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토로> ‘백종원에게 뒤통수 맞고 망한’ 이상철 전 한주DMS 대표

“백 대표가 생막걸리 시장 죽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상철 전 한주DMS 대표는 4년 전 마스크를 쓰고 <일요시사TV> 인터뷰에 응했다. 코로나19 시국이었다. 이번에 취재진 앞에 선 그는 맨얼굴을 드러내고 담담하게 말했다. “(백종원은) 원수나 마찬가지죠.”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3년 전 영상이 ‘파묘’됐다. <일요시사TV>에서 제작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관련 콘텐츠다. ‘‘엇갈린 주장’ 호프식 막걸리 원조 논란(feat. 백종원 더본코리아)’ 영상에는 백 대표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주장하는 이상철 당시 한주DMS 대표가 출연했다.

기술 개발 후
상업화 과정서

쟁점은 더본코리아가 론칭한 ‘막이오름’의 ‘호프식 막걸리’ 도용 여부였다. 호프식 막걸리는 생맥주 기계인 케그를 이용해 막걸리를 제조, 판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맥줏집에서 잔 단위로 판매하는 생맥주처럼 생막걸리를 팔겠다는 것이다.

당시 백 대표는 ‘생맥주처럼 즐기는 막걸리’라는 문구를 내세워 막걸리 프랜차이즈 ‘막이오름’을 론칭, 확장하던 중이었다.

더본코리아 측은 이 전 대표의 주장에 “예전부터 일반 생맥줏집과 막걸리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 사용하던 방식(생맥주 디스펜스)으로, 이 대표의 아이디어와는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주세법 논란은 피하지 못했다.


주세법과 주류면허에관한법률(주류면허법)에 따르면 주류를 양조장으로부터 출고한 그대로 판매하지 않고 매장에서 물리‧화학적 작용을 가해 가공, 조작해 판매하면 안 된다.

당시 막이오름은 병 막걸리를 맥주용 케그에 붓고 탄산을 첨가해 탭을 이용해 잔에 따라 판매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막이오름의 막걸리 판매 방식이 주세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더본코리아는 탭 막걸리 판매를 중단하고 ‘우리 술의 새로운 막이 오르다’로 문구를 변경했다.

프랜차이즈의 핵심 콘텐츠를 접어버린 것이다.

2021년 10월 <일요시사TV>를 통해 공개된 이 전 대표의 주장은 소리 소문 없이 묻혔다. 다양한 방송 출연으로 백 대표의 인기가 끝 모르고 높아지던 때였다. 3년여 후 백 대표와 더본코리아 관련 논란이 들불 번지듯이 퍼지는 과정에서 해당 영상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상에는 ‘3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니…’라며 놀라움을 표하는 댓글이 줄 이어 달렸다.

2021년 아이디어 도용 의혹 주장
더본코리아 논란 과정에서 파묘돼

지난 10일 충남 천안의 한 사무실에서 이 전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은 각종 기계와 술 등으로 꽉 차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기계를 옮겨 앉을 자리를 마련해야 할 정도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생막걸리용 케그였다. 인터뷰는 케그를 사이에 두고 진행됐다.


