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나쁜 집주인과 중개사 ‘임대 깡패’ 커넥션 추적 ②구축 빌라 전세 사기 피해담

알고도 속는 ‘사각 속 사각’ 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김민주 기자 = “○○년아, 내가 돈 못 줄 것 같냐. 법대로 해라.” 이수진(가명)씨가 임대인 정모씨에게 들은 욕설이다. “집이 압류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씨는 구축 빌라서 전세로 살다 전세 사기를 당했다. 이들이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간에 낀 ‘공인중개사’ 때문이었다.

임대사업자 정씨는 성공한 사업자로 보였다. 사업도 여러 가지 하고 있었고, 그의 이름으로 된 집만 247채였다(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경기도, 인천의 구축 빌라가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인천 구축 빌라가 다수였다. 정씨 집도 인천이며 인천 지역의 공인중개사들에게 그는 유명 인사였다.

화려한
빌라왕

인천서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이씨는 한 부동산에 방문했다. 공인중개사무소(이하 중개사무소)는 이씨에게 정씨의 빌라를 소개하면서 “정씨는 집이 엄청 많은 사람으로, 10년 넘게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 일한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이 집은 중소기업청년대출이 가능하니 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청년대출은 은행서 중소기업을 다니는 청년들에게 1.5% 고정금리로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보통 중소기업청년대출은 빚이 없는 안전한 집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자리서 등기부등본을 떼서 보여줬는데, 1억4000만원 전세에 나온 집으로 서류상으로도 깨끗했다. 그래도 이씨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이 전에 살던 집에서도 전세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를 당했는데도 다시 전세를 구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었다.


월세는 보증금이 적은 대신, 한 달에 50~60만원의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 여기에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70만원이 훌쩍 넘는 반면, 전세는 보증금의 20%만 있으면 은행 대출이 가능했다. 은행 이자로 나가는 돈과 비교하면 월세보다 전세가 훨씬 저렴하다. 중개사무소서도 은행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씨는 전세 사기로 빨리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자도 지속적으로 나가는 상황이라 월세 집은 현재 월급으론 불가능했는데, 마침 공실인 정씨 집이 있었다. 이씨는 해당 집에 머물면서 매매할 집을 구할 계획이었는데, 결국 1억4000만원에 전세 계약했다.

집이 낡긴 했지만, 위치가 좋았고, 회사도 근처라 출퇴근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2022년 11월에 해당 집에 입주했다. 그후 7개월이 지난 뒤에야 해당 집이 압류당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전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정씨는 인천 공인중개사에게 ‘사기꾼’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알면서도 속인 것이었다. 

10년 넘게 일한 성공한 임대사업자
알고 보니 인천에서 유명한 사기꾼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거주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전세보증보험은 거주한 지 1년이 안된 시점에 가입할 수 있었으나 이씨는 임대인에게 중도해지합의서를 요청했다. 중도해지합의서는 임대계약을 미리 해지하기로 합의하는 문서다. 임대인이나 임차인의 계약조건 위반 시 요구할 수 있다.

다음은 지난해 9월, 이씨는 “내가 (이 집에)거주한 지 1년이 안됐다.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데 (집이 압류됐으니)11월에 나가겠다. 미리 중도해지합의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가 “중도해지합의서 쓰고 나가도 마음대로 나가는 것”이라는 말에 그는 “지금 나쁜 집주인 명단에 올라가 있는 거 아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정씨는 “여보세요, 나쁜 집주인이고 뭐고, 만기까지 살아라. 지금 정신이 나갔냐. 당신 멋대로 법을 만들라고 하느냐? 합의고 나발이고 나는 못하니까 만기까지 무조건 살아라”고 역정을 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이씨는 “만기 때가 되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거냐”고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야, ○○년아, 주면 주는 거다. 못 줄 게 뭐가 있냐? 싸가지가 없다. 법대로 해라, 고발하라고”였다.

이씨가 “만기 때 돈은 돌려줄 수 있는 게 맞냐”고 재차 묻자, 그는 “못 돌려준다. 굳이 못 준다. (내가)왜 줘야 하냐. 나는 이제는 너랑 말하기 싫다. 지랄하지 마라. 너하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임대사업하면서 너 같은 것 처음 봤다”고 화내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날부터 정씨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 같은 사례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흔하게 겪는 일이다. 가해자는 가해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서도 떳떳하다. 고의가 아니라는 것이 임대인들의 주장이다.

이렇듯 이씨는 전세 사기를 두 번이나 당했다. 그가 두 번이나 전세 사기를 당한 데에는 공인중개사들이 거짓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급하게 집을 구하려던 것도 문제였지만, 공인중개사의 “오랫 동안 임대사업했던 안전한 집주인”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게 화근이었다. 

