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 <최순실 게이트> ②또 다른 막후권력 추적

주술사? 대무당? 진짜 비선실세 따로 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박창민 기자 = 박근혜 대통령의 막후 권력은 최순실씨다. 그런데 최씨의 막후에 또 다른 권력이 있다는 소문이 파다하다. 배후 권력이 바로 최씨의 친언니 최순득씨와 조카 장시호씨가 지목되고 있다. 이번 사태 배후에 최씨의 언니와 조카가 있다는 것. 이외에도 최씨를 움직이는 게 무당이라는 풍문까지 돌고 있다.

“최순실씨의 조카, 즉 바로 위 언니인 최순득씨의 딸이 장유진씨. 저는 이 분이 가장 실세라고 본다. 순실씨의 대리인 역할을 지금 하고 있다. 검찰이 수사의지가 있다면 유진씨를 오늘 당장 긴급체포해야 한다고 본다. 최근에 이름을 장시호로 개명했는데, 순실씨와 가장 긴밀히 연락하는 사람이고 지금 증거인멸을 시도하고 있다.”

긴밀히 연락
증거인멸 시도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2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 인터뷰서 이같이 말했다. 최씨의 막후에서 모든 것을 계획했다고만 알려진 순득씨와 유진씨가 수면 위로 등장한 것.

먼저 최씨와 순득씨 유진씨의 관계도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 64세인 순득씨는 박 대통령에게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최태민의 다섯째 아내인 임모씨와 사이에 낳은 네 딸 중 둘째로, 셋째 딸인 순실씨의 동복 언니다.

아버지와 함께 새마을운동에 열성이던 순실씨와 달리 그동안 언론의 주목을 받지 않았던 인물이다. 공식적인 기록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다만 1977년 중앙정보부서 작성한 ‘최태민 조사보고서’에 그 실마리가 나온다.


순득씨는 당시 최태민이 연루된 횡령 비리 사건의 공범으로 지목됐다. 비리 내용은 이렇다. ‘봉사단 장부에 3000만원 지출 기장 없이 경로병원 장부에 전액 입금된 것처럼 허위기장한 후 1977년 경로병원 경리과장인 차녀 최순득과 공모해 4회에 걸쳐 병원자금 424만원을 인출.’

여기서 두 가지 의혹이 제기된다.

첫째, 최태민이 법인과 재단의 돈을 마음대로 빼내 쌈짓돈처럼 사용했다는 것. 둘째, 순실·순득 자매가 아버지의 손발이 되어 함께 돈을 챙겼다는 것. 최태민의 횡령 건수만 14건(2억 2135만원)으로 조사됐는데, 그 돈들이 다 이들 자매에게 흘러갔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그렇다면 순득씨와 현 정권은 어떤 관계가 있을까. 언론에 보도된 순득씨 지인들과 같은 아파트에 살았던 주민들의 말을 종합하면, 그가 박근혜 대통령과 상당한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알 수 있다.

순득씨는 1985년부터 남편 장모씨와 함께 박 대통령의 삼성동 사저와 불과 100m 떨어진 곳에 6층 짜리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이 건물은 현재 시세 350억원가량으로 최태민이 사망한 이후 순실씨에게 넘어간 역삼동 자택과 함께 또 다른 강남 부동산으로 추정되는 곳이다.

“최씨 뒤에 누가 있다” 소문들 파다
언니에 조카까지…최씨일가 그림자

박 대통령은 1990년 삼성동으로 이사하면서 순득씨와 이웃사촌이 됐다. 순득씨가 현재 살고 있는 고급빌라로 이사간 시점은 박 대통령이 1998년 4·2 재보궐선거에서 제 15대 국회의원(대구 달성군)으로 당선돼 정치에 입문한 직후다.


우선 순실씨의 가족 A씨의 증언에 따르면 “최순득이 아플 때 박 대통령이 꽃을 보낸 적이 있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순득씨의 지인 B씨는 “(2006년 당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이 괴한에게 피습을 당했을 때) 순득씨가 ‘박 대표가 우리집에 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고 말했다.

순득씨와 거주하는 빌라 주민들에 따르면 “2002년 대선 즈음 박 대통령이 순득씨를 수시로 찾아와 이회창씨의 대선 자금 문제를 논의한다는 소문이 돌았다”며 “주민들이 ‘정치에 관여할 거면 (빌라에서) 나가라’고 요구해 소동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순득씨가 진짜 비선 실세이며, 순실씨는 ‘현장 반장’이라는 말도 있다. 20여 년간 최씨 자매와 매주 모임을 가져왔다는 A씨는 “순득씨가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지시하면, 순실씨는 이에 따라 움직이는 ‘현장 반장’이었다”고 증언했다. 이 때문에 A씨는 “순실씨를 비선 실세라고 하는데, 순득씨가 숨어 있는 진짜 실세”라고 덧붙였다.

