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희 vs 김혜경’ 국감 안주인 더비 관전 포인트

민생 버리고 답 없는 집안 털기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냉랭한 여야의 대치 전선이 더욱 심화할 양상이다. 국정감사가 코앞으로 다가왔는데, 여론전에만 몰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여야는 국정감사에서 ‘우리보다 네가 더 더럽다’에 방점을 찍고 서로 흠집내기에만 혈안이 돼있다. 정작 중요한 민생은 뒷전이다. 

국회가 본격적인 국정감사 시즌에 돌입한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은 벌써부터 서로를 견제하는 액션을 취한다. 국정감사는 어느 때보다 극심한 대립을 겪는 상황 속에서 열리게 된다. 4일부터 24일까지 총 21일간 쉴 새 없이 양보할 수 없는 레이스를 펼칠 예정이다. 여야 모두 치명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는 만큼 국감 스타 탄생보다는 ‘지키기’에 몰두할 것으로 보인다. 

너무 뻔한
국정감사

경제가 어려워지고, 물가는 지속적으로 상승한 탓에 양당은 반드시 민생감사를 하겠다고 밝혔다. 최근 양당이 꾸준하게 언급하고 있는 키워드는 줄곧 민생이다. 그러나 막상 속을 들여다보면 사실상 상대 당의 리스크로 공격 방향이 집중돼있다. 처리해야 할 사안은 산더미인데, 양당은 여전히 여론전에만 몰두 중이다. 

당장 국민의힘은 윤석열 대통령의 해외순방 외교 방어에만 치중하고 있다. MBC에 항의 방문까지 했지만 뚜렷한 효과가 없다. 그러면서 더불어민주당의 공격에 만반의 대비를 하고 있다. 국정감사 사전 점검회의까지 열어 민주당의 공세를 대비하기 위한 방어막을 구축했다.

지난달 27일 종합상황실 현판식을 시작으로 국정감사를 철저히 준비하겠다는 심산이다. 윤석열정부의 첫 국정감사인 만큼 국민의힘에서도 바짝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국민의힘이 쥐고 있는 공격 카드는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사법 리스크와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논란이다. 일각에선 민주당을 압살할만한 확실한 공격거리가 아니라는 비판도 나온다. 

반면 민주당은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꺼냈다. 결국 양당 리스크를 통한 발목 잡기에만 나서고 있는 셈이다. 

국정감사는 윤정부와 이 대표를 사이에 두고 치열한 공방을 벌일 양상을 띤다. 양측 모두 가진 리스크가 적지 않은 탓이다.

대립이 극심할 것으로 예상되는 위원회는 운영위, 교육위, 법사위, 정무위, 국토위 등이 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운영위의 경우 김대기 대통령실 비서실장을 비롯해 김성한 국가안보실장, 김용현 대통령 경호처장 등 총 76명을 국정감사 9개 기관 증인으로 채택했다. 

대치 전운 고조…양쪽 다 긴장
대선의 연장? 끝없는 발목잡기

현재 대통령실은 윤 대통령의 외교 순방 논란 등 여러 악재에 직면해있다. 용산 대통령실 이전 비용, 윤 대통령 한남동 관저 이전, 경호 문제, 외교 순방 등이다. 

대통령실 이전 비용의 경우 이전 당시 500억원이면 충분하다는 발표와 다르다. 민주당 대통령실 의혹 진상규명단장인 한병도 의원에 따르면 2023년 예산 등을 분석한 결과 영빈관 신축 등 기존 예산인 1133억원보다 두 배가량 늘어난 이전 비용이 드는 것으로 확인됐다. 


즉각 여론에서는 ‘청와대를 왜 나왔냐’는 등의 날선 비판이 쏟아졌고, 결국 대통령실은 영빈관 신축을 철회한 바 있다. 

또 윤 대통령이 입주하는 한남동 관저에는 헬기 문제가 대두됐다. 해당 관저는 공간이 부족해 헬기 한 대만 이착륙 가능한 구조를 가졌다. 이런 탓에 2대를 띄워 합류하는 방식으로 비행을 동시에 하겠다는 방안을 검토했다. 

일각에서는 위장 효과가 감소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또 비상 시 집무실, 전용 병원으로 이송할 때 헬기 이용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 같은 여러 문제들이 터지면서 운영위 국정감사가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개막도 전에 국정감사 증인 출석 요구 안건을 상정하는 과정에서 여야가 윤 대통령의 비속어 논란과 MBC 보도를 둘러싼 정언유착을 두고 전체 회의가 20분 동안 정회되기도 했다. 

