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정치팀] 설상미 기자 = 진보정당 정의당의 재정난이 사상 최악으로 치달으면서 빚 변제를 두고 당내 우려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일요시사>는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지난 3년간의 정의당 회계 보고서와 정의당 중앙당 후원회 자료를 입수했다.
<일요시사>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중앙선관위)로부터 입수한 지난 3개년 정의당 회계 보고서에 따르면 21대 총선 이후 정의당이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2018년 12월31일 기준으로 정의당의 재산은 38억원이었다. 1년 뒤인 2019년 12월31일을 기준으로 11억원이 됐다. 거대 양당에 비해 급격히 적은 규모로 줄어들었지만, 그때까지도 우려할 수준은 아니었다.
총선 후…
하지만 지난해 5월 정의당의 재산은 마이너스 76억원을 기록하면서, 변제가 쉽지 않은 수준이 됐다. 지난해 6월 정의당은 중앙선관위로부터 선거비용을 일부 보전받았지만, 현재 40억원 적자 상태인 것으로 확인됐다.
2020년 정의당 회계 보고서에 따르면 정의당은 지난해 선거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권에서 43억원을 대출받았다. 21대 총선에서 당원들의 지역구 출마 후보를 지원하기 위해서다. 당은 지난 21대 총선에서 253개 지역구에 73명의 후보를 냈고, 1명당 4000만원씩 지원했다. 대략 28억원가량을 후보 지원액으로 쓴 셈. 지역구 후보의 당선이 어려운 당 특성을 무마하고 후보들의 출마를 독려하기 위한 전략이었다.
물론 선거철에 지출만 있었던 건 아니다. 당은 21대 총선 전 중앙선관위로부터 보조금을 두 차례 지급받았다. 지난해 2월 중앙선관위로부터 경상보조금으로 6억3000만원을, 그로부터 한 달 뒤에는 선거보조금 27억8000여만원을 지급받았다.
또 선거가 끝나면 정당은 쓴 선거비용을 다시 보전받을 수 있다. 정의당은 21대 총선에서 선거비용으로 총 48억5000만원을 썼다. 선거비용 제한액인 48억8600만원 중 99%에 육박하는 비율로, 비례대표 후보를 낸 정당 35개 중 1위였다.
2018년 38억…지난해 6월 기준 -40억
선거 자금용으로 은행서 43억 대출도
다만 선거비용은 당이 당선인을 내면 보전받을 수 있다. 따라서 정의당은 지난해 중앙선관위로부터 48억5000만원 중 46억원을 보전받았다.
지역구 후보자의 경우에도 선거비용을 돌려받을 수 있다. 다만 후보자가 거둔 득표율에 따라 상이하다. 득표율이 15% 이상이면 선거비용 청구금액의 100%를 돌려받을 수 있다.
득표율이 10% 이상 15% 미만일 경우 청구금액의 50%만 돌려받는다. 득표율이 10% 미만이면 단 한 푼도 돌려받지 못한다.
하지만 21대 총선에서 정의당 후보 대다수는 득표율 10%를 넘지 못해 선거비 보전을 크게 받지 못했다. 득표율 10%를 넘긴 지역구 후보는 심상정(39.4%)의원과 여영국(34.9%)·이정미(18.4%)·윤소하(11.9%) 전 의원 등 소수에 불과했다.
당이 들인 공에 비해 21대 총선 결과는 아쉬웠다. 정의당은 비례대표 5석을, 지역구 의원 1석을 배출했다. 20대 총선과 동일한 6석이지만, 당이 총력 지원한 지역구에서 1석이 줄어든 규모다.
당은 21대 국회가 열리고 빚 변제 방안을 고심해왔다. 지난해 8월 정의당 혁신위원회는 매월 발생하는 경상적자 구조를 개혁하기 위해 ▲당권자 5%를 목표로 하는 1만원 당비 인상 캠페인 진행 ▲20억원 모금을 목표로 하는 정치자금모금위원회 신설 ▲중앙당 후원회를 통해 매월 1000만원의 후원금을 납부하는 후원회원 조직 등을 혁신안에 담았다.
