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 후폭풍> ③약발 안 먹힌 ‘윤핵관’ 승부수

‘한 끗 차이’ 이겨도 찝찝한 뒷맛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지방선거 당선자 명단을 살펴보면 국민의힘 인물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대승을 거뒀다. 4년 전 설욕을 완벽히 갚았다는 평가가 내려진다. 그러나 경기도지사 선거에서는 석패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개운치 않은 승리일 수 있다. 경기도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후광 효과가 제대로 먹혀들지 않은 탓이다. 

경기도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이 번갈아가며 탈환을 반복해오던 곳이다. 당선만 된다면 차기 대권주자로 떠오르며 존재감이 급상승한다. 민주당 간판 이재명 의원도 경기도지사를 역임한 뒤 대선에 도전했던 만큼 경기도지사의 위상은 정치권에서 큰 파급력을 가진다. 지방선거 전체를 놓고 볼 때는 국민의힘이 웃었지만 경기도지사는 민주당이 가까스로 지켜냈다. 

초접전 양상
막판 뒤집기

출구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민주당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침묵뿐이었다. 반면 국민의힘 개표 상황실에서는 큰 함성과 박수가 터졌다. 출구조사 결과와 거의 비슷하게 지방선거가 국민의힘의 압승으로 끝났다. 9곳 이상 승리를 기대하던 국민의힘은 광역단체장 12곳을 말 그대로 빨간색으로 물들였다.

양당의 확연한 온도차가 느껴진 대목이다.

박빙으로 불리던 지역까지 국민의힘이 이길 것이라는 그동안의 분석과 별반 다를 게 없는 결과로 지난 총선 및 지방선거와는 반대로 뒤집힌 양상이다. 당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도적인 승리를 거머쥐고 총선까지 대승을 거두며 180석이라는 거대 여당까지 탄생시켰다. 문제는 거대 당이 탄생한 이후다.


연이은 민주당의 헛발질과 악재가 이어졌고 결국 민심이 등을 돌리며 국민의힘 손을 들어줬다. 이 같은 결과는 지난해 열린 4·7 재보궐선거 직후부터 드러나기 시작했다. 서울시장과 부산시장에서 민주당이 앞선 곳은 한 곳도 없었다. 

재보궐선거의 여파는 대선에서도 드러났다. 5년 만에 보수당에 패배하며 정권을 내주는 결과로 되돌아왔다. 정권교체 10년 주기설이 최초로 깨지며 정치 초보라 불리던 0선 정치인인 윤석열 대통령을 탄생시켰다. 

짜릿한 승리를 거머쥔 국민의힘은 현재 민주당에 내리 3연승을 기록 중이다. 대선에서 발휘된 윤풍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윤심이 투영된 후보가 곳곳에서 승전보를 울렸다. 대선에서도 윤 대통령을 택한 대표적인 지역인 충청도 역시 국민의힘 인물로 꽉 채워졌다. 

전남과 전북에서는 진보당을 제치고 국민의힘이 15% 넘는 지지를 받아 선거비를 보전받고, 민주당 다음으로 표를 많이 받은 당이 되는 결과까지 이끌어냈다. 

경기만…국힘 개운치 않은 승리
대통령 후광 효과 먹히지 않아

다만 윤풍이 경기도에서는 발휘되지 못한 모양새다. 지방선거에서 민주당을 압살하긴 했지만 전국에서 가장 많은 유권자를 가진 경기도지사직을 탈환하지는 못했다. 경기도는 이번 지방선거에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른 지역이다. 

대선에서도 윤 대통령이 이재명 의원에게 패배를 기록한 곳이다. 1300만명의 유권자가 거주하고 있는 지역으로 2년 뒤 총선과 윤정부의 국정 동력을 감안했을 때도 국민의힘은 반드시 경기도를 탈환해야 할 필요가 절실했다. 


‘윤심 명심 대리전’이라고 불렸고 사실상 대선 2차전이라는 말까지 나오며 핫한 지역으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경기도지사 후보 선정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유승민 전 의원이 정계 은퇴를 번복하면서 선거전에 뛰어들었지만 당심에 밀려 패배하며 김은혜 전 의원이 최종 후보로 결정됐다.  

