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서 못 잡는’ 학폭 공소시효의 한계

  • 김민주 기자 alswn@ilyosisa.co.kr
  • 등록 2023.03.20 14:36:19
  • 호수 1419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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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힘 있는 놈들의 나라”

[일요시사 취재1팀] 김민주 기자 = 학교는 학생들이 사회에 나갔을 때 성인으로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도록 지식을 가르치는 교육기관이다. 하지만 어떤 학생에게 학교는 ‘폭력’의 장소다. 학교폭력을 당한 이들은 스스로를 ‘생존자’라고 부른다. 

교육부는 지난해 9월6일 16개 시도교육감이 초·중·고등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22년 학교폭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조사 결과 피해 응답률은 1.7%인 5만4000명으로 2021년에 비해 0.6%p 증가했다. 학급별로는 ▲초등학교 3.8% ▲중학교 0.9% ▲고등학교 0.3%로 나타나, 모든 학교서 학교폭력이 증가하는 양상을 보였다. 피해 유형별 응답 비중은 언어폭력(41.8%), 신체폭력(14.6%), 집단따돌림(13.3%) 순이었다.

드라마
한 편으로…

과거에는 학교폭력 심각성이 조명되지 않았으며 가해자 처벌 수위도 솜방망이 수준이었다. 피해자를 두고 “당한 사람이 잘못” “당한 데는 다 이유가 있을 것” “철없는 애들끼리 장난친 것” 등으로 치부되기 일쑤였다.

그러다가 2020년대부터는 학교폭력이 ‘절대 해서는 안 되는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혔다. 특히 최근 넷플릭스서 방영한 드라마 <더 글로리>가 큰 인기를 끌어 학교폭력 심각성을 다시 인지시켰다.

학교폭력 피해자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가슴에 안고 살아야 한다. 학교폭력이나 그에 준하는 따돌림으로 피해자 자존감이 심각하게 훼손되고, 심각한 경우는 평생을 정신질환에 시달리게 된다. 자해 내지는 극단적 선택을 하거나, 심한 폭행을 당한 경우 영구적인 장애나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 등의 질병으로 정상적인 일상생활을 하기 힘들다.


피해자가 겪는 고통에 비해 가해자는 평범하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사실을 잊고 산다. 몇몇 가해자는 피해자를 찾아가 용서를 빌기도 하지만, 그런 경우는 흔하지 않다.

정부는 학교폭력을 예방하기 위해 ‘학교폭력 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만들었다. 해당 법 제20조(학교폭력의 신고 의무)에는 ‘학교폭력 현장을 보거나 그 사실을 알게 된 자는 학교 등 관계 기관에 즉시 신고해야 한다’ ‘신고받은 기관은 가해 학생 및 피해 학생 보호자와 소속 학교장에게 통보해야 한다’고 기재돼있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학교폭력 피해자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는 신고를 하는 것도, 부모에게 자신이 겪은 피해 사실을 알리기도 어렵다. 신고 후 2차 가해가 있을 수도 있고, 신고 이후 가해자와 피해자가 분리되지 않는 상황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또 촉법소년 연령 기준으로 경찰에 신고해도 소용없다.

학교생활 내내 끔찍했던 폭력 피해
고소장 접수했지만…공소시효 8개월

이런 상황이 복잡하게 작용해 학교폭력 피해자는 성인이 된 후 가해자를 상대로 학교폭력 고소장을 접수한다. 그러나 이 시기는 사건 공소시효가 임박했거나 지난 상황이 많다.

부산서 미용실을 운영 중인 A씨는 학교폭력 피해자다. A씨는 초‧중‧고등학교를 경남의 한 지역에서 다녔고 12년 동안 학교폭력을 당했다. A씨는 자신을 ‘생존자’라고 부른다.

A씨는 현재 학교폭력 후유증으로 ▲대인관계 형성 어려움 ▲불안장애 ▲불면증 ▲우울증 등으로 정신과에서 1년간 치료 중이다. 게다가 현재까지 알 수 없는 복통을 앓고 있다. 학교폭력은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때까지 전 기간 동안 당했다. 종류는 ▲집단따돌림 ▲폭행 ▲특수폭행 ▲상해 ▲특수상해 ▲모욕 ▲갈취 등이다. 


