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막무가내’ 진도군 장애인센터 폐쇄 내막

골칫거리 차라리 없애버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풀 한 포기 나지 않은 척박한 길을 홀로 걸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함께 걷는 동료가 생겼다. 응원의 목소리도 이어졌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자꾸만 발목을 잡는 손이 있었다. 고지가 눈앞인데 가는 걸음마다 제동이 걸렸다. 그렇게 3년이 흘렀다.

법원부터 국가인권위원회, 언론중재위원회까지 안 가본 데가 없었다. 진도군청은 문턱이 닳도록 드나들었다.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일은 숨 쉬듯 자연스러워졌다. 평범한 직장인이 3년 만에 ‘5인 미만 사업장’ 해고 노동자의 선봉장이 됐다. 역으로 말하면 3년간 사건이 해결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상황은
달라졌지만…

지난 6일 오후 서울 강서구 목동의 한 카페에서 박주연씨를 만났다. 박씨는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일로 서울에 온 참이었다. 노조 사무실에서 4시간 가까이 이야기를 하고 왔다는 그는 자리에 앉자마자 그간의 내용을 말하기 시작했다. “너무 많은 일이 일어나서 대체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면서도 기자의 질문에 막힘없이 답변을 내놨다. 

<일요시사>가 박씨의 사연을 최초 보도한 시기는 2021년 7월이다(<일요시사> 1333호 ‘<단독> 갑론을박 ‘말 많은’ 장애인이동센터 무슨 일이…’https://www.ilyosisa.co.kr/news/article.html?no=230703). 그로부터 2년6개월이 지나는 동안 상황은 많이 바뀌었다. 전라남도 인권센터의 ‘직장 내 괴롭힘’ 피해 인정 결과를 근거로 인권기관, 법원 등은 박씨의 손을 들어줬다.

‘5인 미만 사업장’이라는 난관을 뚫고 얻어낸 쾌거였다. 


박씨는 2015년 12월 전남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이하 센터)에 입사했다. 센터는 사단법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라남도지부 산하의 진도군지회에서 운영한다. 이동에 상당한 제약이 있는 장애인에게 차량 운행을 통한 이동 서비스를 제공하는 일을 주 사업으로 하고 있다. 전라남도와 진도군으로부터 보조금을 받아 운영된다.

센터는 센터장 1인, 운전원 2인, 사무원 1인 등 총 4인으로 구성됐다. 박씨는 운전원→운전원 겸 사무원→운전원 등으로 센터 상황에 따라 보직이 바뀌었다. 박씨가 센터 내부 상황과 관련해 본격적으로 문제를 제기한 것은 2020년 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당시 센터장이었던 이모씨가 자신에게 폭언, 욕설을 하고 차별대우를 한다며 전라남도 인권센터를 찾았다.

같은 해 12월에는 센터 사무원인 곽모씨로부터 부당대우와 차별대우 등을 받았다고 주장하면서 전라남도 인권센터에 조사를 신청했다. 인권센터는 2020년 5월과 2021년 3월 박씨의 상황이 ‘직장 내 괴롭힘’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면서 ▲진도군수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전남도지부 ▲전라남도 도지사 등에 관리·감독 강화,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주문했다. 

하지만 돌아온 건 정직 3개월의 징계와 해고였다. 이 과정에서 박씨는 센터의 보조금을 유용했다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투쟁의 시발점이 된 731만5160원은 오랜 시간 박씨를 괴롭혔다. 박씨는 “(투쟁을)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여기서 멈추면 ‘보조금을 횡령했다’ ‘쌈짓돈으로 썼다’는 불명예를 벗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소송 패소하자 센터 문 닫아
군, 보조금 소급 적용 왜?


‘번갯불에 콩 구워 먹는 속도’로 센터에서 잘린 박씨는 대외로 전선을 넓혀가기 시작했다.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손해배상청구‧해고무효 소송도 진행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센터 상황에 대해 관련 기관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의 의견을 표명했다.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손해배상청구에 대해 원고 일부 승소, 해고에 대해서는 무효 판결을 내렸다. 

