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공개> 검찰 수사기록으로 본 12·3 내란 사태 전말 ④‘비선 장군’ 노상원 존재감

민간인이 군을 움직였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수사 기록 곳곳에 ‘노상원’ 세 글자가 빼곡하다. 오래전부터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사방을 들쑤셨지만 그 누구도 민간인이 개입한 이유를 묻지 않았다. 덕분에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맹신론자’를 등에 업고 나라를 쥐락펴락했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박근혜 전 정부 당시 정보사령관을 지냈다. 육군정보학장 재임 중이던 2018년 여군 교육생을 술자리 등에서 강제 추행한 혐의가 인정되면서 불명예 퇴직 처리됐다. 민간인으로 돌아가 점집을 운영하던 그가 어떻게 계엄에 사사건건 개입할 수 있었을까? 노 전 사령관의 행적을 쫓아가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의 이름이 나온다.

나를 따르라

두 사람의 인연은 지금으로부터 약 36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9년 김 전 장관이 대통령 집무실을 경호하는 수도방위사령부 제55경비대대 작전과장이던 당시 노 전 사령관은 같은 경비대대서 대위로 근무했다.

이후에도 두 사람은 꾸준히 연을 이어가며 끌어주고 당겨주는 사이가 됐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국방부 장관으로 임명된 이후 둘의 친분을 자주 언급했다고 한다. “김용현과 자주 소통한다” “오늘도 용산에 다녀와 만났다” 등의 말이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검찰 특수본 수사 기록에 따르면, 지난해 11월17일 김봉규 중앙신문단장 대령은 정성욱 정보사령부 대령에게 전화를 걸어 만남을 요청했다. 사람의 눈을 피해 트럭이 세워진 공터로 이동한 뒤 김 대령은 1장에 2쪽씩 인쇄된 A4용지 10장 분량의 문서를 주며 “노상원이 줬다”고 말했다.


10장 중 7장 분량은 부정선거 관련 내용이, 뒷부분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직원 명단과 해야 할 일 등이 기재됐다. ‘계엄이 선포되면 선관위에 가서 명단에 기재된 직원 약 30명을 잡아 선관위 내 회의실로 데리고 오라’는 내용이었다.

‘계엄이 선포되면’이라는 문구로 미뤄볼 때 비상계엄 선포를 전제로 작성된 문건인 셈이다.

닷새 뒤 문상호 정보사령관은 정 대령에게 “30명 추천자 명단 파일을 노상원 회장에게 보내라”고 지시했다. 명단은 고스란히 노 전 사령관의 손으로 들어갔다.

김용현 이름 팔아 부정선거 설레발?
“날 단장이라 불러라” 실세 놀이도

노 전 사령관은 문 사령관의 출장 일정에 간섭하기도 했다. 당시 문 사령관은 11월25일 대만으로 출국한 뒤 29일 귀국 예정이었는데, 이 소식을 들은 노 전 사령관이 흥분해 화를 내며 “이 중요한 시기에 무슨 해외 출장을 가느냐. 당장 취소해라”라고 말했고 당황한 문 사령관이 “국가 대 국가로 오래전부터 약속된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자 노 전 사령관은 “늦어도 11월27일 밤까지는 귀국해라”라고 지시했다.

계엄이 선포되기 사흘 전인 12월1일, 이른바 ‘햄버거 회동’이 열렸다. 노 전 사령관과 문 사령관을 비롯한 정 대령, 김 대령은 경기도 안산의 한 프랜차이즈 햄버거 가게서 비상계엄을 사전 모의했다.


이날 노 전 사령관은 구체적인 임무 지시를 내렸다. ‘버스를 보내 선관위 인원을 버스에 태워 수방사 벙커로 보내라’ ‘ 방이 여러 개 있으니 인원별로 나눠 넣고 못 나오게 해라’ ‘노태악 선관위원장은 내가 X지면 된다’ 등의 내용이었다. ‘애들(선관위 직원) 잡을 때 말을 안 들으면 위협해라. 케이블타이, 니퍼, 망치, 복면이나 두건, 야구방망이, 테이프를 준비하라’는 지시도 내렸다.

이를 전해 들은 이들은 해당 물건은 구입하지 않고 부대 내에 있던 것을 준비했다.

