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⑦뭉치지 못한 군인들 왜?

‘대통령 돌았다고 생각했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철준 기자 = “계엄이 선포돼도 계엄군 개입은 극히 제한되는 것으로 연습해 왔다.” 이는 권영환 전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 계엄과장(계엄 업무 담당)이 검찰 진술서 한 말이다. 하지만 12·3 내란 사태 당시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은 이와 전혀 다른 명령을 내렸다. 작전에 참여한 군인들이 의구심을 품은 대목이다.

12·3 내란 사태 당시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방송사 등지에 수천명의 군인이 투입됐다. 하지만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에게 하달받은 임무를 제대로 이행한 부대는 선관위로 투입된 국군 정보사령부뿐이었다. 수도방위사령부와 육군 특수전사령부도 부대를 움직였지만 현장 지휘관의 의문은 이른바 ‘항명’으로 이어졌다.

의도에 의문

<일요시사>는 검찰 12·3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이하 특수본)의 진술 조서에서 12·3 내란 사태 당시 군인들이 왜 항명을 할 수밖에 없었는지 살펴봤다. 항명을 한 이들이 12·3 내란 당시 공통적으로 느낀 것은 ▲지휘권 없는 김 전 장관의 지휘 ▲정당하지 않은 군 투입 등이다.

지휘권 없는 김 전 장관의 지휘에 대한 진술은 대한민국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 소속 장교들에게서 찾을 수 있다.

합참 참모였던 서모씨는 검찰 진술에서 “‘저희(합참)가 모르는 임무가 있을 수 없는데 그게 무슨 소리야’라고 생각했다”고 말했으며 또 다른 합참 참모인 진모씨는 “(합참으로)작전 상황들이 종합이 되는데 그날은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후 특전사나 수방사 인원들이 국회로 이동하는 것들이 전혀 보고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었다”며 “한참 있다가 보니까 국회에 군인들이 나간 것을 보고서 ‘우리 통제 없이 국회에 나간 부대가 있구나’하고 그때부터 각 부대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합참의 통제 없이 국회와 선관위에 군대가 투입된 이유는 김 전 장관의 명령이 있었기 때문이다. 국군조직법 등에 따르면 계엄 상황이 벌어지더라도 특수전사령부와 수도방위사령부의 지휘 권한은 참모의장에게 있다.

하지만 김 전 장관은 김명수 합참의장이 부재한 상황에 ‘전군지휘관회의’를 열고 계엄군 사령관에 박인수 전 육군참모총장을 임명하고, 특수전사령부의 사령관인 곽종근 특전사령관과 수도방위사령부 사령관인 이진우 수방사령관에게 국회와 선관위 출동 명령(외적으로는 출동 명령이지만 일명 ‘좌파세력’ 14명의 체포 명령)을 내렸다.

체포·점거 명령에도
이유 있는 미온적 태도

권영환 전 합참 계엄과장(육군 대령)은 이 같은 명령을 받고 만류했다고 한다.

검찰에 진술한 내용에 따르면 그는 “계엄업무수행군은 법적으로 군사경찰로 지정돼있고, 군사경찰이 아닌 부대를 계엄임무수행군으로 운용하려면 계엄사령관이 대통령에게 건의해 승인을 받아야 한다”며 “계엄법 시행령 제3조 제1항에 ‘계엄사령관은 계엄 지역 안의 군사 경찰기관을 지휘·감독한다’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계엄군은 군사경찰이어야 한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계엄사령관도 합참의장도 아닌 김 전 장관이 지휘권을 갖고 계엄법에 맞지 않는 군인들을 국회와 선관위에 출동시킨 것이다. 게다가 대통령 승인이 필요한 일을 김 전 장관이 마음대로 진행한 만큼 당일 위법적인 군대 투입을 몰랐다는 발언과 달리 윤석열 전 대통령이 해당 사실을 알고 있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계엄 업무에 익숙한 합참 참모들보다 이 같은 지시에 의아함을 느낀 사람들은 직접 국회와 선관위에 투입된 사람들이다. 이들은 모두 퇴근 후 일상을 즐기다 갑자기 선포된 비상계엄에 ‘진짜’ 비상 상황인 것으로 생각하고 부대로 복귀한 후 곽 전 특전사령관과 이 전 수방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목적지인 국회와 선관위로 행했다.


<일요시사>는 항명했던 현장 지휘관 몇몇의 진술을 분석했다.

