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그래도 풀려난 김경수 전 경남지사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1.02 14:02:36
  • 호수 14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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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짓고 개선장군처럼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김경수 전 경남지사가 특별사면됐다. ‘복권 없는 사면’인 만큼 오는 2027년까지 모든 선거에 나올 수 없다. 당초 그는 옥중에서 사면을 원하지 않는다고 밝혔던 바 있다. 출소 후 가장 먼저 한 말은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을 받은 것”이었다. 

지난달 27일, 2023년 신년을 맞아 정부는 이튿날(28일 자)로 특별사면을 단행했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2023년 특별사면’ 브리핑을 열고 “화해와 포용, 배려를 통한 폭넓은 국민 통합 관점에서 28일 자로 정치인·공직자·특별 배려 수형자 등 1373명을 특별사면한다”고 밝혔다.

5개월 남기고
들러리 세워

사면 대상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면 및 복권’으로, 김경수 전 경남지사는 ‘복권 없는 사면’으로 포함됐다. 이 외에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 조윤선 전 정무수석 등도 포함됐다. 또 ‘국정원 특활비’ 사건의 남재준·이병기·이병호 전 국가정보원장도 사면 대상에 이름을 올렸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남은 형기가 감형됐다. 이 밖에 여권에선 최경환 전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김성태·이완영 전 국민의힘 의원, 야권에선 전병헌 전 대통령 정무수석, 신계륜 전 의원, 강운태 전 광주시장 등 정계 출신 인사 다수가 사면 대상에 포함됐다.

이날 김 전 지사는 ‘복권 없는 사면’을 두고 “이번 특별사면은 저로서는 받고 싶지 않은 선물을 억지로 받게 된 셈”이라고 표현했다. 


이날 0시쯤 경남 창원교도소에서 앞에는 김 전 지사의 지지자들이 모여 “김경수는 무죄다”를 외쳤다. 김 전 지사는 출소 직후 “본의 아니게 추운 겨울에 나오게 됐다. 개인적으로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사면 불원 의사를 밝히며 5월까지 형기를 채우겠다는 뜻을 밝혔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은 점에 유감을 표했다.

그는 “윤석열 대통령이 ‘국민 통합을 위해서’라고 말씀하셨는데 통합은 이런 식으로 일방통행이나 우격다짐으로 되지 않는다는 점을 국민들께서 더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민 통합과 관련해선 저로서도 국민께 대단히 송구하다는 말씀을 드리지 않을 수 없다. 정치의 중요한 역할이 우리 사회 갈등과 대립을 조정하고 완화시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사회적 합의를 만드는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제가 여기까지 오는 동안 제 사건의 진실 여부를 떠나서 지난 몇 년간 저로 인해 우리 사회 갈등과 대립의 골이 더 깊어진 건 아닌지 돌아보게 됐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치인의 한 사람으로서 제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한 점에 대해서 국민 여러분께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제가 그동안 가졌던 성찰의 시간이 우리 사회가 대화와 타협, 사회적 합의를 통해 더 따뜻한 사회를 만드는 거름이 될 수 있도록 더 낮은 자세로 성찰하고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당초 형기 만료일은 올해 5월이었다. 이번 사면으로 잔여 형기 5개월이 면제됐다. 복권이 안 된 김 전 지사는 2027년 12월28일까지 5년 동안 피선거권이 제한된다. 이에 따라 내년 4월 국회의원 선거, 2026년 6월 지방선거, 2027년 3월 대통령선거 등 선거에 나올 수 없다.

MB, 사면에 복권까지
김은 복권 없는 사면

김 전 지사는 교도소 앞에서 출소 소회 발표 후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 민홍철·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허성무 전 창원시장을 비롯한 지지자 100여명의 응원을 받고 떠났다. 이날 오전 10시쯤 경남 김해 봉하마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에 참배하고, 경남 고성에 있는 부친 산소를 찾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김 전 지사는 “제 사건으로 사회 갈등과 대립의 골이 깊어진 것 아닌지”라며 우려하기도 했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은 바로 ‘드루킹 여론조작 사건’을 말한다.

이 사건은 2014년부터 2018년까지 경제적공진화모임(경공모) 대표인 김동원(필명 드루킹)씨와 당시 김 전 지사, 그리고 경공모 회원이었던 민주당 권리당원들이 공모해 인터넷에서 각종 여론조작을 한 사건이다. 드루킹은 친노(친 노무현)·친문(친 문재인) 성향이었던 유명 블로그다.

