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브 사태’ 결정적 장면 셋

시작은 내부 갈등 끝은 기업이 폭망?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시작은 분명 하이브였다. 하지만 나락에 떨어지고 있는 것도 하이브다. 연예기획사 최초로 대기업에 지정되는 등 업계 1위로 군림하던 상황이라 추락의 속도가 더 빠른 모양새다. 불과 6개월 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일요시사>가 ‘하이브 사태’의 결정적 장면을 꼽았다.

내부서 시작된 갈등이 외부로 분출됐다. 여론이 움직이고 대중의 뭇매가 이어졌다. 정치권이 나서자 사건은 일파만파로 확산됐다. 그사이 연예기획사 하이브는 이른바 ‘동네북’으로 전락했다. 오랜 시간 모래 위에 성을 쌓아온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민낯도 드러났다.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하이브가 케이팝에 독물을 풀었다’는 말이 돌았다.

업계 1위
나락 갔다

시작은 민희진 당시 어도어 대표이사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었다. 하이브는 멀티레이블 체제를 도입해 시행했다. 국·내외서 큰 성공을 거둔 방탄소년단(BTS)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고 리스크를 낮추겠다는 의도였다. 모회사인 하이브는 산하에 레이블을 인수하거나 편입하는 식으로 체제를 완성했다. 

각 레이블은 소속 아티스트의 활동을 전담하고 하이브는 지원 업무를 담당했다. 멀티레이블은 ‘독립적 운영’이라는 반석 위에 세워졌다. 이 같은 방식은 이번 사건이 터지기 전까지 성공적으로 자리 잡는 듯했다. 실제 BTS의 ‘군백기(군대+공백기)’에도 하이브의 매출은 성장세를 보였다. 

어도어는 하이브 산하 레이블 중 하나로 그룹 뉴진스가 소속돼있다. 어도어의 지분은 하이브가 80%, 민 전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20%(민 전 대표 18%)를 보유하고 있다. 민 전 대표는 과거 SM엔터테인먼트서 샤이니, 에프엑스 등 아이돌 그룹의 콘셉트와 브랜드를 맡은 제작자로, 2019년 하이브에 합류했고 2021년 어도어 대표가 됐다. 


지난 4월 하이브는 민 전 대표 등 어도어 경영진이 레이블의 경영권을 탈취하려는 정황이 드러났다고 주장하며 내부 감사에 착수한다고 밝혔다. 민 전 대표 측은 하이브의 감사는 내부고발에 대한 보복성 조치라고 반발했다. 그러면서 하이브의 또 다른 레이블인 빌리프랩의 소속 가수 아일릿이 뉴진스를 카피했다고 주장했다.

아일릿은 방시혁 하이브 의장이 프로듀싱을 맡은 걸그룹이다. 민 전 대표 측의 주장으로 전선이 다른 레이블로까지 확대됐다. 

대형 연예기획사와 산하 레이블 대표 간의 갈등은 인터넷 커뮤니티를 달궜다. 폭로와 반박이 나올 때마다 여론이 휘청였고 온갖 의혹이 난무했다. 민 전 대표의 카카오톡 대화 내용이 공개됐고 이 과정서 한 무속인의 존재가 드러났다. 민 전 대표가 자신의 중대사를 무속인과 논의했다는 의혹이 퍼졌다.

4월22일부터 4월25일까지 불과 나흘 만에 벌어진 일이다. 

그때 민 전 대표의 기자회견 소식이 전해졌다. 민 전 대표는 4월25일 법무법인 세종 소속 변호사 2명과 함께 한국컨퍼런스센터서 긴급 기자간담회를 진행했다. 민 전 대표가 자청한 회견이었다. 파란 모자에 녹색 줄무늬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민 전 대표는 하이브의 주장에 ‘억울하다’는 입장을 드러내며 반박했다.

