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베가 산 자민당 잡다

  • 박형준 기자 ctzxp@ilyosisa.co.kr
  • 등록 2024.11.11 13:52:11
  • 호수 150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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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 폭망?’ 한일 보수정당 오버랩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일본 자민당은 지난 10월 중의원 선거서 패배했다. 자민당의 패배 이유는 국민의힘의 지난 4월 총선 패배와 상당히 겹친다. 민심을 지나치게 건드리고, 그 근원을 뿌리 뽑지 못하면 선거서 이길 수 없다.

일본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지난달 27일 제50회 중의원 총선거서 패배했다. 선거 직전 258석이었던 의석수는 191석으로 줄었고, 연정 파트너 공명당도 32석서 24석으로 줄었다. 공명당 이시이 게이이치 대표와 사토 시게키 부대표는 자신의 지역구서 낙선하는 수모를 겪었다. 두 당의 의석은 총 215석이 됐고, 이는 중의원 총 의석수인 465석 대비 과반에 미치지 못한다. 

열리는
게이트

자민당의 현 상황은 통일교 게이트와 정치자금 게이트의 여파가 이어진 결과이기 때문에 자업자득 성격이 강하다. 국민의힘이 각종 논란과 구설수로 인해 지난 4월 총선서 108석밖에 얻지 못한 것과 비교할 수 있다. 양국의 대표 보수정당은 어쩌다가 이런 상황을 맞이했을까?

국민의힘과 자민당은 각각 김건희 여사와 아베 신조 전 총리라는 단 1명이 남긴 여파로 총선 패배라는 성적표를 받았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22년 7월8일 나라시서 제26회 참의원 선거 후보 지원 유세를 하다가 야마가미 데쓰야로부터 총격을 받아 살해당했다. 야마가미는 모친이 통일교에 지나치게 몰두해 전 재산을 헌납하면서 큰 스트레스를 받았고, 부친도 이에 절망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베 일가는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전 총리 시절부터 문선명 통일교 총재와 깊은 관계를 맺었다. 리처드 새뮤얼스 MIT 국제학연구소장이 2001년 일본정책연구소를 통해 공개한 논문에 따르면, 통일교 일본 본부는 기시 전 총리 소유 토지에 설립됐다.

일본 내 통일교 신자들은 자민당 선거운동원으로 무보수로 활동했다. 정치서 가장 필요한 요소인 ‘사람’을 공급받은 것이다. 이 관계는 아베 전 총리로까지 이어졌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21년 통일교 행사에 직접 영상으로 찬조 출연했고, 문 총재의 손녀사위 오츠카 히로타카가 지난 2011년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아베 전 총리와 함께 찍은 사진도 뒤늦게 확인됐다.

통일교와 자민당의 밀착은 문 총재의 생전 어록서도 확인된다.

문 총재는 지난 1987년 “자민당 의원 중 최소 180명은 우리의 바람권 내에서 행동하지 않을 수 없다”며 “그 나라를 움직이고, 수상을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지난 1993년에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와 가깝게 지냈고, 그 직계 아베 신타로도 내가 정치적으로 성장시켰다”는 취지의 발언을 남겼다.

아베 신타로 전 외무상은 아베 전 총리의 부친이다. 아베 일가와 통일교의 밀착이 알려지자, 일본에선 야마가미 데쓰야에 대한 동정 여론이 크게 일었다. 이해가 가는 사정이 있는 사적 복수에 비교적 관대한 일본의 풍토와 맞물린 현상이다.

1명이 남긴 불씨 게이트로
선거 패 양국 여당 닮은꼴 

통일교 게이트가 자민당의 발목을 잡은 ‘과거’라면, 정치자금 게이트는 가장 민감한 현재 문제라고 할 수 있다. 파티를 개최해 벌어들인 정치자금을 축소 신고하거나 누락하던 관행이 대대적으로 공개돼 자민당의 오랜 파벌 정치를 형식적으로나마 끝낸 사건이다. 


