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격토로> ‘백종원에게 뒤통수 맞고 망한’ 이상철 전 한주DMS 대표

“백 대표가 생막걸리 시장 죽였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상철 전 한주DMS 대표는 4년 전 마스크를 쓰고 <일요시사TV> 인터뷰에 응했다. 코로나19 시국이었다. 이번에 취재진 앞에 선 그는 맨얼굴을 드러내고 담담하게 말했다. “(백종원은) 원수나 마찬가지죠.”

최근 인터넷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3년 전 영상이 ‘파묘’됐다. <일요시사TV>에서 제작한 백종원 더본코리아 대표 관련 콘텐츠다. ‘‘엇갈린 주장’ 호프식 막걸리 원조 논란(feat. 백종원 더본코리아)’ 영상에는 백 대표가 자신의 아이디어를 도용했다고 주장하는 이상철 당시 한주DMS 대표가 출연했다.

기술 개발 후
상업화 과정서

쟁점은 더본코리아가 론칭한 ‘막이오름’의 ‘호프식 막걸리’ 도용 여부였다. 호프식 막걸리는 생맥주 기계인 케그를 이용해 막걸리를 제조, 판매하는 방식을 말한다. 맥줏집에서 잔 단위로 판매하는 생맥주처럼 생막걸리를 팔겠다는 것이다.

당시 백 대표는 ‘생맥주처럼 즐기는 막걸리’라는 문구를 내세워 막걸리 프랜차이즈 ‘막이오름’을 론칭, 확장하던 중이었다.

더본코리아 측은 이 전 대표의 주장에 “예전부터 일반 생맥줏집과 막걸리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 사용하던 방식(생맥주 디스펜스)으로, 이 대표의 아이디어와는 전혀 다르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주세법 논란은 피하지 못했다.


주세법과 주류면허에관한법률(주류면허법)에 따르면 주류를 양조장으로부터 출고한 그대로 판매하지 않고 매장에서 물리‧화학적 작용을 가해 가공, 조작해 판매하면 안 된다.

당시 막이오름은 병 막걸리를 맥주용 케그에 붓고 탄산을 첨가해 탭을 이용해 잔에 따라 판매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전문가들은 막이오름의 막걸리 판매 방식이 주세법에 저촉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논란이 계속되자 더본코리아는 탭 막걸리 판매를 중단하고 ‘우리 술의 새로운 막이 오르다’로 문구를 변경했다.

프랜차이즈의 핵심 콘텐츠를 접어버린 것이다.

2021년 10월 <일요시사TV>를 통해 공개된 이 전 대표의 주장은 소리 소문 없이 묻혔다. 다양한 방송 출연으로 백 대표의 인기가 끝 모르고 높아지던 때였다. 3년여 후 백 대표와 더본코리아 관련 논란이 들불 번지듯이 퍼지는 과정에서 해당 영상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영상에는 ‘3년 전에 이런 일이 있었다니…’라며 놀라움을 표하는 댓글이 줄 이어 달렸다.

2021년 아이디어 도용 의혹 주장
더본코리아 논란 과정에서 파묘돼

지난 10일 충남 천안의 한 사무실에서 이 전 대표를 만났다. 사무실은 각종 기계와 술 등으로 꽉 차 있었다. 인터뷰를 위해 기계를 옮겨 앉을 자리를 마련해야 할 정도였다. 사무실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띈 것은 생막걸리용 케그였다. 인터뷰는 케그를 사이에 두고 진행됐다.


이 전 대표는 일찌감치 막걸리의 상업적 가능성을 알아봤다. 막걸리가 세계에서 가장 성공한 주류로 꼽히는 맥주와 위스키, 그중에서도 맥주와 비견될 만한 상업성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막걸리 세계화 등 ‘대박’을 위해서는 ‘현대화’ 작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전 대표는 “술은 도수가 셀수록 맛있다. 문제는 도수가 세면 금세 취한다는 점이다. 도수가 낮으면서도 술맛을 돋우기 위해서는 탄산이 필요하다. 톡 쏘는 맛을 술에 담는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성공한 게 바로 맥주”라며 “맥주 시장의 규모가 600조원이 넘는데 전 세계에서 맥주랑 경쟁할 수 있는 유일한 술로 꼽히던 게 막걸리다. 맥주가 톡 쏘면서도 개운하게 마실 수 있는 술이라면 이것과 똑같이 만들 수 있는 게 막걸리”라고 주장했다.

