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지우기’ 위기의 당권파 해법

  • 최현목 기자 chm@ilyosisa.co.kr
  • 등록 2020.08.03 09:57:52
  • 호수 128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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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돼도 상왕정치?

[일요시사 정치팀] 최현목 기자 = 최근 들어 불만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향한 비판은 벼른 칼처럼 날카롭다. 현재 민주당 내부서 벌어지는 상황이다. 지난달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던 일이다. 그만큼 친노(친 노무현) 좌장이자 군기반장인 이 대표의 당 장악력은 철옹성처럼 굳건해 보였다. 이 대표와 한 배를 탄 당권파 역시 덩달아 위기다. <일요시사>는 기로에 서 있는 당권파의 독자생존 전략을 취재했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180석(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긴 데는 박수를 보내야 하지만 ‘버럭’하는 것은 배우기가 그렇다.”(민주당 노웅래 최고위원 후보) “굉장히 무섭다. 이야기를 진솔하게 표현하기가 힘들고 말씀드리고 나서도 한참 혼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이원욱 후보) “이미 그분이 다 해본 길이기 때문에 새로운 상상력이나 도전에 대해서는 대부분 안 된다고 생각하는 면이 강하다.”(김종민 후보) “잘난 척까지는 아니고 자부심을 가질 만하지만, 조금 자제하면 좋을 것 같다.”(신동근 후보)

참았던 불만
봇물 터지듯

다선 국회의원이 초선 의원을 지적하는 듯 보이는 발언이지만, 실상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해찬 대표를 평가하는 발언이다. 이 대표를 향해 쓴소리를 낸 이들 4명은 모두 이달 말에 열리는 민주당 전당대회에 최고위원 후보로 출마한 의원들이다.

이 대표의 임기는 채 한 달이 남지 않았다. 민주당 전당대회는 오는 29일에 열린다. 이 대표의 임기는 전당대회까지다. 충분히 리더십에 균열이 생길 수 있는 시기다. 그러나 그 주인공이 이 대표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 대표는 친노의 좌장이자, 민주당의 군기반장이다. 그는 참여정부 시설 총리를 역임했으며, 노무현재단의 4대 이사장을 지냈다. 지난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11주기 추도식이 경남 김해시 진영읍 봉하마을 대통령묘역서 엄수됐을 당시 추도사를 읽은 사람이 바로 이 대표다. 친노·친문(친 문재인)이 주류를 차지하는 민주당 내에서 이 대표의 입지는 절대적이다. 


이 대표는 군기반장으로 통한다. 이 같은 이미지엔 그의 까칠한 성격도 일조한다. 참여정부 실세 총리이던 시절 그는 ‘버럭 총리’로 불렸다. 국회 대정부질의서 야당 의원들에게 언성을 높이는 모습을 자주 보였기 때문이다. 지난 2005년 2월 대정부질의서 ‘차떼기당 발언’을 놓고 당시 한나라당(미래통합당 전신) 홍준표 의원과 설전을 벌인 일은 유명하다.
 

▲ (사진 왼쪽부터)김종민·노웅래·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문병희 기자

초선 의원이던 시절 평민당에 총재였던 김대중 전 대통령에게 사당화를 지적하며 탈당한 사건은 그의 호락호락하지 않은 성격을 잘 대변하는 사건이다.

이 대표는 지난 2018년 8월 민주당 대표로 선출됐다. ‘강한 여당’이 이 대표가 내세운 청사진이었고, 여기에 많은 민주당 당원들이 표를 던졌다. 

이 대표는 취임 후 청와대·정부에 강한 목소리를 내며 향후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당이 쥐겠다는 의지를 드러냈다. 취임 첫 고위당정청회의서 이 대표는 “민주당은 국민의 목소리를 직접 듣고 정부에 전달하는 역할을 하게 되므로 쓴소리라고 생각하지 말고 관심을 많이 가져달라”고 강조했다. 군기반장으로서의 면모를 드러내며, 청와대와 정부 부처에 미리 경고를 날렸다는 분석이 나왔다.

최고위원 후보들 “대표 무섭다”
‘부초서천’ 논란에 민주당 흔들

군기반장의 면모는 민주당 내부를 단속하는 과정서도 드러났다. ‘함구령’ 사건이 대표적이다. 실제로 이 대표는 민주당 인사들과 관련한 논란이 터질 때마다 입단속에 나섰다. 