센터와 갈등을 빚는 과정에서 발병한 ‘적응장애’에 관해 광주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는 업무상 질병이라고 판정했다. 몸과 마음이 만신창이가 됐지만 인권기관부터 사법기관에 이르기까지 박씨가 직장 내 괴롭힘의 피해자며 이를 구제하기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심지어 박씨의 상황을 잘못 보도한 언론은 언론중재위원회에 제소됐다. 

박씨의 상황에 공감하고 함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 생겼다. 또 다른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와 연대해 부당함을 소리 높여 알렸다. 박씨가 원한 건 명예회복과 복직이었다. 자신에게 씌워진 ‘보조금 유용’이라는 가시관을 벗고 다시 직장에 들어가 정년까지 일하는 것.

손에 잡힐 듯했던 목표는 센터와 운영 주체, 관리·감독기관의 행보로 아득히 멀어지고 있다. 

더 놀랄 일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박씨의 생각을 부수듯 센터는 폐쇄를 신청했다. 손해배상과 해고무효 소송 패소 이후 항소하면서 말 그대로 센터를 닫아 버린 것이다. 센터의 운영 주체인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진도군지회도 해산 절차를 밟다가 간신히 제동이 걸렸다. 박씨는 센터와 진도군지회의 행보에 황당함을 드러냈다.

박씨는 “이렇게까지 했는데 변화는 없다. 오히려 직장이 없어져서 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며 “사건이 이렇게 된 데는 진도군의 책임이 크다”고 주장했다. 진도군이 적정한 순간에 적절한 대책을 마련했거나 조율을 진행했다면 사안이 이 지경까지 엉망으로 꼬이진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실제 진도군은 박씨 관련 사건에 관해 ‘두어 발자국’ 정도 떨어져 관망하는 자세를 취해왔다. 센터의 운영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진도군지회가 하고 있고 진도군은 보조금만 지급할 뿐 관여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결과는
그대로

센터 폐쇄와 관련해서도 서류만 갖춰지면 진행할 수밖에 없다는 입장을 언론에 밝혔다. 센터 폐쇄를 막을 권한이 없다는 것이다.  

박씨는 멀찍이 떨어져 사건을 방조하고 있는 진도군의 책임 회피성 태도가 사건을 악화시켰다고 맹렬히 비판했다. 그러면서 “진도군은 상황에 따라 선택적으로 관여한다. 하지만 대부분은 피해자가 아니라 가해자의 편에 선다. 피해자를 적극적으로 보호하지 않는 행위 그 자체만으로 가해자를 돕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분명 진도군은 센터의 운영 주체가 아니다. 보건복지부의 ‘2022년 장애인 복지시설 사업안내’ 자료에 따르면 센터의 운영 주체는 ‘사단법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및 시·도지부, 시·군·구지회다. 단, 이 단체가 사업을 수행할 수 없는 불가피한 사유가 있는 경우에는 자치단체장이 따로 정할 수 있다고 돼있다.

하지만 진도군이 센터 운영의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는 데 부정할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센터가 운영되는 데 있어 진도군의 보조금이 큰 부분을 담당한다는 점이 언급된다. 센터는 매년 전라남도와 진도군으로부터 1억원 이상의 보조금을 받는다.

2022년 진도군 예산 내역에 따르면 센터에 배정된 예산은 1억4260만원으로 전라남도에서 2860만원, 진도군에서 1억1400만원을 잡아놨다. 

더 눈길을 끄는 대목은 사법기관, 인권기관 등에서 박씨의 상황에 관한 대책 마련의 주체로 진도군과 진도군수를 꼽았다는 사실이다. 2020년과 2021년 두 차례에 걸쳐 박씨의 직장 내 괴롭힘을 인정했던 전라남도 인권센터는 진도군수에게 ‘센터에 대한 정기적인 지도·점검 강화’를 권고했다. 

