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 못 잡는’ 학폭 공소시효의 한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3.20 14:36:19
  • 호수 14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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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힘 있는 놈들의 나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학교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성인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어떤 학생에게 학교는 ‘폭력’의 장소다. 학교폭력을 당한 이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부른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6일 16개 시도교육감이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피해 응답률은 1.7%인 5만4000명으로 2021년에 비해 0.6%p 증가했다. 학급별로는 ▲초등학교 3.8% ▲중학교 0.9% ▲고등학교 0.3%로 나타나, 모든 학교서 학교폭력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피해 유형별 응답 비중은 언어폭력(41.8%), 신체폭력(14.6%), 집단따돌림(13.3%) 순이었다.

드라마
한 편으로…

과거에는 학교폭력 심각성이 조명되지 않았으며 가해자 처벌 수위도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피해자를 두고 “당한 사람이 잘못” “당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 “철없는 애들끼리 장난친 것” 등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2020년대부터는 학교폭력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혔다. 특히 최근 넷플릭스서 방영한 드라마 <더 글로리>가 큰 인기를 끌어 학교폭력 심각성을 다시 인지시켰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학교폭력이나 그에 준하는 따돌림으로 피해자 자존감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심각한 경우는 평생을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자해 내지는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심한 폭행을 당한 경우 영구적인 장애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의 질병으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다.


피해자가 겪는 고통에 비해 가해자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몇몇 가해자는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빌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정부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해당 법 제20조(학교폭력의 신고 의무)에는 ‘학교폭력 현장을 보거나 그 사실을 알게 된 자는 학교 등 관계 기관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신고받은 기관은 가해 학생 및 피해 학생 보호자와 소속 학교장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기재돼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신고를 하는 것도, 부모에게 자신이 겪은 피해 사실을 알리기도 어렵다. 신고 후 2차 가해가 있을 수도 있고, 신고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지 않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촉법소년 연령 기준으로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다.

학교생활 내내 끔찍했던 폭력 피해
고소장 접수했지만…공소시효 8개월

이런 상황이 복잡하게 작용해 학교폭력 피해자는 성인이 된 후 가해자를 상대로 학교폭력 고소장을 접수한다. 그러나 이 시기는 사건 공소시효가 임박했거나 지난 상황이 많다.

부산서 미용실을 운영 중인 A씨는 학교폭력 피해자다. A씨는 초‧중‧고등학교를 경남의 한 지역에서 다녔고 12년 동안 학교폭력을 당했다. A씨는 자신을 ‘생존자’라고 부른다.

A씨는 현재 학교폭력 후유증으로 ▲대인관계 형성 어려움 ▲불안장애 ▲불면증 ▲우울증 등으로 정신과에서 1년간 치료 중이다. 게다가 현재까지 알 수 없는 복통을 앓고 있다. 학교폭력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전 기간 동안 당했다. 종류는 ▲집단따돌림 ▲폭행 ▲특수폭행 ▲상해 ▲특수상해 ▲모욕 ▲갈취 등이다. 


A씨는 “오랜 기간 폭력에 노출돼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다”며 자신이 당한 학교폭력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 설명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때부터 A씨는 집단따돌림을 받았다. 같은 반 남학생 친구는 A씨를 교실의 초록색 칠판 가운데 데려다 놓고 발로 찼다. A씨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기 전까지는 폭력이 멈추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A씨를 향해 지우개, 연필, 볼펜, 교과서, 의자 등을 던졌고 A씨의 교과서와 실내화를 화장실 변기통에 집어넣었다. 어떤 날은 실내화 안에 압정을 넣어서 실내화를 신다가 발을 다쳤다.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A씨 어머니는 A씨가 학교폭력에 힘들어한다는 것을 눈치채 A씨를 인근에 있는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 조치했다.

총 12년
“생존자”

전학으로 끝날 줄 알았던 학폭이었으나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전학 간 곳의 친구들은 A씨를 두고 “얘, ○○초등학교에서 왕따당해서 전학해온 거래. 더럽고 냄새가 난다”며 욕설과 구타를 수차례 가했다. 무리 지어서 노는 애들은 A씨를 두고 “○○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근처에 A씨가 있으면 일부로 어깨를 강하게 밀쳤고, 체육시간에는 A씨 머리 위로 모래를 뿌리거나 돌을 던졌다. 같은 반 아이 중 한 명은 A씨 어머니를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얼굴의 붉은 점을 보고 “다리미로 지졌다. 병○ 아니냐”며 모욕적인 발언을 이어나갔다.

