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태균 사건’ 특별수사팀 미룬 내막

“중앙지검 수사해야”
정치적 부담 고려?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검찰이 명태균씨에 대한 수사 강도를 높였다. 늑장 수사라는 비판이 상당하다. 명씨에게 증거를 인멸할 시간을 벌어줬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수개월 전에 접수된 사건을 뒤늦게 들여다보기 시작한 데 이어 구속영장 청구도 늦었다는 게 이유다. 검찰 안팎에서는 중앙지검 차원서 특별수사팀을 구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왜 창원지검서 주도하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정치적 부담감을 고려한 조치다.” <일요시사>와 만난 한 검찰 간부의 말이다. 이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이 명태균씨에 대한 수사를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내부서도 동의하는 검사가 상당했다고 한다. 그러나 검찰의 조치는 차장검사 파견에 그쳤다.

질질 끌다
왜 창원서?

명씨 논란의 핵심은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의 공천 개입 의혹이다. 대검찰청은 이달 초 창원지검 ‘명태균 의혹’ 수사팀에 이지형(사법연수원 33기) 부산지검 2차장검사와 인훈(37기) 울산지검 형사5부장검사, 평검사 2명 등 검사 4명을 추가로 파견했다.

기존 형사4부 검사 5명에 1차 파견 2명을 더하면 수사팀은 총 11명 규모로 꾸려졌다.

검찰 안팎에선 선거·공안 사건에 밝고 대형 수사에 능통한 검사들이 파견돼 사실상 특별수사팀 진용을 제대로 꾸렸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사팀장 역할로 검사를 지휘할 이 차장검사는 2017년 ‘국정농단 특검팀’서 문체부 블랙리스트 사건과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삼성 뇌물사건을 수사했다. 2019년 서울동부지검 부부장검사 땐 환경부 블랙리스트 사건을 맡았다.


인 부장검사는 울산시장 선거 개입 수사와 탈북어민 강제 북송 사건을 연달아 수사하고 국가정보원 파견까지 거친 공안통이다. 지난달 17일 창원지검에 파견된 평검사 2명은 이예람 특검팀 파견 경험이 있는 대검 공안연구관과 서울중앙지검서 공안 사건을 수사헸다.

검찰이 대대적으로 수사팀을 보강했지만, ‘늑장’ ‘뒷북’ 수사라는 비판은 끊이지 않고 있다.

앞서 창원지검은 해당 사건을 지난해 12월 경남선거관리위원회서 접수한 뒤 9개월 동안이나 검사가 없는 수사과에 배당했다. 여기에 지난 두 달 사이 명씨가 실질적으로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미래한국연구소와 관련된 사무실을 압수수색했으나 두 곳 모두 이미 짐을 옮겨 허탕을 치고, 압수한 명씨 휴대전화도 9시간 만에 돌려준 것이 알려지면서 ‘봐주기 수사’ 의혹도 제기됐었다.

야권을 중심으로 늑장 수사 비판이 거세게 일자 뒤늦게 수습에 나선 모양새라는 지적이다.

지방청 차장검사 이례적 파견 ‘특수팀 전용’
중앙 주도 시 정치적 이목·부담감 배로 상승

서울중앙지검이 명씨 관련 시민단체 고발 사건을 접수하고 공공수사2부에 배당한 것도 이번 파견과 무관치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명씨를 둘러싼 논란의 불길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시민단체의 고발까지 이어지는 상황서 의혹의 출발지라고 할 수 있는 창원지검 사건을 우선 처리하려는 검찰 지휘부의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늑장 수사 비판과 함께 서울중앙지검으로 사건을 옮겨야 한다는 거센 주장에 수사 신뢰 논란을 해소하기 위한 정면 돌파 측면도 강한 분위기다.