노 전 사령관은 자신을 ‘단장’이라고 부르게 시켰다. “나중에 선관위 직원을 수방사로 이동시키고 나면 전부 내가 지시할 테니 내 말만 따르면 된다”며 진두지휘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 전 사령관의 뻔뻔한 행보는 비상계엄 선포 당일 정점을 찍었다. 문 사령관은 진술서를 통해 오전 10시경 노 전 사령관이 전화해 “금주 중 야간에 임무가 있을 수 있다. 1개 팀 준비시켜라. 각별히 보안을 유지해라”고 신신당부했다. 점심 무렵에는 “2개팀 편성하고 오후 9시30분경 소집해 대기해라”라고도 말했다.

내란중요임무 종사자로 지목된 여인형 전 국군방첩사령관은 노 전 사령관의 번호를 전달하기도 했다.

“말한 거 준비해” 니퍼, 망치, 복면…
외부인 한마디에 일사불란 ‘착착’

정 대령이 “정보 사령관에게 연락이 왔다”고 말하자 여 사령관이 “걔는 또 뭐야, 뒷번호 뭐야”라고 한 뒤 “이 사람 아니야. 내가 알려준 번호 적어봐. 노상원 장군이야”라고 말했다. 여 사령관과 노 전 사령관이 사전에 접촉한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 사령관은 검찰 진술에서 당시 상황을 인정하며 “비상계엄이 선포된 이후 김 전 장관이 저에게 ‘선관위에 나가는 사람에게 노 전 사령관을 연결하라’고 했다”며 “그 말을 듣고 ‘노상원이 왜 나오나’ 생각했다”고 진술했다. 단순히 김 전 장관과 노 전 사령관이 잘 아는 사이니 막연히 지시를 따랐다는 것이다.

이날 노 전 사령관과 정 대령 간의 통화에는 “아이X 너네 아직도 출발 못한 거야? 너네가 와서 빨리 받아” 같은 이야기가 오갔다. 서너 번 통화가 오간 뒤 노 전 사령관은 “우리가 여기(선관위) 확보했으니 와서 포렌식 떠”라고 말했다.

정 대령은 추후 법적 문제를 걱정해 “우리가 무슨 능력이 있어 포렌식을 하냐”고 말하자 노 전 사령관은 “너희가 할 수 있다던데? 오면 카피(복사)해서 분석할 거라는데?”라는 말을 반복했다.

사태가 이렇게 될 때까지 그 누구도 노 전 사령관의 존재 이유를 묻지 않았다. 그저 문 사령관이 “김 전 장관의 지시”라고 말하니, 당연히 노 전 사령관이 적법한 절차를 걸쳐 부정선거 의심 사실 확인 업무를 돕고 있다고만 생각한 것이다.

김 대령 역시 진술을 통해 “민간인이 현직 사령을 돕게 하는 것이 이상하다고 느꼈지만 문 사령관이 같은 지시를 하니, 따르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했다.


노 전 장관이 진급을 미끼로 사람들을 꿰어냈을 것이란 추측도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장군으로 진급할 수 있다는 등 이야기를 하며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수차례 한 정황이 드러난 것이다.

진급 미끼로

비상 계엄이 해제된 12월4일 새벽, 이들은 노 전 사령관으로부터 어떤 연락도 받지 않았다. 김 전 장관이 노 전 사령관에게 전화해 “상원아, 이제 어떡하냐”라는 말을 들었다는 진술이 전부다.

노 전 사령관은 ‘단장’ 대신 ‘비선 장관’이라는 꼬리표를 달았다. 든든한 뒷배로 여겼던 이들도 몽땅 수사 대상에 올랐다. 지난 2월 첫 공판 재판서 노 전 사령관 측은 “내란죄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했지만 오랫동안 준비해 온 노 전 사령관의 행보에는 흔적이 남아 있다.

비공개로 이뤄지는 재판은 현재 진행형이다. 민간인 신분으로 나라를 발칵 뒤집은 대가를 기다릴 일만 남았다.

