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로남불’ LG 인력 빼가기 두 얼굴

우린 되고 너흰 안 된다

[일요시사 취재1팀] 김태일 기자 = 건설자재 업체인 LG하우시스가, 경쟁사가 애써 키워놓은 인테리어 전문 인력을 대거 빼가면서 빈축을 사고 있다. 더구나 관계사인 LG화학이 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개발 인력이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옮겨간 데 대해 ‘핵심인력을 뺏아갔다’며 소송전을 펴고 있는 민감한 상황이기에 LG그룹 이미지 전체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이에 LG하우시스 측은 공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이 이뤄졌다고 주장하며 직원 빼가기 의혹에 대해 극구 부인했다.
 

▲ LG화학 폴란드 배터리 공장 ⓒLG화학

LG하우시스가 경쟁사의 핵심 인력을 대거 영입한 것과 관련해 빈축을 사고 있다. 관계사인 LG화학이 인력 유출 등을 이유로 SK이노베이션을 고소한 이후라, 업계의 이목이 크게 집중되고 있다.

LG하우시스와 한샘은 41조5000억원 규모의 국내 인테리어 리모델링 시장 선점을 위해 전쟁을 방불케 하는 불꽃 경쟁을 펼치고 있다. 거주 트렌드 변화에 코로나19 확산 여파로 기존 주택의 인테리어 수요가 늘면서 관련 시장 규모가 확대되고 있고, 여기에 가구·건자재 기업들의 시장 확장 정책이 맞물리면서 경쟁이 격화되고 있는 것.

수십조원 전쟁
핵심인력 영입

LG하우시스는 올해 가전과 인테리어 제품을 원스톱으로 구매할 수 있는 새로운 유통 채널 구축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 LG전자 베스트샵에 LG지인(Z:IN) 인테리어 매장을 열었고, 지난달에는 이마트-일렉트로마트, 롯데하이마트 메가스토어 등 유통 업체의 대형 가전 전문마트에도 입점했다.

홈 리모델링 공사 때 인테리어와 가전제품을 동시에 구매하는 수요층을 공략하고, 판매·상담 매장의 이종결합으로 시너지를 내겠다는 전략이다. LG하우시스는 수도권과 광역시 베스트샵 20여곳에서 LG지인 인테리어 매장을 운영하고 있고, 연말까지 전국 80여곳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또 LG하우시스는 홈쇼핑 방송을 통한 창호 판매 등 인테리어 B2C(기업과 소비자간 거래) 시장 확대를 가속화하고 있다. 1분기 매출액은 7237억원으로 전년동기 대비 4% 감소했지만, 영업이익은 208억원으로 같은 기간 대비 90% 늘었다.

매출의 70% 가량이 건축자재 부문서 발생했고, 실적을 깎아먹는 자동차소재 부문 매각이 실현되면 2분기 실적은 더욱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이에 한샘은 ‘리하우스’ 브랜드로 업계 1위 굳히기에 들어갔다. 리하우스는 공간 패키지 상품 기획부터, 상담, 설계, 실측, 견적, 시공, AS까지 토탈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품으로, 한샘만의 특장점이 돋보이는 브랜드다.

LG하우시스 경쟁사 직원 영입 빈축
2012년에도 논란 “상도의 아니다”

고객은 인테리어 전문가 ‘리하우스디자이너(RD)’의 설명을 들으면서 가상현실(VR) 서비스를 통해 PC나 모바일 기기서 3D로 구현된 현관, 거실, 침실, 주방 등의 리모델링 공사 후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한샘은 RD 육성에도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6월 현재 전국 510개 리하우스 대리점서 2000여명이 활약하고 있고, 2500명까지 늘리기 위해 상시 채용·교육을 진행한다.

이 같은 전략에 힘입어 한샘은 올해 1분기와 2분기 판매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무려 286%, 201% 각각 늘어나는 기염을 토했다. 한샘은 리하우스 부문을 차세대 핵심 사업으로 정하고, 3년 내에 월 1만 세트를 판매한다는 목표를 세웠다.
 

