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룡 기획사’ 하이브 빛과 그림자

대기업 됐지만 속은 비실비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논란, 논란, 논란. 끊임없이 이어지는 논란에 엔터테인먼트사의 본질은 뒷전이 된 모양새다. 대중은 차갑게 돌아섰고 이미지는 나락으로 떨어져 소속 연예인까지 타격받고 있다. 규모로는 업계 1위를 자랑하는 기업이 곪아 터진 속사정만 드러내는 중이다. 화려한 겉모습 이면에 어떤 민낯이 숨어 있던 걸까?

연예계가 이렇게 시끄러웠던 적이 있을까? 겨우 상반기가 끝났을 뿐인데 ‘올해의 뉴스’라고 할 법한 사건이 연이어 터졌다. 심지어 몇몇은 현재진행형이다. 그 중심에 ‘하이브’가 있다. 하이브는 BTS, 뉴진스, 르세라핌, 아일릿 등 국내외 인기 그룹을 보유한 업계 1위 엔터테인먼트사다.

빛 좋은
개살구?

최근 하이브는 엔터테인먼사 중에는 최초로 대기업집단에 지정됐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지난달 15일 ‘2024년 대기업집단(공시대상 기업집단) 지정 현황’을 발표했다. 자산 총액 5조원 이상(지난해 말 기준)인 회사가 공시대상 기업집단으로 지정됐다.

하이브는 앨범‧공연‧콘텐츠 수익 증가로 자산이 4조8100억원에서 5조2500억원으로 늘었다. 하이브 총수(동일인)인 방시혁 의장은 주식재산 6위를 기록했다. 방 의장은 하이브 주식을 2조5447억원어치 보유하고 있다.

기업분석전문 한국CXO연구소에 따르면 대기업집단 88개 그룹 총수 가운데 6번째다. 주식 재산만 놓고 보면 4대 그룹 총수인 최태원 SK그룹 회장(2조1152억원)이나 구광모 LG그룹 회장(2조202억원)보다 높은 순위다. 


하이브는 2005년 빅히트엔터테인먼트로 출범해 2021년 현재 사명으로 바꿨다. 공식 홈페이지에서는 ‘음악에 기반한 세계 최고의 엔터테인먼트 라이프스타일 플랫폼 기업을 지향한다’고 소개하고 있다. 하이브가 다른 엔터테인먼트사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멀티레이블 시스템’ 방식이다.

하이브는 빅히트뮤직(BTS),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세븐틴), 쏘스뮤직(르세라핌), 빌리프랩(아일릿), 어도어(뉴진스) 등 멀티레이블을 운영하고 있다. 멀티레이블 시스템은 레이블별로 독립적인 운영을 보장해 특정 아티스트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려는 목적으로 설계됐다.

하이브는 레이블별로 75% 이상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민희진과의 갈등에서 완패
화해 제스처에도 묵묵부답

멀티레이블 시스템은 하이브가 업계 최초로 도입한 체제다. 최근 하이브를 뒤흔들고 있는 논란이 바로 멀티레이블 시스템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하이브 입장에서는 경쟁과 협력을 바탕으로 레이블 간 상생을 꾀한 듯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갈등의 시발점이 된 모양새다. 

모든 일은 하이브와 민희진 어도어 대표의 갈등서 비롯됐다. 이후 하이브 산하 레이블 일부가 참전하면서 전선이 확대되기 시작했다. 고소, 고발이 진행됐고 법정 공방으로 이어졌다. 온라인 커뮤니티 등을 중심으로 하이브 소속 연예인에 대한 언급이 늘어났고 이 과정서 몇몇 가수에 대한 비방이 쏟아졌다, 

문제는 갈등이 거듭되면서 하이브에 대한 대중 이미지가 바닥을 치고 있다는 점이다. 대기업집단으로 지정되는 등 외형은 ‘공룡기업’으로 커졌지만 내부 상황이 까발려지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방 의장의 리더십이 시험대에 오른 것을 넘어 일정 부분은 이미 상처를 입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민 대표에 대한 감사권 발동으로 시작된 경영권 분쟁은 하이브의 완패로 끝났다. 앞서 하이브는 민 대표와 부대표가 경영권 탈취 시도를 했다고 보고 긴급 감사에 들어갔다. 이후 감사 중간 결과 보고를 통해 민 대표와 부대표의 배임 증거를 확보했다고 밝히면서 이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발했다. 

