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감은 김만배 입 열려는 이유

침대서 계산기 두드리는 키맨

[일요시사 정치팀] 정인균 기자 = 대장동 퍼즐의 ‘마지막 한 조각’ 김만배씨가 눈을 떴다. 김씨는 지난달 14일, 경기도 수원시 율전동 인근 도로서 본인의 차량을 주차한 뒤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 그의 변호인이 이를 발견해 수원 아주대병원 응급실로 옮겼다. 경찰과 소방당국은 그가 수차례 걸쳐 흉기로 목과 가슴 등에 스스로 상처를 입힌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의 의미심장한 문자메시지를 발견한 변호인이 빨리 119에 신고한 덕분에 김씨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신고를 받고 도착한 의료진이 적절한 조치를 취한 덕분에 김씨는 당일 제 발로 걸어나올 정도로 건강이 호전됐으나, 몇 일 뒤 폐에 통증이 있다며 경기도 모처 병원에 재입원했다. 약 2주간 입원치료를 받던 김씨는 지난달 31일, 옮길 병원을 찾지 못해 현재는 자택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극단적
몇 번째?

병원 측은 김씨의 상처가 알려진 것보다 크지 않으며 전치 4주의 진단서를 끊어줬다고 밝혔다. 김씨는 4주간 치료를 충분히 받은 뒤 이번 달 중순쯤 재판을 받을 예정이다.

<일요시사>가 만난 몇몇 소식통에 따르면, 안정을 되찾은 김씨는 현재 침대에 누워 열심히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그가 두드리고 있는 계산기는 ‘입을 열 경우’와 ‘열지 않을 경우’를 계산하는 복잡한 계산기다.

정계 전문가들은 그가 입을 열 경우 이 대표의 정치생명이 끝날 것이라 보고 있고, 열지 않을 경우엔 윤석열정부의 검찰을 비롯한 여권 전체가 곤경에 처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씨는 대장동 특혜 의혹이 처음 불거졌을 때부터 꾸준히 언급됐던 ‘주범’ 중 한 사람이다. 천화동인 1호의 실소유주가 본인이라고 말한 최초의 사람이며, 검찰이 유력하게 보고 있는 대장동 일당의 우두머리격 범죄 혐의자기도 하다. 

1992년부터 기자 생활을 이어온 김씨는 약 30년간의 기자 경험을 토대로 정계와 법조계 인맥을 두루 형성해왔다. 검찰은 이때 쌓은 인맥을 통해 대장동 개발사업에서 각종 민원과 허가를 해결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또 검찰은 대장동 일당과 정치인, 법조계 인사들을 대장동 개발사업에 끌어들인 인물도 김씨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김씨는 2014년 한 경제지 법조팀에서 근무하던 중 당시 성남시장 재선에 성공한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와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를 처음 만났다. 김씨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 대표를 “인터뷰 외에는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라고 둘러댔지만, 여러 정황들은 그와 이 대표 간의 연결고리가 더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권순일 전 대법관과의 연결고리가 그중 하나다. 권 전 대법관은 2020년 7월,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상고심 재판에 참여했던 인물로 김씨와 선후배 사이다. 그는 이 대표의 재판 이후 두 달 뒤인 9월 퇴임 후 월 1000만원 이상의 고소득을 받는 화천대유의 고문으로 재직했다.

공교롭게도 김씨 회사인 화천대유에서 일한 점, 퇴임 직전 성남시장이었던 이 대표의 재판에 참여했던 점은 많은 이들의 의심을 샀고, 정계에서는 곧 권 전 대법관이 이 대표의 재판에 공정하게 참여했는지를 두고 공방이 벌어졌다.

국민의힘 이양수 선대본부 수석대변인은 지난 3월 논평에서 “한 언론의 단독 보도를 통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가 대장동 설계자 이재명 후보를 살려내기 위해 권 전 대법관을 포섭한 상황들이 새롭게 드러났다”며 “검찰에 제출된 녹취록에서 김만배가 2020년 3월 동업자 정영학 회계사에게 ‘내가 대법관한테 물어보니 이것도 금액에 상한선이 없는 거고’라고 이야기했다.