▲ LG화학 본사

한샘 관계자는 “지금의 경기침체 상황은 중장기적 시각으로 볼 때 리모델링·인테리어 시장서 독보적 경쟁력을 바탕으로 시장점유율을 확장하고, 시장 주도적 사업자로서의 위치를 굳건히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 따르면 LG하우시스는 최근 한샘의 시공관리 직원 10여명을 한꺼번에 대거 영입했다. 사실상 경쟁업체 인력을 빼간 것이다. 이 과정서 헤드헌터가 역할을 했지만, 한샘 내부에선 “상도의가 아니다”라며 발끈하고 있다.

1위 되려고?
손쉬운 방법

홈인테리어 전문기업 한샘은 토털 홈인테리어 전문가 리하우스 디자이너(RD)를 집중 양성해왔다. 현업 종사자는 전문성을 강화하고 신입 RD 등도 확충해왔다. RD는 한샘 리하우스 대리점에 소속돼 인테리어 리모델링에 필요한 고객 상담과 디자인 설계, 시공감리 등 인테리어 전 과정을 관리·감독하는 홈 인테리어 전문가다.

여기에 자극받은 LG하우시스가 인테리어 경쟁력을 한번에 올리기 위한 가장 손쉬운 방법으로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대거 영입해갔다는 분석이다.

창호, 바닥재, 인조대리석 등 건축자재와 산업용 필름이 주력인 LG하우시스는 ‘LG지인’ 브랜드를 중심으로 LG전자와 협업하는 등 인테리어 사업을 강화하고 있지만, 한샘과의 인테리어 격차를 좀처럼 좁히지 못하고 있다. 특히 한샘이 RD를 직접 육성하는 등 2등과의 ‘초격차’ 전략을 내세우자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의 대거 영입으로 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 관계자는 “LG하우시스가 인테리어나 리모델링 사업서 1위인 한샘의 기존 사업을 손쉽게 따라가려고 한 것 같다”며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영입하면 시공협력 업체들도 한꺼번에 데려오는 효과가 있어, 땅 짚고 영업하는 효과를 낼 수 있다”고 지적했다.
 

▲ ⓒ고성준 기자

이에 대해 LG하우시스 측은 억울하다는 입장이다. 한샘 내부의 인력 이탈 요인이 생겨 LG하우시스로 대거 이직이 이뤄졌다는 것이다. 한샘은 정통적으로 영업력을 중시해 높은 인센티브를 줘왔고 영업능력이 검증된 경력직을 선호해왔는데 올해는 신입 공채를 늘리면서 공채와 경력직간 연봉과 업무분장 등에 대한 불만이 생겨 이직 인원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샘의 성과지표에 따른 보상 체계 개편으로 상위 등급 연봉 상한폭이 하향 조정되면서, 연차가 높은 인력들이 대거 LG하우시스로 이직하는 촉매가 됐다는 게 LG하우시스 측 설명이다.

아전인수
아이러니

하지만 한샘의 연봉이나 처우 등은 경쟁사와 비교우위에 있어 자발적인 인력 이탈 가능성은 낮다는 게 업계의 정설이다. 실제 1000여명에 달하는 한샘 RD는 판매 실적에 따른 인센티브 등을 감안하면, 연봉 1억원이 넘는 고소득자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일부에선 LG하우시스가 한샘의 시공관리 인력을 영입한 것에 그치지 않고 구매 담당이나 개발자 등에 대한 영입에도 나설 전망인 만큼 한샘과의 갈등이 확산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사실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을 빼간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2012년에도 LG하우시스가 한샘 인력을 너무 많이 빼가는 바람에 한샘이 LG하우시스에 “자제해달라”는 공문을 보낼 정도로 갈등이 표출됐다.

