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⑧축소 수사와 특검 수사

‘무인기’ 질문도 하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오혁진 기자 = 12·3 내란 사태에 관해 검찰은 피의자 신분인 군 장성들에게 ‘센 질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질문은 하지 않았다. 검찰의 축소 기소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취재진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검찰은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을 비롯한 내란 핵심 멤버에게 평양 침투 무인기 사건과 외환죄에 관한 질문을 하지 않았다.

취재를 종합하면, ‘북풍 공작’ 장본인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지난해 12월19일 구속된 이후 진술을 거부하고 있다. 검찰이 입수한 그의 수첩에는 ‘국회 봉쇄’ ‘수거 대상’ ‘사살’ ‘북의 NLL(북방한계선) 공격 유도’ 등이 적혀 있다. 실제로 노 전 사령관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과 북한 오물풍선의 ‘원점 타격’ 방안까지 논의한 사실이 드러났다. 이는 군사적 재앙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는 점에서 반드시 규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규명 필요한데···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 기록 자료에 따르면,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지난해 12월14일과 12월24일 두 차례에 걸쳐 검찰에 출석했다. 당시 여 전 사령관은 김 전 국방부 장관과 합작해 평양 무인기 사건을 기획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물이었지만, 검찰은 이와 관련된 어떤 질문도 하지 않았다.

비상계엄 한 달 전인 지난해 11월5일 여 전 사령관이 휴대전화에 작성한 메모에는 ‘전시 상황이 와야 한다’ ‘적의 여건을 조성한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그는 이 적이 ‘북한’을 의미한다고 검찰에 진술했다. 이 때문에 검찰은 북한 도발을 유도하려 한 게 아니냐고 물었지만, 여 전 사령관은 부인했다.

또 검찰은 “적에게 먼저 행동하도록 유도한다는 의미로 보이는데 맞느냐” “통제 불가의 상황을 만든다는 것이냐”며 여 전 사령관을 추궁했다. 비상계엄을 정당화하기 위해 북한과의 전시 상황을 일부러 유도한 게 아닌지 의심한 것이다.

이에 여 전 사령관은 “적은 북한이고, 계엄은 적이 먼저 움직여야 한다는 뜻이었다”며 계엄 반대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적은 매우 수세적’ ‘적의 여건을 조성’ ‘인내하면서 당장의 위협을 완화하고 결정적인 호기를 기다려야 한다’는 표현도 담겼다.

검찰은 북한 오물풍선을 언급하며 “원점 타격 등을 통해 적이 우리나라를 공격하는 등 위험 요건을 조성한다는 의미로 보인다”고 추궁했다. 직접적으로 “북풍을 기대하거나 조성한다는 의미로 보인다”고도 했다. 하지만 여 전 사령관은 “이는 계엄과 무관한 군사대비 태세와 관련된 내용”이라며 “북한이 러시아 파병으로 파국으로 끝날 것이기 때문에 인내하면서 위협을 완화해야 한다는 뜻이었다”고 반박했다.

여 전 사령관의 메모 작성 약 2주 뒤엔 합참 측이 오물풍선을 두고 이례적인 대북 성명을 내기도 했다. 지난해 11월18일 남기수 합참 공보부실장은 “북한의 행위는 선을 넘고 있으며, 이후 발생하는 모든 사태의 책임은 북한에 있음을 다시 한번 엄중 경고한다”고 발표했다.

메모 작성 직전인 지난해 10월에는 평양 무인기 침투 논란이 불거진 바 있다. 북한은 지난해 10월 ‘평양 상공에 남한 무인기가 침투했다’고 발표했다. 실제로 다음 날 새벽 경기 연천군 일대서 ‘추락한 드론작전사령부 소관 무인기’가 우리 군과 경찰에 의해 발견된 것으로 확인됐다.

당시 군은 이 무인기가 아군기라는 이유로 별도의 조서를 남기지 않고 모두 수거했다.