민희진에 대한 감사 나비효과
국감에서 다뤄지며 뭇매 맞아

민 전 대표는 중간중간 욕설을 섞거나 눈물을 흘리는 등 감정을 ‘날것’ 그대로 쏟아냈다. 2시간 남짓한 기자회견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여론이 급격하게 민 전 대표 쪽으로 기울었고 그가 착용한 모자와 티셔츠가 불티나게 팔리는 등 엄청난 화제로 기록됐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에서 가장 결정적인 장면으로 꼽히는 대목이다. 

이후 둘의 갈등은 법정 공방으로도 비화했다. 첫판은 민 전 대표의 판정승이었다. 민 전 대표는 자신을 해임하기 위한 어도어 주주총회서 하이브가 의결권을 행사하지 못하도록 해달라는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법원은 “하이브가 민 대표의 해임 사유를 충분히 소명하지 못했다고 판단된다”며 인용 결정을 내렸다. 

또 하이브가 주장했던 민 전 대표의 ‘경영권 찬탈’ 의혹에 대해 “민 대표가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압박해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팔게 만들어 지배력을 약화시키고 민 전 대표가 어도어를 독립적으로 지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그런 방법의 모색 단계를 넘어 구체적 실행 단계로 나아갔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민 대표의 행위가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 행위가 된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민 전 대표는 가처분 승소 이후 기자회견을 열어 “어도어 대표로서 계속 일하고 싶다. 뉴진스와 함께 계획한 것들을 하고 싶다. 그게 하이브에도 이익이다. 그만 싸우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며 화해를 제안했다. 하지만 하이브는 앞서 열린 임시주총서 민 전 대표 측 이사 2명을 해임하고 3명을 새로운 이사로 선임하는 등 압박을 가했다. 

여기에 아일릿의 레이블 빌리프랩서 민 전 대표가 주장한 뉴진스 카피 의혹을 정면으로 반박하면서 사건이 확대됐다. 빌리프랩은 민 전 대표에 대한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레이블 간의 다툼이 본격화된 것이다. 이때부터 팬덤 사이의 갈등이 격화되면서 소속 가수가 직접적인 공격 대상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이후 어도어와 또 다른 하이브 산하 레이블인 쏘스뮤직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왔다. 쏘스뮤직에는 그룹 르세라핌이 소속돼있다. 한 언론 매체를 통해 어도어 측이 쏘스뮤직의 연습생을 빼앗아 뉴진스를 결성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레이블 간의 반박, 재반박이 거듭됐다. 또 레이블서 직접 민 전 대표를 상대로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등 진흙탕 싸움이 이어졌다. 

기자회견
첫 분기점

‘민-방(민희진-방시혁) 대전’ ‘민-합(민희진-하이브) 대전’은 8~9월 분기점을 맞았다. 역시 선공격은 하이브의 몫이었다. 지난 8월27일 어도어는 “김주영 어도어 사내이사를 신임 대표이사로 선임했다”며 “김 신임 대표이사는 다양한 업계서 경험을 쌓은 인사관리 전문가로서 어도어의 조직 안정화와 내부 정비를 맡을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 대표는 지난 5월 어도어 사내이사가 교체될 때 하이브 쪽 추천으로 들어간 인사다. 

민 전 대표는 대표직에서는 해임됐지만 사내이사직은 유지했다. 어도어는 민 전 대표가 뉴진스의 프로듀싱 업무도 그대로 맡게 된다고 밝혔다. 제작과 경영을 분리한다는 방침도 발표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어도어만 예외적으로 제작과 경영을 모두 총괄해 왔다”고 강조했다. 민 전 대표의 권한을 제작으로만 축소하겠다는 뜻이었다.

민 전 대표는 “일방적인 해임”이라면서 강하게 반발했다. 또 주주 간 계약의 중대한 위반이라고도 했다. 민 전 대표가 뉴진스의 프로듀싱을 맡는 문제도 일방적인 통보라고 주장했다. 어도어의 선공격과 민 전 대표의 반박으로 공은 또다시 법정으로 넘어가는 듯했다. 하지만 생각지 못했던 변수가 등장했다.


