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관세 타결’ 일본과 비교하니…

버티기 승부수 먹혔다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이재명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7분간의 정상회의를 마친 뒤 나란히 악수를 나눴다. 3개월 넘게 이어진 한미 관세 협상이 극적 타결하며 마침내 결실을 맺었다. 협상에서 일본보다 좋은 성적을 거뒀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일요시사>는 한일 양국의 정상회의 성적표를 비교해 봤다.

지난달 29일 오후, 경북 경주 국립경주박물관 국제회의장. 이날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일정 중 가장 주목받은 날이었다. 87분간의 회담을 마친 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우리는 합의를 이뤘으며 무역 협상을 거의 마무리했다”고 말했고, 이재명 대통령은 “상호 이익의 균형점을 찾았다”고 밝혔다.

‘트럼프발 관세 전쟁’ 속에서 한국은 마지막 협상국으로 남아 있었다. 일본과 유럽연합(EU)이 이미 협상을 마친 상황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미국을 상대로 무역 흑자를 내는 국가에는 동일한 수준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선언했다. ‘공정무역(Fair Trade)’을 내세운 ‘상호 관세(Reciprocal Tariff)’ 정책이었다.

지난해 말, 미국은 한국·일본·독일·중국 등을 대상으로 25%의 관세 인상 조치를 예고했다. 한미자유무역협정(FTA)으로 대부분 무관세였던 한국엔 사실상 FTA 무력화 선언이었다. 자동차·반도체·철강 등 수출 주력 산업이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우려가 쏟아졌다.

자동차 업계는 25% 관세 적용 시 연간 4조원 이상 손실을, GDP 성장률은 0.2%포인트 하락을 우려했다.


문제는 시점이었다. 2024년 말 윤석열정부가 탄핵 정국에 돌입하면서 통상 대응은 사실상 마비됐다. 한덕수 전 국무총리와 최상목 전 경제부총리가 미국과 접촉을 시도했지만, 차기 정부 출범 전까지는 실질적 협상이 불가능했다.

정치 공백 속에서 산업계는 초비상 체제에 들어갔다. 자동차·반도체 업계뿐 아니라 농축산물 시장 개방, 주한 미군 방위비, 정밀지도 반출 등 민감한 현안이 한꺼번에 거론되기 시작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4년 7월, “일본과의 무역 협상이 완료됐다”고 발표했다. 일본산 수입품에는 상호 관세 15%, 기존 25%보다 10%포인트 낮은 세율이 적용됐다. 대신 5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와 미국산 농산물·자동차 시장 일부 개방을 약속했다.

닷새 뒤 유럽연합(EU)도 6000억달러 규모의 투자와 함께 15% 관세율을 받아들이는 합의를 발표했다.

남은 나라는 한국뿐이었다. 미국은 “일본보다 낮은 관세율은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고수했고, 한국이 결정을 미루면 25%가 그대로 발효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재명정부가 출범한 뒤 지난 6월부터 협상이 재개됐다. 첫 외교 과제로 한미 관세 협상을 꺼내들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직후 트럼프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한미FTA는 우리 경제의 생명선”이라며 협상 재개를 제안했다.

곧바로 구윤철 경제부총리를 단장으로 한 통상 대응 태스크포스(TF)가 구성됐다.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협상 실무 라인을 맡았다.


7월 초 워싱턴에서 첫 실무 협상이 열렸지만, 미국은 “한국이 미국 시장에서 얻는 이익이 과도하다”며 3500억~40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선제 제시하라고 요구했다. 한국은 “투자보다 관세율 조정이 우선”이라며 맞섰고, 양측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았다.

7월 말,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대한민국과 전면적인 무역협정을 체결했다”고 발표했다. 당시 합의는 25%로 예고된 상호 관세를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이 3500억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를 약속하는 조건이었다. 이 중 1500억달러는 조선업 협력 펀드(MASGA 프로젝트)로 운용하기로 했다.

한국 정부는 즉각 “큰 틀의 합의는 있었지만, 세부 조율이 남아 있다”고 발표했다. 당시 협상은 ‘얼마를 투자하고 어떤 관세율을 적용할지’까지만 결정됐을 뿐, 자금 운용·수익 배분·외환시장 충격 완화 조항 등 핵심 내용은 빠뜨린 상태였다.