‘묵묵부답’ 노상원 태연한 반북 공작전
여인형 ‘북파 무인기’ 알고도 모른 척

계엄을 사전 모의한 혐의를 받는 노 전 사령관이 작성한 메모에도 ‘NLL 부근서 무인기를 띄워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고, 백령도서 반격한다’는 내용이 담겨있다. 경찰은 이를 토대로 외환죄 혐의에 대한 수사를 진행으나, 노 전 사령관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며 버티고 있다.

경찰청 국가수사본부 특별수사단은 지난해 12월23일 노 전 사령관의 경기 안산시 ‘아기보살’ 신당서 확보한 수첩에 이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고 밝혔다. 손바닥 크기의 60~70쪽 가량의 수첩에는 계엄과 관련된 내용의 초안이 적힌 것으로 파악됐다.

수첩에는 국회 봉쇄, 정치인, 언론인, 종교인, 노조, 판사, 공무원 등이 적혀있었고 이들을 ‘수거’하라는 표현이 적혀있던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 관계자는 “수첩에는 파편적인 단어들이 적혀있는데, 수거는 체포를 의미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대상자들을 체포한 이후 수용하고 처리할 것인지에 대한 메모도 적혀있었다고 경찰은 밝혔다.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검찰총장 시절 마찰을 빚었던 이성윤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사살 대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도 노 전 사령관이 내란의 핵심이라고 지목했다.

여 전 사령관은 지난 12월14일 1차 진술서 “언론에서는 제가 비상계엄의 계획을 수립했다고 보도하기도 하나, 저는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다”며 “오히려 노상원 장군이 조력을 했을 것으로 보인다. 정기적으로 (노상원과) 연락을 하던 관계는 아니다”라고 의심을 일축했다.

내란 수사가 미궁으로 빠진 가운데, 야권은 ‘12·3 비상계엄 사태’와 관련한 의혹 일체를 수사토록 하는 ‘내란 특검법’을 지난달 30일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서 상정했다. 내란 특검법은 12·3 비상계엄을 중심으로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인사 및 여권 인사들을 수사 대상으로 한다.

윤 전 대통령을 비롯한 내란 수괴들이 북한과의 국지전을 유발, 외환을 꾀했다는 의혹도 포함됐다.

앞서 민주당은 내란 특검법을 두 차례 발의했지만, 지난해 12월31일 당시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했다. 이어 지난 1월8일 재표결에 부쳐졌으나 부결로 자동 폐기됐다.

최 장관은 당시 거부권 행사에 앞서,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상정된 내란 특검법을 두고 윤 전 대통령이 구속 기소돼 재판 절차가 진행 중이어서 특검의 필요성이 없다고도 주장했다.

12·3 당일 대통령 말린 최상목
내란 특검법 반대하는 속내가···

“현재는 비상계엄 관련 수사가 진전돼 현직 대통령을 포함한 군·경의 핵심 인물들이 대부분 구속 기소되고, 재판 절차가 시작됐다. 앞으로의 사법절차 진행을 지켜보아야 하는 현 시점에서는 ‘별도의’ 특별검사 도입 필요성을 판단하기 어렵다는 의견이 많았다”는 것이다.

12·3 계엄 당일 국무회의에 참석한 최 장관은 계엄을 반대했다고 주장했다. 이쯤 되면 내란 특검법을 거부한 최 장관의 속내가 궁금해진다.