문제 제기가 된 것은 2018년 1월이었다. 한 네티즌이 평창 동계올림픽 남북 단일팀 관련 기사에 달린 정부 비판 댓글의 공감수가 비정상적으로 올라가는 모습을 촬영해 유튜브에 올리면서 댓글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민주당은 매크로(자동 입력 반복) 프로그램을 통한 조작이 의심된다며 수사를 의뢰했고, 경찰이 댓글을 조작한 일당 3명을 붙잡았다. 이들 중 1명이 앞서 말한 드루킹이고, 나머지 2명은 문재인 대통령의 ‘복심’으로 불리던 김 전 지사와 민주당 권리당원들이었다. 김 전 지사는 드루킹과 연락을 주고받은 정황이 포착됐다.

특히 두 사람은 2016년 말부터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유독 대선 기간에 SNS 메신저인 시그널을 사용해 의혹이 커졌다. 김 전 지사와 드루킹이 시그널을 통해 주고받은 55건의 대화에는 두 사람의 관계를 보여주는 단서가 일부 포함됐다.

김 전 지사가 드루킹에게 보낸 기사 URL 10건 중 8건은 대선 실시 전 기사로 대부분 문재인 전 대통령에게 유리한 내용이었다. 김 전 지사는 기사를 보내며 “홍보해주세요”라고 요청하거나 “네이버 댓글은 원래 반응이 이런가요”라고 적었다. 댓글 작업을 요청하는 듯한 뉘앙스다.

또 “답답해서 내가 문재인 홍보한다”는 제목의 3분20초짜리 유튜브 동영상을 드루킹에게 보내기도 했다. 동영상은 곧바로 드루킹의 블로그 ‘경인선(경제도 사람이 먼저다)’에 올라갔다. 드루킹의 최측근인 박모씨는 대형 온라인 커뮤니티인 ‘MLB파크’에 해당 동영상을 올리며 홍보했다. 

이 사건에 대해 민주당은 적발된 선거 브로커의 개인 일탈 행위라며 규정과 관련 의혹에 대한 선긋기를 했다. 주범인 드루킹은 이 사건의 최종 책임자로 김 전 지사를 지목했다.

드루킹
잊었나

2018년 5월18일 <조선일보>의 ‘[단독] 드루킹 옥중편지 전문’에서 드루킹의 옥중편지가 공개됐다. 옥중편지에서 드루킹은 “2016년 9월 김경수 의원이 파주의 내 사무실에 찾아왔을 때 상대측의 이 댓글 기계에 대해 이야기했다…김경수 의원에게 ‘일명 킹크랩’을 브리핑하고 프로토타입으로 작동되는 모바일 형태의 매크로를 제 사무실에서 직접 보여주게 됐다”며 “김경수 의원은 우리의 첫 만남부터가 극히 위험요소를 가지고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인지 친밀한 관계임에도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애썼다…돌이켜보면 김경수 의원은 처음부터 저나 경공모를 철저히 이용하려는 생각이었고 문제가 생기면 발을 빼려고 몹시 조심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사건 전말을 설명했다.

대부분 김 전 지사가 댓글 조작 사건에 연루된 것을 설명하는 내용이다.

자유한국당(국민의힘 전신)과 바른미래당 등은 이 사건을 계기로 문 대통령의 대통령 당선 무효도 가능한 여론 조작 게이트로 규정했다. 이들은 정부여당의 여론조작 연루 의혹에 대한 특검을 요구하며 대여 공세를 가했다.


당시 바른민주당은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은 게이트로 번질 수 있는 심각한 범죄”라고 규정했고, 자유한국당 단장인 김영우 의원은 “민주당 김경수 의원 외 다른 여당 정치인과 ‘드루킹’이 연계된 정황이 있다. 민주당이 여론조작의 중심에 있다는 근거”라고 지목했다.

결국 2018년 5월21일 국회 본회의에 특검법이 통과돼 특검 수사가 착수됐다. 특검법 통과 직후 네이버 뉴스 댓글 수가 대폭 감소했다. 2018년 6월11일 네이버 뉴스 댓글 통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워드미터’에 따르면 특검법안 국회 통과 전후인 6월 1~8일 네이버 뉴스 댓글 수는 직전 5월 같은 기간에 비해 무려 36.5% 감소한 142만1746건으로 기록됐다.

봉하마을
달려가다

같은 기간 활동 ID 수는 33.7% 줄어든 63만407개, 공감(비공감 포함) 클릭 수는 67.7% 급감한 978만7109회를 기록했다. 문제가 돼온 정치 뉴스만 해도 댓글은 38.6% 줄어든 66만7677건, ID 수는 37.1% 줄어든 32만6900개, 공감 클릭 수는 84.4% 감소한 367만3126회를 기록했다.

특검은 8월27일 수사 결과 보고를 통해 드루킹이 댓글 조작 1억회 중 8840만회를 드루킹이 김 전 지사와 공모한 것으로 결론내렸다. 

특검팀은 60일간의 수사 결과를 발표하며 “김경수 의원은 드루킹이 운영한 ‘경공모’와 함께 2016년 11월부터 매크로 프로그램 ‘킹크랩’을 이용해 선거운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특검팀은 이들이 19대 대선서 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당선을 목표로 삼았다고 덧붙였다.