<일요시사>는 지난 16일, 인천 부평구 소재의 한 카페서 정씨 소유의 빌라에 거주하다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 3명을 만났다. 여태까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다가구주택 거주자가 많았다면, 이들은 다세대주택 거주자였다. 다가구주택은 집주인이 1명으로 호실이 나뉘어 있는 공동주택이고, 다세대주택은 집주인이 여러명인 공동주택이다. 호수별로 매매해 소유자가 다른데, 정씨의 집 대부분은 다세대주택이었다.

이날 이들 3명은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은 한통속”이라고 이구동성했다.

돈 달라니
“○○년아”

전세 사기를 당하게 되면, 해당 집은 경매로 넘어간다. 경매서 집이 낙찰돼 돈을 받으면 문제는 해결되지만, 구축 빌라는 공시지가(국토교통부서 발표한 공식 가격)가 높지 않다. 현실적으로 경매서 빌라가 낙찰되더라도 보증금이 충당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전세 사기 매물 경매 금액은 ‘공시지가’에 피해자의 ‘보증금’을 더한다. 구매자가 피해자의 보증금을 대신 내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축 빌라가 경매서 낙찰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정씨 소유의 집은 곰팡이는 기본이고, 집 천장이 무너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등 상태도 나빴다. 빌라 매매 자체가 계속 감소하는 데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집을 살리는 만무하다.


이씨는 “그나마 신축 빌라서 전세 사기를 당하면 인테리어가 돼있으니 당장 사는 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구축 빌라는 곰팡이가 기본이다. 도배를 다시 해야 하는데 정씨한테 연락해도 전화를 안 받거나, 돈이 없다고 우리보고 해결하라고 한다”며 “우리는 돈을 받을 때까지 버틸 수가 없고,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집이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정씨 소유의 다세대주택은 연식이 최소 20년이 됐다. 너무 오래된 집은 일반 도배로는 곰팡이가 해결되지 않는다.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특수 도배 시 최소 4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집에서 정체 모를 냄새가 올라오기도 하는데, 하수구서 냄새가 올라오는 것은 기본이다.

문고리가 고장이 나는 것 정도는 애교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곧 무너질 것처럼 을씨년스운데도 정씨는 “돈이 없다”며 집수리를 거부하고 있다.

경매서 낙찰되지 않는 구축 빌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선택지는 단 하나다. 전세사기특별법이 시행되더라도 보증금의 30%만 구제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구매 후 거주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이씨는 “만약 집이 경매서 낙찰된다고 해도 최소한 1년이 걸리는데, 나는 1년 동안 또 발이 묶인다. 지금 이 집이 잘 팔리면 1억원 초반에 팔리겠지만 압류도 걸려 있으니 나밖에 살 사람이 없다”며 “세입자 외에 다른 사람이 사면 압류권까지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 집이라도 괜찮은 상태면 이해할 수 있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답답하다. 이런 식으로 집을 사서 1주택자가 된다. 이 집을 그냥 두고 다른 집에 가면 또 이자가 이중으로 부담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가)이 집을 구매해서 전세로 내놔도 공시지가가 내려갔으니 (내가 낸)보증금보다 적게 받는다. 또 집수리에만 1000만원 이상 들어갈 ”것이라며 “집이 있어도 손해고, 이 집을 나가도 손해다. 신축 빌라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한탄했다.

결국 이씨가 구축 빌라를 떠안아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는 “가장 화나는 건 정씨가 낸 빚을 피해자인 내가 대신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정씨가 돈을 안 버는 것도 아니다. 전세 사기 매물을 단기 월세로 중개사무소에 올렸다”며 “분명 돈을 벌고 있는데 통장에 돈이 없다고 ‘돈이 없다’는 말만 한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10년 동안 건강보험료도 내지 않았는데 임대사업을 했다. 나는 왜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신용불량자가 돼서 정씨를 괴롭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나 몰라
배째라

결국 이씨는 ‘정씨는 안전한 집주인’이라는 공인중개사의 거짓말과 은행서 중소기업전세대출이 가능한 바람에 전세 사기를 당하게 됐다. 이씨는 “은행서 어떻게 대출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은행서 대출이 안됐더라면 들어갔을 리 없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또 다른 피해자 김서영(가명)씨는 전세 만기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정씨와 연락이 되질 않으면서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월세로만 살다가 첫 전셋집이었다. 계약자도 정씨가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었다. 김씨가 전세로 들어올 때 정씨가 집을 매매했는데, 매매 금액과 전세 금액이 같았다.

