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서영교 ‘조희대 회동’ 발언과 풍문 정치

  • 등록 2025.09.19 11: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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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의 발언 하나 하나는 단순한 언어의 차원을 넘어선다. 그것은 곧 정치적 메시지이자, 공적 책임을 동반하는 행위다. 근거가 불분명한 주장을 던져 놓고,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 않으면 슬그머니 물러서는 태도, 흔히 말하는 ‘아니면 말고’식의 정치 행태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올랐다.

최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조희대 대법원장·한덕수 전 국무총리와의 회동 발언이 다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서 의원은 지난 5월19일 “회동 관련 녹취 파일은 있지만 회동 여부는 정확하지 않다. 수사를 통해 밝혀야 한다”고 주장했다.

본인이 ‘정확하지 않다’고 이실직고하면서 정작 수사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서 의원 발언의 본질은 ‘회동 여부의 사실’보다는 ‘수사 촉구’라는 해석에 무게가 실린다.

정치인은 발언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고, 국민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그 발언에는 반드시 사실에 대한 검증과 책임이 뒤따라야 한다. 그러나 한국 정치권에는 오래전부터 ‘풍문 정치’가 뿌리내려오고 있다. 누군가의 입에서 흘러나온 소문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정치적 공격의 도구로 사용하는 관행이다.

서 의원의 발언 역시 이런 풍토와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조 대법원장이 특정 정치 세력과 부적절하게 회동했다는 식의 주장은, 사실 확인 전까지는 극히 조심스럽게 다뤄야 한다. 사법부 수장의 ‘독립성과 공정성’을 흔들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권에서는 검증보다 ‘먼저 던지고 보는’ 방식이 더 익숙하다. 정치적 효과를 노리고 의혹을 제기한 뒤, 아니면 “내가 들은 바로는 그렇다”라며 발을 뺀다.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나 피로감은 고스란히 국민이 떠안게 된다.

정치인의 발언은 일반인의 말과 다르다. 국회의원은 국민의 대표며, 동시에 법적 면책특권까지 보장받는다. 그만큼 공적 발언에는 무거운 책임이 따른다. 특히 사법부를 향한 정치인의 언어는 삼중, 사중의 신중함이 필요하다. 법관은 정치로부터 독립해 재판을 해야 하며, 사법부 수장의 명예는 곧 사법부 전체의 신뢰와 직결돼있다.

그러나 이번 사안에서 드러난 것은 정치인이 얼마나 손쉽게 ‘아니면 말고’식 태도로 발언을 휘두르는가 하는 점이다. 이는 사법부의 권위를 흔들고, 사회 전반의 신뢰 구조를 붕괴시키며 아래와 같은 심각한 폐해도 불가피하다.

첫째, 공적 기관의 신뢰 훼손이다. 대법원장이 정치권과 은밀히 만났다는 뉘앙스가 퍼지는 순간,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대법원은 이미 불신의 대상이 된다. 진실이 밝혀져도 ‘연기 없는 불은 없다’는 식의 의심이 남는다.

둘째, 국민의 피로감 증폭이다. 정치권이 근거 없는 주장과 반박으로 공방을 이어가면, 국민은 정치 전반에 대해 냉소적 태도를 강화하게 된다. ‘정치란 원래 그런 것’이라는 체념이 사회를 지배하면, 민주주의는 건강한 긴장과 참여를 잃고 만다.

셋째, 언론 환경의 왜곡이다. 정치인의 발언은 언론에 빠르게 확산된다. 확인되지 않은 정보가 기사화되고, 그 기사가 다시 여론을 형성한다. 이후 사실이 아니라는 정정 보도가 나오더라도 이미 퍼져버린 의혹은 회수되지 않는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의혹은 제기될 수 있으며 이는 권력을 감시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다. 그러나 의혹 제기에는 철저한 근거와 확인 절차가 필수다. 책임 있는 정치인은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이러이러한 근거에 따라 문제를 제기한다’고 말해야 한다.


최근 서 의원의 발언은 정치가 품격을 잃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보여준다. 단순한 실언으로 치부할 수 없는 이유다. 발언이 나온 순간부터 이미 사법부는 상처를 입었고, 국민은 혼란에 빠졌다. 정치가 스스로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사실 ‘아니면 말고’식 정치 언어는 어제오늘의 문제가 아니다. 과거에도 수많은 정치인들이 풍문이나 음모론에 기대어 상대를 공격했다. “내가 들은 바로는…”, “카더라 통신에 따르면…”이라는 식의 발언은 정치권의 일상어처럼 사용돼왔다.

