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철 VS 김종인’ 신구 전략가 대결 관전포인트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4.06 10:44:19
  • 호수 126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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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전 vs 제갈량, 고도의 수 싸움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그야말로 신구의 대결이다. 21대 총선을 앞두고 거대 양당 전략가들의 두뇌전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과연 소속 정당을 제1당으로 올려놓을 ‘정도전’은 누구일까. 더불어민주당 양정철 민주연구원장과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이야기다. 
 

양정철 민주연구원장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서 21대 총선을 이끄는 한 축이다. 그는 정치권이 주목하는 신흥 전략가다. 문재인 대통령이 당선된 지난 19대 대선 당시 ‘광흥창팀’서 문 대통령의 당선에 일조했다. 문재인정권의 ‘개국공신’이다.

문의 남자
정권 공신

13명으로 꾸려진 광흥창팀은 문 대통령이 민주당 대선 후보 경선을 뛸 때부터 활동한 핵심 참모 그룹이다. 선거 전략 수립과 인재영입, 메시지 작성 등 핵심 실무를 담당했다. 양 원장은 광흥창팀의 수장이었다. 

대선을 승리로 이끈 광흥창팀 멤버 중 상당수가 청와대에 입성했다. 문재인정권 1기 참모진이다. 임종석 당시 대통령비서실장과 송인배 제1부속비서관, 윤건영 국정상황실장, 신동호 연설비서관, 한병도 정무비서관, 조용우 국정기록비서관, 조한기 의전비서관, 이진석 사회정책비서관, 탁현민 의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 오종식 정무기획비서관 등이 그 주인공들이다.

반면 양 원장은 청와대로 향하지 않았다. 오히려 “권력과 거리를 두겠다”며 해외로 떠났다. 미국·일본·뉴질랜드 등을 다니며 집필 활동에 매진했다. 그는 지난 2018년 초 발간한 <세상을 바꾸는 언어>를 통해 해외로 떠난 이유를 설명했다. 


“가장 영광의 시간, 뒤안길을 택했다. 영광 뒤로 나 있는 작은 오솔길이 내 길 같았다. 편지 한 장 남기고 떠나 7개월 넘게 홀로 정처 없이 외국을 떠돌고 있다. 괜히 한국에 있다가 ‘비선 실세’ 따위의 억측이나 오해를 받기 싫었다. 권력과 거리를 두려면 어쩔 수 없었다. 그게 (문) 대통령을 돕는 길이고, 청와대 참모들의 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기꺼이 머나먼 유랑의 길에 나선 이유다.”

양 원장은 자타공인 문 대통령의 최측근이다. 정치 입문을 주저하던 문 대통령을 정치권으로 이끌었던 사람이 바로 양 원장으로 알려져 있다. 노무현정부 당시 청와대 국내언론비서관과 홍보기획비서관을 지냈던 양 원장은 그와 마찬가지로 청와대서 민정수석과 비서실장을 지낸 문재인 대통령과 함께 일한 바 있다.

양, 신흥 지략가 당내 입지 굳혀
김, 잔뼈 굵은 킹메이커로 재등장

문 대통령이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았을 때는 재단 사무처장을 맡아 그를 보좌했다. 문 대통령의 자서전 <운명>과 <사람이 먼저다> 등도 양 원장이 기획했다.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오랜 기간 최고의 선거 전략가로 활약해왔다. 잔뼈 굵은 그에게 붙여진 별명은 ‘킹메이커’다. 총선은 물론 대선까지, 무대를 가리지 않고 최고의 성과를 내왔다는 증표다.

‘경제민주화 전도사’인 김 위원장은 위기의 보수당을 구한 일등공신이다. 지난 2008년부터 여당인 한나라당(통합당 전신)은 광우병 촛불집회로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이는 지난 2010년 한나라당의 지방선거 패배로 이어졌다. 
 

▲ 양정철 민주연구원장

악재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의 ‘무상급식 파동’ 등으로 열린 10·26재보궐 선거 당시 ‘디도스 파문’이 터졌다. 한나라당 국회의원 비서관이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홈페이지와 원순닷컴(박원순 홈페이지)을 교란한 사건이다. 


위기의 한나라당은 지도부를 재편했다. 홍준표 당시 대표가 물러나고 박근혜 전 대통령이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으로 등장했다. 2011년 말 상황이었다. 박근혜 비대위는 당명을 ‘새누리당’으로 바꿨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 비대위에 합류했다. 이후 박근혜 당시 비대위원장의 ‘경제 멘토’로서 ‘김종인=경제민주화’라는 이미지를 굳혔다. 진보 진영의 전유물이었던 경제민주화를 보수 진영의 핵심 공약으로 가져온 것이다. 김 위원장의 경제민주화를 흡수한 새누리당은 지난 2012년 열린 19대 총선서 152석 확보라는 반전을 이뤄냈다.

