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보험사들이 사옥을 비롯해 부동산 자산을 매각하는 추세가 올해에도 이어지고 있다. 신지급여력제도(K-ICS) 등 새로운 회계기준 도입에 앞서 부동산 자산을 축소해 자본 리스크를 줄이기 위한 방안으로 풀이된다. 부동산 자산 처분은 당기순이익 상승 등 일회성 실적 개선에도 효과적이라는 평가다.
보험사들이 줄줄이 사옥 매각에 나섰다. 새 회계기준(이하 K-ICS) 도입에 따라 보험사들은 자산 유동성 확보를 위해 고심하는 모양새다. 한화생명은 최근 여수 사옥을 매각했다. 1990년 준공된 여수 사옥은 여수고객센터, 광무·동산지점 등으로 활용돼왔다. 한화생명은 총 273여억원 규모인 분당, 부산 광복동 사옥의 매각도 추진 중이다.
매각 러시
현대해상도 지난 8월 강남 사옥을 한국토지신탁에 매각했다. 3600억원에 달하는 이 사옥은 지난 2001년 준공됐다. 지하 7층, 지상 19층, 연면적 3만4983㎡(1만582평) 규모다.
신한생명은 올해부터 서울 중구 장교동에 있는 ‘신한L타워’ 매각 작업을 추진 중이다. 신한L타워는 신한생명이 지난 2014년 약 2200억원에 매입한 건물이다. 매각 가격은 약 2500억원으로 추산되며, 신한생명은 재임차 조건을 달아 매각 이후에도 당분간 사옥으로 쓸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외에도 메리츠화재는 지난해 1200억원 규모의 여의도 사옥을 베스타즈자산운용에 매각했으며, 삼성생명도 여의도 빌딩을 BNK자산운용에 약 2700억원에 넘긴 바 있다.
보험사들이 잇달아 부동산 처분에 나서고 있는 것은 2023년 새 국제회계기준(IFRS17)과 함께 도입 예정인 K-ICS에 대비하기 위한 전략으로 보인다. K-ICS는 자산·부채 가치를 원가에서 시가평가로 변경해 더 많은 자본을 준비토록 하는 제도로, 보험사 보유 부동산에 대한 리스크 평가 기준도 더욱 강화된다.
금융당국은 보험사들이 보험금 지급을 위한 적정한 자본금을 확보하도록 규제하고 있다. 신지급여력제도가 시행되면 부동산 자산에서 발생하는 손실에 대비해 준비금 규모가 확대된다.
2023년 K-ICS 대비…실적 개선에도 효과적
장기적으론 수익 저하 “마땅한 방법 없어”
기존에는 부동산 가격 변동폭에 따른 위험계수를 9% 수준으로 평가했지만 앞으로는 25%로 커진다. 쉽게 말해 100억원의 부동산 자산은 9억원의 준비금이 필요했지만 앞으로 25억원의 준비금을 쌓아야 한다.
부동산 매각은 실적 방어에도 효과적이다. 실제 보험사들은 악화일로인 업황 속 과거 고금리 채권매각을 통한 일회성 수익을 내는 데 열을 올리고 있는 실정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보험사들의 올해 3분기(1~9월) 실적이 소폭 상승한 모습을 보였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보험사 당기순이익은 5조5747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1%(3195억원) 증가했다. 이 가운데 생명보험사는 3조1515억원으로 지난해보다 3.1%(946억원) 늘었고, 손해보험사는 2조4232억원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10.2%(2249억원) 개선됐다.
하지만 이 같은 자산매각은 단기적 실적은 방어할 수 있어도 장기적으론 수익성을 저하시키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각 보험사들이 어려운 시장을 타개하려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마땅한 방법이 보이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며 “건물에 묶여있는 자산을 현금화해 유동성을 확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부담 증가
또 다른 관계자는 “큰 틀에서 본다면 K-ICS 등 새로운 회계제도를 대비하기 위한 방안 중 하나로 보험사들이 부동산 재정비에 들어갔다고 볼 수도 있다”며 “다만 부동산 자산규모가 크지 않아 새로운 회계제도 대비만을 위한 목적으로 직접적인 부동산 매각에 나섰다고 여기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