트럼프 행정부는 곧바로 “8월1일까지 최종 합의가 없으면 25%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최후 통첩성 문서를 보냈고, 협상은 교착에 빠졌다. 그 사이 트럼프 대통령은 “쌀과 쇠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전면 개방”을 언급하며 압박 수위를 높였다.

3개월 교착 끝 극적 결실
87분 회담 세부 조항 확정

8월 이후 한국 측은 외환시장 안정장치 삽입과 투자 상한제 설정을 요구했고, 미국은 자동차 15% 관세 유지와 농산물 시장 확대를 고수했다. 23차례 이상의 장관급 회담이 이어졌지만, 합의는 지연됐다.

교착을 깬 것은 10월 APEC 정상회의였다. 이재명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은 약 87분간의 정상회담 끝에 세부 협정을 매듭지었다. 핵심은 투자 구조의 변화였다. 총 3500억달러 중 2000억달러는 현금 투자, 1500억달러는 조선업 협력으로 구분됐다.

특히 현금 투자분은 연간 200억달러 상한(cap)을 두고 10년간 단계적으로 집행하기로 했다. 이는 외환시장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로,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EU 협상에서는 허용하지 않았던 조항이다.

또 투자 운용 주체가 한국 쪽으로 넘어왔다. 양해각서(MOU)에는 “한국 추천 기업 참여” “상업적 합리성이 입증된 프로젝트에 한정” “수익 5대 5 배분” “외환 불안 시 납입 시기 조정 가능” 등의 조건이 명시됐다.

일본이 미국에 전액 위임한 것과 달리, 한국은 실질적 주도권을 확보했다. 수익 배분 구조도 새로 정리됐다. 원리금 상환 전까지는 5:5로 나누되, 20년 내 원리금이 상환되지 않으면 비율을 조정할 수 있다.

손실 발생 시 다른 사업 수익으로 보전하는 조항도 포함됐다. 농산물 시장 개방 문제도 한국이 방어에 성공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초기에 ‘쌀·쇠고기 전면 개방’을 요구했으나, 최종 합의문에서는 해당 조항이 삭제됐다. 검역·비관세 절차 개선 수준의 협의만 반영됐다.

자동차 관세는 일본·EU와 동일한 15%로 확정됐다. FTA 무관세(0%)였던 한국에는 손실이지만, 25% 부과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는 피했다.


투자 규모

표면적으로만 보면 일본의 투자 규모가 훨씬 크다. 일본은 총 5500억달러 규모의 금융 패키지를 제시하며 15% 상호 관세를 받아냈다. 반면 한국은 총 3500억달러로 규모가 작다. 하지만 협상 방식과 자금 운용 조건, 투자 결정권의 주체성 측면에서 보면 한국이 일본보다 훨씬 더 ‘관리 가능한 합의’를 이끌어냈다는 평가가 많다.

일본은 5500억달러를 미국에 투입하기로 했다. 이 중 대부분은 미국 정부가 지정하는 인프라 및 제조 투자 프로젝트에 사용된다. 사실상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투자처를 지정할 수 있도록 하는 구조다.

한국의 경우 투자 규모는 총 3500억달러지만 구조는 다르다. 투자금 전액을 한번에 내는 대신, 연간 200억달러 한도를 둬 10년간 분할 투자하기로 합의했다. 이는 외환시장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장치다.

한국 정부는 “시장 매입이 아닌 방식으로 조달할 것”이라며 외환 수급 불안에 대응할 여지를 남겼다.

투자 결정권


두 나라 협상 결과에서 가장 뚜렷한 차이는 투자처 결정권이다. 일본 투자금의 사용처는 사실상 미국 정부가 결정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자금이 미국 내 산업과 인프라 재건에 직접 쓰일 것”이라고 밝혔다. 즉, 일본이 미국의 ‘재정적 후원자’가 되는 구조다. 반면 한국은 투자 결정의 자율성을 확보했다. 한국은 정부와 기업이 공동으로 운용 주체가 되는 ‘상업 투자형’ 방식을 택했다.