<hypak28@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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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단독] 국방부, 내란 문건 ‘대청소 프로젝트’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김철준 기자 =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국방부 문건이 대규모로 파쇄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조치는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의 지시로 이뤄졌다. 오 전 기획관은 검찰 특수본과 재판서 정보사와 수사2단 인사안의 문제점을 증언했던 인물이다. 자신이 비상계엄에 적극적으로 가담한 사실을 숨기기 위해 수사에 협조한 것으로 의심되는 대목이다. “올해 초 신년맞이 대청소라면서 문서를 대량으로 파쇄했다.” <일요시사>와 접촉한 국방부 직원들의 말이다. 파쇄된 문건들은 12·3 내란 사태와 관련된 자료라고 한다. 지시자는 오영대 전 국방부 인사기획관이다. 검찰 수사에 협조했던 인물로 알려져 있으나 실상은 다르다는 게 군 내부자들의 주장이다. 뭘 숨기나 안규백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말 취임하면서 시작한 첫 번째 군 개혁은 인사다. 신임 인사기획관에 일반 공무원 출신인 이인구 군사시설기획관을 임용한 건 안 장관이 강조해 왔던 ‘군 문민통제’와도 맞닿아 있다. 인사기획관은 본래 예비역 장성이 맡아왔다. 이 신임 기획관의 전임자였던 오 전 기획관도 예비역 준장 출신이다. 군 내부에서는 국방부에 여전히 12·3 내란 사태에 협조한 군인들이 남아 있다고 지적한다. 핵심으로 인사기획관실의 총괄과이자 인사기획관의 일정, 예산 등을 모두 관리하는 인사기획관리과가 언급된다. 다수의 국방부 관계자들은 “오 전 기획관은 물러났지만 책임져야 할 다수의 인물이 아직 자리를 보전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 부서의 간부들은 전부 육군사관학교 출신이다. 과장 김모 대령은 오 전 기획관이 대령이었을 때 소령으로 근무했고, 총괄 이모 중령은 오 전 기획관이 특전사 여단장을 역임했던 1공수여단서 중대장과 707중대장을 거쳤다. 장군인사팀장 김모 대령은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이 수도방위사령관으로 근무했던 시절 비서실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김 전 장관과 가깝거나 육사 출신인 이들이 국방부 인사의 핵심부서인 인사기획관리과에 포진하면서 계엄 실행을 위한 보직 이동이 이뤄진 셈이다. 김 전 장관은 실제 대통령경호처장일 때부터 노상원 전 국군정보사령관과 군 인사에 대해 논의했다. 직무에서 배제되지 않은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장관이 모든 책임을 오 전 기획관에게 묻는 형식으로 퇴직을 시켰으니 우리는 지시를 받아 어쩔 수 없이 한 것처럼 조용히 지내면서 정부초기 개혁의 소나기만 피하면 진급 가능’이라며 서로서로 쉬쉬하고 있다고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인사기획관리과 간부들은 내란 이후인 지난해 12월 중순 오 전 기획관의 지시에 따라 문건 파쇄를 계획했다. 김 전 장관이 물러난 이후 인사기획관리과장 김 대령 및 총괄인 이 중령 외에는 계획되지 않은 대면보고는 금지했고 내부 보안에 심혈을 기울였다. 인사과 간부들 계엄 실패 후 12월 계획···1월 파쇄 “지시자는 검찰 수사 응했던 오영대 전 인사기획관” 한 달여 뒤 이 중령은 모든 과에 ‘신년맞이 대청소’를 하라고 전파했다. TF 자리 배치와 오래된 문건을 정리한다며 유독 인사기획관리과만 복도로 책상을 빼고, 대량 세절이 가능한 세절실을 예약해 엄청난 양의 문서들을 파쇄했다. 여기엔 내란 핵심 파일도 포함된 것으로 파악됐다. 안 장관은 이와 관련해 국회에서 오 전 기획관에게 여러 차례 질문한 바 있다. 당시 오 전 기획관이 당황해하며 우물쭈물하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이 퍼지기도 했다. 이 중령은 동영상을 보며 웃는 직원들의 명단과 안 장관에게 제보한 인물을 색출하기 위해 탐문 활동을 벌여 오 전 기획관에게 추정해 보고했다. 이들은 모두 오 전 기획관으로부터 승진추천, 성과상여금, 각종 포상 등 인사상 불이익을 본 것으로 전해진다. 