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사태’ 결정적 장면 셋

시작은 내부 갈등 끝은 기업이 폭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시작은 분명 하이브였다. 하지만 나락에 떨어지고 있는 것도 하이브다. 연예기획사 최초로 대기업에 지정되는 등 업계 1위로 군림하던 상황이라 추락의 속도가 더 빠른 모양새다. 불과 6개월 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요시사>가 ‘하이브 사태’의 결정적 장면을 꼽았다.

내부서 시작된 갈등이 외부로 분출됐다. 여론이 움직이고 대중의 뭇매가 이어졌다. 정치권이 나서자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그사이 연예기획사 하이브는 이른바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오랜 시간 모래 위에 성을 쌓아온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민낯도 드러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이브가 케이팝에 독물을 풀었다’는 말이 돌았다.

업계 1위
나락 갔다

시작은 민희진 당시 어도어 대표이사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었다. 하이브는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해 시행했다. 국·내외서 큰 성공을 거둔 방탄소년단(BTS)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리스크를 낮추겠다는 의도였다. 모회사인 하이브는 산하에 레이블을 인수하거나 편입하는 식으로 체제를 완성했다. 

각 레이블은 소속 아티스트의 활동을 전담하고 하이브는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멀티레이블은 ‘독립적 운영’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다. 이 같은 방식은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실제 BTS의 ‘군백기(군대+공백기)’에도 하이브의 매출은 성장세를 보였다. 

어도어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 중 하나로 그룹 뉴진스가 소속돼있다. 어도어의 지분은 하이브가 80%, 민 전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20%(민 전 대표 18%)를 보유하고 있다. 민 전 대표는 과거 SM엔터테인먼트서 샤이니, 에프엑스 등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와 브랜드를 맡은 제작자로, 2019년 하이브에 합류했고 2021년 어도어 대표가 됐다. 

지난 4월 하이브는 민 전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레이블의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내부 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민 전 대표 측은 하이브의 감사는 내부고발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인 빌리프랩의 소속 가수 아일릿이 뉴진스를 카피했다고 주장했다.

아일릿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프로듀싱을 맡은 걸그룹이다. 민 전 대표 측의 주장으로 전선이 다른 레이블로까지 확대됐다. 

대형 연예기획사와 산하 레이블 대표 간의 갈등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궜다. 폭로와 반박이 나올 때마다 여론이 휘청였고 온갖 의혹이 난무했다. 민 전 대표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공개됐고 이 과정서 한 무속인의 존재가 드러났다. 민 전 대표가 자신의 중대사를 무속인과 논의했다는 의혹이 퍼졌다.

4월22일부터 4월25일까지 불과 나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때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졌다. 민 전 대표는 4월25일 법무법인 세종 소속 변호사 2명과 함께 한국컨퍼런스센터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가 자청한 회견이었다. 파란 모자에 녹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민 전 대표는 하이브의 주장에 ‘억울하다’는 입장을 드러내며 반박했다.

민희진에 대한 감사 나비효과
국감에서 다뤄지며 뭇매 맞아

민 전 대표는 중간중간 욕설을 섞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을 ‘날것’ 그대로 쏟아냈다. 2시간 남짓한 기자회견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여론이 급격하게 민 전 대표 쪽으로 기울었고 그가 착용한 모자와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엄청난 화제로 기록됐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대목이다. 

이후 둘의 갈등은 법정 공방으로도 비화했다. 첫판은 민 전 대표의 판정승이었다. 민 전 대표는 자신을 해임하기 위한 어도어 주주총회서 하이브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하이브가 민 대표의 해임 사유를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며 인용 결정을 내렸다. 