A씨 등은 최씨 자매의 단골인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의 목욕탕과 역삼동의 한 식당서 최씨 자매를 만나왔다고 했다. 그는 “어느 날 식사하는데 순득씨가 전화를 받더니 ‘모 방송국 국장을 갈아치워야 한다’ ‘PD는 바꿔야 한다’고 하자, 순실씨가 밖으로 나가 (어딘가로 통화를 한 뒤) 한참 뒤에 돌아오기도 했다”고 했다.
 

한때 박 대통령과 순득씨가 성심여고 8회 동기동창인 만큼 각별한 사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하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한 성심여고 관계자는 “지난 1970년에 졸업한 성심여고 8회 졸업생 명단에는 순득이나 순덕이라는 이름은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또 개명 가능성을 고려해 8회 졸업생 가운데 최씨 성을 가진 5명을 확인해봤지만 최순득씨로 보이는 사람은 없었다고 했다.

최순실도
꼭두각시?

순실씨는 자매 가운데 유독 순득씨와 가깝게 지낸 것으로 전해진다. 반면 자매 중 막내인 최순천씨와 순실씨의 사이는 안 좋은 것으로 알려졌다. 순천씨는 가구·외식사업을 하는 에스플러스인터내셔널 대표를 맡고 있다.

순천씨의 남편 서모씨는 국내 유명 아동복업체를 운영하고 있다. 순천씨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순실씨와는) 거의 연락을 하지 않고 있다”고 했다. 순득씨가 순실씨의 막후에서 박 대통령을 조정하고 있다는 말도 이런 소문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순실씨의 조카이자 순덕씨의 딸인 유진씨도 순실씨의 막후 실세로 알려졌다. 유진씨는 의심 많은 순실씨가 가장 믿는 사람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순실씨를 잘 알고 있는 한 인사에 따르면 “(둘이)쿵짝이 잘 맞는다며 최순실이 시키면 장유진이 실행하는 식”이라고 말했다. 특히 박 대통령은 2006년 명동성당서 열린 유진씨의 결혼식에 경호원들을 대동해 참석했다고도 한다.

유진씨는 고교때 승마선수로 활동했고 특기생으로 연세대에 입학해 졸업했다. 그는 연세대를 다닐 때 결석을 자주 했지만 엄마 권세를 업고 졸업장을 받았다는 얘기가 강남에 파다했었다고 귀띔했다.

또 유진씨는 최씨 집안에서 브레인을 맡고 있을 만큼 똑똑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제로 아시안게임서 승마 단체전 금메달을 목에 건 순실씨의 딸 정유라씨를 승마에 입문시킨 것도 유진씨였다고 한다. 사실이라면 유라씨의 인생설계까지도 유진씨가 한 셈이다.


또 유라씨의 롤모델이란 말이 나돌기도 하는데, 중학교 시절 성악을 전공하던 유라씨에게 승마를 권유하는 등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는 증언도 있다.

유진씨는 1990년대 중반 촉망받는 승마 유망주였으나, 이를 그만둔 후 연예계 주변서 일한 것으로 전해진다. 연예인들과 두터운 인맥을 형성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28일, 한 매체는 유진씨는 수 년 전부터 톱가수 L, 배우 겸 탤런트 S, 톱가수 K 등의 연예인들과 아주 친한 사이였다고 보도했다. 이 매체는 유진씨가 가수 L이 운영하는 요식업체에 자주 나타났으며 이곳서 여러 명의 스타들과 친분을 쌓았다고 덧붙였다.

일각에선 유진씨가 연예계 쪽에서 일을 하며 CF 감독 차은택씨와 인연을 맺었고, 순실씨에게 차은택을 소개해 줬다는 추측도 일고 있다.

무속인이 국정운영 조정했다?
외신들도 관심사 일제히 보도

유진씨는 또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의 사무총장으로 재직하면서 현 정부에서 6억7000만원의 예산 지원을 이끌어내는 등 동계스포츠 예산 배정에 깊숙이 개입했다는 의혹도 받고 있다. 순실씨가 주도해 설립한 의혹을 받고 있는 ‘한국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K스포츠와 미르 재단보다 앞선 지난해 6월 설립됐다.