뉴진스가 직접 목소리를 낸 것이다. 지난 4월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이후부터 지난 9월까지 뉴진스가 전면에 나선 적은 없었다. 시상식 등에서 민 전 대표와의 유대감을 표현하거나 뉴진스 멤버의 부모가 목소리를 낸 경우는 있었지만 직접 입장을 드러낸 것은 처음이다. 

9월11일 뉴진스는 유튜브 계정을 열고 하이브의 부당한 조치에 대해 토로했다. 이들은 “라이브를 결정한 이유는 (민희진)대표님의 해임이 얼마 지나지 않았는데도, (스태프들이)부당한 요구와 압박 속에서 마음고생하는 것을 보는 게 힘들었다. 그리고 저희 다섯명의 미래가 걱정돼 용기를 내게 됐다”고 밝혔다.

또 버니즈(뉴진스의 팬덤명)까지 나서서 도와주고 있는데 우리만 숨어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면서 방송 배경을 밝혔다. 

뉴진스는 “경영과 프로듀싱이 통합된 원래 어도어를 저희는 바란다. 이것이 하이브와 싸우지 않고 잘 지낼 수 있는 방법”이라며 “오는 25일까지 어도어를 원래대로 복구시키는 현명한 결정을 해주시기를 바란다”고 날짜를 못 박았다.

당시 뉴진스가 민 전 대표를 복귀시키라면서 특정 날짜를 언급하는 등 ‘최후통첩’에 가까운 발언을 하면서 하이브와 법정 공방을 준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기도 했다.

라이브 방송
변곡점 됐다


특히 이날 방송서 뉴진스 멤버 하니가 “(하이브 사옥서)혼자 복도서 기다리고 있었다”며 “다른 팀원들이랑 매니저가 지나갔다. 서로 인사했는데, 그분들이 나오셨을 때 그쪽 매니저가 ‘무시해’라고 했다. 제 앞에서. 다 들리고 보이는데 ‘무시해’라고 했다. 제가 왜 그런 일을 당해야 하는지 지금 생각해도 이해가 안 간다. 어이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한 부분이 ‘직장 내 괴롭힘’ 의혹으로 번졌다.

뉴진스가 전면에 나서 진행한 라이브 방송의 파급력은 컸다. 민 전 대표와 하이브 간의 갈등이 민 전 대표+뉴진스와 하이브 간의 갈등으로 재규정된 순간이었다. 방송 자체는 3시간 만에 삭제됐지만 뉴진스의 발언은 일파만파 퍼져나갔다.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던 정치권이 하니의 주장을 문제 삼으면서 상황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하니를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채택했다. 하이브의 직장 내 괴롭힘 의혹에 대해 파헤치겠다는 취지였다. 동시에 인사책임자인 김주영 어도어 대표이사의 증인 출석도 요구했다. 아이돌 따돌림, 직장 내 괴롭힘 문제와 관련해 하니에게 묻고 김 대표에게 대응에 대해 질문하겠다는 것이다. 

하니가 국감에 출석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면서 화제가 일었다. 이날 국감에서는 하니와 김 대표 간의 공방이 벌어졌다. 하니는 다른 레이블 소속 매니저로부터 ‘무시해’라는 발언을 들었고 하이브가 CCTV를 삭제하는 등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반면 김 대표는 서로의 입장이 엇갈리는 상황이라고 맞섰다.

하니의 국감 출석으로 아티스트의 근로자성이 쟁점으로 떠올랐다. 아티스트는 현재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상태다. 여야 의원들은 한목소리로 제도 보완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박정 의원은 “(아티스트가)근로기준법상 근로자가 아니니까 대응할 수가 없다고 하면 이 문제는 영원히 도돌이표로 진행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었다. 하이브는 아이돌 굿즈 관련한 문제로도 국감서 지적받았다. 윤석열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의혹이 쟁점이 될 것이라던 예상과 달리 ‘하이브 국감’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하이브에 대한 정치권의 공격은 거셌다.