그는 지난해 12월20일 검찰 진술서 “대통령으로부터 갑자기 들어오라는 연락을 받아 (12월3일) 대통령실에 오후 9시55분경 도착했다. 회의장에 들어갔더니 한덕수 총리님과 국무위원 분들이 몇 분 앉아 계시길래, 제가 거기 계신 분(누구인지 기억나지 않음)에게 ‘왜 부르신 겁니까’라는 취지로 물어봤더니 누군가가 ‘곧 비상계엄을 발표한다’라는 이야기를 했다”며 “저는 전혀 예상하지 못한 말이고 너무 놀라서 (한덕수) 총리님께 ‘총리님 왜 반대 안하세요’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총리께서 ‘이미 여러 번 반대의 말씀을 드렸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그래서 제가 총리님께 ‘제가 들어가서 말씀드려보겠다’고 하고 대통령이 계시는 집무실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대통령께 ‘이건 안 된다. 경제와 국가 신인도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절대로 안 된다’는 취 지로 말씀을 드렸다. (재차 안된다고 설득했지만) 대통령께서 ‘돌이킬 수 없다’는 취지로 말씀하였다”고 진술했다.

계엄을 수 차례 반대했던 최 장관이 내란 특검법을 2차례나 거부한 이유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한편, 민주당 김병주 의원실 등을 통해 파악한 결과, 군과 경찰은 지난해 10월12일 새벽 4시23분 연천군 군남면 임진강변 일대서 추락한 무인기를 발견했다. 의원실이 확보한 경찰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우리 군은 이 무인기를 ‘아군기’로 판단하고 경찰과의 정식 합동 조사 절차 없이 자체적으로 현장을 채증했다.

이후 무인기와 현장을 찍은 사진 등 채증 자료를 모두 수거해갔다고 한다. 심의 조서를 비롯한 기록은 따로 없었다고 한다.

군이 수거한 무인기는 최종적으로 드론작전사령부(드론사)에 회수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합동참모본부는 ‘이 무인기가 북한이 평양 상공서 발견했다고 주장하는 무인기와 동일 혹은 유사 기종인지’를 묻는 질의에 “작전 보안상 확인해드릴 수 없다”며 함구했다.

여기서 이 무인기의 존재가 ‘평양 무인기 침투설’을 뒷받침하는 정황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그냥 넘겼다

추락한 무인기가 발견된 시점은 북한이 우리나라 무인기의 평양 상공 침투를 밝힌 직후다. 북한은 지난해 10월3일과 9일, 10일 심야 시간에 평양 상공서 한국 무인기가 발견됐다고 지난해 10월11일 발표했다.