마지막까지 초박빙의 승부를 이어가던 경기도지사 개표 결과는 동이 트기 직전 윤곽이 드러났다. 최종 개표 결과 김 전 의원은 김동연 경기도지사 당선인에게 0.14%p 차로 패배해 고배를 마셨다.

김 전 의원은 오전 7시경 결과에 승복하며 김 당선인에게 축하 인사를 전했다. 두 인물의 표 차이는 1만표가 채 되지 않았다(8193표). 새벽까지는 김 전 의원이 승기를 잡고 있었다. 

초반만 해도 두 인물의 표 차이는 제법 컸다. 시간이 지나고 김 전 의원 옆에는 당선 유력 자막까지 달려있었지만 점차 격차를 좁힌 김 당선인이 결국 승리를 거머쥐었다. 

국민의힘은 연일 경기도 탈환을 위해 공을 들여왔다. 특히 권성동 원내대표는 경기도 승리가 지방선거 승리라는 말까지 했을 정도다. 이런 탓에 지방선거에서 대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경기도의 패배는 국민의힘에게 뼈아플 수 있는 대목이다. 

빛바랜
윤심 프레임

유세 기간 동안 김기현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은 김 전 의원을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중 윤핵관이라고 소개했을 만큼 윤 대통령과의 거리가 가깝다며 윤심 프레임을 씌웠지만 해당 전략은 먹혀들지 않은 모양새다.

지방선거에서 윤심 대표주자 중 한 명으로 분류된 인물이 김 전 의원이다. 대선 기간 윤심을 대표하며 자신의 몸집을 키워왔다. 경기도지사에 당선만 된다면 얻을 수 있는 게 많은 선거였다. 

윤핵관은 현재 윤 대통령을 등에 업은 실세 중 실세다. 국회 역시 윤 대통령 세력이 접수한 가운데 윤핵관으로 불리는 권성동 원내대표가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 이런 영향 덕에 김 전 의원 역시 경기도지사 선거에 출마할 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김 전 의원이 김 당선인보다 전문가 이미지가 다소 떨어진다는 점이다. 이런 탓에 일각에서는 차라리 유 전 의원이 나왔더라면 무난한 승리를 가져갔을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유 전 의원은 경제 전문가 이미지를 가진 인물이다. 김 전 의원이 윤 대통령의 후광 효과를 가지고 나왔지만 역부족이었던 셈이다. 유 전 의원은 여론조사에서 선전했던 터라 민심은 이미 입증됐었다.

김 전 의원과 김 당선인과의 대결에서 전문가 이미지는 중요한 열쇠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유세 기간 내내 김 전 의원은 전문가 이미지가 강한 김 당선인을 향해 “실패한 문재인정부 관료”라고 타격했으나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데 실패했다.


김 당선인이 가진 전문가 이미지가 워낙 굳건했던 탓이다. 선거 막판 불거진 채용 청탁 의혹과 재산신고 축소도 김 전 의원의 발목을 잡았다는 분석이다. 해당 의혹은 무소속 강용석 후보가 띄웠는데 한시가 급했던 김 전 의원에게는 상당한 타격이 가해진 것으로 보인다. 

막판까지 강 후보와의 단일화가 이뤄지지 않았던 점도 김 전 의원이 패배한 요인 중 하나로 분석된다. 강 후보와 국민의힘 간 단일화 책임론 공방이 가열됐다. 강 후보는 극우 보수 성향으로 두 사람은 선거 막판 직전까지 단일화 밀당을 이어갔다.

당시 강 후보가 내세운 단일화 조건은 국민의힘으로의 복당이었으나 결국 무위에 그쳤다. 개표 결과 강 후보는 0.9%를 득표하며 5만여표를 가져갔다.

단일화
했다면?

만일 김 전 의원이 강 후보와 단일화했다면 충분히 당선될 수 있었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는 대목이다. 20대 대선에서 당시 윤석열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단일화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 윤핵관이었지만 이번 지방선거에는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두 인물 간 단일화에 대해서는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여러 논의가 나왔다. 그러나 이준석 대표가 “단일화는 필요없다”고 선을 그었고, 김 전 의원 역시 적극적인 액션을 취하지 않았다. 작은 표 차이로 당락이 갈리자 권성동 원내대표는 “단일화했다면 이길 수 있었다”며 경기도지사 패배 책임론에서 발을 뺐다.


