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요시사 취재2팀] 김준혁 기자 = 1년5개월 넘게 이어진 의대생 집단 수업 거부 사태가 사실상 막바지에 접어드는 모양새다. 정부가 이달 중 정상화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2학기 복귀 예정인 학생들이 23일 “수업에 성실히 참여하겠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제출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날 대학가에 따르면, 전국 40개 의대 학장 모임인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는 지난 22일 회의에서 복귀 의대생을 대상으로 한 서약서를 만들어 배포했다.
서약서엔 ▲동료 학생의 학습권 존중 ▲집단 따돌림, 폭력 등 부당한 행위 금지 ▲성실한 수업 참여 및 규칙 준수 등의 내용이 포함됐고, 위반 시 학칙에 따라 처벌이 가능하다는 조항도 명시됐다.
이는 최근 의료계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집단 행동에 동참하지 않고 복귀한 전공의, 의대생들에 대한 보복 예고 글이 올라온 데 대한 대응으로 풀이된다. 다만 일각에선 서약서 작성이 학교와 학생 간의 불신감을 형성하고, 학생들 간 갈등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수도권의 한 의대 학장은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사실상 어른들이 반성문을 쓰라고 강요하는 인상을 줄 수 있다”며 “학생과의 충분한 소통 없이 ‘쓰지 않으면 징계받는다’는 식으로 강압적으로 접근한다면 오히려 상황이 더 악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강제력이 있는 것도 아닌 서약서로 학생 간 갈등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내다봤다.
지난 22일, 의과대학 선진화를 위한 총장협의회(의총협)와 KAMC는 회의를 통해 복귀 학생의 학년별 졸업, 진급 일정 등 의대 정상화 방안에 대한 초안을 마련했다. KAMC에 따르면, 올해 1학기 수업에 불참한 전국 8000여명의 의대생에겐 예정대로 유급 처분을 내리기로 했다.
학사 일정에 부담이 적은 예과·본과 1·2학년은 조정을 통해 2월에 정상 졸업을 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본과 3학년은 학생들을 2년간 교육 후 8월에 졸업시키느냐, 1년6개월 안에 학사 일정을 압축해 2월에 졸업시키느냐로 의견이 갈린 만큼, 각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본과 4학년의 경우 내년 8월에 졸업하기로 했으나, 그해 9월 치러지는 의사 국가시험(국시) 응시 자격을 갖추지 못한다는 점이 문제가 됐다. 1주당 36시간, 총 52주간 진행되는 임상 실습 시간을 채울 수 없기 때문이다. 이에 대한 대책으로 의총협은 이듬해 상반기에 추가 국시를 실시하도록 정부에 건의하기로 했다.
앞서 지난해 9월 382명이 응시한 제89회 의사 국시 합격자는 269명으로 전년도 합격자 수(3045명) 대비 8.8% 수준에 불과했고, 평년과 비교해도 10분의 1에 그쳐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정부도 의사 수급 문제 해결에 힘을 쓰고 있는 만큼, 국시 추가 시행에 대해선 긍정적으로 검토하지 않겠냐는 것이 교육계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교육계에선 결국 복귀 의대생을 위해 계절 학기 등 별도 학사 일정도 마련해야 하며, ‘추가 국시’ 역시 국가 예산을 투입해 진행해야 하는 점 등을 근거로, 결국 과도한 특혜를 제공하는 건 매한가지며 지난 3월 복귀생과의 형평성도 맞지 않는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 기자실에서 “특혜에 대해 따가운 지적이 있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면서도 “(당초 의정 갈등이 정부의) 일방적인 정책으로 시작된 일이라는 것을 감안해야 한다. 또 2년 이상 의사 배출에 공백이 생기면 국민들의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고 해명했다.
전북대 의대 교수회도 이날 성명을 내고 “윤석열정부의 일방적인 행정 조치로 촉발된 의정 갈등 속에서 학생들이 복귀를 결단한 것은 단순한 수업 재개를 넘어 의료인으로서 책임을 다시 감당하겠다는 다짐”이라며 “이들의 용기 있는 결정을 격려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들은 “학교 본부, 학장단과 긴밀히 협력해 교육과정 운영 형평성과 공정성을 확보하고 교육의 질과 연속성을 회복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며 “학생들의 복귀가 헛되지 않도록 교육의 질을 회복하고, 지역 의료에 기여하는 길로 나아갈 것”이라고 약속하기도 했다.
다만 최근 국민동의청원이 제기되는 등 의대생 복귀에 대한 ‘특혜 논란’은 좀처럼 가라앉지 않는 분위기다.
지난 17일, 국회 국민동의청원 게시판에는 ‘의대생·전공의에 대한 복귀 특혜 부여 반대에 관한 청원’이라는 제목의 글이 게재됐고, 일주일이 채 되지 않은 23일, 5만5000여명(오후 2시 기준)의 동의를 얻으며 국회 상임위원회 심사 요건(한 달간 5만명)을 충족했다.
청원인은 “국민은 생명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의사를 원한다. 별다른 책임 없이 복귀하는 일이 반복된다면 의료계 전반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질 수밖에 없다”며 “스스로 교육과 수련을 거부한 일부 의대생과 전공의들이 복귀를 요구하며 특혜를 기대하는 모습은 형평성에 어긋나며 국민적 박탈감을 심화시킨다”고 주장했다.
한국환자단체연합회도 지난 1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자발적 의사에 따라 사직·휴학했다고 주장하면서 1년5개월 동안 의료와 교육 현장을 떠난 전공의와 의대생은 조건 없이 복귀해야 한다”면서 “또 먼저 복귀한 이들에겐 정부에 의한 2차 가해가 될 수 있는 만큼, 복귀는 조건 없이 자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교육부는 오는 24일 오전 정부서울청사에서 ‘의대생 복귀 및 교육 운영 방안’에 대한 브리핑을 진행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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