남학생은 A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A씨가 지나가면 때리려는 행동을 취했다.

학교폭력은 중학교 입학 후 더 심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괴롭혔던 아이들이 그대로 중학교로 갔던 탓이다. 그들은 A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갔고, 샤프로 A씨의 몸을 찌르는 등 폭행을 일삼았다. 한 번 폭행을 시작하면 10분 이상 지속됐고, 교과서를 찢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체육복과 교과서를 훔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로 A씨를 끌고 가 변기에 A씨의 얼굴을 넣으려고도 했다. 같은 반 학생은 47명으로 직접 괴롭히진 않았지만 A씨를 피했다. A씨가 같은 반 아이와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면 “쟤, 왕따다”고 말해 훼방을 놨다.

이동 수업 중 쉬는 시간에는 화장품을 A씨 머리 위에 붓고 분무기를 머리에 뿌렸다. 선생님이 오자 A씨의 머리를 털어주는 척 화장실에 데려갔다. 화장실에서는 다시 A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머리와 배, 다리, 등 위주로 여러 차례 폭행했다.

보호 뒷전
무방비 노출


이때부터 A씨는 학교를 벗어나기 위해 제과제빵 학원에 다녔다.

고등학교서도 학교폭력은 지속됐다. 고등학생 때는 같은 반 아이가 수업 중 A씨를 복도로 불러내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겁이 났던 A씨는 야간자율학습과 방과후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5교시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다른 지역 미용학원에 다니면서 자격증을 땄다. 대회가 있으면 무조건 참가해 상을 받았다. A씨에게 미용은 학교서 도망치는 수단이었다. 

미용은 꿈이 아니라 생존수단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집에서 새벽 2시까지 연습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폭력 수위가 높아졌다. 같은 반 아이 한 명은 A씨의 자물쇠 다이어리를 갈취해 교실에서 큰 소리로 내용을 읽었다. A씨가 하지 말라고 말리자, 욕을 하며 A씨의 머리채를 잡았고 다이어리 모서리 부분으로 A씨 어깨 쇄골 부분을 2차례 가격했다. 그리곤 다이어리를 던진 뒤 뺨을 때리고 무릎으로 A씨 배를 올려 찼다.

A씨는 가해자를 상대로 현재 특수상해죄로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5월과 11월이라는 점이다. 그전에 있었던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


경찰 신고해도 막을 수 없는 가해자
“잔혹성은 나이를 가리지 않아” 지적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B양은 지난해 4월, 한 학년 위 선배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 그 선배는 B양이 다니던 학원에 장애가 아이를 향해 신체 비하 발언을 했고, 지나다니며 치거나, 욕을 했다. 선배는 계속해서 욕하면서 길을 막았다.

B양이 지나가다가 선배 얼굴에 오른쪽 팔 옷이 스쳤다. 순간 선배는 “너 애미가 그렇게 가르쳐서 행동이 그렇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옆에 있던 아이들이 놀라 관리자에게 말했고, 가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했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B양을 보면 “죽여버린다. 한쪽 팔이 없어져야 한다”고 협박했다. 하원 후 가해자는 B양을 따라와 팔을 때리며 “집에 가서 말하면 죽는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협박했다.

가해자는 B양의 집까지 찾아와 유리창에 돌을 던져 금이 가게 했다. B양 부모가 학교에 해당 사실을 전달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경찰서에 신고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학교폭력 피해자는 무방비하게 폭력 상황에 노출된다. 부모가 직접 나서도 피해를 막기 힘들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학교폭력에만 ▲공소시효 폐지 ▲촉법소년 폐지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피해자 입장 중시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가해자로부터 피해자 완벽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결국 학교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공간에 만날 수밖에 없는 것 ▲피해자가 학생일 때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려움 등의 공통점 때문에, 일반 사건과 동일한 법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다.