김 전 의원 본인에게는 최초의 여성단체장이라는 타이틀과 윤심을 이어갈 차기 대권잠룡으로 분류될 수 있는 기회였고, 국민의힘이 민심을 한층 더 다질 수 있던 기회가 날아갔다. 

경기도 패배는 당내 핵심 세력인 윤핵관의 입지를 다소 흔들리게 할 수 있다. 지방 곳곳에 윤심이 자리하게 됐지만 수도권인 서울과 보수 텃밭인 대구를 놓고 보면 상황이 녹록지 않다.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 당선인이 윤심이 아니라는 점에서다.

오 시장의 경우 이번만 4번째 서울시장 당선이다.

20대 총선에서 정세균 전 총리에게 패배해 입지가 줄었고, 2년 전 전당대회에서도 황교안 전 국무총리에게 당권을 빼앗긴 바 있다. 심지어 지난 총선에서는 초선인 고민정 의원에게 패배하면서 한동안 어려운 시기를 보냈다. 

압도적 표 차이로 당선된 오 시장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화려하게 재기에 성공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 서울 시장 수성은 환영할만한 일이지만 윤핵관 세력에게는 견제 대상이다. 

차라리 유승민 나왔으면 됐다?
“민심이 당정에 경고” 분석도

당내에서 오 시장은 윤핵관보다는 이 대표와 가깝다. 이 대표는 지난해 재보궐선거 당시에도 오 시장 캠프에 소속돼 지원하기도 했다.

2연승에 성공한 당 대표가 됐고, 오 시장이 4선에 성공한 이상 향후 대권까지 바라볼 수 있게 됐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보수 텃밭인 대구 역시 홍 시장이 쥐게 되면서 벌써부터 보수 표심을 다지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홍 시장은 벌써부터 윤정부가 자신을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보수 텃밭에서 홍 시장이 일찌감치 세를 다져 놓는다면 윤핵관 세력은 불리할 수밖에 없다. 윤핵관은 극보수 성향의 유권자에게 배신자로 낙인 찍혀 있다.

이번 대선에서 윤 대통령을 뽑긴 했지만 정권교체를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또 윤 대통령이 완전한 보수를 대표하는 아이콘도 아니다. 윤핵관 세력이 대구에서 표심을 다지지 못한다면 보수의 분열은 피할 수 없을뿐더러 국민의힘 내부 분열도 불가피하다. 

부동층과 중도 민심이 중요한데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이들이 고민거리로 다가온다. 대선에서도 남성층과 여성층의 표심은 극명하게 갈렸다. 정치권에서는 아직도 갈라치기 여파가 잔존해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전 의원이 경기맘을 띄우며 여성 표심 공략에 나섰으나 실패로 돌아갔다. 

갈라치기 대선의 여파가 여전히 이어졌던 셈으로 이 문제는 여전히 국민의힘에게 남은 숙제다.

일각에선 민심이 벌써부터 경기도지사 선거 결과를 두고 윤정부를 향해 경고장을 날린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윤정부가 통합정부에 기조를 맞춘 이상 이를 극복해내지 못한다면 향후 총선에서 위기로 다가올 수 있다.

2년 뒤
성적표는?

유권자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면 결코 국민의힘이 잘해서 뽑아준 게 아니다. 정권교체 열망이 높았고, 민주당에 비해 국민의힘이 조금이라도 여론을 읽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 역시 4년 무한 책임론을 강조하며 큰 승리를 경계하고 나섰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민의힘이 크게 승리했지만 도취해서는 안 된다”며 “윤핵관이 더 큰 세를 다지기 위해선 2년 뒤 총선까지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제주도도 윤핵관 영향?

 

온통 빨간색으로 물들인 지방선거에서 전북과 전남을 제외하고 파란색 깃발을 꼽은 지역이 있다.

바로 제주도다. 제주도는 2002년 우근민 전 제주도지사가 새천년민주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된 이후 20년 만에 민주당이 탈환에 성공했다.

직전까지도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이 도지사로 있던 곳이다.

