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연재> 선감도 (55)지하 감옥 어둠서 내적 변화

  • 김영권 작가
  • 등록 2025.06.09 05:00:00
  • 호수 1535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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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가 자기들만의 장난은 아니어야지.” 김영권의 <선감도>를 꿰뚫는 말이다.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청춘을 빼앗긴 한 노인을 다뤘다. 군사정권에서 사회의 독초와 잡초를 뽑아낸다는 명분으로 강제로 한 노역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청춘을 뺏겨 늙지 못하는 ‘청춘노인’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럼 반지 찾으러 천천히 서로 나오세요.”

경찰서로 오는 도중 경찰이 용운의 뒤통수를 툭 치면서 말했다.

“꼬마 너 운 좋았다. 만약 금반지 주인이 도난당했다고 한마디만 했더라면 넌 감옥 가는 거야, 임마.”

경찰의 복수

용운은 눈을 똑바로 뜨고 말없이 그를 노려보기만 했다. 아무리 힘겨워도 남의 것을 훔치는 짓은 하지 말자고 삶의 좌우명으로 여기며 사는데 도둑이라니!


이제 점점 넝마주이에 요령도 생겨서 앞날에 대한 소박한 희망도 지닐 수가 있었는데…… 모든 게 서글퍼졌다.

경찰서에 도착해서 피의자 조서를 받았다. 하지만 용운의 대답에 구체성이 별로 없을 뿐더러 그런 사소한 일로 소년원으로 보내기는 아무래도 어려웠던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그 경찰은 허탕친 노릇이 좀 분했던지 ‘부랑아 일제 단속기간’이란 점을 내세워 용운을 선감도 감화원으로 보내 버렸던 것이다.

지하감방의 어둠 속에서 용운은 원통한 마음을 못 이긴 나머지 거푸 한숨을 쉬었다.

그러자 퍼뜩 이런 생각도 들었다.

‘나는 혹시 전혀 아무런 죄도 짓지 않은 착한 자인가? 사회가 아무리 잘못됐더라도 어쨌든 우리는, 나는 뭔가를 위반하지 않았을까? 내가 사소하게 생각한 것도 남에겐 귀중한, 큰 일이었을 수도 있다……. 차라리 죄가 있다고 생각하는 게 편하겠다. 지렁이를 밟아 죽인 죄…… 나뭇가지를 꺾은 죄…… 바람이 불 때 침을 뱉은 죄…… 내가 모르지만 아마 내가 지은 죄가 있을 거야. 죄가 있기에 여기서 이런 고생을 겪고 있지 않을까?…… 또한 아버지의 죄도 영광도 자식인 내게 지워진 게 아닐까?’

그는 표정을 잔뜩 찡그리며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고개를 세게 흔들었다. 그러더니 또다시 깊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머릿속을 메아리처럼 맴도는 시구였다.


만일 사람들이 제정신을 잃고 네 탓이라 비난해도 냉정할 수 있다면,
사람들이 의심해도 자신을 믿고 그 의심마저 감싸 안을 수 있다면,
거짓에 속더라도 미움을 받더라도 되갚지 않는다면,
악한 자들이 왜곡해도 있는 그대로의 너를 받아들인다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은 네 것이 되고 그때 너는 비로소 하나의 어른이 되리라…….

용운은 뒤척이다가 저도 모르는 새 잠이 들고 말았다.

그는 꿈을 꾸었다. 어슴푸레한 새벽 들판에 박꽃 누나가 등을 돌린 채 서 있었다.

용운이 큰 소리로 부르자 천천히 뒤돌아보았는데, 누나의 흰 얼굴엔 눈이 없었다.

용운의 가슴속엔 한없는 비애감이 일었다. 큰 소리로 부르며 뛰어갔지만 누나는 기다려 주지 않고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문득 그 뒷모습에서 정다운 목소리가 들려왔는데 그건 엄마의 목소리처럼도 느껴졌다. 용운이 아무리 소리치며 달려가도 아득히 멀어져 갈 뿐 뒤돌아보지 않았다.