합참은 북한에 무인기를 보냈는지에 대해 “확인해드릴 수 없다”고 일축해 왔다. 지난 1월에는 윤석열 전 대통령이 당시 북한에 무인기를 침투하라고 지시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더불어민주당 부승찬 의원은 지난해 6월부터 드론사가 북한에 무인기를 보낼 준비를 해온 사실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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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혁만 아는 보수대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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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방선거를 53일 앞두고 미국으로 떠났다. 그러자 일각에선 “장 대표가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론을 제기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했다. 장 대표가 취임 직후 구상했던 보수 대연합은 이미 무너졌다. 그의 구상은 왜 무너졌을까? 그리고 누가 그다음을 노리고 있을까?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지난 11일 미국으로 출국했다. 장 대표는 미국 국제공화연구소의 초청을 받았다. 원래는 지난 14일부터 2박4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초청 측의 요청으로 3일 앞당겨 출국했다. 누가 뭐래도 앞당긴 출국 장 대표는 지난 1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저는 세계의 자유를 지키는 최전선 워싱턴 DC로 출발했다”며 “대한민국의 미래를 결코 외면할 수 없기에 나아간다”고 주장했다. 6·3 지방선거를 53일 앞둔 시점에서, 그것도 일정을 더 늘린 출국이었다. 그 스스로는 “6·3 지방선거는 자유 민주주의를 지키는 거대한 전선이 될 것”이라며 “지방선거를 앞둔 현재의 분열과 고통의 시간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있고, 위기의 대한민국 앞에서 우리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당내 일각에선 비판이 나오고 있다. 국민의힘 김재섭 의원은 지난 14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너무 갑작스럽게 비밀스럽게 가셔서 명분을 모르겠다”며 “선거를 코앞에 앞둔 상황에서 공천도 마무리가 안 됐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 배현진 의원도 같은 날 CBS 라디오 <박재홍의 한판승부>에 출연해 “지금 가장 우선으로 해야 할 것은 선거가 어려운 상황에서 뛰어야 하는 후보들이 단 하루라도 낭비하지 않도록 후보를 빨리 결정지어 주는 일”이라며 “그걸 포기하고 미국에 간 것은 이번 선거가 이미 어렵게 된 마당에 포기하는 심정으로 차라리 다음에 어떤 정치적 행보를 위해서 지지층 결집을 목적하려고 간 것 아니냐”고 의심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도 지난 11일 경기 수원 방문 도중 기자들을 만나 “미국에 지방선거 표를 찍어줄 유권자가 있느냐”며 “리더가 이번 지방선거를 포기한 거 아니냐는 느낌을 주면 안 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런 비판에 아랑곳하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6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장 대표와 국민의힘 김민수 최고위원이 미국 국회의사당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사진을 공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한숨이 나오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비판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9일 KBS 라디오 <세상의 모든 정보 윤인구입니다>에 출연해 “국제공화연구소의 중요한 목적·역할 중 하나는 각국 부정선거 감시”라며 “장 대표가 그에 대한 기법을 배우고 와서 지방선거 패배 후 부정선거 때문에 졌다고 얘기하려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윤희석 전 대변인도 같은 날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출연해 비슷한 주장을 했다. 