이 과정서 하이브의 내부 문건이 공개됐다. 하이브에서는 ‘모니터링’ 문서라고 주장하는 이른바 ‘업계 동향 보고서’다.

해당 문건의 존재와 내용이 공개되면서 하이브는 바닥 없는 나락으로 떨어지는 모양새다. 한때 케이팝을 선도한다는 평을 받을 정도로 승승장구하던 연예기획사가 타사 아이돌의 외모를 품평하고 방송 출연 모습을 일일이 꼬투리 잡아 원색적인 비난을 가했다는 사실이 드러나면서 팬덤은 물론 대중도 경악하고 있다.

모니터링 문건 대중 반응 최악
뒤에 숨어있는 방시혁 나와야?

엔터 업계서 오랜 시간 일했다는 관계자들도 ‘이런 사례는 보지 못했다’며 손사래를 칠 정도다.

해당 문건에 대한 하이브의 대응은 엄청난 역풍을 불렀다. 앞서 지난달 24일 민주당 민형배 의원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국감서 ‘위클리 음악산업 리포트’라는 이름의 문건을 공개했다. 민 의원이 공개한 문건 내용이 파장을 일으키자 하이브는 국감 도중에 입장문을 내고 대응에 나섰다.

문제는 입장문 내용이 ‘적반하장’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당시 하이브는 “국감서 공개된 당사의 모니터링 보고서는 팬덤 및 업계의 다양한 반응과 여론을 취합한 문서”라며 “업계 동향과 이슈를 내부 소수 인원에게 참고용으로 공유하기 위해 커뮤니티나 소셜미디어 반응을 있는 그대로 발췌해 작성됐으며 하이브의 입장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해당 보고서에는 엔터테인먼트 회사로서 귀담아들어야 할 내용들, 팬들의 긍정적인 평가도 포함돼있다”며 “보고서 중 일부 자극적인 내용들만 짜깁기해 마치 하이브가 아티스트를 비판한 자료를 만든 것처럼 보이도록 외부에 유출한 세력에 대해서는 끝까지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하이브의 입장문에 국회의원들은 “국회가 만만하냐”며 불쾌감을 표했다. 국감 도중에 입장문을 발표한 것도 모자라 제보자를 색출하겠다는 하이브의 태도가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이어졌다. 결국 국감에 증인으로 출석해 있던 김태호 하이브 최고운영책임자 겸 빌리프랩 대표는 “깊은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며 고개를 숙였다.

국회발로 시작된 문건의 파장은 현재진행형이다. 수천장에 달하는 문건 중 극히 일부만 공개된 상황이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 케이팝 팬들까지 반응하고 있다. 문건을 만든 사람, 본 사람, 공유한 사람 등이 쟁점으로 떠올랐고, 민 전 대표가 이미 지난 4월 첫 번째 기자회견을 했을 때 언급했던 내용이 사실로 드러나면서 대중의 관심은 최고조에 달한 상태다. 

하이브는 지난달 29일 이재상 최고경영자(CEO) 명의로 입장문을 게재했다. 문건이 처음 공개된 지 닷새 만에 나온 사과문이다. 이 CEO는 “당사의 모니터링 문서에 대해 아티스트분들, 업계 관계자분들, 그리고 팬 여러분께 고개 숙여 사죄 말씀드린다”고 밝혔다.

또 부적절한 내용의 문건을 작성한 점을 인정하고 내부 통제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일각에서는 하이브의 사과문을 두고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상황에 기름을 부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언론을 통해 추가 문건이 공개될 조짐을 보이고 있고 일부 하이브 소속 가수가 SNS를 통해 말을 얹으면서 사태가 진화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그사이 하이브의 이미지는 물론 소속 가수의 호감도 또한 수직 낙하하는 중이다. 