운영위에 이어 교육위 역시 첨예한 대립이 펼쳐질 것으로 전망된다. 교육위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김 여사를 소환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민주당 소속 8명 의원과 무소속인 민형배 의원이 찬성 표결을 해 단독 처리했다. 이 과정에서 여당 의원들은 “반민주적 행위, 입법 폭력”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증인 두고
파행 연속

민주당이 신청한 증인은 임홍재 국민대 총장, 장윤금 숙명여대 총장, 김지용 국민대 이사장, 국민대 연구윤리위원회 위원장, 구연상 숙명여대 기초교양학부 교수 등이 포함돼있다. 총 11명을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한 셈이다.

대부분 김 여사의 논문 표절 및 허위 학력 기재 의혹 때문에 신청한 증인들이다. 민주당에서 신청한 증인 대부분은 현재 해외로 출장을 떠난 상태다. 

민주당은 심지어 김 여사까지 국감장에 세우겠다며 총공세를 펼치겠다는 모습이다. 현재 김 여사의 허위경력 의혹은 검찰에 송치된 상태다. 경찰이 지난달 2일 혐의 없음으로 불송치를 결정했지만 고발한 시민단체가 검수완박법 시행 하루 전, 불송치 결정에 대해 이의를 신청한 결과다. 

허위 경력 논란은 지난해 대선 기간 불거졌다. 김 여사가 2007년 수원여자대학교에 교수 임용 지원서를 제출할 때 허위 경력을 기재하고 수상 경력을 부풀렸다는 의혹이다. 2002년부터 3년간 한국게임산업협회 기획팀에서 일했다고 표시돼있으나, 당시 해당 협회는 설립된 적이 없다는 게 의혹의 핵심이다.

또 서울 국제 만화 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및 대한민국 애니메이션 대회에서 상을 받았다고 기재돼있으나, 김 여사가 응모나 수상할 수 있던 조건이 아니었다는 의혹에 휩싸였다. 당시 김 여사는 기자회견을 열어 자신의 의혹에 대해 사과한 바 있다. 


이와 함께 국민대 박사학위 논문 표절 논란의 경우 최초로 국민대에서 표절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으나 교수 단체 등이 검증한 결과 점집 홈페이지에 실린 내용과 같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정보통신 용어 등에 대해선 사전 설명을 그대로 옮겨왔고, 여러 시험자료와 보고서를 파는 사이트에서 자료를 구매한 정황까지 드러났다. 교수 단체의 검증에 따르면 김 여사의 논문에 적힌 문장 860개 중 220개가 표절 문장이라고 파악했다. 교육위는 민주당이 꽉 쥐고 있는 만큼 가장 공을 들일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함께 민주당 법사위 소속 의원들 역시 김 여사를 국감장에 앉히길 원하고 있다. 김 여사를 불러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재산신고 누락 등의 의혹을 따져 묻겠다는 데서 비롯된 것. 

이 밖에 윤 대통령의 장모인 최은순씨, 도이치모터스 권오수 전 회장 등까지도 부르겠다는 의지가 가득하다. 

현재 김 여사는 윤 대통령의 가장 큰 리스크 중 하나라는 인식이 파다하다. 김 여사에 대한 특검 여론도 높다. 민주당이 김 여사를 국정감사에 끌어들인 이유다. 김 여사의 리스크가 커질수록 윤 대통령 또한 위기감이 고조되기 때문이다. 

국정은 뒷전
여론 재판만


법사위 소속 국민의힘 의원들은 김 여사 리스크 대응책으로 이 대표의 대장동 의혹과 배우자인 김혜경씨의 법인카드 유용 의혹을 꺼내 들었다. 증인으로 김씨를 증인으로 부르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직접 불러 법인카드 유용 혐의 등을 캐묻겠다는 셈이다. 

법인카드 유용 의혹 역시 대선 기간 불거진 의혹이다. 이 대표가 경기도지사로 당선된 2018년 7월부터 지난해 9월까지 경기도청 별정직 5급인 배모씨가 경기도청 법인카드로 음식값을 결제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는 게 핵심이다.

또 김씨가 지난해 8월 서울 음식점에서 민주당 인사 3명과 운전기사, 변호사에게 식사비 7만8000원을 결제했고, 선거법을 위반했다는 혐의다. 

한발 더 나아가 국민의힘 소속 법사위 의원들은 이 대표까지 압박하고 나서는 모양새다. 변호사비 대납 의혹과 관련해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쌍방울그룹 임원들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이 대표에게 변호사비 대납 의혹은 대장동 같은 최대 리스크 중 하나다.

이 전 부지사는 현재 쌍방울로부터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상태다. 그는 2018년 쌍방울 사외이사를 그만두고 난 뒤에도 쌍방울로부터 법인카드와 차량 등을 받았던 혐의를 받는다. 또 이 전 부지사와 함께 구속영장이 청구된 쌍방울그룹 부회장 A씨도 함께 구속됐다.