이 전 대표는 일찌감치 막걸리의 상업적 가능성을 알아봤다. 막걸리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주류로 꼽히는 맥주와 위스키, 그중에서도 맥주와 비견될 만한 상업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막걸리 세계화 등 ‘대박’을 위해서는 ‘현대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표는 “술은 도수가 셀수록 맛있다. 문제는 도수가 세면 금세 취한다는 점이다. 도수가 낮으면서도 술맛을 돋우기 위해서는 탄산이 필요하다. 톡 쏘는 맛을 술에 담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게 바로 맥주”라며 “맥주 시장의 규모가 600조원이 넘는데 전 세계에서 맥주랑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술로 꼽히던 게 막걸리다. 맥주가 톡 쏘면서도 개운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라면 이것과 똑같이 만들 수 있는 게 막걸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2010년대 일본에서 세계화가 가능한 술로 막걸리를 꼽으면서 쌀 문화권에서 10조엔(약 100억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고 봤다. 맥주 같은 음용감을 제공한다는 전제하에 시장이 확장될 가능성을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은 막걸리를 제조하기에 적합한 기후 조건이 아니었기에 막걸리 세계화에 실패했다. 도수가 떨어질수록 술이 잘 상하기 때문에 시중에 판매되는 5~6도 막걸리를 제조해 유통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 것이다. 그 대신 일본은 하이볼 같은 RTD(Ready To Drunk, 알코올에 탄산수를 섞어 바로 마실 수 있는 음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RTD는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성장세를 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막걸리는 이른바 ‘어르신의 술’로 머물렀다. 고가의 고급 막걸리가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그들만의 리그’였다. 이 전 대표는 막걸리의 경쟁력, 상업성, 세계화 가능성 등을 보고 현대화 작업에 뛰어들었다. 아직은 국내에 국한돼있지만 막걸리의 시장성을 매력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음회 이후
연락 뚝 끊겨

이 전 대표는 “맥주는 제국주의 시절에 세계화가 되면서 나라별로 전부 쪼개졌다. 나라별로 공장을 세우고 토착화되면서 이른바 ‘로컬라이징’ 됐다. 막걸리를 먹어본 외국인은 대부분 ‘좋은 술’이라고 말하지만 아직까지 해외시장은 뚫지 못했다. 그러니 막걸리 세계화에 성공한다면 굉장히 큰 시장을 독점적으로 가져갈 기회를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고분자공학을 전공한 이 전 대표는 처음에는 막걸리라는 완성품에 기술을 접목해 현대적인 형태로 바꾸는 기계를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막걸리 제조기술 자체도 현대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제조와 유통, 판매 과정까지 모두 현대화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표의 전공이 빛을 발했다. 이 전 대표는 “술을 만드는 재료가 전분인데, 전분은 유기고분자다. 유기고분자를 분해해 술을 만드는 것이다. 고분자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맨 끝단에 일어나는 화학 반응만 가지고 술을 만드는데,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그 앞단에 있는 고분자를 분해하고 그것이 발효되도록 단위 분자로 쪼개는 과정이다. 막걸리 제조 기술을 현대화하는 데 필요한 학문이 고분자공학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6~2007년, 2015~2017년, 최근 등 기술 개발을 거쳐 특허를 출원했다. 2007년 막걸리용 케그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지만 실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막걸리 관련 규제가 2015년에야 풀렸기 때문이다. 2015년 전까지 주류 중 막걸리만 유일하게 용기 규격 제한이 있었다. 2ℓ 미만으로 제한돼있던 것이다.

이 규제가 완화되면서 이 전 대표의 기술이 빛을 볼 기회가 생겼다.


이 전 대표는 “그쯤에 백종원이 주력으로 운영하던 프랜차이즈가 한신포차, 새마을식당 등 주류 중심 식당이었다. 특히 한신포차에서 대표 메뉴로 판매하던 닭발이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는 안주였다. 한신포차에 막걸리를 공급해보자고 생각해 백종원과 미팅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호프식 막걸리를 한신포차에서 팔아보려 한 것이다.

첫 미팅은 음식점 사장, 프랜차이즈 가맹점 운영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에서 이뤄졌다.

미팅 1년 뒤
사업 론칭해

백 대표의 주최로 이뤄진 모임에서 이 전 대표는 막걸리 현대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이 전 대표는 “(백종원이) 공감한다. 관심 있다. 별도로 만나서 이야기해 보자고 해서 2018년 4월에 장비를 들고 더본코리아를 찾아가 시음회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정작 이날 시음회에는 백 대표가 없었다고 한다. 이 전 대표에 따르면, 당시 백 대표는 방송 출연 등으로 상당히 바빴다. 그러면서도 백 대표가 자신이 꼭 시음은 해봐야 한다고 말해 이른바 ‘백종원용’으로 따로 술을 2ℓ 정도 만들어갔다.