관계사인 LG화학이 SK이노베이션자사의 전기차 배터리 개발 인력이 경쟁사인 SK이노베이션으로 대거 옮겨간 데 대해 ‘핵심인력을 뺏아갔다’며 소송전을 펴고 있는 민감한 상황서, LG그룹 자체의 이미지 전체에도 부담을 줄 수 있다는 뒷말도 나오고 있다.

LG화학은 지난달 말 영업비밀 침해 및 인력 빼가기 혐의로 SK이노베이션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했다. 지난해 5월 LG가 서울지방경찰청에 형사고소한 것과 같은 내용으로 1년여 만에 검찰에도 사실 규명을 요구한 셈이다.

관련 업계에선 “미국 소송서 양사 합의 가능성이 낮아져 국내로도 전선을 넓히는 것 아니냐”라고 봤다.

LG화학, SK이노 소송 상황에?
LG그룹 이미지 전체에도 먹칠

LG화학은 2017년 자사에서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 5명에 대해 국내서 “영업비밀이 유출됐다”며 SK이노베이션을 상대로 소송을 벌여왔다. 특히 지난해 4월에는 미국 ITC에도 같은 이유로 소송을 제기해 오는 10월 최종 결과를 앞두고 있다.


LG화학은 “정확한 사실 관계 규명을 위해 경찰에 이어 검찰에 고소장을 낸 것”이라며 “검찰에 의견서를 접수하는 절차가 현실적으로 없어 고소 형식으로 했다”고 말했다. LG화학 측은 확대해석을 경계했지만, 사실상 SK이노베이션을 압박하기 위한 고소라는 분석이다.

2017년 SK이노베이션으로 이직한 직원 5명에 대해 “영업 비밀이 유출됐다”며 전직금지 가처분 소송을 낸 LG화학은 지난해 1월 대법원서 최종 승소했다. 이어 지난해 4월 말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와 델라웨어 연방지방법원에 “SK이노베이션이 영업비밀을 침해했다”며 소송을 냈다.
 

▲ 강계웅 LG하우시즈 대표이사 ⓒLG하우시즈

이와 관련해 미 ITC는 지난 2월 SK이노베이션에 변론 등 절차 없이 최종 결정을 낸다는 ‘조기 패소 예비결정(Initial Determination)’을 내린 바 있다. SK이노베이션의 증거인멸 정황 등을 이유로 예비결정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양측의 합의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해왔다.

다만 SK이노베이션 측은 공개채용을 통해 인재들을 영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SK이노베이션은 지난해 6월 국내 법원에 “LG가 허위사실로 명예를 훼손했다”며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

이와 달리 LG하우시스는 한샘 내부서 보상 체계 개편 등으로 인력 이탈 요인이 생겼고, 이에 따라 해당 인력들이 LG하우시스로 이직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대해 한샘의 연봉 등을 감안하면 쉽사리 납득하기 어렵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일각에선 이번 LG하우시스의 인재영입이 기업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엇갈린 주장
갈등 대폭발

이와 관련해 LG하우시스 관계자는 “올해 상반기 홈페이지를 통해 채용 공고를 내고 인테리어 관련 경력사원 채용을 진행했고, 당시 공개 채용 과정에는 한샘 뿐만 아니라 다양한 인테리어 업계의 경력자들이 지원했으며 서류전형-면접-인적성검사 등 공정한 절차를 거쳐 채용이 이뤄졌다”고 말했다.

