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기획> 나쁜 집주인과 중개사 ‘임대 깡패’ 커넥션 추적 ②구축 빌라 전세 사기 피해담

알고도 속는 ‘사각 속 사각’ 거래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김민주 기자 = “○○년아, 내가 돈 못 줄 것 같냐. 법대로 해라.” 이수진(가명)씨가 임대인 정모씨에게 들은 욕설이다. “집이 압류돼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느냐”는 질문에 이 같은 답변이 돌아왔다. 이씨는 구축 빌라서 전세로 살다 전세 사기를 당했다. 이들이 손해를 입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중간에 낀 ‘공인중개사’ 때문이었다.

임대사업자 정씨는 성공한 사업자로 보였다. 사업도 여러 가지 하고 있었고, 그의 이름으로 된 집만 247채였다(지난해 11월 기준). 서울, 경기도, 인천의 구축 빌라가 대부분이었는데, 그중 인천 구축 빌라가 다수였다. 정씨 집도 인천이며 인천 지역의 공인중개사들에게 그는 유명 인사였다.

화려한
빌라왕

인천서 전셋집을 구하기 위해 이씨는 한 부동산에 방문했다. 공인중개사무소(이하 중개사무소)는 이씨에게 정씨의 빌라를 소개하면서 “정씨는 집이 엄청 많은 사람으로, 10년 넘게 임대사업을 하고 있다. 이렇게 오래 일한 사람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이 집은 중소기업청년대출이 가능하니 더 안전하다”고 설명했다. 

중소기업청년대출은 은행서 중소기업을 다니는 청년들에게 1.5% 고정금리로 대출해주는 상품이다. 보통 중소기업청년대출은 빚이 없는 안전한 집만 가능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자리서 등기부등본을 떼서 보여줬는데, 1억4000만원 전세에 나온 집으로 서류상으로도 깨끗했다. 그래도 이씨는 우려를 떨칠 수 없었다. 이 전에 살던 집에서도 전세 사기를 당했기 때문이다. 전세사기를 당했는데도 다시 전세를 구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돈 때문이었다.


월세는 보증금이 적은 대신, 한 달에 50~60만원의 적지 않은 돈이 들어갔다. 여기에 관리비까지 포함하면 70만원이 훌쩍 넘는 반면, 전세는 보증금의 20%만 있으면 은행 대출이 가능했다. 은행 이자로 나가는 돈과 비교하면 월세보다 전세가 훨씬 저렴하다. 중개사무소서도 은행 대출이 가능하다고 했다.

이씨는 전세 사기로 빨리 집을 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이자도 지속적으로 나가는 상황이라 월세 집은 현재 월급으론 불가능했는데, 마침 공실인 정씨 집이 있었다. 이씨는 해당 집에 머물면서 매매할 집을 구할 계획이었는데, 결국 1억4000만원에 전세 계약했다.

집이 낡긴 했지만, 위치가 좋았고, 회사도 근처라 출퇴근이 편했기 때문이다. 이씨는 2022년 11월에 해당 집에 입주했다. 그후 7개월이 지난 뒤에야 해당 집이 압류당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안전하니 걱정할 필요 없다는 공인중개사의 말은 새빨간 거짓말이었다. 정씨는 인천 공인중개사에게 ‘사기꾼’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알면서도 속인 것이었다. 

10년 넘게 일한 성공한 임대사업자
알고 보니 인천에서 유명한 사기꾼

전세보증보험을 가입하지 않았지만, 다행히 거주한 지 1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전세보증보험은 거주한 지 1년이 안된 시점에 가입할 수 있었으나 이씨는 임대인에게 중도해지합의서를 요청했다. 중도해지합의서는 임대계약을 미리 해지하기로 합의하는 문서다. 임대인이나 임차인의 계약조건 위반 시 요구할 수 있다.

다음은 지난해 9월, 이씨는 “내가 (이 집에)거주한 지 1년이 안됐다. 전세보증보험 가입이 가능한데 (집이 압류됐으니)11월에 나가겠다. 미리 중도해지합의서를 쓰고 싶다”고 말했다.


