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의 여당’ 야인 이준석 대반격 카드

“같이 죽자” 물귀신 작전?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국민의힘 내홍의 중심에는 늘 이준석 대표가 있었다. 최근에는 비교적 잠잠한 모습이다. 한번 물면 놓지 않던 이전과는 다르다. 자신을 향한 의혹을 해소하고, 반격할만한 카드를 앞세워 재기를 노리려는 모양새다. 이 대표가 모든 걸 털어내고 다시 대표로 돌아올 수 있을까?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 세력이 길고 길었던 주도권 싸움에서 결국 승리했다. 승리하자마자 자신들의 모임 등을 띄우며 연일 세 다지기에 돌입 중이다. 이들  세력은 그동안 조용한 모습을 보였다. 이 대표와 친분을 유지해오던 권성동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는  그동안 침묵으로 일관했으나 최근에는 분주한 모습이다. 그는 중앙윤리위위원회가 이 대표 징계 결정을 내린 지 5시간 만에 입을 열었다.

수습된 듯
안된 듯

권 직무대행은 이 대표 징계 당일 최고위원회를 개최한 데 이어 지난 11일에는 의원총회까지 열어 당 대표 직무대행 체제를 하겠다고 못 박았다. 국민의힘은 권 직무대행 체제로 전환하면서 이준석 지우기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국민의당 몫으로 배정받은 최고위원 임명도 예고했다. 이 대표가 추진했던 ‘나는 국대(국민의힘 대변인)다’를 비롯해 조직을 바꾸기 위해 했던 여러 시도 역시 폐지될 위기에 놓였다.

권 직무대행이 대놓고 이 대표를 지우려는 이유는 이 대표에 반하는 당내 세력의 불만을 잠재우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또 자신의 당권 도전의 포석을 깔기 위함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권 직무대행 입장에서는 현재로썬 직무대행 체제가 최선일 수밖에 없다.


오히려 자신의 입지를 위해 이 대표의 권한 직무를 통해 직을 지켰다는 의견이 나와서다. 자신의 입장에선 최선의 선택을 한 셈이다. 이 대표의 직함을 지켜주면서 당내 혼란을 수습하기 위함이라고 읽힌다.

이 대표 징계 이후 국민의힘 인사들은 자신을 위해 본격적인 세 다지기에 돌입했다. 권 직무대행을 비롯해 김기현 전 원내대표, 장제원 의원, 안철수 의원 등이 띄운 모임이 활기를 띠는 중이다. 

이 대표와 극심한 갈등을 빚어오던 장 의원은 이 대표 징계 다음날 자신의 외곽 조직을 가동했다. 장 의원의 원외 모임에 당시 버스 23대가 동원됐고 참여 인원만 1100명이 넘을 정도로 대규모였다.

안 의원 역시 자신의 공부 모임을 발족했는데 친윤(친 윤석열)계 의원 40명이 넘게 모였다. 여러 인사들이 차기 당권 주자로 언급되는 만큼 국민의힘은 본격적인 주도권 싸움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이 같은 상황에서 권 직무대행, 장 의원 등은 국민의힘에게 등 돌린 여론을 되돌려야만 한다. 당장 전면에 윤핵관이 나서기엔 여론이 악화된 상태다.

직무대행 체제 내홍 발생
여론전 통해 세력 키우기

차기 지도 체제를 놓고 서로 엇갈린 목소리가 나오고 있는 등 내분도 감지된다. 정치권에 따르면 후임 차기 대표의 선출과 시기 및 조기 전당대회 개최 여부가 국민의힘 핵심 쟁점 사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결국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 키를 누가 잡느냐가 관건이다.


다만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대표의 당원권 6개월 정지를 두고, 궐위가 아닌 사고로 보겠다는 시각이 파다하다. 당 대표의 일시적 부재로 해석하는 셈이다. 기저엔 새로운 당 대표를 뽑지 않겠다는 의지가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이 경우 이 대표가 자진사퇴하지 않으면 6개월 뒤 대표직에 복귀할 수 있게 된다.