또 하이브가 주장했던 민 전 대표의 ‘경영권 찬탈’ 의혹에 대해 “민 대표가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압박해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팔게 만들어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민 전 대표가 어도어를 독립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런 방법의 모색 단계를 넘어 구체적 실행 단계로 나아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민 대표의 행위가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 전 대표는 가처분 승소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어도어 대표로서 계속 일하고 싶다. 뉴진스와 함께 계획한 것들을 하고 싶다. 그게 하이브에도 이익이다. 그만 싸우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며 화해를 제안했다. 하지만 하이브는 앞서 열린 임시주총서 민 전 대표 측 이사 2명을 해임하고 3명을 새로운 이사로 선임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여기에 아일릿의 레이블 빌리프랩서 민 전 대표가 주장한 뉴진스 카피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사건이 확대됐다. 빌리프랩은 민 전 대표에 대한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레이블 간의 다툼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때부터 팬덤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소속 가수가 직접적인 공격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어도어와 또 다른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쏘스뮤직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쏘스뮤직에는 그룹 르세라핌이 소속돼있다. 한 언론 매체를 통해 어도어 측이 쏘스뮤직의 연습생을 빼앗아 뉴진스를 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레이블 간의 반박, 재반박이 거듭됐다. 또 레이블서 직접 민 전 대표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진흙탕 싸움이 이어졌다. 

기자회견
첫 분기점

‘민-방(민희진-방시혁) 대전’ ‘민-합(민희진-하이브) 대전’은 8~9월 분기점을 맞았다. 역시 선공격은 하이브의 몫이었다. 지난 8월27일 어도어는 “김주영 어도어 사내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며 “김 신임 대표이사는 다양한 업계서 경험을 쌓은 인사관리 전문가로서 어도어의 조직 안정화와 내부 정비를 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 5월 어도어 사내이사가 교체될 때 하이브 쪽 추천으로 들어간 인사다. 

민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는 해임됐지만 사내이사직은 유지했다. 어도어는 민 전 대표가 뉴진스의 프로듀싱 업무도 그대로 맡게 된다고 밝혔다. 제작과 경영을 분리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어도어만 예외적으로 제작과 경영을 모두 총괄해 왔다”고 강조했다. 민 전 대표의 권한을 제작으로만 축소하겠다는 뜻이었다.

민 전 대표는 “일방적인 해임”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또 주주 간 계약의 중대한 위반이라고도 했다. 민 전 대표가 뉴진스의 프로듀싱을 맡는 문제도 일방적인 통보라고 주장했다. 어도어의 선공격과 민 전 대표의 반박으로 공은 또다시 법정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등장했다.

뉴진스가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이다. 지난 4월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부터 지난 9월까지 뉴진스가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다. 시상식 등에서 민 전 대표와의 유대감을 표현하거나 뉴진스 멤버의 부모가 목소리를 낸 경우는 있었지만 직접 입장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9월11일 뉴진스는 유튜브 계정을 열고 하이브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토로했다. 이들은 “라이브를 결정한 이유는 (민희진)대표님의 해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스태프들이)부당한 요구와 압박 속에서 마음고생하는 것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저희 다섯명의 미래가 걱정돼 용기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또 버니즈(뉴진스의 팬덤명)까지 나서서 도와주고 있는데 우리만 숨어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방송 배경을 밝혔다. 

뉴진스는 “경영과 프로듀싱이 통합된 원래 어도어를 저희는 바란다. 이것이 하이브와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며 “오는 25일까지 어도어를 원래대로 복구시키는 현명한 결정을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날짜를 못 박았다.

당시 뉴진스가 민 전 대표를 복귀시키라면서 특정 날짜를 언급하는 등 ‘최후통첩’에 가까운 발언을 하면서 하이브와 법정 공방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라이브 방송
변곡점 됐다

특히 이날 방송서 뉴진스 멤버 하니가 “(하이브 사옥서)혼자 복도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다른 팀원들이랑 매니저가 지나갔다. 서로 인사했는데, 그분들이 나오셨을 때 그쪽 매니저가 ‘무시해’라고 했다. 제 앞에서. 다 들리고 보이는데 ‘무시해’라고 했다. 제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어이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부분이 ‘직장 내 괴롭힘’ 의혹으로 번졌다.

뉴진스가 전면에 나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의 파급력은 컸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 민 전 대표+뉴진스와 하이브 간의 갈등으로 재규정된 순간이었다. 방송 자체는 3시간 만에 삭제됐지만 뉴진스의 발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던 정치권이 하니의 주장을 문제 삼으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하니를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하이브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에 대해 파헤치겠다는 취지였다. 동시에 인사책임자인 김주영 어도어 대표이사의 증인 출석도 요구했다. 아이돌 따돌림,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관련해 하니에게 묻고 김 대표에게 대응에 대해 질문하겠다는 것이다. 