무소속이긴 하지만 제주도지사를 두 번했을 만큼 원 장관의 제주도 내 입지는 탄탄했다.

원 장관은 국민의힘 경선에서 윤 대통령에게 패배했지만 이후 국민의힘 내 새로운 실세로 떠올랐다.

국민의힘 선대위가 내홍을 겪는 과정에서 강판당했으나 선거대책본부에서 재차 정책본부장에 다시 임명된 바 있다.

윤 대통령의 승리로 대선이 끝난 뒤 현재는 윤정부 초대 국토교통부 장관으로 내정됐다.

그러나 새로운 윤핵관인 원 장관의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제주도지사와 제주도을 의원 자리를 민주당이 차지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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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전한길 유니버스’ 절대 불가능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국민의힘 행사에서 영향력을 과시하다가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국민의힘에서 ‘보수의 김어준’을 꿈꾸는 것 같다. 전씨는 과연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했던 영향력을 단번에 얻을 수 있을까? 국민의힘에 입당한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가 지난 8일, 대구 EXCO에서 진행된 국민의힘 전당대회 대구·경북지역 합동연설회에서 큰 물의를 일으켰다. 전씨는 지난 3월 창간한 <전한길뉴스> 소속 언론인 자격으로 참석했다. 선거판 난장판 하지만 전씨는 언론 취재의 한계를 넘어 반탄(탄핵 반대) 성향 후보들의 연설 도중 응원하면서 분위기를 띄웠다. 반대로 찬탄(탄핵 찬성) 성향 당 대표·최고위원 후보들이 연설할 때마다 “내부 총질” 혹은 “배신자” 등 원색 비난을 했다. 이날 김근식 최고위원 후보는 전씨를 직접 지칭해 “부정선거 음모론에 빠지고, 계엄을 계몽령이라고 정당화하는 사람들과 어떻게 같이 투쟁할 수 있겠느냐”면서 비난했다. 그러자 전씨는 김 후보에게 욕설하면서 자신의 지지자들을 격동시켰다. 찬탄 성향 조경태 당 대표 후보가 연설할 땐 자리에서 일어나 한 손을 들고 항의하는 등 지지자들의 조 후보 비난을 유도했다. 그러자, 찬탄 성향 일부 당원들이 전씨에게 물병을 던지면서 항의했다. 한 당원은 전씨에게 “난 20년 차 당원인데, 입당한 지 한 달밖에 안 된 당신이 왜 이런 난동을 부리느냐”고 따져 물었다. 국민의힘 지도부는 전씨의 전당대회 출입을 막기 위해 대의원이 아닌 일반 당원의 행사장 출입을 금지했다. 이어 전씨에 대한 징계 가능성도 내비쳤다. 그러자 전씨는 <전한길뉴스> 발행인 신분을 내세워 “언론 탄압”이라며 반발했다. 이처럼 전씨는 국민의힘 당원과 언론인이란 신분을 왕래하면서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개입하고 있다. 지난달 31일과 지난 7일엔 시사평론가 고성국씨 등과 함께 주최한 ‘자유 우파 유튜브 연합 토론회’에 각각 장동혁·김문수 당 대표 후보를 출연시켜 ‘면접’을 보는 위력을 국민의힘 내외에 과시했다. 특정 진영의 강경파를 대상으로 언론사·유튜브 채널 등을 운영하면서 힘을 과시하는 모델로는 방송인 김어준씨가 있다. 김씨는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의 친문(친 문재인) 강경파 성향 당원·지지자를 대상으로 라디오·유튜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당 전체를 좌지우지하는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당 대표 후보들을 면접하는 형식은 김씨가 지난해 3월 자신의 유튜브 방송 ‘김어준의 다스뵈이다’에 민주당 총선 후보자였던 이언주·전현희 의원과 안귀령 대통령실 부대변인을 출연시켜 객석의 청중에게 큰절을 시킨 것과 비슷하다. 김씨가 지난 6월 기획·진행한 ‘더 파워풀’ 콘서트엔 ▲문재인 전 대통령 ▲민주당 정청래 대표 ▲김민석 국무총리 등 다수의 민주당 내 유력 정치인이 참석했다. 입당하자마자 영향력 과시 물의 당원·언론인 오가며 전대 개입 김씨는 지난 2011년 팟캐스트 방송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로 활동하면서부터 민주당에 대한 영향력을 키워왔다. 