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발목 잡을 ‘셰셰 외교’ 족쇄

국익 나 몰라 맹목적 혐중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중국인 단체 관광객에 대한 무비자 입국이 한시적으로 허용됐다. 한국을 찾는 중국 관광객 수가 급증하면서 내수 진작 효과가 나타났지만, 사회에 깊게 뿌리 박힌 ‘혐중’ ‘반중’ 정서도 여과 없이 드러났다. ‘공산당 OUT’ 팻말을 든 극우 보수 세력은 이재명 대통령을 겨냥해 ‘셰셰 외교’ ‘친중 반미’ 프레임 굳히기에 나섰다.

지난달 29일 무비자 입국 정책이 시행되던 첫날, 중국 선사의 크루즈 관광객과 승무원 등 약 2700여명이 인천항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부에 따르면, 무비자 입국 제도 적용 대상은 전담 여행사가 모객한 3인 이상의 중국 단체 관광객이다. 해당 제도를 통해 입국하는 관광객은 15일 범위에서 무사증으로 대한민국 전역을 여행할 수 있으며 기한은 내년 6월까지다.

돌아온
유커들

정부는 방한 관광시장이 빠르게 회복되고 있는 상황에서 무비자 정책이 시행되면 추가 방한 수요를 유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이에 발맞춰 백화점과 면세점, 서울 명동 상점 같은 유통업계는 물론 제주도, 부산 등 관광지에서도 유커를 맞이하기 위한 준비를 갖췄다.

앞서 중국은 지난해 11월부터 우리 국민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했다. 이에 한중 간 인적 교류가 활발히 이뤄짐으로써 양국의 우호 증진에 기여할 것으로 봤다.

정부는 무단이탈, 불법 체류 등의 상황을 막기 위한 보안 대책도 마련했다. 법무부 출입국 기관은 전담 여행사가 제출한 단체 관광객 명단을 사전에 확인해 과거 불법 체류 기록이 있는지 등을 살펴볼 예정이다. 만약 고위험군으로 분류될 경우 무사증 입국 대상에서 제외된다.

각종 우려를 불식하기 위해 정부가 적극 설명에 나섰지만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반중 정서를 없애기엔 역부족이었다.

앞서 지난달 18일 국회 국민 청원 게시판에 올라온 “중국 단체관광 무비자 입국 허용을 즉각 폐지하고 치쿤구니야 감염 모기 유입 방지 대책을 마련하라”는 청원은 약 4만명의 동의를 얻었다.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도 혐오성이 짙은 글이 잇따르면서 반중 정서가 확대될 우려가 제기됐다.

주한 중국대사관도 자국 관광객에게 ‘반중 시위’와 관련한 주의를 당부했다. 대사관은 “최근 한국 일부 지역, 특히 서울 명동과 대림동 등지에서 중국인을 겨냥한 시위가 수시로 발생하고 있다”며 “중국과 한국 양측 모두 이에 대해 명확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중국 관광객은 높은 경계심을 유지하고 자기 보호 의식을 강화해야 하며 현지의 정치 집회에는 접근하지 말고 공개적인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라”고 권고했다. 그러면서 “돌발 상황 발생 시 시위대와 언어·신체적 충돌을 피하고 신변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라”고 덧붙였다.

주한 중국대사관의 당부에도 중국인 단체 관광객의 무비자 입국이 허용된 첫날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에서는 보수 성향 단체를 중심으로 반중 집회가 열렸다. 윤석열 전 대통령 지지자로 이뤄진 ‘민초결사대’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비자 정책이 국가 안보를 위협한다”며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진상 규명 촉구 및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반대한다”고 주장했다.

중국 무비자 입국 ‘활짝’ 열렸다
동시에 시작된 ‘이 공산당’ 몰이

이 밖에도 대림동, 명동, 중국 대사관이나 광화문 광장 등 곳곳에서 ‘공산당 OUT’ 팻말을 찾아볼 수 있었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무효’ ‘Only 윤’ ‘이재명을 구속하라’ 등의 구호와 더불어 최근 피살된 미국 우파 활동가 찰리 커크를 추모하는 문구도 눈에 띄었다.

인스타그램이나 유튜브 등에는 “무비자로 입국한 중국인이 한 노인을 인신매매하려 했다” “대한민국이 공산당처럼 되고 있다” 등의 내용을 담은 영상이 공유되기도 했다.