이 당 저 당
선거의 왕

‘김종인 효과’는 그해 열린 18대 대선까지 이어졌다. 박근혜 비대위원장이 대통령으로 올라선 선거다. 김 위원장은 새누리당 국민행복추진위원장으로 박근혜 후보 캠프에 합류했다. 당시에도 경제민주화를 핵심 공약으로 이끌어 박 위원장의 대선 당선에 일조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의 문재인 후보도 김 위원장의 지원을 요청한 바 있다. 정치권은 박근혜-문재인 후보의 득표율 격차가 3.6%에 지나지 않았다는 점을 들어, 만약 김 위원장이 문재인 당시 후보 측을 도왔다면 선거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고 진단한다.

김 위원장은 박근혜정부의 경제정책 기조가 ‘경기 부양’ 쪽으로 기울자, 이를 비판하며 결별했다. 지난 2013년 그는 “박 대통령에게 경제민주화를 기대한 건 과욕이었다”며 “경제민주화가 될 것처럼 얘기한 데 대해 국민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새누리당을 탈당했다.

김 위원장이 다시 선거판에 뛰어든 시점은 지난 2016년 20대 총선을 앞두고였다. 당시 포지션도 ‘구원투수’였다. 민주당은 소속 안철수계와의 불화와 전통적 텃밭인 호남 민심의 이반으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후 안철수계가 대거 민주당을 떠나 국민의당을 창당하면서 위기감은 증폭됐다.
 

민주당 문재인 당시 대표에게는 선거를 지휘할 사령관이 절실했다. 이대로 가다간 총선 패배는 물론 정권 재탈환도 힘들어 보였다. 이에 문 대표가 손을 내민 사람이 바로 김 위원장이었다. 

문 대표은 삼고초려 끝에 김 위원장 영입에 성공했다. 20대 총선을 4개월 앞둔 시점이었다. 당시 문 대표는 김 위원장에게 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라는 자리를 주고 공천의 전권을 위임했다. 김 위원장은 대대적인 물갈이에 성공, 20대 총선에서 민주당을 제1당으로 올려놨다.

이후의 상황은 역사의 반복이었다. 김 위원장은 대선을 두 달 앞둔 2017년 3월, 의원직을 내려놓고 민주당과 결별했다. 박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경제민주화를 실현할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였다.

이번에는?
이번에도?

정치를 떠나있던 신구 전략가가 21대 총선을 앞두고 귀환했다. 먼저 귀환한 사람은 양정철 원장이다. 그는 지난해 5월 신임 민주연구원장으로 임명됐다. 문 대통령을 당선시킨 지 2년 만이었다. 민주연구원은 민주당의 싱크탱크로 선거 전략의 본거지다. 


민주당은 지난해 11월 총선 준비를 총괄할 총선기획단을 구성, 양 원장은 윤호중 사무총장 등과 함께 15인에 이름을 올렸다. 기획단은 민주당의 조직, 재정, 홍보, 정책, 전략 등 산하 단위를 구성해 총선의 밑그림을 그리는 조직이다.

또 양 원장은 이해찬 대표와 이인영 원내대표, 윤호중 사무총장, 이근형 전략기획위원장 등과 비공식 ‘5인 협의체’를 꾸려 총선 전략을 이끌었다.

양 원장은 민주당 인재영입위원회서 활동했다. 민주당이 영입한 인재는 자진사퇴한 원종건씨를 제외한 19명, 면면을 보면 ‘스토리’에 ‘전문성’을 고려한 흔적이 느껴진다. 19명 중 1호 영입인재인 발레리나 출신 척수장애인 최혜영 강동대 교수는 양 원장의 작품이라는 후문이다.

양 원장은 앞서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한 직후 광폭행보를 보여 주목받은 바 있다. 서훈 국정원장을 시작으로 박원순 서울시장, 이재명 경기도지사, 김경수 경남도지사 등과 회동했다. 박 시장, 이 지사, 김 지사는 민주당의 대권주자들이다. 민주연구원장으로 취임하기 전인 지난해 2월에는 윤석열 검찰총장을 만났던 사실이 인사청문회 도중 알려지기도 했다. 서 원장과의 회동은 야당으로부터 “선거공작이 아니냐”는 뒷말을 낳기도 했다. 
 

총선의 전체적 흐름을 주도하는 모습도 보였다. 문재인정부 청와대 출신 인사들의 출마 러시가 이어지자 양 원장은 지난해 11월 민주당 의원 10여명과 만찬을 가지며 “청와대 출신 출마자가 너무 많아 당내 불만과 갈등 요소가 될 수 있다”고 제동을 걸었다. 지난 2월에는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에게 호남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아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인재영입·총선전략 주도
‘정권 심판론’ 남진할까?


더불어시민당 출범에도 양 원장의 흔적이 드러난다. 민주당 내 비례연합정당 참여를 두고 갑론을박이 치열했을 때, 민주연구원은 위성정당 없이 선거를 치를 경우 비례대표서 미래한국당이 최소 25석을 가져가는 반면, 민주당은 6∼7석에 그칠 것으로 전망하는 보고서를 당 지도부에 보고했다. 이후 민주당 내 여론은 비례연합정당 참여 쪽으로 기울었다. 