정치권발
카운터펀치

결국 방시혁 의장이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그 때문이다. 방 의장은 BJ 과즙세연과의 LA 목격담 이후 두문불출 중이다.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도 전면에 나선 적이 없다. 하지만 대중의 시선은 계속해서 ‘위’를 향하고 있다. 결국 하이브를 총괄 지배하는 사람은 방 의장이기 때문이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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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틈 공략’ 이재명표 동진 정책 막전막후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여야는 저마다 큰 충격을 받았다. 장동혁·한동훈·이준석 연대 등 위기 앞에서 다양한 경우의 수를 내던 국민의힘은 이 대통령의 동진 정책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해 12월28일 새누리당 이혜훈 전 의원을 기획예산처 장관 후보자로 지명했다. 기획재정부는 지난해 9월 발표된 정부 조직 개편 방안에 따라, 지난 2일 재정경제부·기획예산처로 분리됐다. 이 지명자가 초대 장관으로 임명된 기획예산처는 예산 편성·재정 기획 기능을 담당한다. 연말 휴일 깜짝 발표 한나라당·새누리당 소속으로 서울 서초갑에서 3선 의원을 지냈던 이 후보자는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을 지낸 경제통이다. 수려한 언변을 바탕으로 높은 대중적 인지도를 누리고 있다. 그는 지명 다음날 인사청문회 준비 사무실이 마련된 서울 예금보험공사로 출근하면서 장관 후보자 지명 소감을 밝혔다. 이 후보자는 “불필요한 지출은 사전에 없애고, 민생과 성장엔 과감하게 투자하는 방식이 필요하다”며 “기획과 예산을 연동한 중장기 재정 운영을 통해 구조적 위기에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이 후보자를 임명하자, 정치권은 발칵 뒤집혔다. 일요일에 이 지명자 임명을 밝힌 것에 대해서도 “다음 날 조간 신문 톱을 노린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국민의힘 기획조정국은 같은 날 이 후보자를 제명하기로 한 서면 최고의원회의 의결 사항을 발표했다. 기획조정국은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서울 중·성동 당협위원장인데도 이재명정부 국무위원 임명에 동의해 현 정권에 부역하는 행위를 자처했다”며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행위를 했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겉으론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을 환영했다. 민주당 김현정 원내대변인은 같은 날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전문성을 인정받은 인사를 적재적소에 배치한 탕평인사”라면서 환영하는 논평을 발표했다. 그런데 이 후보자는 지난해 3월22일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가 주도한 집회에서 이 대통령을 강하게 비판하는 연설을 했다. 이 때문에 민주당에선 충격을 받은 듯한 반응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이언주 최고위원은 이날 “윤 어게인을 외쳤던 사람도 통합 대상이 돼야 하느냐”며 “솔직히 쉽사리 동의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윤준병 의원도 같은 날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이 대통령을 향해 내란 수괴라고 외치고,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을 지지했던 이 전 의원에게 정부 곳간 열쇠를 맡기는 행위는 포용이 아니라 국정 원칙 파기”라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적진인 국민의힘의 유명 정치인을 핵심 보직에 발탁한 것과 관련해 “당내 영향력이 비교적 약한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견제 목적 충격을 주기 위해 이 후보자를 임명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이 같은 주장의 바탕엔 예산 편성·재정 기획을 맡는 기획예산처의 특성이 있다. 