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 좋은 개살구’ 답 없는 청년 주거 막전막후

지방 살면 서울 근처도 못가나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본가가 서울(수도권)인 것도 ‘스펙’이다.” 지방 출신 청년들 사이에서 자주 나오는 푸념이다. 청년 주거난이 심화되는 가운데, 학업·취업을 위해 상경한 이들의 사투가 더욱 두드러진다. ‘비빌 언덕’이 없는 이들은 소득과 재산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나름의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이들을 위한 지원책이 없는 건 아니지만, 낮은 실효성에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점차 커지는 실정이다.

최근 몇 년간 부동산 급등세가 계속 이어지면서 집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극은 점차 커졌다. 이 같은 양극화는 청년층에서 더욱 심각해졌다. 이들은 기성세대에 비해 소득과 재산이 비교적 적은 편이기 때문에 당연하게도 ‘내 집 마련’이 훨씬 어렵다. 청년층은 한때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으다)’에 성공한 이들과 그조차도 엄두 내지 못하는 이들로 양분됐다.

무너진
영끌족

집값이 계속 천정부지로 솟으면서 ‘지금 아니면 영영 집을 살 수 없을 것’이라는 위기감이 사회에 만연했던 탓이다. 당시 집값 상승률에 비해 한참 낮았던 대출금리도 이 같은 풍조에 크게 기여했다. 여력이 되는 이라면 누구나 재산과 대출을 긁어모아 집을 살지 고민했고, 이 중 상당수가 이를 실행에 옮겼다. 이들이 일명 ‘영끌족’이다.

집값이 고공행진을 이어갈 때만 하더라도 청년 주거 문제는 ‘영끌하지 못한 이’에게 한정된 이야기였다. 적당 선의 이자를 내면서 버티고, 여차하면 차익실현까지 가능했던 영끌족을 굳이 살필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단 1~2년 만에 전혀 다른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금리가 급등하는 사이 집값이 속절없이 내려갔다. 종전의 청년 주거 문제에 영끌족의 ‘아우성’이 합세한 모양새다. 현재 청년들은 집이 있으면 있는 대로 고통받고, 없으면 없는 대로 힘들다.


영끌족의 상황은 개선되기는커녕 점차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 연준)가 지난 21일(현지시각) 이례적인 3회 연속 ‘자이언트 스텝’을 단행했다. 자이언트 스텝이란 기준금리를 한 번에 0.75%p 인상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 영향으로 국내 대출금리도 가파르게 추가 상승할 것이 확실시된다.

국내 기준금리는 미국의 수치를 따라갈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한국은행(한은)은 올해 두 차례 남은 금융통화위원회에서 금리를 0.25%p씩 올리는 ‘베이비 스텝’을 넘어 0.5%p씩 올리는 ‘빅 스텝’을 단행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연속 빅 스텝이 이뤄진다면 주택담보대출(이하 주담대) 최고금리는 연 7%를 넘어 8% 선까지 넘볼 것으로 전망된다.

한계치에 임박한 영끌족의 빚 부담이 더욱 어려워지는 것이다.

이미 금융권에선 시중은행의 주담대 최고금리가 연내 7%를 돌파할 것이란 게 중론이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 등 4대 시중은행의 변동형·혼합형(고정형) 주담대 금리는 현재 연 6% 중반대까지 치고 올라왔다. 주담대 금리 설정의 준거가 되는 코픽스(COFIX·자금조달비용지수)와 은행채 5년물 금리는 각각 2.96%와 4.460%다.

특히 코픽스는 10여년 만에 최고치를 갱신했다.

지난해까지만 하더라도 주담대 금리는 3~4%대에 머물렀다. 예컨대 3억원을 빌렸다면 이자로 월 90~100만원, 원리금까지 합쳐도 140만원 전후에 불과했다. 하지만 금리가 6% 중반대로 오른 지금은 월별 이자만 160만원을 상회한다. 향후 7~8%까지 치솟으면 이자가 175~200만원으로 상승한다.


불과 1년 사이에 이자 부담이 곱절로 불어난 셈이다.

무주택자 이어 영끌족도 위기 봉착
가파른 금리 인상에 이자 부담 한계

한은에 따르면 기준금리가 0.25%p 인상될 때 대출자들의 전체 이자 부담은 연 3조3000억원 증가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8월 이후 기준금리를 7차례, 총 2%p 올렸다. 한은 추정대로라면 1년 만에 불어난 가계 이자 부담액은 약 27조원에 달한다.

