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서진 기자 = 경주에서 열릴 2025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오는 31일부터 내달 1일까지 이어질 이번 정상회의는 그 중요도가 높다. 미국과 중국 정상이 만나 고조된 수출 규제 힘겨루기를 매듭짓고 얼어붙은 한미 관계에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분석이 이어지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최근 소란과 소강의 상태를 오갔다. 지난 9일 중국이 덜컥 희토류 수출 통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다음 날인 10일 트럼프 대통령은 곧 있을 시 주석과의 정상회담 불발 가능성을 시사했고, 미국 증시는 태풍의 눈에 잠겼다. 그칠 줄 모르는 양국의 밀고 당기기의 여파가 이번 회담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일요시사>가 경주 APEC 정상회의 관전 포인트 4가지를 소개한다.
강대강 대립
▲트럼프-시진핑 만나나? = 결코 순탄치 않다. 중국은 지난 12일 “무역 전쟁을 원하지 않지만 상응하는 조치를 취하겠다”고 강경 선언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자신의 SNS에 “중국을 해치려고 한 것은 아니다”며 꼬리를 내렸다. 갑작스러운 무역 갈등의 재점화로 글로벌 증시가 일제히 하락하는 등 경기 악화 우려가 커지자 트럼프 대통령이 맞불 작전에서 한걸음 물러난 것으로 보인다.
외교부는 정상회의를 앞두고 격화된 양측의 태도에 대해 지난 13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주간에 방한해 가능한 한 APEC 회의 일정에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며 “APEC 회의에 참석하는 여타국 정상들과도 의미 있는 외교 일정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한편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한 언론과 인터뷰에서 “최근 몇 달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의 회담을 준비하며 양국 간 긴장이 완화되는 분위기였는데, 이번 희토류 수출 통제 조치는 매우 도발적인 행위”라고 비판했다. 며칠 뒤엔 “트럼프 대통령은 한국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만날 것”이라며 회담 무산 가능성에 선을 그었다.
희토류는 첨단 기술의 ‘소금’이라고 불리며 방위산업 분야 등에 두루 사용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국은 전 세계 희토류 생산의 70%, 정제 및 가공의 90%를 장악하고 있다. 중국은 희토류뿐 아니라 고급 리튬이온 배터리와 인조 다이아몬드까지 수출 통제 목록에 올리며 규제에 박차를 가하는 상황이다.
한 경제학자는 “중국의 관점에서 볼 때 최근의 긴장 고조는 전적으로 미국으로부터 시작된 것이며 중국의 행동은 조정된 상호 대응”이라고 분석했다. 희토류 전쟁에서 패하면 기술·군사 패권에서도 밀릴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판단에 따라, 기술 우위를 차지하려는 강대국 간 경쟁은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미국, 한국 패싱하나? = 경주 APEC 정상회의는 한국이 외교 리더십을 강화하고, 산업 경쟁력과 국가 브랜드 가치를 끌어올리는 분수령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에서 20년 만에 다시 열리는 국제 이벤트인 만큼 조선업과 해운산업의 국제 협력 확대가 동시에 진행된다.
얼어붙은 한미 관계 돌파구 마련?
미·중 무역 갈등 해소 기회될까
다만 미중 무역 갈등으로 조선시장에 불확실성이 존재하므로, 한국은 이번 회의를 통해 중립적 산업 외교를 강화하고 공급망 교섭력을 높일 기회를 엿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한국의 대미 투자 계획이 구체화되지 않을 경우, 한미 정상회담이 형식적인 약식 회동에 그치거나 정상 간 만남 자체가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국립외교원 출신 한 교수는 “아시아 순방에 나선 트럼프 입장에선 각국과의 관세 협상에 따른 성과를 과시해야 하는데, 한국은 이에 해당 사항이 없는 점 때문에 한국 방문에 큰 매력을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고 짚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실제로 성사된다면, 이 기회가 한국 조선업계에 상당한 활력을 불어넣을 것으로 기대된다. 짧은 방한 일정 속에서도 경주 인근 조선소 방문 가능성이 높고, 이는 미국과 한국 양국의 조선업 협력이 강화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 업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제2의 판문점 만남? = 정동영 통일부 장관은 지난 14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의 통일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북미 정상회담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며 “공개된 정보와 자료를 분석해 볼 때 북미 양측 정상은 준비가 돼있는 상태”라고 언급했다.
