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시사 경제팀] 박호민 기자 = 체리피커. 국립국어원 신어 자료집에 수록된 자료에 따르면 자신의 실속만 차리는 소비자를 뜻한다. 현명한 소비자라는 평가와 얌체 소비자라는 극단의 평가가 있다. 카드업계에도 체리피커가 있다. 혜택 많은 카드에 가입해 혜택만 받고 빠지는 소비자들을 일컫는다. 이들이 선택한 카드는 무엇일까. 이들의 선택을 받은 카드는 혜택이 많은 카드라는 해석도 가능하니 주목해도 좋은 정보다.
서울에 사는 김모(30)씨는 롯데VEEX 카드를 이용한다. 소소한 소비가 많은 그에게 롯데 VEEX 카드는 안성맞춤의 카드였다. 전세계 가맹점에서 업종상관 없이 최대 2.0%(전월 30만원 사용시)의 적립금이 모이는 게 꽤 쏠쏠했던 것.
현명한 소비자
롯데멤버스 제휴사를 이용에서 카드를 사용할 경우에는 0.5∼3%까지 롯데포인트를 추가로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특히, 적립한도가 무제한이라는 점은 김씨가 롯데 VEXX 카드를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였다.
롯데카드 입장은 좀 애매하다. 높은 인기에도 불구하고 파격적인 혜택으로 인해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새정치민주연합 신학용 의원이 금융감독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까지 135억3200만원의 적자가 났다.
롯데 VEEX카드는 줄곧 적자규모가 큰 카드(적자카드 순위에서 전산 문제로 자료로 제출하지 않은 외환카드는 제외) 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2013년 166억880만원, 2014년 157억6600만원 등으로 전체 카드 가운데 3위 안에 꾸준히 든 것. 이 같은 추세가 유지된다면 롯데VEEX 카드는 올해 우리나라에서 적자 규모가 가장 큰 카드로 기록된다.
그동안 전통적으로 체리피커에게 인기가 많았던 카드는 하나 클럽SK였다. 혜택이 많아서다.
많은 혜택 중 체리피커의 눈길을 사로 잡은 것은 주유할인/적립 서비스와 통신할인/적립서비스였다. 주유할인/적립 혜택의 경우 월 30만원 이상을 사용할 경우 리터당 100원을 할인/적립해주고, 60만원부터 150원을 할인/적립해줬다. 통신요금 할인 혜택도 파격적이었다. LTE모바일을 기준으로 30만원 이상 사용하면 1만원을, 60만원 이상이면 1만5000원을 할인해줬다. 입소문이 나면서 하나 클럽SK 카드는 체리피커의 먹잇감이 됐다.
체리피커의 ‘장바구니’에 오르자 하나 클럽SK 카드의 적자폭은 업계 최고치를 찍었다. 2013년 253억8900만원, 2014년 236억8300만원 등으로 지난 2년 연속 전체 카드 가운데 가장 많은 손실을 기록한 것. 손실이 커지자 하나카드사는 결단을 내렸다.
2013년 말부터 신규가입을 받지 않기로 한 것이다. 지난해 2월부터는 혜택을 대폭 줄이면서 체리피커의 반발이 거셌다. 덕분에 적자폭은 줄기 시작했다. 올해 6월 기준으로 116억500만원으로 여전히 최고 수준(2위)의 적자규모지만 1위 자리는 롯데VEEX 카드에 넘길 수 있었다.
현대 ZERO카드는 3위를 기록했다. 현대 ZERO카드는 체리피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카드 가운데 하나다. 현대 ZERO카드는 ▲모든 가맹점에서 0.7% 기본 할인 ▲생활 필수 영역 0.5% 추가 할인 ▲선결제시 0.3% 추가 할인 ▲모든 가맹점 2∼3개월 무이자할부 등 폭 넓은 혜택을 제공한다.
‘공짜 너무 퍼줬나’ 말 못할 고민
손실 커지자 슬그머니 상품 없애
특히, 할인 횟수 및 한도 제한이 없고, 전월 실적 조건 없이 어디서나 할인 혜택이 적용된다는 점이 체리피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통상 다른 신용카드가 할인 횟수를 정해놓고, 전월 실적에 비례해 혜택을 제공한다는 점을 상기하면 귀가 솔깃해지는 제안이다.
이를 반영하듯 ZERO카드의 적자폭은 눈에 띄게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해 현대ZERO카드는 110억5200만원의 적자를 기록했는데 소비자의 관심과 호응으로 올해는 6월 기준 71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순위도 껑충 뛰었다. 지난해 아홉 번째로 많은 적자를 기록했던 현대 ZERO카드는 올해 6월 적자폭이 커 3위로 껑충 뛰어올랐다.
삼성카드 4 V2도 많은 혜택을 제공하면서 대규모 적자를 기록했다. 올해 6월까지 66억3200만원의 적자를 시현하면서 네 번째로 적자 규모가 큰 카드로 기록됐다. 삼성카드 4 V2는 언제 어디서든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체리피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삼성카드 4 V2는 ‘알아서’, ‘모든 곳에서’, ‘조건 없이’ 할인이 되는 것이 강점이다. 삼성카드 4 V2는 모든 가맹점에서 전월 이용금액에 관계없이, 할인한도 없이 기본 0.6% 할인 혜택을 제공한다. 할인점, 음식점, 주유소, 병원, 약국 등 생활밀착업종에서 카드 이용 시 혜택이 두 배로 커져 이용금액의 1.2%를 할인 받을 수 있다. 또한 전국 모든 영화관에서 티켓 구매 시 3000원 할인 혜택도 제공한다.
롯데DC슈프림 카드는 지난 6월 기준 전체 카드 가운데 다섯 번째로 적자규모가 큰 카드에 이름을 올렸다. 체리피커는 롯데 DC슈프림 카드의 쇼핑·외식 등의 혜택에 집중했다. 롯데DC슈프림 카드는 3대 대형백화점(롯데·신세계·현대)과 대형할인점(롯데·이마트·홈플러스)에서 업종별로 최고 10%의 할인혜택을 제공한다. 이 외에도 병원, 약국, 대중교통, 미용실, 커피전문점 등 다양한 연령층이 쉽게 할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 장점으로 꼽혔다. 이에 따라 롯데DC슈프림 카드는 66억800만원의 적자를 시현했다.
업계에서는 카드의 넉넉한 혜택으로 적자가 누적되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지난 3월 김정태 하나금융그룹 회장은 직원들과 대화 자리에서 수익성 제고를 강조하면서 “2X카드처럼 적자가 나는 상품은 출시를 중단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해결책이 간단치만은 않다. 카드의 신규발행을 중단하거나 혜택을 줄이자니 기존 고객의 반발이 예상되기 때문이다. 실제 한 카드사는 카드 적자폭을 감당하지 못하고 혜택을 슬그머니 축소하거나 없애버려 소비자 사이에서 논란이 되기도 했다.
얌체 소비자?
카드사의 말 못할 고민에도 체리피커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최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카드 가운데 상황에 맞게 할인 혜택이 가장 많은 카드를 추천해주는 어플리케이션이 우후죽순 등장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카드사와 체리피커 사이에 두뇌싸움은 계속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