문제는 이런 행태가 정치인의 단기적 이익에는 도움이 될지 몰라도, 국가 전체의 장기적 신뢰에는 치명적이라는 점이다.

앞서 같은 달 14일, 김용민 민주당 의원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사건 재판장인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에 대한 향응 수수 의혹을 제기했다.

당시 김 의원은 “어떤 판사가 1인당 100~2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나오는 룸살롱에서 여러 차례 술을 마셨고 단 한 번도 그 판사가 돈을 낸 적이 없다는 구체적인 제보를 받았다”며 “그 판사가 바로 내란 수괴 윤 전 대통령을 재판하고 있는 지 부장판사다. (접대 받은 그가 향후)어떤 조치를 취하겠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자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명예를 생명처럼 여기는 법관에 대해서 의혹 제기를 하려면 기본적으로 언제, 어디서, 누구로부터, 어떤 방식으로 로비가 이뤄졌고 그것에 대한 증거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며 “그런 것 없이 좌표찍기하는 것은 예전에 베네수엘라에서 법관을 압박하거나 겁박할 때 쓰던 수법”이라고 반박했다.

이른바 ‘지귀연 룸살롱 의혹’은 대선이라는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에 ‘갑자기 툭’ 불거진 것이다. ‘구체적 제보’라는 허울 아래 1차, 2차로 사진을 공개했으나 스모킹건(결정적 증거)이라고 해석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사진에 지 판사가 등장하긴 하지만 “사실이 아니며 접대받을 생각도 못했다” “삼겹살이나 소주를 사주는 사람도 없다”고 의혹을 일축했다.

해당 논란은 대법원 윤리감사관실에 회부됐지만 민주당에서 더 이상 증거를 제공하지 않았고 시간이 흐르면서 유야무야됐다.

21대 국회였던 지난 2022년 10월엔 국정감사 당시, 김의겸 민주당 의원(현 새만금개발청장)이 한동훈 법무부 장관에게 “한 장관이 지난 7월 윤석열 대통령, 대형 로펌 소속 변호사 30명과 청담동 고급 술집에서 술자리를 가졌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날 김 의원은 자리에 함께했다는 첼리스트의 음성 녹취도 함께 공개해 사실로 굳어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후 그해 11월23일, 해당 첼리스트가 경찰 조사에 출석해 “남자 친구를 속이려고 거짓말했다”고 진술하면서 허위 사실로 드러났다.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한 김 전 의원은 1심에서 원고 일부 패소했으며, 김 의원과 해당 사실을 보도한 매체 등에 8000만원의 손해배상이 선고됐다. 재판부는 “피고 측이 ‘청담동 술자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출한 소명자료만으로는 사실이 진실이라고 인정하기 부족하다”며 “청담동 술자리가 존재했다는 사실은 허위라고 봄이 타당하다”고 판시했다.

1심 패소 판결에 김 전 의원은 지난달 18일 항소했다.


정치가 신뢰를 잃게 되면 결국 국민은 정치 자체에 무관심해지거나 혹은 강경한 포퓰리즘에 몰리는 극단적 선택에 놓이게 된다. 어느 쪽이든 민주주의에는 독이다.

이제 정치권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풍문에 기대는 정치가 아니라, 검증에 기반한 정치를 실천해야 한다. 사실 확인 없는 의혹 제기는 자제하고, 확인된 사실에 기반해 책임 있는 주장을 펼쳐야 한다. 이를 위해 국회 차원에서 정치인의 발언 윤리에 대한 규범을 강화할 필요도 있다.

면책특권이 ‘무책임의 면허증’으로 사용되는 현실을 더 이상 방치해선 안 된다.

언론 역시 검증 없는 보도를 자제해야 한다. 정치인의 발언을 그대로 중계하기보다, 사실 여부를 따져 확인한 뒤 전달해야 한다. 정치와 언론이 함께 노력할 때만이 ‘아니면 말고’식 정치가 설 자리를 잃는다.

서 의원의 조희대 회동 발언은 단순한 개인의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한국 정치가 여전히 ‘책임 없는 언어’의 관행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정치가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서는 발언 하나하나에 무게를 실어야 한다. 아니면 말고가 아니라 “말한 대로 책임지겠다”는 태도가 필요하다.