민 대표는 기자회견을 자처하며 맞불을 놨다. 민 대표의 기자회견은 크게 화제가 되면서 여론을 뒤흔들었다. 민 대표가 타 레이블의 표절 의혹을 제기하고 하이브의 음반 밀어내기 권유를 폭로하자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다.

특히 업계에서는 멀티레이블 체제의 단점이 적나라하게 드러났다는 말이 나왔다.

감사권 발동
가처분 인용

하이브와 민 대표의 갈등 수위가 올라가자 법원의 판단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민 대표가 어도어 대표직을 유지할 수 있는지를 두고 법조계 입장도 엇갈렸다. 지난달 30일 법원은 민 대표 측이 하이브를 상대로 낸 의결권 행사 금지 가처분신청을 인용했다. 민 대표 측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는 “민희진에게 해임 사유가 존재하지 않는 한 하이브는 이번 주주총회서 민희진 해임에 대한 의결권을 행사하지 않을 계약상의 의무가 있다”며 “하이브는 민희진의 해임 사유에 대해 소명해야 하지만 현재까지 제출된 자료로는 충분히 소명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이어 “민희진이 뉴진스를 데리고 하이브의 지배 범위를 이탈하거나 하이브를 압박해 하이브가 보유한 어도어 지분을 팔게 만듦으로써 어도어에 대한 지배력을 약화하고 독립적으로 지배할 방법을 모색했던 것은 분명하다고 판단된다”면서도 “방법 모색의 단계를 넘어 구체적인 실행행위까지 나아갔다고 보기 어려울 뿐 아니라 민희진의 행위가 하이브에 대한 배신적 행위가 될 수는 있겠지만 어도어에 대한 배임행위가 된다고 하기는 어렵다”고 판시했다. 

법원이 가처분신청을 인용하면서 민 대표와 하이브는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게 됐다. 민 대표는 법원의 판결 이후 기자회견을 자청해 하이브에 손을 내밀었다. 1차 기자회견 때와 달리 한결 차분한 모습으로 자세를 낮췄다. 하이브가 어도어 이사진을 교체하면서 구도가 재편된 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어도어 이사회가 1대 3 구도가 되면서 이사회 결의만 있으면 민 대표를 해임하는 것이 가능하다. 법적으로 이사회 의결권을 강제할 수 없다. 이 때문에 민 대표 입장에서는 ‘시한부 대표’가 될 가능성도 존재하는 셈이다. 모회사인 하이브와 계속 법정 공방을 이어가는 것도 부담스러운 대목이다. 

표절·밀기
문제 불거져

민 대표는 법원 판결 다음 날인 지난달 31일 “어도어 대표로 계속 일하고 싶다. 뉴진스와 함께 계획한 것을 하고 싶다. 그게 하이브에도 이익이다. 그만 싸우고 다음 챕터로 넘어가자”고 했다. 그는 “직위와 돈에 대한 욕심이 이 분쟁의 요인이 아니다. 뉴진스 멤버와 세운 비전을 이루고 싶은 소망이 크다. 감정적인 건 뒤로 하고 하이브와 이성적으로 타협점을 잘 찾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은 그렇게 녹록지 않다. 하이브와의 분쟁이 1차적으로 마무리되기 무섭게 타 레이블 간의 갈등이 본격화된 것이다. 특히 하이브와 민 대표의 갈등 과정서 제기된 표절 의혹에 불이 붙었다. 앞서 민 대표는 아일릿의 소속사가 뉴진스의 제작 포뮬러를 표절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빌리프랩은 민 대표를 업무방해와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한 데 이어 최근 민사소송을 추가로 제기했다. 빌리프랩은 지난 10일 SNS에 “빌리프랩은 그동안 표절의 멍에를 짊어지고 숨죽여 온 아티스트와 구성원의 피해에 대한 민사소송을 추가로 제기해 민희진 대표에 대한 책임을 묻겠다”고 밝혔다. 

여기에 표절 반박 영상을 제작해 유튜브에 게재하는 등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28분 분량의 영상에는 김태호 빌리프랩 대표, 아일릿 기획에 참여한 관계자 등이 출연했다.

