조달이나 사업에 대한 지급보증을 지원하는 등 모회사를 지원함으로써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를 공모하는 모회사다. 대한토지신탁의 대표이사 선임 과정도 군인공제회의 자회사 인사 시스템과 상법 및 관련 법규에 따라 진행된다. 대표이사직이 공석이 되면, 군인공제회는 대한토지신탁 대표이사를 공개 채용한다. 지원자들은 정해진 기간 내에 지원서를 제출하며, 대한토지신탁 인사총무팀 등에서 서류 전형을 진행한다. 양평 공흥지구 사업1본부장이 대표이사로 김용현 입김?···군인공제회 연결고리 주목 논란의 핵심은 인사와 경영 책임의 연결성이다. 군인공제회는 군인 복지와 연금 재원을 운용하는 기관인 만큼 정치권 외풍으로부터 독립성이 중요하다. 정 이사장의 임명 배경부터 산하 기업 대표 인사까지 정치적 인맥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기관 운영의 투명성 문제가 다시 도마 위에 오른 상황이다. 군 관련 기관 내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온다. 공제회 관계자들은 “이사장이 특정 정치 라인으로 임명되면 관련 인사들이 주요 보직에 연쇄적으로 배치되는 구조가 만들어질 수 있다”며 “기관의 본래 목적보다 정치적 이해관계가 우선될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군인공제회가 100%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자회사 공우이엔씨도 자금난 논란에 휩싸일 전망이다. 공우이엔씨는 대한토지신탁과 마찬가지로 군인공제회가 출자한 자회사다. 1993년 설립된 제일종합개발은 1999년 공우개발사업소 창설로 이어졌다. 군인공제회관과 계룡대 등의 시설 관리, 예식장, 사우나, 체력 단련장 등을 직영하는 업체였다. 2000년엔 육군 오수처리시설 용역관리와 환경공사로 사업 분야를 넓혀 나갔다. <일요신문> 보도에 따르면 일부 핵심 사업은 이미 공우이엔씨 손을 떠난 상황이다. 2012년 국우터널이, 2022년엔 문학터널이 무료화됐다. 2023년엔 경북 영천 소재 군 골프장 충성대 체력단련장 운영이 종료됐다. 전자공시시스템에 게재된 2023년 감사보고서는 공우이엔씨 민간사업 관련 보증이 리스크로 작용할 가능성을 시사한다. 공우이엔씨는 BTL이 아닌 기타 분야 사업에서도 2000억원대 보증을 서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21년 기준 공우이엔씨 기타 사업 보증액 규모는 835억원 규모였다. 이 중 시설관리용역 관련 보증액을 제외한 기타 사업 분야 보증액 규모는 394억원이었다. 2년 사이 기타 사업 관련 보증액이 1222억원 불어났다. 2년 사이 보증액이 약 335% 폭증한 셈이다. 이로 인해 자금난 얘기가 고개를 든 것으로 파악됐다. 공우이엔씨 상황은 2024년 들어 악화일로에 접어든 것으로 전해진다. 2023년 기준 공우이엔씨 매출액은 1066억5280만원 규모였다. 그러나 23억2986만원 규모 영업손실을 봤다. 내부적으론 2024년 손실액이 더욱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내부 불안감이 증폭되는 상황이다. 공우이엔씨 적자 허덕 정 이사장과 대한토지신탁 박 대표 인사 사이의 직접적인 개입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지만, 군인공제회와 산하 기업 인사 구조상 영향력을 행사했을 가능성은 충분히 제기되는 상황이다. 군인들의 노후 자금을 운용하는 공공성 기관에서 정치권 인맥 중심 인사가 반복될 경우 제도적 견제 장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