정치자금 게이트는 지난 2022년 11월 일본공산당이 기관지를 통해 처음 밝혔다. 보도를 본 가미와키 히로시 고베가쿠엔대 교수는 대대적으로 자민당의 정치자금 실태를 조사했고, 확인된 위법 사항을 검찰에 고발했다. 장부에 기재하지 않은 금액이 제일 컸던 파벌은 아베 전 총리의 세이와 정책연구회(속칭 ‘아베파’)였다.

총무성이 공개했던 2022년 정치자금 보고서에 따르면, 아베파는 정치자금 9480만엔을 누락했다. 당시 아베파는 중의원 94명이 가입한 최대 파벌이었다.

이는 아베파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기시다 후미오 전 총리의 파벌 굉지회는 물론, 이시바 시게루 총리의 파벌 수월회서도 정치자금을 축소 기재한 정황이 밝혀졌다. 이후 아소 다로 전 총리의 지공회와 모테기 도시미쓰 간사장의 헤이세이 연구회를 제외한 모든 파벌은 해산을 선언했다.

하지만 자민당 내 징계는 성난 민심을 가라앉히기엔 부족했다. 징계는 수장을 잃고 표류하는 아베파 소속 의원들에게 집중됐고, 기시다 전 총리와 당 원로 니카이 도시히로 전 간사장에 대한 징계는 없었다. 연루 의원 상당수도 공천을 받았다.

국민의힘은 김 여사에 대한 각종 의혹에 대해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큰 의미를 부여하기 어려운 특별감찰관 임명조차도 제대로 추진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는 명태균 게이트로까지 확산돼 윤석열 대통령의 지지율이 10%대로 주저앉았다. 1명이 쏘아 올린 게이트는 때때로 나라를 뒤흔든다.

기시다 전 총리가 취임 이후 얻은 부정적인 별명은 ‘증세 안경’이었다. 기시다 전 총리가 이어받은 일본 경제는 아베노믹스 이후의 상황이다. 아베 전 총리는 재임 중 “윤전기를 쌩쌩 돌려서 일본은행이 돈을 무제한으로 찍어내게 하겠다”고 말했다.

일본은 15년 넘게 제로금리에 가까울 정도로 극단적인 저금리를 유지했다. 따라서 아베 전 총리는 “각종 채권을 대량으로 매입하는 방식으로 양적완화를 진행해 유동성을 공급한다”는 방침을 토대로 경기를 부양시키려고 했다. 엔화의 가치를 고의로 떨어트린 것이다. 이렇게 되면 물가 상승과 임금 상승 둔화라는 후폭풍이 따라온다.

이 상황이 이어지고 있던 지난 2022년 12월, 기시다 전 총리는 방위비 증액을 추진했다. 이어 ▲법인세 ▲소득세 ▲담배소비세 등 세금을 인상했다. 반대 여론을 무릅쓰고,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도 국비로 진행했다.

레이와 신센구미 소속 야마모토 타로 참의원은 지난 2023년 11월 기시다 전 총리에게 “별명이 ‘증세 빌어먹을 안경’이라는 정치인이 있는데, 누구인 줄 아느냐”면서 조롱성 질문을 던졌다. 그러자 기시다 전 총리는 “인터넷서 나를 ‘증세 안경’이라고 부르는 것은 알고 있다”고 답변했다.