검찰 진술에 따르면 김창학 수방사군사경찰단장은 아들과 저녁 시간을 보낸 후 대통령 담화를 보게 됐다. 이때 담화 내용 중 ‘반국가 세력’이라는 내용이 있고 계엄을 선포했기에 당연히 대테러 상황이라고 판단해 대테러 초동 조치팀과 질서 유지용 mc팀을 국회로 출동시켰다.

김 단장에게 내려진 임무는 ‘국회 담을 넘어 게이트를 하나 넘겨받고 그곳을 차단하라. 그리고 통제에 따르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 체포하라’였다. 하지만 김 단장은 ‘사람들을 체포하라’는 명령에 추후 문제가 있을 것 같으며 현장이 대테러 상황이 아닌 것으로 판단하고 이 사령관의 지시를 부대원들에게 전달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이에 대해 “사령관의 지시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고 진술했다.

이 전 수방사령관의 부관은 “윤 전 대통령이 ‘총을 쏴서라도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끌어내라고’라는 취지의 말을 했을 때 ‘대통령이 갈 데까지 갔구나. 진짜 돌아이’라고 생각이 들었다”고 말하며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합참도 모르는 부대 투입
“출동 후 이상함 깨달아”

수방사 제1경비단장을 맡고 있는 조성현 대령은 계엄이 선포되기 전인 오후 9시48분경 이 사령관에게 “상황이 있는 것 같으니 소집할 준비를 하고 사령부로 들어오라”는 전화를 받고 사령부로 갔다. 이후 다급한 이 사령관의 명령에 따라 국회로 와보니 급한 상황이 아닌 것 같아 후속부대에게 “서강대교를 건너지 말라”고 명령하게 된다.

조 대령은 이에 대해 “시민들이 국회 울타리를 둘러싸고 있고 국회 내부에서는 특전사가 움직이고 있는 상황이 정상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형기 특전사 제1특전대대장은 내란 사태 당시 부대원들을 이끌고 국회 출입문까지 왔다. 진술조서에 따르면 그는 이상형 특수전사령부 제1공수특전여단장에게 ‘국회 본관에 가서 의원들을 끌어내라’ ‘문을 부숴서라도 끄집어내라’ ‘유리창이라도 깨라’는 지시를 여러 차례 받았다.

하지만 김 특전대대장은 정문을 중심으로 격렬하게 저항하는 시민과 보좌진, 국회 직원 등을 물리력으로써 제압하고 강행 돌파하라는 지시를 실행에 옮기지는 않았다.

그는 “이게 정당한 지시인지, 부당한 지시인지도 몰랐고 상황이 어떤지도 몰랐다”며 “민간인들과 대치하고 있는데 계속 충돌하려다 보니 출입을 통제하고 제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고 회상했다. 국민의 생명·신체를 보호해야 한다는 군인의 의무, 그리고 부하들에 대한 염려로 갈등한 것이다.

정치적 경고?