물론 김씨가 15년 동안 구축한 영향력을 전씨가 단기간에 얻긴 어렵다. 이 때문인지 전씨는 국민의힘에 입당하자마자 ‘10만 당원 양병설’ 등을 주장하면서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을 내비쳤다. 하지만 국민의힘 전당대회에 출마하기 위해선 당비를 3개월 이상 납부하고, 연 1회 이상 교육을 받은 책임당원이어야 한다. 전씨는 지난 6월 온라인으로 입당했고, 당 대표 후보 등록일은 지난달 30일부터 단 이틀 동안이었다. 따라서 전씨는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할 수 없었다. 출마 길이 막힌 전씨는 전당대회에서 당원·언론인 신분을 교차하면서 자신을 따르는 당원들을 선동해 영향력을 과시하려고 한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가 민주당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구조를 이해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과 주변 진영 전체를 둘러싼 질서는 20세기 초·중반에 활동했던 이탈리아 사회주의자 안토니오 그람시의 헤게모니 이론이 갖는 틀과 비슷하다. 그람시는 “자본주의는 견고하게 발전할 것”이라는 대전제를 토대로 “언론·문화 등 각 분야에 진지를 구축해 참호전으로써 상대 세력을 약화해야 한다”는 사상을 정리했다. 각 분야에 구축한 진지는 결정적인 시기에 전개할 기동전의 전초기지 역할을 한다. 자본주의 구조가 뿌리내리면서 러시아 2월·10월 혁명과 같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는 혁명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그람시는 주도권 다툼으로써 체제 내 혁명을 추구하는 취지의 사상을 구체화했다. 우리나라에선 소련 해체가 가시화되던 1980년대 후반부터 기존 노동운동에 문화·예술운동을 접목하는 단체가 활동하는 등 각계에서 다른 방향의 노동운동을 전개하는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민주당을 받치는 양대 축은 각계의 시민단체들과 진보 성향 매체들이다. 대규모 정치 이벤트가 진행될 땐 민주당 지원 사격을 맡으면서, 정치적 명분과 정당성을 구축·홍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또 민주당에 인력을 공급하는 역할도 한다. 주요 선거 등 대규모 기동전이 필요한 상황에선 각자의 진지에서 일시에 뛰쳐나와 물량을 공급하는 식이다. 이 같은 구조를 상징하는 사람이 민주당 윤미향 전 의원이다. 정의기억연대 대표로 오랫동안 활동하던 윤 전 의원은 민주당을 통해 국회의원이 됐지만, 횡령 의혹이 유죄로 확정돼 의원직을 잃었다. 같은 당 추미애 의원 등 민주당 일각에선 윤 전 의원의 사면을 강하게 지지했고, 결국 8·15 광복절특사를 통해 사면·복권됐다. 민주당과 그람시 하지만 시민단체와 매체는 대중을 직접 동원하기가 어려운 데다, 매체는 언론 고유의 한계가 있다. 시민단체 역시 시민들의 참여가 부실하다는 핸디캡을 떠안을 수밖에 없는 구조적 문제도 존재해 왔다. 이 때문에 삼각 구조를 받쳐줄 또 하나의 하부 구조가 필요했다. 이 문제를 해결해준 사람이 바로 김씨였다. 김씨는 지난 1998년 ‘안티 <조선일보>’라는 깃발을 내걸고 <딴지일보>를 창간한 후 풍자·B급 정서·유머를 지향해오고 있다. 당시 <딴지일보>에선 포장마차에서 어묵을 찍어 먹는 용도로 내는 간장의 위생 상태를 취재해 기사화하거나 국가혁명당 허경영 명예대표의 대권 도전 과정을 풍자하는 등 ‘신선한 B급 정서’를 지향해 독자적인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한편으로 김씨에게 평생 따라다닐 놀림거리를 남겼다. 김씨가 <딴지일보>의 채무를 해결하기 위해 여성용 성인용품을 판매했고, 성인남녀의 만남을 중개하는 사이트를 개설했던 탓이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여전히 김씨를 비판하면서 당시의 전력을 함께 언급한다. 이후 김씨는 ▲황우석 박사 옹호 ▲영화감독 겸 코미디언 심형래씨 옹호 등 숱한 논란을 일으켰다. 특히 황 박사 옹호는 그럴 듯한 음모론을 제시하면서도 설득력 있는 근거는 제시하지 않는 김씨의 특성과 깊이 맞물린다. 