중국인이 밀집된 관광지를 중심으로 반중 시위가 계속된다면 외교 문제로도 번질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이 대통령 역시 국무회의에서 명동의 혐중 시위에 대해 “그게 무슨 표현의 자유냐? 깽판이다. 그러면 안 된다”며 대응 방안을 신속히 검토하라고 주문한 바 있다.

반중 기류는 정치권에까지 손을 뻗었다. 국민의힘은 이재명 대통령을 겨냥해 ‘셰셰 외교 참사’라 비판했으며 더 나아가 ‘친중 반미’ 꼬리표를 달기도 했다.

셰셰 외교라는 표현은 지난해 3월 이 대통령이 “중국과 대만에 관여하는 대신 각각 표준 중국어로 ‘셰셰(고마워)’ 하자”고 말하면서 생겼다.

당시 4·10 총선을 앞두고 충남 당진을 찾은 이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윤석열정부가 무슨 짓을 했는지 여러분 눈으로 보시고 몸으로 겪었죠”라며 “차라리 없었으면, 가만 놓아뒀으면 지금보다는 나았을 거다. 자꾸 집적거려서 더 망가뜨렸다”고 말했다.

이어 “가장 크게 망가뜨려진건 외교”라며 “우리나라 최대 흑자 국가, 수출 국가인 중국이 지금은 최대 수입 국가가 돼버렸다. 중국 사람들이 한국이 싫다고 한국 물건을 사지를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 대통령은 “왜 중국에 집적거려요”라고 말한 뒤 “그냥 (중국에) ‘셰셰’, 대만에도 ‘셰셰’ 하면 된다. (중국과 대만의) 양안 문제에 왜 우리가 개입하나? 그냥 우리는 우리가 잘 살면 되는 것 아니냐?”라고 묻기도 했다.

당시 해당 발언으로 국민의힘을 비롯한 보수 진영에서 큰 반발이 터져 나왔지만 이 대통령은 6·3 조기 대선 정국에서도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확산되는
음모론

당시 이재명 후보는 “제가 작년에 셰셰라고 했다. ‘중국에도 셰셰, 대만에도 셰셰, 다른 나라하고 잘 지내면 되지, 대만하고 중국하고 싸우든 말든 우리와 무슨 상관이냐’고 말했다. 제가 틀린 말을 했느냐”고 반문했다. 이어 “제가 일본 대사에게도 셰셰라고 말을 하려다가, 못 알아들을 것 같아서 ‘감사하므니다’라고 했다. 제가 잘못됐나”라고 말했다.

이처럼 이 대통령은 국익을 위한 실용 외교의 가치를 거듭 강조했지만 친중이라는 비판이 쏟아지면서 외교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시험대에 올랐다.

지난 8월에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 워싱턴D.C.로 향하는 공군 1호기에서 진행한 기내 간담회에서 ‘친중 성향’ 이미지를 불식할 만한 준비가 있느냐는 질문에 “외교에서 친중, 혐중이 어디 있느냐”고 선을 그었다.

해당 발언과 관련해 한 여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은 전형적인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 내 편 네 편 나누니 진영 싸움으로 번지는 것”이라며 “(이정부의 외교 철학은) 실용적인 이익을 추구하자는 것이다. ‘내 편 아니면 모두 적’이라는 전제에서부터 출발하면 지금처럼 극우 세력의 호응은 좀 얻을 수 있겠으나 국익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취임 후 전화 통화도 미국, 일본, 중국 순으로 진행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중국, 미국, 일본 순으로 통화를 했는데, 이 대통령은 중국과 가장 마지막에 소통한 것”이라며 “당시 미국 관세 협상 등 상황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한미 관계를 확인하고, 친중 프레임을 덜어내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이 정부는 ‘실용 외교’ ‘가치 외교’를 주장하고 있지만 보수 진영에서는 셰셰 외교로 못 박았다. 여기에 중국인 무비자 입국이 시작되자 국민의힘 인사들이 말을 얹으며 오히려 이들이 분란을 조장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은 “이번 (국정자원관리원) 화재 사고로 모바일 신분증 등 국민 개인정보 보안 행정 전산망이 심각하게 훼손됐고 국가 행정망을 통해 자국민의 신원조차 제대로 확인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중국인 입국이 앞으로 수십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국민 불안과 우려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이어 “사고 수습과 전산 복구, 개인정보 보호·신원 확인 보안 대책, 이중화 체계 확립 등 철저한 대책이 마련되기 전까지는 중국인 단체 관광객 무비자 입국 시작을 연기할 것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은 중국인 무비자 입국을 두고 “국민 안전을 담보로 한 위험한 도박”이라고 비판했다.

