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 받았는데…‘탁상공론’ 울진 산불 지원금의 양면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2.08.29 15:13:20
  • 호수 1390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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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못 받고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정말 목매달아 죽고 싶었는데, 끈까지 다 타버려서 죽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산불 피해 국민 지원금을 집 평수로 차등 지원하는 게 말이 됩니까? 국민들이 지원금을 후원해준 건 어려운 사람 도와주라고 한 겁니다.” 울진군 실거주자로 산불 피해를 입은 A씨의 말이다. A씨는 산불 지원금을 공평하게 지급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난 3월4일 경북 울진군의 야산에서 원인불명의 산불이 발생했다. 산림청에 따르면 산불은 이날 오전 11시14분 울진군 북면 두천리에서 처음으로 발생했다. 산불 진화 헬기 70대와 대원 4200여명이 투입돼 진화를 시작했고, 산불 3단계와 산불재난 국가위기경보 심각이, 소방청은 전국 소방 동원령 1호를 발령했다.

차등 지급

당시 울진 주민 약 4600명이 긴급 대피했고, 산불이 빠른 속도로 광범위하게 번지며 강원도 삼척시 주민 1000여명도 대피했다. 화재 여파로 7번 국도 삼척 호산교차로에서 울진 방향 진입이 전면 통제됐고, 반대쪽 역시 울진 고포터널에서 차량을 회차시켰다. 산불 발생 7분 만에 삼척시 원덕읍까지 번졌다.

산불은 지난 3월13일에 진화됐다. 10일 만이었다. 이 기간 울진 산불 현장엔 3만9992명의 인력과 2927대의 차량, 683대의 헬기가 동원됐다. 산림 1만8463㏊를 태운 뒤였다.

하지만 산불은 끝나지 않았다. 울진에서 석 달 만에 다시 대형 산불이 발생했다. 지난 5월28일 낮 12시6분 울진군 근남면 행곡리 야산에서 불이 나 주변 산과 마을로 번졌다. 이날 발생한 산불은 하룻밤을 넘겨 이튿날 오전에야 모두 꺼졌다. 


하지만 하루도 안 돼 145만㎡ 축구장 200여개 면적의 숲이 사라졌다. 이와 함께 보광사 대웅전과 자동차 정비소, 컨테이너 등 6곳 9개동의 시설이 전소됐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다. 그러나 불길에 행곡리와 읍남리, 수산리 주민 대피령이 내려지면서 주민 44여명은 한밤중에 울진 군민 체육회관과 마을회관 등 4곳으로 대피해 뜬눈으로 밤을 지새야만 했다. 연속되는 큰 산불로 주민들은 불안에 떨 수밖에 없었다.

피해를 본 주민은 삶의 터전을 모두 잃었다. 주택과 생활가전 등 모두가 불탔다. 키우던 강아지나 소까지 죽었다.

당시 경북도는 “울진 산불로 주택 피해를 본 이재민 195가구에 대해 현장 확인과 직접 면담을 통해 희망하는 임시 주거시설 수요조사에 들어간다”고 밝혔다. 도는 마을 단위로 가장 피해가 심한 울진군 북면 신화2리에 우선 임시 조립주택을 지원했다. 

2차분 지급 ‘주택 소유자→주택 규모’
오래 전 지어 무허가 건물 거주도 많아

울진에서는 임시 조립주택 20동을 설치할 수 있는 터 720㎡를 조성했고, 민간업체 등이 보유한 임시 조립주택을 확보해 상·하수도, 전기 등 기반시설을 갖춘 뒤 주민들을 입주시켰다.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완전한 산불 진화와 주민 일상 복귀 지원을 지시했다. 윤 대통령은 “행정안전부 장관은 피해 주민들이 신속하게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도록 지원 방안을 마련해달라”며 “특히 이번 산불이 발생한 지역에 대해선 장마철 전에 응급복구를 실시해 추가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달라”고 당부했다.


나라 전체가 울진의 산불 이재민을 주목했다. 각 단체는 힘을 모아 지원금을 전달했고 개인들도 자발적으로 십시일반 지원금을 모았다. 

지원금은 지난 4월12일 1차 지급됐다. 그러나 이때부터 문제가 생겼다. 1차 지원금은 모금 기관들이 자체적으로 산정된 기준에 따라 전파 5200만원, 반파 3100만원, 부분 피해 150만원, 세입자 2500만원으로 지급됐다.

이 기준대로라면 집을 소유하지 않은 세입자는 집 주인보다 적게 지원금을 받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이재민에게는 정부 지원금도 나왔는데, 생활 안정지원금이라는 명목으로 최대 3800만원이었다. 그러나 이 역시 자가인 사람만 해당됐다.