남욱 변호사 역시 지난해 10월 검찰에서 조사를 받으며 “‘2019년부터 권 전 대법관에게 50억원을 줘야 한다는 말을 하기 시작했다’고 진술했다”고 주장했다.

대장동 퍼즐 핵심 스모킹건의 고민
이 도우미? 저격수? 얼마 안 남았다

당시 국민의힘 측의 문제 제기처럼, 권 전 대법관은 이 대표의 재판 과정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위치에 있었다. 이 대표는 2012년 분당구보건소장 등에게 친형의 강제입원 절차를 밟도록 지시해 ‘직권남용 혐의’를 받은 바 있다.

문제는 2018년 지방선거를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방송 토론회에서 상대 후보가 이 대표에게 “형님을 정신병원에 입원시키려고 하셨냐. 보건소장 통해서 입원시키려고 했느냐”는 질문에 “그런 일 없습니다. 저보고 ‘정신병원에 형님을 입원시키려 했다’ 이런 주장을 하고 싶으신 것 같은데 사실이 아닙니다”라고 답변해 논란이 일었다.

상대 후보 캠프와 보수진영은 당시 이 대표의 답변이 ‘거짓말’이라고 판단했고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 공표 혐의 등으로 선거 직전인 2018년 6월 10일, 법원에 이 대표를 고발했다. 검찰은 같은 해 12월, 친형의 강제입원 등 3개의 사건에 대한 허위사실 공표 등의 혐의로 이 대표를 재판에 넘겼다.

이 대표의 입장은 한결같았다. 그는 친형의 입원은 강제가 아닌 정신질환자에 대한 적법한 입원이었으며 공무집행의 일환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검찰은 이 대표가 강제로 입원을 종용했고,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의도적으로 유권자들에게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문을 통해 “선거인의 정확한 판단을 그르칠 정도로 의도적으로 사실을 왜곡한 것이라고 평가할 정도는 아니다”라며 이 대표의 손을 들어줬다. 안심하고 있던 이 대표에게 긴장감을 던져준 건 2심 재판부였다.

2심 재판부는 1심 결과를 뒤집으며 검찰의 손을 들어줬다. 재판을 맡은 수원고등법원 형사 2부(임상기 부장판사)가 원심의 무죄를 파기하고 벌금 300만원을 선고한 것이다.

다시
구세주?

2심 재판부는 이 대표가 지방선거 과정에서 2002년 검사를 사칭한 전력이 있는데도 방송에 나와 이를 부인한 점, 친형을 입원시키기 위해 보건소장 등에게 강압적으로 지시한 점, 또 방송에서 해당 내용에 대해 부인한 점을 모두 문제 삼으며 유죄를 선고했다.

판결문에서 재판부는 “정신보건법에 따른 절차 진행을 지시하고 이에 따라 형에 대한 입원 절차 일부가 진행되기도 한 사실을 일반 선거인들에게 알리지 않기 위해 이를 의도적으로 숨겼다고 봄이 타당하다”며 유죄 판결을내렸다. 유죄 선고를 받아든 이 대표는 한동안 자리를 지키며 충격을 감추지 않았다.


이때 상당수 정계 전문가들은 이 대표의 정치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3심에서 2심 재판부의 결과를 뒤집는 경우가 드물기도 한 데다, 문재인 전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운 뒤 민주당 지지자들로부터도 외면받던 이 대표가 정치적으로 재기하기엔 무리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또, 선출직 공무원은 재판에서 유죄 확정 판결을 받으면 5~10년간 피선거권까지 박탈되기 때문에, 재판에서 유죄를 선고받은 많은 정치인들은 그대로 정치 은퇴 수순을 밟는 경우가 많았다.

궁지에 몰린 이 대표를 구해준 것이 3심 재판부였고, 그중 한 명이 권 전 대법관이었다. 대법원은 이 대표에 대한 판결을 전원합의체 판결을 통해 결론지었다. 

전원합의체 하에서는 대법원장이 재판장이 되고 대법관 총 인원의 3분의 2가 재판에 참여한다. 총 12명이 참여한 이 대표의 재판에서는 양측의 의견이 팽팽하게 엇갈렸던 것으로 알려졌다. 결과는 7대5로 이 대표의 승리였다.