이 전 대표는 “우리 기계로 만든 술은 이 기계가 있는 데서만 맛을 낸다. 그 술을 다시 포장하면 말 그대로 생맥주를 포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백종원용으로 따로 술을 만들어 더본코리아에 가져갔다. 시음회 이후 더본코리아 관계자랑 연락하면서 백종원이 술은 시음해 봤는지, 반응은 어땠는지 물었지만 말을 아끼더라”고 주장했다.


이후 2019년 말경 더본코리아는 막걸리 바를 내세운 막이오름이라는 프랜차이즈를 론칭하겠다고 발표했다. 막걸리를 생맥주처럼 마실 수 있다는 문구를 간판에 넣어 홍보했고 실제 그런 방식으로 판매했다. 이 전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황당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더본코리아 측에 언급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막걸리 전용 케그를 사용하지 않으면 주세법 위반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점주들이 전부 불법 주류 제조업자가 될 수도 있었다. 백종원을 믿고 창업한 점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더 황당했던 점은 막걸리를 맥주용 케그에 넣어서 판매를 시도한 게 처음 있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맥주용 케그가 국산화됐을 때 몇몇 사람들이 막걸리를 거기에 부어 팔아보려 했다가 모두 실패했다. 그게 1990년대 일이다. 그런데 백종원은 30년이 지난 시점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말 그대로 시늉만 한 것이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정도 되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이랬다는 게 황당할 노릇”이라고 어이없어했다.

이 전 대표는 막이오름 점주들의 피해를 우려하면서 백 대표의 행보가 막걸리 시장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했다. 백 대표가 쉽게 생각해 ‘그냥 한번 해본 일’이 막걸리 시장의 발전 모멘텀 자체를 망가뜨렸다는 주장이다. 그는 “백종원이 해서 실패했으니 막걸리의 시장성에 대한 의문이 생기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막걸리 연구 20년 50억 들어
“사실 안 죽은 게 다행이다”

이 전 대표는 국내 막걸리 시장이 현대화로 가는 길목에 딱 막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감한 이야기지만 전통주 시장은 주인이 없는 상황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막걸리가 그래도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건 현대화에 대한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대표적인 예가 서울장수막걸리다. 현재로선 현대화의 끝판왕”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막걸리는 발효주라서 밀봉된 상태로 두면 터진다. 서울장수막걸리 이전엔 막걸리 뚜껑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서울장수막걸리는 그 병뚜껑에 뚫려 있던 구멍을 옆쪽으로 옮기고 밀봉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이 기술을 통해 탄산을 더 잡아둘 수 있었고 이는 판매량 증가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서울장수막걸리의 매출은 3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서울장수막걸리의 매출은 조 단위가 됐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양조장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제조 면허는 그대로 두면서 서울장수막걸리의 경우, 사장이 51명인 상황이다. 대구는 48명, 부산은 44명, 이렇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이 전 대표는 주인이 너무 많아 오히려 주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전통주 시장에 백 대표가 깃발을 꽂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막걸리 시장 자체가 이렇게 굴러가다 보니 누군가가 나서서 산업화를 시킬 동력이 부족했다. 여기에 백종원이 나타난 것”이라며 “하지만 백종원은 막걸리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게 아니라 돈을 위해 여기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적인 형태로 계속 발전해야 하고, 현대적인 모습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 나오는 게 현재 막걸리 시장이 정체된 이유다. 백종원이 일단 막걸리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든 이상 그거(현대화)를 꼭 해야 할 의무가 부여된 셈인데 그걸 안 해버린 것”이라며 “말 그대로 어설프게 뛰어들었다가 시장을 다 태워 버렸다. 적어도 생막걸리 시장은 백종원이 거의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 깃발이 완벽하게 꺾이면서 막걸리 현대화의 기세도 꺾였다고 한탄했다. 무엇보다 이 전 대표의 사업이 망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20여년, 액수로 따지면 50억원가량의 손해였다.