이제 와서?
반성은커녕…

A씨는 “학교폭력의 잔혹성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나는 고등학생 때 당한 학교폭력이 가장 최근이지만, 기억은 초등학생 때 겪은 학교폭력이 가장 선명하다. 제발 어리다고 법의 잣대를 피해 가지 않길 바란다. 내가 겪은 사건은 8~9년 지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소시효가 지났는데, 그 당시 가해자는 반성은커녕 ‘기억이 안 난다’ ‘지어내지 말라’ ‘스토커 신고하겠다’고 말한다. 이건 가해자의 부모도 마찬가지”라며 “나는 재난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재난에는 이유가 없다. 그러니 앞으로 내 아이가 학교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도와달라. 사람이 만든 재난은, 사람이 막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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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대선 전’ 친윤 대숙청 시나리오

[일요시사 정치팀] 박형준 기자 =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당원들의 도움으로 대선후보 지위를 유지했다. 확실한 명분을 쥔 김 후보는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당권 장악을 위한 투쟁을 이어가야 한다. 김 후보가 당내 주도권 다툼서 이기는 방법은 무엇일까? 국민의힘 김문수 대선후보는 권영세 전 비상대책위원장·권성동 원내대표 등 친윤(친 윤석열)계의 대선후보 교체 시도를 당원들의 반대로 진압한 후에야 선대위를 구성했다. 김 후보는 지난 11일 대선후보로 등록했고, 대선후보의 당무우선권을 발동해 국민의힘 김용태 의원을 같은 날 진행된 의원총회서 새 비상대책위원장으로 임명했다. 갑툭튀 위원장 권 전 비대위원장이 후보 교체 시도에 대한 책임을 지고 사퇴했기 때문이었다. 일각에선 권 원내대표의 사퇴도 강하게 요구했지만,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했다. 이날 진행된 의원총회엔 의원 107명 중 50명만 참석했다. 후보 교체 시도에 가담한 친윤계 의원들은 대거 불참했다. 이어 지난 12일엔 국민의힘 비대위 회의가 개최됐다. 국민의힘은 이날 회의서 김용태·주호영·권성동·나경원·안철수·황우여·양향자 등 7인 공동 선대위원장 체제를 발표했다. 김 후보는 후보 교체 시도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국민의힘 이양수 의원을 대신해 박대출 의원을 사무총장으로 임명했다. 박 의원은 선대위서도 총괄지원본부장을 맡았다. 이틀 동안 확정·발표된 인선 중 가장 주목받은 것은 김 비대위원장 임명이었다. 30대 중반 막내 초선 의원을 당 대표격 직책에 임명했기 때문이었다. 김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으로서 후보 교체 시도에 강하게 반대했다. 김 비대위원장은 지난 2021년 전당대회서 청년 최고위원으로 당선돼 이준석 당시 대표가 이끌던 지도부에 참가했다. 이어 황우여 전 비상대책위원장 시절에도 비대위원으로 발탁됐던 경험이 있다. 이 전 대표 시절엔 소장파 ‘천아용인’ 중 1명으로 거론됐던 적이 있고, 이 전 대표가 탈당해 개혁신당을 창당한 이후에도 돈독한 친분을 이어가고 있다. 일각에선 김 비대위원장 발탁을 놓고 “개혁신당 이준석 대선후보와의 단일화를 대비한 것”이라고 평가한다. 다만 김 비대위원장에 대해선 “소장파로서의 행보가 약하다”는 평가도 있다. 그래서 김 비대위원장이 적극적으로 권한을 행사할 수 있을지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도 있다. 장성철 공론센터 소장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권순표의 뉴스하이킥>서 “친윤계가 김 비대위원장을 화살받이·방패막이로 앞세워서 상황을 돌파하려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어 김 비대위원장의 역량을 인정하는 기준으로 윤석열 전 대통령 부부와의 결별 및 출당을 제시했다. 