후원금 유용 의혹 등을 받은 민주당 윤미향 의원이 논란의 중심에 서자 “일희일비하듯 사건이 나올 때마다 대응하지 말라”며 의원들에게 지시를 내렸다. 금태섭 전 의원 징계와 관련해서도 “논란으로 확산하게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앞서 금 전 의원은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법 본회의 표결 당시 ‘기권표’를 던졌다는 이유로 당 윤리심판원서 징계 결정을 받았다.


잇단 함구령에 민주당 내부서도 불만이 표출됐다.

김해영 최고위원은 비공개 회의서 “금 전 의원에 대한 징계가 헌법적 판단과 상충되는 부분이 있다. 공개 회의서 발언하겠다”며 소신을 드러냈고, 이를 실천에 옮겼다. 그러나 김 최고위원 외에는 이렇다할 공개 비판은 나오지 않았다. 이 대표의 리더십은 흔들림이 없었다. 

금 전 의원 징계 논란에 대한 함구령이 내려진 시기는 지난 6월이다. 2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현 시점서 이 대표의 리더십에는 균열이 감지되고 있다. 복수의 전당대회 출마자들이 강한 어조로 그간의 이 대표의 발언 등을 지적하고 나섰다.

민주당 내부에서는 ‘이해찬 리스크’를 언급하는 일이 잦아졌다. 이 대표가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빈소를 방문했던 지난달 10일, 박 전 시장의 ‘미투 의혹’을 묻는 질문에 욕설을 한 일이 결정적이었다.
 

▲ 최고위원회의서 발언하는 박주민 최고위원 ⓒ문병희 기자

이 대표는 박 전 시장의 빈소서 성추행 의혹에 대한 당 차원의 대응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건 예의가 아니다. 그런 걸 이 자리서 얘기라고 하나. 최소한 가릴 게 있다”고 말한 뒤, 기자를 노려보며 “XX자식 같으니”라고 쏘아붙였다.

당시의 대응 논란은 일마만파로 퍼졌다. 한국기자협회는 이 대표에게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결국 민주당 강훈식 수석대변인은 해당 언론사 측에 사과의 뜻을 전했다. 그러나 논란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았다. 

버럭총리
군기반장

이 대표가 당시 빈소서 보여준 격앙된 반응은 이후 민주당 의원들의 ‘2차 가해’ 논란으로 이어졌다. 이 대표가 박 전 시장 성추행 피해자에게 사과하기 전, 그가 박 전 시장의 업적을 기리며 추모하는 모습은 민주당 내부 의원들에게 일종의 가이드라인으로 작용했다.

민주당 진성준 의원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의혹과 관련해 “사자 명예훼손에도 해당할 수 있는 얘기”라고 했다. 서울시 행정부시장을 지낸 민주당 윤준병 의원 역시 “고인은 죽음으로, 당신이 그리던 미투 처리 전범을 몸소 실천했다. 고인의 명예가 더는 훼손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해 논란을 불렀다.

이후 이 대표를 비롯해 2차 가해 논란에 휩싸였던 의원들이 사과했지만, 진정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로부터 2주 뒤 ‘천박한 서울’ 논란이 터졌다. 이 대표는 지난달 24일 세종시청 여민실서 열린 ‘세종시의 미래, 그리고 국가균형발전의 시대’ 토론회서 “서울 한강 배를 타고 지나가면 저기는 무슨 아파트, 한 평에 얼마 그걸 쭉 설명해야 한다”며 “한강 변에 아파트만 들어서가지고 단가 얼마라고 하는데, 이런 천박한 도시로 만들면 안 된다”고 말했다. 

지난 4월 민주당 부산시당서 개최한 선거대책위원회 회의서 부산을 ‘초라하다’고 말한 이후 두 번째 지역 비하 발언이다. 야권에서는 ‘부초서천’(부산은 초라하고 서울은 천박하다)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이 대표와 민주당을 공격하고 있다.


천박한 서울 발언 논란에 이어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이 대표는 다른 지도부와 엇박자를 냈다. 이 대표는 개헌을 통해 ‘대한민국의 수도를 세종으로 한다’는 규정을 세우면 행정수도 이전 문제가 깨끗이 해결된다는 입장이다.
 