그는 “2010년대 일본에서 세계화가 가능한 술로 막걸리를 꼽으면서 쌀 문화권에서 10조엔(약 100억원) 규모의 시장이 형성될 수 있다고 봤다. 맥주 같은 음용감을 제공한다는 전제하에 시장이 확장될 가능성을 본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본은 막걸리를 제조하기에 적합한 기후 조건이 아니었기에 막걸리 세계화에 실패했다. 도수가 떨어질수록 술이 잘 상하기 때문에 시중에 판매되는 5~6도 막걸리를 제조해 유통할 수 있는 환경이 안 된 것이다. 그 대신 일본은 하이볼 같은 RTD(Ready To Drunk, 알코올에 탄산수를 섞어 바로 마실 수 있는 음료)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RTD는 틈새시장을 파고들어 성장세를 타고 있다.

이 과정에서 막걸리는 이른바 ‘어르신의 술’로 머물렀다. 고가의 고급 막걸리가 일부 사람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지만 ‘그들만의 리그’였다. 이 전 대표는 막걸리의 경쟁력, 상업성, 세계화 가능성 등을 보고 현대화 작업에 뛰어들었다. 아직은 국내에 국한돼있지만 막걸리의 시장성을 매력적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시음회 이후
연락 뚝 끊겨

이 전 대표는 “맥주는 제국주의 시절에 세계화가 되면서 나라별로 전부 쪼개졌다. 나라별로 공장을 세우고 토착화되면서 이른바 ‘로컬라이징’ 됐다. 막걸리를 먹어본 외국인은 대부분 ‘좋은 술’이라고 말하지만 아직까지 해외시장은 뚫지 못했다. 그러니 막걸리 세계화에 성공한다면 굉장히 큰 시장을 독점적으로 가져갈 기회를 잡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학에서 고분자공학을 전공한 이 전 대표는 처음에는 막걸리라는 완성품에 기술을 접목해 현대적인 형태로 바꾸는 기계를 개발하려 했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막걸리 제조기술 자체도 현대적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다시 말해 제조와 유통, 판매 과정까지 모두 현대화해야 경쟁력이 있다고 본 것이다.

이 과정에서 이 전 대표의 전공이 빛을 발했다. 이 전 대표는 “술을 만드는 재료가 전분인데, 전분은 유기고분자다. 유기고분자를 분해해 술을 만드는 것이다. 고분자공학을 전공하지 않은 사람은 맨 끝단에 일어나는 화학 반응만 가지고 술을 만드는데, 실제로 더 중요한 것은 그 앞단에 있는 고분자를 분해하고 그것이 발효되도록 단위 분자로 쪼개는 과정이다. 막걸리 제조 기술을 현대화하는 데 필요한 학문이 고분자공학인 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2006~2007년, 2015~2017년, 최근 등 기술 개발을 거쳐 특허를 출원했다. 2007년 막걸리용 케그의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지만 실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막걸리 관련 규제가 2015년에야 풀렸기 때문이다. 2015년 전까지 주류 중 막걸리만 유일하게 용기 규격 제한이 있었다. 2ℓ 미만으로 제한돼있던 것이다.

이 규제가 완화되면서 이 전 대표의 기술이 빛을 볼 기회가 생겼다.


이 전 대표는 “그쯤에 백종원이 주력으로 운영하던 프랜차이즈가 한신포차, 새마을식당 등 주류 중심 식당이었다. 특히 한신포차에서 대표 메뉴로 판매하던 닭발이 막걸리와 궁합이 잘 맞는 안주였다. 한신포차에 막걸리를 공급해보자고 생각해 백종원과 미팅을 갖게 됐다”고 말했다. 호프식 막걸리를 한신포차에서 팔아보려 한 것이다.