국가인권위원회는 2021년 ‘사회복지시설 내 직원에 대한 괴롭힘 및 직장 내 괴롭힘 피해자에 대한 부당한 해고처분 등으로 볼 여지가 큰 이 사건 센터의 현재 상황에 대해 지도‧감독의 방법과 관련 적용 법조 등을 면밀히 검토해 적극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진도군수에게 표명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박씨의 손해배상청구, 해고 무효확인 소송 판결문 곳곳에도 센터의 관리‧감독 역할을 진도군이 맡고 있다는 언급이 나온다.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박씨의 해고 무효확인 소송 1심 판결문에서 ‘이 사건 운영규정은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 진도군지회가 감독관청인 진도군수의 승인을 받아 센터 운영에 적용해왔다’고 적었다. 


안 준다더니
갑자기 줬다

해당 운영규정에 따르면 센터 직원의 포상과 징계를 정하는 운영위원회 위원 자격 중 하나로 ‘진도군 장애인 복지업무 담당 공무원’이 명시돼있다. 박씨는 “운영위원회와 인사위원회에 진도군 관계자가 참여한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금전적으로든 운영적으로든 진도군의 영향력이 센터에 분명히 미치고 있다는 설명이다. 

광주지법 해남지원은 박씨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에서 진도군의 ‘방조’ 책임을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군수는 사회복지사업법 제51조1항에 따라 “사회복지사업을 운영하는 자의 소관업무에 관해 지도‧감독을 하며 필요한 경우 그 업무에 관해 보고 또는 관계 서류의 제출을 명하거나 소속 공무원으로 하여금 사무소 또는 시설에 출입해 검사 또는 질문을 하게 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진도군이 센터 사건과 관련해 공문 발송 등의 행위를 했기 때문에 지도·감독 의무를 다하지 않았다고 보기 어렵다는 판결을 내린 것. 박씨의 사건을 담당하고 있는 변호사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법이 최근에 시행되면서 관련 데이터가 많이 쌓이지 않았고 재판부 입장에서 지자체의 책임을 인정하는 판단을 내리기엔 부담스러웠을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공문 발송 등의 행위만 보고 진도군이 지도·감독 의무를 다했다고 보는 것은 재판부에서 좁게 해석한 게 아닌가 싶다”며 “공문을 보내는 행위를 넘어서 진도군의 조치가 어떤 결과를 야기했는지 실제 센터 사건 해결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는 게 맞는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박씨는 손해배상청구소송 1심 판결에 아쉬움을 표하면서도 “1심 재판에는 진도군의 보조금 소급 적용 등 석연치 않은 일에 대한 부분이 빠졌다”며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다른 판단을 해줄 거라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박씨는 ‘진도군이 2022년 7월분부터 이 사건 센터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판결문의 마지막 부분을 언급했다. 

지난해 1월 전라남도는 ‘직장 내 괴롭힘 관련 국가인권위원회 결정에 따른 문제해결 촉구’ 공문을 센터에 보냈다. 전라남도는 ‘도민인권보호관 시정권고에 대한센터의 불수용과 지자체의 지도·감독 방관을 이유로 한 국가인권위원회 진정’을 근거로 문제 해결 시까지 도비 보조금을 미교부 할 예정이라고 전했다. 

지난해 2월 진도군은 ‘진도군 장애인생활이동지원센터 보조금 교부조건 및 소급적용 불가 안내’ 공문을 센터에 보냈다.

공문에 따르면 “2022년 센터 운영비 등 1개월분 보조금 교부 결정시 보건복지부, 법제처 관련 법 해석 및 검토 후 보조금 추가 교부 결정 예정으로 교부 조건을 명시했다”며 “결정 전 추진한 사업에 대해 사업비 집행이 불가함을 안내한 바 있다”고 했다. 

군수, “다 덮으라” 회유 의혹
당선인 시절 “일주일 주겠다”

의문이 나오는 대목은 이후 2~6월분 보조금이 소급 적용돼 센터에 지원됐다는 사실이다. 진도군 장애인복지팀 관계자는 <일요시사>의 질의에 “지난해 1월 이후 전라남도에서 센터에 대한 도비 보조금을 주지 않기로 하면서 진도군은 자체 예산만으로 운영비 지원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해 변호사 자문을 구한 결과, 해석이 각각 달라 법제처에 법률 해석을 요청했다”고 답했다. 