기획예산처는 쉽게 말해 ‘금고지기’다. 이혜훈 기습 임명에 발칵 뒤집힌 국힘 적진 출신 곳간지기로…민주당 견제?” 일각에선 “국민의힘 내에서 영향력이 줄고 있는 이 후보자를 영입해 금고를 맡긴다는 건 민주당 의원들을 믿을 수 없다는 것 아니냐”며 “이 대통령이 민주당에 강력한 경고를 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왔다. 아울러 “각종 갑질 의혹이 불거져 정치적 입지가 매우 좁아졌던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를 엄호하기 위한 물타기를 강하게 한 것”이란 분석도 있다. 하지만 “당내 역학 관계만을 고려한 대응이라고 보긴 어렵다”는 해석도 존재한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은 다양한 정치적 구도와 이슈가 뒤엉켜 있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연이은 혼란과 어지러운 합종연횡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중심 축은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에 대해 이어지는 반발 속 ‘장동혁 체제’ 종말 가능성 ▲장 대표와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의 갈등 ▲한 전 대표와 개혁신당의 오랜 갈등 ▲한 전 대표와 김문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의 지난해 12월 깜짝 회동 ▲국민의힘·개혁신당의 특검 합의 등이다. 중심축만 해도 이렇게 많다. 이 틈은 이 대통령이 국민의힘의 허를 찌르는 기습을 시도할 수 있었던 결정적인 배경이다. 국민의힘이 이 후보자 제명을 언급하더라도, “적진 출신을 주요 부처 수장 후보자로 임명했다”는 압도적인 흐름을 극복하긴 어렵다. 보수 야권 내부에선 지난해 12월26일부터 ‘장한석 연대’라는 표현이 나왔다. ▲장 대표 ▲한 전 대표 ▲개혁신당 이준석 대표 등이 연대할 가능성이 거론된 것이다. 국민의힘·개혁신당이 통일교 특검법을 공동 발의하고, 한 전 대표가 장 대표의 24시간 필리버스터를 긍정적으로 언급한 것을 근거로 제시된 가능성이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2일 오전부터 다음 날 오전까지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법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를 24시간 동안 진행했다. 이를 두고, 한 전 대표는 지난해 12월24일 자신의 SNS에 “장 대표가 장장 24시간 동안 온 힘을 쏟아냈고, 노고가 많으셨다”며 “민주당의 폭거가 선을 넘어도 한참 넘었으니, 모두 함께 싸우고 지켜야 할 때”라면서 장 대표를 추켜세웠다. 하지만 장 대표는 같은 날 “필리버스터의 절박함·필요성에 대해선 누구도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극복 어려운 압도적 흐름 ‘장한석 연대’는 실제로 성사되면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단 분석이 나온다. 보수 야권의 대표로 통하는 정치인 3명이 서로 물고 물리는 앙숙 관계를 형성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 대표는 강경 보수를, 한 전 대표는 중·노년 여성을 축으로 한 중도 보수를, 이 대표는 젊은 남성을 축으로 한 개혁 보수를 상징한다. 이들 사이에 연대가 성사되면 사실상의 이념적 보수 대통합이다. 이 연합이 성사되면, 영남·강원 중심 토착 보수를 대표하는 국민의힘 내 언더 찐윤과 대적해볼 수 있다. 