누나가 걷는 속도보다 용운의 뜀박질이 훨씬 빠를 텐데도 이상스럽게 간격은 조금도 좁혀질 줄 몰랐다.

앞에 낭떠러지가 불쑥 나타난 건 그때였다.

용운은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걸어보려 했지만 웬일인지 다리가 굳어 움직이지 않았다.

그런데 괴이하게도 박꽃 누나는 돌멩이를 하나씩 주워 주머니 속에 가득 채웠다.

그러더니 낭떠러지 앞의 허공을 그대로 걸어 물속으로 떨어지는 게 아닌가!

누나는 물거품만 남긴 채 다시는 수면 위로 떠오르지 않았다. 돌멩이의 무게 때문이었으리라. 용운은 그 자리에 선 채 울고 또 울었다.


꿈의 장면이 바뀌더니 황량한 사막 위로 라디오가 불쑥 튀어나왔다. 라디오는 피에로의 얼굴로 변하더니 괴이한 목청을 우렁우렁 울렸다.

원통한 마음 못 이긴 한숨
세상의 불의와 부정에 분노

“19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한 장발장을 아느냐? 그는 어린 조카들의 배고픔을 달래려다가 빵 한 조각을 훔쳐 20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억울한 처벌을 받은 존재가 아님을 속으로 인정했다.

도형장의 몽둥이질 아래서, 쇠사슬에 묶인 채, 지하감방에서, 도형수의 초라한 침대 위에서, 그는 웅크린 채 깊이 생각했다.

치사한 짓을 저질렀음을 자신에게 고백했다. 배고파 훔친 빵……


만약 그가 간절히 부탁했다면 그 빵을 거절당했을까? 곧 죽을 만큼 배가 고프다는 건 변명일 뿐이다. 차라리 괴로운 노동을 택해야 했다.

비참하고 불쌍한 사람일지언정 사회도덕의 멱살을 마구 움켜쥐면서 도둑질로써 고통을 벗어나려 한 건 미친 짓이 아니었을까?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그는 또 하늘을 향해 물었다.

‘저를 파멸의 구렁텅이로 내동댕이친 그 사건에서 과연 저만 잘못을 범했을까요? 우선 일자리가 없었고, 가끔 변변찮은 일을 해도 제 입 하나만 해결하면 되는 게 아니었지요. 참새새끼 같은 조카들이 있었죠.

그리고 제가 빵을 훔쳤긴 해도, 잘못을 인정하고 뉘우쳤는데, 형벌이 너무 무거워 억울했습니다.

그 억움함을 못 견뎌 탈옥을 하긴 했지만요. 하지만 빵 하나 때문에 20년은 너무 무자비하잖아요.

우리 사회가 의식주를 분배함에 공정하지 않고, 가진 자는 더 많이 차지하고 가난한 자는 더욱 빈궁해져 결국 자살에 내몰려야 하는 악폐는 갈아엎어야 하는 게 아닌가 말이죠?’

그는 세상의 불의와 부정에 분노했다. 어떤 분노는 광적이고 부조리할 수 있다. 그리하여 누구든 미친 듯 화를 터트리기도 한다.

그런데 분개한다는 건 내심 어딘가에 옳은 측면이 있을 때만 가능한 것이다.

장발장은 스스로 분개하고 있음을 느꼈다. 사회는 자신에게 피해를 주기만 하고 뺏아가기만 했다.

그는 인간사회로부터 한 마디의 다정한 말도 듣지 못했고, 결국엔 처절한 생존경쟁에서 패배했다고 절감했다.

그는 자신에게 불행을 안겨 준 사회를 단죄하고 증오했다.

그렇게 오랜 세월 핍박당하고 고통당한 영혼은 시계추처럼 선과 악 쪽으로 번갈아 흔들렸다.

영혼 한쪽으로는 빛이 들어갔고 다른 한쪽으로는 어둠이 지배해 갔다.

그는 원래 천성이 악한 사람은 아니었다. 도형장에 처음 들어갔을 때만 해도 그는 선량한 마음을 속에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서 온갖 괴로움을 당하면서 서서히 냉혹해져 갔던 것이다.