함께 출연한 장윤선 정치 전문 기자는 “제일 고통스러운 사람은 김 비대위원장 자신일 것이란 얘기가 있다”며 “대선서 크게 패배하면, 그 책임을 김 후보가 아닌 김 비대위원장이 지는 방식으로 정리하기 위해 허수아비로 세워놓은 것 아니냐는 얘기도 있다”고 거들었다. 친윤계는 의원총회 불참으로써 김 비대위원장 지명에 암묵적으로 동의했다. 김 후보는 당원투표로써 친윤계의 후보 교체 시도를 진압했기 때문에 명분을 확보했다. 국민의힘의 주도권을 휘어잡을 기회를 얻었다고 볼 수도 있다. 30대 초선 비대위원장 총알받이? 방패막이? 김 후보가 대선후보 지위를 굳힌 후 먼저 교체한 사람이 이 전 사무총장이란 사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 전 사무총장은 당 선거관리위원장 자격으로 김 후보 선출 취소 공고와 새 후보 등록 신청 공고를 발표했다. 후보 등록 신청 공고에 제시된 등록 신청 기간은 지난 10일 오전 3시부터 4시까지였고, 등록을 위해 준비해야 할 서류는 총 32종이었다. 등록 장소는 국회 본관 228호 비대위 회의실이었다. 이 황당한 상황은 한 편의 코미디로 남았다. 이날 오전 3시부터 4시 사이엔 공고를 본 후 국회를 방문해 “국민의힘 대선후보로 등록하러 왔다”면서 국회 경비대에 “문을 열어달라”고 요구하는 조롱성 방송을 진행한 유튜버도 있었다. 이 전 사무총장은 소동이 끝난 후 의원 단톡방에 김 후보를 비판하고 권 전 비대위원장을 두둔하는 취지로 어느 정치평론가의 칼럼을 게재했다. 이어 친한(친 한동훈)계인 국민의힘 정성국 의원으로부터 “총장님 입맛에 맞는 정치평론가의 글을 단톡방서 읽을 이유는 없다”고 비판받았다. 김 후보로선 사태가 끝난 이후에도 후보 교체 시도를 정당화하는 이 전 총장을 유임시킬 이유가 없었다. 선거를 목전에 두고 있으므로 권 원내대표까지 교체해 파문을 확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김 후보가 당의 주도권을 확실히 휘어잡을 기회를 잡은 것은 분명하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선대위를 움직일 당 사무총장은 빨리 교체해야 했다. 김 후보는 권 원내대표를 유임시켜 ‘휴전’ 메시지를 보낸 후 친윤계와의 암묵적 합의를 거쳐 김 비대위원장을 임명했다. 이어 실권을 행사하는 사무총장을 신속하게 확보했다. 국민의힘 대선후보 교체 시도는 1991년 8월 발생한 소련 공산당 보수파의 쿠데타를 연상시킨다. 보수파는 미하일 고르바초프 당시 대통령을 몰아내기 위해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 쿠데타는 KGB 알파그룹과 전차부대 등이 동원돼 신속하게 진행된 군사작전이었다. 쿠데타는 실패했고, 소련은 해체됐다. 이처럼 정치적 기획을 군사작전처럼 몰아쳐 진행하는 성향이 있는 사람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다. 윤 전 대통령은 이런 식으로 당 대표 2명과 비대위원장 1명을 쫓아낸 적이 있다. 더불어민주당 황정아 대변인은 지난 10일 “윤석열 지령, 국민의힘 연출로 시작된 대선 쿠데타”라고 주장했다. “행보가 약하다” 윤 전 대통령도 본의 아니게 자수 아닌 자수를 했다. 윤 전 대통령은 지난 11일 오전 자신의 페이스북에 김 후보 지지를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런데 이 게시글엔 “김 후보를 지지하셨던 분들도 이 과정을 겸허히 품고 서로의 손을 맞잡아야 한다”는 문장이 있었다. 김 후보의 패배를 기정사실로 한 게시글을 수정 없이 그대로 올렸다. 김 후보와 친윤계의 대결이 ‘휴전’에 불과하다는 것을 암시하는 게시글이었다. 국민의힘 한동훈 전 대표 등 친한계는 지도부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김 후보를 거들었다. 이 중 친한계 좌장 6선 조경태 의원은 김 후보와 한덕수 전 국무총리의 단일화 논란이 분분했던 지난 9일에도 “무책임한 외부 인사 영입을 통해 대선을 치를 거라면, 경쟁력 있는 이재명 후보를 데리고 오는 게 빠른 거 아니냐”면서 김 후보를 두둔했다. 이를 두고 “당원투표서 김 후보 교체 시도가 부결됐던 이유 중 하나는 친한계 당원들의 반대 움직임”이라고 보는 일각의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김 후보와 한 전 대표는 윤 전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및 탄핵 등 여러 사안서 의견이 엇갈렸다. 