한편 외교부는 지난 16일, 정 장관이 했던 정상회담 준비 발언에 대해 “현재 구체적인 진전이 있는지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이 없다”며, 언론 공지를 통해 “우리 정부는 북미 대화를 지지하며 필요할 경우 적극 지원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정 장관은 MBC <질문들>에 출연해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APEC 정상회의 시기에 판문점에서 회동할 가능성이 임박했음을 강조했다. 지난 8월 백악관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이재명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 중 김정은 위원장과 친분을 과시하며 만날 의향을 드러낸 바 있다.
과거 트럼프 1기 행정부 시절인 2019년 6월에도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서 열린 G20 회의 참석 후 판문점 회동을 가진 전례가 있다. 이에 만일 김 위원장과 만남이 이뤄진다고 하더라도 비공식적인 방식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관세 협상이 미칠 영향은? = 지난 16일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과 김정관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이 미국으로 출국했다. APEC 정상회의를 목전에 두고 이견을 최소화하기 위해 사력을 다하는 것으로 보인다. 스콧 베선트 미국 재무부 장관은 전날, 미국의 방송 대담에서 ‘중국 외 어떤 무역 협상에 가장 집중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을 언급하기도 했다.
이후 김 장관은 “마스가와 관련해 구체적으로 어떤 프로젝트를 진행할지에 대해 논의했다”고 밝혔다. 최종 서명을 하지 않은 상태기에 이번 방미를 통해 진전된 접점이 마련될지 주목된다.
우여곡절 결국 만날까
관세 협상 총력전
한미는 투자 방식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 중이다. 미국은 지분 투자, 즉 전액 현금 투자를 요구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외환 안정성, 국내총생산(GDP) 규모 등을 고려해 대출과 보증 등으로 투자 한도를 채우는 게 합리적이라고 보고 있다.
정부는 이번 대통령실 참모진의 방미를 통해 관세 협상이 타결되는 것은 아니라고 못 박았다. 그러나 이를 계기로 그동안 교착상태에 빠졌던 한미 협상이 다시 속도를 낼 가능성은 커졌다. 한미 협상의 가장 큰 두 가지 쟁점은 ‘투자 방식’(현금 투자 비중)과 ‘외환시장 안전장치’(통화 스와프)다.
한국은 지난 회담에서 미국에 3500억달러 규모의 투자와 1000억달러 규모의 에너지 구매를 약속했다. 이 중 1500억달러는 조선업 협력 펀드로, 나머지는 반도체와 배터리 등 첨단 산업에 집중된다. 최대 수혜 업종은 조선업으로 평가된다.

한국 기업들은 미국 내 조선소 현대화와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확대해 산업 경쟁력을 키워갈 전망이다.
그러나 자동차와 철강 등 제조업은 관세 부담이 증가해 수출에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커졌다. 이에 우리 기업들은 미국 내 생산을 확대하고 전략적 대응에 나서야 하는 상황에 놓여 있다. 이 외에도 농·축산물과 반도체 등 일부 첨단 산업은 무관세와 최혜국 대우가 적용돼 안정적 수출이 기대된다.
더불어 지난 9월 조현 외교부 장관이 크리스 라이트 미국 에너지부 장관과 만나 핵연료 재처리와 우라늄 농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25 APEC 정상회의 준비기획단’ 부단장을 맡은 김진아 외교부 제2차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2005년 부산 APEC 정상회의 이후 다시 열리는 이번 APEC 회의는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을 높이고 우리의 역량을 세계에 알릴 중요한 무대”라고 평가했다.
막판 배수진
김 차관은 “이번 정상회의가 국제경제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열리는 만큼 회원 간 다자적 협력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있다고 보며 그 중심에서 한국이 실질적 협력 방안을 도출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며 “인공지능(AI) 전환, 인구 감소 대응과 같이 정치적 갈등이 덜한 공통 의제 논의에 집중하면서 한국이 협력 리더십을 확인하는 기회로도 활용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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