김 대표는 “특정한 콘셉트로 데뷔한 선배들 뒤에 데뷔하는 팀들이 가져야 하는 숙명이라고 생각한다”고 표절 논란에 대한 입장을 전했다. 이어 “뉴진스를 만든 민희진씨 입장에서는 본인이 했던 것과 유사성을 찾아내고 (빌리프랩이)베꼈다고 주장하시는 것 같다”며 “하지만 안타깝게도 전혀 그런 바가 없다”고 반박했다.

빌리프랩은 영상서 여러 그룹을 언급하면서 뉴진스의 콘셉트를 차용하지 않았다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레이블 간 전쟁으로 2차전
이미지 실추로 주가도 하락

누리꾼 반응은 싸늘하다. 일각에서는 ‘안 하니만 못했다’는 반응이 나오면서 역풍까지 불 기세다. 유튜브 영상의 ‘싫어요’ 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나고 부정적인 댓글이 쏟아지고 있다. 업계서도 소속 아티스트를 신경 쓰지 않은 대응이었다는 비판이 이어지는 중이다.


실제 영상에 대한 비판은 아일릿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데뷔한 지 채 3개월도 되지 않은 걸그룹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이미지가 훼손됐다는 의견도 있다.

하이브와 민 대표와의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 시기는 지난 4월말 경이다. 불과 2개월 만에 하이브는 대기업집단 지정‧내부 갈등이라는 극과 극의 상황을 동시에 겪었다. 업계 1위 기업이라는 것을 인정받은 것과 동시에 누리꾼 사이서 ‘K-POP을 망치는 주범’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하이브를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이 앞으로 더 날카로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기업의 가치 평가가 고스란히 반영되는 주가는 이미 큰 폭으로 하락했다. 안 그래도 ‘엔터주’는 연예인의 상황에 따라 주가 등락이 큰 분야다. 대중을 상대로 하는 업계인 만큼 이미지 실추는 치명적이다. 

이미지 회복을 위해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갈등을 봉합해야 하는데 가야 할 길이 멀다. 내부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수준은 이미 넘어서 송사로 비화된 만큼 기업에 대한 이미지 상실은 물론, 소속 아티스트에 대한 타격도 불가피하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여기에 민 대표가 제기한 표절이나 음반 밀어내기 등 K-POP의 관행처럼 여겨졌던 문제가 수면 위로 올라온 점도 눈여겨봐야 한다. 지금까지 암암리에 진행됐다는 의혹만 나왔던 부분이 민 대표의 발언으로 검증 대상이 된 것이다. 