이 전 대표는 “사실 안 죽은 게 다행이지, 실제로는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걸 넘어왔다”고 토로했다. “(백종원은) 원수나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이 전 대표는 “백종원은 예능인이 딱 맞다”면서 사업가 자질이 없다고도 신랄하게 지적했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가맹점주가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주면서 식문화를 발전시키는, 이 두 가지가 잘 조합돼 가야 한다. 최고의 맛을 대중화하는 게 프랜차이즈 업계의 역할”이라면서도 그는 “하지만 백 대표는 최고나 최선이 아니라 적당한 정도, 적당한 형태만 생각한다. 그러니까 더본코리아가 여러 업종에 손을 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예를 들어 한신포차를 가장 맛있는 포차집이 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가성비가 떨어질 때쯤 다른 모델을 내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사업 안 돼
예능인 딱”

이 전 대표는 인터뷰를 마친 후 문자메시지를 통해 못다 한 말을 전해왔다. “백종원을 요약하면요. 최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당장 돈이 되는 게 중요한 사람. 돈이 넘쳐나도 지금 하는 것을 최고로 만들고 공유하는 것보다 당장 돈이 될 듯한 쉬운 거를 찾는 사람인 것 같아요. 빽다방에 로스팅 시설이 없는 이유가 최고를 만들려고 노력 안 한다는 거죠.” 