이어 “합격자 중에는 한샘을 포함해 다양한 인테리어 업계서 근무 경험이 있는 지원자들이 포함돼있었고, 공개적인 채용 절차를 거쳐 지원자의 업무 능력과 경험을 바탕으로 공정하게 평가해 채용했을 뿐 의도적으로 특정 회사의 직원을 빼내오기는 결단코 아니었다”며 “그렇기 때문에 관계사인 LG화학과 SK이노베이션의 사례와는 다르다”고 전해왔다.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혼자 꾸는’ 장동혁 용꿈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의 임기 초반 난맥상이 이어지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벌어지고 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용꿈을 꾸지만, 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한 채 강경 보수 세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장 대표에게 그와 용꿈을 함께 꿀 수 있는 창조적 소수가 없는 이유는 뭘까? 국민의힘은 지난달 장외투쟁에 집중했다. 지난달 21일엔 대구에서, 지난달 28일엔 서울에서 각각 개최했다.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지난 2일 기자간담회에서 “장외투쟁을 통해 정부·여당의 잘못을 국민에게 알렸다”며 “그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지지율이 하락했다면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고, 지지층 결집으로 싸울 동력도 확보했다”고 주장했다. 벌어지는 지지율 격차 하지만 외부의 평가는 다르다. 보수 신문 <조선일보>는 지난달 23일 사설에서 “스마트폰과 각종 미디어가 발달한 시대라서 국민은 정치권 소식을 실시간으로 보고 듣는다”며 “장외투쟁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느낌을 준다”고 비판했다. 추석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오후엔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이 체포됐다가 지난 4일 체포적부심이 인용돼 석방됐다. 김건희 여사의 경기 양평군 공흥지구 개발사업 개입 의혹과 관련해 김건희 특검에 소환돼 조사를 받았던 고 정희철 단월면장도 “특검이 강압 수사를 했다”는 취지의 자필 메모를 남긴 채 같은 날 사망했다. 이후 국민의힘은 국회에 정 면장의 분향소를 차렸고, 의원들이 돌아가면서 빈소를 지키고 있다. 지난달 6일 방송된 JTBC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엔 이재명 대통령 부부가 출연했다. 이 방영분은 지난달 26일 발생한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사건 이후인 지난달 28일 촬영됐다. 이를 두고, 국민의힘 주진우 의원은 “국가적 재난 때문에 지금도 국민은 피해를 보고 있는데, 한가하게 예능 촬영하고 있었다면, 이 대통령은 대통령 자격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추석 연휴 내내 쟁점화를 주도했다. 하지만 국민의힘의 대여 투쟁엔 힘이 붙지 않는다. 리얼미터가 <에너지경제신문> 의뢰로 지난 1일부터 2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유권자 10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국민의힘 지지율은 전주 대비 2.4% 하락한 35.9%로 확인됐다. 47.2%의 지지를 얻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보다 11.3% 뒤처지는 수치였다. 이는 장 대표의 자화자찬과는 다른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이 대통령과 민주당엔 ▲검찰 해체 시도 ▲조희대 대법원장과의 갈등 ▲이 대통령의 예능프로 출연 논란 ▲김현지 제1부속실장 관련 논란 등 악재가 이어졌다. 그런데도 지지율 격차가 10% 이상 벌어진 결과가 나온 것이다. 정의화 전 국회의장은 지난 13일 장 대표와 상임고문단의 오찬 회동에 참석해 그 이유를 설명했다. 