이번 금리 인상의 최대 피해자는 2030세대 영끌족이 될 공산이 크다. 한은 자료에 따르면 20~30대 가계대출은 지난해 말 기준 475조8000억원이다. 1년 전보다 35조2000억원 늘어난 수치다. 2030세대의 취약차주 비중은 6.6%로 다른 연령층 평균(5.8%)보다 높다. 30대 차주의 소득대비대출비율(LTI)은 280%에 달한다.

전 연령대 중 가장 높다.

아울러 더불어민주당 이정문 의원실에 따르면 지난 4월 말 기준 국내 다중채무액은 598조9000억원으로 5년 전보다 22.1% 증가했다. 다중채무란 3개 이상의 금융회사에서 대출받은 경우를 가리킨다. 눈에 띄는 점은 이 기간 30대 이하의 다중채무액이 118조9600억원에서 158조1300억원으로 약 33% 급증했다는 사실이다.

영끌족의 상당수가 2030세대라는 방증이다.

영끌 열풍이 금리 인상기에 부메랑으로 돌아왔다. 이대로라면 영끌족은 암울한 양자택일을 강요받을 뿐이다. 이들은 집은 있지만 빚을 갚느라 허덕이는 ‘하우스 푸어’로 전락하거나, 이자 부담을 버티지 못하고 손해를 감수한 채 떨어진 가격에 집을 되팔아야 한다. 

대출금 상환 방식이 변경된 점 역시 부담을 더한다. 과거 고금리 시절 주택담보대출은 거치기간 동안 이자만 납부하다 일시에 원금을 상환하는 방식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원금과 이자를 함께 갚는 ‘원리금 분할상환’이 큰 비중을 차지한다. 같은 돈을 빌려도 월별 부담 금액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앞서 이창용 한은 총재는 영끌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를 전한 바 있다. 그는 지난 7월 기자간담회에서 “지금 20~30대는 한 번도 높은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적이 없는 세대”라며 “집을 살 때 연 3%로 돈을 빌려 평생 그 수준으로 갈 것으로 생각했을 테지만 그런 가정이 변할 수 있고, 낮은 금리를 가정해 경제활동을 하면 위험이 있다는 조언을 하고 싶다”고 발언했다.

집을 장만하지 않았다고 해서 웃을 수도 없다. 무주택자들은 만성적인 주거 불안과 높은 임대료 부담에 시달린다. 집값이 내려가면서 임대료도 덩달아 하락할 기미가 보이지만, 절대적인 금액대가 워낙 높은 탓에 집값 하락을 체감하긴 어려운 형편이다.

일각에선 “되레 깡통전세(담보 대출과 전세 보증금이 매매가를 웃도는 전세 형태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가 늘어 머리만 더 아프다”는 반응도 감지된다.


정부 지원
속 빈 강정

이들이 고전을 거듭하는 배경에는 정부가 마련한 지원책의 실효성이 높지 않다는 점도 포함된다. 정부는 각종 임대주택 마련과 전용 대출제도 등을 통해 청년 무주택자를 지원한다. 지원책이 절실한 청년층 사이에서 참여도가 높아 대부분 경쟁률이 상당하다.

하지만 바늘구멍 같은 선발 과정을 뚫고도 제도를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한다. 예컨대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공급하는 청년 및 신혼부부 전세임대 사업의 당첨자 대비 실입주율은 50%대에 불과하다.

지난 14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김병욱 의원이 LH로부터 제출받은 ‘전세임대주택 당첨자 및 실입주자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5년간 LH에서 선정한 청년 및 신혼부부 전세임대 당첨자 대비 평균 실입주율은 각각 55.5%, 53.5%에 불과한 것으로 드러났다.

청년 전세임대는 ▲2017년 50.03% ▲2018년 60.13% ▲2019년 53.62% ▲2020년 64.60% ▲지난해 51.48%의 실입주율을 보였다. 신혼부부 전세임대는 ▲2017년 56.67%, ▲2018년 59.28% ▲2019년 68.70% ▲2020년 42.04% ▲지난해 54.28%의 실입주율로 연도별로 차이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50%대를 맴돌았다.