문제는 울진에는 낡은 집을 세입자가 직접 고쳐 사는 경우가 많고, 1년에 한 번씩 월세를 내는 형태의 주택 임대차도 상당수다. 특히 시골의 오래된 집일수록 무허가 건물인 주택도 많은데 이런 경우는 모두 자가에 해당되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 실거주자들은 지원금 지원을 ‘차별적’으로 시행했다고 지적한다. 실질적인 피해를 따지지 않고 집 소유자에게 지원금을 먼저 줬기 때문이다. 

피난 당시 입었던 옷과 소지품 뿐
“피해 도우려면 공평하게 해달라”

산불 피해 관련 국민 지원금 지급에 차별이 있다는 목소리가 커지자 지원금 지급 방침이 개선됐다. 하지만 이번 방침도 문제가 많다. 이번에는 주택 규모에 따라 지원금을 지원했기 때문이다. 

주택 면적별 위로금은 ▲82.6㎡(25평) 이상 2300만원, 56세대 ▲66.1㎡(20평) 이상 82.6㎡ 미만 1540만원, 16세대 ▲49.6㎡(15평) 이상 66.1㎡ 미만 770만원, 39세대 ▲반파 세대(5세대)에는 주택 규모와 관계없이 900만원을 지급했다.

이번 지원금도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무허가 건물 주택 거주민은 산불 국민 지원금을 받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 지원금을 받지 못한 울진 주민 A씨가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A씨는 농사로 생계를 이어가던 농사꾼이었다. 그러나 울진 산불로 집은 물론이고 농기계들까지 모두 타버렸다. 신발과 옷가지마저 하나도 남지 않고 탔다. 남은 건 피난 당시 입고 있었던 옷과 신발, 그리고 소지품 조금이 전부였다.

A씨가 지원금을 받지 못한 것은, A씨의 집이 지은 지 50년이나 됐기 때문이다. 그 당시는 시골에 집을 짓는다고 등기부등본에 등록하지 않았다. 또 주택 평수도 15평 이하였다.

산불 피해 국민 지원금을 받지 못하니 집 건축에도 차질이 생겼다. A씨 주위의 이웃들 역시 국민 지원금을 받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우선 등기부등본에 등록됐고 집이 커서 국민 지원금을 받았어도, 이웃에게는 말을 하지 않는다. 대부분 마을 주민의 나이가 많은 편이라, 국민 지원금을 지원했다는 소식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두 번 운다

