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놓고 반대로’ 김기현-이준석 엇갈린 행보

가까이 하기엔 너무 멀다

[일요시사 정치팀] 차철우 기자 = 달라도 너무 다르다. 현직 당 대표는 집토끼 잡기에 몰두해 있고, 전직 당 대표는 빈틈을 파고들고 있다. 빈틈을 메우기 위해 손을 보태기도, 내밀기도 애매한 상황이다. 국민의힘은 다른 활로로 해결책 마련을 위해 전전긍긍하지만 그럴수록 실점만 거듭 중이다. 과연 정부여당은 차기 총선을 1년도 남기지 않은 상황에서 민심을 되찾을 수 있을까?

윤핵관(윤석열 핵심 관계자)들이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와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 사이를 갈라놓으려 했다. 당 지도부서 천 위원장에게 자꾸만 들어오라는 손짓을 해서다. 문제의 발단은 박수영 여의도연구원장이 천 위원장에게 “이 전 대표를 뛰어넘을 수 있다“는 발언으로 시작됐다. 

윤핵관
이간질

그러자 천 위원장은 “선의의 경쟁을 하면 했지만, 윤핵관의 이간질에 넘어가 싸구려 경쟁을 할 이유가 없다”며 이 전 대표와 협력자임을 더욱 공고히 했다.

당 지도부는 천 위원장에게 계속 구애를 보냈다. 청년 지지층은 바닥도 모른 채 추락 중이고, 연속적인 실책으로 보수당에 등 돌리고 있는 호남 민심을 다시 잡기 위한 해법으로 여겨서다. 청년과 호남, 두 가지를 동시에 보완할 수 있는 천 위원장을 포용해 지지율을 반등시키겠다는 구상이었다. 천 위원장은 이 같은 김 대표의 손을 과감히 뿌리쳤다. 

당의 일반적인 대세론에는 이 전 대표 세력과 함께 갈 수 없다는 기류가 흐른다. 함께 가기 힘든 반윤(반 윤석열)정서로 보는 시각이 강한 탓이다. 사실상 천 위원장, 허은아 의원 등과는 함께 갈 수 있음을 암시하면서도 그들의 중심 격인 이 전 대표와는 불가하다는 입장인 셈이다.


전당대회 기간 천 위원장은 ‘천하용인’에 소속돼 한 팀으로 뛰었다. 이 기간 동안 천 위원장도 상당히 많은 공격을 받았다. 배신자로 불렸던 것과는 대비될 만큼 현재 위상은 180도 달라진 모습이다. 

당장 국민의힘 지도부는 급할 수밖에 없다. 예상보다 심각한 수준으로 지지율이 폭락하고 있어서다. 청년을 위한 대책과 호남을 바라본 행보를 하려고는 하지만 어쩐지 순탄치 않다. 물 보내기 운동에 맞춰, 윤석열정부는 4대강 보로 가뭄을 극복하겠다는 방안을 내세웠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신기루 같은 이야기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여러 여파들로 인해 국민의힘은 위기가 점차 고조되는 모양새다. 위기는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의 잇따른 말실수 여파로 시작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전광훈 목사 옹호, 제주 4·3사건 비하 논란 등 벌써 3번째 실책이다. 김 최고위원은 결국 침묵형을 받았고, 당분간 공개 활동을 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문제는 지지를 철회한 층이 청년층뿐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중도층·수도권의 이탈도 가속화하고 있다.

국민의힘 지부의 지지율 추이를 살펴보면 김 대표 당선 직후 아주 잠시 반짝했을 뿐이다.

전통적 지지층 역시 부정 평가가 늘면서 위기감이 느껴진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당 지도부는 우향우 성격이 점점 짙어진다는 게 문제다. 집토끼마저 떠나갈까 노심초사 중인 탓이다.

손 내밀기도 애매한 상황
집토끼 결집도 위태위태?


게다가 김기현 당 대표는 제주 4·3사건 추념식장을 방문하지 않았다. 김 대표는 ‘민생’과 서울에 일정이 있다며 참석 불가 이유를 댔다. 그는 제주도 방문 대신 2030부산세계박람회(EXPO, 엑스포) 유치 분수령인 국제박람회기구 실사단을 맞이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실사단 방한 일정 지원에 만전을 기하라”는 지시를 충실히 따른 것.