아티스트도
타격 입었다

여기에 갈등 과정서 불거진 각종 의혹도 꼬리표처럼 따라붙을 가능성이 크다. 연예계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높은 만큼 의혹에 대한 진화도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방 의장의 역량이 이번 사태로 확인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작곡가로서 방 의장은 ‘업계 탑’으로 알려져 있다. BTS라는 세계적인 그룹을 키워내면서 기획자로서의 역량도 인정받았다. 이제 그룹 총수로서의 역량을 검증받을 때가 왔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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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아웃사이더’ 정청래 인싸 플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국회에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독주가 이어지고 있다. 당원의 명령인 개혁을 완수하기 위한 질주다. 당의 ‘아웃사이더’였던 그가 당을 휘어잡기까지 수많은 당원이 등을 밀어줬다. 비주류에서 주류 ‘인싸’로 자리 잡기 위한 정 대표의 다음 스텝이 주목된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행보가 매섭다. 윤석열정부에서 막힌 과제를 해치우는 동시에 공약이었던 각종 개혁을 빠르게 완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정 대표는 같은 당 박찬대 의원보다 덜 알려졌다는 평이 나오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 위원장으로서 보여준 ‘사이다’ 면모가 주목받으면서 강성 지지층의 환호를 받았다. 정청래가 걸어온 길 비주류였던 그가 당 대표가 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평범하지 않았다. 21대 국회 때는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 수석 최고위원을 지냈고, 22대 국회에선 법사위원장으로서 국민의힘에 호통을 치며 유튜브 단골 주제가 됐다. 당시 정 대표는 국민의힘이 반대하는 쟁점 법안을 밀어붙이고 상대편 의원과 대립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인기를 끌었다. 그동안 정 대표는 언론 대신 페이스북이나 트위터, 유튜브 등 SNS를 통해 지지자와 직접 소통해 왔다. 민주당 박찬대 의원보다 주목도가 떨어진다는 평이 나오지만 팬덤 정치에 최적화된 모습을 보여줬다. 정 대표는 최근에도 자신을 둘러싼 의혹과 청-명 프레임에 대해 직접 입장을 밝혔다. 그는 SNS에 ‘언론의 자유와 횡포 그리고 언론의 게으름의 관성’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조국 전 대표의 사면·복권을 놓고 일부 언론에서 ‘정청래 견제론’을 말한다. 실소를 자아내게 한다. 근거 없는 주장일뿐더러 사실도 아니다. 상식적인 수준에서 바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어 “정청래는 김어준이 밀고, 박찬대는 이재명 대통령이 밀었다는 식의 가짜 뉴스가 이 논리의 출발”이라며 “어심이 명심을 이겼다는 황당한 주장, 그러니 정청래가 이재명 대통령과 싸울 것이란 가짜 뉴스에 속지 말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통령과 각을 세울 일이 1도 없다. 당정대가 한 몸처럼 움직여 반드시 이재명정부를 성공시킬 생각이 100(이다)”이라고 덧붙였다. 계파 갈등 프레임이 씌워질 조짐이 보이자 이를 사전에 차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정 대표의 정치적 뿌리를 따지자면 친노(친 노무현)에 가깝다. 그러나 문재인 전 정부서는 친문(친 문재인), 이재명 대표 체제에서는 친명(친 이재명)으로 분류되는 등 계파색이 비교적 옅은 편이다. 1989년 미국 대사관저 점거 농성을 주도한 혐의로 2년형을 선고받은 등 학생 운동권 출신이지만, 대표 운동권인 민주당 86 그룹과의 친분을 공개적으로 과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정 대표는 당의 주류보다 비주류에 가깝다는 게 여의도에 떠도는 평이다. 친문? 친명? 오히려 ‘계파 청산파’ “잘못된 586 문화 배운 97도 청산” 전당대회가 한참이던 당시 한 민주당 의원은 “사석에서 만난 정 의원은 아주 뚝심 있는 사람이었다. 박찬대 의원은 특유의 재치로 호감을 얻는 편이라면 정 의원은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할 말은 제대로 하는 캐릭터”라며 “그래서 계파를 분류하기 어려운 것 같다. 나만의 길을 가는 것 같으면서도 한번 정한 길은 꺾지 않고 걷는 사람”이라고 설명했다. 오히려 정 대표는 ‘계파 청산’을 외치는 인물이다. 그는 당 대표 후보이던 당시 “국민께서 비판하시는 586의 운동권 문화는 청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서는 “계파는 당을 좀먹는 독약”이라며 강도 높게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정파와 노선은 필요하지만, 계파는 없어져야 한다. 저 스스로 계파에 가입하지 않고, 그런 데서도 저는 안 불러준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586의 질서, 운동권의 수직적 관계가 싫었다. 