첫 미팅은 음식점 사장, 프랜차이즈 가맹점 운영을 원하는 사람들이 모인 모임에서 이뤄졌다.

미팅 1년 뒤
사업 론칭해

백 대표의 주최로 이뤄진 모임에서 이 전 대표는 막걸리 현대화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고 한다. 이 전 대표는 “(백종원이) 공감한다. 관심 있다. 별도로 만나서 이야기해 보자고 해서 2018년 4월에 장비를 들고 더본코리아를 찾아가 시음회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정작 이날 시음회에는 백 대표가 없었다고 한다. 이 전 대표에 따르면, 당시 백 대표는 방송 출연 등으로 상당히 바빴다. 그러면서도 백 대표가 자신이 꼭 시음은 해봐야 한다고 말해 이른바 ‘백종원용’으로 따로 술을 2ℓ 정도 만들어갔다.

이 전 대표는 “우리 기계로 만든 술은 이 기계가 있는 데서만 맛을 낸다. 그 술을 다시 포장하면 말 그대로 생맥주를 포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백종원용으로 따로 술을 만들어 더본코리아에 가져갔다. 시음회 이후 더본코리아 관계자랑 연락하면서 백종원이 술은 시음해 봤는지, 반응은 어땠는지 물었지만 말을 아끼더라”고 주장했다.


이후 2019년 말경 더본코리아는 막걸리 바를 내세운 막이오름이라는 프랜차이즈를 론칭하겠다고 발표했다. 막걸리를 생맥주처럼 마실 수 있다는 문구를 간판에 넣어 홍보했고 실제 그런 방식으로 판매했다. 이 전 대표는 이 부분에 대해서도 황당하다는 입장을 드러냈다.

법 위반 소지가 있다는 점을 더본코리아 측에 언급했다는 것이다.

이 전 대표는 “막걸리 전용 케그를 사용하지 않으면 주세법 위반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점주들이 전부 불법 주류 제조업자가 될 수도 있었다. 백종원을 믿고 창업한 점주들을 상대로 사기를 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더 황당했던 점은 막걸리를 맥주용 케그에 넣어서 판매를 시도한 게 처음 있던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맥주용 케그가 국산화됐을 때 몇몇 사람들이 막걸리를 거기에 부어 팔아보려 했다가 모두 실패했다. 그게 1990년대 일이다. 그런데 백종원은 30년이 지난 시점에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말 그대로 시늉만 한 것이다. 백종원, 더본코리아 정도 되는 대형 프랜차이즈가 이랬다는 게 황당할 노릇”이라고 어이없어했다.

이 전 대표는 막이오름 점주들의 피해를 우려하면서 백 대표의 행보가 막걸리 시장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고 비판했다. 백 대표가 쉽게 생각해 ‘그냥 한번 해본 일’이 막걸리 시장의 발전 모멘텀 자체를 망가뜨렸다는 주장이다. 그는 “백종원이 해서 실패했으니 막걸리의 시장성에 대한 의문이 생기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막걸리 연구 20년 50억 들어
“사실 안 죽은 게 다행이다”

이 전 대표는 국내 막걸리 시장이 현대화로 가는 길목에 딱 막혀 있다고 진단했다. 그는 “민감한 이야기지만 전통주 시장은 주인이 없는 상황이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막걸리가 그래도 현재까지 살아남을 수 있던 건 현대화에 대한 시도가 끊임없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대표적인 예가 서울장수막걸리다. 현재로선 현대화의 끝판왕”이라고 말했다.

이 전 대표는 “막걸리는 발효주라서 밀봉된 상태로 두면 터진다. 서울장수막걸리 이전엔 막걸리 뚜껑에 구멍이 뚫려 있었다. 서울장수막걸리는 그 병뚜껑에 뚫려 있던 구멍을 옆쪽으로 옮기고 밀봉하는 기술을 개발해 특허를 받았다. 이 기술을 통해 탄산을 더 잡아둘 수 있었고 이는 판매량 증가로 이어졌다”고 설명했다.