하니가 국감에 출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화제가 일었다. 이날 국감에서는 하니와 김 대표 간의 공방이 벌어졌다. 하니는 다른 레이블 소속 매니저로부터 ‘무시해’라는 발언을 들었고 하이브가 CCTV를 삭제하는 등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김 대표는 서로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라고 맞섰다.

하니의 국감 출석으로 아티스트의 근로자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아티스트는 현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태다.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정 의원은 “(아티스트가)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니까 대응할 수가 없다고 하면 이 문제는 영원히 도돌이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하이브는 아이돌 굿즈 관련한 문제로도 국감서 지적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의혹이 쟁점이 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하이브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이브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은 거셌다.

이 과정서 하이브의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하이브에서는 ‘모니터링’ 문서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업계 동향 보고서’다.

해당 문건의 존재와 내용이 공개되면서 하이브는 바닥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다. 한때 케이팝을 선도한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연예기획사가 타사 아이돌의 외모를 품평하고 방송 출연 모습을 일일이 꼬투리 잡아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팬덤은 물론 대중도 경악하고 있다.

모니터링 문건 대중 반응 최악
뒤에 숨어있는 방시혁 나와야?

엔터 업계서 오랜 시간 일했다는 관계자들도 ‘이런 사례는 보지 못했다’며 손사래를 칠 정도다.

해당 문건에 대한 하이브의 대응은 엄청난 역풍을 불렀다. 앞서 지난달 24일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서 ‘위클리 음악산업 리포트’라는 이름의 문건을 공개했다. 민 의원이 공개한 문건 내용이 파장을 일으키자 하이브는 국감 도중에 입장문을 내고 대응에 나섰다.

문제는 입장문 내용이 ‘적반하장’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당시 하이브는 “국감서 공개된 당사의 모니터링 보고서는 팬덤 및 업계의 다양한 반응과 여론을 취합한 문서”라며 “업계 동향과 이슈를 내부 소수 인원에게 참고용으로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발췌해 작성됐으며 하이브의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보고서에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들, 팬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포함돼있다”며 “보고서 중 일부 자극적인 내용들만 짜깁기해 마치 하이브가 아티스트를 비판한 자료를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외부에 유출한 세력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이브의 입장문에 국회의원들은 “국회가 만만하냐”며 불쾌감을 표했다. 국감 도중에 입장문을 발표한 것도 모자라 제보자를 색출하겠다는 하이브의 태도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결국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있던 김태호 하이브 최고운영책임자 겸 빌리프랩 대표는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회발로 시작된 문건의 파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수천장에 달하는 문건 중 극히 일부만 공개된 상황이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 케이팝 팬들까지 반응하고 있다. 문건을 만든 사람, 본 사람, 공유한 사람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고, 민 전 대표가 이미 지난 4월 첫 번째 기자회견을 했을 때 언급했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대중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하이브는 지난달 29일 이재상 최고경영자(CEO) 명의로 입장문을 게재했다. 문건이 처음 공개된 지 닷새 만에 나온 사과문이다. 이 CEO는 “당사의 모니터링 문서에 대해 아티스트분들, 업계 관계자분들, 그리고 팬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또 부적절한 내용의 문건을 작성한 점을 인정하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하이브의 사과문을 두고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언론을 통해 추가 문건이 공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일부 하이브 소속 가수가 SNS를 통해 말을 얹으면서 사태가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사이 하이브의 이미지는 물론 소속 가수의 호감도 또한 수직 낙하하는 중이다. 