김 대표의 판단으로는 엑스포의 경제적 효과 등이 국민들의 먹고사는 문제의 연장선이라고 판단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제주도는 전당대회 기간 첫 합동연설 지역으로 김 대표가 제주 4·3 평화공원을 방문한 바 있던 만큼 더욱 비판 목소리가 나왔다. 이번 추념식에도 지도부 일부가 방문하기는 했지만 당 대표가 직접 왔어야 한다는 것.

특히 올해 추념식은 특별법 개정으로 희생자와 유족의 피해보상이 이뤄지는 등 명예회복과 실질적인 피해 해소 등의 의미가 담겼다. 정부여당 대표의 불참에 유가족들의 반발도 상당히 거셌다. 

사실 김 대표의 우클릭 행보는 예정돼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미 당심 100%로 진행되는 선거에서는 중도층을 잡기보다 집 토끼층을 잡으려 했다. 다른 당권 후보들보다도 보수 성향 유튜브에도 출연이 잦았다. 

당 대표 당선 때까지는 우클릭 전환이 성공처럼 보였다. 그러나 지도부 구성이 시작되자, 우려하던 문제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최고위원들의 발언 줄실수 남발이 이어졌다. 일각에서는 최고위원들이 한 명씩 돌아가면서 사고를 치냐는 비아냥도 나왔다. 

다음 빅 이벤트는 총선이다. 현실적으로 텃밭층 민심도 악화일로를 걷는 상황에서 총선까지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의 멘토로 불리는 신평 변호사마저 우려하는 마음을 드러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상당히 이례적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직접적인 우려는 윤 대통령을 향하고 있지만, 사실상 여당에도 보내는 메시지라고 읽힌다. 

신 변호사는 이번 전당대회 기간 김 대표의 후보 시절 후원회장을 맡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SNS에 “윤 대통령이 보수만 챙기고 있다”며 “이런 탓에 국민이 등을 돌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선거는 3:4:3 판으로 중도층의 마음을 누가 더 얻느냐의 싸움이다. 유권자의 다수가 거주하는 수도권 표심이 승패를 결정한다”고 꼬집었다.

대체재
천하람

사실상 자기 지지층을 향한 구애만 치중한다고 진단한 셈이다. 

실제로 다음 총선에서는 윤 대통령의 측근인 검사 출신이 대거 총선에 출마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이럴 경우 총선 승리를 보장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으로 최근 잠잠한 안철수 의원이 중도층을 공략할 인물로 떠오르는데 이마저도 쉽지는 않다. 안 의원이 중도층을 포섭할 수는 있을지라도, 당내에서의 반감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그는 이미 당에서 적으로 낙인찍혀 있는 인물이다. 안 의원이 직접 등판할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인다. 중도층은 캐스팅 보트로 불린다. 이제껏 중도층이 지지를 보내 준 이유는 민주당에 대한 반감뿐 아니라, 국민의힘이 중도층의 구미를 당길 아이템들을 제시해온 덕이다.

지금은 확장성이 필요한 시기다. 중도층이 빠져나가면서 윤 대통령의 중도층 50% 지지율 선이 붕괴됐고, 이제는 20%대까지 내려앉았다. 여권 전체에 비상이 걸린 셈이다. 중도층은 통상 적극적인 투표 성향을 보이지 않는다. 이런 탓에 중도층을 선점해야 선거에서 유리한 국면을 가져갈 수 있다.

이제는 민주당이 국민의힘의 발목만을 잡는다는 말이 나와도 소용없어졌다. 단순 민주당 핑계만 대는 전략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소리다. 국민의힘이 대선을 승리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수도권과 중도층의 지지세가 컸기 때문이다.

충청권 역시 윤 대통령의 당선에 한몫을 차지했지만 이제는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선심성으로 느껴지는 민심 챙기기보다는 민주당과 중도층의 관심을 끌만한 이슈를 선점해올 필요가 있어 보인다.