법조계에 따르면 당시 선임 대법관이었던 권 전 대법관이 사실상 캐스팅 보터 역할을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한 법조계 인사는 <일요시사>와의 전화 통화에서 “전해 듣기론 당시 5대5로 팽팽히 갈린 상황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권 전 대법관이 이 대표 측의 손을 들어줬고, 대법원장이 관례에 따라 같은 표를 던진 것으로 안다”며 “따라서 사실상 권 전 대법관이 판결의 ‘키맨’이었던 셈”이라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후에 권 전 대법관이 화천대유서 일했다는 사실이 보도되자 많은 이들은 권 전 대법관의 ‘이재명 판결’에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었다. 국민의힘 측과 정치평론가들은 김씨와 이 대표, 그리고 권 전 대법관 간 연결고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재명냐
돈이냐

현재 이 대표가 처한 위기 상황은 2심 선고 직후의 상황과 거의 흡사하다. 이 대표의 측근인 김용 전 민주연구원 부원장과 정진상 당 대표실 정무조정실장은 대장동 일당으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현재 구속 기소된 상태며 남욱 변호사와 유동규 전 성남개발도시공사 기획본부장은 연일 이 대표에 대한 폭로를 이어나가고 있다.

유 전 본부장은 출소 후 매일같이 폭로를 이어나가는 중이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서 “이재명은 다 알고 있었다. 모를만한 사람이 아니다”라며 “이재명과 정진상이 핵심으로 태양과 수성 정도라면 나와 김용은 목성 정도”라고 폭로했다. 그는 이 대표가 선거자금 흐름, 즉 뇌물을 받아 정치자금으로 사용한 정황을 모두 ‘알고 있었다’고 주장하며 이 대표에 대한 뇌물죄를 주장하고 있다.

유 전 본부장은 2014년 이 대표가 성남시장 재선을 앞두고 김 전 부원장에게 1억원을 줬다고 주장했다. 뿐만 아니라 2013년과 2014년, 정 전 실장에게는 명절 떡값 명목으로 3000만원을 건넸다고 주장했다. 정 전 실장은 유 전 본부장으로부터 총 2억400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상태다.

남 변호사의 주장 역시 윤 전 본부장의 폭로와 맥락을 같이 한다. 그는 “(대장동 사업)당시 성남시장이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의사에 따라 모든 것이 이뤄진 것으로 알고 있다”며 “최종 권한은 시장에게 있는 것이다. 유동규가 약속해서 나는 믿었지만 약속은 지키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어느 순간부터는 유동규 위에 있는 분들에 의해 사업이 진행된다는 걸 알고 있었다”고 덧붙였다.

즉, 대장동 개발에 관한 모든 결정권은 이 대표에게 있었으며 유 전 본부장을 비롯한 나머지 실무진은 이 대표의 뜻을 전하는 매개체 정도라는 것이 남 변호사의 주장이다. 그는 “당시엔 나도 책임이 몰리는 걸 방어하려고 좀 과장되게 진술했다. 법정서 솔직히 말하겠다”며 법정 싸움을 예고했다.

그러나 <일요시사>와 만난 법조계 전문가는 이들의 주장이 힘을 받으려면 김씨의 주장까지 더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전문가는 “폭로의 토대는 모두 김씨의 주장과 상반되는 것들로, 두 사람 모두 김씨로부터 들은 사실을 기반으로 폭로를 이어가는 점도 눈에 띈다”며 “김씨에게 전해들은 사실을 기반으로 폭로하고 있는데, 이는 김씨가 부정해버리면 그만인 일”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유 전 본부장과 남 변호사의 증언들은 모두 ‘직접’ 확인하지 않은 사실이 대부분이다. 그들은 ‘연결고리’ 역할을 자처했던 김씨로부터 대부분의 사실을 ‘전해 듣고’ 행동했다고 진술하고 있다.