명씨와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등 주요 인물을 상대로 한 검찰 수사의 최대 관심사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등 정권 핵심으로 번질 수 있을지 여부다. 수사팀은 명씨와 주변인을 압수수색해 확보한 증거와 김 전 의원 등 관련자 진술, 윤 대통령의 기자회견 내용 등을 종합해 명씨를 상대로 제기된 정치자금법 혐의 외에 공천 개입 의혹 등 여러 갈래의 의문점을 추궁했다.

명씨는 2022년 재보궐선거 공천 대가로 김 전 의원에게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김 전 의원이 재보선서 당선된 후 2022년 8월~2023년 12월 약 9000만원을 명씨에게 건넨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김 전 의원의 회계 책임자였던 강혜경씨는 국회 국정감사 증인으로 나서 명씨가 김 전 의원에게 받은 돈이 공천 대가 성격이라고 주장했다.

또 명씨가 운영한 것으로 알려진 미래한국연구소가 지난 대선 과정서 윤 대통령을 위해 81차례 여론조사를 진행했고 그 비용 3억7000만원 대신 김 전 의원 공천을 받은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재보선 공천 발표 하루 전인 2022년 5월9일 대통령 당선인 신분이던 윤 대통령이 명씨에게 “공관위(공천관리위원회)서 나한테 들고 왔길래. ‘내가 김영선이 경선 때도 열심히 뛰었으니까 그건 김영선이 좀 해줘라’ 했는데 말이 많다”고 말하는 녹음 파일을 공개하기도 했다.

창원지검에 차장검사가 파견된 건 분명 이례적이다. 검찰 지휘부의 강한 수사 의지가 반영됐다고 해석할 수 있으나 서울중앙지검서 사건을 주도하지 않기로 정한 것에는 여전히 의문부호가 뒤따른다.

논란 일자
늑장 수사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국민적 관심이 커진 상황서 제대로 수사하겠다는 검찰의 의지가 상당하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굳이 파견이 아닌 중앙지검 차원서 특별수사팀을 꾸려도 됐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검찰 내부서도 명씨 사건을 서울중앙지검서 주도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한 검찰 간부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서 “중앙지검서 수사를 지휘했다면 김 여사를 봐줬다는 오명까지 벗을 수 있었을 것”이라며 “정치적 부담감을 고려하면서도 수사는 강하게 해야 하는 만큼 창원지검에 차장검사를 파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중앙지검 한 검사도 “공공수사2부서 시민단체 고발 사건을 배당받은 만큼 창원지검으로부터 관련 자료를 받자는 의견이 있었다. 검찰의 신뢰가 추락하고 있는 상황서 창원지검이 수사를 제대로 마무리 짓지 못하면 ‘회사 망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에서는 야권을 중심으로 창원지검과 서울중앙지검이 따로 수사를 맡는 것이 비효율적이란 지적이 거세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성재 법무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국회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종합감사에서 “중앙서 수사하는 것도 못 믿겠다고 하면서 자꾸 사건을 보내라고 하는 건 무슨 이유인가”라며 “창원지검서 인력을 보강해 충분히 수사하고 있다”고 말했다.


심우정 검찰총장도 “창원지검서 최선을 다해 수사하고 있다. 필요하면 수사 인력을 보강하겠다”면서 “창원에 주요 참고인들과 관련 증거들이 있고 창원서 오랫동안 수사해 왔으며 창원서 수사할 수 있도록 인력 등을 지원하면서 수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검찰 내부
부글부글

중앙지검 관계자는 “현재 중앙지검보다 창원지검의 수사가 빠르다. 자료를 받아와 중앙지검서 수사하면 그만큼 수사가 더 늦어진다.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상황을 지켜보고 있다”며 “엄밀히 말하면 중앙지검에 접수된 사건은 시민단체고 창원지검은 선관위 사안으로 같은 사건이라고 보기 힘들다. 사건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특별수사본부를 설치할지 말지 등을 검토해서 판단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법조계에서는 윤 대통령과 김 여사 등 윗선에 대한 수사는 불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관련해 김 여사를 무혐의 처분한 게 예고편이었다는 관측이다.