추악해진 인간

과연 인간은 선에서 악 쪽으로 극단적인 변모를 할 수 있는가? 착한 영혼이 주변 환경에 의해 악인으로 변형되기도 할까? 인간은 몹쓸 운명의 장난으로 인하여 추악해져야만 하는가?

지독한 압력에 눌리고 찌그러져 기형으로 변하고 결국 불구의 짐승이 되어야만 하는가?

인간 영혼 속에, 이 세상의 악에 부패하지 않고 영원한 빛처럼 반짝이며 한 송이 꽃으로 피어나 악을 향해 잔잔이 미소지을 수 있는 신성한 요소는 없는 것일까?”


<다음 호에 계속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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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서울시장 올인’ 민주당 그래도 불안한 이유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내년 6월 치러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는 단연 서울시다. 서울시에 깃발을 꽂는 쪽이 전체 선거의 승리라 봐도 무관하다는 해석도 나온다. 진보 진영에서는 당원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오세훈 대항마’를 자처하는 후보군이 속속 등장했지만, 서울 시민의 마음까지 얻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지난 10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 전국 지역위원장 워크숍에서 제9회 지방선거(이하 지선) 승리라는 목표를 세웠다. 이달 중으로 지선 공천 룰을 확정해 빠르게 선거에 임하겠다는 방침이다. 큰 틀로는 ▲당원 민주주의 실현 ▲완전한 민주적 경선 ▲깨끗하고 유능한 후보 선출 ▲여성·청년·장애인 기회 확대 등 4대 방향이 제시됐다. 출사표 만지작 민주당은 이번 지선의 성격을 ‘완전한 내란 종식’으로 규정했다. 민주당 전국 지역위원장은 워크숍에서 ‘이재명정부 성공과 지선 승리를 위한 더불어민주당 전국지역위원장 결의문’을 통해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받들어 민생회복·내란청산·개혁완수라는 역사적 사명을 반드시 이루어 낼 것을 결의한다”고 밝혔다. 내년 지선서 압도적 승리를 이끌어냄으로서 ‘무능 부패한 국민의힘 지방권력’을 심판하고 ‘진짜 자치분권 균형성장’의 시대를 만들겠다는 방침이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 또한 “이정부 성공을 위해 당이 무엇을 할 것인지에 모든 초점을 맞춰야 한다”며 “다가오는 지선은 민주당의 책임과 기회의 시험대다. 당의 힘을 모아 이정부의 성공과 지선 승리라는 두 목표를 함께 이뤄낼 것”이라고 밝혔다. 주목도가 높은 서울시장 선거 최종 후보가 되는 것만으로도 존재감을 키울 수 있다. 차기 서울시장 임기는 2030년으로 21대 대통령선거 시기와 맞아떨어진다. 그동안 서울시장은 대선주자로 가는 지름길로 여겨졌던 만큼 정치인으로서 큰 꿈을 꾸는 이들에게는 ‘일생일대의 기회’다. 민주당은 서울시장 선거 본선행 티켓을 놓고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내 의원들의 공식 출마 선언 이후에도 자칭타칭 물망에 오른 진보 인사들이 시기를 재고 있어 다양한 경선 구도가 그려질 것으로 관측된다. 박주민 의원은 민주당 내에서도 가장 먼저 공식 출마 의사를 밝힌 인물이다. 그는 “서울이 ‘맏이’ 역할을 하며 지방 도시들과 함께 성장하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며 일찌감치 선거판을 예열했다. 뒤이어 민주당 서영교 최고위원이 출사표를 던졌다. 조희대 대법원장 저격수를 자처하며 존재감을 키운 그가 이번에는 “서민을 위해 일 잘하는 시장이 필요하다”며 오세운 서울시장 대항마로 나섰다. 서 최고위원은 “(오 시장은) 토지거래허가구역을 무리하게 해제하면서 부동산 폭등을 자초했다”며 “이태원 참사의 충격이 채 가시지도 않은 시점에서 큰 책임이 있는 용산구청장에게 서울시 주최 지역축제 안전관리 대상을 주는 등 시민의 요구, 시대의 요구를 전혀 읽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전현희 최고위원은 “국정감사 이후 결단을 내리겠다”며 가능성을 열어뒀다. 