정씨가 “중도해지합의서 쓰고 나가도 마음대로 나가는 것”이라는 말에 그는 “지금 나쁜 집주인 명단에 올라가 있는 거 아느냐”고 반문했다. 그러자 정씨는 “여보세요, 나쁜 집주인이고 뭐고, 만기까지 살아라. 지금 정신이 나갔냐. 당신 멋대로 법을 만들라고 하느냐? 합의고 나발이고 나는 못하니까 만기까지 무조건 살아라”고 역정을 냈다.

불안한 마음이 들었던 이씨는 “만기 때가 되면 보증금을 돌려줄 수 있는 거냐”고 물었으나, 돌아온 대답은 “야, ○○년아, 주면 주는 거다. 못 줄 게 뭐가 있냐? 싸가지가 없다. 법대로 해라, 고발하라고”였다.

이씨가 “만기 때 돈은 돌려줄 수 있는 게 맞냐”고 재차 묻자, 그는 “못 돌려준다. 굳이 못 준다. (내가)왜 줘야 하냐. 나는 이제는 너랑 말하기 싫다. 지랄하지 마라. 너하고 말하고 싶지 않다. 내가 임대사업하면서 너 같은 것 처음 봤다”고 화내면서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이날부터 정씨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이 같은 사례는 전세 사기 피해자들이 흔하게 겪는 일이다. 가해자는 가해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면서도 떳떳하다. 고의가 아니라는 것이 임대인들의 주장이다.

이렇듯 이씨는 전세 사기를 두 번이나 당했다. 그가 두 번이나 전세 사기를 당한 데에는 공인중개사들이 거짓말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급하게 집을 구하려던 것도 문제였지만, 공인중개사의 “오랫 동안 임대사업했던 안전한 집주인”이라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던 게 화근이었다. 

<일요시사>는 지난 16일, 인천 부평구 소재의 한 카페서 정씨 소유의 빌라에 거주하다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피해자 3명을 만났다. 여태까지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다가구주택 거주자가 많았다면, 이들은 다세대주택 거주자였다. 다가구주택은 집주인이 1명으로 호실이 나뉘어 있는 공동주택이고, 다세대주택은 집주인이 여러명인 공동주택이다. 호수별로 매매해 소유자가 다른데, 정씨의 집 대부분은 다세대주택이었다.

이날 이들 3명은 “공인중개사와 집주인은 한통속”이라고 이구동성했다.

돈 달라니
“○○년아”

전세 사기를 당하게 되면, 해당 집은 경매로 넘어간다. 경매서 집이 낙찰돼 돈을 받으면 문제는 해결되지만, 구축 빌라는 공시지가(국토교통부서 발표한 공식 가격)가 높지 않다. 현실적으로 경매서 빌라가 낙찰되더라도 보증금이 충당되지 않는 것이다.

게다가 전세 사기 매물 경매 금액은 ‘공시지가’에 피해자의 ‘보증금’을 더한다. 구매자가 피해자의 보증금을 대신 내주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구축 빌라가 경매서 낙찰될 가능성은 상당히 낮다. 정씨 소유의 집은 곰팡이는 기본이고, 집 천장이 무너져 있는 것처럼 보이는 등 상태도 나빴다. 빌라 매매 자체가 계속 감소하는 데다, 제대로 관리되지 않은 집을 살리는 만무하다.


이씨는 “그나마 신축 빌라서 전세 사기를 당하면 인테리어가 돼있으니 당장 사는 덴 문제가 없다. 그런데 구축 빌라는 곰팡이가 기본이다. 도배를 다시 해야 하는데 정씨한테 연락해도 전화를 안 받거나, 돈이 없다고 우리보고 해결하라고 한다”며 “우리는 돈을 받을 때까지 버틸 수가 없고, 엘리베이터조차 없는 집이 대부분”이라고 토로했다.

정씨 소유의 다세대주택은 연식이 최소 20년이 됐다. 너무 오래된 집은 일반 도배로는 곰팡이가 해결되지 않는다. 곰팡이가 생기지 않는 특수 도배 시 최소 400만원의 비용이 들어간다. 집에서 정체 모를 냄새가 올라오기도 하는데, 하수구서 냄새가 올라오는 것은 기본이다.

문고리가 고장이 나는 것 정도는 애교다.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도 곧 무너질 것처럼 을씨년스운데도 정씨는 “돈이 없다”며 집수리를 거부하고 있다.