현재 당직자들도 빚 변제를 위해 적극 동참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당의 위기 속에서 취임한 김종철 대표는 당 재정난을 고려해 300만원이던 당 대표 업무추진비를 100만원으로 자진 삭감했다.
6명의 부대표단도 업무추진비를 각 250만원에서 200만원으로 줄인 상태다. 김 대표는 지난해 12월 본인의 페이스북에 “정의당 재정이 어렵다”며 “정의당이 열심히 활동하기 위해 후원금이 필요하다”고 후원금 모금에 나서기도 했다.
정의당 현역 의원 6인은 매달 세비의 절반인 450만원을 특별당비로 납부하고, 의원에게 들어오는 후원금 3000만원은 당에 기부하고 있다. 보좌진의 경우에는 매달 ‘공직특별당비’로 4급 보좌관은 5만원, 5급 비서관은 3만원을 기부하는 것으로 확인됐다. 다만 보좌진의 경우 강제사항은 아니고 권고사항이다.
정의당 조혜민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당 부채 변제를 위해 “재정대책 관련해 당비 배분 비율을 조정해 중앙당과 광역시도당 모두 비용을 줄여나가고 있다. 대표단 변경 당시 정무직 공식 등은 신규 채용하지 않고 전체사업비, 문자사용비, 업무지도비 등 축소를 일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대표단 등 업무활동비 감액을 추진해 당원 및 시민대상 후원 독려 캠페인을 전당적으로 실천하고 있다”고 전했다.
만성적 적자 구조…출구는?
당직자 변제 위해 적극 동참
하지만 당 재정 상황은 한동안 여의치 않을 것으로 관측된다. 빚 변제를 위해서는 당원들의 후원 역시 절실한 상황.
중앙당후원회 자료에 따르면 정의당은 2018년 16억9000만원, 2019년 12억2000만원, 선거철인 2020년 1월에서 5월까지 10억원의 후원금을 얻었다. 원내 정당 중에서는 후원금이 높은 편이지만 빚을 변제하기에는 적은 규모다.
정의당 관계자는 “완전한 변제가 불가능하다. 고정비용만 나가더라도 1년에 1억원씩 적자를 보는 구조다. 당이 위축돼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깔끔한 빚 변제를 위한 방법은 없을까. 정의당이 22대 국회에서 20석 이상의 교섭단체가 된다면 가능하다. 중앙선관위는 정치자금법에 따라 원내 교섭단체에 정당 경상보조금 총액의 50%를 정당 국고보조금으로 지원한다. 나머지 50%는 전체 정당에 나눠주도록 하고 있다.
정의당 교섭단체가 될 경우 받게 되는 보조금 액수가 크게 늘어날 수 있다. 21대 총선에서 거대양당의 비례정당 ‘꼼수’가 없었다면 정의당은 21대 국회에서 6석에서 7석을 더 가져가 13석을 확보할 것으로 전망됐다. 22대 국회에서 국회개혁의 일환인 ‘연동형비례대표제’가 제대로 정립된다면 마냥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정의당 역시 진보정당다운 뚜렷한 정체성을 정립하기 위한 과정을 고심해야 한다. 최근 정의당은 진보적 의제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의 큰 차별화를 보이지 못했다는 비판에 직면한 바 있다.
파산?
그럴 가능성은 없지만, 만약 정의당이 자진 해산하는 경우에 이 빚은 어떻게 될까. 정당법 48조에 따라 당의 잔여재산은 국고에 귀속할 수 있다. 다만 채무의 경우에는 ‘처분되지 아니한 정당의 잔여재산’으로 잡혀 국고에 귀속되지 않고, 당헌에 따라 처분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