검찰은 이 전 부지사가 이 대표의 측근 인사로 꼽히는 만큼 이 대표 의혹 연결점에 대해 수사를 확대할 방침이다.

국민의힘은 해당 사안을 법사위 최대 쟁점으로 부각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반면 윤 대통령의 리스크인 김 여사를 방어하기 위한 대비책도 마련하고 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 민주당 박범계 의원까지 증인 신청을 하려는 움직임이 비친다. 이들을 증인으로 신청한 이유는 김 여사 방어를 위해서인 것으로 해석된다. 

민, 김 겨냥 윤 타격
국, 김 놓고 이 조준

민주당이 연일 김건희 특검법을 주장하지만 김 여사의 주가조작 사건은 추 전 장관과 박 의원이 장관 시절 수사했던 사안이기 때문이다. 다만 지금까지 거론된 증인들이 실제 국감장으로 출석할 가능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법사위는 민주당과 국민의힘 모두 힘을 주고 있는 위원회다.

그러나 양당이 힘을 준 만큼의 결과는 얻지 못해 지난해와 비슷한 전개가 펼쳐질 것으로 보인다. 증인 채택 불발로 파행될 가능성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이미 증인 채택을 두고 양당 간사 간 협의는 불발된 상태다. 현재 국민의힘은 한발 더 나아가 아예 이 대표를 증인으로 세우자는 의견까지도 나왔다.

정무위에서는 쌍방울그룹 유착 의혹과 관련해 이 대표 소환 카드를 만지작거렸다. 비록 무위에 그쳤지만 역시 변호사비 대납 의혹 문제 때문이다. 현재 쌍방울에서 전환사채 편법 발행 논란이 발생하면서 이 대표까지 연결 지으려는 의도인 것으로 풀이된다. 

문제는 이뿐만 아니다. 국민의힘에서는 성남FC 후원 의혹과 대장지구, 백현동, 위례지구 특혜 의혹을 부각시키려 하고 있다. 

국민의힘 국토위 의원들이 신청했던 증인 목록에는 성남FC 후원 의혹과 관련해 두산건설 이병화 전 CEO, 곽승환·송정호 CFO가 이름을 올렸다. 또 대장동 의혹과 관련해서는 화천대유 전 대표, 성남의뜰 대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전략 사업팀장 등을 증인으로 신청한 바 있다. 

그러나 민주당 반발로 증인 채택은 무산됐고, 대신 경기도 국정감사로 방향을 틀었다. 국민의힘 국토위 의원들은 경기도야말로 ‘이재명 국감’으로 만들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정치권에 따르면 경기도 국감은 경기도의 현안이 아닌 대장동·법인카드 의혹 등을 방점으로 찍고, 해당 자료를 요구하고 있다. 국토위 소속 의원들은 약 1000건에 달하는 자료를 요구했는데 이 중 절반이 이 대표와 관련된 자료인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본래 국감 취지는 무색하게 여야가 대치하는 국면을 보이자 정치권 일각에서는 탄식이 터져 나온다.  의미있는 국정감사가 아닌 여야의 대립만 더 키우는 꼴이 될 것으로 보는 시선이 가득하다. 

이번 국정감사로 양당이 오히려 리스크만 양산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국감이 민감한 이슈에 영향을 받는다지만 여야가 모두 말해오던 것과 반대로 민생은 자꾸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양쪽 다
상처뿐

한 정치권 관계자는 “여야 모두 리스크에만 집중할 경우 정쟁과 여론 재판의 맹탕 국감이 될 수도 있다”며 “일하는 국회의 모습을 보여주려면 여야 모두 민생에 방점을 찍어야 한다”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또 다른 국감 키워드 은행 횡령 사건

올해는 유독 은행권에서 발생한 횡령 사건이 많았다. 국회 역시 해당 문제를 국정감사에서 지적할 예정이다. 

따라서 KB국민은행, 하나은행, 우리은행, 농협은행, 신한은행 등 대표적인 5대 은행장이 증인으로 국감장을 찾을 예정이다. 

민주당 황운하 의원에게 금감원이 제출한 자료인 최근 5년간 은행의 횡령 사고 현황 자료에 따르면 국민은행 등 15개 은행에서 2017년 이후 98건, 총 911억 7900만원의 횡령 사건이 발생했다.

정무위 소속 의원들은 잇따른 횡령 사건이 발생하는 데 대책 마련과 책임론을 CEO들에게 질타할 것으로 보인다. 

이 밖에 정무위에서는 론스타 사태도 다룬다.

지난달 국제투자분쟁해결센터 중재판정부는 우리 정부가 론스타에 3000억원을 배상해야 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우리 정부는 현재 불복해 판정 취소를 신청한 상태다.

민주당에서는 론스타 사태와 관련해 윤석열정부를 겨눈다는 계획이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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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