늪으로…
방어 불능

영국서도 지난 7월 총선서 정권이 교체돼 노동당이 집권했다. 그전까지 집권했던 보수당 리즈 트러스 내각과 리시 수낙 내각은 일본과는 정반대로 감세와 공공지출 축소를 집중적으로 추진하다가 정권을 잃었다. 기시다 전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장례식까지 국비로 치러 민심을 건드렸다면, 수낙 전 총리는 상속세 폐지와 징병제 부활까지 추진하다가 청년 민심을 건드려 정권을 잃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각종 공약과 정책의 진행 강도를 전혀 조절하지 못하고 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현대사회의 특성상 정책 추진에는 세심한 조율이 필요하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지르고 보는’ 정책 추진 형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사례는 연구개발 예산 삭감과 의대 증원 논란이다. 사전 조정 없이 섣부르게 정책을 쐐기 박듯이 밝혀놓고, 수습은 전혀 못하고 있다. 거기에 리지 수낙 전 총리처럼 폐지까지 나가지는 못하고 있지만, 상속세 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는 윤 대통령이 추진하는 각종 부자 감세의 연장선상으로 해석되고 있고, 세수 결손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국민의힘과 자민당은 위기에 직면해 ‘스타’ 1명을 선거의 전면에 내세운다. 국민의힘은 한동훈 전 법무부 장관을 비대위원장으로 임명했고, 이시바 총리는 중의원 해산 이후 고이즈미 신지로 전 환경상을 자민당 선거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고이즈미 의원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의 차남이고, ‘펀쿨섹’으로 대표되는 괴상한 발언들로 유명하다. 고이즈미 의원은 아버지의 탈원전 운동 참여 여파로 아베 전 총리와 결별한 후폭풍을 톡톡히 치렀다. 아베 전 총리는 제4차 내각의 제2차 개조 내각서 고이즈미 의원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홍준표 대구광역시장은 지난 2017년 4월 대선 유세 중 “이명박 전 대통령이 환경부 장관을 제의했는데, 일언지하에 거절했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일본서도 환경상은 요직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환경상은 후쿠시마 원전 사고 등 대형 악재를 취급해야 하고, 정치적으로 빛을 보기 어려운 직책이다.

아베 전 총리의 고이즈미 환경상 임명에 대해서는 “적당히 구색을 갖춘 후 사지로 밀어버리려는 의도의 임명일 수도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고이즈미 의원은 ‘펀쿨섹’ 발언 외에도 “온실가스를 46% 감축하겠다는 목표는 갑자기 46이라는 실루엣이 떠올라 결정했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면서 환경상 직책을 버텼다. 이어 지난 2021년 자민당 총재 선거서부터 정치적으로 두각을 드러냈다.


당시 고이즈미 의원은 이시바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함께 ‘고이시카와’라는 3자 연대를 구성했다. 이들은 “대중의 인기는 높지만, 당내 기반은 약하다”는 공통점이 있다. 3자 연대는 고이즈미 의원이 주도해 구성됐다. 3자 연대는 이시바 총리를 총리 후보로 내세웠지만, 아베 전 총리가 지원한 기시다 전 총리에게 패배했다.

이번에는 아베 전 총리가 오래전부터 지원했던 다카이치 사나에 전 총무대신을 이기고, 이시바 총리를 당선시켰다. 여기에는 다카이치 의원과 대단히 사이가 안 좋은 기시다 전 총리의 지원도 큰 영향을 준 것으로 알려졌다.

스타 1명
땜질 시도

이시바 총리와 고이즈미 의원의 당면 과제는 양대 게이트, 그중서도 특히 정치자금 게이트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시바 총리는 중의원 해산에 소극적이었지만, 고이즈미 의원은 “새로운 정권이 탄생하면, 국민의 신임을 묻는 것이 당연하다”면서 중의원 해산을 강하게 주장했다.

그 결과는 연정의 과반 미달이었다. 고이즈미 의원은 선거대책위원장이었기 때문에 정치적인 책임서 자유롭기 어렵다. 젊고 유망한 스타 1명을 내세워 땜질을 시도했다가 선거서 패배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국민의힘 한 대표는 지난 4월 총선 패배 당시 비대위원장이었다. 한 대표의 4월 총선 패배 이후 상황과 고이즈미 의원의 현 상황은 비슷하다. 한 대표는 국회의원을 지낸 적이 없고, 고이즈미 의원은 지난 10월 당선까지 포함해 6선에 불과하다. 아소 전 총리는 15선에 당선됐고, 이시바 총리도 13선이다. 한국에선 6선이면 국회의장에 도전할 수 있는 중진이지만, 일본서는 6선이 중진 반열에 들기는 어렵다.