김 최고위원은 “지난 8월 언론 보도에 따르면 중국 정부는 공공 부문 고위 관리부터 초등학교 교사, 의사, 간호사, 정부 계약업체 직원, 일반 근로자에 이르기까지 해외여행을 승인 형태로 제한하고 있다”며 “중국이 자국민의 출국을 막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 무비자로 한국에 대거 몰려드는 중국인은 대체 누구인가”라고 의문을 제기했다.

아슬아슬
외줄 타기

그러면서 “무비자 제도를 악용한 범죄 조직 등의 침투 가능성이 있다”며 “마약 유통 및 불법 보이스피싱 등 국제 범죄 창구가 확산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국민께서는 내 안전은 내가 지킨다는 생각으로 경계, 신고, 위생, 정보 확인, 공유 총 다섯 단계를 기억해 주길 바란다”며 “이정부는 국민 안전을 고려치 않았다. 죄송하지만, 스스로의 안전 반드시 지켜주시길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이를 두고 민주당에서는 국민의힘이 불안감을 조성해 본인들의 정치적 이익만을 노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 전승절 80주년 열병식을 계기로 북·중·러가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연일 강공 태세를 보이며 압박 수위를 높이고 있다. 여기에 중국이 미국을 향해 보란 듯이 ‘관세 보복’을 단행하면서 외교 정세가 그야말로 살얼음판이다.

외교가 ‘양자택일’이 될 수 없는 만큼 한국 정부는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거리를 적절히 유지해야 하는 과제를 떠안았다. 미국과 중국의 견제가 날로 심해지면서 한중 외교는 더 이상 단순한 두 나라 간의 협력만이 아니라 미국까지 고려해야 하는 복잡한 상황에 놓였다.

내란의 밤이 지나고 새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도 미국은 한국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았다. 지난 6월 백악관은 이 대통령 당선에 대해 “한미동맹은 여전히 철통 같다. 한국이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를 치렀다”면서도 “미국은 전 세계 민주주의에 대한 중국의 개입과 영향력 행사에 대해 여전히 우려하며 반대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고 전했다.

여기에 미국 보수 지지층이 MAGA(Make America Great Again)를 구심점으로 힘을 키우면서 이정부를 둘러싼 반미 친중이라는 프레임은 부담스럽기만 하다. 미국 보수 성향 의원들은 X(구 트위터)를 통해 이 대통령을 ‘반미’로 규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책사로 알려진 스티브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중국 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새로운 한국 지도부는 미국에 두 가지 엿을 줬다”고 주장하는 등 거친 언사를 쏟아냈다.

미-중 사이에 낀 한국 고민
‘경주 APEC’ 최대 분수령

최근에는 손현보·전광훈 목사 등 한국 보수 기독교 세력이 한학자 통일교 총재에 대한 검찰 수사를 ‘종교 탄압’이라고 주장하며 MAGA 세력에 은근한 신호를 보내는 모양새다. 한미 극우의 연대를 발판 삼아 이정부의 반미 프레임을 강화하기 위한 시도로 해석된다.

이정부의 반미 꼬리표가 질겨질수록 친중 외교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당장 오는 31일 열리는 경주 APEC(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이 이정부의 최대 난관이자 동시에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번 APEC은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비롯한 일본, 러시아 등 아시아·태평양 연안 21개 국가가 자리할 예정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국제 정세가 다시 한번 출렁일 것으로 관측된다.

미국과 중국 사이에 놓인 한국 정부가 APEC을 통해 얼마만큼 국익을 끌어낼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관련해 조현 외교부 장관은 APEC 정상회의에 왕이 중국 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 겸 외교부장의 방한을 초청했고, 왕 부장 역시 한국서 조 장관을 만날 수 있길 기대한다고 화답했다고 외교부는 밝혔다.

지난달 17일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회담서 조 장관은 이같이 밝히며 “한미동맹을 공고하게 발전시켜 나가되 국익과 실용에 기초해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의 성숙한 발전도 추진해 나간다는 것이 우리 정부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왕 부장 역시 “중국이 대(對) 한국 우호 정책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지속 유지해 나갈 것”이라며 “한중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더 높은 수준으로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 지속 협력해 나가자”고 말한 것으로 전해진다.

외교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이번 APEC이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이 관계자는 “이 대통령은 셰셰 프레임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한 번씩 작심 발언을 하는데 (보수에서는) 귀담아들을 생각이 없어 보인다. 정부 입장에서 곳곳에서 일어나는 반중 시위가 부담스러울 것”이라고 진단했다.