대선 기간보다 중도층 비율은 10%p 넘게 올랐다. 정치권에서는 국회 제1당은 국민의힘도, 민주당도 아니라는 말까지 나온다. 결국 제3지대가 탄생하는 빌미를 제공하는 형태다.


중도층 확보를 위해 국민의힘은 민주당을 공격하고는 있으나,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는 이유도 민주당의 지지층이 결집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으로 보인다. 민주당은 국민의힘의 실책으로 지지율 끌어올리기에 돌입하는 모양새다.

이대론
총선 필패

최근에는 문재인 전 대통령까지 직접 등판했다.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하나의 악재다. 민주당은 지지층 결집까지 다지고 있다.

이와 함께 이제는 이 대표가 법원을 출두해도, 사법 리스크가 지속적으로 터져도 지지율이 오르는 추세다. 더 이상 이 대표의 리스크를 하나의 표 뺏기 수단으로만 삼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 지점을 잘 안다는 듯 이 전 대표는 국민의힘 지도부와는 다른 형식으로 중도층 공략에 나섰다. 이 전 대표는 다시 한번 민심 투어에 나서고 있다. 이번 전당대회서 이 전 대표는 이준석계 후보를 지도부에 단 한 명도 입성시키지 못했다.

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이 전 대표 효과가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많았으나 대신 민심을 얻었다. 당시 전당대회 구도에서 천하용인을 지지세는 민심서 더욱 두드러졌던 바 있다. 천 위원장은 민심으로부터 선두권을 기록하며 존재감을 키웠다. 팀으로 움직인 점도 많은 이점이었던 것으로 분석된다. 

윤핵관 대 천하용인의 대결구도를 만들 수 있었던 덕이다. 실제 국민의힘을 지지했던 청년층이 지지율이 빠진 것과 전당대회서 천하용인을 지지했던 수치와 비슷했다. 

이 전 대표는 최근 지도부가 노리는 지역들의 빈틈을 노린다. 이른바 순진(순천-진주)한 계획을 세웠다. 10년 만에 열리는 순천만국제정원박람회에 참석해 언어 통역 봉사를 하고 경남 진주서도 교육봉사활동을 한다.

사실상 당 지도부와는 대비되는 행보를 보인다. 이 전 대표는 제주도에도 함께 방문했다는 점도 김 대표와 차별화된 전략이다. 

이, 중도 노리며 장외 정치
김, 해결책 마련 위해 고심

제주도 참석한 자리서 이 전 대표는 “지역의 아픔을 다루는 사안에 책임있는 여당으로서 언제나 진상규명과 회복에 앞장설 필요가 있다”며 김 전 대표를 정면으로 공격했다. 그는 “(지도부가) 기념식에 참석하는 건 기본이다. 전당대회 과정서 불미스러운 발언이 있었기 때문에 당 모든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는 점을 명확히 하려고 왔다”고 강조했다. 

천하용인은 지속적으로 민심의 문을 두드려왔는데 이는 차기 총선을 염두에 둔 행보로 보인다. 이들은 험지 등에서 자꾸만 존재감이 커져간다. 모두 국민의힘 취약 장소들이다. 민주당 강세가 두드러진 지역들을 계속 공격하면서 자신만의 세를 불려나가는 한편, 전국을 순회하면서 국민들을 만나고 있다. 

이전 징계 결정 직전 이 전 대표는 민심투어에 나서서 장외 여론전을 펼쳐왔다. 이때까지만해도 성공을 거두는 듯했으나 천하용인 역시 당내만을 공격하는 게 부담스러웠던 모양새다. 최근 천하용인의 주요 공격 지점도 민주당 쪽으로 방향을 틀고 있다. 

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지속적으로 공격하면서 중도층 끌어들이기에 안간힘이다. 이 부분은 청년 최고위원에 출마했던 이기인 경기도의회 의원이 담당한다.