정치권발
카운터펀치

결국 방시혁 의장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방 의장은 BJ 과즙세연과의 LA 목격담 이후 두문불출 중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전면에 나선 적이 없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은 계속해서 ‘위’를 향하고 있다. 결국 하이브를 총괄 지배하는 사람은 방 의장이기 때문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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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대마불사’ 국힘 생존 방정식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법원이 주호영 국회부의장의 대구시장 경선 컷오프 관련 가처분 신청을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항고할 뜻을 내비쳤다. 주 부의장의 강경 대응은 저조한 국민의힘 지지율과 맞물려 혼란상을 더욱 극적으로 비추고 있다. 과연 국민의힘이란 ‘대마’는 ‘불사’의 존재일까? 주호영 국회부의장이 국민의힘 대구시장 경선에서 컷오프된 것에 반발해 지난달 26일 법원에 가처분을 신청했다.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수석부장판사 권성수)는 지난 3일 이를 기각했다. 그러자 주 부의장은 곧바로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법원 결정에 반발했다. 법원 결정 바로 반발 주 부의장은 “저는 그동안 이번 컷오프가 절차·내용 모두 중대한 문제가 있다고 지적해 왔다”며 “법원의 판단과 별개로 이번 공천 과정이 과연 당원·시민의 눈높이에 맞는 공정하고 민주적인 절차였는지는 여전히 엄중하게 따져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주 부의장은 지난 6일 항고를 제기했다. 이어 지난 8일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항고심 판단을 끝까지 지켜본 후 제 거취에 대한 최종 판단을 내리겠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선 일각에서 제기했던 무소속 출마설을 일단 유보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이어 주 부의장은 “항고심 판단을 기다린다고 해서 이번 공천 난맥상과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 체제의 책임을 덮고 가겠단 뜻은 결코 아니”라며 “이런 공천 구조를 만든 세력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공천은 충성의 대가나 숙청의 도구가 아닌, 오직 국민 앞에 가장 경쟁력 있고 책임 있는 후보를 세우는 과정”이라고 주장하는 등 자신을 컷오프한 것을 ‘숙청’이라고 암시했다.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강한 의지를 드러낸 것에 대해선 여러 해석이 나오고 있다. 6선인 주 부의장은 대구 수성에서만 국회의원을 지냈다. 대구 수성을에서는 4선을 지냈고, 수성갑에선 재선에 성공했다. 이 중 4선을 했던 지난 2016년 총선 수성을 선거에선 친박(친 박근혜)계 주도로 공천을 받지 못해 무소속 출마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유 있게 이겼다. 문제는 주 부의장이 당내 최다선인 6선 의원 겸 국회부의장이라는 것으로부터 비롯된다. 명예가 곧 실권을 보장하진 않는다. 아울러 주 부의장이 차기 총선에서도 같은 지역구에 출마해 7선에 도전하면, 이에 대한 비판이 제기될 수도 있다. 같은 6선인 국민의힘 조경태 의원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조정식 의원은 각각 부산 사하을·경기 시흥을을 지역구로 두고 있다. 부산은 이미 격전지가 된 데다 조 의원은 민주당계 정당과 국민의힘 소속으로 각각 3선 했고, 경기 시흥을은 수도권이다. 국민의힘의 안정된 텃밭으로 분류되는 대구 수성을에서 7선에 도전하는 것과는 상황이 다르다. 설령 7선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오는 6월 지방선거에서도 참패 가능성이 제기되는 국민의힘이 2년 후 총선에서 다수당이 된다는 보장도, 국회의장이 되리라는 보장도 하기 어렵다. 