<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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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본에 번진 핵잠 나비효과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한미 정상회담 팩트시트가 공개되자, 가장 큰 화제가 된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에 대해 “문구가 추상적이어서 모호하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에 자극 받은 일본도 핵잠수함 도입을 준비하고 있다. 핵잠수함 건조를 현실화하지 않으면 “일본에 핵 보유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의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게 했다”는 비판이 제기될 가능성이 있다. 지난달 29일 진행된 한미 정상회담에서 타결된 한미 관세·안보 협상 팩트시트(공동 설명자료)가 지난 14일 공개됐다. 가장 큰 논란은 핵 추진 잠수함(이하 핵잠수함) 관련 합의 문구였다. 산 너머 산 구체성 없다 팩트시트를 통해 확인되는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선 “구체성이 없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팩트시트에 따르면, 미국은 ▲한국 민간·해군의 원자력 프로그램 ▲한미 원자력 협정에 부합하고 미국의 법적 요건을 준수하는 범위 내에서 한국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후 핵연료 재처리로 귀결될 절차 등을 지지한다. 이어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고, 한국과 조선 사업 요건 진전·연료 조달 방안 등을 포함해 긴밀히 협력한다. 미국은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와 관련해 지지·승인·협력할 뿐이다. 이를 두고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은 같은 날 브리핑에서 “한미 정상의 논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에서 건조하는 게 전제였다”며 “우리 핵잠수함을 미국에서 건조하는 방안은 거론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반면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는 같은 날 “구체적인 내용이 없다”며 “국내 건조 장소 합의는 팩트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30일 기자들 앞에서 한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을 발표하면서 “필라델피아 조선소에서 건조될 것”이라며 “미국 조선업이 곧 대대적인 부활을 맞이할 것”이라고 말했다. 핵잠수함이 건조되려면, 산적한 현안을 모두 해결해야 한다. 팩트시트엔 건조 장소가 적시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필라델피아 조선소를 명시해 발표했기 때문에, 미국이 순순히 양보할 것으로 보이진 않는다. 같은 회담 결과를 두고 양국의 주장이 엇갈리는 자체가 논란이 되고 있다. 민간 우라늄 농축·사용 및 핵연료 재처리엔 ▲한미 원자력 협정 부합 ▲미국의 법적 요건 준수 ▲한국의 평화적 이용 등 단서가 붙는다. 기술 이전 과정에도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 핵잠수함 보유국은 미국·영국·프랑스·러시아·중국·인도 등 6개국이다. <로이터통신>은 지난달 30일 “미국이 핵잠수함 기술을 공유한 사례는 1950년대 최우방국 영국과 협력한 사례밖에 없다”고 보도했다. <AP통신>은 “미국의 핵잠수함 기술은 미군이 보유한 가장 민감하고 철저히 보호돼온 기술”이라며 “가까운 동맹인 영국·호주와 체결한 핵잠수함 협정에서도 직접 기술 관련 내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보도했다. 우리에겐 우라늄 농축·재처리 기술이 없어서 미국으로부터 핵연료를 공급받는 방안이 유력하게 거론된다. 하지만 연료 공급 장소·방식은 팩트시트에 명시되지 않았다. 연료 공급 방법을 확보하지 못하면, 핵잠수함을 만드는 의미가 없다. 핵잠 건조 추상적인데 “고정밀지도 내놔” 발 빠르게 비핵 3원칙 수정하려는 일본 미국의 법률 개정 절차도 거쳐야 한다. 미국 원자력법은 ‘미국이 다른 나라와 군사적 목적의 원자력 협력을 하려면, 원자력 협정을 체결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따라서 한미 원자력 협정을 개정한 후 미국 상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국제 무기 거래 규정도 상원의 동의를 얻어 개정해야 한다. 원자력 협정 개정이 팩트시트에 포함되지 않은 것에 대해선 “미국 에너지부의 반대 때문”이란 지적도 있다. 미국 일각에서 “한국이 자체 핵무장을 할 수도 있다”는 우려를 한단 것이다.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 여부는 확정되지 않았는데, 우리는 미국에 고정밀지도를 넘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팩트시트엔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를 포함한 디지털 서비스 관련 법·정책에 있어 미국 기업이 차별당하거나 불필요한 장벽에 직면하지 않도록 보장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이 있다. 또 “위치·재보험·개인정보에 대한 것을 포함해 정보의 국경 간 이전을 원활하게 할 것을 약속한다”는 내용도 있다. 