이 의원은 팀 블로그인 고공행진에 이 대표와 고 김문기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1처장의 사진을 공개하면서 맹공을 퍼붓기 시작했다. 이 역시 중도층 민심을 끌어오겠다는 심산으로 읽힌다. 단순히 정치적 공격이 아닌, 근거와 자료를 바탕으로 공격에 나섰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이 전 대표를 향한 조직적인 반감을 우려해 마냥 그를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한발 더 나아가 이준석계는 개혁 이미지를 한층 더 강화하려는 모습이 감지된다. 전당대회 당시에는 개혁 이미지가 오히려 당원에게 심판을 받았다.

이 같은 행보가 오히려 민심을 자극한 모양새다. 당내에서는 영향력이 줄었지만, 장외서 지지층을 끌어모으는 데 힘쓰고 있다.  

한 달 만에
시험대 올라

한 정치권 관계자는 “현재 국민의힘이 본래 지지층을 잡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지금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면 총선서 패배할 수밖에 없다”며 “외연확장에 신경써야 한다. 현 상황이 김 대표의 시험대”라고 덧붙였다.  

<ckcjfdo@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갈 길 바쁜데… 하나씩 터지는 실책

국민의힘 지도부가 최고위원들의 잇따른 실책에 몸살을 앓고 있다.

김재원 수석최고위원의 실언 이후 이번에는 조수진 최고위원의 발언이 논란이다. 

조 최고위원은 민생119의 위원장을 맡고 있다.

한 라디오에 출연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양곡법 개정안에 대한 여당의 대안을 묻자 “밥 한 공기를 다 비워야 한다”고 답변하면서 불거졌다.

해당 발언과 관련해 정치권에서는 쓴소리가 터져나왔다.

같은 당 김기현 대표도 “대책이 될 것 같냐”며 우려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이준석 전 대표는 “1940년대 밥공기 크기로 가면 더 많은 밥을 남기고 더 많이 버려서 해결된다”고 비꼬았다.

민주당에도 공격거리를 제공했다.

박홍근 원내대표가 “황당무계한 발언이라 뭐라고 표현을 못 하겠다”고 지적하자, 조 최고위원은 “발언의 진의를 왜곡해 선전 선동을 벌이는 행동에 대해 유감”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과거 성남시장 시절 쌀 피자 만들기 캠페인을 펼친 일이 있다”고 설명했다. <차>

 