이 대표는 자신의 징계 조치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징계를 수용할 경우 자신의 향한 의혹들에 대해 인정하는 꼴이나 다름없어서다. 그는 대응 방침을 마련하겠다는 입장만 밝혔을 뿐, 잠행을 거듭하고 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올리던 SNS 활동도 뜸하며 미리 잡아뒀던 언론 인터뷰도 취소했다. 

지난 11일 최고위 회의 또한 출석하지 않았다. 더 이상의 충돌을 피하려는 의도로 읽힌다.

사상 초유의 대표 중징계 조치를 받은 이 대표가 어떤 반격 카드를 꺼낼지 관심이 쏠린다. 벼랑 끝에 서있는 이 대표 입장에서는 대응책이 절실하다. 정치권에 따르면 이 대표는 징계 직후 변호사, 참모진과 함께 대응 방안을 논의 중이다.

윤리위 재심 청구 등 현재 이 대표에게 주어진 카드는 많지 않다. 국민의힘 당헌·당규에 따르면 징계 의결을 통지받은 날부터 10일 이내에 위원회에 재심을 청구할 수 있다.

그러나 이 대표가 결과를 뒤집을 만한 새로운 증거를 제시하거나 경찰 수사 결과가 나오지 않는 이상 재심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낮은 데다 물리적인 시간도 턱없이 부족하다. 현재로서는 윤리위 재심 청구는 사실상 실효성이 없다.

전국 순회 
반전 모색

또 다른 카드는 법원에 징계무효 소송과 징계처분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하는 경우다. 이마저도 이 대표에게 유리해 보이지 않는다. 법원이 그동안 정당 내부 문제와 관련된 사안에 가처분을 인용한 경우가 드물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 대표 입장에서는 역풍을 맞을 수도 있다. 효력정지가 인정되려면 행위의 절차상 하자가 인정돼야 한다. 가처분 신청이 기각되면 사퇴를 더욱 압박받는 등 이 대표의 정치적 생명마저 위태로워진다.

이 대표가 여러 가능성을 띄웠지만 즉시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심지어 이핵관(이준석 핵심 관계자)으로 분류되는 당내 인사들 역시 이 같은 방안 등에 대해 만류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사실상 이 대표가 기댈만한 것은 여론전과 폭로전이다. 앞서 대선이나 지방선거 당시에서도 SNS나 인터뷰를 통해 거침없이 여론을 활용했고, 2030세대들은 이 대표에게 호응했다. 이를 잘 활용했던 이 대표는 우선 자신의 SNS를 통해 청년 층에게 당원 가입을 촉구하는 등 우군 충원에 나섰다.

이 대표로 선출되면서 국민의힘은 다수의 2030세대 젊은층이 유입돼 취임 직전 10만명 남짓이었던 당원 수가 80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잠행 중이던 지난 13일에 이 대표는 광주 무등산 등반 사진과 게시글을 올렸다.


광주는 ‘민주화의 성지’로 통하는 지역으로 대선과 지방선거 당시 이 대표가 연일 공을 들였던 지역이다. 실제로 윤석열 대통령은 호남에서 보수정당 후보 중 최고 득표율을 얻었다. 지방선거에서는 광주시장, 전남지사, 전북지사에 출마한 국민의힘 후보가 15%를 득표하기도 했다.

광주 무등산을 찾은 배경을 두고 두 번의 선거를 통해 가시적인 성과를 냈던 만큼 자신의 선거 기여도를 부각하려는 의도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표는 어느 정도 팬덤을 보유하고 있다. SNS를 통해 당원 가입을 독려하자, 그의 지지층이 두드러진 한 커뮤니티에는 당원 가입 인증 글이 여럿 올라오기도 했다. 자신의 기반과 다름없는 청년층을 영입해 덩치를 키우겠다는 심산이다.

너 죽고
나 죽자?

이 대표의 지지층이 3개월 이상 당비를 납부하면 책임당원이 돼 당원 소환 등 권리를 행사하겠다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정치권은 이 대표 팬덤의 영향력이 그렇게 크지 않을 것으로 분석한다. 그를 지지하는 비율은 당 지지율과 비슷한 수준으로 옹호 여론이 특별히 크다고 볼 수 없다. 윤리위 결정에 동의하는 여론도 과반인 흐름이다.