두 사람은 국민의힘이 대선서 패배하면 다시 진행될 가능성이 큰 당권 투쟁의 잠재적인 경쟁 상대다. 김 후보는 56.53%를 얻어 대선후보로 선출됐다. 한 전 대표가 얻은 43.47%도 무시하긴 어려운 수치다. 친한계 일원인 국민의힘 김종혁 전 최고위원은 지난 12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한 전 대표의 선대위 참여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 전 대표는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비상계엄 및 탄핵 반대에 대한 사과 ▲윤 전 대통령 부부와의 절연 ▲한 전 총리와의 단일화 약속을 내걸고 후보로 선출된 것에 대한 사과 등 자신의 선대위 참여 조건을 제시했다. 김 전 최고위원은 이를 언급하면서 “김 후보가 하나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렇듯 김 후보는 당내 유력 계파들인 친윤·친한과의 불씨를 두고 있다. 두 계파 모두 앙숙이기 때문에 김 후보로선 두 계파 모두를 포섭하기도 쉽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2026년엔 국회의원들의 ‘대목’이라고 볼 수 있는 지방선거가 진행된다. 불씨가 들불이 될 가능성이 크다. 이 때문에 최소한 선거 상황에선 김 비대위원장이란 완충지대가 필요했을 가능성도 있다. 김 후보도 바보가 아닌 한 대선 승리 가능성이 크지 않단 것은 잘 알고 있다. 그 자신도 친윤계의 쿠데타로 인해 정당하게 선출된 후보직을 잃을 뻔했다. 대선 이후엔 곧바로 당권 투쟁이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 후보가 대선 이후에도 정치적 영향력을 잃지 않고 당을 장악하려면 당권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밖에 없다. 따라서 김 후보에게도 우군이 필요하다. 남겨놓은 갈등 불씨 김 후보는 지난 2020년 1월 국민의힘의 전신 자유한국당을 탈당한 이후 전광훈 사랑제일교회 목사와 돈독한 친분을 유지했다. 같은 해 8월 발생한 사랑제일교회 코로나19 집단감염 사건 이후에도 경찰이 자가격리 조치를 어기고 집회에 참석한 사랑제일교회 일부 신자를 연행하려고 하자 이를 막는 등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다. 당시 김 후보는 “내가 김문수인데, 왜 가자고 그러느냐”라거나 “내가 국회의원을 3번 했다”는 등 호통을 치는 등 경기도지사 재임 당시 119에 전화해 갑질했던 ‘도지삽니다’ 사건을 연상시키는 언행으로 물의를 일으켰다. 전 목사는 후보 교체 시도를 격렬하게 비판했다. 전 목사가 주도하는 대한민국 바로 세우기 국민운동본부(이하 대국본)는 지난 10일 국민의힘을 규탄하는 집회를 개최했다. 전 목사는 이날 “멀쩡하게 뽑아놓은 김문수를 아웃시키고, 한덕수를 영입했다”며 “국민의힘이 사기 치는 것 봤죠? 이건 완전 불법”이라고 주장했다. 대국본도 같은 날 배포한 입장문서 “국민의힘은 종북 좌파와 맞서 싸우겠다는 애국 보수만 나타나면 알레르기 반응부터 보인다”고 비판했다. 김 후보는 지난 8일 관훈토론회 초청 토론회서 “광장 세력과도 함께 손잡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은 기독교의 교회 조직과 말씀 때문에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가 버티고 있다고 생각한다”면서 전 목사 등 강경보수 성향 일부 교계를 극찬했다. 당내 지분이 전혀 없는 상황서 친윤·친한 모두와 경쟁해야 하는 김 후보로선 우군이 절실하다. 김 후보는 강경보수 세력 내부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한국사 강사 전한길씨와도 돈독한 친분을 유지하고 있다. 김 후보는 지난 4월24일 전씨의 유튜브 채널 ‘전한길뉴스’에 출연했다. 전씨는 전 목사의 경쟁자로 통하는 손현보 세계로교회 목사와 연결돼있다. 전씨는 김 후보의 선거 전략을 분석하면서 “김 후보가 기득권 정치와 차별화된 이미지를 구축하고, 호남 지역 표심을 공략하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TV 토론서 압도적 존재감을 발휘하고, 막판에 보수 우파가 단합하면 충분히 이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전 목사와 전씨는 윤 전 대통령 탄핵 국면서 보수 진영 내부의 막강한 영향력을 확보했다. 