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박정원 기자 =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31일 본회의에 돌입하면서 이번 회의의 최대 성과물로 꼽히는 ‘경주 선언’ 채택 여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자유무역의 가치를 재확인하는 APEC 전통이 이어질지, 혹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보호무역 기조 속에 합의가 무산될지 전 세계의 시선이 경주로 향하고 있다.
‘경주 선언’은 2005년 부산 APEC 이후 20년 만에 한국에서 열리는 정상회의의 상징적 결과물이다. 회원국 정상들이 한목소리로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지속 가능한 번영과 포용적 성장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는 문건으로, 이번 회의의 주제인 ‘우리가 만들어가는 지속 가능한 내일 : 연결·혁신·번영’의 핵심 메시지를 담게 된다.
이번 회의에는 21개 회원국 정상과 장관급 인사, 아랍에미리트(UAE) 칼리드 빈 모하메드 알 나흐얀 왕세자, 크리스탈리나 게오르기에바 IMF 총재,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 주요 인사들이 대거 참석해 논의의 무게감을 더했다.
통상 APEC 정상회의 공동선언문에는 자유무역과 다자주의의 가치를 강조하는 문구가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의 자국우선주의 기조가 강화되면서 이번 경주 선언에도 ‘자유무역 지지’ 표현이 포함될 수 있을지가 최대 변수로 꼽힌다.
조현 외교부 장관은 전날(30일) 기자회견에서 “다수 회원들이 막판 협상을 하고 있다”며 “경주 선언 채택에 매우 근접했다”면서도 “자유무역 문구 포함 여부는 예단하기 어렵다”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지난 2005년 부산 정상회의에서 채택된 ‘부산 선언’은 APEC 정상들이 무역투자 자유화와 다자무역체제 강화를 재확인한 역사적인 합의로 남았다. 당시 정상들은 ‘보고르 목표’(Bogor Goals)의 중간 점검 결과를 환영하며, 2020년까지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역·투자 자유화를 달성하겠다는 의지를 천명했다.
특히 ‘부산 로드맵’을 통해 구체적 행동계획을 제시하고, 세계무역기구(WTO) 도하개발아젠다(DDA) 협상 타결을 지지하는 특별성명도 채택하는 등 자유무역의 가치를 적극 천명했다. 한국은 이 회의를 통해 정치·경제적 위상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APEC 선언이 항상 순조롭게 채택된 것은 아니다. 2018년 파푸아뉴기니에서 열린 정상회의에선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하면서 공동선언 채택이 불발됐다. 당시 미국은 ‘공정하고 개방된 무역’ ‘WTO 기능 강화’ 등의 표현에 반대했고, 결국 회원국 간 합의가 이뤄지지 못했다.
이처럼 APEC의 합의는 ‘컨센서스(만장일치)’ 원칙 아래 이뤄지는 만큼, 한 국가라도 이견을 제시하면 공동문서 채택이 어렵다.
이번 경주 정상회의에서도 미국의 보호무역 기조와 중국의 공급망 주도권 전략이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으나, 전날 열린 미중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희토류 수입 통제 유예와 관세 10% 인하에 합의하면서 협상의 돌파구가 열렸다는 분석도 나온다.
외교가에선 미·중이 무역갈등 완화 의지를 보인 만큼, 경주 선언 채택 가능성이 과거보다 높아졌다는 전망도 조심스레 나온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이날 본회의 연설에서 “다자 간 무역 체제를 공동으로 수호해야 한다”며 “세계무역기구(WTO)를 핵심으로 하는 다자주의 무역 시스템의 권위와 유효성을 제고하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의장국인 한국의 역할도 이번 선언 채택의 관건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입장을 고려하면서도 APEC의 본령인 ‘자유무역’ 정신을 살릴 수 있는 절충안을 도출해야 하기 때문이다.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26일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경주 선언이 무산되지 않도록 미·중 사이에서 조정 역할을 하고 있다”며 “경주 선언이 나오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일각에선 ‘자유무역’이라는 직설적 표현 대신 ‘개방적이고 공정한 무역 환경’ 등으로 문구를 완화하는 방안도 논의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정상회의에서 경주 선언이 최종 채택될 경우, APEC은 다시금 ‘개방과 협력’이라는 본래의 가치를 재확인하게 된다. 반면 합의가 무산될 경우, 보호무역주의 확산 속에서 다자주의 질서가 한층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결국 이번 정상회의는 선언문의 채택 여부뿐만 아니라, 자유무역의 가치가 여전히 유효한가를 가늠하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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