보다 못한 <조선일보>는 지난 10일 국제공화연구소 근무 경력이 있다는 익명의 워싱턴 DC 외교·안보 싱크탱크 연구원의 발언을 인용해 “개발도상국·후진국의 선거 도중 발생할 수 있는 부정을 감시하는 국제공화연구소를 단순히 부정선거론 연구기관으로 매도하는 것은 상당히 모욕적인 수사”라면서 장 대표를 두둔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8월 당 대표 당선 과정에서 대여 투쟁과 단일 대오를 강조했다. 선출 직후 진행된 기자회견에서도 “단일 대오로 뭉쳐 제대로 싸우는 야당의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며 “지금부터 단일 대오에서 이탈해 내부 총질하는 분들과 당론을 계속 어기는 분에 대해서는 결단하겠다”고 주장했다. 선거 앞두고 미국행…일각선 “부정선거론 배우러?” 극복 못 한 모순…당내 한 제외하고 당외 이와 연대? 이후 진행된 것은 한 전 대표·김 전 최고위원 제명과 배 의원 당원권 1년 정지 등 친한계 일원들에 대한 징계였다. 이들 중 배 의원은 법원에 징계 효력 정치 가처분을 신청했고, 지난달 인용돼 징계 효력에서 벗어났다. 친한계 구성원들은 다수의 방송 시사 프로그램에 활발하게 출연하면서 이익과 불이익을 동시에 전달하고 있다. 원외 인사들도 방송 출연을 통해 존재감을 유지하면서 이들의 의견을 왕성하게 전달한다. 하지만 장 대표 등 친한계가 아닌 국민의힘 인사들에 대해서도 공격적인 의견을 밝히기 때문에 비판이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 장 대표는 지난해 9월 <연합뉴스>와 인터뷰하면서 “방송에서 의견을 가장해 당에 해를 끼치는 발언을 하는 것도 해당 행위”라며 “국민의힘을 공식 대변하는 인물임을 알리는 패널 인증제를 시행하겠다”고 강조했다. 그가 한 전 대표 대신 선택한 연대 시도 대상은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였다. 지난 1월엔 이 대표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공천 헌금 의혹·통일교 게이트 특검법 공동 추진을 합의했다. 지난달엔 지방선거를 앞두고 대여 투쟁 방안을 논의했다. 이에 대해선 장 대표가 이 대표와의 연대를 통해 보수 대연합을 시도한 것이라는 해석이 다수 나왔다. 하지만 이 대표는 “공조와 연대는 다르다”면서 선거 연대에 대해선 선을 긋고 있다. 개혁신당 지지자들도 이 대표가 국민의힘에서 징계를 받고 대표직에서 물러나 개혁신당을 창당하기까지의 과정을 토대로 국민의힘에 대한 강한 반감을 유지하고 있다. 당내 경쟁자와의 투쟁을 위해 불미스럽게 당을 나간 외부 인사와의 연대를 추구하는 그림에 대해선 한동안 “모순 아니냐”는 지적이 이어졌다. “보수 대연합은 당내 갈등을 봉합한 후 추진하는 것이 합리적인 순서”라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당선 과정에서 구 친윤(친 윤석열)계와 강경 보수 성향 윤 어게인 세력의 지원을 받았다. 이를 토대로 장 대표의 구상을 확인할 수 있다. 장 대표는 친한계를 국민의힘에서 내보낸 후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어 강경한 선명 보수 야당을 만들어 그 위에 군림하려고 한 것으로 보인다. 구 친윤계 중 상당수는 대구·경북·강원 등 국민의힘의 텃밭으로 통하는 지역 내 유지들과 밀착해 정치활동을 이어가는 것으로 알려졌다. 윤 어게인 세력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12·3 비상계엄 선포를 두둔하면서,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반대했다. 두 세력에 대해선 “같은 ‘보수’라는 테두리 안에 있을 뿐, 성향이 전혀 다르다”는 지적이 이어진다. 구 친윤계는 언론 노출을 가급적 피하면서 지역구 관리에 공을 들이는 토착 보수 성향을 보인다. 반대로 윤 어게인 세력은 대규모 집회 개최·유튜브 활동 등 강경한 의견을 왕성하게 표현하는 것에 주력한다. 실패한 연대 이대로 포기? 