다만 고이즈미 의원과 한 대표 모두 정치 생명 자체가 끝난 것은 아니다. 특히 고이즈미 의원에 대해서는 일각의 두둔도 있다. 제1야당 입헌민주당 노다 요시히코 대표는 국민민주당(이하 국민당)과 일본유신회에 후보 단일화를 제안했고, 이들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성사되지 못했던 이유는 부족한 시간이었다. “서둘러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 국면에 돌입시켜, 야 3당이 뭉치지 못하게 했다”는 평가가 나올 수 있었던 지점이었다. 만약 야 3당이 연정 합의에 성공했다면, 자민당은 야당이 될 수도 있었다.

한 대표도 윤 대통령과의 관계가 험악해지고, 총선 책임론이 집중되는 상황서도 지난 7월 국민의힘 당 대표로 당선됐다. 또 20명 내외의 현역 의원들과 계파를 구성했다. 한 대표와 계파 구성원들이 극단적으로 결심하면, 얼마든지 민주당과 손잡고 김건희 특검이나 대통령 탄핵을 추진할 수도 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 모두 서로를 함부로 대하기 어려운 위치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시바 총리는 자민당의 선거 패배 확정 후 “직책을 완수하겠다”며 “우리가 내건 정책을 실현하기 위해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등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하지만 <요미우리신문>은 지난달 29일 사설서 “이시바 총리는 책임의 무게를 자각하라”며 “빠르게 진퇴를 결정하는 것이 헌정의 상도”라고 요구했다.

헌정의 상도는 일본 정당정치의 관례를 의미한다. <산케이신문>도 같은 날 “책임지고 깨끗하게 사직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일각서는 고이즈미 의원과 다카이치 의원을 차기 총리로 거론하고 있다.

자민당 패배 직후 야당과 정책협의
유연한 대응 배운다고 친일 비난?

하지만 이시바 총리 입장에선 자신의 잘못으로 불거진 문제 때문에 패배한 선거라고 보기 어려워서 사퇴 요구를 받아들일 가능성은 크지 않다. 정치자금 게이트에 수월회가 연루된 것은 사실이지만, 크게 물의를 일으킨 파벌은 아베파였다.

아울러 통일교 게이트는 아베 전 총리가 몸통이나 다름없다. 구 아베파에 속했던 의원들이 다카이치 의원을 중심으로 다시 뭉친다면, 이시바 총리와 큰 다툼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또 선거 이후 존재감을 키운 제3야당 국민당의 선택에 따라 정국의 구도가 달라질 수도 있다. 국민당은 이번 선거서 총 28석을 확보했다. 자민당과 입헌민주당 모두 국민당을 포섭하려고 한다. 자민당과 국민당은 지난달 31일 정책협의 개시를 합의했다.

핵심 쟁점은 ‘103만엔의 벽’이라고 하는 소득세 과세 최저한도였다. 현행 103만엔(약 929만원)인 최저한도를 178만엔(약 1606만원)으로 올리는 것이 국민당의 대표 공약이다. 국민당 다마키 유이치로 대표는 지난 3일 “소득세 비과세 한도 인상에 자민당이 응하지 않으면, 정권 운영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민당은 선거 패배를 빠르게 인정하고 제3야당과의 정책협의를 시작으로 협상에 돌입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국민의힘은 선거 패배 이후로도 달라진 자세를 보이지 않았다. 여기에 더해 명태균 게이트까지 불거지면서 퇴진 요구가 서서히 일어나고 있다. 총선 패배 이유를 분석해 기록하는 백서 작성 과정서도 서로에게 책임을 추궁하는 계파 갈등이 그대로 재현됐다.

박근혜 전 대통령도 새누리당의 제20대 총선 패배 이후 국정 장악력이 누수되다가 우병우 전 민정수석 논란과 비선 실세 최서원(개명 전 ‘최순실’)의 존재가 불거져 탄핵 가결에 이르렀다. 선거의 패배는 정권의 몰락 가능성을 의미하는 대표적인 전조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김 여사 논란은 윤 대통령의 검사 재직 시절부터 알음알음 알려지다가 대선 출마 이후 크게 불거진 오래된 사안이다. 오래된 의혹은 전혀 해소되지 못했고, 윤 대통령의 인사 임명 논란과 각종 정책 추진 논란이 맞물려 현재에 이르렀다.