배너





설문조사

진행중인 설문 항목이 없습니다.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용산에 날아들 영수회담 성적표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꼬박 720일이 걸렸다. 한 나라의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만나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악재에 악재가 겹쳐 궁지에 몰린 용산 대통령실이 꺼내든 최후의 카드는 영수회담이었다. 온 국민의 관심이 무색하게 이번 만남은 여야 어느 한쪽도 만족시키지 못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임기가 3년 차에 접어든 시점서 또다시 ‘강 대 강’ 매치가 예상된다. 정치권이 학수고대하던 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만남이 성사됐다. 이번 영수회담은 지난 19일,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만남을 제안하면서 시작됐다.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브리핑을 통해 “윤 대통령은 이날 오후 3시30분 이 대표와 통화했다”며 “이 대표에게 다음 주 형편이 된다면 용산서 만나자고 제안했다”고 말했다. 둘의 만남은 윤 대통령 취임 이후 1년 11개월 만이다. 어렵게 만났는데… 같은 날 민주당은 즉각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민주당 강선우 대변인은 “윤 대통령은 이 대표에게 내주에 만날 것을 제안했다”며 “이 대표는 ‘많은 국가적 과제와 민생 현장에 어려움이 많다’며 되도록 이른 시일 안에 만나자고 화답했다”고 전했다. 그동안 이 대표는 꾸준히 영수회담을 요청했지만 윤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을 받고 있는 이 대표가 피의자 신분인 만큼 만남이 적절치 않다는 무언의 거절이었다. 윤 대통령의 변심에는 지지율이 20%대로 급락한 상황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풀이된다. 여당인 국민의힘이 4·10 총선서 참패한 데 이어 인사 문제를 두고 대통령실의 손발이 맞지 않자 비선 개입 의혹까지 가중됐다. 야당과 소통함으로써 단단하게 굳어진 불통 이미지를 벗어던지는 등 현 상황을 돌파하겠단 뜻이다. 개혁신당 이준석 당선인은 “이번 총선 이후 ‘야당 대표를 무시하다가는 총리도 임명 못하겠구나’라는 상황을 파악한 것”이라며 “아마 구체적인 내용보다는 총리 인선 협조 정도를 받아내기 위한 피상적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이 대표에겐 편한 회담이 될 것이다. 자기 할 말만 하면 되기 때문”이라며 “예를 들어 ‘채 상병 특검 받고 거부권 행사하지 말아달라’고 했을 때 대통령이 못 받으면 회담까지 하고 욕먹는 건 본인”이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이 만남을 갖기로 합의를 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조율해야 하는 상황의 연속인 만큼 넘어야 할 고비는 많았다. 1차 실무진 회의도 쉽지만은 않았다. 당초 지난 22일 예정됐던 만남이 대통령실의 일방적인 취소로 불발된 것이다. 대통령실의 수석급 교체 일정으로 인해 일정에 변동이 생긴 것으로 전해진다. 피치 못할 사정이라지만 준비 회동조차 잡음이 새 나오면서 위태위태한 앞날이 예고됐다. 결국 첫 실무진 만남은 이로부터 하루 뒤인 지난 23일 이뤄졌다. 대통령실 측에서는 홍철호 정무수석과 차순오 정무비서관이 참석했다. 민주당 측에서는 천준호 비서실장과 권혁기 정무기획실장이 자리했다. 이날 회의는 영수회담 날짜는 물론 의제도 정하지 못한 채 빈손으로 종료됐다. 지지율 하락에 반등 노렸지만… 의제 놓고 격돌…샅바 잡은 윤-이 지난 25일 진행된 2차 회의도 큰 소득은 없었다. 테이블에 올릴 의제를 놓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한 탓이다. 그동안 민주당은 채 상병 사망 사건 수사외압 의혹을 담은 특검법 수용과 윤 대통령의 거부권 남용에 대한 사과 등을 의제로 다루자는 입장을 밝혀왔다. 반면 이를 전해 들은 대통령실은 난감하단 태도를 보이며 팽팽하게 대립했다. 천 비서실장은 실무 협상 직후 브리핑서 “사전에 조율해 성과 있는 회담이 되도록 의제에 대한 검토 의견을 (대통령실이)제시하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홍철호 대통령실 정무수석은 “지도부와 상의를 거쳐야 한다”며 추후 답변을 주겠다고 밝혔다. 민주당 측이 제안한 의제와 관련해서는 ‘포괄적 수용’이라는 입장을 전달했다. 의제를 놓고 양쪽이 평행선을 달리면서 이대로 영수회담이 불발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하지만 지난 26일 이 대표가 “다 접어두고 먼저 윤 대통령을 만나도록 하겠다”고 말하면서 논의는 급물살을 탔다. 진통 끝에 영수회담 날짜가 정해지면서 세간의 관심이 두 사람의 입에 집중됐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지난달 29일 오후 2시 용산 대통령실서 만났다. 