하지만 장 대표는 이 가능성에 대해 강하게 부인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12월28일 국회서 진행된 기자간담회 중 “왜 ‘장한석’이란 말이 붙는지 잘 모르겠다”며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것이 정치적으로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인지, 당내 인사와 연대한다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이어 “연대는 국민께서 수긍할 수 있는 명분을 갖고 감동을 줘야 한다”며 “지방선거를 5개월여 앞둔 상황에서 국민의힘은 변화와 쇄신을 위해 더 노력하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전 대표와 연대할 가능성을 일축하면서도 이 대표와의 연대 가능성에 대해선 “당내 쇄신 후”라는 전제만 남겨놨다. 장 대표와 이 대표는 통일교 특검 추진이란 특정 이슈를 토대로 제한적 연대를 진행하고 있다. 근본적인 연대 가능성은 장 대표와 이 대표가 바라보는 지지층이 달라서 “실제로 가능하겠느냐”는 의문을 남긴다. 장 대표는 강경보수 결집을 위해 당 차원의 장외집회를 추진·주도했다. 하지만 이 대표는 특유의 합리성을 토대로 보수 성향 청년을 결집해 개혁신당의 정치적 공간을 일궜다. 정치적 공간 자체가 다르고, 그 공간 사이에 벽도 크게 세워져 있다. 현실적으로 벽을 허물고 손을 잡을 수 있을지 근본적인 회의를 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이 집단 사이에 세워진 벽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국민의힘이 12·3 비상계엄에 대한 당 차원 공식 사과와 윤 전 대통령과의 절연을 공식화해 추진하면, 개혁신당은 근본적인 혼란에 처할 수 있다. 국민의힘과의 연대를 통해 정치적 공간을 더 넓힐 수 있지만, 근본적인 차별화가 어려워진다. 이 경우 개혁신당은 “국민의힘과 별개로 왜 따로 존재해야 하느냐”는 의문에 그대로 노출된다. 장 대표에게도 깊은 딜레마를 안긴다. 강경 보수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를 추앙하고 있다. 사과·절연은 강경 보수가 정치적 영역화를 시도하던 장 대표에게 크게 반발하면서 선을 그을 것이다. 하지만 5개월 후 예정된 지방선거는 장 대표에게 외연 확장이란 숙제를 남긴다. 선거는 손 하나라도 더 있어야 수월하다. 그래서 사과나 절연을 하지 않으면, 개혁신당과의 선거 연대는 근본적으로 불가능하다. 경우의 수 윤 딜레마 한 전 대표에 대해선 당원 게시판 의혹과 관련된 조사 절차가 진행되고 있다. 친한(친 한동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에 대해선 국민의힘 당무감사위원회가 당원권 정지 2년을 권고했다. 당원 게시판 의혹 조사 결과가 최종 발표되고, 한 전 대표에 대한 징계 권고에 이은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의 확정까지 이어지면, 한 전 대표는 국민의힘에서 사실상 축출된다. 그렇다고 신당 창당이란 모험을 하기도 어렵다. 신당 창당이란 실험은 이 대표가 이미 치렀다. 이 대표는 지난 2023년 12월 국민의힘을 탈당했고, 다음 달 창당해 그로부터 석 달 후 총선을 치러 국회 의석 3석을 확보했다. 이 대표는 경기 화성을에서 사실상 개인기로 선거를 치러 창당 직후 지역구에서 당선되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오는 6월엔 지방선거와 몇몇 지역구에 대한 재보궐선거만 진행된다. 정치의 중심지 국회에서 세를 확보하기 위한 선거가 아니다. 게다가 이 대표는 지난 2022년 국민의힘 대표로서 대통령·지방선거 승리를 주도했다. 반면 한 전 대표가 지휘했던 전국 단위 선거는 지난 2024년 총선이다. 당시 국민의힘은 108석만 확보하는 대형 참패를 당했다. 한 전 대표는 곧바로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사퇴했다. 한 전 대표가 ‘24시간 필리버스터’를 마친 장 대표를 위로한 한 이유로는 이 같은 현실적 상황이 거론된다. 하지만 장 대표의 반응은 차가웠다. 그는 한 전 대표를 콕 집어서 “당내 인사와 연대라는 표현이 언제부터 사용됐는지 동의하거나 이해하기 어렵다”고 저격했다. 이 발언은 사실상 한 전 대표의 항복을 요구하는 메시지로 해석되고 있다. 이 대표 입장에서도 창당된 지 불과 2년이 안 되는 개혁신당만으로는 지방선거를 치르기 어렵다. 그는 지난해 8월 국회에서 연찬회를 열어 “지방선거 후보자들이 300만원대 비용만으로 선거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다”며 “재보궐선거에서도 최소 2~3석을 확보할 수 있도록 조기 선거 구상에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개혁신당은 현실적으로 국민의힘과의 연대가 필요하다. 