부장검사 출신 변호사는 “현직 검사 후배들에게 물어보니 ‘차라리 특검으로 논란을 해소하는 게 더 빠르다’는 분위기다. 검찰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바닥을 치고 있는 상황서 모든 부담감을 짊어질 필요가 없다. 특히 윗선 수사를 기대하지 않는 평검사가 상당하다”고 전했다.

우선 창원지검 수사팀은 명씨 측에 지방선거 공천을 위해 1억2000만원을 건넸다는 영남지역 선거 출마 희망자 이모씨 진술을 확보했다. 명씨는 지난 9일 검찰 조사 직후 취재진에게 지방선거 공천과 관련해 “내가 힘이 있으면 군수든 시의원이든 다 앉혔지, 못 앉혔지 않냐”며 관련 혐의를 부인한 바 있다.


특히 지난 11일 명씨의 구속영장을 청구하면서 지난 대선 당시 윤 대통령에게 여론조사를 제공한 혐의는 제외했다. 지방선거 예비후보들에게 공천 등을 언급하며 대선 여론조사 비용을 조달한 혐의(정치자금법 위반) 등을 적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창원지검 수사팀은 명씨의 구속영장에 ▲2022년 6·1 국회의원 재보궐선거에 당선된 김영선 전 의원으로부터 경남 창원의창 지역구에 공천을 도와주고 25차례에 걸쳐 9760여만원을 수수하고 ▲2021년 지방선거 예비후보 2명으로부터 공천 약속 등을 암시하며 미래한국연구소의 여론조사 비용 2억4000만원을 조달한 혐의 등을 적시했다.

수사팀은 윤 대통령이 연루된 대선 여론조사 제공 의혹과, 창원 산단 개입 의혹 등에 대해서는 추가 수사가 필요하고 범죄 성립 여부 등도 따져봐야 한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명에 500만원 전달? 대가성 인정되면 뇌물
내부선 “어차피 수사 불가…차라리 특검”

수사팀은 특히 ‘김건희 여사가 명태균씨에게 500만원이 든 돈봉투를 건넸다’는 복수의 진술과 관련 사진을 확보했다. 봉투에는 김 여사가 운영했던 전시 관련 업체 ‘코바나컨텐츠’ 회사명이 찍힌 것으로 알려졌다. 명씨도 김 여사로부터 돈을 받은 점을 인정했지만 대가성은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김태열 전 미래한국연구소 소장도 검찰 조사에서 같은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팀은 명씨가 김 여사로부터 현금이 든 돈봉투를 받았다고 진술한 만큼, 구체적인 수령 시점과 대가성 여부 등을 추가로 확인할 전망이다. 지난 대선 과정서 명씨가 81차례 실시한 여론조사와 연관성이 있는지, 김 여사를 통해 명씨에게 돈이 전달된 것을 윤 대통령이 인지하고 있었는지도 규명해야 할 부분이다.

수사팀 관계자는 “김 전 의원 등 주요 피의자 조사를 마쳤고 명씨의 텔레그램, 문자메시지 등을 복원해 분석하며 범죄 사실을 정리 중”이라며 “강씨가 제출한 수천개의 녹음파일에 대해선 녹취 내용 분석을 진행 중이다. 불법 여론조사 및 국민의힘 경선 개입과 관련한 사건은 중앙지검서 다루고 있어 이송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민주당은 지난 11일 김 여사에게 제기된 각종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김건희 여사 특검법’과 관련, 수사 대상을 줄이고 제3자에게 특검 추천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아 수정안을 제출하기로 했다.

김 여사 특검 촉구 1000만인 서명운동 등 대국민 여론전에도 나설 계획이다. 원내외 압박을 통해 국민의힘 이탈표를 노리겠다는 포석이다. 반면 민주당이 이재명 대표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1심 선고를 앞두고 단일대오를 유지 중인 국민의힘은 수용 불가 입장을 거듭 밝혔다.