정치는 언어로 이뤄진다. 언어가 가벼우면 정치도 가볍다. 정치가 가벼워지면, 국민의 삶은 무겁다. 이제는 정치가 언어의 책임을 회복해야 할 때다. 그 시작은 바로, 근거 없는 말 한마디를 삼가는 것에서 출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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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단독] 엔진 멈춘 3억 마이바흐 미스터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서울 소재 H건설사 대표가 타는 메르세데스 벤츠의 최고급 사양인 마이바흐가 구매한 지 3년 만에 엔진 고장으로 멈췄다. H사 대표 박모씨는 2022년 말 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와 한성자동차를 상대로 수리비 및 대차료 지급 청구 소송을 제기했다. 무상 수리해야 한다고 했던 1심 재판부는 급기야 ‘벤츠의 책임이 없다’는 판결을 내렸다. 2019년식 ‘마이바흐 S560 4MATIC’은 2022년 9월13일 오전 11시, 박씨의 운전기사가 서울 용산 한강로를 주행하던 중 계기판에 엔진 경고등이 켜지면서 차체 진동과 함께 엔진이 멈췄다. 곧바로 차량을 한성자동차 성동서비스센터에 입고했으나 진단은 충격적이었다. 침수차 의심 수리 나 몰라라 “엔진 연소실에 물이 들어가 부품이 손상된 것으로 보인다. 침수 차로 의심된다”며 무상 수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이에 박씨와 자동차 감정사는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그날은 폭우나 침수와 무관한 날씨였으며 정상 주행 도중 발생한 차량 고장이었기 때문이다. 원고인 H사는 “벤츠코리아가 제공하는 ‘통합서비스패키지(ISP)’ 보증에 따라 3년 또는 10만km 이내의 결함은 무상 수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1심 재판부(서울중앙지법 민사47단독, 2024년 7월23일)는 “침수나 연료 혼유 등 외부 요인으로 단정할 증거가 부족하다. 한성자동차는 ISP 약정에 따라 엔진 결함을 무상 수리해야 한다”며 원고의 손을 들어줬다. 그러면서 벤츠의 수입사인 한성자동차에 대해 월 400만원의 대차료 배상을 명령했다. 법원은 독립 감정인 강대공씨를 지정해 정밀 감정을 실시했다. 강씨의 감정서에는 “침수 차량에서 보이는 오염 흔적이 없다. 냉각수(부동액) 누출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며 “엔진 내부 수분은 외부 요인이나 정비 과정에서 유입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또 추가 사실조회 회신에서도 “혼유(연료 내 수분 혼입) 여부는 감정 범위를 벗어나며, 침수가 아닌 요인으로 인한 수분 유입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밝혔다. 2심(서울중앙지법 제8-3민사부)에서 피고 측은 반격했다. 벤츠코리아의 법률대리인 김성진 변호사(김앤장 법률사무소)는 지난 8월27일 제출한 준비서면에서 “ISP는 차량 ‘결함’이 발견된 경우에만 적용된다.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명백히 예외 사항이며 제조사 귀책이 없는 이상 무상 수리 의무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한성자동차 측(법무법인 세종)도 항소이유서에서 “ISP는 제조상의 하자에 국한된 품질보증 계약이다. 이번 사안은 ‘우발적 손상’으로 보증 대상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8-3부는 지난 9월26일,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박씨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시했다. 2심 판결은 “외부 요인, 제조 결함이 아니”라며 1심을 전면 뒤집은 것이다. 항소심 재판부는 “외부 수분 유입으로 인한 손상은 차량 제조사 귀책 사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ISP는 ‘제조 결함’에 한정된 보증이다. 한성자동차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밝혔다. 즉, 법원은 이 사건을 ‘차체·부품 결함’이 아닌 ‘사용 중 발생한 외부 요인’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주행 중 경고등 켜지고 진동 후 엔진 스톱 감정 결과 “누수 없음, 외부 수분 가능성” 결국 박씨는 3년에 걸친 법정 다툼 끝에 패소했다. 따라서, 한성자동차는 더 이상 수리 의무를 부담하지 않게 됐으며, H사의 항소도 기각됐다. 이번 재판의 핵심 쟁점은 ‘수분 유입의 원인’이 제조 결함이냐, 외부 요인이냐였다. 법원은 “차체·부품의 결함으로 인한 냉각수 누수가 없었고, 외부 요인 가능성이 더 크다”고 판단했다. 