당시의 논란도 김씨에 대한 비판론을 형성하는 중심축이다. 그랬던 김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 계기로는 크게 2가지를 들 수 있다. 하나는 ‘문재인 대통령 만들기’를 처음 시작했다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팟캐스트 ‘나는 꼼수다’ 공동 진행자 중 1명으로 활동했단 것이었다. 김씨는 당시 민주당 백원우 의원이 노무현 전 대통령 영결식장에서 이명박 당시 대통령에게 거친 항의를 말리고 고개 숙여 사과하는 문 전 대통령을 주목했다. 이후 김씨는 문 전 대통령의 킹메이커를 자처했고, 이는 ‘나는 꼼수다’ 진행 이후 문 전 대통령의 대세론으로 이어졌다. ‘나는 꼼수다’는 김씨 특유의 B급 정서·음모론이 이명박정부에 대한 다양한 불만과 맞물려 대성했던 방송이었다. ‘나는 꼼수다’는 현재까지 이어지는 김씨의 성향을 구체화한 방송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해당 팟캐스트의 상징으로 통하는 “쫄지 마”는 여전히 회자된다. ‘나는 꼼수다’는 구체적인 사실관계 검증엔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 명확한 당파성을 매개로 특정 정당·진영 사람들이 선호할 음모론과 괴담을 이미 밝혀진 사실관계와 섞어 전달하는 것에 집중했다. 진실과 거짓의 경계선을 적당히 왕래하면서 민주당 지지를 극대화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영웅과 악당들 이는 집단의식으로 연결됐고, 김씨에겐 거대한 영향력을, 민주당엔 거대한 지지 집단을 만들어줬다. 김씨는 ‘나는 꼼수다’를 통해 단순·명쾌한 이분 구도를 완성했다. 그를 선호하는 민주당 지지자의 정치관은 “보수진영이란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운다”는 것이다. 이는 정의로운 주인공이 지구 정복을 노리는 악당의 무리에 맞서 싸우는 어린이용 만화의 서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아울러 현재 민주당 핵심 지지 세대로 알려진 4050세대가 미국의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선호하는 것과 연결해볼 수 있다. 이 세계관엔 초월적인 힘을 갖고 모든 생명체의 절반을 죽여 우주를 정화하려는 악당에 맞서는 영웅들이 등장한다. 이 세계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준 사건은 지난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사망사건이었다. 이들에게 노 전 대통령 사망사건은 거대 악당과 싸워야 하는 당위성을 제공해주는 절대적인 명분이었다. 김씨가 이 사건에 주목하고, 상주로서 백 전 의원의 항의를 제지하던 문 전 대통령을 주목한 것은 당연한 순서였다. 우리 고전문학 중 전설은 김씨의 평소 주장과 비슷한 서사 구조를 띠고 있다. 전설은 능력이 뛰어난 주인공이 현실의 한계에 좌절하고 무너지는 비극적인 구조를 취한다. 또 설득력을 부여해야 많은 사람에게 퍼질 수 있어서 실제 존재하는 지역·지명을 매개로 그럴듯하게 전개된다. 여기엔 각박한 현실을 바꿔줄 새로운 영웅의 출현을 기대하는 민중의 소망이 담겨있다. 그래서 조선시대엔 “정씨 성을 가진 영웅이 새 나라를 만들어 왕이 될 것”이란 취지의 예언서가 오랫동안 돌아다녔다. 김씨의 주장은 21세기판 전설이라고 할 수 있다. 김씨는 민주당과 주변 진영을 취약한 상황에서 거대한 악에 도전하는 영웅으로 묘사하고, 지지자들은 그 영웅담에 환호한다. 그러면서 “거대한 악에 맞서 싸우는 영웅을 또 잃을 수 없다”는 공감대를 공유한다. 그들은 “대통령을 지켜야 한다”는 같은 목표를 공유한다. 김씨는 ‘김어준 유니버스’ 혹은 ‘민주 유니버스’를 만들었고, 지지자들은 관객을 넘어선 참여자로서 희열과 보람을 느낀다. <한국일보>는 지난 2017년 이들의 세계관을 소개하면서 “대통령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대통령을 지켜야 하느냐”고 비판했다. 완전히 다른 ‘B급 정서’ 카타르시스·도파민 차이 김씨는 ▲세월호 고의 침몰설 ▲천안함 피격 사건 관련 가짜 뉴스 살포 ▲코로나19 대구 확산설 등 주장을 이어가면서 지지자들에게 정치적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했다. 