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망신주기 재계 국감 노림수

올해는 누구를 죄인으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국정감사 시즌이 되면 재벌기업들은 숨죽일 수밖에 없다. 핵심 경영진이 줄줄이 소환되곤 했기 때문이다. 올해 역시 별반 다를 게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순 망신주기 수준에 불과한 무성의한 질의와 수위를 넘나드는 질타가 쏟아졌던 전례를 비춰보면 괜한 걱정이 아니다.

윤석열정부의 첫 번째 국회 국정감사가 지난 4일부터 시작됐다. 약 한 달 가까이 국감이 진행되는 수많은 재계 인사가 증인으로 이름을 올린 상태다. 일단 10대 그룹 총수 대부분이 출석자 명단에서 빠졌다. 실무를 담당하는 전문 경영인을 불러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게 총수들의 국감 불출석 이유로 작용했다. 

그나마 최정우 포스코 회장이 출석한 상황이다. 행정안전위원회 국감에서는 태풍에 따른 피해가 예상됐음에도 포스코가 막대한 피해(매출 2조4000억원 감소 추산)를 입은 것과 관련해 미흡한 점이 없었는지 등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줄줄이
소환

총수가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을 뿐, 재벌기업 핵심 경영진의 줄소환은 예고된 수순이었다. 이미 다수의 상임위원회 증인 명단에 기업인의 이름이 빼곡하게 차 있다. 

정무위원회는 오는 11일 열리는 금융감독원 국감에서 다수의 시중은행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출석 대상은 ▲이재근 국민은행장 ▲진옥동 신한은행장 ▲이원덕 우리은행장 ▲박성호 하나은행장 ▲권준학 농협은행장 등이다.


5대 시중은행장이 한꺼번에 정무위 국감에 참석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신문 요지와 신청 이유는 횡령·유용·배임 등 은행에서 발생하는 금융사고에 대한 책임과 내부통제 강화 등 향후 재발 방지 대책 마련 여부다.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황운하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제출받은 ‘은행 횡령사고 현황(2017~2022)’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 5대 은행에서는 총 65건, 844억2840만원 규모의 횡령사고가 발생했다. 

은행별로는 ▲우리은행 10건(736억5710만원) ▲하나은행 18건(69억9540만원) ▲NH농협은행 15건(29억170만원) ▲신한은행 14건(5억6840만원) ▲KB국민은행 8건(3억580만원)으로 나타났다. 이 가운데 회수된 금액은 61억9190만원으로 7.3%에 불과하다.

거액의 횡령사고가 끊이지 않으면서 은행이 내부 통제와 시스템 개선에 소홀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10조원 규모로 덩치가 커진 이상 외환거래 문제도 도마에 오를 전망이다.

이외에도 정무위원회는 GOS(게임 최적화 서비스) 사태 등을 질의하기 위해 노태문 삼성전자 사장을 증인으로 부를 예정이다. 회사 물적분할과 관련해 류진 풍산그룹 회장과 차동석 LG화학 부사장의 증인 출석 가능성도 제기된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이재승 삼성전자 생활가전사업부장(사장)을 증인으로 채택했다. 세탁기 불량 사태 등에 대한 설명을 듣겠다는 것이다. 또 IRA 대응 질의를 위해 공영운 현대차 사장을, 태풍 피해 관련 질의를 위해 정탁 포스코 사장을 불렀다. 

또 시작된 기업 군기 잡기
맹탕 진행 재현되나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는 농어촌상생협력기금과 관련해 한종희 삼성전자 DX부문장(부회장)을 참고인으로 소환해 질의한다. 증인대에는 임형찬 CJ제일제당 부사장을 세워 쌀값 하락에도 제품 가격을 인상한 배경 등에 대해 듣는다.