결국, 제조물 책임(PL법)에 따른 보증 범위가 아닌 사용·관리상의 문제로 결론이 난 셈이다. 이번 판결은 ‘결함’의 해석 범위를 좁혀 정의한 사례다. 즉, ‘사용자 과실이 아닌 상황’이라도 차체·부품 자체의 결함이 입증되지 않으면 보증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자동차 전문가들은 “소비자 입증 책임만 더 무거워졌다”며 “ISP나 제조사 보증이 소비자 보호장치로 설계됐지만, 현실적으로 ‘결함 입증’의 벽이 너무 높다. 이번 판결은 소비자가 과실이 없더라도 제조사 책임을 묻기 어렵다는 선례가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을 “제조물 책임법과 민법상 품질보증의 경계선을 명확히 한 판례”로 평가하고 있다. 박씨의 마이바흐는 결국 엔진을 교체하지 못한 채 3년 동안 방치됐다. 이번 사건은 ‘명차’의 기술력보다 보증 체계의 경계선이 어디까지인지를 가늠케 한 사건이다. 소비자는 결함을 주장할 때 ‘입증의 문턱’을, 제조사는 ‘보증의 한계’를 확인했다. 독일 명차 대명사인 벤츠의 전기차는 해마다 폭발하는 배터리 화재로 뉴스를 장식하고 있다. 전기차뿐만 아닌 내연기관 모델 중에서도 최상위급인 마이바흐조차 원인 모를 엔진 고장으로 멈췄지만, 고객과 3년간 법정 다툼을 이어간 회사로 남겨졌다. 1심선 인정 “무상 수리” 벤츠는 고객과 진행한 재판에선 승소했지만, 우리나라 정부의 제재 착수 대상이 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전기차에 저가 배터리를 쓰고도 고가 배터리를 쓴 것처럼 허위 광고한 혐의를 받는 벤츠코리아에 대한 제재에 착수했다. 공정위의 최종 판단은 벤츠코리아와 벤츠 전기차 이용자 간 진행 중인 법적 분쟁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해당 저가 배터리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가 시작된 전기차에도 쓰였다. 업계에 따르면 공정위는 지난 8월12일, 벤츠코리아를 표시광고법·공정거래법 위반 혐의로 제재해야 한다는 의견을 담은 심사보고서(검찰 공소장에 해당)를 회사 쪽에 발송했다. 벤츠코리아는 자사의 모든 전기차에 중국 1위 배터리 업체인 시에이티엘(CATL)의 배터리가 장착됐다며 허위 사실을 소비자에게 알린 혐의를 받는다. 제휴사 딜러를 상대로 소비자에게 이런 허위 사실을 설명하라고 교육하는 등 소비자를 부당하게 속여 유인한 혐의도 있다. 이 사실이 알려지자 EQE 차주들은 벤츠 본사, 벤츠코리아, 공식 딜러사 한성자동차 등 판매사 7곳, 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등 리스사 2곳을 상대로 손해배상소송을 제기했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8월1일 인천 청라국제도시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화재 사고를 일으켰다. 당시 충전 중이던 벤츠 전기차 한 대에서 불이 나 인근 차량 87대가 전소되고 783대가 그을러 38억원에 달하는 재산 피해가 발생했다. 당시 주민 23명은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이송됐으며 화재로 아파트 14개 동 1581가구의 수돗물 공급이 끊기고, 5개동 480가구가 단전돼 승강기 운행이 중단되는 등 입주민 불편이 극심했다. 한때 주민 수백명이 피신하는 등 ‘도심 대형 전기차 화재’의 대표 사례로 기록됐다. 하지만 경찰은 장기간의 감식 끝에 “정확한 화재 원인을 확인할 수 없다”며 ‘원인 불명’ 결론을 내렸다. 수사 결과, 해당 벤츠 전기차의 배터리는 중국 CATL이 제조한 셀을 벤츠가 직접 조립해 만든 배터리팩으로 확인됐다. 현재 국내에서 판매 중인 벤츠 전기차 대부분(EQE, EQS 등)은 중국 CATL 또는 파라시스(Parasis) 배터리를 탑재하고 있다. 2심에선 “책임 없다” EQA 등 극히 일부 모델에만 LG에너지솔루션, SK온 배터리가 사용된다. 이에 공정위는 화재 발생 이후 벤츠코리아에 대한 직권조사를 시행했다. 공정위는 지난해 9월과 지난 1월에 각각 벤츠코리아 본사와 제휴 딜러사에 대한 현장 조사를 벌여 제재가 필요하다는 결론을 냈다. 공정위는 벤츠코리아 추가 의견서를 받고, 위원회 회의를 열어 최종 제재 여부와 수위를 확정할 예정이다. 표시광고법 위반 시 관련 매출액 최대 2%, 공정거래법 위반 시 최대 4% 내에서 과징금이 산정, 제재 강도가 낮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공정위 제재 착수에도 벤츠의 콧대는 꺾이지 않았다. 벤츠코리아는 “심사보고서의 결론은 당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으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며 “추후 심사보고서 내용을 면밀히 검토한 후, 절차에 따라 의견을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정위 판단을 존중하지만, 회사의 법률적 판단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며 “제기된 혐의는 근거가 없다고 보고 있다”는 공식 입장을 발표해 진통이 예상된다. 