박 전 대통령과 윤 대통령은 여당서도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이후 이준석·김기현·한동훈 등 여당 수장 3명을 끌어내렸다. 이 같은 대응은 분명히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윤 대통령이 고압적인 태도로 일관하는 사이 지지율은 10%대로 내려앉았다.

퇴진 요구
내홍 가능성

자민당의 지난 10월 중의원 선거 패배와 윤 대통령의 현 상황은 거시적인 공통점이 있다. 민심을 지나치게 건드리는 정치적 행각을 일삼고, 문제의 근원을 뿌리 뽑지 못하는 정치세력은 반드시 선거서 패배한다.

하지만 자민당은 빨리 현실을 인정하고 국민당과 정책협의에 들어갔다. 1993년 중의원 선거서 패배해 정권을 잃은 후에도 빠르게 현실을 받아들여 일본사회당과 대연정을 합의했다. 빠르고 유연한 대응이야말로 자민당이 오랫동안 정권을 잡은 비결이었다. 이 비결을 배운다고 하더라도 아무도 ‘친일’이라고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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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단독] 김건희 일가 연루 의혹 ‘선라이즈F&T’ 주주명부 공개

갈수록 증폭되는 평택 논란 이제야 공개된 소소한 흔적 쉽게 거두지 못하는 의심 의미심장 세력 교체 과정 [일요시사 취재1팀] 양동주 기자 = 소문이 어느덧 사실처럼 인식되고 있다. 명확한 물증이 없는 가운데 파편적인 의혹이 덧씌워진 양상은 좀처럼 바뀌지 않고 있으며, 흐름을 파악할 만한 유의미한 흔적이 이제야 겨우 나왔을 뿐이다. 증폭된 의혹 뒤편에서 여전히 진실은 빼꼼히 잘 보이지 않는다. 2010년 9월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황해경제자유구역에 자리 잡은 유일한 농산물 가공 업체로, 그간 심심치 않게 밀수 의혹을 받아왔다. 가공 목적으로 수입한 농산물을 가공 없이 시중에 유통시켜 엄청난 차익을 봤다는 꼬리표가 뒤따랐다. 의혹하는 눈초리 선라이즈에프앤티가 취급했던 대다수 농산물이 고관세 품목이라는 점은 이 같은 의혹을 부채질했다. 그간 선라이즈에프앤티는 ▲녹두 ▲콩나물콩 ▲다대기(혼합양념) ▲생강 ▲마늘 ▲참깨 ▲팥 ▲서리태 등 높은 세율이 붙는 고관세 품목을 주로 수입했던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한 예로 콩나물콩의 경우 그대로 들여와 국내에 유통하면 487% 관세가 부과되지만, 콩나물 재배 목적으로 수입하면 27%만 반영된다. 평택세관에 몸담았던 다수의 전직 세관공무원이 기업 출범 및 운영에 관여했다는 점도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부정적으로 보게 만들었다. 심지어 선라이즈에프앤티 이사진에 포함됐던 특정 세관 출신 임원이 한때 다이아몬드 밀수 사건에 이름이 오르내린 사례도 존재한다. 수년 전부터는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동일선상에서 바라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선라이즈에프앤티의 밀수 의혹을 수차례에 걸쳐 제기했던 공익 제보자 이성열씨가 재판에 연루되는 과정에서 김건희씨의 모친인 최은순씨가 거론됐던 게 이 같은 흐름에 불을 지핀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정치평론가인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이 최근 ‘평택항’을 언급하자,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은 사실처럼 받아들여질 정도가 됐다. 장 소장은 SBS라디오 <김태현의 뉴스쇼>가 운영하는 유튜브 방송에 출연해 김건희씨 일가의 수상한 물건 수입 의혹과 관련한 이야기를 전했다. 장 소장은 “최은순씨가 주인으로 있는 농수산물 수입업체에서 이상한 것을 들고 오려고 하다가 걸려서 (김건희) 오빠와 김건희씨가 그것을 무마시키려고 여러 가지 이상한 (일들을 했다고 한다)”며 “어떤 물건인지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았지만, 부적절한 물건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고 말했다. 