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44명’ 밀양 성폭행 사건 재조명

그래 놓고 잘 살아?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20년 전 사건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수사기관의 재수사나 피해자의 호소가 아닌 제3자의 목소리가 사건을 대중 앞으로 끌어냈다. 사건의 파괴력 때문일까? 이 사건은 이미 몇 차례나 회자되길 반복했다. 대중은 왜 이 사건을 놓지 못하는 걸까?

밀양 여중생 집단 성폭행 사건(이하 밀양 사건)을 둘러싸고 ‘사적 제재’ 논란이 불거졌다. 법적 처분이 완료된 상태인 사건에 유튜버 등이 개입하면서 다시 불타오르고 있다. 정식 절차를 밟은 게 아닌 폭로 형식으로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것을 두고 갑론을박이 벌어지는 중이다. 

법은 멀고

20년 전 경남 밀양서 끔찍한 사건이 발생했다. 2004년 12월 밀양 지역 고교생 44명이 울산 여중생 1명을 1년간 지속적으로 성폭행한 사건이 터졌다. 가해자의 숫자와 이후 피해자에게 벌어진 일 등이 알려지면서 밀양 사건은 지속적으로 회자됐다.

최근 몇몇 유튜버가 경쟁적으로 밀양 사건 가해자의 신상을 공개하고 있다. 유튜버가 영상을 게재하면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빠르게 퍼져 나갔다. 누리꾼은 엉뚱한 사람이 피해를 입을까 우려하면서도 유튜버의 폭로에 전반적으로 응원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 배경에는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과 사건 당시 수사기관, 밀양 주민의 태도가 꼽힌다. 당시 사건을 수사한 울산지검은 가해자 가운데 10명(구속 7명, 불구속 3명)을 기소했다. 20명은 소년원으로 보내졌다. 나머지 가해자는 피해자와 합의했거나 고소장에 포함되지 않아 ‘공소권 없음’ 결정이 났다.


44명 가운데 단 1명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은 것이다. 

가해자가 형사 처벌을 피해간 사이 피해자는 합의를 종용하는 사람을 피해 여러 학교를 전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피해자의 아버지는 가해자들에게 받은 합의금을 친척들과 나눠가졌다고 한다. 하지만 피해자에게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피해자가 사건에 대한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일용직을 전전한다는 근황이 전해지면서 대중의 분노에 불이 붙었다.

과거 영상도 인터넷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2007년 방영된 <밀양 성폭행 사건, 그 후> 프로그램의 일부 장면을 캡처한 사진이 다수 게재된 것. 캡처된 장면에 따르면 당시 인터뷰를 진행한 밀양 주민은 “여자한테 문제가 있으니까 남자가 그러는 것”이라며 “꽃뱀이나 마찬가지다. 돈 딱 물고 합의 보고”라고 말했다. 

사건 당시 피해자를 대하던 경찰의 태도도 입길에 올랐다. 경찰은 “네가 밀양 물을 다 흐려놨다” “네가 먼저 꼬리친 것 아니냐”는 등의 2차 가해성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언론에 사건 경위와 피해자의 신원을 그대로 노출한 사실도 드러났다. 

밀양 사건은 영화 <한공주>로 제작되는 등 잊을 만하면 한번씩 언급됐다. 가해자의 신상을 폭로하는 글도 간간히 올라왔다. 가해자의 친구로 추정되는 인물이 경찰이라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해당 경찰서의 게시판이 마비되는 일도 일어났다. 

하지만 이번에는 유튜버가 가해자를 지목하면 누리꾼이 응징하는 형태가 되면서 직접적인 제재가 이뤄지는 모양새다. 특히 밀양 사건 가해자 신상 공개에 여러 유튜브 채널이 뛰어들면서 경쟁을 하는 듯한 양상까지 띠고 있다.


최근 한 유튜브 채널이 밀양 사건의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의 신상을 공개했다. 이 유튜브 채널은 ‘밀양 세 번째 공개 가해자 ○○○ 호의호식하며 잘 살고 있었네?’라는 제목의 영상을 올렸다. 해당 영상에는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의 이름과 얼굴, 출신 학교, 직장 등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유튜브 통해 피의자 신상 공개
피해자 측 “동의한 적은 없다”

해당 영상은 업로드된 지 1일 만에 조회수 57만회(6일 기준)를 달성했다. 

또 다른 유튜브 채널이 업로드한 ‘밀양 사건 옹호자 ○○○. 아이 2명 낳고 평범하게 사는 삶’ ‘큰일 났네 박○범’ ‘밀양 성폭행 사건 주동자 박○범. 넌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나봐?’ 등의 영상은 200만~300만(6일 기준)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해당 유튜브 채널은 구독자 수 역시 50만명(6일 기준)에 육박하는 등 폭발적인 관심을 받는 중이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가해자로 지목된 인물의 신상이 퍼지자 반응은 즉각적으로 나타났다. 해당 인물이 다니는 것으로 추정되는 대기업은 그를 임시 발령 조치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언론 기사 등에 따르면 “(해당 인물이)재직 중인 것이 맞다”면서 “현재 업무를 지속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판단해 임시 발령 조치했다”고 밝혔다.

공개된 또 다른 가해자가 근무했던 곳으로 알려진 경북 청도의 한 식당은 철거하면서 사과문을 내걸었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 올라온 사진 등에는 “먼저 잘못된 직원(○○○군은 저희 조카가 맞습니다) 채용으로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켜 정말 죄송하고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무허가 건물서 영업한 부분에 대해서도 죄송하게 생각하며 법적인 조치에 따르겠다”고 적었다. 

또 다른 가해자로 지목된 남성도 직장서 해고 조치됐다. 해당 남성은 사건 후 개명하고 수입차 딜러사의 전시장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는 SNS를 통해 해당 인물을 해고했다는 입장문을 냈다. 

유튜버들이 가해자로 지목한 인물이 모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받으면서 사적 제재 논란이 커지고 있다. 실제 가해자의 신상을 폭로하는 과정서 잘못된 지목으로 피해를 보는 사례가 나타나면서 지나치게 과열된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는 중이다. 

밀양 사건 피해자 지원단체 중 한 곳인 한국성폭력상담소는 지난 5일 보도자료를 내고 “해당 채널서 피해자 가족 측과 직접 메일로 대화를 나눴고 가해자를 공개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고 밝혔다. 앞서 한 유튜버는 가해자 44명의 신상 공개에 앞서 피해자 가족의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 측은 ○○○○○(유튜브 채널)가 첫 영상을 게시하기까지 해당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며 “사전 동의를 질문받은 바도 없다”고 반박했다. 이어 “피해자와 가족 모두 향후 가해자 44명 모두의 신상을 공개하는 방향에 동의한 바 없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어 “피해자 측은 피해자의 일상회복, 의사존중과 거리가 먼 일방적인 영상 업로드와 조회수 경주에 당황스러움과 우려를 표한다”며 “○○○○○(유튜브 채널)는 피해자 가족이 동의했단 공지를 삭제하고 오인되는 상황을 즉시 바로잡길 바란다”고 요구했다. 


폭로는 가깝다

일각에서는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유튜브가 ‘심판자’로 등장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실제 밀양 사건 외에도 유튜브 영상을 통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확산되고 사적 제재로 이어진 사례가 적지 않았다. 결국 법적 처분이 국민의 감정과 괴리가 있기 때문에 사적 제재가 횡행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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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