경매서 낙찰되지 않는 구축 빌라 전세 사기 피해자들의 선택지는 단 하나다. 전세사기특별법이 시행되더라도 보증금의 30%만 구제되기 때문에 피해자가 구매 후 거주하는 것 외엔 방법이 없다.

이씨는 “만약 집이 경매서 낙찰된다고 해도 최소한 1년이 걸리는데, 나는 1년 동안 또 발이 묶인다. 지금 이 집이 잘 팔리면 1억원 초반에 팔리겠지만 압류도 걸려 있으니 나밖에 살 사람이 없다”며 “세입자 외에 다른 사람이 사면 압류권까지 가져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최소한 집이라도 괜찮은 상태면 이해할 수 있겠는데 그것도 아니니 답답하다. 이런 식으로 집을 사서 1주택자가 된다. 이 집을 그냥 두고 다른 집에 가면 또 이자가 이중으로 부담된다”고 토로했다.


그는 “(내가)이 집을 구매해서 전세로 내놔도 공시지가가 내려갔으니 (내가 낸)보증금보다 적게 받는다. 또 집수리에만 1000만원 이상 들어갈 ”것이라며 “집이 있어도 손해고, 이 집을 나가도 손해다. 신축 빌라였으면 얼마나 좋았을까”라고 한탄했다.

결국 이씨가 구축 빌라를 떠안아 문제를 해결할 수밖에 없다.

그는 “가장 화나는 건 정씨가 낸 빚을 피해자인 내가 대신 처리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정씨가 돈을 안 버는 것도 아니다. 전세 사기 매물을 단기 월세로 중개사무소에 올렸다”며 “분명 돈을 벌고 있는데 통장에 돈이 없다고 ‘돈이 없다’는 말만 한다”고 개탄했다.

그러면서 “정씨는 10년 동안 건강보험료도 내지 않았는데 임대사업을 했다. 나는 왜 열심히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냥 신용불량자가 돼서 정씨를 괴롭혀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고백했다.

나 몰라
배째라

결국 이씨는 ‘정씨는 안전한 집주인’이라는 공인중개사의 거짓말과 은행서 중소기업전세대출이 가능한 바람에 전세 사기를 당하게 됐다. 이씨는 “은행서 어떻게 대출이 나왔는지 알 수가 없다. 애초에 은행서 대출이 안됐더라면 들어갔을 리 없는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또 다른 피해자 김서영(가명)씨는 전세 만기가 얼마 안 남은 시점에 정씨와 연락이 되질 않으면서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월세로만 살다가 첫 전셋집이었다. 계약자도 정씨가 아니었고, 다른 사람이었다. 김씨가 전세로 들어올 때 정씨가 집을 매매했는데, 매매 금액과 전세 금액이 같았다.

김씨는 “나는 계약할 때 전세보증보험 가입 내용도 듣지 못했다. 첫 전셋집 계약이라 알지 못했지만, 공인중개사도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내가 계약할 때 방조했던 공인중개사가 다른 중개사무소서 일하고 있다”며 “피해자들을 보니 계약한 공인중개사와 수수료를 입금한 사람도 달랐다. 계약금도 마찬가지였다”고 주장했다.

이어 “A 중개사무소서 계약했는데 계약금을 B 중개사무소에 넣는 식”이라며 “원래는 중개사무소 대표에게 입금하는 게 맞다. 계약서 쓸 때 대표를 본 적도 없으며, 계약서 필체도 다른 경우가 허다했다”고 하소연했다.

김씨 역시 전세 사기서 공인중개사의 문제가 가장 크다고 지적했다. 정씨의 집을 전세 계약할 당시 공인중개사가 은행을 소개해주기도 했다.

김씨 주장에 따르면, 집 계약 당시 대출이 필요한 상황이었는데, 중개사무소서 ‘○○은행 역삼지점’서 대출을 받으라고 했다. 당시 인천 부평구에 거주 중이었던 그는 “역삼까지 가야 대출이 잘 나온다”며 은행원 명함을 받았다.

김씨는 “(내가)너무 멀어서 못 가겠다고 하니 차로 태워줬다”며 “전세 사기 피해자들 중 이런 식으로 대출받은 사람이 많다. 대출이 나오면 안 되는 집인데 대출을 해 준 것”이라며 “공인중개사와 임대인이 공범일 수밖에 없는 이유”이라고 주장했다. 

