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화학 ‘배터리 분할’ 소액주주 반발 내막

기껏 투자했더니 껍데기만 남았다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LG화학이 배터리 사업 부문의 분사를 결정했다. ‘앙꼬 없는 찐빵’만 손에 쥐게 된 소액투자자들의 원성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빅히트엔터테인먼트에 투자했는데 BTS가 탈퇴한 꼴”이라는 소액투자자들의 항변이 허투루 들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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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화학은 지난 17일 긴급 이사회를 열고 LG화학 전지사업부를 분할하는 안건을 결의했다고 공시했다. 다음달 30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서 승인이 이뤄지면, 12월1일부로 배터리 사업을 전담하는 신설 법인인 ‘LG에너지솔루션(가칭)’이 공식 출범하게 된다. 신설 법인의 기업공개(IPO)는 아직 확정된 게 없지만, 내년 하반기를 목표로 검토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배터리 분사
예고된 수순

LG화학 관계자는 “신설 법인의 성장에 따른 기업 가치 증대가 모회사의 기업 가치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R&D 협력을 비롯해 양극재 등의 전지 재료 사업과의 연관성 등 양 사 간의 시너지 효과에 대한 장점을 고려했다”고 밝혔다.

올해 2분기 LG화학의 전체 매출은 6조9352억원, 영업이익은 5716억원이며, 배터리 사업 부문 매출은 2조8230억원, 영업이익은 1555억원이다. 

그동안 배터리 사업 부문 분사는 최종 승인이 떨어지지 않았을 뿐, 기정사실처럼 받아들여지던 사안이었다. 올해 2분기에 배터리 사업 흑자 전환 소식과 향후 흑자 기조 지속 전망이 나오던 지난 7월 무렵부터 연내 분할 가능성을 점치는 목소리가 부각되던 상태였다.


증권가에선 이번 분사 결정을 호재로 보고 있다. 배터리 사업이 독립적인 영역을 구축하게 되면 궁극적으로 LG화학에 유리한 시장 분위기가 형성될 거란 계산이다.

지난해까지 글로벌 전기차 배터리 시장서 3위권을 형성했던 LG화학은 전략적인 투자 효과가 부각되면서, 지난 7월 누적 기준 연간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테슬라, GM 등 글로벌 완성차 업체의 배터리 발주량은 항후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다만 분할 방식에 대한 저항심리가 걸림돌로 작용할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이 같은 기류는 신설되는 LG에너지솔루션의 주식을 LG화학이 100% 소유하는 ‘물적 분할’ 방식이 공식화된 데 따른 것이다.

전지사업 물적 분할 결정
개미투자자들 빈손 신세

올해 상반기 기준 LG화학 지분 구조를 보면 ㈜LG 및 특수관계인은 지분 30.09%를 보유한 최대주주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나머지 지분은 국민연금(10.51%)과 소액주주(54.33%)가 나눠 갖는 구조다.

‘인적 분할’ 방식으로 배터리 사업 부문이 떨어져 나갔다면 LG화학 기존 주주들은 LG에너지솔루션 주식마저 직접 보유가 가능했다. 이 경우 LG에너지솔루션 지분 구조는 LG화학서처럼 ㈜LG 및 특수관계인이 30.09%, 국민연금 10.51%, 소액주주 54.33%로 정해진다.

그러나 물적 분할이 결정되면서 ㈜LG→LG화학→LG에너지솔루션으로 이어지는 지분구조가 명확해졌고, LG화학 기존 주주들은 LG화학을 통한 간접 보유에 만족해야 하는 처지이다. 이런 와중에 LG에너지솔루션이 IPO 또는 외부 투자를 유치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LG화학 기존주주들의 지분가치는 더 희석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LG화학이 물적 분할을 결정한 건, 물적 분할이 이뤄져야 향후 대응책 마련이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인적 분할을 하면 LG화학이 아닌 ㈜LG가 LG에너지솔루션의 최대주주가 된다. 이런 가운데 LG에너지솔루션이 신규 투자금 조달을 위해 대규모 유상 증자에 나선다면 ㈜LG는 보유 지분율 만큼 투자금을 끌어와야 하는 부담이 생긴다. 

㈜LG가 증자에 참여하지 않으면 LG에너지솔루션 지분율 하락이 현실화되고, 경영권 유지조차 장담하기 힘들어진다. 게다가 지주회사의 상장 자회사 의무 보유 지분율을 현행 20%서 30%로 높이는 공정거래법 개정이 현실화되면, LG에너지솔루션에 대한 ㈜LG의 자금 투입이 불가피해진다.

돈 안들이고
지배력 강화

물적 분할은 이런 난제를 해소할 수 있게 한다. LG화학이 분할된 배터리 사업 부문에 100% 지배력을 유지하게 되므로, 유상증자에 참여하지 않아도 지배력 유지에 문제가 없다.