내란 주범들은 검찰 조사에서부터 헌법재판소, 형사 법정에 이르기까지 일관되게 ‘경고성 계엄’ ‘국민 계몽령’을 주장하고 있다. 군인이 투입됐지만 누구 하나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계엄 사태가 유혈 사태로 번지지 않은 것은 이상한 명령에 항명했던 군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kcj5121@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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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벼랑 끝 국민의힘 뒤집기와 자충수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비상계엄 1주년을 맞아 페이스북에 사과 입장을 밝혔다. 국민의힘 원내 지도부도 기자회견을 열고 고개를 숙였다. 사과는 짧았지만, 더불어민주당에 대한 비난은 길었다. 사과 의견을 통해 확인되는 국면 전환 노림수는 ‘한동훈을 제외한 빅텐트’인 걸까? 국민의힘 공보실은 지난 2일 오후 10시54분 출입기자들에게 지난 3일 지도부 일정을 공지했다. 공보실에 따르면, 지도부의 일정은 ‘통상 일정’이었다.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의미다. 지난 3일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1주년이었다. 통상의 의미는? 지도부의 공개 외부 일정이 없단 것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의 비상계엄 관련 공개 사과 및 기자회견 일정이 없었단 의미로 해석될 수 있었다. 장 대표는 지난 3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 의견을 밝혔다. 장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은 의회 폭거에 맞서기 위한 계엄이었다”는 등 “정당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을 소지가 있는 주장부터 제시했다. 윤 전 대통령 파면에 대해서도 “한국 정치의 연속된 비극을 낳았고, 국민과 당원들께 실망과 혼란을 드렸다”는 등 ‘탄핵 반대’ 의견을 유지했다. 장 대표에 따르면, 국민의힘의 잘못은 하나로 뭉쳐 제대로 싸우지 못했다는 부분이었다. 자신에 대해서도 “당 대표로서 책임을 통감한다”고 강조했다. “장 대표가 사과하지 않을 것”이란 예상은 같은 날 오전 4시50분경 이정재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국민의힘 추경호 의원의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확실시됐다. 장 대표는 페이스북 게시글에서도 “추 의원 구속영장 기각은 어둠의 1년이 지나고 두터운 장막이 걷히고, 새로운 희망의 길이 열리는 신호탄”이라면서 대정부 투쟁에 의미를 부여했다. 장 대표는 “이재명정권의 대한민국 해체 시도를 국민과 함께 막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장 대표가 사과 불가는 지난달 28일 대구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장외집회에서 어느 정도 예고된 것이었다. 당시 그는 “비상계엄에 대한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우리가 흩어지고 분열한 결과, 이재명정권이 탄생했단 것을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책임을 무겁게 통감한다”면서도 이재명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을 비난하는 내용으로 연설 대부분을 채웠다. 5일 간격으로 같은 얘기를 반복한 것이었다. 당시 장 대표가 주장한 민주당에 대한 비난의 핵심 내용은 ▲의회 폭거·국정 방해 ▲무모한 적폐 몰이에 따른 공무원 사찰 위협 ▲폭거로 인한 민생 파탄·국가 시스템 붕괴 ▲내란 몰이 등이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국민의힘의 비상계엄 관련 사과는 ▲송언석 원내대표 ▲유상범·김은혜 원내부대표 ▲최수진·최은석 원내대변인 등 원내 지도부 차원에서 나왔다. 송 원내대표 등은 지난 3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국민께 큰 충격을 드린 비상계엄 발생을 막지 못한 데 대해 국민의힘 국회의원 모두는 무거운 책임을 통감하고 있다”며 “국민 여러분께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이어 군인·공직자·의료인·자영업자 등 비상계엄 선포 피해자들에게 “깊은 위로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 숙였다. 하지만 이후의 메시지는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 등 장 대표의 주장과 크게 차이가 없는 내용이었다. 송 원내대표는 “국민의힘 의원들은 패배의 아픔을 딛고 분열과 혼란의 과거를 넘어서 다시 거듭나겠다”며 “소수당이지만 처절하게 다수 여당과 정권에 맞서 싸우겠다”고 강조했다. 이전까지 국민의힘에서 장 대표에게 공개적으로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정치인은 오세훈 서울시장과 김용태·김재섭·권영진·엄태영·이성권·조은희 의원 등이었다. 국민의힘 양향자 최고위원은 지난달 29일 대전에서 진행된 장외집회 중 “국민의힘은 불법 계엄을 방치했으니,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일부 지지자들의 강한 항의를 받았다. 김재섭 의원은 지난달 28일 YTN 라디오 <더 인터뷰>에 출연해 “당 지도부의 사과가 없으면 제 나름의 사과를 해야 할 것 같다”며 “같이 메시지를 낼 국민의힘 의원들이 약 20명은 된다”고 주장했다. 이는 곧 “연판장을 돌리거나 기자회견을 할 수도 있다”는 압박으로 해석될 가능성이 있었다. 