더불어시민당 출범 과정서도 파열음이 일었다. 민주당이 비례연합정당의 플랫폼으로 ‘시민을 위하여’를 선택하자 당초 민주당과 논의해왔던 정치개혁연합이 크게 반발하면서부터다. 정치개혁연합 측은 “비선 실세인 양 원장을 교체하라”며 항의했다. 양 원장은 21대 총선이 끝난 직후 민주연구원장직서 물러나 야인으로 돌아가겠다는 뜻을 주변에 밝힌 상태다.

‘킹메이커’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은 통합당 황교안 대표의 ‘삼고초려’ 끝에 총선판에 뛰어들었다. 황 대표와의 투톱 체제다. 통합당호에 올라선 김 위원장은 ‘문재인정부 때리기’로 자신의 복귀를 알렸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김 위원장은 통합당의 21대 총선 슬로건으로 ‘못 살겠다, 갈아보자’를 들고 왔다. ‘경제 실정론’, 더 나아가 ‘정권심판론’이다. 경제 실정론에 이어 김 위원장이 설정한 또 다른 공격 포인트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이다. 그는 수도권 후보들에 대한 지원유세를 다니던 중 “지난해 8월부터 어떤 묘한 분을 법무부장관으로 임명하면서 국민들이 너무나 뼈저리게 느꼈다”며 “그런 인사가 공정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이냐”고 지적했다.

김 위원장은 과연 총선 바람을 일으킬 수 있을 것인가. 그 바람의 진원지로 수도권을 선택한 모양새다. 공식 선거운동기간이 시작된 지난 2일부터 김 위원장은 수도권 후보를 지원사격하는 광폭행보를 보이고 있다.

경제실정론
과연 먹힐까?

나경원 후보(서울 동작을) 선거사무소를 시작으로 장진영 후보(동작갑), 권영세 후보(용산), 김대호 후보(관악갑), 오신환 후보(관악을), 최영근 후보(경기 화성갑), 임명배 후보(화성을), 석호현 후보(화성병) 등 하루에만 수도권 16명의 후보에게 찾아갔다. 81세의 나이가 무색한 강행군이다. 김 위원장은 ‘남진’ 전략이다. 수도권서 형성한 정권심판론 바람을 충청권으로 가져오는 데 이어 부산·울산·경남(PK)으로 내려 보낸다는 계획이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해찬-김종인, 32년 질긴 인연과 악연

21대 총선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와 미래통합당 김종인 총괄선거대책위원장의 ‘질긴 인연’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두 사람의 인연이 처음 시작됐던 시점은 32년 전인 지난 1988년 13대 총선서다. 두 사람은 서울 관악을 지역 총선서 맞붙었다. 

이번에는 선수가 아닌 감독 간 대결이다. 이 대표와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맞대결로 정치권에서는 4·15 총선을 사실상 두 사람 간의 마지막 승부로 보고 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여당인 민정당 소속이었으며, 이 대표는 야당인 평화민주당이었다. 

김 위원장은 당시 재선 국회의원이었다. 반면 이 대표는 운동권 출신의 36세 정치 신인이었다.

김 위원장은 당시에도 경제민주화를 구호로 내세웠으며 이 대표는 자주외교와 평화통일을 내걸었다.

두 사람의 대결은 이 대표가 승리하면서 막을 내렸다. 이후 이 대표는 관악을에서만 내리 5선을 달성, 거물로 성장했다. 

두 번째 만남은 더불어민주당서 이루어졌다.

당시 민주당의 대표였던 문재인 대통령은 20대 총선을 앞두고 김 위원장을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로 영입하는 승부수를 띄웠다.

김 위원장에게 공천에 대한 전권도 위임했다.

힘을 받은 김 위원장은 물갈이 도중 “당내 패권주의를 청산하겠다”며 친노에 대한 숙청에 들어갔다. 친노의 좌장인 이 대표 역시 칼바람을 피해가지 못했다.

당시 이 대표는 “김종인 비대위는 정무적 판단이라고 어물쩍 넘어가려 한다”며 자신에 대한 컷오프 결정에 불만을 드러냈다.

무소속 출마를 강행한 이 대표는 결국 20대 총선서 생환에 성공, 당선 6일 만에 민주당으로 복당했던 반면 김 위원장은 민주당의 경제민주화 의지에 실망감을 느낀다며 당을 떠났다.

이번 21대 총선이 세 번째 인연이다. 두 사람은 선수가 아닌 당의 감독으로 선거를 지휘하고 있다. 두 사람의 질긴 인연에도 서로에 대한 언급은 자제하는 모습이다. 

이번 세 번째가 두 사람의 마지막 인연이 될 전망이다.

이 대표는 피로 누적으로 병원서 치료를 받는 와중에 “(21대 총선은)내 정치 인생의 마지막 선거고 이번 총선이 문재인정부 성공에 아주 중요하다”고 밝혔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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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