그런 분들과 몰려 다니는 게 너무 비생산적”이라며 “586의 안 좋은 문화를 따라 배운, 너무 빨리 늙어버린 97 세대들의 그런 것도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수장이 될 수 있었던 것은 당원들의 요구를 파악해 발 빠르게 움직였기 때문이다. 8·2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는 당선 이후 “이 대통령이 대통령이 된 것은 민주당 주류가 바뀌었단 뜻이고, 민주당에서 정청래가 대표가 됐다는 것은 당의 주인인 당원들이 당의 운명을 결정하는 시대가 왔다는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해석했다. 이날 전당대회를 “예전에는 당원들이 국회의원 눈치를 봤지만, 이제는 국회의원들이 당원 눈치를 봐야 하는 지극히 정상적인 ‘민주당의 민주화’가 드디어 그 깃발을 높이 든 8·2 전당대회”라고 자평하기도 했다. 이처럼 정 대표를 탄탄히 받쳐주는 건 여의도 인맥이 아닌 당원이었다. 정 대표는 이들을 대주주 삼아 힘을 키워 주류로 자리 잡고 있다. 최근에는 당원권에 힘을 쏟으며 역사상 처음으로 ‘평당원 최고위원’ 선출을 시도하는가 하면 당원 주권 정당 실현을 강조하기 위해 ‘대의원 1인1표제’를 띄우기도 했다. 대의원 1인1표제는 당원들의 권한을 대폭 향상하는 방안이다. 정 대표는 지난 18일 열린 국회 당원주권 정당특위 출범식에서 “10년 넘게 당원주권정당, 1인1표를 주장해 왔지만, 아직까지도 열리지 않았다”며 “헌법에서 얘기하고 있는 평등 선거가 민주당에서도 구현이 될 수 있도록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3대 개혁 풀가동 이어 “대한민국 헌법에는 평등 선거가 명시돼있고, 많은 선거에서 1인1표가 행사되지만 유독 더불어민주당에선 누구는 1표, 누구는 17표를 행사한다”며 “헌법적으로 보나 상식적으로 보나 매우 부끄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재명정부가 국민주권시대를 강조하는 만큼 이에 발맞추기 위해서라도 민주당은 권리당원의 권리를 보장하고 상징적인 ‘1인1표’ 시대를 반드시 열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이 밖에도 정 대표는 당헌·당규 개정을 비롯한 ▲평당원 선출 준비 지원 ▲연말 당원 콘서트 지원 등을 약속했다. 당원의 힘이 커질 수록 정 대표의 정치적 입지도 넓어진다. 정 대표는 연일 국민의힘 때리기에 집중하며 당원으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민주당의 목표로 3대 개혁 완수를 내걸었다. 이는 비주류였던 자신의 정체성을 부각시키기 위한 전략으로도 읽힌다. 이 대통령이 ‘사이다’ 발언으로 당권까지 올랐다면 정 대표는 각종 특위를 띄우며 거침없는 개혁가의 모습을 굳히겠다는 것이다. 정 대표는 강성 지지층의 요구에 따라 검찰개혁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검찰청을 폐지하는 대신 가칭 중대범죄수사청(중수청)과 공소청을 신설하는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다음 달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정 대표는 지난달 21일 의원총회에서 이 대통령과 당 지도부의 만찬 회동을 언급하며 “검찰청 폐지, 공소청·중수청 설립을 담은 정부조직법을 9월 내 본회의에서 처리하자고 당과 대통령실이 입장을 같이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그는 “약속드린대로 추석 귀향길 뉴스에서 ‘검찰청은 폐지됐다’ ‘검찰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는 기쁜 소식을 국민 여러분께 전해드릴 수 있도록 당에선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신임 법제사법위원회 위원장으로 선출된 추미애 의원 역시 “법사위원장 선출은 검찰과 언론, 사법개혁 과제를 완수하라는 국민의 명령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며 전폭적으로 힘을 실었다. 이를 뒷받침하기 위한 위원회도 속속들이 들어섰다. 우선 민주당은 ‘국민주권 검찰정상화 특별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정 대표는 출범식 및 1차 회의에 참석해 “지금의 시대적 과제는 내란 종식, 내란 척결, 이정부 성공에 있다”며 “가장 시급히 해야 할 개혁 중 개혁이 검찰개혁”이라며 “개혁도 골든타임을 놓친다면 저항이 거세져서 좌초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시기가 중요하다”고 거듭 강조했다. 특위의 주요 과제로는 ▲수사·기소 완전 분리 ▲국민 주권 실현 및 민생 뒷받침 등을 제시했다. 새로운 구심점 이어 언론개혁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언론 보도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추석 전까지 도입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는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 배상을 의무화하는 법적 장치다. 언론뿐만 아니라 ‘유튜버’도 포함하는 안이 논의되는 것으로 전해진다. ‘국민중심 사법개혁특별위원회’도 출범했다. 정 대표는 “대법관의 증원과 추천 방식을 변경하는 내용의 사법개혁안을 추석 전까지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구석구석 눈도장을 찍기 위한 지역별 공략에도 나섰다. 