한국이 제시한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금은 한국 정부와 민간 기업이 직접 프로젝트를 검토·선정해 집행하게 된다. 다만 투자 분야는 ‘미국 내 첨단산업 및 공급망 안정화 프로젝트’로 한정돼있어, 미국 정부가 제시한 전략적 방향 안에서 이뤄진다는 점에서 부분적 자율성을 가진 형태다.

한국이 제시한 부분은 원리금이 보장되는 사업 한정, 수익 5:5 배분, 외환 불안 시 납입 조정 요청 가능 등의 조건을 포함한다.

한미 협상의 결과로 적용되는 상호 관세율은 15%. 이는 일본, EU와 동일한 수치다. 하지만 출발점이 달랐다. 일본은 기존보다 관세율이 올라갔다. 반면 한국은 FTA로 무관세(0%) 상태에서 15%로 인상됐다. 한국은 무관세에서 큰 손실을 입게 됐지만, 이는 ‘불가피한 현실적 타결’로 평가되고 있다.

25% 관세가 그대로 적용됐다면, 한국 자동차 산업은 현대·기아차를 포함해 연간 4조원 이상 손실이 예상됐기 때문이다.

농업 부문에서도 차이가 크다. 일본은 농산물 일부 개방을 수용했다. 트럼프 행정부는 일본 시장 내 미국산 농산물 점유율 확대를 협상 핵심 성과로 내세웠다. 반면 한국은 쌀·소고기를 포함한 농산물 시장 추가 개방을 끝까지 막았다. 검역 절차 개선 등 비관세장벽 완화는 일부 수용했지만, 시장 자체 개방은 내주지 않았다.

일, 즉시 납부·미국 위임
한, 10년 분납·자율 확보

김용범 정책실장은 “쌀‧쇠고기를 포함해 농업 분야에서 추가 개방을 철저히 방어했다”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농업 방어전에서는 한국이 일본보다 선방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협력 구조

핵심에 놓인 산업 분야도 다르다. 일본은 자동차·반도체 중심의 제조업 협력안을 제시했다. 이에 따라 일본 완성차 업체들이 미국 현지 공장 투자 확대를 공표했다.

한국은 방향을 달리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집권 이후 강조한 ‘조선업 부흥’을 공략해 MASGA(Make American Shipbuilding Great Again) 프로젝트를 내세웠다. 한국의 조선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미국 내 조선소 확충, MRO(유지·보수·정비) 및 기자재 공급망 구축 등이 포함됐다.

즉, 일본은 기존 산업의 연장을 선택했고, 한국은 미국의 정책적 수요를 충족시키며 협상 여지를 넓혔다는 평가다.

안전 장치

일본의 투자금은 일시 지급 방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의 즉각적 지원으로 미국 경제가 활력을 얻을 것”이라며 ‘즉시 집행’을 강조했다. 이에 반해 한국은 연간 200억달러 상한을 두는 분납 구조로 설계했다. 한국은 이를 통해 외환시장의 급격한 변동을 차단했다.

또 납입 시기·금액 조정 조항을 넣어, 시장 불안이 발생하면 협의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는 트럼프 행정부가 일본·EU 협상 때는 허용하지 않았던 조건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규모는 작지만, 운용의 안전성은 더 높다.

배분과 회수

수익 배분도 눈에 띄는 차이점이다. 일본의 경우 대미 투자 수익의 90%를 미국이 가져가는 구조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를 두고 “미국에 유리한 협상”이라고 공개 발언하기도 했다. 한국은 원리금 상환 전까지 5대 5 수익 배분으로 결정됐다.

또 20년 이내 원리금 전액을 회수하지 못할 경우, 수익 배분 비율을 재조정할 수 있는 조항도 포함됐다. 즉, 한국은 수익형 구조, 일본은 정책성 구조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이번 관세 협상은 일본보다 성공적으로 이끌어냈다는 반응이 지배적이다. 외신들도 공통적으로 “한국이 일본보다 많은 양보를 이끌어냈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는 “한국이 일본보다 덜 부담스러운 협상을 성사시켰다”며 “한국은 투자 규모는 작지만 상업적 합리성과 자주성을 확보했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수개월간 교착 상태였던 협상이 예상 밖의 진전으로 타결됐다”며 “이재명 정부의 외교적 성과”로 평가했다.