그는 지난달 오마이TV ‘박정호의 핫스팟’과의 인터뷰에서 “정치적 중요성이 매우 크기 때문에 반드시 승리할 후보가 서울시를 탈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그런 자리에 과연 제가 적합한 후보인지 고민을 하는 것”이라고 전했다. 큰 판 향하는 의원들 오세훈만 꺾으면 끝? 지난 조기 대선 당시 ‘민주당 골목골목선대위 서울위원장’을 맡아 서울시 정책 로드맵을 짜는 데 참여한 만큼 출마 명분은 충분하다는 평이 나온다. 마찬가지로 원내 인사인 박홍근 의원과 김영배 의원도 몸풀기에 나섰다. 특히 박 의원은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선 지난해 8월 당시 당 대표였던 이재명 대통령과 사전 논의가 있었던 점을 강조만 만큼 오랜 고심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민주당 원내대표를 지낸 홍익표 전 의원도 “서울시장 선거 출마를 생각하고 준비 중”이라며 도전을 시사했다. 홍 전 의원은 가장 민감한 서울 부동산 문제를 겨냥하는 등 오 시장의 강남권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를 집값 상승의 원인으로 꼽으며 저격에 나섰다. 박용진 전 의원의 출마 가능성도 점쳐진다. 박 전 의원은 “아직 정해진 건 없다”면서도 연일 오 시장을 때리며 존재감을 키우고 있다. 최근에는 “민주당의 정치가 ‘영포티(젊어 보이려 애쓰는 40대)’ 정치로 전락하지 않도록 몸부림쳐야 한다”며 청년세대와의 통합을 강조하기도 했다. 원외에서는 정원오 성동구청장의 이름이 눈에 띈다. ‘K-브랜드지수’에서 서울시 지자체장 부문 1위 타이틀을 따낸 그는 활발한 SNS 활동으로 두터운 지지층을 보유한 인물이다. “나 서울 시민인데, 구청장님 좀 같이 씁시다” 등 밈(인터넷 유행 콘텐츠)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팬덤을 등에 업고 민주당 원내 인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지 이목이 쏠린다. 민주당 후보군은 일동 ‘오세훈 때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오 시장의 야심작인 한강버스가 연일 구설수에 오른 데 이어 최근 서울시가 최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서울 종묘 맞은편에 높이 145m 건물이 들어설 수 있도록 재정비촉진계획을 변경한 것을 두고 맹공에 나선 것이다. 지난 11일 민주당 문화예술특별위원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종묘 재개발 논의를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날 기자회견에는 당내 서울시장 후보군인 박주민 의원과 서영교 최고위원을 비롯한 전현희·김영배·박홍근 의원 등이 대거 참석했다. 특히 박홍근 의원은 “차기 시장, 그리고 대권 놀음을 위해 종묘를 제물로 바치겠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서울 종묘가 서울시장 선거의 새로운 전장이 된 셈이다. 이리저리 혼돈의 표심 민주당에서는 윤석열정부 조기 퇴진으로 치러진 조기 대선 승리의 후광효과가 지선까지 이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번 지선 기조를 내란 청산으로 내세운 것 역시 ‘내란 VS 헌법 수호’ 프레임이 유효하다고 본 것이다. 다시 꺼내든 내란 종식 키워드가 내년 지선에서도 먹힐지는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지선 압승이라는 낙관론에 젖어 서울시 민심을 제대로 훑지 못한다면 ‘이정부 심판론’으로 되치기당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지점이다. 민주당 출신의 한 정치권 관계자는 “서울시 선거는 ‘오세훈만 꺾으면 당선’ 같은 일차 방정식이 아니다. 오 시장이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등 각종 리스크에 발목 잡혀 약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서울시민이 내란 종식을 외치는 후보에게 표를 던지겠냐는 근본적인 질문에서 다시 출발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인구 특성만큼 변수도 많은 서울시 자체가 첫 번째 허들이다. 