서울장수막걸리의 매출은 3000억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하지만 이 전 대표는 “정상적으로 성장했다면 서울장수막걸리의 매출은 조 단위가 됐어도 이상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어 “과거 양조장을 통·폐합하는 과정에서 제조 면허는 그대로 두면서 서울장수막걸리의 경우, 사장이 51명인 상황이다. 대구는 48명, 부산은 44명, 이렇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이 발전할 수 있겠느냐”고 한탄했다.

이 전 대표는 주인이 너무 많아 오히려 주인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전통주 시장에 백 대표가 깃발을 꽂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막걸리 시장 자체가 이렇게 굴러가다 보니 누군가가 나서서 산업화를 시킬 동력이 부족했다. 여기에 백종원이 나타난 것”이라며 “하지만 백종원은 막걸리 산업을 발전시키려는 게 아니라 돈을 위해 여기에 뛰어들었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대적인 형태로 계속 발전해야 하고, 현대적인 모습이 나와야 하는데 그게 안 나오는 게 현재 막걸리 시장이 정체된 이유다. 백종원이 일단 막걸리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든 이상 그거(현대화)를 꼭 해야 할 의무가 부여된 셈인데 그걸 안 해버린 것”이라며 “말 그대로 어설프게 뛰어들었다가 시장을 다 태워 버렸다. 적어도 생막걸리 시장은 백종원이 거의 죽인 거나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그 깃발이 완벽하게 꺾이면서 막걸리 현대화의 기세도 꺾였다고 한탄했다. 무엇보다 이 전 대표의 사업이 망했다. 시간으로 따지면 20여년, 액수로 따지면 50억원가량의 손해였다.

이 전 대표는 “사실 안 죽은 게 다행이지, 실제로는 죽을 가능성이 훨씬 높은 걸 넘어왔다”고 토로했다. “(백종원은) 원수나 마찬가지”라고도 했다.

이 전 대표는 “백종원은 예능인이 딱 맞다”면서 사업가 자질이 없다고도 신랄하게 지적했다.

“프랜차이즈 사업은 가맹점주가 돈을 벌 수 있도록 해주면서 식문화를 발전시키는, 이 두 가지가 잘 조합돼 가야 한다. 최고의 맛을 대중화하는 게 프랜차이즈 업계의 역할”이라면서도 그는 “하지만 백 대표는 최고나 최선이 아니라 적당한 정도, 적당한 형태만 생각한다. 그러니까 더본코리아가 여러 업종에 손을 대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예를 들어 한신포차를 가장 맛있는 포차집이 될 수 있도록 발전시키는 게 아니라 가성비가 떨어질 때쯤 다른 모델을 내는 식”이라고 주장했다.

“사업 안 돼
예능인 딱”

이 전 대표는 인터뷰를 마친 후 문자메시지를 통해 못다 한 말을 전해왔다. “백종원을 요약하면요. 최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기보다 당장 돈이 되는 게 중요한 사람. 돈이 넘쳐나도 지금 하는 것을 최고로 만들고 공유하는 것보다 당장 돈이 될 듯한 쉬운 거를 찾는 사람인 것 같아요. 빽다방에 로스팅 시설이 없는 이유가 최고를 만들려고 노력 안 한다는 거죠.” 