계좌추적팀 신설 압박 수위 높여
수상한 자금 흐름 자료 넘겨받아

또 모든 혐의자가 만장일치로 사건의 정황을 설명하는 것과 이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리는 부분은 재판에서 상당한 차이가 있다. 상반된 주장을 하는 증인이 한 명이라도 있는 경우, 재판부가 무죄 추정 원칙을 따라가는 경우가 종종 있다는 것이 법조계 인사의 설명이다.

만일 세 명의 입이 모두 맞춰진다면 증거 수준의 중요한 단서가 되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는 이 대표에게 유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법조계 출신의 한 민주당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김씨가 돈을 지키기 위해 일관된 주장을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했다. 이 인사는 “만일 부패방지법에 걸리게 되면 김씨가 대장동으로부터 벌어들인 모든 돈을 벌금으로 내야 한다”며 “책임자들에 대한 처벌은 물론 부당하게 얻은 돈을 국가가 강제로 회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즉, 김씨가 부패방지법에 걸리지 않기 위해 그동안 이 대표를 감싸왔고, 법원으로부터 법적 처벌은 받을지언정 돈은 내놓겠지 않겠다는 주의로 수사에 임해왔다는 것이다.

부패방지법에 따르면 공직자가 업무 처리 과정에서 알게 된 비밀을 이용해 재물 또는 재산상 이익을 취득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취득하게 한 때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범죄로 얻은 수익은 몰수·추징한다. 

만일 김씨가 남 변호사, 유 전 본부장과 합세해 이 대표의 혐의를 증언한다면 그 자체로 부패방지법에 걸리게 돼있어 ‘범죄로 얻은 수익’ 모두를 국가에 헌납해야 한다. 검찰은 화천대유 대주주 김씨의 구속영장에 750억원의 뇌물공여 혐의를 적시했다. 

검찰은 김씨가 유 전 본부장에게 2015년 개발이익의 25%(약 700억원)를 주기로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씨가 유 전 본부장에게 실제로 전달한 5억원과 곽상도 전 국민의힘 의원 아들에게 전달한 50억원에 더해 약속한 700억원을 공소장에 포함시킨 것이다.

이들은 또 해당 자금을 추적하기 위해 별도의 ‘계좌추적팀’을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중앙지검은 반부패수사1부를 주축으로 기업들의 금융범죄를 담당했던 계좌추적팀을 만들어 대장동 개발로 얻은 불법자금을 추적하고 있다.

이 계좌추적팀은 현재 금융정보분석원(FIU)으로부터 ‘수상한 자금 흐름’ 자료를 모두 넘겨받아 조사 중이다. 김씨의 마지막 보루가 ‘돈’이라는 것을 간파한 검찰은 범죄혐의를 입증해 그의 모든 돈을 환수할 의지를 내비쳤다.

물론 김씨가 두드리고 있는 계산기에는 이 부분도 포함돼있다. 정치권은 최근 김씨가 극단적 선택을 시도한 것도 이 같은 배경이 작용했을 것이라 보고, 김씨의 입이 열릴 날도 얼마 남지 않았을 것으로 분석한다. 

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한 라디오와의 인터뷰서 “어쨌든 검찰은 이 대표가 이 모든 걸 알았고, 그 이익을 이용했고, 이런 직접 관련성을 어떻게든 연결시키고 싶어 한다”며 “그분이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진술 거부, 묵비권 행사하면서 진술로는 막힌 상태”라고 현재 수사 상황에 대해 분석했다. 조 의원은 “(검찰이)이렇게 대대적으로 나서는 것은 다 털어버리겠다, 당신 사법 절차가 다 끝나면 ‘알거지’를 만들어주겠다는 시그널(을 보낸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단은 
묵비권

유 전 본부장과 남 변호사처럼 어차피 돈을 못 지킬 바에야 형량이라도 줄이려 할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시각이다. 김씨의 입에 여러 사람의 정치적 명운이 달려 있다. 검찰은 그의 입을 열기 위해 오늘도 김씨의 ’돈‘을 추적 중이다.
 