김씨는 “나는 계약할 때 전세보증보험 가입 내용도 듣지 못했다. 첫 전셋집 계약이라 알지 못했지만, 공인중개사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계약할 때 방조했던 공인중개사가 다른 중개사무소서 일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을 보니 계약한 공인중개사와 수수료를 입금한 사람도 달랐다. 계약금도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A 중개사무소서 계약했는데 계약금을 B 중개사무소에 넣는 식”이라며 “원래는 중개사무소 대표에게 입금하는 게 맞다. 계약서 쓸 때 대표를 본 적도 없으며, 계약서 필체도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고 하소연했다.

김씨 역시 전세 사기서 공인중개사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정씨의 집을 전세 계약할 당시 공인중개사가 은행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김씨 주장에 따르면, 집 계약 당시 대출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중개사무소서 ‘○○은행 역삼지점’서 대출을 받으라고 했다. 당시 인천 부평구에 거주 중이었던 그는 “역삼까지 가야 대출이 잘 나온다”며 은행원 명함을 받았다.

김씨는 “(내가)너무 멀어서 못 가겠다고 하니 차로 태워줬다”며 “전세 사기 피해자들 중 이런 식으로 대출받은 사람이 많다. 대출이 나오면 안 되는 집인데 대출을 해 준 것”이라며 “공인중개사와 임대인이 공범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정상적인 심사를 통해선 대출이 나올 수 없는 집인데, 공인중개사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임차인에게 말하지 않고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집 근처 은행을 찾았던 한 임차인은 대출을 받지 못해 결국 공인중개사가 제시한 은행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빌라 경매 기간만 1년 넘어
공시지가보다 낮은 경매가

김씨는 “정씨는 인천 중개사무소 시장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집이 많아 여러 중개사무소서 거래했으며, 이런 정씨의 사기 행각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며 “사기를 당한 뒤 알게 된 것은 중개사무소가 전세금(1억2000만원)으로 현재 임대인이 예전 임대인으로부터 집을 매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매매가는 1억원이었고, 남은 2000만원은 중개사무소와 현재 임대인이 나누눠 가져갔다고 들었다”고 개탄했다. 

공인중개사법 제25조에는 ‘개업공인중개사는 중개를 의뢰받았으면 중개가 완성되기 전 ▲해당 중개 대상물의 상태‧입지 및 법률관계 ▲법령의 규정에 따른 거래 또는 이용제한 사항 등을 확인해 이를 해당 중개 대상물에 관한 권리를 취득하고자 하는 중개 의뢰인에게 성실·정확하게 설명하고, 토지대장 등본 또는 부동산종합증명서, 등기사항증명서 등 설명의 근거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고 기재돼있다.

수리가 안 돼있지만 이씨는 돈을 받을 때까지 현재 집에서 거주할 예정이다. 경매서 낙찰될 것이라는 희망도 이미 접었다. 1억2000만원짜리 전세지만 매매가 되더라도 7000만원 이하라는 비관적인 말을 들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단체로 중개사무소에게 소송을 걸 예정이다. 중개사무소도 정씨가 사기꾼인 것을 묵인했고, 여전히 전세 사기 매물을 단기 월세로 올려 2차 피해를 양상하고 있는 데다 전부 허위 매물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매물을 올릴 경우 압류 사실을 게시하지 않으면 허위 매물로 간주되는데, 당시 A 중개사무소는 해당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평범한 일상을 잃은 채 정씨의 행각을 쫓는 게 일상이 됐다.

이씨는 “경찰에 중개사무소를 신고해도 ‘연관성이 없다’는 말만 한다. 계약 과정을 모두 녹음하거나 영상으로 찍을 순 없다. 결론은 중개사무소를 따로 고소해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변호사 수임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이들은 “경찰에 관련 내용을 전부 찾아서 넘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냐? 계속 정씨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혀야 하냐? 우리는 일반 직장인인데, 내가 사기당했다고 거기에 몰두하고만 있을 수 없지 않느냐?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는데…”라며 “1억원이 넘는 돈이 고스란히 빚이 됐다. 전세 사기를 당해본 사람은 안다. 이건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다. 선 구제해주길 원하지만 가능하겠느냐?”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죽지 못해…”
피해자 지금…

인천에선 3명 중 1명이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피해자가 다수다.

이날 카페서 인터뷰 중 전세 사기 피해 이야기를 듣고 ‘나도 피해자’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자신들의 피해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씨는 “앞으로 피해자가 훨씬 많아질 텐데 대책은 전혀 없는 상태”라고 호소했다. 현재 정씨는 전세 사기로 검찰에 송치됐고 보완 수사 지시가 내려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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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