LH 전세임대 제도는 일정 조건을 갖춘 청년과 신혼부부가 집을 찾아오면 LH가 집주인과 전세계약을 맺고 싸게 재임대해주는 제도다. 입주 대상자가 직접 주택을 물색하고, LH가 해당 주택을 검토해 전세금을 지원해주는 절차를 거친다.


김 의원실은 제도에 선발된 뒤에도 대상 주택을 직접 발품을 구해 찾아야 한다는 점에 주목했다. 문제는 주택 물색 과정이 ‘하늘의 별 따기’라는 점이다.

LH 입주자 모집 공고문에 따르면 청년 전세임대의 경우 수도권 1인 거주 시 60㎡ 이하 주택에 최대 ‘1억2000만원’의 한도로 전세보증금을 지원해준다. 하지만 수도권 전셋값이 많이 오르다 보니 해당 가격대 매물을 구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집 사도 고민
안 사도 고민

또 주택 물색 기간 6개월 안에 집을 구하지 못하면 대상자 선정은 무효로 돌아간다. 여러 청년이 제도에 선발되고도 기간 안에 적당한 매물을 찾지 못해서 기회를 날렸을 개연성이 높다.

계약 과정이 일반 전세보다 까다롭고 복잡하다는 것도 문제다. 계약 관련 권리 분석 과정에서 정보 노출에 부담을 느끼는 임대인이 많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일반 계약보다 좋은 혜택은 없는데 외려 부담은 커지니, 임대인이 제도에 협조할 이유가 마땅찮다는 것이다.

지난해 청년 전세임대 당첨자는 2만9817명이다. 2017년 1만1078명에 비해 5년간 2배 이상 늘었다. 신혼부부 전세임대 역시 2017년 6267명에서 지난해 1만8360명으로 당첨자가 3배 가까이 늘었다. 사업 규모는 커졌어도 제도가 지닌 문제점은 개선되지 않았다. 이로 인해 실입주율은 꾸준히 50%대에 정체된 실정이다.

김 의원은 “주택 물색 과정을 입주자에만 맡겨놓는 것은 청년과 신혼부부의 부담만 가중시키는 일”이라며 “심사 절차의 효율성 제고, 세제 혜택 확대 등 임대인을 유인할 수 있는 실용적인 해결책을 강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출과 관련된 정부 지원책 역시 실효성 논란에서 벗어날 수 없다. 상품 설계 방식과 시의성 판단이 아쉽다는 반응이다. 

일례로 안심전환대출은 변동·혼합형 금리 주담대를 장기·고정금리로 바꿔주는 상품이다. 급격한 금리 상승으로 부담을 호소하는 이들을 겨냥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출시 이틀이 지나는 동안 반응이 미지근했다. 이 기간 누적 신청 금액은 총공급 규모의 2%에도 미치지 못했다.

각종 지원책 꺼냈지만 실효성 의문 
탁상공론 일색…탁자 밖에선 비명

지난 19일 한국주택금융공사에 따르면 안심전환대출 신청·접수 이틀째였던 지난 16일 기준 주택금융공사와 6개 은행에 신청된 안심전환대출은 총 5105건이다. 누적 신청 금액은 4900억원. 안심전환대출 공급 규모가 25조원인 점을 고려하면 1.96% 수준에 그친다.

대출 신청 가능한 주택 가격이 3억~4억원으로 낮은 게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힌다. LH전세임대 제도와 마찬가지로 당초 대상에 들어갈만한 매물이 많지 않다는 지적이다. 서울 등 수도권에서는 일부 다세대 주택을 제외하고는 사실상 신청 가능한 주택을 찾기 힘들다. 지방도 일부 주택에만 국한되는 가격대다. 

일각에선 금리 조건이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는 푸념도 나온다. “상품 설계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전제와 함께 “지역별 조건 등을 차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외에도 정부는 지난달부터 생애 최초 주택 구매자 주택담보대출비율(LTV)을 80%까지 인정해주고, 이달부터는 청년층이 대출을 받을 때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에 미래 소득을 반영하기로 결정한 바 있다. 금리가 크게 올라 대출 수요가 얼어붙은 이때 대출 규제 완화책을 처방했으니, 그 실효성에는 의문부호가 따르는 게 당연지사다. 