환경노동위원회 증인으로는 원·하청 임금 구조 개선 문제와 관련해 박두선 대우조선해양 사장이 채택됐다. 광주 아이파크 외벽 붕괴 사고와 관련해 최익훈 HDC현대산업개발 대표, 증정품 발암물질 유출 여부를 두고 송호섭 스타벅스코리아 대표가 증인으로 서게 됐다.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에서는 남궁훈 카카오 대표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 수장, 유영상·구현모·황현식 등 이동통신 3사 대표가 거론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는 숙박 애플리케이션 과다 수수료 문제 등을 이유로 배보찬 야놀자 대표, 정명훈 여기어때 대표 등을 부른다.

호통 쳐야
존재감?

증인 신청 과정에서 여야 간 대립은 심화되는 양상이다. 여당은 기업들이 생존절벽으로 내몰리고 있는 만큼 과도한 기업인 국감장 부르기를 자제해야 한다는 입장인 데 반해 야당은 기업인에 대한 국감은 “성역이 없다”는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앞서 국민의힘 주호영 원내대표는 지난달 23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무분별한 민간인 기업 회장들에 대한 증인 요구는 국회 또는 국회의원의 갑질이 아닌지 돌아봐 주시기 바란다”며 “민주당의 무리한 증인 요구엔 단호히 대응하고 경제가 어려운 만큼 기업인들에 대한 무분별한 망신주기나 여론몰이를 위한 증인 채택은 최대한 방지하는 협상에 임해달라”고 당부했다.

반면 민주당은 기업인의 국감 출석 당위성을 내세우고 있다. 민주당 이동주 의원은 “(증인 요청은)불공정한 거래와 관련된 사건들을 들여다보면서 기업을 불러 조사하겠다고 하는 것”이라며 “여당에서 기업인들을 부르지 말자는 것은 기업 봐주기로 명백한 특혜”라고 주장했다.

기업인 다수가 국감 증인으로 출석이 예상되자, 재계에서는 이번에도 ‘기업인 망신주기’가 연출될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관련 없는 질문을 하거나 오랜 시간 기다리게 하는 행태에 대한 우려다. 기업인 소환 문제가 불거지더라도 기업들은 대놓고 불만을 표하지 못하는 을의 위치나 마찬가지다.

이런 이유로 국감 때마다 기업 대관 업무 담당자는 신경이 곤두설 수밖에 없다. 기업 핵심 임원이 어느 국감장에 불려나갈지 모르기 때문이다. 증인으로 채택된 기업인이 발언하게 될 내용을 사전에 파악해야 하는 것도 이들의 몫이다.

재계 관계자는 “일정이 빠듯한 기업인들이 국감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하고, 공개적으로 야단 맞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며 “그나마 총수가 불려오는 빈도가 줄었지만, 여전히 국회의원이 때리면 불려간 기업인은 맞아야 하는 구조인 건 변함없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국감 일정에 맞춰 기업인이 해외로 나가는 일이 잦은 사례를 막무가내성 국감 분위기 연결 짓기도 한다. 실제로 올해 국감 출석이 유력했던 상당수 기업인이 해외출장을 이유로 소환이 불가능해진 상황이다.

당초 정무위원회에서는 송치형 두나무 회장의 국감 증인 출석 여부를 저울질했다. 최근 ‘테라·루나’ 사태에 따라 가상자산 투자자보호 문제가 불거진 가운데, 국내 최대의 가상자산거래소인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 측에 관련 내용을 들어봐야 한다는 이유다.


하지만 송 회장은 하이브와의 합작법인 ‘레벨스(Levvels)’ 사업을 위해 미국으로 출국, 현재까지도 체류 중이다. 이를 놓고 국감 출석 회피를 위한 출국이라는 지적이 일었다.

변함없는
구태

5대 금융지주 회장들 역시 해외 일정을 이유로 국정감사를 피했다. 금융지주 회장들이 이달 말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국제통화기금(IMF)과 세계은행(WB) 연차총회에 참석하는 일정을 잡았다. 이 자리에는 ▲윤종규 KB금융 회장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함영주 하나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손병환 NH농협금융 회장 등이 자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국감 회피용 해외출장이 아니냐는 목소리를 내고 있다.


<heaty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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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