아울러 구 친윤계는 윤 어게인 세력과 밀착하는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난달 국민의힘 의원 전원 명의로 발표된 절윤(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 선언에도 참여하는 등 윤 전 대통령을 이미 지웠다. 반대로 전한길씨 등 윤 어게인 세력은 절윤 선언을 격렬하게 비판하면서 장 대표에 대해서도 독한 비난을 이어갔다. 장 대표로선 지난해 당 대표 선거 출마 이후부터 구상했던 “구 친윤계·윤 어게인을 묶는다”는 목표가 어긋난 것으로 보여질 여지가 있다. 일각에선 국민의힘 지방선거 패배와 장 대표 체제 붕괴에 대비해 ‘포스트 장동혁’을 거론하고 있다.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거친 후 전당대회를 열어 새 지도부를 선출할 가능성이 언급되고 있다. 현 시점에서 포스트 장동혁에 도전할 수 있는 인사로는 ▲오세훈 서울시장 ▲한 전 대표 ▲신동욱 수석최고위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오 시장은 지난달 국민의힘 서울시장 후보 공천 1차 마감 시한까지 신청하지 않았다. 이어 당의 인적 쇄신·절윤 선언 실천·혁신 선대위 설치 등을 요구하면서 장 대표와 대립각을 세웠다. 오 시장은 추가 공모 기간 내에 공천을 신청했지만, 이때까지도 “서울시장 출마가 아니라 장 대표 체제 붕괴 후 당권에 도전하려는 게 아니냐”는 말이 돌아다녔다. 따라서 오 시장의 선거 당락을 떠나 그가 당권에 도전할 가능성은 여전히 배제되지 않는다. 서울시장 5선에 성공하더라도 당 대표 출마 및 당선 후 겸직을 막을 법적 제한은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4일 전입신고를 하는 등 부산 북갑에서 재보궐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유력해졌다.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확정된 전재수 의원은 이곳에서 3선을 했고, 현재 부산 내 유일한 민주당 의원이다. 한 전 대표가 이곳에서 당선돼 민주당의 부산 내 근거지를 소멸하면 국민의힘에 복귀해 다시 당권·대권에 도전할 명분이 붙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지난해 12월부터 “포스트 장동혁이 될 수 있다”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장 소장은 지난해 12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국민의힘 내 대구·경북에 지역구를 둔 몇몇 의원이 장 대표로는 안 되겠다면서 신 최고위원이 비대위원장을 맡으면 어떻겠느냐는 이야기를 하고 다닌다”고 주장했다. “구 친윤계로서는 오 시장도 구 친윤계와 성향이 다른 수도권 내 보수 성향 엘리트에 속해 부담스러워할 것이고, 오랫동안 갈등했던 한 전 대표는 말할 것도 없다”는 분석도 돌아다녔다. 신 최고위원에 대해선 한동안 서울시장 출마설도 돌았지만, 실제로 출마하지는 않았다. 3인방 행보는? 성향이 전혀 다른 세력을 조율하면서 그 수장으로 군림하는 데에는 ▲전략적 경계 설정 및 수용 ▲고도화된 소통 ▲정치적 영향력 행사 기술 ▲유연한 지도력 등 고난도 정치술이 필요하다. 이 정치술을 갖추고 세력 조율을 시도했던 대표적인 정치인은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였다. 효종·현종은 어느 한 세력이 일방적인 우위를 점하지 않는 방향으로 서인·남인의 당쟁을 관리했다. 하지만 2대 독자로서 강한 정통성과 고집 센 성격을 가졌던 숙종은 주기적으로 환국을 일으켜 한 세력에 일방적으로 정권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왕권을 강화했다. 서인은 학문 방향·남인에 대한 대응 등 논점에서 의견이 엇갈려 노론·소론으로 갈라졌다. 영조가 즉위했을 때는 노론·소론의 당쟁이 극대화됐다. 이 때문에 소론·남인 강경파가 영조를 인정하지 못해 군사 반란을 일으킨 이인좌의 난이 발생했다. 이후 영조가 추진했던 탕평책은 노론·소론의 온건파만 조정에 남겨놔 균형을 유지하는 완론 탕평이었다. 이 때문에 종전엔 없던 탕평파라는 당파가 탄생했다. 이들은 영조의 완론 탕평에 협조해 살아남았다. 하지만 탕평파에는 영조의 사도세자 살해를 끝까지 막지 못했다는 정치적 약점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탕평파의 핵심이었던 사도세자의 처가 풍산 홍씨는 세손 정조의 정치 보복을 우려해야 했다. 