A씨는 “지원금을 받지 못해서 너무 힘들다. 돈이 없어서 집을 크게 짓지 못했는데 형편이 좋은 사람들 위주로 지원금을 주는 게 말이 되느냐”며 “국민들은 산불로 힘들었으니 공평하게 나눠주라고 후원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피해 지역은)특히 시골이라 무허가 건물이 많다. 옛날에 집을 지으면 다 그렇게 살았다. 현재 울진에는 이런 상황 자체를 모르는 사람이 많다. 돈 받을 사람은 조용히 기다리고 있고 이장들도 알려주지 않는다”며 “무허가 건물에 사는 사람은 국민도 아니냐. 우리도 세금 내고, 군대도 간다. 산불 이재민을 돕는 이유라면 모은 지원금을 공평하게 전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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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여발 사법 전쟁 ‘끝까지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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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 재임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 이후인 지난 2018년 4월 “권한이 집중된 제왕적 대법원장을 견제하고, 법관의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갖고 설치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선 이를 일컬어 “지나치게 민주당에 친화적”이라고 비판한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 설치 직후 첫 의장으로 선출됐던 최기상 당시 서울북부지법 부장판사는 현재 민주당 의원이다. 전국법관대표자회의는 지난 9월 민주당이 주장한 의제 ‘대법관 증원론’을 포함한 상고심 제도 개선 토론회를 개최했다. 이어 “사법부는 대법관 증원안을 경청하고 자성해야 한다”는 취지로 보고서를 작성·공개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전국법관대표자회의를 일컬어 “민주당에 힘을 설어주기 위해 토론회를 개최한 게 아니냐”는 비판 목소리도 제기됐다. 대법원의 이재명 대통령에 대판 파기환송 판결에 대해서도, 정 대표는 지난 9월 전국법관대표자회의에 “조 대법원장 사퇴 권고 등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 회복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에선 “대법원의 예규 제정은 반격”이라고 해석한다. 그 근거로는 “내란 전담재판부를 줄곧 반대하다가 갑자기 예규 제정을 밝힌 의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된다”는 점을 들었다. 민주당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외에도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꿀 만한 사법개혁안을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시킬 준비를 하고 있다. 대법원의 예규 제정에 대해선 “민주당의 공세를 적절한 선에서 수용해 더 큰 공세에 대비하려는 의도”라고 보는 시선도 있다. 하지만 ‘특별재판부’가 ‘전담재판부’로 바뀌었다고 해서 다른 사법개혁안 통과 시도가 중단되는 것은 아니다. 법원으로선 기존 사법 체계를 모두 바꾸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보면서 검찰이 해체되는 과정을 되새길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이미 민주당이 주도하는 사법개혁안 자체가 사실상 ‘기존 법원 해체’로 해석될 소지가 있다. 조금씩 권한 잃다 해체 결정 검 종착역은 헌재 최고법원 등극? 민주당 등 범여권이 검찰을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으로 분리해 완수했던 검찰 해체에 대해선 “헌법은 검찰 조직의 존재를 전제로 검찰총장의 존재를 규정했다”면서 위헌 논란을 제기하는 반대 측 의견이 있었다. 하지만 범여권은 이를 강행했다. 큰 틀에서 보면, 검찰은 ▲특별검사제도 도입 ▲검경 수사권 조정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 설치 ▲중대범죄수사청·공소청 분리 등 과정을 거쳐 해체됐다. 최초의 특별검사(이하 특검)는 지난 1999년 김태정 전 검찰총장 부인에 대한 옷 로비 의혹과 한국조폐공사 노조 파업 유도 사건에 대해 진행됐던 최병모 특검이었다. 특검이 성립됐던 배경은 “검찰이 검찰총장의 부인이 연루된 사건을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이었다. 아울러 당시 국회 구도는 여소야대였다. 한나라당은 “사건을 축소·은폐했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흐름을 타고 강하게 밀어붙여 특검법 제정을 주도했다. 이후 현재까지 개별 특검법은 총 16개가 통과됐고, 상설 특검은 6회 추진됐다. 검찰로서는 1999년 최병모 특검 설치가 수사권·기소권 독점이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현재까지 총 22회의 특검이 성립됐다는 것은 검찰에 대한 각계의 불신을 상징하는 중요 사실관계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이 끝은 아니었다. 검찰을 노리는 다음 단계는 검경 수사권 조정이었다. 최초의 검경 수사권 조정은 지난 2011년 진행됐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사법경찰관이 검사의 수사 지휘에 이의를 제기하는 재지휘 건의 제도 신설 등의 내용이 담긴 안을 대통령령으로 제정해 의결했다. 지난 2016년엔 ▲진경준 게이트 ▲정운호 게이트 ▲김형준 전 부장검사의 스폰서 의혹 ▲최순실 게이트 등이 연이어 발생해 검찰의 신뢰도에 대한 강한 문제 제기가 이어졌다. 이는 문재인정부 출범 이후 장기간 논의된 검경 수사권 논의로 연결된다. 공수처도 설치됐다. 민주당 집권 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 사건을 강하게 기억하는 지지자들의 비원을 외면하긴 어려웠던 측면도 있었다. 그렇게 검찰은 서서히 권한을 빼앗겼다. 그러다가 지난 9월에 이르러 검찰은 내년부터 중대범죄수사청과 공소청으로 갈라질 운명에 처했다. 특히 중대범죄수사청은 행정안전부로 옮겨진다. 서서히 권한을 빼앗기다가 끝내 해체를 앞둔 운명을 맞게 된 것이다. 민주당 등 범여권은 ▲법원행정처 폐지 ▲법 왜곡죄 도입 ▲대법관 증원 ▲재판소원 도입 등 사법개혁안을 시도하고 있다. 범여권이 사법개혁안을 모두 통과시킨다면, 사법부로서는 “검찰에 이어 사법부도 한순간에 와해된다”고 인식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순간에 와해된다 법원행정처가 없어지면 대법원장의 권한이 줄어든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판사의 재판도 법적 처벌 범위 안에 포함될 위험에 노출된다. 대법관이 늘어나 대법관의 권위·희소 가치가 줄어든 후 재판은 헌법소원 제기 범위 안에 포함된다. 최종 종착지는 헌법재판소가 대법원을 제친 후 최상위 사법기관으로 규정될 순간임을 배제하기 어렵다. 지난 24일은 사법부가 느낄 법한 공포가 처음 피부에 와닿은 날이었을 수도 있다. 새해엔 민주당과 사법부의 전쟁이 더욱 거칠게 진행될지도 모른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