대통령실에선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홍철호 정무수석, 이도운 홍보수석이 배석했다. 민주당에선 천준호 당 대표 비서실장과 진성준 정책위의장, 박성준 수석 대변인이 자리했다. 대통령실은 이번 영수회담을 통해 정국을 풀어갈 실마리를 확보할 것으로 기대했다. 민주당은 ‘총선 민의’를 가감 없이 전달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재명 15분 독주 윤 대통령은 대통령실로 들어선 이 대표를 웃음으로 맞이했다. 곧이어 두 사람은 악수를 한 뒤 건강 등 안부를 주고받았다. 이 대표는 “저희가 (국회서 이곳으로)오다 보니 20분 정도 걸리던데, 실제 여기 오는 데 700일이 걸렸다”며 뼈 있는 농담을 건넸다. 윤 대통령은 대답 대신 웃음으로 갈음했다. 이날 영수회담서 가장 눈길을 끈 건 이른바 이 대표의 ‘작심 발언’이다. 윤 대통령의 인사말 이후 취재진이 퇴장하려 하자 이 대표는 “퇴장할 건 아니고, 제가 대통령님한테 드릴 말씀을 써왔다”며 멈춰 세운 뒤 품에서 종이 뭉치를 꺼내 읽어 내려갔다. 700일 동안 묵혀둔 말을 몽땅 쏟아내겠다는 듯, 이 대표의 발언은 장장 15분 넘게 이어졌다. 이 대표는 “대통령님께서 너무 잘 아시겠지만 지금 우리의 현실이 참으로 팍팍하고 국민의 삶이 어렵다”고 운을 띄웠다. 이어 “국가적으로 보면 정치, 경제, 사회, 또 외교 안보, 모든 영역서 많은 위기가 도출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며 “물가, 고금리, 고환율 이런 삼중고를 포함해서 우리 국민의 민생과 경제가 참으로 어렵다는 것은 대통령님께서도 절감하실 걸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곧이어 이 대표는 ‘전 국민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 지급’을 요구하면서 본격적인 의제를 던졌다. 이 대표는 “민간경제가 어려울 때 정부가 나서는 것이 원칙이다. 우리 민주당이 제안한 긴급 민생회복 조치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주실 것을 부탁드린다”며 “특히 지역화폐로 지급하면 소득 지원 효과에 더해서 골목상권 소상공인 자영업자 지방에 대한 지원 효과가 매우 큰 민생회복지원금을 꼭 수용해주길 부탁드린다”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김건희 특검법’ 수용도 에둘러 촉구했다. 그는 “이번 기회에 국정운영에 큰 부담이 되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시면 좋겠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이태원 참사나 채 상병 순직 사건의 진상을 밝혀 그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 대책을 생각할 것과 연구·개발(R&D) 예산 등도 화제로 올렸다. 거부권 행사를 자제할 것도 강하게 요구했다. 아울러 “지금까지 제가 말씀드린 게 상당히 불편하실 수 있을 것 같다”면서도 “또 민심을 과감하게 가감 없이 전달하는 것이 이 자리가 마련된 이유라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윤 대통령은 이 대표의 말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고개를 끄덕이는 식으로 답했다. 처음 웃는 얼굴로 이 대표를 맞이할 때와 달리 표정은 점차 굳어져 갔다. 모두발언이 끝나자 윤 대통령은 “이 대표와 민주당이 강조해 오던 이야기라 예상하고 있었다”며 모두발언은 생략한 뒤 비공개 회담을 이어갔다. 이날 회담은 예상 시간인 1시간을 훌쩍 넘은 오후 4시10분쯤에 마무리됐다. 130분간 자리를 함께했지만 도중에 배석자를 제외하는 등 두 사람이 독대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두 사람이 영수회담 도중 배석자를 물리고 자연스럽게 만찬 회동을 가질 것으로도 기대했지만 이번 만남은 차담 수준서 그쳤다. 영수회담을 마친 뒤 대통령실과 민주당은 각각 브리핑을 진행했다. 같은 장소서 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이번 회담을 바라본 양측의 시각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두 쪽 난 여론 국민의 판단은? 이도운 대통령실 홍보수석은 영수회담 종료 직후 브리핑을 통해 “전체적으로 볼 때 대통령은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표와 민생 문제 등에 대해 깊이 또 솔직하고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눴다”며 “합의에 이르지는 않았지만, 양측이 총론적 혹은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 수석의 설명처럼 별도의 합의문은 없었다. 다만 의료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대표가 “의료개혁은 시급한 과제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다. 민주당도 협력하겠다”라는 취지로 말했다는 것이다. 