오는 2028년 총선까지 연일 떠들썩하게 이어지는 계파 갈등을 어느 정도 안정시킨 후 대안 야당으로 발돋움하면서 이재명정부가 실정으로 지지율이 폭락하는 상황이 겹쳐야 승리를 노려볼 수 있다. 주 부의장이 국회의장에 도전하는 것도 현실적으로는 가능성이 희박하다. 불확실한 국회의장…‘텃밭 7선’ 대신 대구? 연이은 공천 가처분 세례 속 서울 지지율 13% 따라서 주 부의장이 대구시장 출마에 집념을 불태우는 것은 필연이다. 대선 패배 후 대구시장에 출마해 당선됐던 홍준표 전 대구시장의 전례도 있다. 주 부의장으로선 “나라고 출마 하지 말라는 법이 어디에 있느냐”고 판단해도 무리가 아니란 분석이 있다. 대구시장으로서 임기를 마친 후 대권에 도전하거나 당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는 그림을 그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가능성은 일명 ‘주한 연대설’로 통하는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와의 연대설 때문에 불거졌다. 이는 국민의힘 이정현 전 공천관리위원장이 주 부의장을 컷오프한 직후 불거졌다. “주 부의장이 무소속으로 대구시장에 출마해 대구 수성갑에서 재보궐선거가 진행되면, 한 전 대표가 여기에 출마하는 형식으로 연대한다”는 설이다. 한 전 대표 측으로선 손해 볼 게 없다. 한 전 대표는 지난달 25일 채널A <정치시그널>에 출연해 “주 부의장은 보수 재건이 필요하다고 공감하면서 나서겠다고 했다”며 “우린 이미 연대하고 있는 게 아니냐”고 주장했다. 반면 주 부의장은 신중한 반응을 내비쳤다. 그는 지난달 26일 기자들을 만나던 중 주한 연대설 관련 질문을 받자 “제 코가 석 자인데 딴 생각할 여지가 있겠느냐”고 답변했다. 다만 무소속 대구시장 출마 가능성에 대해선 “모든 경우의 수에 대해 준비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따라서 주한 연대설 성립 가능성 자체를 배제한 것은 아니라는 해석이 나왔다. 주 부의장의 항고 제기는 국민의힘의 치명적 문제 하나를 외부로 노출했다. 국민의힘에선 당내 처분에 대해 연이어 법원으로 달려가는 흐름이 이어지고 있다. 가깝게는 주 부의장과 김영환 충북도지사가 컷오프에 대한 가처분을 신청했다. 김 지사는 주 부의장과 달리 가처분이 인용돼 경선에 참여할 수 있게 됐다. 멀게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배현진 의원에 대해 각각 결정했던 제명·당원권 정지 1년 징계의 효력도 법원에서 정지됐다. 4건의 가처분 모두 서울남부지법 민사합의51부에서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 부의장 건에 대해서만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줬다. 장 대표는 김 지사가 신청한 가처분이 인용된 다음 날인 지난 1일 기자들과 만나 “법원이 정치에 너무 깊숙이 개입하고 있다”며 “재판장이 국민의힘에 와서 공천관리위원장과 윤리위원장을 하면 될 것 같다”고 비판했다.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해선 “정치의 사법화가 심각할 정도로 진행된 것 같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공천 관련 갈등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승리 가능성을 어둡게 하는 신호들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한국갤럽은 지난달 31일부터 지난 2일까지 전국 만 18세 이상 1001명을 상대로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직접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8%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8%로 집계됐다. 제 코가 석 잔데… 서울에선 민주당 지지율이 5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13%로 집계됐다. 부산·울산·경남에서도 민주당 지지율은 42%로, 국민의힘의 지지율은 27%로 집계됐다(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에서 확인 바람). 영원한 격전지 서울에서도 양당의 지지율 격차가 크게 벌어지는 여론조사 결과 수치가 공개되자, 국민의힘의 현 상황에 대한 지적이 날로 거세게 일어나고 있다. <조선일보>는 지난 4일 자 사설을 통해 “국민의힘은 지금 수도권에서 후보를 찾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며 “현행법상 15% 이상 득표해야 선거 비용을 전액 보전받을 수 있는데 그에 미치지 못할까 걱정한다는 것”이라며 현실을 짚었다. 