벤츠 전기차는 지난해 인천 청라 아파트 지하주차장에서 대형 화재를 낸 데 이어, 최근 수원시에서도 유사한 사고를 일으켜 배터리 안정 논란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지난 10월5일 경찰과 소방에 따르면, 이날 오전 8시4분경 경기 수원시 권선구의 1800세대 규모 아파트 지하 1층 주차장에 서 있던 벤츠 전기차에 불이 났다. 이 불로 관리사무소 50대 직원이 연기를 마셔 병원으로 옮겨졌으며, 주민 수십여명이 명절 전날 오전 한때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 사고로 벤츠 전기차를 포함해 인근 차량 3대가 불에 탔고, 주차장 내부가 그을려 한동안 입주민 출입이 통제됐다. 소방당국은 ‘지하주차장 차량에서 연기가 난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 펌프차 등 장비 10여대와 소방관 50여명을 투입해 진화 작업을 벌였다. 화재 발생 20여분 만에 연소 확대를 저지했고, 오전 8시43분경 초진에 성공했다. 이후 잔불 정리와 차량 냉각 작업을 거쳐 오전 10시16분에 완진시켰다. 소방 관계자는 “119 신고가 신속했고 출동 거리가 짧아 초기 대응이 빠르게 이뤄져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법원 ‘결함 아님’ 판결 ‘제재 대상’ 벤츠 편든 재판부 소방대원들은 불이 난 차량을 지상으로 끌어올려 열기를 식히는 등 2차 발화를 막기 위한 안전조치를 이어갔다. 현재까지 파악된 바에 따르면, 화재 당시 차량은 충전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배터리 결함에 의한 발화인지, 전선 또는 충전기 접속부 문제 등 다른 원인에 의한 것인지는 아직 조사 중이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국립과학수사연구원과 함께 합동감식을 실시해 배터리팩 손상 여부 및 충전 설비 결함을 중심으로 원인을 조사할 예정이다. 화재 차량은 2023년식 EQA-250 모델로 SK온 배터리가 장착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내 전기차 등록 대수는 지난 9월 기준, 60만대를 돌파했지만 화재 사고 관련 안전 관리는 미흡한 상태다. 국토교통부는 청라 화재 이후 지하주차장 내 전기차 충전소 안전기준 강화안을 추진 중이지만, 구체적인 방재 설비 기준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지방자치단체별 안전관리 강화 조례도 제각각이다. 지속되는 품질 문제에 전기차 관련 허위광고 혐의까지 겹치면서 벤츠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벤츠코리아 설립 이후 최대 위기”라는 평가도 나온다. 여기에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 노조의 파업으로 서비스 품질 저하 문제가 불거지며 브랜드 이미지에도 타격이 예상된다. 연일 터진 사고 이전까지 벤츠는 국내 수입 전기차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기록했다. 소형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EQA·EQB에 이어 전기 세단 EQE·EQS까지 라인업을 확대하며 시장을 선도했다. 2023년에는 전기차 판매량 9282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그러나 2024년 8월 벤츠 EQE 전기차 화재 사고 이후 분위기는 급변했다. 화재 전 월평균 400대 수준이던 판매량은 사고 이후 절반 이하로 급감했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벤츠 전기차 판매량은 768대로, 전년 동기(2764대) 대비 72.2% 줄었다. 사고 이후 월 판매량은 100~200대에 그치며 반등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다. 벤츠의 국내 최대 딜러사인 한성자동차의 노조 파업도 새로운 악재다. 수입차 업계는 딜러사와 벤츠코리아가 별개 법인임에도 불구하고 노조 파업으로 소비자 피해가 커지고 있어 결국 벤츠의 이미지 실추로 이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추락하는 럭셔리카 한성자동차 노조는 지난 7월 31일부터 무기한 총파업에 돌입했다. 2023년 노조 설립 이후 진행된 3년 연속 파업으로, 사실상 매년 파업을 이어오고 있다. 노조는 구조조정과 차량 할인에 영업사원 인센티브를 활용하는 ‘선수당 할인’ 제도 등에 반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일부 정비 인력까지 준법투쟁에 나서면서 서비스 지연도 발생하고 있다. 실제 차량 정비 예약이 당일 일방적으로 취소되는 사례가 잇따르면서 소비자 불만은 커지고 있다. 이로 인해 “벤츠의 사후 관리 부실은 결국 한성자동차 탓”이라는 비판까지 나온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