민주당의 세가 막강하므로 최소한 제한적·전략적 빅텐트를 쳐야 제한된 여건에서 최대한 많은 당선자를 배출할 수 있는 탓이다. 연대하지 않은 상황에서 민주당이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면, 국민의힘이 개혁신당에도 일정 부분 책임론을 전가해 공격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장·한·석 연대 좌충우돌 보수 대표 3인 각양각색 그런데 개혁신당은 이 대표와 국민의힘을 주도하는 친윤(친 윤석열)계와의 갈등 끝에 창당됐다. 친한(친 한동훈)계와도 언론을 통한 상호 공방을 거치면서 “보수의 적자는 누구냐”는 갈등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정서는 규모는 적지만 당과의 밀착도가 높은 개혁신당 지지자들에게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뚜렷한 명분을 제시하지 않고선 당원·지지자의 비난을 이겨내기는 사실상 어렵다. 소규모 정당 특성상 사비를 모아 유세차를 마련해 선거운동을 할 정도로 열성적인 당원·지지자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이 대표는 이미 개혁신당 창당 도중 이낙연 전 국무총리와 연대하려다가 당원·지지자의 거센 반발에 직면한 후 이를 취소하는 홍역을 치렀다. 국민의힘과 연대를 추진하려면, 당원·지지자를 설득할 수 있는 명분도 제시해야 한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나온 강수다. 이 대통령은 민주당 대표였던 지난 2월 “민주당은 진보가 아닌 중도보수”라면서 보수 공략 의지를 밝혔다. 이어 ▲권오을 국가보훈부 장관 ▲허은아 대통령비서실 국민소통비서관 ▲새누리당 김용남 전 의원 등이 이 대통령의 권한으로 임명되거나 민주당에 입당했다. 이혜훈 후보자는 이 대통령이 받아들인 보수 출신 인사 중 가장 중량급이다. 그의 임명은 이 대통령이 민주당 대표 시절 추진했던 이념적 동진 정책을 계속 이어가고 있단 상징적 정치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최근 민주당과 관련해선 강력한 부산시장 후보자로 여겨지던 전재수 전 해양수산부 장관도 휩쓸려 사퇴하는 등 사건이 발생하자 “통일교 관련 의혹이 민주당에도 스며든 것 아니냐”는 의심이 강하게 제기됐다. 민주당 김병기 전 원내대표 관련 의혹도 크게 불거지고 있다. 민주당도 크게 흔들려 정치적 아노미 상태에 놓을 수도 있었다. 이 대통령의 이 후보자 임명은 이런 상황에서 발표됐다. 이 대통령의 강수는 ▲보수 포용 이미지 형성 ▲보수 분열 시도 ▲민주당에 대한 부정적 시선 분산 등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인다. 지지부진한 상황을 거듭하는 국민의힘이 이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을지 장담하긴 어렵다. 그러던 중 국민의힘에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발표됐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해 12월22일부터 3일 동안 전국 성인남녀 1003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발표한 전국 지표 조사에 따르면, 민주당 지지율은 41%로, 국민의힘 지지율은 20%로 집계됐다. 특히 대구·경북 지역 내 국민의힘 지지율도 19%에 불과한 것으로 확인됐다. 텃밭서도 고작 19% 현재 국민의힘에 대해선 온갖 혼란·가설이 난무하는 상황에 이어 이 대통령의 강수를 접한 후 충격적인 여론조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따라서 “지방선거 승리를 위한 중도 확정은커녕 전통적인 텃밭이나 제대로 사수할 수 있을지 의문”이란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수의 홍이포를 보유한 대군은 성을 포위하고 있다. <남한산성>을 집필한 김훈 작가는 “안에서 무너지는 것이 더 두렵다”고 강조했다. 보수는 밖에서 무너질 것인가, 안에서 무너질 것인가. 아니면 되살아날 것인가?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