각종 지적이 이어지면서 정부는 개선책 마련을 고심하는 눈치다. 앞서 예고했던 ‘청년 주거지원 대책’ 발표를 이달에서 다음 달로 미뤘다. 지난 14일 발족한 ‘국토교통부 청년자문단’의 의견을 반영하겠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이를 계기로 전보다 실질적인 지원책이 마련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내부적으로는 대책을 마련하고 있었는데, 청년들의 의견을 듣기 위한 자문단이 생겼으니 그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만들겠다는 취지”라며 “청년원가주택·임대주택·청약 관련 개선 내용을 담아 다음 달 말에 발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탁상공론
개선되나

한덕수 국무총리 역시 지난 17일 청년의날 기념사를 통해 청년정책 보강 청사진을 제시했다. 한 총리가 제시한 9가지 정책 중 청년 주거와 관련된 사항은 ▲청년원가 주택 및 역세권 첫집 50만호 공급 등 주거 복지 강화 ▲청년주거종합대책 구체화 ▲전세사기 등 불법행위 처벌 강화 등 총 3가지였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부동산 전문가의 조언 “실거주 영끌족은 버텨라”

부동산 전문가인 이광수 미래에셋증권 수석연구위원이 “부동산 하락세 진입은 분명해 가파른 내리막에 접어들 가능성이 크다”면서도 “영끌족은 구매한 집에서 거주할 수 있다면 버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지난 2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부동산 하락세 양상 구간을 나눠 설명했다.

이 수석연구위원은 “요즘처럼 하락기에는 일단 하락세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하면 ‘단기적 변동이야’ ‘일시적이야’ 이렇게 생각하는 첫 번째 단계, 조정기에 접어들어 ‘하락 거래’가 많아지는데 일부 사람만 아는 두 번째 단계, 본격적으로 하락 단계에 접어들어 일종의 ‘양떼 효과’라든지 ‘손실 회피 현상’이 나타나며 물량을 대거 밀기 시작해 하락폭이 커지는 마지막 단계, 3단계로 진행된다”고 규정했다.

그러면서 “지금은 일부 사람만 움직이는 2단계 정도”라고 진단했다.

영끌족의 주택 매도에 대해선 “투자했더라도 그 집에 들어가 살 수 있으면 버텨야 한다”고 답했다.

그는 “집이 없다면 전세라든가 월세를 내고 살아야 되는데 (투자한 집에 거주하면) 그만큼 비용이 절약되는 측면도 있고, 내 집에 인테리어도 하고 살면서 만족도는 커진다”며 “거주하면서 생기는 ‘거주의 가치’를 크게 만들어 이 시기를 잘 버텨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가파른 고금리는 1년 정도로 예측한다”며 “지금 월세도 올라가, 거주의 가치가 훨씬 커지면 그 기간은 훨씬 더 짧아진다”고 전망했다.

다만 이 위원은 “도저히 살 수 없는 조건, 즉 과도하게 전세를 껴서 갭투자했거나 과도하게 빚을 내서 도저히 그 안에 들어갈 수 없는 상황이면 파는 게 맞다”고 단서를 달았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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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미영 팀장’ 동반 탈옥 비쿠탄 마약왕 풀스토리