결국 정상적인 심사를 통해선 대출이 나올 수 없는 집인데, 공인중개사가 그 사실을 알면서도 임차인에게 말하지 않고 계약을 성사시킨 것이다. 집 근처 은행을 찾았던 한 임차인은 대출을 받지 못해 결국 공인중개사가 제시한 은행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

빌라 경매 기간만 1년 넘어
공시지가보다 낮은 경매가

김씨는 “정씨는 인천 중개사무소 시장서 유명한 사람이었다. 집이 많아 여러 중개사무소서 거래했으며, 이런 정씨의 사기 행각을 알면서도 묵인했다”며 “사기를 당한 뒤 알게 된 것은 중개사무소가 전세금(1억2000만원)으로 현재 임대인이 예전 임대인으로부터 집을 매매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때 매매가는 1억원이었고, 남은 2000만원은 중개사무소와 현재 임대인이 나누눠 가져갔다고 들었다”고 개탄했다. 

공인중개사법 제25조에는 ‘개업공인중개사는 중개를 의뢰받았으면 중개가 완성되기 전 ▲해당 중개 대상물의 상태‧입지 및 법률관계 ▲법령의 규정에 따른 거래 또는 이용제한 사항 등을 확인해 이를 해당 중개 대상물에 관한 권리를 취득하고자 하는 중개 의뢰인에게 성실·정확하게 설명하고, 토지대장 등본 또는 부동산종합증명서, 등기사항증명서 등 설명의 근거자료를 제시해야 한다’고 기재돼있다.

수리가 안 돼있지만 이씨는 돈을 받을 때까지 현재 집에서 거주할 예정이다. 경매서 낙찰될 것이라는 희망도 이미 접었다. 1억2000만원짜리 전세지만 매매가 되더라도 7000만원 이하라는 비관적인 말을 들었다.

전세 사기 피해자들은 단체로 중개사무소에게 소송을 걸 예정이다. 중개사무소도 정씨가 사기꾼인 것을 묵인했고, 여전히 전세 사기 매물을 단기 월세로 올려 2차 피해를 양상하고 있는 데다 전부 허위 매물이기 때문이다. 

온라인에 매물을 올릴 경우 압류 사실을 게시하지 않으면 허위 매물로 간주되는데, 당시 A 중개사무소는 해당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다.

피해자들은 평범한 일상을 잃은 채 정씨의 행각을 쫓는 게 일상이 됐다.

이씨는 “경찰에 중개사무소를 신고해도 ‘연관성이 없다’는 말만 한다. 계약 과정을 모두 녹음하거나 영상으로 찍을 순 없다. 결론은 중개사무소를 따로 고소해야겠다는 것”이라고 말했지만 변호사 수임 비용이 발목을 잡았다.

이들은 “경찰에 관련 내용을 전부 찾아서 넘겼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뭐냐? 계속 정씨를 쫓아다니면서 괴롭혀야 하냐? 우리는 일반 직장인인데, 내가 사기당했다고 거기에 몰두하고만 있을 수 없지 않느냐? 우리도 먹고살아야 하는데…”라며 “1억원이 넘는 돈이 고스란히 빚이 됐다. 전세 사기를 당해본 사람은 안다. 이건 피하려고 해도 피할 수가 없다. 선 구제해주길 원하지만 가능하겠느냐?”고 회의적인 태도를 보였다.

“죽지 못해…”
피해자 지금…

인천에선 3명 중 1명이 전세 사기를 당했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피해자가 다수다.

이날 카페서 인터뷰 중 전세 사기 피해 이야기를 듣고 ‘나도 피해자’라고 찾아오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다. 자신들의 피해 상황을 공유하고 있는 이들이 원하는 것은 평범한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이다. 이씨는 “앞으로 피해자가 훨씬 많아질 텐데 대책은 전혀 없는 상태”라고 호소했다. 현재 정씨는 전세 사기로 검찰에 송치됐고 보완 수사 지시가 내려진 상황이다.

<ckcjfdo@ilyosisa.co.kr>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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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의문 해소 첫 단추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