<ingyu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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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회 문턱을 넘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이 사법부를 강타했다. 검찰은 1999년 특별검사제 도입 이후 권한을 조금씩 잃다가 올해 해체가 결정됐다. 검찰이 26년 전 느끼다가 현실이 된 불안을 이젠 사법부가 느낄 차례일지도 모른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등 범여권이 지난 24일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내란 사건만 맡는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운영한다”는 취지의 예규 제정 방침을 밝혔다. 특별재판부 영장전담 법관 하지만 민주당 박수현 수석대변인은 같은 날 논평을 통해 ‘24일 처리 방침’을 밝혔다. 이날 법안 처리는 이미 예고된 결과였다. 박 대변인은 지난 21일 오전 기자 간담회에서도 “민주당은 국회 본회의에서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을 예정대로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민주당이 원래 처리하려던 법안은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법’이었다. 이 법안이 통과됐다면,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맡을 특별재판부가 설치되고, 영장 심사를 맡을 특별영장 전담 법관이 따로 배정됐을 것이다. 이들은 국회·판사회의·대한변호사협회가 3명씩 추천한 위원으로 구성되는 9인 규모의 추천위원회의 2배수 추천과 대법원장의 임명을 거칠 예정이었다. 아울러 상고심에선 윤석열 전 대통령이 임명했던 대법관은 모두 제척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에 대해선 각계에서 위헌 논란을 제기했다. 그러자 민주당은 지난 16일 내용을 대폭 수정했다. 명칭도 특별재판부에서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 전담재판부 후보추천위원회는 법무부 장관·헌법재판소 사무처장 등 외부 인사를 제외한 후 법관으로만 구성될 예정이다. 추천위원회에 들어갈 법관 중엔 각급 판사회의·전국법관대표자회의가 포함된다. 전담재판부에 소속될 법관은 추천위원회·대법관회의를 거쳐 대법원장이 임명한다. 윤석열 전 대통령 등 12·3 비상계엄 주요 연루자들은 이미 형사재판 제1심을 받고 있다. 전담재판부는 항소심부터 맡을 예정이다. 대법원은 민주당의 공세에 맞서 반격에 나섰다. 대법원은 지난 18일 대법관 행정회의를 열어 ‘국가적 중요 사건에 대한 전담재판부 설치 및 심리 절차에 관한 예규’를 제정하기로 했다. 여기엔 “형법상 내란·외환죄와 군형법상 반란죄 사건을 전담해 집중 심리하는 전담재판부를 설치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대법원이 규정하는 전담재판부는 무작위 배당을 거쳐 사건을 배당받을 재판부가 지정되는 방식이다. 전담재판부로 지정된 재판부가 원래 맡던 재판은 다른 재판부로 재배당된다. 예규엔 “해당 재판부는 이후 내란·외환과 관련 없는 새로운 사건은 맡지 않는다”는 규정이 포함됐다. 하지만 민주당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박 대변인은 “사법부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을 왜 이렇게 늦게 했느냐”며 “왜 그동안 국민을 불안과 혼란에 빠뜨렸느냐”고 비판했다. 이어 “국회의 입법권을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맞춰야 한다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내란 전담재판부 신설이 갖는 ‘진짜 함의’ 대법원 예규 제정…반격 혹은 타협안 제시 민주당 정청래 대표도 같은 날 최고위원회의 중 “대법원이 헐레벌떡 자체 안이라고 내놨다”며 “더 일찍 해야 하지 않았느냐. ‘조희대 사법부’답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판했다. 국내 헌정사에서 특별재판부는 단 2회만 설치됐다. 제헌헌법 부칙엔 “이 헌법을 제정한 국회는 단기 4278년 8월15일 이전의 악질적인 반민족 행위를 처벌하는 특별법을 제정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국회는 반민족행위처벌법 등을 제정하고,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이하 반민특위)를 설치했다. 반민특위엔 특별검찰부와 특별재판부가 설치됐다. 