지난 21일 호남발전특별위원회를 출범시키고 “다들 대한민국 민주화에 대해서 호남이 기여한 바가 지대하다는데, 국가는 ‘호남을 위해서 무엇을 했는가’에 대한 답을 이제 할 때가 되지 않았나”라고 꼬집었다. 정 대표는 “호남만 발전시키면 되겠느냐”며 영남발전특위도 띄웠다. 이는 내년 6월에 있을 지방선거를 대비해 대구·경북 등의 표밭을 다지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광폭 행보를 보이는 정 대표를 구심점으로 신흥 세력이 탄생할 것이란 관측이 제기된다. 정 대표는 계파 정치와 거리를 두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권력자의 주변에 사람이 모이는 것은 당연하다는 해석이다. 정 대표의 편에 선 동료 의원들에게도 시선이 쏠린다. 전당대회에서 정 대표를 공식적으로 지지했거나 개혁 선봉에 함께 섰던 의원 등이다. 정 대표가 당권 도전을 선언한 국회 기자회견장에는 장경태·최기상·문정복·임오경·양문석 의원 등이 자리했다. 여의도 이야기를 종합하면, 정 대표는 ‘당원 중심 정당’ 철학에 부합하는 인사로 장 의원을 꼽았다. 현재 장 의원은 평단원 최고위원 선출 절차를 위한 특위위원장을 맡고 있다. 최민희 의원은 정 대표를 공개 지지한 인물이다. 당시 정 대표가 수박 논란에 휩싸였을 당시 최 의원은 “심하게 비난받는 정청래 후보를 지켜보면 짠하다”며 “비난에도 역비난하지 않고 여전히 유쾌·상쾌하게 선거운동하는 정 후보를 격하게 지지한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이 밖에도 한민수·김영환·이성윤 의원은 경선 유세 현장에 함께하며 힘을 실어줬다. 왼쪽으로 붙는 민주당…좁아지는 공간 강성 지지층 등에 업고 개혁가의 길로 개혁가의 길을 걷는 정 대표의 존재감이 커지자 일각에서는 조기 대선을 거치며 ‘중도 보수론’으로 넓혀놨던 민주당의 정치 공간이 다시 좁아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 대표의 강경한 태도가 민주당의 기조가 된다면 야당과의 협치는 기대하기 어렵다는 평이다. 실제 정 대표는 “악수는 사람하고만 한다”며 국민의힘을 척결 대상으로 대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16주기 추모식에서 정 대표는 국민의힘 송언석 비상대책위원장(이하 비대위원장)과 악수는커녕 인사조차 나누지 않았다. 송 비대위원장 역시 적대감을 드러내면서 그야말로 ‘국회 빙하기’ 시대가 열렸다. 여당인 민주당은 좌우를 넓게 아우르는 정당이 돼야 앞으로 다가올 선거에서 유리한 구도를 유지할 수 있다. 지금처럼 국민의힘이 보수로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왼쪽은 조국혁신당, 진보당 등에 맡겨둔 채 중도 보수를 자처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당원의 힘으로 대표가 된 만큼 그는 개혁을 완수하기까지 지금과 같은 태도를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민주당 상임고문단도 “집권여당은 당원만 바라보고 정치를 해선 안 된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당 상임고문단 간담회에서 “정당의 주인은 당원이어야 한다는 데 공감한다”면서도 “우리 국민은 당원만으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고 밝혔다. 문희상 전 국회의장도 “내란의 뿌리를 뽑기 위해 전광석화처럼, 폭풍처럼 몰아쳐 처리하겠다는 대목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과유불급이다. 의욕이 앞서 결과를 내는 게 지리멸렬한 것보다는 훨씬 나으나, 지나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 또 다른 민주당으로 민주당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포스트 이재명’ ‘이재명 키즈’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나타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대표가 민주당의 새로운 길을 열어야 당이 계속해서 순환하는 등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민주당의 주류는 강성 지지층이다. 당원이 당을 좌지우지하는데 그들의 숫자가 얼마가 되든 목소리가 커 여론을 만드는 것”이라며 “이 주류의 흐름에 올라탄 사람이 정 대표다. 이 대통령이 대표이던 때와는 다른 모습의 민주당을 보게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아직 남은 정 견제 세력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가 SNS에 올렸다 곧바로 삭제한 게시글이 화제다. 민주당은 지난달 19~20일 양일간 경주를 찾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준비 상황을 점검했는데 정 대표가 마치 천마총 금관을 쓰고 있는 듯한 착시 사진이 문제가 된 것이다. 정 대표가 금관을 직접 착용한 것은 아니지만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이재명 대통령의 시에 왕 노릇을 한다” “벌써 왕인 것처럼 군다” 등 거친 비판이 쏟아졌다. 현재 해당 사진은 삭제됐지만 8·2 전당대회 때 불거진 박찬대 의원과의 앙금이 아직 남은 게 아니냐는 뒷말이 나온 이유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