서울은 마포·용산·영등포·광진·동작·성동·강동·중구 등 13개 선거구를 일컫는 한강벨트를 따라 보수층이 포진해 있어 보수 텃밭으로 여겨지지만, 지난해 치러진 총선에서 민주당이 서울 48석 중 37석을 얻어 과반이 넘는 지역에 파란 깃발을 수놓았다. 그럼에도 조기 대선에서 당시 민주당 이재명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서울시에서 각각 47.1%, 41.6%를 얻어 두 후보 간의 격차는 5.5%p에 불과했다. 여기에 범보수로 여겨지는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가 얻은 9.9%를 더하면 보수 진영이 진보 진영을 앞서게 된다. 비상계엄이라는 특수 상황을 경험했지만 40%에 달하는 서울 시민이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두 번째는 한강벨트를 따라 빼곡히 자리 잡은 부동산이다. 정부의 10·15 부동산 정책을 통해 서울시 민심을 움직이는 건 진영 간의 논리 싸움이 아닌 정책, 그중에서도 집값이라는 게 명확해졌다. 서울 전역을 토지거래허가구역과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는 이재명표 부동산 대책이 발표된 지 약 보름 뒤 민주당 지지율이 1주일 새 10%포인트 하락하며 국민의힘에 오차범위 내에서 역전됐다. 지지층에 휩쓸릴라 한국갤럽이 지난달 28~3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02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민주당의 서울 지지율은 31%로 전주 대비 10%p 떨어졌다. 반면 국민의힘은 12%p 오른 32%로 집계됐다. 서울을 대상으로 고강도 대책이 발표되자 서울 민심에 본격적으로 영향을 끼쳤다는 해석이 나왔다. 이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체 긍정 평가는 전주 대비 1%포인트 상승해 57%를 기록했지만, 민주당과 마찬가지로 서울 지역에서는 8%p 하락한 47%로 나타났다. 해당 조사의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p로 응답률은 12.6%다. 이동통신 3사가 제공한 무선전화 가상번호를 무작위로 추출해 전화 조사원이 인터뷰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와 한국갤럽 홈페이지를 참고하면 된다. 결국 이번 서울시장 선거는 진영 간의 대립구도가 아닌 인물과 정책으로 승부를 봐야 한다는 의견에 초점이 맞춰지지만, 진보 진영 후보들은 본선 진출을 위해 당원의 표심을 얻는 일을 우선해야 한다는 딜레마에 빠졌다. 지선을 앞두고 민주당 지도부가 권리당원 권한을 대폭 강화하겠다고 밝힌 만큼 국민의힘과 잘 싸우는 ‘전투적인 후보’가 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하다는 해석이 나오는 이유다. 차기 서울시장 후보 적합도를 묻는 여론조사에서 진보·여권 후보 가운데 정 구청장이 1위를 차지했다. 만일 정 구청장이 출마 의지를 굳히더라도 박주민·서영교 의원 등 쟁쟁한 원내 인사를 제치고 당원의 선택을 받을지 확신할 수 없다. 인지도면은 물론 민주당 지선 기조가 내란 청산으로 자리 잡은 한 12·3 비상계엄을 해제한 인물에게 더 많은 정치적 유산과 서사가 쥐어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박 전 의원은 출마 가능성을 시사한 동시에 민주당 강성 지지층에게 집중적으로 질타 받았다. 2023년 8월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당 대표이던 시절 체포동의안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던 중 불체포특권 포기 성명에 이름을 올린 31명의 의원 중 한 명인 만큼 경선 통과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반면 민주당 지지층으로부터 꾸준히 이름을 알려온 경우 경선 통과가 수월하지만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 ‘개딸(개혁의 딸들)이 밀어준 강경파 후보’라는 꼬리표가 붙는다면 정책이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묻히고 이에 거부감을 느낀 중도층의 표가 분산될 것이란 점에서다. 