한미 관계에 대해서는 “북·중·러가 연대를 과시하며 끈끈하게 뭉치고 있다. 여기에 한국이 합류하면 반서방 연대로 보여질 수밖에 없는데, 일각에서 신냉전이라고 주장하는 건 과도한 해석”이라면서도 “비핵화 문제에 있어서는 (중국과 한국이) 이견이 있는 건 사실”이라고 짚었다.

하나만 꼬여도
줄줄이 엇박자

그는 “중국은 북한 비핵화에 대해 침묵하고 있다. 핵을 용인하겠다고 공언한 건 아니지만 (이번 회담서) 언급하지 않은 건 해석할 여지가 있다”며 “지금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 문제를 들여다보면 하나의 변수가 가져올 나비효과가 무척 크다. 한국 정부는 모든 요건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실용 외교를 하겠다는 건데, 어느 때보다도 복잡한 상황에 놓인 것”이라고 해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신라호텔 노쇼 후폭풍

중국 정부가 경주 APEC 기간 동안 신라호텔을 전체 대관했다가 취소하자 국민의힘이 “이것이 이재명 대통령이 말한 ‘호텔 경제학’이냐”며 크게 반발했다.

신라호텔에서 중국 정부의 예약으로 고객의 결혼식 날짜를 변경했는데, 돌연 대관이 취소되자 “호텔 예약이 취소돼도 돈이 돌았으니 경제가 활성화된 것”이라는 이 대통령의 호텔 경제학을 꼬집은 것이다.