<블룸버그>는 “조선업 협력 1500억 달러는 트럼프 정부의 핵심 산업정책에 직접 부합하는 양보이자, 한국 기업에 실질적 이익을 제공할 조치”라고 분석했다.

한미 협상은 타결됐지만, 실질적 이행은 이제 시작이다. 2029년까지 이어질 3500억달러의 투자 계획이 어떻게 집행되고 어떤 산업에 배분되느냐에 따라 이번 합의의 진정한 평가가 내려진다. 또 일본과 달리, 한국은 조선업 협력이라는 ‘새로운 산업축’을 구축한 만큼 해당 프로젝트의 성패가 향후 통상 외교의 지표가 될 가능성이 크다.

한편, 이번 회담에서는 관세 문제 외에도 핵추진 잠수함 협력이 새로운 의제로 떠올랐다. 이 대통령은 전날 한미 정상회담에서 “핵추진 잠수함 연료를 공급받을 수 있도록 결단해달라”고 요청했고,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이 핵추진 잠수함을 건조할 수 있도록 승인했다”고 밝혔다.

핵추진 잠수함 건조는 한미 원자력 협정 개정과 미국의 연료 공급이 필요하다. 다만 핵연료 공급과 기술 이전 등 세부 사항은 향후 추가 협의가 남아 있다.