특별검찰부는 검찰총장 등 9명으로 구성됐고, 특별재판부는 ▲국회의원 5명 ▲법조인 6명 ▲사회 저명 인사 5명 등 총 16명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국회가 선출했다. 두 번째 특별재판부는 1960년 4·19 혁명 이후 개정된 제4차 개정 헌법을 근거로 설치됐다. 당시 개정 헌법엔 “3·15 부정선거 및 4·19 혁명 관련자들과 관련된 형사사건을 처리하기 위해 특별재판소와 특별검찰부를 둘 수 있다”는 취지의 부칙이 포함돼있었다. 이후 설치된 특별재판부는 부정선거관련자처벌법 제정을 거쳐 설치됐다. 민주당조차 ‘특별재판부’를 ‘전담재판부’로 수위를 낮춰 처리했다는 이유로 내란 특별재판부에 대해 불거진 위헌 시비를 거론한다. 법원은 ‘무작위 전산 재판 배당’ 원칙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특정 재판부에 특정 재판을 배당한다”는 취지의 특별재판부에 대해선 기본적으로 위헌 시비가 불거질 가능성이 높다. 아직 헌법재판소가 관련 합헌·위헌 여부를 가린 적도 없다. 하지만 헌법 제27조는 “모든 국민은 헌법·법률이 정한 법관에 의해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제103조는 “법관은 헌법·법률에 의해 양심에 따라 독립해 재판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재판 배당의 무작위성은 재판에 대한 외부의 부당한 압력·영향력으로부터 법관을 보호해 재판의 공정성을 유지하기 위해 세운 원칙이다. 이는 위헌 시비가 불거진 핵심 이유였다. 그래서 과거엔 특별재판부를 설치하기 전에 개헌 과정 중 헌법 부칙에 그 근거를 규정했다. 헌법 부칙은 헌법 본문과 똑같은 효력을 가진다. 그래서 위헌 시비가 불거질 일은 없었다. 피해 가는 위헌 시비 하지만 위헌 시비를 피하려고 제시한 ‘내란 전담재판부’에 대해서도 논란이 이어졌다. 역설적으로 “기존 재판부 배당과 큰 차이가 없다”는 취지의 비판이 제기된 것이다. 사법부는 이미 무작위 배당의 예외를 운용하고 있다. ▲특허법원 ▲서울행정법원 ▲지역별 가정법원 등 특정 분야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법원이 따로 설치돼있는 것도 무작위 배당의 예외다. 또 각급 법원은 이미 지식 재산·환경·의료 등 특정 전문 분야를 전담할 재판부를 분류한다. 법원장 재량에 따라, 재판장들과의 협의를 거쳐 특정 사건은 ‘적시 처리 필요 중요 사건’으로 분류해 특정 재판부에 배당해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추진한다. 기소된 사건이 이미 진행 중인 재판과 사실 관계·쟁점·피고인이 같으면, 이미 진행 중인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에 배당한다. 물론 민주당이 거둘 수 있는 실익이 아예 없는 것은 아니다. 정 대표는 민주당이 ‘특별’을 ‘전담’으로 바꿔가면서도 서둘러 개정안을 추진하는 이유를 분명히 짚었다. 그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사법부와 지귀연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의 재판부는 내란·외환 사건의 심리를 의도적으로 침대 축구하듯 질질 끌었다”며 “조 대법원장은 경고·조치를 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이어 “보다 못한 입법부가 나서기 전에 사법부가 진작 내란 전담재판부를 설치했다면, 지난 1년 동안 허송세월하는 것을 보면서 국민이 분통 터지는 상황은 없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 대표의 주장 중 핵심 단어는 ‘조희대’와 ‘지귀연’이다. 민주당이 내란 특별재판부 설치를 추진할 당시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은 지난 9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지 부장판사를 지칭해 “재판의 공정성에 의구심을 갖도록 하는 인사들을 전보·징계한다면, 굳이 내란 특별재판부를 만들기 위한 입법 조치를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주장했다. 정 대표는 지난 15일 최고위원회의 도중 “조희대 사법부는 특검 수사 훼방꾼이 됐다”며 “조 대법원장이 지휘하는 대법원이 지난해 12월3일 내란에 동조한 건 아닌지 강한 의구심을 갖는다”고 지적했다. 사법행정사무를 총괄하는 조 대법원장의 권한 일부를 사실상 박탈하고, 지 부장판사를 내란 관련 재판에서 손 떼게 할 수 있다면, 민주당은 상당한 실익을 거둘 수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재판부 배당에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개입시키는 것이다. 힘 실어준 진짜 이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