▲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의원 ⓒ고성준 기자

지난달 24일 세종시청서 열린 토크콘서트서 이 대표는 “개헌할 때 대한민국 수도를 세종시에 둔다는 문구를 넣으면 위헌 결정 문제가 해결된다”고 말했다.

반면 민주당 김태년 원내대표를 비롯해 여권 내 기류는 ‘여야 합의를 바탕으로 한 특별법을 제정하자’는 방향이다. 김 원내대표는 행정수도완성추진단(이하 추진단) 첫 회의서 “대선까지 시간 끌지 않고 그 전에 여야가 합의할 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밝혔다. 추진단 단장인 민주당 우원식 의원 역시 여야 합의를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놨다. 

이해찬 리스크
“총기 잃었나”

민주당 단독으로 행정수도 이전을 추진했을 때의 정치적 역풍을 미연에 차단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개헌 논의 등으로 소비되는 시간을 단축시킬 수 있어서다.

만약 속도가 나지 않을 경우 마지막 카드로 개헌을 꺼내든다는 것이 민주당 내부의 중론이다. 이 대표가 주장하는 개헌과 추진단서 주장하는 특별법 제정 사이에는 갭이 크다. 민주당 지도부가 우왕좌왕하고 있는 셈이다. 


이를 두고 이 대표가 총기를 잃은 것 아니냐는 평가가 민주당 내부서 들려온다. 일각에선 퇴임을 앞두고 긴장이 풀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레임덕이라는 평가도 심심찮게 들려온다. 문제는 이 대표의 발언이 민주당의 리스크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달 27일부터 29일까지 조사하고, 30일에 발표한 7월4주차 주중 잠정집계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서울 지역서 3.9% 포인트, 충청권서 4.9% 포인트 하락했다. 

문 대통령의 지지율 역시 서울 지역서 4.8% 포인트, 대전·세종·충청 지역서 4.5% 포인트가 하락했다. 행정수도 이전 논의에 따른 상대적 박탈감과 이 대표의 천박한 서울 발언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

문 대통령의 국정지지율이 9주 연속 하락세를 멈추고 지난주보다 1.2% 포인트 오른 45.6%를 기록했음에도 마냥 웃을 수 없는 이유다(자세한 조사 개요와 결과는 리얼미터 홈페이지 또는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이해찬 책임론’은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지는 않다. 최고위원 후보들이 이 대표의 발언에 일침을 가했지만, 사퇴 등으로 번지지는 않는 모습이다. 어차피 교체될 지도부라는 이유에서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 ⓒ고성준 기자

민주당 송갑석 대변인은 천박한 서울 논란과 관련해 “모든 것은 뒷전이고 그런 이야기(집값)를 하게 될 수밖에 없는 천박한 상황을 말한 것”이라며 “한 달 정도 있으면 은퇴를 하시는 분이다. 너무 긴장하지 않고 받아들여 주셔도 좋을 것 같다”고 해명했다.

이 대표는 민주당 친문 당권파의 수장이다. 김태년 원내대표와 윤호중 사무총장, 김성환 당 대표 비서실장이 이 대표와 가까운 친문 당권파로 통한다. 당내 이해찬계로 분류돼 속칭 ‘이해찬 당권파’로도 불린다. 

“어차피 나갈 것” 쉬쉬
친문 건재하다지만…

이들은 이 대표 퇴임 이후를 고민해야 한다. 이낙연 의원, 김부겸 전 의원, 박주민 최고위원이 차기 당권에 도전장을 내민 상태다. 이 중 박 최고위원이 친문 당권파로 분류된다. 

박 최고위원은 이번 당 대표 선거의 주요 변수다. 일찌감치 출마를 선언한 이 의원과 김 전 의원의 양강 구도가 전망됐었다. 박 최고위원은 후보 등록 마지막 날 갑작스레 출마를 선언했다. 

앞서 박 최고위원은 서울시장 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됐었다. 이 때문에 그의 막판 출사표가 뜻밖이라는 반응이 민주당 안팎서 들려온다. ‘체급 올리기’ ‘플랜B’ 등 박 최고위원의 출마를 두고 다양한 해석이 쏟아진다. 