급기야 선라이즈에프앤티의 폐업이 알려지자, 의혹은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이 커진 양상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국세청 사업자 과세 유형 조회 결과 지난 10일자로 폐업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폐업자로 조회된 지난 10일은 김건희 특검법이 공포된 시기와 맞물린다. 물론 꾸준히 의혹이 제기된 것과 별개로, 김건희씨 일가와 선라이즈에프앤티 간 연관성을 입증할 만한 확실한 단서는 없는 상황이다. 특히 주주명부가 지금껏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다는 게 의혹과 진실을 구분 짓기 어렵게 만들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일요시사>가 최초 입수한 주주명부는 간접적으로나마 의문을 풀 수 있는 열쇠로 작용할 여지를 남긴다. 의문 해소 첫 단추 2022년 10월 작성된 ‘카리나에프앤티(선라이즈에프앤티에서 2020년 9월 상호 변경) 주주명부’를 검토한 결과 주주는 총 17명, 발행주식은 91만8400주(1주당 5000원)로 확인됐다. 2010년 9월 자본금 5억원으로 설립된 선라이즈에프앤티는 수차례 증자를 거쳤고, 해당 시기에 자본금을 45억9200만원으로 늘린 상태였다. 일단 주주명부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의 이름을 찾을 수 없다. 대신 경영권 교체 과정이나마 엿볼 수 있을 뿐이다. 법인 등기와 주주명부를 교차 검증한 결과를 토대로 추정하면, 표면상 선라이즈에프앤티 지배 세력은 ‘전직 세관공무원(설립~2018년 중순)→지엔티에이치(~2020년 중순)→킴스에O엔O(~2022년 초순)→동OO앤에스(~2025년 6월)’ 순으로 변경된 흐름이다. 첫 번째 경영권 교체는 ‘펀딩하이 연체 사건’과 함께 발생했다. 펀딩하이는 중국·동남아시아에서 농산물을 수입하는 업체에 돈을 빌려 주고, 투자자들에게 15% 이상 수익을 보장하는 펀딩 상품으로 인기를 끌던 P2P 업체였다. 그러나 펀딩하이는 2018년 6월20일 ‘마늘 시즌2-17차(모집 금액 3억원, 차주 승리산업)’ 펀딩 상품의 연체를 시작으로 ▲세척 당근 시즌2-18차(모집금액 5억원, 차주 지엔티에이치) ▲김치 펀딩 2차(모집금액 1억2000만원, 차주 상아농산) ▲번데기 펀딩 1차(모집금액 1억8000만원, 차주 월량완코리아) 등에서 차주의 투자금 상환 실패를 알렸다. 연체 금액은 ▲지엔티에이치 29억원 ▲승리산업 33억원 ▲상아농산 11억8000만원 ▲월량완코리아 1억8000만원 등 총 75억6000만원에 달했다. 급기야 펀딩하이는 연체율 100%를 찍은 채 영업을 중단했다. 상환 실패 이후 차주 사이에 관련성이 드러났다. 지엔티에이치와 승리산업에서 대표이사였던 윤석호씨는 두 회사 지분을 각각 60%, 100% 보유 중이었다. 또한 월량완코리아 사내이사로도 등재돼있었다. 연체가 발생한 직접적인 사유는 선라이즈에프앤티를 대상으로 한 지분 투자였다. 지엔티에이치는 펀딩받은 금액을 농산물을 들여오는 데 쓰지 않고,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매입하는 데 활용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이를 계기로 지엔티에이치는 2018년 6월경 주식 16만1400주를 확보한 선라이즈에프앤티 최대주주로 올라섰다.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확보한 이후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명단에 변화가 목격됐다. 선라이즈에프앤티 초창기부터 함께했던 사내이사와 부친에 이어 회사에 몸담았던 대표이사를 대신해 지엔티에이치가 끌어들인 얼굴들이 등기임원 자리를 꿰찼다. 정작 지엔티에이치는 연체 발생 넉 달 후인 2018년 10월 보유 중이던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에 넘겼다. 펀딩하이 투자자들과의 소송전이 불거지자 중국에 본거지를 둔 우군에 주식을 양도한 모양새였다. 