오 시장도 같은 날 채널A <김진의 돌직구 쇼>에 출연해 “중도층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도 당 차원의 사과가 필요하다”며 “공당이라면 반성문을 쓰는 게 도리”라고 주장했다. 결국 이들은 당과 무관하게 대국민 사과를 했다. 오 시장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 소속 중진 정치인이자, 서울시민의 일상을 책임지는 시장으로서 그 책임을 무겁게 받아들인다”며 “그날의 충격과 실망을 기억하는 모든 국민께 거듭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의원 25명은 지난 3일 국회에서 “비상계엄 선포 당시 집권여당의 일원으로서 비상계엄을 미리 막지 못하고 국민께 커다란 고통과 혼란을 드린 점에 대해 거듭 국민 앞에 고개 숙여 사죄드린다”면서 ▲헌법재판소의 윤 전 대통령 파면 결정 존중 ▲윤 전 대통령과의 정치적 단절 ▲국민의힘 체질 개선·재창당 수준의 혁신 등을 약속했다. 이어지는 각자 플레이 장 대표에게 대국민 사과를 요구한 후 자체적으로 대국민 사과 성명을 발표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대체로 수도권에 기반을 둔 소장파다. 이들 중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정당으로 자리매김하면 가장 큰 손해를 볼 정치인으로는 오 시장과 김재섭·김용태 의원이 거론된다. 오 시장은 높은 개인 인기를 바탕으로 민주당의 서울시장 탈환 공세에 맞서고 있다. 김재섭 의원의 지역구 서울 도봉갑은 원래 민주당 텃밭이었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당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1094표 앞서 어렵게 이겼다. 지난해 12월7일 국민의힘의 윤 전 대통령 탄핵소추 표결 집단 이탈에 동참했을 때도 지역구에서 규탄 집회가 개최되는 등 홍역을 치렀다. 김용태 의원도 경기 가평·포천에서 민주당 후보로 출마한 박윤국 한국도자재단 이사장에 2774표 앞서 어렵게 금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국민의힘에 대해선 “강경 보수화가 진행된다”는 지적이 각계에서 이어지고 있다. 이 우려는 장 대표가 지난달 16일 유튜브 채널 ‘이영풍 TV’에 출연해 ▲자유통일당 ▲우리공화당 ▲자유민주당 ▲자유와혁신 등 원외 강경 보수 4당과의 지방선거 연대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깊어졌다. 장 대표는 지난달 28일 개혁신당과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지금은 연대를 논의할 때가 아니”라면서 선을 그었다. 최근 국민의힘에선 “한동훈 전 대표를 축출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만한 밑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다. 국민의힘 여상원 윤리위원장은 지난달 17일 사의를 표명했다. 여 위원장은 “당에서 ‘물러나면 좋겠다’는 연락이 왔다”며 “굳이 능욕당하면서 자리를 지킬 필요가 없다고 판단돼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 답했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윤리위원회가 ‘계파 갈등 조장’을 이유로 윤리위에 넘겨진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 주의 조치만 내린 것 때문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국민의힘 우재준 청년 최고위원은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원하는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고 윤리위원장을 사퇴시키는 게 정당한 일이냐”며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드는 민주당과 뭐가 다르냐”고 정면 비판했다. 이어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한 조사 절차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당원 게시판 의혹은 “국민의힘 당원 게시판에 올라온 윤 전 대통령 부부 비방글 작성에 한 전 대표 가족이 연루된 게 아니냐”는 의혹이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 “사실관계를 명확하게 밝혀 당원에게 알릴 것”이라는 방침을 밝혔던 바 있다. 윤 전 대통령 부부는 정치적으로 몰락해 서울구치소에 갇혔고, 형사재판을 받고 있다. 국민의힘이 당원 게시판 의혹을 밝혀낸 후 거둘 수 있는 실익으로는 “한 전 대표를 국민의힘에서 쫓아내고, 친한(친 한동훈)계를 무력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 거론된다. 구 친윤(친 윤석열)계가 거둘 수 있는 이익이다.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보수 성향 유권자 사이에서도 호불호가 명확하게 나뉜다. 하지만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과 정치적으로 갈등하면서 비상계엄 해제에 동참했던 이력이 있다. 이 때문에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이 강경 보수 일색이 되는 걸 막는 방파제·상징”이란 분석이 오랫동안 있어왔다. 친한계로 거론되는 국민의힘 의원 중 상당수는 수도권에 지역구를 둔 소장파라는 분석이 나온다. 윤리위원장 쫓아낸 이유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에 대해선 “윤 전 대통령이 정치에서 폭력을 동원하는 것에 무슨 의미가 있는지 잘 몰랐던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다. 