체급 올리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박 최고위원이 결국 서울시장 출마를 고려해 당 대표 선거에 도전장을 내밀었다고 해석한다. 이낙연·김부겸과의 대결로 체급을 올린 뒤 내년 4월에 열릴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 도전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플랜B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만약 민주당이 서울시장 후보로 여성을 낙점했을 때를 대비해 박 최고위원이 당 대표로 방향을 틀었다고 본다. 불확실한 서울시장에 도전하기보다 조금 더 명확한 당 대표로 급선회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박 최고위원이 당 대표로 당선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중론이다. 높은 인지도와 호감으로 많은 친문 표심을 가져갈 것으로 전망되지만, 다른 두 후보에 비해 정치적 중량감이 떨어진다는 평가다. 박 최고위원의 당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서 친문 당권파들이 그에게 마냥 힘을 실어주기는 힘들다.

퇴임 이후 이 대표의 정치적 영향력에 대한 해석이 사그라들지 않는 이유다. 앞서 이 대표 상왕설이 정치권서 불거진 바 있다. 이 대표는 지난 6월 사단법인 동북아평화경제협회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변수 등장
선택 기로

동북아평화경제협회는 북한을 포함한 동북아 국가들과의 경제교류 및 상호협력관계 방안을 마련하고 실천하는 민간단체다. 사무실은 여의도 국회 바로 맞은편에 위치한다. 이 대표와 가까운 친문 당권파들은 당의 요직(김 원내대표, 윤 사무총장, 김 비서실장)에 포진해 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이 대표가 퇴임 후 ‘상왕정치’를 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chm@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첫 당 대표 후보 토론회 승패는?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출사표를 던진 이낙연·김부겸·박주민 후보가 맞붙었다. 지난달 29일 첫 TV 토론회서 후보들은 행정수도와 대표 임기 문제 등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김 후보는 이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에 대해 입장이 몇 번 바뀌었다고 지적했다. 호남이 손해를 보기 때문에 이 후보가 행정수도 이전과 관련해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이 후보는 “행정수도 건설 자체에 반대했다기보다는 비수도권 지방과의 불균형이 생기는 경우에 대해 보완을 해야 하지 않느냐는 취지였다”고 반박했다. 

당 대표 임기 문제를 놓고도 공방을 벌였다. 당 대표가 대선에 출마하기 위해서는 임기 7개월 만인 내년 3월에 사임해야 한다. 내년 4월 재보궐선거가 예정돼있는 와중에 지도부 공백이 불가피하다.