<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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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단독] ‘내란 비선’ 노상원 민간인 사찰 준비 의혹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방첩사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이 곳곳에서 확인된다.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여론전에 나서려 한 게 골자다. MB·박근혜정부 때의 악몽이 재발할 수 있었던 셈이다. 군 안팎에서는 계엄이 유지됐다면 여론 공작뿐만 아니라 민간인 사찰까지 벌어졌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군 정보기관 간부들은 이 계획을 준비하려 했던 인물로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아닌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을 지목한 것으로 파악됐다. “여인형은 댓글 공작을 지시한 사람일 뿐 계획한 사람은 노상원이다.” 한 군 고위관계자의 말이다.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부정선거 수사만을 담당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이하 공수처)도 복수의 군 관계자들로부터 관련 진술을 받아냈다. 특히 사이버작전사령부가 댓글 공작을 계획한 정황을 포착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진보 성향 진급 제외 공수처는 이달 초 복수의 국군방첩사령부 간부들로부터 군 댓글 공작 의혹과 관련된 진술을 받아냈다. 한 방첩사 간부는 공수처에 “사이버사령관에 대한 정치 성향, 개인정보 등 신원 검증을 진행했다. 진보 계열 정치인과 친분이 있거나 알고 지낸 적이 있는 군 간부에 대해서는 신원 검증을 더욱 철저히 했다”고 진술했다. 공수처는 방첩사가 사이버작전사령관 후보군을 블랙리스트로 관리하면서 정권 ‘코드 인사’가 정해지면 댓글 공작팀을 구성하려 했다고 보고 있다. 공수처가 확보한 블랙리스트는 지난해 12월과 지난 1월 두 차례에 걸친 방첩사 압수수색을 통해 확보한 것이다. 당시 압수수색 대상엔 사이버사령관 관련 블랙리스트 문건도 포함됐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이 문건들을 김용현 전 장관에게 수차례 보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문제는 보고 시점이다. 김 전 장관이 대통령경호처장이던 지난해 초부터다. 김 전 장관이 군 인사에 개입하고 신원식 국가안보실장보다 영향력이 강했던 것으로 읽히는 대목이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도 방첩사의 댓글 공작 플랜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 국회 국정조사특위에서 “조원희 사이버사령관이 사이버 정예 요원 28명으로 구성된 ‘사이버 정찰 TF’를 구성해 2024년 10월7일∼12월27일 약 3개월간 운영할 계획이었다”며 “사이버사가 국가정보원, 국군방첩사령부 등 그동안 비상계엄에 협조해 온 기관과 연계해 전 국민을 대상으로 이른바 인지전·심리전을 하려던 것으로 추측된다”고 주장했다. 인지전은 전단 살포 등 기존 심리전에 더해 SNS를 통한 사이버 여론전까지 포괄한다. 실제 방첩사는 예하 보안연구소에 인지전을 전담하는 ‘정보종합통합대응팀(대응팀)’ 신설을 계획했다. 이 대응팀은 방첩사가 인지전 조직 설립을 추진하다 내부 반발에 부닥치자 만들어진 TF(태스크포스) 성격의 팀으로 알려졌다. 일부 인원을 보안연구소로 이동시켜 TF를 꾸린 뒤 인지전 조직을 설립할 계획이었다. 사이버사 통해 인지·심리전 작업 선관위 서버 탈취 성공하면 서포트 여 전 사령관은 보안연구소에 인지전 전문가를 직접 추천하기도 했다. 실제 여 전 사령관이 추천한 인사는 지난해 12월2일 보안연구소 연구기획팀에 임용됐다. 지난해 10월에는 여 전 사령관실에 있던 소령이 전 부대원을 대상으로 인지전 내용이 포함된 교육을 진행하기도 했다. 여 전 사령관의 지시를 받았던 건 그의 비서실장이던 정성우 전 1처장과 최측근인 소형기 전 방첩사 참모장(현 육군사관학교 교장)이다. 