이어 “말로만 ‘윤석열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선언했을 뿐 실제로는 반대로 하고 있다”며 “공천 혼란에 대해서도 가처분을 인용한 법원 탓만 할 뿐, 어떻게 수습하고 책임질지 방향을 제시하지 않고 있다”는 등 장 대표를 강하게 비판했다. <조선일보>의 주장대로라면, 수습·책임을 맡을 당 대표는 보이지 않는 셈이다. 해당 매체는 “어렵게 나선 후보들은 국민의힘 상징색인 빨간색을 포기하고 흰색 점퍼를 입고 다닌다”며 “인구가 1300만명에 달하고 국회의원 의석수도 가장 많은 경기도에선 지사 출마자를 구하지 못해 공천을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는 현실도 짚었다. <조선일보>가 짚은 국민의힘의 현실은 신체를 통제할 두뇌 없이 거대한 군집을 이룬 채 각자의 역할을 맡은 군집 생물에 비유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관해파리를 들 수 있다. 관해파리는 겉으로 볼 땐 덩치 큰 해파리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의 역할을 맡은 독립 개체들이 모인 군집이다. 이 개체들은 먹이 섭취·이동·번식 등 각각의 역할만을 담당한다. 각각의 개체들은 생존을 위해 서로 연결돼있지만, 이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뇌는 없다. 개체 중 누군가가 제 역할을 못하면 모두 죽는다. 단세포생물인 점균류도 먹이를 찾을 때, 각자의 세포가 알아서 효율적인 길을 찾는다. 이를 통제할 뇌는 없지만, 화학적 신호를 주고받으면서 최적의 경로를 결정한다. 그런데 잘못된 경로를 찾으면 방향을 틀 능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남는 것은 군집 전체가 굶어 죽는 일이다. 페로몬을 통해 신호를 주고받는 군대개미 집단도 선봉에 선 개미가 길을 잃으면 모든 개미가 원을 그리다가 지쳐 죽는다. 제 역할 못하면… 이탈리아의 정치학자 조반니 사르토리는 원심적 경쟁 이론을 주장했다. 보통의 민주주의 국가에선 정당이 중도층의 표심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강경한 여당과 무책임한 야당이 양립할 땐 정당이 중도층을 설득하기보다 진영 결집에 따른 조직표 구성에 몰두한다. 이런 구도에선 중도층이 정치에서 배제되고, 정치적 대화도 단절된다. 이런 상황에선 후보자들은 당의 승리와 중도 확장을 포기하고, 강성 핵심 지지층의 지지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중도층이 정치에 냉담해지면서 설득 가능 대상으로 강성 핵심 지지층만 남기 때문이다. 가성비 높은 선택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후보자들이 지도부를 거부하면서 강성 핵심 지지층에게만 구애하는 각자도생에 몰두한다. 이는 결국 자신들만의 세계에 빠지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국민의힘의 지방선거 준비 과정에서 서울시장·경기도지사 경선에선 구인난에 빠졌지만, 대구시장·경북도지사 경선은 열기가 과도한 것도 이와 비슷하다. 특히 대구시장 경선엔 국회부의장·경제부총리·원내대표 등 당정의 핵심을 지낸 인사들이 모두 출마했기 때문에 더욱 눈에 띄고 있다. 미국의 정치학자 리처드 카츠와 아일랜드의 정치학자 피터 메어는 정당을 카르텔·프랜차이즈 기업에 비유하는 독특한 이론을 발표했다. 카츠와 메어는 “현대 정당이 시민의 자발적 후원보다 국가의 정당 보조금·공천권 등 국가의 자원에 의존해 서로 담합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중앙당과 지역구 후보의 관계를 본사와 가맹점주 관계로 규정했다. 따라서 중앙당이 자원을 적절히 배분하지 못하거나, 시장에서 자원의 가치가 폭락하면 가맹점주의 불만이 폭발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의 주장을 매개로, 캐나다의 정치학자 켄 카티는 “정당이 실제로 프랜차이즈 시스템으로 바뀌고 있다”고 주장했다. 카티에 따르면, 정당은 브랜드로서만 기능하고, 선거에선 후보가 중앙의 브랜드를 빌려온다. 공천은 결국 이들 간 계약 관계 역할을 한다. 이는 실제 정치적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지난 2일 서울 쌍문역 일대 쌍리단길을 방문했다. 