정조의 즉위를 도왔던 세력은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의 처가 경주 김씨 가문이었다. 결국 영조의 완론 탕평은 유교에서 금기시하는 척신 정치로 나아갔다. 정조는 즉위 초엔 홍인한·정후겸 등 자신의 즉위를 방해한 세력의 핵심을 숙청한 후 측근 홍국영에게 전권을 맡겼다. 그러다가 홍국영이 과도한 권력욕을 드러내자 숙청한 후 영조와 정반대로 준론 탕평을 추진했다. 준론 탕평은 각 당파의 강경파를 전면에 내세워 당파마다 선명한 당론을 내세우게 한단 것이다. 이는 곧 “영조 이전의 정치로 돌아가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었고, 각 당파에 스스로 생각하는 의리를 명확하게 밝히라고 요구하는 체제였다. 그들의 의리 중 무엇이 옳고 그른지 선택하는 심판 겸 절대자는 정조 자신이었다. 정조가 홍국영 숙청 이후 선택한 정국 관리 대리인은 소론 강경파 겸 시파였던 서명선이었다. 이어 그를 견제하기 위해 영조 대에 사실상 조정에서 사라졌던 남인을 조정에 편입시키려고 남인 영수 채제공에게 고위직을 부여했다. 아울러 자신의 스승이었던 김종수와 초강경파인 심환지 등 노론 벽파와 정민시 등 노론 시파도 조정에 공존시켰다. 각 당파의 수장들을 골고루 챙겨 자신으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한 경쟁을 시킨 것이었다. 각 당파의 강경파만 엄선해 조정에 공존시켜야 했기 때문에, 정조의 갈등 조정 업무는 매우 많았다. 김종수는 이따금 갈등을 일으켰다. 정조는 매번 적당한 선에서 김종수를 처벌하면서 그 갈등을 무마했다. 정조도 김종수에 대해선 “위험에 직면하면 위험에서 건져주고, 거의 죽게 되면 죽음에서 구원해 줬다”고 말했다. 선거 패배하면 주목받을 ‘포스트 장’ 누구? 정조의 준론 탕평 갖가지 비결…누가 갖췄나? 서명선은 공개적으로 “저는 채제공과 의리상 같은 하늘 아래 살 수 없고, 채제공이 역적이 아니면 저는 반드시 처벌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명선은 이인좌의 난 이후 남인에 대한 감정이 격렬해진 소론 일각의 정서를 조정에서 공론화했다. 그런데 막상 서명선은 심환지로부터 탄핵당했다. 서명선이 영의정이 된 것에 심환지가 불만을 품은 것이었다. 그러자 정조는 크게 분노해 김종수에게 불만을 토로했다. 그런데 “내가 당신에게 상처를 줄까 봐 두렵다”면서 벽파를 ‘우리 벽패는’이라고 일컫는 등 심환지에게 수많은 밀지를 보냈던 사람은 정조였다. 심환지는 보는 즉시 태워 없애야 하는 밀지를 보관해 후세까지 전하게 했다. 이 밀지 모음이 ‘정조 어찰첩’이다. 정조는 심환지에게 밀지를 보내 정국 관리 구상을 밝히면서 심환지에게 구체적인 역할을 부여하는 등 막후에서 ‘정국’이란 거대한 연극의 감독 겸 주연을 맡았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정조는 세자에게 양위한 후 스스로 정예부대로 육성했던 장용영을 데리고 수원 화성으로 물러앉아 조정을 감독하는 원격 통치를 구상했다. 정조가 정했던 시기는 1804년이었지만, 정조는 1800년 훙서했다. 정조가 구상했던 준론 탕평은 정조 말고는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정조는 할아버지의 극진한 총애를 받을 정도로 공부에 몰두해 즉위 후엔 스스로 성리학의 정통이자 스승을 자처했다. 이는 신하들이 임금을 가르치는 경연을 없애고, 임금이 신하를 가르치는 초계문신제를 채택한 것에서 확인된다. 아울러 서명선·김종수·정민시 등은 정조가 세손 시절부터 가까이 지내면서 사조직 동덕회를 조직할 정도로 측근이었다. 조정 내부엔 정조의 준론 탕평에 동조하는 시파가 있었고, 정조 어찰첩을 통해 확인할 수 있듯이 벽파와의 관계도 나쁘지 않았다. 조정 외곽엔 영남 남인 1만명이 연명해 정조의 사도세자 복권을 시도하고 정조의 준론 탕평에 호응하는 등 지지를 보내고 있었다. 친위 무력 기반 장용영도 있었다. 이것으로도 부족해 밀지를 주고받으면서 막후에서 정국을 설계하면서 이끄는 부지런함까지 갖췄다. 꿈꾸는 잠룡들 과연 국민의힘은 서로 전혀 다른 구 친윤계·친한계·강경 보수를 모두 조율할 수 있는 수장을 배출할 수 있을까? 이를 위해선 모두의 인정을 받는 월등한 실력과 부지런함을 갖춰야 한다. 장 대표가 지금이라도 이를 소화할 수 있을지, 아니면 새로운 누군가가 나타날지, 보수 성향 유권자의 가슴은 타들어 가고 있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