정 전 1처장은 보안처와 방첩처에 인지전 관련 조직 신설을 지시했으나 간부 대부분이 ‘업무 관련성이 없다’며 거부했다. 소 전 참모장은 지난 2023년 11월6일 인사를 통해 여 전 사령관과 함께 방첩사로 온 인물이다. 두 사람은 인사 이전 육군본부 정보작전참모부에서 부장과 계획편제차장으로 함께 근무했다. 방첩사는 육·해·공군 장성급 직책과 국방부 예하기관장 등에 대한 인사안도 작성했다. 이 인사안도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관련 진술을 확보하고 지난달 29일부터 방첩사 신원보안실과 군사정보실 등을 압수수색했다.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본래 육·해·공군 각군 인사참모부에서 인사 계획안을 작성하면, 해당 인물의 세평 등 정보를 수집·조사해 검증하는 조직이다. 그러나 여 전 사령관이 지난 2023년 11월 방첩사령관으로 임명된 이후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 측근들로 구성돼 군 인사와 비상계엄에 깊숙이 관여했다는 의혹을 사고 있다. 신원보안실장을 맡고 있는 나모 실장(대령)은 지난해 전역을 앞두고 있었으나 비상계엄을 나흘 앞둔 11월29일 인사에서 이례적으로 임기가 2년 연장됐다. 신원보안실 산하 신원검증과장 등을 맡았던 진모 당시 중령은 충암고 출신으로 지난해 9월 인사에서 대령으로 진급했다. 내란 사태 이후 지난해 12월6일 육군 제5군단 방첩부대장으로 부임했다. 공수처 진술 확보 방첩사 신원보안실은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계획 문건을 만들고, 이를 윤석열 전 대통령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도 했다. 당시 그 자리는 박안수 전 육군참모총장이 맡고 있었으나 박 전 총장 임기 만료 전이던 지난 4월 인사에서 여 전 사령관을 육군참모총장으로 임명하는 안을 염두에 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8월 여 전 사령관 지시로 만들어진 블랙리스트인 이른바 ‘최강욱 라인 명단’은 2017~2020년, 군 법무관 출신인 민주당 최강욱 전 의원과 근무 시기가 겹치거나 만난 적이 있다는 군 판사·검사 명단을 30명 가까이 정리해 둔 문서다. 최 전 의원은 문재인정부 시절인 2018년 9월~2020년 3월 청와대 직원 직무감찰과 군을 포함한 주요 공직자 인사 검증을 담당하는 공직기관비서관으로 근무했다. 명단에는 김상환 육군본부 법무실장(준장)과 서성훈 중앙지역군사법원장(대령) 등 비육사 출신 군 법무관들이 주로 이름을 올렸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법무실장을 국방부 검찰단장직에 보임되는 일을 막기 위해 그를 강제 전역시킬 방안을 연구했다고 보고 압수수색 영장에 관련 혐의도 적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는 여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에게 보고하기 위해 장군 인사에도 개입했다고 의심하고 있다. 정치 성향 등 단순 세평 수집이 아닌 각 군에서 작성한 인사안을 검토하거나 직접 작성했는지가 의혹의 핵심이다. 한 군 정보 소식통은 “정보사를 포함해 계엄에 협력할 만한 인물을 정리한 문건도 방첩사가 관리했다. 문상호 전 정보사령관을 포함해 계엄에 반대하지 않을 것 같은 인물들은 모두 노 전 사령관과 김 전 장관에게 보고됐다”고 주장했다. 조 사령관은 블랙리스트가 작성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난해 4월 사이버사령관으로 부임했다. 노 전 사령관이 김 전 장관과 연락을 취하기 시작한 시기와 일치하기도 한다. 부임 6개월도 안 된 해군 출신이던 이동길 전임 사령관을 교체하고 조 사령관을 임명한 건 이례적인 일이라는 게 군 내부의 시선이다. 사령관 추천 노 ‘오케이’ 조 사령관은 평소 여 전 사령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김 전 장관이 합동참모본부 작전본부장 시절(2015~2017년) 작전본부 중령으로 근무했다. 방첩사 출신 군 관계자는 “여 전 사령관이 노상원을 멀리 했으나 계엄을 놓고 본다면 자신의 측근이자 믿을 수 있는 인물을 사이버사령관으로 둬야 했을 것이다. 