민주당 한민수 대변인은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마친 뒤 “수사 대상을 당초 13개서 도이치모터스 주가조작 사건과 명태균씨 등 총선·공천 개입 의혹 등만으로 대폭 축소하는 수정안을 준비하겠다”고 밝혔다.

특검 추천 방식도 국민의힘 한동훈 대표가 주장하던 제3자 추천 방식을 수용하겠다고 했다. 추천 방식을 확정하진 않았지만 네 번째 채상병 특검법 방식을 준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장이 추천하면 야당이 특검 후보를 고르되, 적정한 후보가 추천될 때까지 야당이 거부할 수 있는 방식이다. 특검 관철을 위해 나름의 협상안을 제시한 셈이다.

수뇌부는
신중 모드

국민의힘 한 대표는 민주당 수정안에 대해 “특별히 제가 더 말씀드릴 것이 없다”며 사실상 거부 의사를 밝혔다. 추경호 원내대표는 “민주당이 일방적으로 강행 처리할 경우, 즉시 대통령의 재의요구권 행사를 강력히 건의할 계획임을 분명히 밝혀둔다”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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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여당발 검찰과의 전쟁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검찰의 대장동 항소 포기 후폭풍이 거세다. 더불어민주당과 검찰의 시각이 크게 엇갈리면서 서로를 향해 날을 겨누는 형국이다. 검찰청은 내년 9월 폐지될 시한부 운명이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검찰개혁’을 필두로 이참에 검찰의 뿌리를 뽑겠다는 방침이다. 국민의힘을 등에 업고 버티기에 나선 검찰의 반발 또한 만만치 않아 당분간 양측 간의 힘겨루기가 이어질 전망이다. 지난 7일 서울중앙지검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항소 시한을 넘기면서 논란에 불이 붙었다. 서울중앙지검이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 혐의로 기소된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을 비롯해 ▲남욱 변호사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정민용 변호사 ▲정영학 회계사 등 대장동 일당에 대한 1심 판결에 항소하지 않은 것이다. 꺾이거나 되치거나 검찰이 항소를 포기하면서 ‘불이익변경 금지 원칙’에 따라 피고인에게 더 무거운 형을 선고할 수 없게 됐다. 대장동 개발 비리로 발생한 범죄수익의 국고 환수 규모가 축소될 것이란 해석에도 힘이 실린다. 화살은 곧바로 이재명 대통령에게로 향했다. 이 대통령은 대장동 사건에서 이해충돌방지법 위반 혐의 등을 받는데, 이미 대장동 민간업자 재판에서 무죄가 나온 만큼 항소 포기로 인해 추가로 다툴 여지를 차단했다는 게 국민의힘의 설명이다. 여기에 대통령실이 항소 포기에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하면서 ‘이재명 면죄부’라고도 주장했다. 국민의힘 곽규택 대변인은 “대통령실 민정수석실 비서관 4명 중 3명, 법무부 장관 정책보좌관, 법제처장, 국정원 기조실장까지 모두 이 대통령의 변호인 출신”이라며 “이 대통령과 사법연수원 동기인 정성호 법무부 장관은 대장동 사건 주요 피고인 정진상, 김용, 이화영 등을 특별 면회하면서 ‘검찰은 증거가 없다’는 발언으로 회유를 시도한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보수 성향인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 모임’ 역시 “국가의 유례없는 사법 정의 포기 사태는 이재명정부의 책임”이라며 “공소 사실의 핵심에 무죄 선고가 난 사건에 검찰이 항소를 포기한 전례를 찾기 어렵다. 대통령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진 것은 부인하지 못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정부 출범 이후 대검찰청 차장검사로 승진한 노만석 검찰총장을 겨냥해서는 책임론이 불거졌다. 법조계에 따르면 항소 시한을 앞두고 서울중앙지검은 대장동 일동에 대해 일부 무죄가 선고되는 등 다툼의 여지가 있는 1심 판결에 대해 “관행대로 항소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지만, 이를 전해 들은 대검 수뇌부가 받아들이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팔이 안으로 굽은 게 아니냐는 지적이다. 