당원 마음 잡으랴, 중도층 안으랴 김민석·강훈식 ‘투톱’ 차출설도 경선과 본선을 놓고 민주당의 딜레마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 대통령의 신임을 받는 ‘김민석·강훈식 차출설’이 돌면서 서울시장 선거판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인지도가 높고 행정가 면모가 돋보이는 김민석 국무총리와 강훈식 대통령실비서실장을 서울시장 후보로 내보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정 투톱이 또다시 정치의 한가운데에 들어섰다. 앞서 김 총리는 여러 차례에 걸쳐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에 선을 그어왔지만 종묘 재개발 논쟁에 뛰어들면서 다시 불을 댕겼다. 지난 10일 김 총리가 서울 종묘 일대를 찾아 “무리하게 한강버스를 밀어붙이다 시민의 부담을 초래한 서울시로서는 더욱 신중하게 국민적 우려를 경청해야 한다”고 우려를 표했는데, 이를 두고 오 시장이 “국민 감정을 자극하려 하는데 이는 선동”이라며 지선을 겨냥한 발언이라고 의심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한 차례 서울시장에 도전했던 민주당 정청래 대표의 이름도 다시 거론된다. 김 총리가 서울시장 대신 당 대표로 나서고, 직을 내려놓은 정 대표가 서울시장 도전 후 대권 코스를 밟는 시나리오다. 3대 개혁을 두고 당정 불협화음이라는 의심의 눈초리가 따라붙는 만큼 교통정리를 통해 당정 서로에게 윈윈(win-win)하는 방법으로 꼽힌다. 우선 민주당 관계자들은 앞선 두 사람의 출마 가능성이 극히 낮다고 보고 있다. 가장 중요한 시기에 총리나 대통령비서실장 자리에 생긴 공백은 국정 운영에 차질이 빚을뿐더러 정부 출범 1년도 되지 않은 시기에 지선 후보로 차출할 시 모양새가 좋지 않다는 게 공통된 설명이다. 정 대표의 서울시장 도전 여부 역시 “이제 겨우 (취임) 100일이 지났다”며 일축했다. 이처럼 ‘스타 정치인’ 후보군이 물망에 오르자 당 일각에서도 지역 일꾼을 뽑는 지선의 의미가 퇴색될까 우려하는 모양새다. 경선 당락을 결정할 당원의 표심을 사로잡기 위해 지나친 선명성 경쟁이 이어질 경우 중도층의 눈살을 찌푸리게 할 거라는 지적도 나온다. 수많은 변수들 여권 관계자는 “지선 결과를 미리 예단하기엔 시간이 많이 남았으니 차분하게 기다리면서 후보들의 공약을 분석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앞으로 종묘 재개발 같은 이슈가 전방으로 나올 텐데 그때마다 (민주당도) 네거티브로 맞받아치면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우리 당원도 내란 종식과 민생회복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사람을 최종 후보로 뽑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hypak28@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터줏대감 눈치 보는 국힘? 더불어민주당과 마찬가지로 국민의힘 역시 서울시장을 이번 지방선거의 최대 격전지로 보고 있다. 서울시 사수를 위해 후보군을 물색하고 있지만, 오세훈 시장의 임기가 남은 만큼 누구 하나 선뜻 도전장을 내밀지 못하는 분위기다. 이에 오 시장의 재도전이 유일한 방법으로 여겨지는 모양새다. 오 시장은 “시민들이 어떤 평가를 해줄지 지켜보며 거취를 분명히 하겠다”며 3선 도전 가능성을 내비쳤다. 명태균 게이트, 한강버스, 종묘 재개발 등 리스크를 안고 있지만 현역 프리미엄에 기댄다면 시도해 볼 가치가 충분하다고 본 셈이다. 한때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됐던 국민의힘 나경원 의원이 이번에는 서울시장 물망에 올랐다. 서울시장 출사표를 던진 민주당 박주민 의원이 “오 시장이 아닌 나 의원을 상대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로 말하면서 이목이 쏠렸지만 정작 나 의원은 서울시장 도전 가능성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