두 사람의 영향력은 인원 동원 능력으로부터 비롯된다. 이들을 국민의힘 내부에 유입시켜 전당대회서 승부를 본다면, 김 후보가 국민의힘을 장악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지방선거서 급한 일은 의원들의 지역구 내 지방선거 공천에 개입하는 일이 될 가능성이 크다. 지역구 국회의원의 영향력 아래서 손발 노릇을 하는 기초자치단체장과 지방의원을 장악하면, 의원들의 손발을 묶어둘 수 있다. 후보 교체 시도 5적 지역구서 공천 전쟁? 김 후보와 충돌할 가능성이 큰 의원은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 ▲성일종·박수영 의원이다. 이 중 이 전 총장을 제외한 4명에 대해선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지난 11일 자신의 페이스북 게시글서 ‘4적’이라고 주장했던 적이 있다. 홍 전 시장은 “경선을 혼미하게 한 책임을 지고, 의원직 사퇴·정계 은퇴하라”고 주장했다. 이들 중 지도부였던 ▲권 전 비대위원장 ▲권 원내대표 ▲이 전 총장은 후보 교체 시도를 직접 진두지휘했다. 성 의원은 김 후보와 한 전 총리의 단일화에 가장 적극적이었다. 박 의원은 김 후보의 캠프에 참여했지만, 김 후보가 단일화와 관련해 신경전을 이어가자 “김 후보 주변 운동권 출신 인사들이 ‘한 전 총리는 가라앉고, 김 후보가 단일후보가 될 것’이라는 식의 논리를 퍼뜨리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김 후보를 일컬어 “전형적인 좌파식 조직 탈취 시도를 하고 있다”는 비난도 이어갔다. 김 후보는 대선후보 자격이 취소됐던 지난 10일 기자회견을 개최해 스스로 “국민의힘 대통령 후보 김문수”라면서 지도부를 비판하는 기자회견을 진행했다. 이어 캠프 내 측근들과 함께 국민의힘 중앙당사를 방문해 대통령 후보실을 점거했다. 이를 놓고 일각에선 “왕년의 투사 김문수가 돌아온 것이냐”고 반응했다. 이날 김 후보의 대응을 돌아보면, 대선 이후 당권 투쟁서 물러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독자 영역을 구축한 친윤·친한과 달리 김 후보는 외부 세력을 당내에 유입시키기 위한 명분부터 구축해야 한다.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의미 있는 득표를 하는 것이 중요하다. 홍 전 시장은 자유한국당 후보로서 대선에 출마했지만, 보수 정당이 분열됐던 여파를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불과 785만여표(약 24%) 득표에 그쳤다. 이는 역대 대선 직선제 2위 후보 중 당선자와 최다 표차 낙선과 보수 정당 최저 득표율이었다. 홍 전 시장은 대선 패배 이후 약 3주 동안 미국을 방문한 후 전당대회에 출마해 당 대표로 당선됐다. 예나 지금이나 당내 세력이 미약한 홍 전 시장은 당의 하락세를 막지 못했고, 지난 2018년 지방선거 패배 책임 차원으로 당대표직서 물러났다. 대선서 많은 득표를 하지 못했던 것도 홍 전 시장의 지도력에 힘이 붙지 않았던 이유 중 하나였다. 따라서 김 후보로선 대선 결과와 상관없이 당을 장악하기 위해선 패배하더라도 최대한 많은 득표를 해서 명분을 쥐는 것이 중요하다. 이 후보와의 단일화 시도를 완전히 접지 않은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고 해석할 수 있다. 하한선 35% 무너지나 YTN이 엠브레인퍼블릭에 의뢰해 지난 11~12일 이틀간 무선 100% 전화 면접 방식으로 진행했던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면, 김 후보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후보보다 13% 뒤처진 33%의 지지를 얻었다. 김 후보가 설령 대선서 패배하더라도, 국민의힘을 장악하려면 40% 이상의 독자 지지율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최저 하한선은 35%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김 후보에겐 승패 여하를 떠나 많은 것이 달린 대선일 수밖에 없다. <ctzx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