다만 “민생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개선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대통령실과 여야 간의 정책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데 대해서도 조금 이견이 있다는 것도 확인했다”며 “대통령은 민생 협의를 위한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말했고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표명했다”고 말했다. 이태원 특별법에 대해서는 “대통령은 이 사건에 대한 조사나 재발 방지책, 피해자 유족들에 대한 지원에 대해서는 공감을 하지만 지금 국회에 제출된 법안이 법리적으로 볼 때 민간조사위원회서 그 영장 청구권을 갖는 등 좀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부분이 있기 때문에 ‘이런 부분은 조금 해소하고 다시 논의를 하면 좋겠다’ ‘그렇게 한다면은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의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양측이 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한 부분은 있었다는 대통령실의 평가와 달리 민주당은 이번 영수회담에 대해 냉랭한 반응을 보였다. 회담에 배석한 박성준 민주당 수석 대변인은 같은 날 국회서 브리핑을 열고 “영수회담에 대해 큰 기대를 했지만 변화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박 수석 대변인은 “상황 인식이 너무 안일해서 향후 국정이 우려된다”며 “특히 우리 당이 주장했던 민생회복 국정기조와 관련해 민생을 회복하고 국정 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밝혔다. 이날 회담에 대해 이 대표의 소회를 묻는 질문에는 “답답하고 아쉬웠다. 소통의 첫 장을 열었다는 데 의미를 둬야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소통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서로 공감했으나 이 대표가 내민 청구서에 윤 대통령이 딱 떨어지는 답변을 내놓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은 것이다. 범야권 집중 포격 맞은 대통령실 “결과도 실리도 없다” 쏟아진 질타 범야권도 일제히 쓴소리를 얹었다. “이럴 거면 대체 왜 만났냐”는 반응이 대체적이다. 조국혁신당(이하 조국당)은 “윤 대통령의 답은 거의 없었다”며 “총선 민심에 관한 시험을 치르면서 백지 답안지를 낸 것과 다름이 없다”고 혹평했다. 조국당 강미정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이번 회담을 통해 윤 대통령의 기조가 곧바로 바뀌진 않을 것으로 전망했다. 강 대변인은 “준비가 덜 된 대통령과 그럼에도 최대한 민심을 담아 질문을 한 야당 대표의 만남”이라며 “(대통령이)여러 가지 법안과 자신의 가족 문제 등 민감한 질문은 빼버렸다. 추후 만남을 기약한 정도일 뿐 아무런 결실이 없었다”고 지적했다. 다만 “그래도 윤 대통령 측에서 ‘자주 소통하자’는 뉘앙스가 나왔다”며 “만남을 거듭한다면 나아질 가능성이 있을 거라는 희망을 걸어본다”고 말했다. 새로운미래는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것은 없었다”며 “130분간 회담을 했으나 공동합의문은 없고 소모적인 정쟁에 불과했다”고 양측을 모두 비판했다. 새로운미래 신재용 대변인은 <일요시사>와의 통화서 “가장 시급한 문제인 의료대란 관련해 조금이라도 진정성 있는 결과가 나왔어야 이번 회담이 성과가 있었다고 본다”며 “진전도 성과도 없이 끝나 버렸다”고 혹평했다. 김준우 정의당 대표는 자신의 SNS를 통해 “130여분간 진행됐다는 대화의 결말은 결국 ‘2년 만에 첫 대화를 했다’는 그 자체와 여야 모두 입장이 애초에 비슷했던 의대 정원 확대 필요성을 확인한 것 외엔 아무런 성과가 없었다”고 비판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영수회담이 아쉽게 끝난 것에 대해 이 대표에게도 책임이 있다고 봤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권 관계자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이 대표는)대화의 기본이 안 돼있다”며 “대화라는 건 서로 말을 주고받는 걸 전제로 해야 하는데, (이 대표처럼)하고 싶은 말을 모조리 한다고 해서 소통이 되는 건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정치권 관계자 역시 “이번 만남은 이 대표의 1승”이라면서도 “이 대표가 무리하게 정국을 끌고 갈 가능성처럼 비칠까 우려되는 지점도 있다”고 말했다. 첫술에 배부르랴 현재로서는 이번 회담이 윤 대통령의 ‘자충수’라는 여론이 강하다. 소통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TK·PK 기반의 집토끼를 꽉 쥐는 데 효과적일지 몰라도 중도층이 보기에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다는 평이다. 영수회담 민심이 반영된 여론조사 결과도 주목된다. 레임덕 돌파구로 이 대표와의 만남을 선택한 윤 대통령의 선택이 자충수인지 신의 한 수인지 지켜봐야 할 전망이다. <hypak28@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