국민의힘 성일종 의원은 “중국이 대한민국의 호의에 ‘노쇼’로 보답한 것”이라며 “무엇보다 이번 사태는 중국이 과연 경주 APEC에 참석을 하긴 할 것인지 의구심마저 들게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말 오랜만에 대한민국이 외교 무대의 중심에 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이재명정부의 준비 부족과 잘못된 외교 전략으로 인해 걷어차 버리는 것이 아닌지 심히 걱정”이라며 “열심히 중국에 셰셰 해온 결과가 고작 이것이냐”고 질타했다.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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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감사원도 못 뚫은 선관위 방패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안 하는 걸까, 못하는 걸까. 지방선거 이후 선거관리위원회에 쏟아지던 폭발적인 관심이 사그라들고 있다. 그로 인한 나비효과는 사회 전반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데 정작 핵심은 비껴가는 모양새다. 지난 6월3일 치러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는 이재명정부 들어 처음 열리는 대형 정치 이벤트였던 만큼 국민의 관심이 매우 높았다. 이미 국회 다수 의석을 차지하고 있는 여당은 압승으로 국정 운영에 동력을 더하고자 했고, 12·3 비상계엄과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 등으로 궤멸 직전에 몰려 있던 보수 진영은 ‘샤이 보수’를 기대하며 유권자에게 읍소했다. 사상 초유 참정권 침해 결과는 절묘했다. 지방선거의 승패를 가를 때 판단하는 광역단체장 수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16개 시도 중 12곳을 석권했다. 하지만 서울을 내줬고 국민의힘의 텃밭인 대구·경북 지역도 빼앗지 못했다. 선거 운동 초반 16개 시도를 전부 싹쓸이할 것으로 예상했던 상황이라 민주당의 실망은 더욱 컸다. 특히 서울에서의 패배는 뼈아팠다. 이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서울시장을 내주면서 중간 평가를 받았다는 말이 나왔다. 실제 이재명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방선거 이후 내리막을 타기 시작했다. 규제 중심의 부동산 정책이 시장에 먹히지 않았고, 지방선거 직전 상장한 단일종목 레버리지 상품의 여파가 지지율을 흔들었다. 여기까지는 지방선거 이후 늘 나타났던 여파였다. 문제는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의 부실한 관리로 선거의 근간 자체가 흔들렸다는 점이다. 선거가 한창 진행 중이던 시각, 일부 투표소에서 투표지가 부족한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선거를 총체적으로 관리, 감독하는 기관이 국민의 참정권을 침해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사태 이후 선관위의 대응은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선관위는 투표지가 부족한 투표소의 현황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선관위는 6월5일 투표지를 추가로 송부한 투표소는 67개, 용지가 부족했던 투표소는 50곳라고 발표한 바 있다. 이 같은 내용은 사흘 뒤인 6월8일 140개 투표소에 추가 투표용지가 송부됐고, 이중 91곳에서 투표지가 부족했다는 발표로 바뀌었다. 3일 만에 각각 거의 두 배씩 늘어난 것이다. 결국 조현욱 전 한국여성변호사회 회장을 위원장으로 한 진상규명위원회가 꾸려졌다. 진상규명위원회는 10일(6월10일~19일)간의 조사 끝에 “선거 관리 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에 관한 책임 소재에 따라 수사 의뢰를 권고한다”며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을 비롯한 선관위 수뇌부 등 12명을 지목했다. 채용 비리 의혹·소쿠리 투표 투표지 부족 사태로 민심 폭발 진상규명위원회는 “투표용지 부족 사태 발생 당시의 상황을 보면 상급위원회에 대한 신속한 보고 체계가 전혀 작동되지 않았다”며 “상급위원회의 지휘권도 전혀 발동되지 않고 있었다”고 지적했다. 또 서울시선관위가 투표 시간 연장을 중앙선관위 보고나 논의 없이 결정했으며 송파구선관위가 투표가 종료되지 않은 상황에서 개표를 개시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선관위 해체에 가까운 대대적 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과정에서 선관위의 과거 행태도 도마 위에 올랐다. 특히 선거를 앞두고 휴직자가 급격하게 증가하는 현상이 10년여 동안 이어졌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선관위의 존재 의의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선거 기간 휴직자의 증가로 인력 공백이 생기면서 ‘소쿠리 투표’ 사건 등 부실 관리 문제가 불거졌는데도 이번 선거에서 같은 현상이 일어난 것이다. 중앙선관위가 국민의힘 김선교 의원에게 제출한 ‘최근 5차례의 선거 중 휴직자 통계’에 따르면 6·3 지방선거 당일 선관위 직원 179명이 휴직 상태였다. 휴직자의 71%는 육아휴직(127명), 일반 질병(30명), 가족 돌봄 및 해외 동반 휴직(8명), 유학·병역 및 노동조합 전임자(1명) 등의 사유였다. 특히 최근 4년 새 진행된 다섯번의 선거에서 두 차례 이상 휴직한 직원이 97명으로 집계됐다. 2회 휴직자는 77명, 3회 휴직자는 19명이다. 다섯번의 선거 중 4번이나 휴직한 직원도 있었다. 선관위는 휴직자의 대다수가 육아 휴직자인 만큼 법적 권리를 보장했다는 뜻을 밝혔다. 국가공무원법 제71조에 따르면 자녀 양육 및 임신·출산을 사유로 공무원이 휴직을 신청하면 임용권자는 휴직을 명해야 한다. 선관위 직원들의 휴직을 강제로 제한할 수 없다는 것이다. 쌓이고 쌓인 국민 분노 하지만 선관위의 항변은 국민의 분노를 꺼뜨리지 못했다. 무엇보다 선관위 자체가 헌법상 독립기관이라는 점을 방패 삼아 각종 문제를 피해 왔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선관위는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이기에 감찰을 받지 않는다. 문제가 발생해도 자체적으로 덮고 갈 수 있는 환경이 조성돼있던 것이다. 