1심을 맡은 서울중앙지방법원은 2019년 1월30일 드루킹이 댓글 조작, 뇌물공여 등의 혐의에 대해 징역 3년6개월,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6개월 집행유예 1년을 선고했다. 김 전 지사에게는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에 가담했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1심에서 징역 2년의 실형을 선고했다.

혐의 별로는 댓글 조작을 통한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 징역 2년의 실형,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했다.

2심에서도 업무방해 혐의에 대해서는 그대로 징역 2년이 선고됐고,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해선 무죄가 선고됐다. 2021년 7월21일 대법원이 원심 확정 판결로 징역 2년형이 최종 선고되면서 경남도지사직도 상실됐다.

김 전 지사는 “안타깝지만 법정을 통한 진실 찾기는 더 이상 진행할 방법이 없어졌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감내할 몫은 감당하겠다”고 심경을 토로했다.

김 전 지사는 옥중에서 편지로 새해 인사를 하기도 했다. 지난해 1월 김 전 지사의 부인 김정순씨는 김 전 지사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 전 지사의 옥중편지를 공개했다. 편지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지난해는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직도 크고 작은 어려움 속에 우리 모두 새해 새 아침을 맞고 있다. 우리는 늘 추운 겨울의 한가운데서 새해를 맞게 된다. 맑고 차가운 정신으로 새해 새 아침을 맞으라는 뜻이라고 한다. 올해는 그렇게 ‘깨어있는 시민들의 힘’이 소중한 한 해가 되리라 본다. 2022년은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정짓는 대단히 중요한 해다. 그 미래를 결정하는 힘은 ‘시민’에게 있다. 선거의 승패를 뛰어넘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한 단계 진전시키는 ‘깨어있는 시민의 힘’이 꼭 필요한 해다.”

“받고 싶지 않은 선물 받아” 어부지리 출소
2027년 대선 출마 불가…정치생명 5년 스톱

이후 옥중 서신으로 가석방을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혔다. 배우자 김씨는 지난달 13일 김 전 지사 페이스북에  “남편은 지난달 7일 교도소 측에 가석방을 원하지 않는다는 ‘가석방 불원서’를 서면으로 제출했다”고 글을 올렸다.

김 전 지사가 공개한 가석방 불원서에는 “가석방은 교정시설에서 ‘뉘우치는 빛이 뚜렷한’ 등의 요건을 갖춘 수형자 중 대상자를 선정해 법무부에 심사를 신청하는 것이라고 교정본부에서 펴낸 ‘수형생활 안내서’에 나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금까지 무죄를 주장해온 나로서는 받아들일 수 없는 요건임을 창원교도소 측에 이미 여러 차례 밝혔다. 그럼에도 이런 제 뜻과 상관없이 가석방 심사 신청이 진행됨으로써 필요치 않는 오해를 낳고 있다. 다시 한번 분명히 밝힌다. 나는 가석방을 원하지 않는다”고 거듭 강조했다.

배우자 김씨도 “가석방 심사는 본인의 의사와 상관없이 이뤄지는 절차인데도 ‘신청-부적격, 불허’라는 결과만 언론을 통해 보도되면서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상황이 되풀이됐다. 남편의 입장은 확고하다. 가석방은 제도 취지상 받아들이기 어렵기에 그동안 이와 관련한 일체의 조사에 응하지 않았으며 앞으로도 응할 생각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현재 이야깃거리가 되는 특별사면에 대해서도 ‘이명박 전 대통령 사면에 들러리가 되는 끼워 넣기·구색 맞추기 사면을 단호히 거부한다’는 뜻을 함께 전해왔다”고 덧붙였다.

결국 김 전 지사는 특별사면을 받았다. 이를 두고 민주당 전재수 의원은 윤 대통령이 김 전 지사에 대해 사면 없이 복권한 것을 두고 “김경수 개인에 대한 모욕을 넘어서 노무현 가문에 대한 모욕”이라고 비판했다.

주목되는 
향후 행보

전 의원은 지난달 28일 SBS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사면을) 원하지 않는다고 공개적으로 입장 표명까지 한 김 전 지사를 굳이 복권 없는 사면을 하는 것은 사면권 남용이다. 사면의 역사를 보면 앞으로 정치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 대해 달랑 5개월 남은 형량을 사면해주고 복권해주지 않는 사례가 있었냐”며 “청와대 문고리 3인방 등 피선거권 제한이 필요 없는 사람도 복권해주면 뻔히 정치를 해야 될 사람에 대해서는 사면만 해주는 게 어떻게 이해가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대통령 사면권은 존중돼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런 식이면 정말로 이게 법률적으로 이 부분은 제한을 해야 될 필요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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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