그러면서 “상급기관의 법령 해석에 시간이 오래 걸려 특별한 행정처분 없이 장애인을 위한 공익적 기능을 가진 시설을 운영하고도 보조금 미교부에 따른 피해를(갑질의 가해자일지라도 객관적 사실관계를 법적으로 다투고 있으므로) 센터의 종사자가 부담하는 부적정을 해소하기 위해 보조금을 지급했다”고 해명했다. 

진도군에 거주하는 장애인의 복지를 위해 보조금을 소급 적용해 센터를 지원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진도군은 박씨와의 손해배상청구소송에서 ‘2022년 7월부터 센터에 대한 보조금 지급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주장을 내세워 방조 책임에서 벗어났다.

심지어 센터는 현재 운영되지 않고 있다. 

해명대로면 진도군은 센터에 대한 보조금 지원도 계속해야 하고 폐쇄를 진행하려는 진도군지회의 시도를 막아야 한다. 진도군 관계자는 센터 운영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장애인 이동권과 관련해 어떤 대책을 펴고 있느냐는 <일요시사>의 질의에 “장애인 콜택시, 바우처 택시 서비스를 시행 중”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진도군의 보조금 소급 적용은 가해자를 위한 조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피해자는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는데 가해자를 위해 ‘소급 적용’이라는 무리수를 둔 것”이라며 “정말 장애인을 위해 지원한 것이라면 센터 폐쇄에 대해서는 왜 ‘서류가 구비되면 수리할 수밖에 없다’는 말을 하나.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보조금 소급 적용은 김희수 진도군수의 의중이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2010년과 2018년 진도군수에 출마했다가 낙선한 뒤 3수 끝에 당선된 김 군수는 진도군청에서 군내면장, 지산면장, 조도면장, 농산유통과장, 환경녹지과장 등을 지낸 공무원 출신 정치인으로 당적이 없는 무소속이다.

최근 김 군수가 박씨를 상대로 ‘다 덮으라’는 말을 하며 회유하려 했다는 의혹이 뒤늦게 제기됐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진도군수로 당선된 김 군수가 당선인 시절인 6월, 박씨와의 면담 자리에서 ‘복직시켜줄 테니 다 덮으라’는 뉘앙스의 말을 했다는 것.

이날 대화는 박씨와 박씨의 친척이 함께 자리한 선거사무실에서 이뤄졌다. 

박씨는 “당시 군수님(당시 당선인 신분)이 ‘내 임기 중에 시끄러운 게 싫다. 내 임기 때 벌어진 일도 아니고 전 군수 때 일로 내가 피해 보는 것도 싫다. 책임지고 복직시켜줄 테니까 소송이고 뭐고 다 덮고 조용히 살아라”며 “일주일 시간을 줄 테니 다 덮고 조용히 갈지 아니면 10년, 20년 노조랑 싸우고 있을지 마음대로 해라. 나는 노조 그런 거 하나도 안 무섭다’고 했다”고 주장했다.

박씨는 당시 김 군수의 말에 모멸감을 느꼈다고 덧붙였다. 

박씨는 그 자리에서도, 일주일의 시간이 흐른 뒤에도 ‘덮을 수 없다, 끝까지 가겠다’는 입장을 김 군수에게 표했다. 당시 박씨는 “지난번 저와 면담하신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고자 한다”며 “노동부 검찰 조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해고무효 소송이 마무리될 때까지 센터는 현재 상태를 유지해주길 바란다”고 전했다. 그 이후로는 깜깜 무소식이라는 것이다.

피해자만
피눈물

진도군 홍보팀 관계자는 “군수님께 해당 내용에 대해 여쭤봤는데 입장 표명을 하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이어 “설치·운영 주체인 진도군지회의 해산 결정이 있었지만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서 해산 신청 관련 진상조사 중에 있다”며 “한국시각장애인연합회에 빠른 시일 내 처리 협조 요청을 하는 등 추이를 지켜보며 정상화되도록 노력하고 있다”는 입장을 전해왔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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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