그러나 내심 인적 분할을 기대했던 기존 주주들은 LG화학의 이번 결정에 엄청난 실망을 표출하고 있다. LG화학 주가가 고공행진할 수 있었던 건 개인투자자들의 적극적인 매수 덕이다.

지난 3월19일 28만원이었던 주가는 지난 15일 한때 174% 오른 76만800원을 기록했다. LG화학의 시가 총액도 덩달아 16조2400억원서 51조2000억원으로 불어났다. 이 기간 개인투자자들은 총 9600억원어치의 주식을 사들였다.

이 같은 흐름은 물적 분할이라는 변수와 함께 급반전됐다. 특히 단기적인 주가 하락이 두드러졌다. 배터리 사업 분사 추진 소문이 나기 시작한 지난 16일부터 LG화학의 주가는 이틀간 한 때 11% 넘게 하락했다.

게다가 일부 소액주주들은 이번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분사가 주주가치를 떨어뜨리는 일이라고 성토하고 나섰다. 심지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LG화학의 배터리 사업 물적 분할을 막아달라는 글이 게재되기도 했다.

사실상 손해
집단행동 하나

개인투자자들의 거센 반발이 표면화되면서, 이달 말 열리는 주주총회서 물적분할 안건 통과여부에 대한 주목도 역시 높아졌다. LG화학에 따르면 10월30일 열리는 임시주주총회서 의결권을 행사할 수 있는 기준일은 10월5일이다.

LG화학은 물적분할을 결정한 지난 17일 이사회서 전자투표제 도입도 함께 결정했다. 임시주총에선 주주총회에 직접 참석하지 않고 모바일이나 PC로 대신 표결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소액주주의 참여가 어느 때보다 활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 ▲▲ LG화학 중국 남경 전기차 배터리 공장 ⓒLG화학

LG화학이 배터리 사업을 분사하기 위해서는 전체 출석주주의 3분의2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 일단 ㈜LG가 LG화학 지분을 30%가량 보유한 만큼 안건 통과가 유력하다. 일단 국민연금의 주주권행사 여부가 변수다.


10.51%의 지분을 가진 국민연금이 ‘주주가치 훼손’을 이유로 반대표를 던진다면 파장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국민연금의 반대표 행사는 개인투자자들이 결집하는 계기로 작용할 가능성을 남긴다.

이렇게 되면 LG화학은 물적 분할 안건 통과 여부와 무관하게 회사의 이익을 위해 소액 주주를 등한시했다는 꼬리표가 붙을 수 있다. 최악의 경우 LG화학에 대한 개인투자자들의 비난이 궁극적으로 구광모 LG그룹 회장에게까지 연결될 가능성도 따져봐야 한다.

부정적 기류를 의식한 LG화학은 급하게 주주 설득에 나선 상황이다.

빅히트엔터 투자했는데
‘BTS’ 홀라당 탈퇴한 꼴

차동석 LG화학 부사장은 지난 17일 주요 투자자를 대상으로 긴급 컨퍼런스콜을 열고 “물적 분할이 기존 LG화학 주주들의 이익을 해치지 않는다”며 “오히려 물적 분할 법인의 집중 성장을 통해 주주가치가 제고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신설 법인의 IPO 계획에 대해서는 “바로 추진해도 1년 정도 소요되고 비중은 20~30% 수준으로 LG화학이 절대적 지분을 보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계기로 회사의 중요한 의사 결정이 투자자 의사에 반할 경우 정해진 가격에 주식을 되사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주식매수청구권’ 도입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은 이사회 결정 전 1주일서 2개월간 가격을 평균으로 계산하기 때문에 갑작스러운 의사 결정으로 주가가 폭락할 경우에도 투자자들은 어느 정도 손해를 만회할 수 있다.

다만 국내법은 합병·분할합병·중요한 자산양수도에 대해서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한다. 현행 상법 제530조의2와 제530조의12에 따르면, 회사가 인적·물적 분할을 하는 경우엔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주식매수청구권은 ‘주주의 이해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거나 회사의 근본적인 변경을 초래하는 경우’에만 인정된다. 분할의 경우 회사 재산과 영업이 기능적으로 나누어질 뿐 주주의 실질적인 권리에는 큰 변화가 없다고 보는 것이다. 

혹시 했는데
뻔뻔한 결론

반면 미국은 국내보다 광범위하게 주식매수청구권을 인정하고 있다. 미국 모범회사법은 ‘회사가 주주총회결의를 거쳐 재산을 분배하는 경우’에 반대 주주에게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며, 뉴욕주 회사법 역시 ‘회사가 전부 또는 실질적인 전부를 처분하는 경우’ 주식매수청구권을 부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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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