연일 윤 대통령의 지지율이 하락을 하는 중인 상황에서 여론전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당내에서도 이 대표의 여론전이 당장은 위험하다는 입장이다. 당 대표실 관계자도 “여론전을 펼치면 오히려 이 대표에게 책임이 돌아갈 수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더 이상 지지율이 떨어질 경우 이 대표의 책임으로 몰릴 수 있는 까닭이다. 대신 침묵을 유지하는 가운데,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계속 하락한다면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명분이 생긴다.

최악의 경우는 이 대표가 폭로전을 불사하는 경우다. 앞서 이 대표는 윤리위에 간장(안철수+장제원)을 띄웠다. 안 의원을 향해서는 윤리위에 대해 뭔가 아는 모양새라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장 의원을 향해서는 “디코이(미끼)를 물지 않으니 전면에 나섰다”고 저격하기도 했다.

또 자신의 의혹과 관련해 ‘윗선이 개입돼있다’는 취지의 JTBC의 보도에 대해 “윗선 일부는 바로 알 수 있었다”고 밝힌 바 있다. 누구라고 직접적으로 언급하진 않았지만 폭로전도 불사하겠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는 자신의 주장과 언행에 있어서는 물러나지 않는 모습을 보여왔다. 앞서 이 대표 측근 중 한 명으로 분류된 김용태 최고위원은 CBS라디오에 출연해 “이준석 쳐내기 소문이 돌았다”며 운을 띄운 바 있다. 이른바 물귀신 작전으로 반전을 꾀하려는 수로 읽힌다.

폭로전을 통해 자신을 견제하는 세력과 살아남기 위한 모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방식이다.

경찰 수사 결과에 명운 갈려
폭로전 시작되면 현 정권 끝?

책임 공방은 기본이다. 대선 기간에도 이 대표는 국민의당 합당 방식을 두고 “내부에 배신자가 있다”며 이태규 의원과 연일 폭로전을 벌였다.

지방선거 기간에도 이 대표는 여러 사안에 대해 강용석 변호사와 폭로전을 벌였다. 앞서 여러 폭로전을 통해 그는 이득보다는 주로 손해를 봤다. 이번에도 폭로전은 그다지 바람직해 보이지 않는다. 현 정권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 되는 까닭에 부담이 생길 수밖에 없다. 게다가 국정운영 지지율 하락의 책임을 같이 떠안게 된다.

폭로를 하려면 지지율 하락이 수습되고, 귀책사유를 분명하게 규명한 뒤 이뤄져야 한다. 정치권에서는 대표의 역할을 다시 수행할 수 있을 때 하는 게 옳다는 분석이다.

폭로전을 펼친다면 국민의힘은 더욱 깊은 내홍을 겪게 될 가능성이 높다. 앞서 두 차례나 대승을 거뒀음에도 불구하도 여러 당내 갈등을 겪으며 악화일로를 겪는 중이다.

이 대표의 명운은 경찰 수사에 달렸다. 아직까진 경찰 수사에서도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은 만큼 이 대표가 자진사퇴할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경찰 수사가 본격적으로 이뤄져 이 대표가 검찰에 기소될 경우 정치인생은 그대로 끝이다. 다만 경찰이 해당 의혹의 실체를 완벽하게 입증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공소시효 등 법률적인 문제와 성 상납이 있었다는 사실 여부 입증에 한계가 있는 탓이다. 

경찰 수사에서 이 대표의 혐의가 드러나 검찰에 송치된다면 이 대표에 대한 징계 해석이 ‘사고에서 궐위’로 넘어갈 것으로 보인다. 반면 결과가 무혐의로 나올 경우 윤리위 결정에 즉각 반기를 들어 극적으로 기사회생이 가능해진다. 

국민의힘도 당장 전당대회를 열겠다는 움직임은 감지되지 않는 등 신중을 기하는 모양새다.

일단
숨고르기

한 정치권 관계자는 “이 대표가 현재까지 관망 중인 이유는 자신을 향해 후폭풍이 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안 싸우는 게 이득”이라며 “폭로를 하려면 사태가 마무리되고 규명이 돼, 역할이 돌아올 수 있을 때 해야 한다”고 말했다.

<ckcjfdo@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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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