미국 빅테크 기업들은 온라인플랫폼의 ▲자사 우대 ▲끼워팔기 ▲멀티호밍 제한 등을 막는 내용이 담긴 우리의 온플법 제정을 반대했다. 팩트시트를 따르면, 미국 빅테크 기업에 대한 규제가 어려워진다. 아울러 우리는 구글·애플이 요청하는 1:5000 축척 고정밀지도 국외 반출 요청을 수용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정부는 애플이 요청한 지도 반출 여부를 다음 달에, 구글의 요청은 내년 2월 결정할 예정이다. 팩트시트에 게재된 합의 사항대로라면, 애플·구글의 요청을 수용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국민의힘 박성훈 수석대변인은 지난 15일 논평을 통해 팩트시트 속 위험요소를 조목조목 지적했다. 박 대변인은 “정부는 ‘농·축산물 개방은 없다’고 말해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의 요구대로 농·축산물 개방 문구가 포함됐다”고 주장했다. 이어 “망 사용료·온라인 플랫폼 규제·고정밀 지도 반출 등 대한민국의 디지털 주권과 직결된 사안까지 미국의 요구를 반영해 슬그머니 끼워 넣었다”고 비판했다. 이어 “반도체 관세에 대해서도 ‘다른 나라보다 불리하지 않게 한다’는 모호한 문구만 있다”며 “경쟁국 대만과 비교해 어떻게 적용할지 등 구체적인 내용은 팩트 시트에 담기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250억달러(약 36조7183억원) 규모의 미국산 군사 장비를 5년 동안 구매하고, 주한미군에 대해 330억달러(약 48조4682억원)를 포괄적으로 지원하면, 천문학적인 재정 부담을 떠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아울러 “핵잠수함 건조 과정은 결코 쉬운 과정이 아니라서 장밋빛 전망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고정밀지도 반출 가능성 실제로 일각에선 “핵잠수함 건조가 실현되기까지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해서 실질은 아직 불투명하다”며 “선언이 지나치게 앞섰다”는 지적이 나온다. 문제는 핵잠수함 나비효과가 일본으로 번졌단 점이다.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하자, 일본 정치권도 크게 술렁였다. 고이즈미 신지로 방위상은 지난 12일, 참의원 예산위원회에서 “미국·중국은 이미 핵잠수함을 갖고 있고, 지금은 핵잠수함을 보유하지 않은 한국·호주가 앞으로 보유하게 된다”며 “일본의 억지력·대응력을 강화하려면, 전고체·연료전지·원자력 등 다양한 동력원에 대해 폭넓게 논의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1967년 사토 에이사쿠 당시 총리가 선언했던 비핵 3원칙을 여전히 유지하고 있다. 비핵 3원칙은 “핵무기를 만들지도, 가지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선언이다.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일찍부터 핵무기 반입 금지 방침 완화를 주장했다. 기하라 미노루 관방장관도 같은 날 “현 시점에선 재검토 여부를 단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자유민주당(이하 자민당)은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다카이치 총리는 국회 연설에서 “내년 중 3대 안보 문서 개정을 위해 검토를 개시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3대 안보 문서는 ▲국가안보 전략 ▲국가방위 전략 ▲방위력 정비 계획 등을 말한다. 여기엔 비핵 3원칙이 모두 포함돼있다. 일본은 이미 지난 2022년 “반격 능력을 보유하고, 장거리 미사일 전력을 향상한다”는 내용을 3대 안보 문서에 포함했다. 묘한 것은 미국의 핵잠수함 건조 승인이 일본 국내 정치구도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있단 것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카이치 총리가 선출될 당시 라이벌이었다. 지난달 4일 진행된 자민당 총재 선거 1차 투표에서 다카이치 총리는 183표(31.1%)를 얻었고, 고이즈미 방위상은 164표(27.8%)를 얻었다. 결선투표에선 다카이치 총리가 185표(54.3%)를, 고이즈미 방위상은 156표(45.7%)에 머물렀다. 하마터면 다카이치 총리는 자민당 총재·총리로 선출되지 못할 뻔했다. 고 아베 신조 전 총리의 후계자로 통하는 다카이치 총리에 반발한 공명당이 지난달 10일 자민당과의 연정에서 탈퇴했기 때문이다. 당시 공명당 사이토 데쓰오 대표는 고이즈미 방위상에 대해선 “정치자금 규제와 관련된 공명당의 처지를 이해하고 있었다”면서 호평했다. 고이즈미 방위상도 “지금까지 정책 실현에 대해 힘써 주신 것에 대해 감사와 경의를 표한다”고 화답했다. 미일 협력 중국 견제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0일 기적적으로 일본유신회와의 각외 협력 형태의 연립 정권 구성에 합의했다. 각외 협력은 연립 정권 구성엔 합의하지만, 내각엔 참여하지 않는 형태를 말한다. 일본유신회가 제시한 조건은 ▲오사카 부수도 지정 구상 수용 ▲국회의원 정원 10% 감축 ▲기업·단체 후원 폐지 ▲평화 헌법 개정 ▲방위력 강화 등이었다. 자민당과 다카이치 총리는 이를 모두 수용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1일 내각을 출범시키면서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했다. 가장 큰 정치적 의미는 ‘당내 정적 포용’이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전혀 없는 고이즈미 방위상을 임명해 기회를 제공한다’는 의미가 있다. 