거듭되는 교체 수순 두 번째 경영권 교체는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의 주체로 올라서는 과정에서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충청권에 본적을 둔 킴스에O엔O는 2022년 10월 기준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10만8200주를 확보한 것으로 확인됐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의 친인척이 보유한 주식 13만2800주를 합산하면 우호 주식은 24만주 안팎이다. 기존 지엔티에이치 측 우호 세력(란릉현래보식품유한공사 16만1400주+마송재 3만주)과 비교해 5만주 가까이 격차를 벌린 셈이다. 킴스에O엔O 측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을 대량 매입한 시기는 2020년 중후반으로 추정된다. 이 무렵 선라이즈에프앤티 등기임원 구성이 크게 요동쳤다는 점을 통해 짐작 가능한 사안이다. 실제로 지엔티에이치가 지배력을 발휘하던 2018년 7월 대표이사에 선임됐던 김정일 대표는 2020년 3월 해임됐다. 2018년 9월 취임했던 또 다른 대표이사 역시 당해 10월을 넘기지 못한 채 사임했다. 공석이 된 주요 등기임원 자리는 킴스에O엔O 측 인물로 채워졌다. 킴스에O엔O 대표이사가 2020년 10월 선라이즈에프앤티 대표이사로 취임했고, 해당 시기에 사외이사, 감사 등 등기임원 전원이 새 얼굴로 교체됐다. 킴스에O엔O에 이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한 곳은 식료품 제조업을 영위하는 동OO앤에스였다. 이 회사는 2022년 10월 기준 주주명부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지분율 44.64%)를 보유한 단일 최대주주로 등재돼있다. 여기에 우호 세력(글로O포O 1만주+김성수 2만주+김종봉 788주)의 주식을 합산하면 지분율은 50%에 육박한다. 동OO앤에스는 사실상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인수하고자 만든 업체로 비쳐질 여지를 남긴다. 2022년 2월 출범 당시 자본금 10억원짜리였던 동OO앤에스는 불과 두 달 만인 2022년 4월14일 자본금을 21억원으로 두 배 이상 키웠다. 공교롭게도 동OO앤에스가 설립 이후 8개월 사이 선라이즈에프앤티 주식 41만주를 확보하는 과정에서 투입한 금액은 총 20억5000만원이었다. 이는 동OO앤에스 자본금 21억원이 선라이즈 주식 41만주를 매입하는 데 쓰였을 가능성에 주목하게 만든다. 게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는 기존 61만8400주였던 발행주식을 2022년 4월22일 91만8400주로 30만주 확대했다. 동OO앤에스가 자본금을 21억원으로 확충한 지 8일 만이다. 선라이즈에프앤티가 발행주식을 30만주 늘린 덕분에 동OO앤에스는 상대적으로 수월하게 주식 41만주를 확보한 형국이다. 동OO앤에스가 선라이즈에프앤티를 지배하는 위치로 올라설 무렵에 선라이즈에프앤티 임원 구성은 또 한 번 바뀌었다. 동OO앤에스 대표이사가 사내이사, 글로O포O 대표이사가 사외이사에 이름을 올렸고, 김성수 대표이사가 신규 선임됐다. 이후 김성수 대표는 선라이즈에프앤티 폐업 전까지 자리를 지킨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되짚어보는 연결고리 한편 일각에서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는 지엔티에이치 측이 지배력을 상실한 이후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나마 킴스에O엔O 혹은 동OO앤에스와의 연관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한 경찰 관계자는 “김건희씨 일가에서 선라이즈에프앤티에 관여한 직접적인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만약 영향력을 행사했다면 그 시기를 2021년 이후로 특정해볼 수 있을 것”이라며 “항간에 떠도는 마약 적발 여부는 2022년 근방으로 얘기가 오가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heaty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