이 후보는 “책임 있게 처신하겠다”며 에둘러 입장을 내놨다.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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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확 바뀐’ 이재명 이유 있는 대변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코로나19 종식과 비상계엄, 대통령 파면으로 인한 조기 대선을 치르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20대 대선과 21대 대선 모두 운명의 길목서 치러진 셈이다. 국민의 삶과 밀접하게 닿아 있는 정치권도 큰 영향을 받았다. 코로나19 정국과 내란 정국서 대선을 뛴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에게는 지난 3년간 어떤 변화가 있었을까? 3년 전, 20대 대선이 치러지던 2022년 당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코로나19 시기였던 점을 감안해 소상공인 정책과 경제 재건에 초점을 맞췄다. 민주당의 1호 공약 역시 ‘코로나19 팬데믹 완전 극복’과 ‘피해 소상공인에 대한 완전한 지원’이었다. 경제 대통령 앞세웠지만… 이 외에도 ▲오미크론 등 변이종 확산 대응 강화 ▲백신 및 치료제 확보 ▲의료보건체제 구축에 대한 충분한 재정 투입 ▲필수예방접종의약품 자급화 실현을 위한 국가지원체제 구축 등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당시 이 후보 선거대책위원회(이하 선대위)는 ‘유능한 경제 대통령’에 초점을 맞춰 5대 비전으로 ▲신경제 ▲공정 성장 ▲민생 안정 ▲민주사회 ▲평화·안보 등을 제시했다. 10대 공약으로는 수출 1조달러를 비롯한 311만호 주택 공급, 문화 강국 실현 같은 경제 중심의 공약을 제시했다. 차기 정부의 큰 틀이 되는 10대 공약을 살펴보면 사회 전반에 걸친 문제가 두루 담겼지만, 가장 주목을 받는 건 이 후보의 상징과도 같은 ‘기본 시리즈’ 정책이었다. 기본소득부터 기본주택, 기본금융을 합친 것으로 이 후보의 숨은 1호 공약이란 평도 나왔다. 기본 시리즈는 전 국민에게 최소한의 소득을 보장하는 동시에 주거와 금융 면에서 보편적인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목표로 한 공약이다. 가장 대표적인 공약으로는 ‘청년 125만원’ ‘전 국민 25만원’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을 꼽을 수 있었다. 기본소득은 이 후보가 경기도지사이던 때부터 추진하던 정책이다. 2021년 7월 경선 후보 2차 정책 발표 기자회견서 이 후보는 “대전환의 위기 시대에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대대적 정부 역할도 중요한 성장 수단이지만, 세계 최저 수준인 국가의 가계소득 지원과 가계소비를 늘리는 것도 경제 성장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차기 정부 임기 내에 청년에게는 연 200만원, 그 외 전 국민에게 100만원 기본소득을 지급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했다. 아울러 “지역 골목경제 활성화와 매출 양극화 해소를 위해 소멸성 지역화폐로 지급되는 기본소득은 현금과 달리 경제 활성화 효과가 극대화된다”며 “기본소득은 어렵지 않다. 작년 1차 재난지원금이 가구별 아닌 개인별로 균등하게 지급되고 연 1회든 월 1회든 정기 지급된다면 그게 바로 기본소득”이라고 설명했다. 코로나19·비상계엄 정신없이 도는 정치판 “전 국민 25만원 지원” 3년 사이 변화는? 당시 정치권에서는 이 후보의 기본소득 공약이 과거 보수 정당과 박근혜 전 대통령이 주장하던 ‘경제 민주화’와 닮았다고 봤다. 그러나 이 후보의 기본소득은 재원 확충 방안 등 실현 가능성이 작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이에 민주당은 재원 마련 방안으로 재정개혁을 추진하는 동시에 국토보유세와 탄소세 도입 등 다양한 방법을 제시했다. 그러나 당시 보수 진영에서는 “코로나19 지원금으로 나라 곳간이 텅 비었다”며 ‘포퓰리즘’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전 국민에게 25만원을 지원하는 방안은 20대 대선 이후에도 이 후보가 꾸준히 밀던 정책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차등 지원, 분배 방식 등에 변화가 생겼지만 이 후보는 지난해 윤 전 대통령과의 영수회담서 “민생회복 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며 거듭 당부하기도 했다. 포퓰리즘이라는 보수 진영의 비판에는 “우리나라 최초의 부분적 기본소득은 아이러니하게도 2012년 대선서 보수 정당 박근혜 후보가 주장했다. 65세 이상 노인 모두에게 월 20만원씩 지급한다는 공약은 박빙의 대선서 박 후보 승리 요인 중 하나였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3년이 지난 지금 이 후보는 대선 정국이 시작됨과 동시에 1호 공약으로 “AI 인공지능 3강 도약”을 외쳤다. 