정치의 본질은 대화·토론·협상이다. 영국 하원에선 20세기 초까지 의원이 총칼을 이용해 결투·난투를 했다. 물리적 폭력이 아닌 ‘언어폭력’ 선에서 공방을 이어가는 정치 문화는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정착됐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가 전 세계에 줬던 충격은 민주주의가 충분히 성숙했다고 믿었던 대한민국에서 군을 동원해 정적을 제거하려던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는 사과 메시지를 먼저 짧게 발표하면서 이재명정부·민주당 비판은 길게 이어가는 형식의 사과 의견을 밝혔다. 사과엔 ▲직접적인 반성 ▲분명한 잘못 인정 ▲재발 방지 약속 ▲보상 약속 등 4개의 원칙이 제기됐는데 “상대방 비판에 더 중점을 둔 사과는 역설적으로 ‘반성을 하는 게 맞느냐’는 비판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지난 2008년 광우병 촛불시위 당시 대국민 사과를 했고, 박근혜 전 대통령은 지난 2016년 최순실 게이트가 불거진 후 대국민 사과를 했다. 이 전 대통령은 “모든 것이 제 불찰이고, 국민께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며 “미국산 쇠고기 수입 협상·후속 조치 중 국민의 마음을 헤아리는 데 미흡했고, 우려를 덜어드리지 못한 점에 대해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은 “국정을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이라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쳐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면서 “국민께 깊이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전 대통령은 당시 크게 불거졌던 각종 우려를 ‘괴담’으로 규정지었다. 이 때문에 촛불 시위 세력이 제시한 재협상 시한과 맞물린 시점에서 사과가 나온 점을 감안할 때 국면 전환을 위한 명분 쌓기 아니냐는 비판을 받았다. 박 전 대통령은 이미 각종 의혹이 광범위하게 제기돼 근거 자료들까지 제시되는 시점에서 “취임 후 일정 기간 일부 자료들에 대해 최순실씨의 의견을 들은 적은 있지만, 청와대 보좌 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주장했다. 이로써 박 전 대통령의 해명은 신뢰를 잃었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두 전직 대통령의 사과처럼 자신의 주장을 뒤에 배치한 후 더 큰 비중을 부여하는 형식을 유지했다. 비상계엄 1주년에 강조된 “민주당 폭거” 국면 전환·결집 노리는 선 사과·후 비난? 이런 사과 형식은 국면 전환·지지층 결집 목적을 가진 이들이 활용한 사례가 많다. 대표적인 예로, 고대 로마에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암살된 후 있었던 마르쿠스 브루투스·마르쿠스 안토니우스의 연설이 꼽힌다. 카이사르 살해를 주동한 브루투스는 “카이사르에 대한 내 사랑은 카이사르를 사랑하는 다른 분보다 절대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단언한다”고 선언한 후 “로마를 더 사랑해서 카이사르를 죽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나라를 위해 눈물을 머금고 가장 사랑하는 친구를 죽였다”고 강조했다. 안토니우스는 “카이사르 암살에 가담한 사람들은 모두 존경할 만한 분들”이라고 선언한 후 카이사르를 찬양하면서 그의 유언장을 공개했다. 유언의 핵심 내용은 “내 재산을 로마 시민에게 기증한다”는 것이었다. 또 카이사르가 살해당할 당시 입었던 칼자국과 피로 얼룩진 옷도 공개했다. 흥분한 로마 시민은 암살자들의 집을 습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안토니우스·아우구스투스는 로마 정국을 장악했다. 불리한 내용을 먼저 짧게 거론한 후 유리한 내용을 장황하게 거론하는 형식은 정치적 목적을 위해 즐겨 이용된다. 장 대표·송 원내대표가 짧은 사과 의견을 밝힌 후 이재명정부·민주당을 비중 있게 비판한 것도 강경 보수 세력에겐 강한 인상을 줄 가능성이 있다. 특히 장 대표는 비상계엄의 원인을 ‘의회 폭거’라고 규정했다. 이에 따르면, 윤 전 대통령은 카이사르가 된다. 비상계엄 해제에 찬성해 사실상 윤 전 대통령 몰락에 가담한 한 전 대표와 친한계는 브루투스 일당이 되는 구도가 그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강경 보수 세력은 당원 게시판 의혹에 대해 어떤 의견을 제시할지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공나형 전남대 학술연구교수는 지난 2022년 발표한 논문 <대통령의 공적 사과 담화에서 드러나는 ‘개입’ 양상>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이 지난 1993년 쌀 시장 개방을 수용하면서 밝힌 대국민 사과와 박 전 대통령의 최순실 게이트 관련 대국민 사과를 분석했다. 공 교수는 김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선의로 행한 행위가 어쩔 수 없는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졌다고 강조하면서 결과의 부정성에 관여하는 자신의 의도의 비중을 제거했다”고 분석했다. 박 전 대통령의 사과문에 대해선 “자기 고백이 많은 분량을 차지하지만, 그 고백의 원인이 되는 행위에 대해선 소극적”이라고 분석했다. 12월3일 조용히 장 대표·송 원내대표의 사과도 “어쩔 수 없었다”는 항변과 상대방 비판을 내용으로 채웠다. 그러면서 민주당 심판·보수 재건·대여 투쟁을 강조했다. 결국 두 사람의 답은 ‘한 전 대표를 제외한 빅텐트’ 방침 재확인으로 보인다. 국민의힘의 12월3일은 이렇게 조용히 지나갔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