<imsharp@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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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예계 스캔들과 정치권 음모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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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한때 연예계를 떨게 했던 ‘마의 11월’이 다시 온 걸까? 매년 11월마다 연예계와 방송가에서 각종 이슈가 터진다는 말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아슬아슬하게 11월은 넘기는가 싶더니 12월이 되자마자 연예계 이슈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 동시다발로 터져 나온 연예계 사건·사고에 정작 중요한 이슈들이 가라앉고 있다. SNS에서 의혹이 제기되고, 이는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게재된다. 얼마 가지 않아 기사로 보도된다. 유튜브 쇼츠로 제작돼 확산한다. 다시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온다. 방송으로 퍼진다. 방송분이 편집돼 다시 유튜브 영상으로 제작된다. 이 모든 과정에서 생산된 콘텐츠는 SNS를 통해 재생산된다. 다른 이슈가 불거진다. 반복된다. 하루 사이 연달아서 최근 이슈가 퍼지는 방식이다. 기사 등을 통해 정보가 대중에게 전달되던 시기는 이제 끝났다. 이제는 오히려 언론이 온라인 커뮤니티 글을 소스로 기사를 작성하는 판이다. 동시에 레거시 미디어를 통해 정보가 확산하던 시기도 지나간 지 오래다. 이제 모두가 유튜브로 이슈를 확인하고 댓글을 통해 의견을 표출한다. 문제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레거시 미디어로, 또다시 유튜브로 대표되는 뉴미디어로 정보가 전달되는 과정에서 자극도가 높아진다는 점이다. 동시에 확인되지 않은, 왜곡된 내용이 처음 올라온 정보에 덕지덕지 달라붙는다. 확산 속도 또한 어마어마하게 빠르다. 몇 시간이면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 사이트를 비롯해 유튜브까지 퍼진다. 이 사이클은 무한정 돌아간다. 시간이 가면서 대중은 짧은 영상에 목말라 하고 있다. 분 단위의 영상보다는 초 단위 쇼츠에 더 열광한다. 영상 제작자는 조회수가 곧 돈이기에 대중의 입맛에 콘텐츠를 맞출 수밖에 없다. 도파민을 바라는 대중의 눈에 들기 위해선 흡인력 있는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 사실이든 아니든 그것은 중요하지 않다. 불과 일주일 새 연예계에서 동시다발로 이슈가 터졌다. 과거, 약물, 갑질, 조폭 의혹 등 언급되는 단어만으로 충격이 일었다. 여기에 의혹에 연루된 연예인의 면면이 전부 각 분야에서 잘 알려진 사람이라는 점은 이슈 확산에 기름을 부었다. 순식간에 커뮤니티와 유튜브 등이 불타올랐다. 배우 조진웅이 과거에 소년범이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올해 광복절 경축식을 비롯해 정부 행사에 자주 얼굴을 드러냈던 터라 처음에는 반신반의하는 반응이 많았다. 비상계엄 사태 때에도 SNS에 글을 올리는 등 말할 때는 하는 이른바 ‘개념 연예인’으로 알려져 있어 대중은 조진웅의 반응을 기다렸다. 기사, SNS로 한꺼번에 유튜브 타고 빠른 확산 하지만 소년범이었던 과거가 사실로 드러나고 그가 은퇴를 선언하면서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동시에 조진웅의 은퇴를 두고 ‘과거의 일’이라는 의견과 ‘피해자를 생각하라’는 의견이 대립하기 시작했다. 일부 진보 진영 정치인이 한두 마디씩 말을 보태면서 의견 대립은 정치권으로까지 번졌다. 여기에 소년범 의혹을 최초로 기사화한 언론의 보도 윤리도 도마 위에 올랐다. 개그우먼 박나래는 매니저 갑질 의혹과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이 동시에 불거졌다. 매니저들이 박나래를 상대로 고소했다는 보도가 나온 이후 줄줄이 이어진 후속 보도에서 드러난 의혹들이다. 박나래가 매니저들과 진실 공방을 벌이는 내용이 거듭해서 언론 보도, 유튜브 쇼츠 등으로 이어지면서 불씨가 꺼지지 않고 있다. 특히 불법 의료 시술 의혹은 ‘주사 이모’라는 존재가 등장하면서 판이 커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주사 이모는 박나래에게 주사 등을 통해 투약한 인물로 추정된다. 해당 인물의 SNS가 공개되면서 몇몇 연예인이 연루 의혹을 받고 있다. 경찰 조사가 예정돼있어 장기전이 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그맨 조세호는 조폭 연루설에 휘말렸다. 조세호 의혹은 SNS를 통해 사진이 공개되면서 확산했다. 폭로자가 조세호와 조폭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함께 찍은 사진을 올리고 글을 쓰면서 논란이 불거졌다. 그 여파로 조세호는 고정 출연하고 있던 <유 퀴즈 온 더 블럭>과 <1박 2일>에서 하차했다. 유명 연예인 도마 위에 아이돌 그룹 BTS의 정국과 에스파 윈터의 열애설도 비슷한 시기에 터졌다.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두 사람이 비슷한 위치에 ‘커플 타투’를 했다는 의혹이 나왔다. 두 멤버의 소속사인 하이브와 SM엔터테인먼트는 ‘노코멘트’라고 입장을 밝혔다. 두 그룹이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는 만큼 계속 언급되는 중이다. 한 건만으로도 상당한 파급력을 지닐 사건이 연이어 터지면서 일각에서는 누군가가 민감한 이슈를 덮기 위해 연예계 사건·사고를 일부러 수면 위로 끌어올린 게 아니냐는 이른바 ‘음모론’이 제기되고 있다. 