정 전 의장은 장 대표에게 “과거 안하무인 정치 행태를 보여온 보수 정당의 잘못이 크다는 걸 인정해야 하고, 깊은 반성과 성찰도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개혁신당 이준석 대표·국민의힘 유승민 전 의원 등과 함께 못할 이유가 없다. 새 지도부는 용광로 같은 화합의 정치를 만들어내길 바란다”며 “부정선거론이나 ‘윤 어게인’ 같은 낡은 의제와 결별하고, 민생을 살피면서 국가 미래 비전을 제시하는 데 온 힘을 다해주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답 없는 장외투쟁에 멀어지는 대권 ‘밖에서’ 집착… 본질 “사람 없어서” 정 전 의장의 발언 중 핵심은 한 전 대표를 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와 관련해 의견이 엇갈려 한 전 대표와 결별했다. 장 대표는 지난달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 전 대표를 지지하는 분들이 무차별적으로 저를 비난·모욕·배척하는데 어떻게 정치 행보를 같이 할 수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장 대표는 취임 직후엔 자신의 당 대표 당선을 도운 강경 보수 성향 유튜버들의 반발을 감수하면서 당내 중도 성향으로 평가받는 김도읍 의원을 정책위의장으로 발탁하는 등 중도 공략을 고려하는 것으로 보였다. 유튜버 고성국씨는 이에 크게 반발하면서 “많은 분이 ‘김도읍이 웬 말이냐’고 비판하는데, 김 의원은 그런 비판을 받을 만하다”고 주장했다. 고씨는 “국민의힘은 자유통일당 등 원외 보수 정당에 지방자치단체장 30석을 양보하라”고 요구했다. 장 대표는 이들의 요구를 일체 무시하면서 이들의 영향력 감소를 시도하는 것으로 보였다. 한때는 “공천 청탁을 받고 있다”고 주장하는 등 “보수의 김어준 반열에 오르려는 것 아니냐”는 평가까지 들었던 전한길씨도 최근엔 전당대회 당시의 기세는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장 대표는 추석 연휴이던 지난 7일, 서울의 한 극장에서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 2>를 관람했다. <건국전쟁 2>는 1947년부터 군·경찰·서북청년단 등과 남조선노동당이 제주도에서 번갈아 이어간 학살 사건인 4·3 사건을 다뤘다. 이를 연출한 김덕영 감독은 주로 남조선노동당의 학살 위주로 내용을 구성했다. 김 감독은 평소 이승만 전 대통령을 지지하면서 부정선거론을 주장해 왔던 인물이다. 4·3 사건은 국가 폭력을 상징하는 전형적인 사건이기 때문에 여전히 민감하다. 하지만 국민의힘과 보수 진영 일각에선 잊을 만하면 양민 학살을 부정하거나 군경의 대응을 찬양하는 움직임이 있었다. 장 대표의 <건국전쟁 2> 관람은 보수 정당 수장이 4·3 사건에 대한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것으로 해석될 소지를 남긴다. 아울러 국가 책임을 부정하는 주장을 수시로 제시하는 세력은 강경 보수 세력이다. 이런 대응은 이재명 대통령을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국민의힘이 대안이 될 수 있다”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민의힘 지지율 추세로 확인할 수 있다. 추석 연휴 전까지 집중했던 장외투쟁도 장 대표 스스로 직접 전면에 나서 여론을 움직이려 한다는 취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장 대표가 강경 보수 진영의 지원을 토대로 당선됐던 것 자체가 강경 보수 외 유권자에겐 큰 호감을 주지 못하는 족쇄가 되고 있다.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국민의힘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됐던 것은 당내 쇄신이었다. 기행은 멈췄지만… 특검 3개(김건희·내란·채 상병)가 국민의힘을 동시에 겨냥하는 현 상황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의 그림자로부터 비롯된 것이었다. 따라서 국민의힘엔 ▲부정선거론 근절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 제거 ▲중도 공략 등 산적한 숙제가 있었다. 장 대표가 무시 전술로써 강경 보수 세력의 영향력을 서서히 줄이고 있지만, 유권자로선 만족을 느끼기 어렵다. 