경제 강국으로 거듭나기 위한 청사진을 제시하면서 AI 대전환 시대를 위한 산업 육성을 약속했다. 고성능 GPU(그래픽처리장치)를 5만개 이상 확보하고 한국형 챗GPT를 국민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모두의 AI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 등이 대표적인 사업이다. 국가 비전으로는 K-이니셔티브를 제시했다. 국내 AI 기술 등에 방점을 찍어 미래 먹거리를 선점하고 경제 성장 국가로 발돋움하겠다는 취지다. 이 후보는 K-이니셔티브를 지역별로 쪼개 맞춤형 공약을 제시하기도 했다. 경기 동탄서는 K-반도체를, 대전서는 K-과학기술을 중심으로 메시지를 냈고 전북 전주서는 K-컬처를 겨냥해 국악인과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 후보의 21대 대선 공약은 ‘K’를 빼놓고 설명할 수 없다. 지난 대선서 기본소득 같은 ‘이재명표 공약’을 앞세웠다면 이번에는 12·3 내란 사태로 무너진 민주주의를 다시 일으켜 세워 ‘진짜 대한민국’을 만드는 데 방점을 찍은 것이다. 지원금 어디로? 공약 발굴 과정 역시 K-이니셔티브를 앞세웠다. 후보 직속인 K-문화강국위원회는 문화 강국 실현을 위한 공약을, K-경제성장위원회는 맞춤형 의제를 설정하는 데 주력할 전망이다. 선대위 산하에는 K-민주주의·평화위원회를 설치해 ‘빛의 혁명’에 참여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조직을 꾸렸다. 서울·인천·경기를 겨냥한 K-수도권 비전을 발표하며 “서울을 뉴욕에 버금가는 글로벌 경제 수도로, 인천을 물류와 바이오산업 등 K-경제의 글로벌 관문으로, 반도체와 첨단기술, 평화·경제의 경기로 수도권 K-이니셔티브를 만들겠다”는 포부도 밝혔다. 기본 시리즈의 존재감은 희미하다. 지난 대선서 기본 시리즈를 앞세운 것과 달리 이번 대선에서는 ‘기본 사회’라는 단어로 묶어 포괄적인 복지 정책으로 탈바꿈했다. 이 후보는 “국민의 기본적인 삶을 국가 공동체가 책임지는 사회, 기본 사회로 나아가겠다”며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국가전담기구인 ‘기본사회위원회’를 설치하겠다고 밝혔다. 이 후보는 양극화로 인한 분열과 갈등이 만연한 사회에 우려를 표하며 “기본 사회는 단편적 복지나 소득 분배에 머무르지 않고 국민의 주거·의료·돌봄·교육·공공서비스 전반에 대한 실질적 보장을 통해 지속 가능한 성장 기반을 만드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기본사회위원회는 기본 사회 실현을 위한 비전과 정책 목표, 핵심 과제 수립 및 관련 정책 이행을 총괄·조정·평가하게 된다. 아동수당 확대나 청년미래적금, 고용보험 사각지대 해소 등 생애주기별 소득 보장 체계를 구축하고 농어촌 기본소득과 햇빛·바람 연금 같은 지역 맞춤형 소득 지원도 점차 확대해갈 예정이다. 개헌에는 다소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나 싶더니 선거 막판서 대통령 4년 연임제와 등을 골자로 한 구상을 밝혔다. 개헌 시기에 대해서는 “논의가 빠르게 진행된다면 2026년 지방선거서, 늦어져도 2028년 총선서 국민의 뜻을 물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 국민투표법을 개정해 개헌의 발판을 마련하고 국회 개헌특위를 만들어 하나씩 합의하며 순차적으로 개헌을 완성하자”고 말했다. 이후 최종 공약집서 “위기의 민주주의를 개헌으로 지키겠다”고 밝히면서 다시 한번 못을 박았다. 우클릭? 융통성! 가장 큰 차이점을 보인 건 경제, 그중에서도 부동산 정책이다. ‘민주당 우클릭’이라는 표현이 나올 만큼 민주당은 중도우파까지 껴안는 방법을 마련했다. 우선 민주당은 주택 공급은 늘리되 부동산시장에는 최소한으로 개입하겠다는 방침을 밝혀 왔다. 문재인정부 당시 과도한 세금 규제로 집값이 오르는 등 발생할 각종 부작용과 혼란을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앞서 이 후보는 ‘경제 유튜브 연합 토크쇼’에 출연해 “주거 문제에 대해서는 생각을 많이 바꾼 편이다. 집은 주거용이지 투자·투기용은 아니어야 한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게 불가능하더라”고 밝힌 바 있다. 부동산시장의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하는 만큼 규제를 완화하는 방법을 택해야지, 억눌러서는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우클릭, 태세 전환, 이런 이야기가 나오는데 시장과 경제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정책을 수정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부동산 투기를 막으려면 거래세를 줄이고 보유세를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야 한다. 