여 전 사령관이 김용현에게 조 사령관을 추천, 노상원이 ‘오케이’한 인물”이라고 전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초부터 김 전 장관과 연락하면서 12·3 비상계엄에 대한 밑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노 전 사령관은 부정선거 음모론을 검증하려 계엄사령부 산하 수사2단을 지휘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 서버 탈취를 계획했다.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는 조 사령관이 여 전 사령관의 지시로 노 전 사령관에게 협력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노 전 사령관의 선관위 서버 탈취 계획이 성공했다면 조 사령관이 사이버사 산하 해킹 부대인 900연구소를 중심으로 댓글 및 여론 공작에 나섰을 것이란 분석이다. 복수의 정보사 간부들은 댓글·여론 공작의 다음 플랜이 ‘민간인 사찰’이라고 전했다. 노 전 사령관이 선관위 서버 탈취에 성공하면 진보 성향 정치인들뿐만 아니라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SNS를 들여다볼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정보사 출신 군 고위 관계자는 “‘부정선거가 사실이었다’는 여론을 조성하는 데 일주일도 채 걸리지 않는다. 계엄이 2~3주 정도 유지됐다면 방첩사와 노상원이 지휘하는 수사2단이 주체가 돼 진보 성향 시민단체의 동향 파악은 기본이고 실제 그렇게 해야 한다는 말이 나왔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결론적으로 방첩사가 사이버사를 통해 댓글·여론 공작을 하려 했던 건 ‘윤석열의 계엄이 옳았다’는 헛소리를 유포하기 위함이다. 노상원이 김용현에게 조언했고 MB·박근혜 때의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을 참고해 시나리오를 짰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노, MB·박정부 국정원 댓글부대 사건 참고 여, 블랙리스트 김용현에 직보…김·노 논의 여 전 사령관은 사이버사를 통해서만 댓글·여론 공작을 실행하려 하지 않았다. 직접 국정원에 방첩 업무를 담당할 도·감청 전문가들을 파견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이는 홍장원 전 국정원 1차장이 여 전 사령관의 요청을 거절한 직후에 일어난 일이다. 당시 홍 전 차장은 윤 전 대통령이 “방첩사를 지원하라”고 하자 여 전 사령관에게 전화를 걸어 윤 전 대통령 지시 사항을 전달했고, 여 전 사령관은 체포 대상자 명단을 불러주며 위치 추적을 요청했다. 합참의 ‘계엄실무편람’에 따르면, 계엄사는 합동수사본부 지원을 맡는다. 합동수사본부는 예하에 수사1·2·3·5국을 둔다. 2018년 논란이 됐던 기무사의 계엄 대비 문건에는 합동수사본부장은 방첩사령관이, 수사5국은 국정원이 맡는다고 적혀 있다. 당시 문건에는 ‘국정원은 국정원법을 이유로 계엄사령관의 지시에 소극적으로 대응할 가능성 내재’ ‘이럴 경우 대통령께서 국정원장에게 계엄사령관의 지휘·통제를 따르도록 지시’라고 기록됐다. 여 전 사령관은 ‘민간인 사찰을 계획했느냐’는 <일요시사>의 여러 질문에 대해 “너무 구체적이다. 어떤 게 맞고 틀린지 답하기 곤란한 내용이 포함돼있다”며 “수사를 앞두고 있어 답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말한 바 있다. 공수처는 방첩사의 댓글·여론 공작 의혹과 군 간부들에 대한 평가와 사찰에 대한 문건이 윤 전 대통령에게까지 보고됐는지 수사 중이다. 공수처는 조만간 여 전 사령관에 대한 피의자 조사를 진행할 예정이지만 내란 특검이 출범하게 되면 모든 자료를 특검에 넘겨야 한다. 공수처 최근 정례 브리핑에서 “지난주부터 방첩사에 대한 압수수색을 거의 매일 진행 중”이라며 “포렌식이 오래 걸리는 건 여러 곳에 분산된 서버를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 통해 윤 전달? 공수처는 12·3 비상계엄 사태 수사와는 별개로 방첩사 관련 사건을 입건해 사건번호를 부여한 상태라고 부연했다. 지난 5일 내란 특검법, 채상병 특검법이 국회를 통과해 조만간 특별검사 수사 체제가 가동될 것으로 예상돼 공수처는 특검 출범 이후 방첩사 블랙리스트 관련 수사와 기존 고발 사건 수사에 집중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공수처 관계자는 “특검이 출범하고 자료 요청이 오면 당연히 자료를 넘겨야 하지만 그 전까지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