이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계기는 선관위의 채용 비리 의혹이었다. 2023년 선관위 전·현직 사무총장을 비롯한 고위 간부들의 자녀가 ‘아빠 찬스’를 통해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특혜 채용 의혹이 전방위로 번지자 외부 기관의 조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지만, 선관위는 독립성을 근거로 자체 조사를 고집했다. 부정적인 여론이 확산하자 선관위는 결국 국민권익위원회(이하 권익위)의 조사를 받아들였다.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당시 권익위가 2023년 이전 7년여 동안 선관위의 경력 채용을 전수조사한 결과 58명의 부정 합격 의혹 등 총 353건의 채용 비리가 적발됐다. 권익위는 고의성이 의심되거나 상습적으로 부실채용을 진행한 28명을 고발하고 가족 특혜나 부정 청탁 여부 등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한 312건에 대해 수사를 의뢰했다. 일각에서는 권익위와 국회 국정조사만으로는 선관위 조사에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나왔다. 선관위의 조사 수용 방침 자체가 자신들이 그 범위를 정하는 방향으로 잡힌 점도 논란 거리였다. 결국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 전반을 들여다보겠다고 나섰다. 선관위와 감사원 사이의 충돌이 시작된 지점이다. 독립성만 앞세웠다 실제 감사원의 감사가 이뤄지기까지 선관위의 저항은 상당했다. 국민 여론이 부정적으로 흐르자 선관위는 감사원의 감사를 일단 수용하면서도 헌법재판소에 권한쟁의 심판을 청구했다. 감사원에 헌법상 독립기구인 선관위를 감사할 권한이 있는지를 다퉈보겠다는 취지였다. 그사이 감사원은 2024년 4월 선관위 내부에 부정 채용이 만연한 사실을 확인하고 비리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선관위 전·현직 직원 27명을 대검찰청에 수사 요청했다. 감사원에 따르면 선관위는 조직 전반에 걸쳐 채용, 인사, 복무 등 관계 법규를 무시하거나 이를 용인하는 행태가 관행화된 상태였다. 고위직부터 중간 간부에 이르기까지 본인의 자녀 채용을 청탁하는 행위가 빈번했고, 채용 담당자들은 각종 위법·편법적 방법을 동원해 선거철 경력 경쟁 채용을 직원 자녀들이 손쉽게 국가 공무원으로 입직할 수 있는 통로로 이용했다고 밝혔다. 감사원이 들여다본 2013년 이후 시행된 경력 경쟁 채용 167회를 전수조사한 결과 확인된 위반 건수만 800여건에 달했다. 당시 감사원은 “채용 비리와 관련한 사안은 신속한 수사 착수의 필요성이 크다고 판단해 검찰에 수사를 요청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문제는 감사원이 내놓은 결과가 헌법재판소(이하 헌재)의 판단으로 무위로 돌아갔다는 점이다. 헌재는 지난해 2월 감사원이 선관위의 인력 관리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권한이 없다고 만장일치로 판단했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권한은 행정부 내부의 통제 장치 성격을 가지고 있는 바, 정부와 독립된 헌법 기관인 국회·선관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며 “감사원이 실시한 직무감찰은 헌법 및 선거관리위원회법에 의해 부여받은 선관위의 독립적인 업무 수행을 침해한 것”이라고 했다. ‘헌법상 독립기관’ 내세워 헌재 판단까지 ‘난공불락’ 감사원장과 감사위원 임명권은 대통령에게 있는데 대통령 소속 기관인 감사원이 선관위에 대해 직무감찰을 할 수 있게 되면 선거 관리의 공정성과 중립성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훼손될 위험이 있다고 본 것이다. 헌재의 판단은 법원으로 이어졌다. 지난 6월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행정3부는 선관위 직원 A씨가 중앙선관위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견책 처분 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로 판결했다. 감사원은 감사에서 A씨에게 경징계 이상의 처분을 요구했고, 선관위는 징계를 의결, 견책 처분을 내렸다. A씨는 2021년 10월에 발생한 사안에 대해 징계시효 3년이 지난 2025년 3월 징계를 의결했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국가공무원법상 공무원의 징계시효는 성폭력 범죄 등이 아닌 기타 징계 사유의 경우 3년이다. 다만 감사원이 조사 개시를 통보하면 시효가 정지된다. 재판부는 감사원의 감사 자체가 위법이기에 조사 개시 통보를 시효 중단 사유로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헌재가 권한쟁의 심판에 대해 인용한 점을 들어 A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러면서 이를 토대로 A씨에 대한 징계시효 3년이 이미 지났다고 판단했다. 헌재의 판단은 당시에도 선관위를 난공불락의 요새로 만든다는 말이 나왔다. 이후 투표지 부족 사태가 벌어지면서 선관위에 대한 조사가 불가피하다는 여론이 일었다. 특히 투표지 부족 사태는 부정선거 논란으로 이어져 ‘올림픽 공원’ 시위 사태 발생 등 사회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결국 지난달 7일 출범한 선관위 특검에 기대를 걸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선관위 특검팀(특별검사 이태한)은 지난 7일 출범 한 달째를 맞아 강제수사, 포렌식 검증, 관련자 소환조사 등을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투표지 부족 사태를 비롯해 투표율 허위 입력 정황, 노태악 전 중앙선관위원장 등 선관위 관계자들의 해외 출장 유용 의혹, 투표함 입찰 담합 의혹 등을 들여다보고 있다. 사회에 끼친 악영향도 커 특검의 본 수사 기간은 90일이며 필요한 경우 30일씩 두 차례 연장할 수 있다. 최장 150일 간 수사할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넘어야 할 산은 많다. 일단 인력 충원이 시급한 상황이다. 중대범죄수사청 청장 인선 절차가 늦어지면서 선거 관련 분야에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확보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감사원은 선관위의 방패를 뚫지 못했다. 특검은 어떨까?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