이들이 문건을 파쇄한 이유는 내란에 적극적으로 가담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내란 당일 오후 10시가 넘은 시각임에도 퇴근하지 않고 사무실에 있던 오 전 기획관의 지시를 받은 이 중령은 각 과의 총괄 담당자들을 소집해 ‘계엄 선포가 됐는데 선제적으로 인사 관련 조치를 왜 안 하냐’ ‘합참에는 계엄사령부가, 지작사령부에는 지역계엄사령부가 곧 창설될 텐데 각 군 본부 및 지작사와 인사 지침을 협의해 계엄령 취지에 맞게 배포하라’고 강조했다. 특히 오 전 기획관은 계엄 해제 결의안이 국회 본회의 테이블을 통과했음에도 합동참모본부 전투통제실에서 이 중령에게 “(계엄이) 해제되긴 했는데 다시 시행될 수도 있으니 빨리 계엄사 창설 지원을 위한 인사 조치를 완성하고 지작사 병력에 대한 휴가 지침 및 통제 등 건의 사항을 받아보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오 전 기획관은 내란 직전까지 김 전 장관의 의중에 따라 군 인사를 반영했다. 최근 내란 특검팀이 군 장성급 인사 자료 확보에 나선 것도 이에 관해 들여다보기 위한 것으로 확인됐다. 특검팀은 최근 국방부 장군인사팀과 육군본부 장군인사실 등을 압수수색해 해당 부서 내 인사 관련 파일 등을 확보했다. 정치권에선 지난 2023년 11월과 지난해 4월 이례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진급에 절박한 군 인사들을 계엄 실행 세력으로 활용했단 의혹이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윤석열정부 장군 인사는 특이하고, 이례적인 경우가 유독 많았다”며 “인사를 통해 군을 장악하고, 내란을 준비했다는 의혹 관련 특검의 철저한 수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2·3차 계엄 대비 문건 없애” 증거 인멸 국회서 해제 불구 지작사와 인사 논의? 내란중요임무종사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 이진우 전 수도방위사령관, 곽종근 전 특수전사령관은 지난 2023년 11월 인사에서 소장에서 중장으로 진급했다. 박안수 전 계엄사령관은 ‘75주년 국군의 날 행사기획단장 겸 제병지휘관’ 등 한직에서 2023년 10월 육군참모총장에 발탁됐다. 지난해 4월엔 지휘부에 이어 작전본부 인사가 이어졌다. 원천희 당시 육군 소장이 4차 진급으로 합참 정보본부장으로 승진했고, 이승오 소장은 군단장을 거치지 않고 합참 작전본부장으로 진급했다. 안찬명 당시 육군22사단장은 임명 5개월 만에 합참 작전부장으로 보직을 옮겼다. 통상 사단장은 1년 반~2년가량 보직을 맡는다. 군 안팎에서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왔던 이유다. 경질 위기이던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은 유임됐다. 그는 지난해 6월 정보사 군무원의 블랙요원 명단 국외 유출 사건 및 박민우 전 정보사 100여단장과의 갈등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섰다. 당시 국방부 장관이던 신원식 전 안보실장은 지난해 8월 국회에서 “후속 조치를 강하게 할 생각”이라고 언급했지만, 다음 달 본인이 장관직에서 물러났다. 검찰 비상계엄 특별수사본부는 군 관계자에게서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이 장군들 인사에 대해 논의했고 오 전 기획관에게 전달됐다”는 진술을 확보한 바 있다. 위기감을 느낀 오 전 기획관은 특수본 수사에 적극적으로 협조하기 시작했다. <일요시사>가 입수한 오 전 기획관의 특수본 진술조서를 보면 그는 “신원식 (전 국방부) 장관이 저와 원천희 국방부 정보본부장에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보직해임·정보사령관 교체 검토를 지시했으나 지난해 9월6일, 김 전 장관이 취임하면서 문 전 사령관에 대한 ‘현 보직 유지’를 지시했다”며 “납득하기 어려운, 이해하기 어려운 인사였다”고 했다. 앞뒤 달랐다 오 전 기획관은 “(문 전 사령관이 박 준장으로부터 고소당한 혐의가)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지만 문 전 사령관에 대한 인사 조치는 없었다”며 “공론화된 문제고 어느 정도 사실로 확인됐는데도 이렇게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kcj512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