앞서 매년 11월마다 연예인 관련 사건이 일어나는 것을 두고 나왔던 이야기가 이번에 다시 나온 것이다. 정치나 사회 이슈와 비교해 연예계 관련 사건·사고 소식은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가는 편이라 몰입도가 높다. 동시에 휘발성도 크다. 또 대중에게 잘 알려진 연예인일수록 사건의 파급력이 크다. 물론 연말연시를 앞두고 머리 아픈 이슈에 질린 대중에게 연예계 문제는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로운 소재라 말이 나오는 것일 뿐 확인된 바는 없다. 말 그대로 ‘도시괴담’에 가깝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말이 심심찮게 보인다. 실제 여야가 한데 얽힌 것으로 추정되는 통일교 문제, 야당에서 강하게 반발 중인 국가보안법 폐지 논란 등이 연예계 이슈에 묻혀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3300만명이 넘는 고객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쿠팡 사태도 그 사건 규모에 비해 관심도가 떨어지고 있다. 마의 11월 12월로? 통일교 관련 논란은 당초 야당인 국민의힘에 포커스가 집중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통일교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그러다 최근 그 범위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으로까지 확대됐다. 윤영호 전 통일교 세계본부장이 통일교에서 금품을 제공한 정치인을 진술하면서 민주당 인사들도 입길에 올랐다. 민중기 특별검사팀은 지난 8월 윤 전 본부장으로부터 ‘통일교가 국민의힘 외에 민주당 소속 정치인들도 지원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확보했다. 윤 전 본부장이 언급한 인물 가운데 1명이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당시 민주당 의원)이었다고 한다. 명품 시계 2개와 함께 수천만원을 한일 해저터널 추진 등 교단 숙원사업을 위해 줬다는 것이다. 금품수수 의혹이 보도되자 전 전 장관은 지난 11일, 전격 사의를 표명했다. 그는 “불법 금품수수는 없었다”면서 “장관직을 내려놓고 당당하게 응하는 것이 공직자로서 해야 할 처신”이라고 했다. 이어 “저와 관련된 황당하지만 전혀 근거 없는 논란”이라며 “해수부가 또는 이재명정부가 흔들려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정권이 흔들릴 수도 있는 사안이라는 목소리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그동안 통일교 관련 논란으로 국민의힘에 맹공을 퍼부었는데 역풍이 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실제 국민의힘은 ‘통일교 특검’을 주장하면서 민주당과 이 대통령을 몰아가는 중이다. 공수가 뒤바뀐 것이다. 범여권에서 추진 중인 국가보안법(이하 국보법) 폐지를 두고 정치권이 갈등을 빚고 있다. 국민의힘이 국보법 폐지에 강하게 반발하면서 여야 간 힘겨루기로 비화했다. 정치권 이슈 묻히고 쿠팡도 잠잠해지나? 지난 7일 민주당 민형배, 조국혁신당 김준형, 진보당 윤종오 의원은 국보법 폐지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의원들은 “국보법은 제정 당시 일본제국주의 치안유지법을 계승해 사상의 자유를 억압한 악법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며 “국보법의 대부분 조항은 형법으로 대체 가능하며 남북교류협력법 등 관련 법률로도 충분히 규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국보법 폐지를 용인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국가보안법 폐지, 누구를 위한 것인가’ 토론회에서 “국가정보원에서 대공수사권을 떼어내 경찰에 이관했지만 경찰은 그만한 준비가 제대로 안 돼 사실상 대공수사가 공중에 붕 뜬 느낌”이라며 “이런 상황에서 국보법을 폐지하려는 시도가 있다는 건 굉장히 심각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연예계 이슈에 바로 직전 가장 큰 이슈였던 쿠팡 사태도 상대적으로 잠잠해졌다. 지난달 말 문자메시지 등을 통해 알려진 쿠팡 사태는 3370만명의 개인정보가 해외로 유출된 사건이다. 사실상 모든 고객의 정보가 털린 셈이다. 올 한 해 통신사, 카드사 등에서 개인정보 유출을 겪은 이용자는 또 한 번 직격탄을 맞았다. 쿠팡 사태는 해킹 등으로 정보가 유출된 여타 업체와 달리 전 직원의 소행으로 드러나면서 이커머스 업체의 보안 실태에 대한 불신으로 이어지고 있다. 동시에 2010년 창업 이래 이커머스 시장을 독점하다시피 한 쿠팡 생태계의 민낯이 낱낱이 알려졌다. 동시에 쿠팡에서 일어난 노동자 사망사고도 재조명받는 중이다. 지난 10일에는 박대준 쿠팡 대표가 사임했다. 쿠팡은 “최근의 개인정보 사태에 대해 국민께 실망하게 한 점에 대해 매우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이번 사태의 발생과 수습 과정에서의 책임을 통감하고 모든 직위에서 물러나기로 했다”고 밝혔다. 사실상 경질이라는 의견이 많다. 당분간은 계속될 듯 일각에서는 음모론에서 한발 더 나아가 여당 쪽에서 연예계 이슈를 터트린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오고 있다. 통일교 논란, 국보법 폐지, 쿠팡 논란 등 대형 이슈가 여당 쪽에 불리한 내용이 아니냐는 설명이다. 한편에서는 여야가 동시에 발을 걸치고 있는 사안인 만큼 특정 진영의 유불리를 따질 수 없다는 반박도 나온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