정권을 맡을 수 있는 정당으로 다시 도약하기 위해선 확실한 절연이 필요했다. 하지만 장 대표 스스로 <건국전쟁2>를 관람하면서 그동안 구사했던 무시 전술도 그 진의를 의심받을 가능성이 열렸다. “당내 쇄신이 아닌 자신의 영향력 확대만을 위한 무시였느냐”는 의심이다. 특정 세력의 지원을 받은 수장이 수성을 위해서 해야 할 일은 대개 토사구팽이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정치력을 높이 평가받는 역사적 인물들은 적절한 토사구팽을 통해 수성기를 열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이 이전과 달라진 게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장 대표 취임 이전 국민의힘은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전 원내대표가 일명 ‘쌍권 체제’를 구성해 ▲대선후보 심야 교체 시도 ▲자체 개혁안에 대한 특정 계파의 조직적 저항 등 기행을 저지르면서 여론의 손가락질을 받았다. 장 대표 취임 이후의 국민의힘에서 이런 기행은 잘 보이지 않으나, 그 이상으로 나아가질 못하고 있다. 이는 재보궐선거 당선으로 국회에 입성해 재선 의원이 된 지 불과 1년여가 지난 장 대표의 짧은 정치 경험 등 부실한 정치 기반으로부터 비롯되는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는 장 대표에 대해 꾸준히 “용꿈을 꾸고 있다”고 평가한다. 장 대표도 이를 직접 부인하진 않는다. 그런데 용꿈은 특정 정치인 1명이 특출나다는 이유만으로 꿀 수 있는 꿈이 아니다. 장 대표는 아직 “용꿈을 꿀 만큼 특출난 정치인”이란 평가를 받고 있지 못하다. 용꿈을 현실로 구현하기 위해선 ▲시대적 사명 구현 ▲강한 개혁 의지 ▲구체적 개혁 대안 제시 ▲강도 높은 자체 혁신 ▲추상적 비전을 구체화할 수 있는 전문가 집단 구성 등 요소가 필요하다. 용꿈은 용이 되려는 사람과 이를 뒷받침하는 집단의 상호 작용으로 현실이 된다. 전문가 집단은 추상적 비전을 구체적 개혁 대안으로 제시해야 하고, 용꿈을 꾸는 사람은 구체적 개혁 대안을 현실에서 구현해 민심의 호응을 얻어야 한다. 부실한 정치 기반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저서 <역사의 연구>를 통해 ‘창조적 소수’라는 개념으로 용꿈을 현실화하는 과정을 이론화했다. 토인비는 문명의 순환을 통해 역사의 변혁 과정을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문명이 쇠퇴하거나 낯선 도전에 직면했을 때 이를 극복하면서 새로운 발전을 꿈꾸는 집단이 나타난다. 토인비는 이들에게 ‘창조적 소수’라는 이름을 붙였다. 장 대표가 강경 보수와의 관계에 명확하게 선 긋지 못한 채 장외투쟁에 집중하는 것에 대한 해답도 있다. 토인비는 창조적 소수가 새로운 발전을 이끌 수 있는 비결로 혁신적인 구상을 제시했다. 혁신적인 구상을 통해 세상에 충격을 주면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동력을 확보해야 한다. 이는 우리 역사에서도 충분히 확인할 수 있다. 진골 귀족들 간 왕위 쟁탈전이 장기간 이어져 중앙정부가 지방 통제 능력을 잃었던 통일신라 말기엔 후삼국시대가 이어졌다. 이때까지만 해도 이미 멸망한 고구려·백제가 통치했던 지역에선 유민 의식이 유지되고 있었다. 고려 태조 왕건이 후백제 견훤을 물리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정치적 비전이었다. 왕건은 ‘삼한일통’이란 구호를 내걸면서 신라에 우호적인 관점을 유지했다. 이는 신라를 무력으로 함락해 경애왕을 살해한 후 신라의 각종 기술자를 후백제로 압송했던 견훤의 대응과는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견훤의 대응에 분노했던 신라 호족은 고려로 기울었고, 이는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하게 된 결정적 밑거름이 됐다. 훗날 고려는 원나라의 간접 지배와 권문세족의 수탈로 인해 저물었다. 권문세족이 산과 강을 경계로 대농장을 소유하면서, 조세·부역을 직접 감당하는 평민의 경제 기반이 무너졌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2000명 규모의 사병 집단 가별초를 거느린 대부호였다. 그는 경제력과 군사력을 기반으로 왜구와의 전쟁에서 대활약해 실력자로 부상했다. 