[단독] ‘김미영 팀장’ 동반 탈옥 비쿠탄 마약왕 풀스토리

[일요시사 취재1팀] 김성민 기자 = ‘김미영 팀장’으로 불린 보이스피싱 총책 박모씨와 함께 필리핀 구치소서 탈옥한 조직원들의 실체가 드러났다.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서 처음 만난 이들은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조직을 꾸렸다. ‘비쿠탄 마약왕’으로 알려진 송모씨는 2022년 수원서 필로폰을 소지한 채 붙잡힌 김모씨의 상선이라는 정황이 드러났다. 지난 8일 본지가 [<단독> 보이스피싱 총책 ‘김미영 팀장’ 탈옥했다]를 최초 보도한 이후, 외교부 측은 루카스 베르사민 필리핀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탈옥한 이들에 대한 조속한 검거와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달라”는 공적 서한을 전달했다. 현재 박씨에 대한 검거 작전은 필리핀 이민청 도피사범추적팀과 필리핀 코리안데스크(한인 사건 전담 경찰 부서)가 협력하고 있다. 새벽 탈출 어디로 갔나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약 2년 전 비쿠탄 교도소에 수감된 이들은 지난해 11월 필리핀 나가시(市) 카마린스 수르 주 구치소로 이감됐다. 3명 모두 불법 고용과 인신매매 혐의 등으로 기소되면서다. 복수의 제보자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1일에서 2일 새벽 사이 미리 준비한 오토바이와 차량을 이용해 탈옥했다. 필리핀 교정 당국은 지난 2일, 인원 점검 때 박씨 일당이 탈옥한 것을 뒤늦게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교도소에 CCTV가 설치돼있지 않아 탈옥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없으나 일부 훼손된 철조망을 찾아냈다고 한국 정부에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카마린스 수르 구치소에 대해 현지 제보자는 “담장이 낮고, 보초도 허술해서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기에 탈옥이라고 하기 민망할 정도”라며 “그들은 비쿠탄 교도소보다 허술하다는 점을 노리고 변호사를 통해 가짜 범죄를 만들어 이감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탈옥한 일당이 도피하는 동안에도 보이스피싱과 마약 유통을 결합한 신종 범죄를 저지르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씨는 2012년부터 필리핀 현지에 콜센터를 차린 보이스피싱 1세대다. ‘김미영 팀장’이라고 소개하며 전화나 문자메시지로 금융기관을 사칭해 개인정보를 빼냈다. 박씨가 보이스피싱으로 가로챈 금액만 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2008년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서 근무하다가 수뢰 혐의로 해임된 경찰 출신으로 드러나면서 더욱 충격을 안겼다. 경찰 근무 당시 접했던 범죄 수법을 토대로 ‘김미영 팀장’ 사기 수법을 고안한 것으로 전해진다. 10년간 보이스피싱 조직을 운영해 온 박씨는 2021년 10월6일 마닐라 인근서 붙잡혔다. 당시 국정원은 수년간 파악한 정보를 종합해 필리핀 현지에 파견된 경찰에 ‘박씨가 마닐라서 400km 떨어진 시골 마을에 거주한다’는 정보를 넘겼다. 검거 당시 박씨의 경호원은 모두 17명으로 대부분 중무장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박씨가 위치한 곳까지 접근한 필리핀 이민국 수사관과 현지 경찰 특공대도 이들에 맞서 중무장했다. 붙잡힌 박씨는 “필리핀서 범죄를 저질렀다”고 진술했다. 국내 송환을 피하고 상대적으로 보안이 취약한 필리핀 교도소에 수감되기 위한 노림수였다. 비쿠탄 교도소 출신 제보자는 <일요시사>와 통화서 “(박씨는)비쿠탄 내에서 식사를 판매하는 아저씨로 통했다”며 “박씨가 송씨, 신씨와 어울리면서부터 교도소 내에 마트를 인수해 장사할 정도로 돈을 많이 벌었다”고 증언했다. 보이스피싱과 결합한 마약 유통 대포폰으로 텔레그램 마약방 개설 비쿠탄 교도소는 식사가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죄수들이 직접 돈을 벌거나 영치금을 통해 생계를 이어간다. 