정반대의 의미를 강조하는 해석도 있다. “방위 관련 경력·경험이 없는 고이즈미를 현안이 산적한 방위성 장관으로 임명해 자멸을 유도한다”는 취지의 해석이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주어진 현안은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 ▲자주적 방위력 강화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 ▲방위 장비 수출 운용지침 폐지 등이다. 이중 미일 방위 협력 재조정은 ‘중국 견제’라는 미국·일본의 공통 이해관계로부터 시작됐다. 일본은 군사력을 강화해 더 광범위한 지역에서 역할을 맡으려고 한다. 미국은 일본의 적극적인 역할을 통해 더 효율적으로 중국을 견제할 수 있다. 문제는 돈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일본에 “방위비를 GDP(국내총생산)의 3.5%로 증액하라”고 요구했다. 다카이치 총리는 지난달 28일 진행된 미일 정상회담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방위비 증액·방위력 강화 방침을 설명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다음 날 피트 헤그세스 미국 국방부 장관을 만나 “방위비를 올리겠다”고 말했다. 이어 일본 정부는 오는 2028년 3월까지 방위비를 GDP의 2%까지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하지만 일본에서 방위 정책과 관련해 국내 정세와 가장 민감하게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을 곤란하게 할 사안이 있다. 바로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이다. 일본 오키나와현 소재 후텐마 기지는 기나완시 시가지 한복판에서 시 면적의 1/4을 차지하고 있다. 후텐마 기지는 1945년 건설됐고, 일본에서 크고 작은 논란을 일으켰다. 오키나와현의 주민 중 상당수는 미군의 범죄와 소음 피해 등을 이유로 기지 이전을 요구하고 있다. ‘팩트시트’ 고이즈미 날개 다나 견제 압박 와중에 뜻밖의 호재 지난 2004년엔 후텐마 기지 소속 헬리콥터가 오키나와국제대학에 추락하는 등 사고도 여러 번 발생했다. 오키나와가 일본에 편입된 시점은 1879년이었다. 1945년부터 1972년까진 미국의 지배를 받았다. 따라서 오키나와에선 반미 감정이 강하고, 자민당 지지율이 낮은 편이다. 후텐마 기지와 관련해서도 일본 정부는 오키나와섬 내 나고시 헤노코 이전을 추진했지만, 오키나와 현·주민의 반대가 강해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 지난 2023년엔 다마키 데니 현지사가 방위성이 신청한 비행장 설계 변경 신청을 승인하지 않고 공사 중단을 요구했다. 후텐마 미군 기지 이전은 일본의 역사적 맥락과 맞물려 수십년 넘게 해결되지 못한 사안이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주도하는 중국 견제를 위한 새 안보 질서와 맞물려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정치적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아베 전 총리는 지난 2019년 고이즈미 방위상을 환경상으로 발탁했다. 이 임명에 대해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무게를 키우면서도, 문제가 발생하면 그를 정치적으로 낙마시킬 수도 있다”는 평가가 나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의 아버지인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총리는 퇴임 이후 강력한 원자력 발전소 폐지론자가 됐다. “아버지의 활동이 아들의 정치적 미래를 흐리게 할 수 있어 고이즈미 방위상을 견제하는 묘수”란 평가도 있었다. 고이즈미 방위상은 “기후 변화 문제는 펀하고, 쿨하고, 섹시하게 대처해야 한다”는 등 적당히 괴상한 발언을 하는 등 바보 행세를 하면서 견제를 피했다. 한동안 일본에선 고이즈미 방위상이 진짜로 바보인지, 바보인 척 연기를 하는지 장난 섞인 논쟁이 오랫동안 이어졌다. 이후 고이즈미 방위상은 이시바 시게루 전 총리·고노 다로 전 외상과 연합해 이시바 내각 탄생에 큰 공을 세웠다. 이어 농림수산상으로서 쌀값 폭등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했다. 지난 2023년엔 자민당 내 정치자금 문제가 불거지자, 조기 의회 해산 및 총선거 진행을 적극적으로 제안한 후 선거대책위원장을 맡았다. 당시 자민당은 중의원 과반에 미달하는 의석을 얻었다. 하지만 일각에선 “더 큰 패배를 당하기 전에 적절한 시점에서 중의원 해산을 건의했다”며 긍정적 평가가 나오기도 했다. 방위상 취임 이후엔 어떻게 구 아베파·아소파의 견제를 피할 것인지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미국이 우리의 핵잠수함 건조를 승인한 사안은 고이즈미 방위상에게 견제 수위를 낮추면서 자민당·내각의 협조를 얻을 수 있는 뜻밖의 호재로 다가왔다. 고이즈미 방위상이 일본의 핵잠수함 도입을 주도한다면,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가 될 수도 있다. 견제 회피 일거양득 우리의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일본 정치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사안이 된 것이다. 만약 핵잠수함 도입 추진이 불확실해지면, 이재명정부는 이 때문에 더욱 큰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일본의 군비 증강에 빌미를 제공하고, 고이즈미 방위상의 정치적 미래를 위한 발판을 제공한 것”이란 비판이 따라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국의 핵잠수함 나비효과는 이렇게 일본으로 번졌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