그의 막료로 가담한 정도전·조준·남은·윤소종은 당시 새로운 흐름이었던 성리학을 배운 신진사대부였다. 이들 중 조준은 권문세족의 토지 겸병을 막을 수 있는 방편으로 과전법을 제시했다. 과전법은 권문세족의 토지를 모두 몰수해 국유화한 후 전·현직 관료에게 경기도에 한정해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는 제도였다. 과전법은 이성계의 막강한 권력·군사력을 기반으로 실현됐고, 그가 새 왕조의 문을 열 수 있었던 결정적 계기가 됐다. 과전법이 시행돼 백성들이 춤을 추면서 기뻐할 때, 국왕 즉위 이전부터 대토지를 보유했던 고려 마지막 임금 공양왕은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다. 고려가 왜 멸망했고, 조선이 왜 개창될 수 있었는지 잘 보여주는 한 장면이다. “싸울 동력 확보” 자화자찬 “이미 한계만 노출” 평가도 이성계의 등장 이전 강력한 권력과 군사력을 가졌던 사람은 최씨 무신정권을 열었던 최충헌이었다. 그런데 최충헌은 정치개혁과 체질 개심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 그는 정예 병력을 자신의 사병 조직에 포함할 뿐, 거란 유민의 고려 침공을 방치했다. 거란 유민은 당시 떠오르던 몽골과의 협력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는 늑대를 몰아내고 호랑이를 불러들였을 뿐이었다. 최충헌 사후 닥친 국난은 여몽 전쟁이었다. 최우 등 최충헌의 후계자들은 임시 수도 강화도에서 오로지 정권 보위에만 집중했다. 그들은 몽골군이 쳐들어오면 항복한 후 몽골군이 철군하면 항복 조건을 어기는 행태를 반복했다. 그러는 사이 백성들은 각자도생해야 했다. 최씨 정권이 몰락한 후 집권했던 무신 집권자들도 이 행태를 반복했다. 그들이 국난 극복을 등한시한 결과, 고려는 몽골이 중국을 접수한 후 세운 원나라의 간섭을 장기간 받아야 했다. 이는 현대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역대 정권은 모두 새로움을 강조하는 슬로건을 제시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군정 종식을, 김대중 전 대통령은 최초의 수평적 정권교체를, 노무현 전 대통령은 사람 사는 세상을,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경제위기 극복을, 문재인 전 대통령은 적폐 청산을, 이 대통령은 내란 종식을 제시했다. 토인비가 문명의 순환을 강조했던 이유는 성공하거나 많은 것을 누리면 나태해지는 인간의 속성과 관련돼있다. 토인비는 “성공한 창조자는 다음 단계에서 다시 창조자가 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그 이유로는 “성공 자체가 큰 흠결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미 성공했기 때문에 노를 젓는 손을 쉬고 있어서 사회 발전에 쓸모를 다했다”고 설명했다. 국민의힘에선 김용태 전 비대위원장과 윤희숙 전 혁신위원장이 당 체질을 개선할 혁신안을 발표한 후 실행하려고 했다. 하지만 일명 ‘언더 찐윤’으로 통하는 영남권 일부 국민의힘 의원들은 조직적으로 이를 방해했다. 이를 똑똑히 목격한 장 대표는 지방선거 승리를 외치면서도 당내 혁신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는다. 오히려 당 주류와 반목하는 한 전 대표와 친한계(친 한동훈)를 겨냥해 패널 인증제를 언급하는 등 당 주류의 영향력을 고착화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누구나 꿈꿔도 이룰 수 없는… 하지만 여론은 국민의힘의 혁신과 중도 확장을 바라고 있다. 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초반 난맥상에도 불구하고, 민주당과 국민의힘의 지지율 격차는 더욱 커지고 있다. 용꿈을 함께 실현할 창조적 소수는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자기 사람은 진득하게 비전을 통해 설득하면서 만들어진다. 장 대표에게 필요한 것은 “국정감사 이후엔 어디서 장외투쟁을 하느냐”가 아니라 “왜 내 주변엔 사람이 없어서 내가 직접 장외투쟁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용꿈은 누구나 꿀 수 있지만, 아무나 이룰 수는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