이에 노 대행은 지난 9일 “대장동 사건은 일선 검찰청의 보고를 받고 통상의 중요 사건의 경우처럼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후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대행인 저의 책임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의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정성호 법무부 장관 역시 대장동 일동에 대해 검찰의 구형량보다 높은 형량이 선고된 만큼 항소 포기가 ‘적절한 판단’이었다는 점을 강조하며 “항소 포기 지시는 없었다”고 일축했다. 화약고에 불붙인 ‘항소 포기’ 후폭풍 이재명·노만석·정성호 몽땅 도마 위로 정 장관은 지난 12일 국회에서 열린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 회의에 출석해 ‘(이진수) 법무부 차관에게 대장동 사건 관련으로 어떤 지시를 했느냐’는 국민의힘 배준영 의원의 질문에 “노 검찰총장 직무대행에게 지휘권을 행사할 수도 있으니 항소를 알아서 포기하라는 지시를 한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어 정 장관은 총 3번 정도 대장동 사건에 관해 이야기했다고 언급하며 “(두 번째인) 11월6일 목요일에는 국회에서 예결위 종합질의가 있어 국회에 왔는데, 예결위 끝나고 대검에서 항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한 의견을 들었다”며 “당시 ‘중형이 선고됐는데 신중한 판단을 해야 하지 않는가’란 정도의 이야기만 하고 돌아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다음 날인 11월7일에도 마찬가지”라며 “저녁에 예결위가 잠시 휴정돼 검찰에서 항소할 것 같다는 구두 보고를 식사 중에 받았고, 그날 저녁 예결위가 끝난 후 최종적으로 항고하지 않았다는 보고를 받았다”고 부연했다.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대목을 놓고 국민의힘은 “신중한 검토(판단)가 곧 항소 포기인지 철저히 조사해야 한다”며 법무부가 사실상 외압을 행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신중하게 판단하라는 이 8글자에 모든 것이 함축적으로 들어가 있다”며 “법무부 장관이 개인적인 견해임을 전제로 하며 검찰에 지시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대장동 사건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일선 검사를 중심으로 반발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됐다. 김영석 대검찰청 감찰1과 검사는 검찰 내부망 이프로스를 통해 “검찰 역사상 일부 무죄가 선고되고 엄청난 금액의 추징이 선고되지 않은 사건에서 항소 포기를 한 전례가 있었나”라며 이번 결정으로 대장동 일당 등 민간업자에게 수천억원 상당의 범죄수익이 돌아간 점을 꼬집었다. 대장동 사건의 수사·공판팀을 이끌었던 강백신 대구고검 검사도 “항소 포기로 남욱·정영학을 상대로는 범죄수익을 단 한 푼도 환수할 수 없게 됐고, 김만배를 상대로는 당초 예상 금액의 1/10에 불과한 금액만 추징 선고가 이뤄졌음에도 이를 묵과할 수밖에 없게 됐다”고 지적했다. 기막힌 타이밍 검찰 안팎에서 책임론이 확산하자 결국 노 대행은 항소 포기 논란이 불거진 지 닷새 만에 사의를 표명했다. 그러자 일선 검사들은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린다’는 제목의 글을 통해 항소 포기 과정에 대한 상세 설명을 요구하는 입장문을 냈다. 해당 입장문은 박재억 수원지검장을 비롯해 ▲박현준 서울북부지검장 ▲박영빈 인천지검장 ▲박현철 광주지검장▲임승철 서울서부지검장 ▲김창진 부산지검장 등 검사장 18명 명의로 작성됐다. 이들은 “서울중앙지검장은 명백히 항소 의견이었지만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존중해 최종적으로 공판팀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을 상대로 항소 의견을 관철하지 못하고 책임지고 사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반면 검찰총장 권한대행이 어제 배포한 입장문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의견을 보고받고 법무부의 의견도 참고한 뒤 해당 판결의 취지 및 내용, 항소 기준, 사건의 경과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항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 타당하다고 판단했다”며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책임 하에 서울중앙지검장과 협의를 거쳐 숙고 끝에 항소 포기를 지시했다는 것”이라고 짚었다. ▲하담미 수원지검 안양지청장 ▲최행관 부산지검 동부지청장 ▲신동원 대구지검 서부지청장 등 8개 대형 지청을 이끄는 지청장들도 집단 성명을 냈다. 