그들이 김씨를 통해 느낀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은 고스란히 민주당의 정치적 자양분이 됐다. 그래서 총선 출마 후보들은 김씨가 보는 앞에서 지지자들에게 큰절을 해야 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이 지난해 12월 비상계엄을 선포하면서 체포 대상 중 1명으로 김씨를 지목했던 것은 김씨에게 엄청난 이익이 됐다. 당시 계엄군은 김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 스튜디오 주변을 통제했다. 김씨는 지난해 12월13일 국회에서 “계엄군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를 사살한 후 북한 소행으로 공작하려고 했다”면서 “정보 출처는 국내에 대사관이 있는 우방국”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그 우방국은 미국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됐지만, 미국은 국무부·주한미국대사관을 통해 이를 부인했다. 반면 민주당 최민희 의원은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김어준님’의 증언을 허구로 단정하고 비난부터 하는 것은 무모하다”고 주장했다. 국민의힘과 보수 세력은 민주당과 그 주변 세력처럼 정교한 조직체를 만들지 못했다. 보수 세력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스피커 역할은 전씨와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가 맡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씨처럼 진영 전체를 들썩일 수 있는 정치적 유머 감각과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다. 카타르시스와 도파민을 제공하지도 못한다. 이 때문에 이들의 주장은 강경 보수 지지자들 외 국민 사이에서 웃음거리로 전락한 지 오래고, 국민의힘 내부서도 강하게 비판한다. 국민의힘이 지난 2022년 대선과 지방선거에서 이겼을 당시엔 민주당에 비판적인 2030세대 남성과 6070세대를 아울러 민주당을 지지하는 4050세대와 2030세대 여성을 포위한다는 ‘세대포위론’ 전략이 제시됐다. 그러나 윤 전 대통령과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가 불화 끝에 결별하면서 이 연합은 얼마 가지 못해 해체됐다. 당시 승리를 주도했던 국민의힘 지지층은 이 대표 특유의 합리주의를 지지하는 젊은 유권자와 강경 보수를 지향하는 노년 유권자로 분열됐다. 전씨는 많은 공무원 제자를 거느린 유명 한국사 강사였다. 따라서 적절히 순화된 주장과 교묘하게 선정한 정치적 입지를 섞어서 정치 전면에 나섰더라면,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전씨는 김씨와 달리 그럴듯한 이야기를 구성하고 유머를 섞는 능력을 보여준 적이 없다. 전씨의 옛 제자들은 그를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절대로 정치 전면에 나서지 않는 김씨와 달리, 직접 국민의힘에 입당해 당 대표 선거에 출마하려 하는 등 적당히 선을 긋지도 않는다. 정치인들이 알아서 자신의 스튜디오에서 큰절을 하게 만드는 김씨와 달리, 전씨는 스스로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해 전당대회서 눈에 띄는 행동을 했다. 전에겐 없는 것들 무엇보다 김씨가 “이 대통령을 능가하는 영향력을 가진 것 아니냐”는 설까지 나올 정도로 강력한 영향력을 구축하기까지 15년이 걸렸단 사실도 제대로 통찰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적으로 국민의힘은 정치 구조를 통찰하지 못해 민주당이 장기간 공들여 구축한 정치 구조체를 갖추지 못했다. 그런데도 전씨는 ‘전한길 유니버스’ 제작을 멈추지 않는다. 과연 전씨는 ‘보수의 김어준’이 될 수 있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