저항을 줄이기 위해 국토보유세는 전 국민에게 고루 지급하는 기본소득형이어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이번 대선에서는 “세금으로 집값을 잡는 시대는 지났다”며 선을 그었다.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소득세 등 부동산의 핵심 세제 역시 큰 틀에서 손대지 않고 현행 체계를 유지할 전망이다. 다만 이 후보뿐만 아니라 모든 대선후보들이 이렇다 할 부동산 공약을 내놓지 않고 있어 비교 대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표가 떨어질 것을 우려해 후보 모두 부동산 정책에 소극적인 태도를 보여 공약을 구분하기 어렵다는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됐다. 지난 3년간 일부 노선이 수정된 반면, 이 후보가 뚝심 있게 밀고 나간 공약도 있다. 앞서 이 후보는 지난 대선서 “여성가족부를 평등가족부나 성평등가족부로 바꾸고 일부 기능을 조정하는 방안을 제안한다”고 밝혔는데 이번 역시 “성평등가족부로 확대·개편하겠다”고 밝혔다. ‘기본 소득’ 내리고 ‘K-시리즈’ 올리고 갈라치기 대신 ‘중도 실용주의’ 노선으로 이 후보는 사전투표가 진행되기 하루 전날인 지난달 28일6 자신의 SNS에 ‘성평등가족부 확대 공약 메시지’를 내고 “여성들이 여전히 우리의 사회 많은 영역서 구조적 차별을 겪고 있음에도 윤석열정부는 성평등 정책을 후순위로 미뤘다”고 꼬집었다. 이어 “향후 내각 구성 시 성별과 연령별 균형을 고려해 인재를 고르게 기용하고 성평등 거버넌스 추진 체계도 강화하겠다. 중앙 부처와 지자체의 양성평등정책담당관제도를 확대해 성평등 정책 조정과 협력 기능을 강화하겠다”며 “지자체 내 전담부서를 늘려 성평등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겠다”고도 약속했다. 대법관 구성과 다양성 및 전문성 강화를 위한 ‘대법관 증원’도 큰 틀에서 벗어나지 않았다. 현재 대법관 한 명이 맡는 사건의 수가 많아 증원은 불가피하다는 게 민주당 관계자들의 공통된 설명이다. 이번 공약집에도 민주당은 상고심에 대한 국민 신뢰도를 높이기 위해 대법관 증원과 전원합의체 변론 공개 확대를 추진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다만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증원 규모를 적시하지 않았다. 앞서 민주당은 대법원이 이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가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되자 사법개혁을 예고했다. 이때 민주당이 대법관의 수를 100명으로 늘리는 법안을 발의했는데, 선대위가 해당 법안의 철회를 지시하면서 한때 논란이 되기도 했다. “검은 고양이든 흰 고양이든 쥐만 잘 잡으면 된다”는 ‘흑묘백묘론’ 역시 20대 대선서도 주장했다. 앞서 이 후보는 “진보와 보수를 가리지 않고 필요한 정책을 취하고, 김대중·박정희 정책을 따지지 않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이번에도 이 후보는 국민 통합을 제시하며 좌우를 가리지 않고 오직 경제를 살리는 데 집중하겠다는 점을 강조했다. 비상계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인 만큼 급진적인 변화와 이념 갈라치기보다는 대한민국을 안정 궤도에 되돌리는 ‘중도 실용주의’ 노선을 택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리미리 착착척척 선대위 소속인 한 민주당 의원은 “조기 대선인 만큼 비교적 짧은 시간 안에 선거가 치러졌다. 그동안 어떻게 시간이 흘렀는지도 모를 만큼 바빴지만 국민 의견을 적극 수용해 좋은 공약이 나올 수 있었다”며 “대부분 이 후보 머릿속에 원래 있던 공약들이다. 여기에 지난 3년 동안 각종 위원회서 활동한 의원들의 시너지가 합쳐져 좋은 결과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이재명 공보물, 분위기도 바뀌었다? 대선서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의 책자형 선거 공보물도 눈에 띈다. 지난 공보물은 ‘경제’ ‘일하는 대통령’ 등 유능함을 내세웠다면 이번에는 ‘내란 극복’ ‘빛의 혁명’을 반복적으로 강조해 희망에 초점을 맞추었다. 책자 한 면 전체를 응원봉 시위대 사진으로 채워 이번 조기 대선을 내란 세력 심판 성격임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대선 출마 영상도 사뭇 분위기가 다르다는 평이다. 20대 대선 경선 당시 이 후보는 검은 배경의 스튜디오서 파란 넥타이와 정장을 갖춰 입은 채 출마를 선언했다. 반면 21대 대선 출마 영상서 이 후보는 밝은 분위기의 실내서 베이지색 니트를 입고 등장해 부드러운 면모를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