오 시장의 현장 방문에 동행한 국민의힘 소속 서울시의원들과 도봉구의원들은 국민의힘의 상징색 빨간색이 아닌 흰색 점퍼를 입었다. 오 시장도 서울시 로고가 새겨진 흰색 점퍼를 입고 현장을 돌아다녔다. 지난달 31일 진행된 국민의힘 서울시장 본경선 후보들 대상 첫 토론회에서도 후보들은 장 대표를 비판했다. 이들은 “흰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동그라미 푯말을, 빨간색 점퍼에 눈이 간다면 엑스 푯말을 들어달라”는 진행자의 요구에 일제히 엑스 푯말을 들었다. 오세훈 ‘흰색 점퍼’ 현장행 “빨간색 입고 싶다” 대우그룹·프랑스 사회당 등 한순간에 망한 대마들 하지만 말은 날카로웠다. 오 시장은 “빨간색 점퍼를 입고 싶은 마음을 엑스 푯말을 들어 표현해 봤다”고 말했다. 미래통합당 윤희숙 전 의원은 “흰색 옷을 입어야 하는 사람은 장 대표”라며 “이번 공천이 마무리되면 백의종군을 결심해 달라”고 요구했다. 국민의힘 박수민 의원은 “빨간 당 출신이 빨간색을 안 입는 자기모순은 이해할 수 없다”면서도 “장 대표가 확장하지 못했다면 후보들이 확장하면 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난달엔 장 대표의 지원 유세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본사에 대한 가맹점주들의 집단행동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다. 서울시당위원장을 맡은 배 의원도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민의힘의 서울 지지율 13%의 주역 장동혁 지도부가 기초단체장 후보를 못 구한 지역의 후보를 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방선거 패배 가능성이 내·외부에서 연이어 제기되고 있지만, 국민의힘 지도부에 대해선 “변화할 의지도, 대책도 없는 것 같다”는 평이 나온다. 이 같은 상황은 카츠와 메어가 이미 이론적으로 짚었다. 이들은 “카르텔 정당은 국가 자원을 독점하기 때문에 ‘우리는 망하지 않는다’는 착각에 빠지기 쉽다”고 지적했다. 바둑으로 치면, 국민의힘은 여러 개의 돌로 넓게 자리 잡은 곤마인 ‘대마’와 비슷하다. 시사 분야에서 관용적으로 잘 쓰는 표현 중 하나는 ‘대마불사’다. “대기업이나 대형 금융기관은 국가의 지원을 받아 망하지 않는다”는 관용 표현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1990년대 후반 IMF 금융위기는 대마불사로부터 비롯됐다. 가장 충격적이었던 상황은 당시 재계 2위였던 대우그룹의 해체였다. 김우중 당시 회장은 ‘세계 경영’이라면서 해외 업체를 공격적으로 인수했다. 그러다 IMF 금융위기를 맞아 구조조정을 거쳤지만, 삼성자동차를 받고 대우전자를 주는 빅딜 과정에서 엄청난 빚을 져 결국 워크아웃을 선언했다. 김 전 회장도 해외로 도피했다. 대우그룹은 그렇게 해체됐다. 국제 정치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990년대 초반 캐나다의 집권당 진보보수당은 경제 실정과 내부 갈등 끝에 구심력을 잃고 연이은 당원 탈당 사태를 겪었다. 그 결과 150석을 넘게 보유했던 거대 여당이 선거 한번에 2석만 건지는 참패를 당해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프랑스에서도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을 극복하지 못했던 사회당은 지난 2017년 대선을 앞두고 강경한 좌파 성향 브누아 아몽 대선후보를 선출했다. 그러자 사회당 소속 정치인 다수는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이 창당했던 신생 정당 앙 마르슈로 옮겼고, 당은 선거에서도 참패했다. 반대로 민주당은? 민주당은 대구시장 선거 승리를 위해 대구에서 일정한 기반을 갖추고 있고 선거 승리 경험도 있는 김부겸 전 총리를 대구시장 후보로 선출했다. 이어 지난 8일엔 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김 후보와 함께 대구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방문하는 등 승리 의지를 드러냈다. 구인난을 겪고 있는 국민의힘과 달리, 민주당에선 추미애 의원이 치열한 경선 끝에 경기도지사 후보로 선출돼 주목받고 있다. 대마불사는 과연 영원한 걸까. 대마불사만 믿고 배짱 영업을 해도 되는 걸까. 대우그룹 해체는 국민의힘에 어떤 의미를 줄까.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