이들은 “이번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 지시는 그 결정에 이른 경위가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다면 검찰이 지켜야 할 가치, 검찰의 존재 이유에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기게 될 것”이라며 “그간 중앙지검장과 검찰총장 권한대행의 입장문, 법무부 장관의 설명만으로는 항소를 포기한 구체적 경위가 설명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법적·행정적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정치 검사들의 반란을 분쇄하겠다”며 검찰의 집단 반발을 ‘항명’이라고 규정하고 이에 대한 징계를 예고했다. 현재 일반 공무원은 6단계 징계 처분(파면·해임·강등·정직·감봉·견책)이 가능하지만, 검사는 파면에 해당하는 징계 규정이 없다. 검사에 대한 징계는 검사징계법에 따라 이뤄지는데, 이를 ‘검사 특혜법’이라고 지적하며 폐지하겠다는 설명이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는 “정치 검사들의 반란에 철저하게 책임을 묻겠다”며 사실상 검찰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김 원내대표는 “정 법무부 장관께 강력히 요청한다. 항명 검사장 전원을 즉시 보직 해임하고 이들이 의원면직하지 못하게 징계 절차를 바로 개시하라”며 “항명에 가담한 지청장과 일반 검사들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이후 김 원내대표가 검사징계법 폐지 법률안·검찰청법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제출하면서 사실상 검찰 징계는 당론으로 추진될 전망이다. 항소 포기 논란 이후 박재억 수원지검장에 이어 송강 광주고검장이 연달아 사의를 표명했지만 민주당은 “사표를 수리하지 말고 징계 절차를 밟아야 한다”며 퇴로를 막았다. 항명? 투쟁? 법무부 내부에서 집단행동에 나선 일부 검사장을 대상으로 평검사 보직이동을 하거나 국가공무원법 위반 등으로 형사 처벌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지면서 또 다른 문제가 불거졌다. 검찰 측에서는 “보복용 강등”이라는 거센 반발이 나오지만 법무부는 “검사장은 직급이 아닌 보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강등·징계로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민주당은 검사장의 집단행동을 비판하며 징계의 타당성을 주장했지만, 일선 검사들은 항소 포기 판단 경위에 대해 추가 설명을 요청한 것이 어떻게 항명이냐며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상황이다. 그동안 민주당 의원들이 앞다퉈 일선 검사장을 향해 “빨리 나가라”고 윽박지르던 것과 달리 최근 지도부는 숨 고르기에 돌입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이 계속해서 이정부와 대장동을 엮어 공격하는가 하면, 이 대통령의 UAE(아랍에미리트) 순방 성과가 묻힐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톤 조절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와 김병기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이 순방을 떠난 17일부터 이틀간 공개 석상에서 검사 항명, 징계 등 관련 현안에 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다. 민주당 전현희 최고위원 등 일부 최고위원이 내란전담재판부 도입을 주장했으나 당은 “지도부 차원의 의견은 아니”라며 거리를 뒀다. 정 법무부 장관 역시 지난 18일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검사장 징계 검토 관련 질문에 “어떤 것이 좋은 방법인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가장 중요한 건 국민을 위해 법무부나 검찰이 안정되는 것”이라며 신중한 자세를 택했다. 