동계스포츠영재센터는 대한빙상경기연맹이나 대한스키협회와 업무가 사실상 중복되는 데다 사업 추진 실적도 거의 없어 7억원에 가까운 정부지원금을 받은 것도 이례적인 일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스포츠 영재 육성이 목적이 아니라는 증언이다. 이 때 당시 유진씨는 “어차피 누가 먹는 것이니까 자기네가 먹는다는 것”이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있다.
 

유진씨는 제주에 있는 자택과 회사 사무실을 서둘러 정리하는 등 '흔적 지우기’에 나서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그는 2012년 7월 서귀포시 대포동의 한 고급 빌라를 4억8000만원에 구입해 아들 등 가족들과 거주한 것으로 전해진다.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지기 직전 유진씨는 자신의 빌라를 매물로 내놨다.

유진씨는 순실씨를 통해 여러 개의 마케팅 회사를 설립해 운영해온 의혹도 받고 있다. 전국에 유령 회사를 두고 774억원을 모금한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개입했다는 것. 유진시는 제3의 인물로 부각되면서 향후 수사 불똥이 어디까지 튈지 관심이다. 현재 유진씨는 자취를 감췄으며, 연락도 두절된 상태다.

순실씨의 아버지 최태민은 사이비종교 교주라는 게 정설이다. 박 대통령이 어린 시절 최태민에게 많이 의지했다. 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박 대통령은 최태민에 이어 순실씨에게도 의지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선 순실씨는 무당에게 모든 일을 점치고 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하다못해 딸 유라씨의 성형 날짜 등도 무당에게 점괘를 보고 날짜를 정했다는 것. 실제로 순실씨 곁을 봐준다는 무속인이 두 명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일각에선 최씨가 무당이 아니냐는 말도 있을 정도다. 박 대통령이 순실씨에게 국정운영 조언을 받았다면 이 역시도 무당을 통해 결정됐다는 의혹을 배제할 수 없다.

무당 조언 받아
대통령에 귀띔?

심지어 외신들도 ‘박 대통령이 무당을 통해 국정을 운영해 왔다’는 논조로 비판하고 있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남한에선 무당이 대통령과 사회를 좌지우지한다. 박 대통령 정권 뒤에서 어둠의 충고자가 있었다"고 보도했다.

2년 전 비선실세 논란을 촉발시켰던 박관천 전 경정은 “최순실이 우리나라 권력 1순위, 전 남편 정윤회가 2순위, 박근혜 대통령은 3순위”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런 비선의 비선 의혹들이 다 사실일 경우 박 대통령은 권력서열 4위로까지 밀리게 된다.


<min1330@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떨고 있는 ‘최순실 라인’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지난 1일 “당·정·청 곳곳에 최순실씨에게 아부하고 협조하던 ‘최순실 라인’이 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이날 국회서 열린 더민주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국민조사위’ 회의에서 “주권자인 국민을 배신하고, 국가 조직을 망치고, 사리사욕을 채우던 사악한 무리를 끌어내려 죄가 있다면 합당한 벌을 받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근혜정부서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을 지냈다가 ‘정윤회 문건 유출’과 관련해 기소됐다 무죄를 받은 조 의원은 ‘최순실 게이트’ 국면에 말을 아껴왔다.

조 의원은 “청와대 최재경 민정수석이 검찰을 어떻게 지휘하는 지도 중요하지만 공직사회, 공기업, 금융계 심지어 대기업까지 뻗어 있는 암적 존재를 민정수석이 어떻게 처리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문고리) 3인방 중에 정호성 전 비서관뿐만 아니라 18년간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모신 안봉근·이재만 전 비서관에 대해서도 과연 압수수색을 할 것인지 끝까지 주시하고 지켜볼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러면서 “이 시기에도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이 이 상황을 장악하고 대응책을 마련한다는 이야기가 있다”고 주장했다.

조 의원은 “김 전 실장은 이 정부 출범 첫해인 2013년 8월 초순까지 최씨의 빌딩 7∼8층을 사무실로 얻어서 정권 초기에 프레임을 짰다는 언론보도도 있었다”면서 “이런 분이 막후에서 총괄 기획한다면 이 게이트 진상이 제대로 밝혀질 리가 없다”고 비난했다.

이와 함께 최씨가 몰래카메라로 청와대를 감시까지 했다는 주장이 제기돼 파장이 일고 있다.

최씨의 조카사돈이 몰카를 차고 청와대 직원들을 감시했다는 주장이 잇따랐기 때문. 이는 최씨를 위한 감시체계까지 있었냐는 의문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특히 몰카를 사용한 제2부속실은 안봉근 전 비서관과 윤전추 전 행정관 등 이른바 ‘최순실 라인’으로 불린 인물들이 모여 있던 곳이라 그 논란이 더욱 거세다. <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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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