죄수들은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조직을 꾸려 보이스피싱, 대포폰, 마약 유통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최근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 신씨가 비쿠탄 교도소 내에서 동업을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였다. 박씨와 함께 탈옥한 송씨와 신씨에 대한 새로운 증언들도 쏟아졌다. 제보자에 따르면, 신씨는 타인 명의로 개통한 유심칩을 판매하는 역할을 맡았다. 신씨는 불법 유심칩 1개당 한국 돈 약 25만원을 받고 팔았다. 신씨에게 산 대포 유심칩으로 신분을 철저히 숨길 수 있게 된 송씨는 텔레그램으로 마약 전달책을 모집하고 유통하는 이른바 ‘마약방’을 개설했다. 평소 신씨가 재테크 사기, 주식 및 코인 리딩방 등을 운영해오면서 모은 수천명의 회원들은 송씨가 운영하는 마약방으로 초대됐다고 한다. 송씨는 채팅방서 ‘두목’이라는 닉네임으로 활동했다. 또 박씨는 신씨의 도움을 받아 수억원가량을 비트코인으로 환전한 것으로 파악됐다. 비쿠탄 교도소 출신 제보자는 “마약과 거리가 멀었던 박씨가 송씨와 안면을 트면서 보이스피싱보다는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마약 사업을 함께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송씨가 필리핀 파사이 등에 있는 마약 공급책을 통해 한 달에 5kg 정도의 필로폰 유통을 지시했다”며 “송씨는 비쿠탄서 만난 중국 마피아로부터 싸게 구입한 필로폰 등을 드라퍼(전달책)에게 전달해 한국으로 수출하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송씨가 드라퍼에게 준 배달료는 한화 약 1000만원가량으로 전해진다. “한국 싫어” 가짜 범죄 다수의 전달책이 송씨의 필로폰 배달을 시도한 정황은 곳곳서 드러났다. 송씨가 고용한 운반책은 2022년 1월25일, 수원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하다가 붙잡힌 김모씨였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다. 당시 수원중부경찰서는 마약류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30대 남성 김씨를 긴급체포했다. 김씨는 이날 오전 8시7분께 장안구 영화동의 한 모텔서 필로폰을 소지했다. 앞서 ‘한 남성이 모텔서 마약을 소지하고 있다’는 신고를 접수받은 경찰은 현장으로 출동했다. 경찰은 모텔 안에서 필로폰이 포장된 비닐백 30개를 발견하고 이를 압수 조치했다. 또 김씨를 상대로 진행한 마약 간이 검사서 양성반응을 확인했다. 경찰조사에서 김씨는 투약 혐의를 인정하면서도, 텔레그램으로 필로폰 거래를 지시한 ‘orjinal8282’가 상선이라는 사실을 숨기려고 거짓으로 진술했다. 경찰에 따르면, orjinal8282이라는 아이디를 가진 자가 김씨에게 “수원으로 가서 모텔을 잡고 기다려라”며 “사탕(엑스터시) 50, 어름(필로폰) 50 좀 있다가 드랍해서 갖고 있어”라고 지시했다. 그러면서 송씨와 비쿠탄 교도소서 함께 지냈던 제보자는 “orjinal8282는 송씨의 아이디”라며 “김씨가 붙잡혔다는 소식을 들었던 마약방 회원들은 송씨가 김씨의 고용주(상선)이었다고 적었다”며 텔레그램 채팅방 사진을 전했다. 송씨가 넘긴 마약을 유통하려고 한 사람은 또 있었다. 지난해 1월23일, 충남 서산서 아내를 살해하고 저수지에 유기한 혐의를 받고 필리핀으로 도주한 강주천이다. 그는 한국 경찰의 공조 요청으로 필리핀서 검거됐으나 한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있다. 강주천은 지난해 6월 비쿠탄 수용소서 탈옥했다가 8일 만에 체포됐다. 탈옥 후 체포 당시 1kg의 필로폰을 소지하고 있었다. 강주천은 도피 자금을 벌기 위해 송씨의 지시를 받아 필로폰 배달을 시도한 것으로 추정된다. 밥 먹듯… 탈옥 시도 비쿠탄 관계자들은 이른바 ‘마약왕 전세계’ 박왕열이 큰돈을 벌자, 박씨와 송씨 일당도 마약 사업에 뛰어들었다고 봤다. 지난해 중순 박왕열은 <일요시사>와 전화 통화서 “이젠 나보다 송씨가 마약왕에 가깝다”며 “한국으로 보내는 양이 내가 보낸 것보다 많다”고 말했다. 앞서 박왕열은 2016년 10월 필리핀 한 사탕수수밭서 한국인 3명을 총으로 쏴 살해한 사건의 범인이다. 이 사건은 드라마 <카지노>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는 비쿠탄 이민국 수용소에 구금됐다가 2017년 3월 탈옥해 두 달 만에 잡혔다. 2019년 10월에는 재판을 받고 구치소로 돌아가던 중 재차 도주해 2020년 10월 다시 검거됐다. 박왕열은 이 기간에 마약왕 전세계로 거듭났다. 