낮은 볼륨을 유지하는 지도부와 달리 의원 개개인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한 라디오를 통해 정 법무부 장관의 ‘검찰조직 안정’ 발언에 대한 질문에 “아무 일 없었던 듯이 넘어가는 것이 조직의 안정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방법은 아니”라고 답했다. 이어 “정 법무부 장관은 법무부와 검찰 전체를 총괄하는 수장이기 때문에 고민이 있으신 것 같다”면서도 “다만 중요한 것은 원칙”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현재 민주당이 내세우는 원칙은 항명 검사에 대한 징계로, 그 원칙을 지키는 것이 국민 여론이라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몰아붙이던 지도부 잠시 숨 고르기 이제는 각개전투…검사들도 ‘부글’ 민주당이 다수 석을 차지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서는 ‘집단 항명 검사장 18인’ 전원을 고발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항소 포기 결정에 반발하는 검사장 18명을 겨냥해 “헌정 질서의 근본인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과 검찰조직의 지휘 감독체계를 정면으로 무너뜨린 사건”이라고 비판하며 법적 조치에 나선 것이다. 지난 19일 법사위 여당 간사인 김용민 의원은 조국혁신당·무소속 의원과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이 밝히며 “검찰의 집단 항명은 정치적 집단행동으로 헌정 질서를 훼손하는 중대 범죄”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들의 행동은 단순한 의견 개진이 아니었으며 법이 명백히 금지한 공무의 집단행위, 즉 집단적 항명”이라고 규정했다. 이어 “피고발인 18명은 모두 각 검찰청을 대표하는 검사장급 고위 공무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성이 누구보다 강하게 요구되는 위치에 있다”며 “그런데 이들은 서로 합의해 공동성명을 작성하고 이를 동시에 내부망과 언론에 공개했다. 이는 다수가 결집해 실력으로 주장을 관철하려는 집단적 압력 행위”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압박이 거세지자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의 임기가 끝난 뒤 검사들이 반격에 나설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권력이 교체됨에 따라 검사의 태도 역시 손바닥 뒤집듯 바뀌고, 만일 보수 세력에게 정권이 넘어갈 경우 검사의 날이 다시 이 대통령을 향할 것이란 점에서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내년 10월 해체 예정인 검찰청이지만 막강한 권력을 지니던 시절의 관행을 버리지 못한다면 이들을 중심으로 정치 검찰의 모습을 한 또 다른 집단이 탄생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대통령실은 “검사 인사권은 법무부에 있다”며 이번 사안에 직접 개입하지 않겠다는 태도를 유지하고 있다. 논란의 중심으로부터 최대한 거리를 유지하며 대통령실이 직접적으로 관여하지 않았다는 점을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한 민주당 관계자 역시 “‘대통령실 외압’은 궁지에 몰린 국민의힘의 프레임”이라며 “만약 5년 뒤에 검찰이 반기를 들면 그때는 (이 대통령의 거취를) 국민 여론에 맡기면 된다. 지난 몇 년간 수십번의 압수수색과 조사가 이뤄졌고, 그 결과를 전부 국민이 지켜봤다”고 설명했다. 피바람 과도기 이 모든 과정을 놓고 최요한 정치 평론가는 “과도기”라고 설명했다. 최 평론가는 <일요시사>를 통해 “검찰이 하나의 권력으로 등장해 민주주의를 유린했다. 그 대상을 개혁하는 일은 굉장히 어려운 문제고, 이정부는 그걸 시스템으로 헤쳐나가는 중”이라고 말했다. 이어 “개혁은 혁명보다 훨씬 어려운 일이다. 혁명은 싹을 자르면 되지만 그건 민주주의가 아니”라며 “검사 징계, 검찰개혁을 놓고 같은 진보라 하더라도 결이 다르지 않나. 다양한 논의와 의견을 두들겨 맞춰서 하나의 안을 만드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개혁안은 보수도 일정 정도 동의를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시스템 개혁이라는 건 단칼에 두부처럼 잘리는 게 아닐뿐더러 이정부가 끝날 때까지 (개혁을) 시도하는, 많은 시간이 걸리는 일일 수도 있다”고 부연했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