국내 마약 유통·판매 총책이었던 ‘바티칸 킹덤’ 이모씨에게 수억 원대의 마약을 공급했다. 이는 남양유업 창업주 외손녀 황하나 등에게 팔렸다. 박왕열의 옥중 마약 유통 의혹은 이미 경찰 수사를 통해 사실로 드러났다. 지난 4월12일, 경남경찰청 광역수사대는 A씨 등 3명을 국내 중간 판매책에게 마약류를 판매한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유통책 중 한 명은 2022년 12월 NBP서 박왕열을 만나 국내로 밀반입해 보관 중인 마약류를 판매키로 공모하고, 지난해 1월 메신저인 텔레그램을 이용해 특정한 장소에 마약을 놓고 사라지는 이른바 ‘던지기 수법’으로 엑스터시 100정, 필로폰 10g을 국내 중간 판매책들에게 600만원(도매가)을 받고 공급했다. 그동안 경찰은 박씨 일당 등 한국인 범죄자의 강제송환을 추진했으나 지지부진한 상태다. 박씨 일당은 필리핀서 죄를 짓고 형을 받으면 국내 송환이 지연된다는 점을 노렸기 때문이다. 경찰은 현재 박씨에게 적용된 혐의 중 인신매매는 허위로 만들어낸 범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수원 모텔서 잡힌 전달책 상선” 박왕열 “이젠 송씨가 마약왕” 박씨가 쓴 꼼수는 이미 필리핀 도피 사범들 사이에 만연하다. 현재 필리핀 도피 사범은 500여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국내 송환을 거부하는 범죄자들은 필리핀 현지 변호사를 통해 ‘가짜 범죄’를 만든다. 비용은 한국 돈으로 많게는 3000만원서 적게는 100만원 정도가 든다. 제보자에 따르면 “가짜 케이스를 만드는 건 흔한 일”이라며 “강간, 사기, 폭행 정도의 가짜 범죄를 만들어 재판에 출석하면서 국내 송환을 계속 미루는 것”이라고 전했다. 박씨가 국내로 송환될 경우, 최소 징역 15년서 25년 이상 집행될 수 있다. 지난해 6월 재판부는 2012년 3월부터 2016년 6월까지 중국과 필리핀서 보이스피싱 총책으로 활동하며 피해자 435명에게 26억여원을 가로챈 B씨에게 징역 20년을 선고했다. 송씨의 경우, 마약을 수출입·제조·매매하거나 매매를 알선 또는 그럴 목적으로 소지·소유한 것에 대한 처벌이 가해진다. 해당 혐의가 인정되면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며, 영리 목적 또는 상습적이라는 사실이 입증될 경우 사형, 무기 또는 10년 이상의 징역까지 내려질 수 있다. 필리핀 당국과 한국 정부도 탈옥범들을 추적 중인 가운데, 현지 법 적용을 고려하면 다시 붙잡히더라도 국내 송환이 어려울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필리핀서 저지른 다른 범죄의 조사와 재판이 끝나지 않아 한국으로 송환되려면 최소 6년이 걸린다. 특히, 탈옥 행위로 현지 법을 중대하게 위반한 만큼 현지서 징역형을 선고받을 가능성도 크다. 송씨와 박씨에 관한 국내 송환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고 볼 수 있다. 필리핀서 장기간 수용 생활을 하는 한국인을 국내로 이송하면 좋으나, 현재 수용자 이송 조약은 체결돼있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법무부는 “송환이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인물의 이송 요청을 지속하고 있다”며 “필리핀 이민국과 논의를 이어가는 중”이라고 밝혔다. 법무부의 이 같은 입장은 예전과 다르지 않다. 시간이 가는 동안 이송 조약조차 체결하지 못한 점은 한국 정부의 소극 행정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무부가 보이스피싱 혐의가 아닌 마약 유통 혐의로 송환을 적극적으로 요청한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다. 필리핀 정부가 ‘재량’을 근거로 거절할 가능성도 있으나 법무부는 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것으로 풀이된다. 머나먼 국내 송환 이상화 주필리핀대사는 지난 14일 오전과 오후에 각각 필리핀 외교부 차관과 법무부 차관을 만나 박씨에 대한 조속한 검거와 재발 방지 대책 등을 요구했다. 한편, 박씨 일당 외에 인질강도 혐의로 수배돼있던 한 남성도 최근 현지 교도소를 빠져나간 것으로 확인됐다. 최근 필리핀 현지 경찰이 쫓고 있는 한국 국적의 수배범만 박씨 일당을 포함해 6명 이상인 것으로 파악됐다. 수배범들은 대부분 사기 혐의로 수배가 걸려 있었다. 이 중에는 10건 이상 수배가 걸린 수배범들도 있었다. 그만큼 교정시설 보안이 취약하다는 뜻이다. <smk1@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