A씨는 “오랜 기간 폭력에 노출돼 정확한 날짜를 기억하지 못한다”며 자신이 당한 학교폭력을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거슬러 올라가 설명했다. 

초등학교 1학년 입학 때부터 A씨는 집단따돌림을 받았다. 같은 반 남학생 친구는 A씨를 교실의 초록색 칠판 가운데 데려다 놓고 발로 찼다. A씨가 아프다고 비명을 지르기 전까지는 폭력이 멈추지 않았다.

쉬는 시간이면 아이들은 A씨를 향해 지우개, 연필, 볼펜, 교과서, 의자 등을 던졌고 A씨의 교과서와 실내화를 화장실 변기통에 집어넣었다. 어떤 날은 실내화 안에 압정을 넣어서 실내화를 신다가 발을 다쳤다. 괴롭힘은 날이 갈수록 심해졌다.

A씨 어머니는 A씨가 학교폭력에 힘들어한다는 것을 눈치채 A씨를 인근에 있는 다른 초등학교로 전학 조치했다.

총 12년
“생존자”

전학으로 끝날 줄 알았던 학폭이었으나 이는 희망사항일 뿐이었다. 전학 간 곳의 친구들은 A씨를 두고 “얘, ○○초등학교에서 왕따당해서 전학해온 거래. 더럽고 냄새가 난다”며 욕설과 구타를 수차례 가했다. 무리 지어서 노는 애들은 A씨를 두고 “○○ 바이러스”라고 불렀다.

근처에 A씨가 있으면 일부로 어깨를 강하게 밀쳤고, 체육시간에는 A씨 머리 위로 모래를 뿌리거나 돌을 던졌다. 같은 반 아이 중 한 명은 A씨 어머니를 직접 본 적이 있는데, 얼굴의 붉은 점을 보고 “다리미로 지졌다. 병○ 아니냐”며 모욕적인 발언을 이어나갔다.

남학생은 A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하고, A씨가 지나가면 때리려는 행동을 취했다.

학교폭력은 중학교 입학 후 더 심해졌다. 초등학교 때부터 괴롭혔던 아이들이 그대로 중학교로 갔던 탓이다. 그들은 A씨의 물건을 함부로 가져갔고, 샤프로 A씨의 몸을 찌르는 등 폭행을 일삼았다. 한 번 폭행을 시작하면 10분 이상 지속됐고, 교과서를 찢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체육복과 교과서를 훔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쉬는 시간에는 화장실로 A씨를 끌고 가 변기에 A씨의 얼굴을 넣으려고도 했다. 같은 반 학생은 47명으로 직접 괴롭히진 않았지만 A씨를 피했다. A씨가 같은 반 아이와 친하게 지내려고 노력하면 “쟤, 왕따다”고 말해 훼방을 놨다.

이동 수업 중 쉬는 시간에는 화장품을 A씨 머리 위에 붓고 분무기를 머리에 뿌렸다. 선생님이 오자 A씨의 머리를 털어주는 척 화장실에 데려갔다. 화장실에서는 다시 A씨를 무자비하게 폭행했다. 머리와 배, 다리, 등 위주로 여러 차례 폭행했다.

보호 뒷전
무방비 노출


이때부터 A씨는 학교를 벗어나기 위해 제과제빵 학원에 다녔다.

고등학교서도 학교폭력은 지속됐다. 고등학생 때는 같은 반 아이가 수업 중 A씨를 복도로 불러내 무자비한 폭행을 가했다. 

겁이 났던 A씨는 야간자율학습과 방과후수업을 들을 수 없었다. 5교시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다른 지역 미용학원에 다니면서 자격증을 땄다. 대회가 있으면 무조건 참가해 상을 받았다. A씨에게 미용은 학교서 도망치는 수단이었다. 

미용은 꿈이 아니라 생존수단이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집에서 새벽 2시까지 연습했다.

고등학교 2학년이 되자 폭력 수위가 높아졌다. 같은 반 아이 한 명은 A씨의 자물쇠 다이어리를 갈취해 교실에서 큰 소리로 내용을 읽었다. A씨가 하지 말라고 말리자, 욕을 하며 A씨의 머리채를 잡았고 다이어리 모서리 부분으로 A씨 어깨 쇄골 부분을 2차례 가격했다. 그리곤 다이어리를 던진 뒤 뺨을 때리고 무릎으로 A씨 배를 올려 찼다.

A씨는 가해자를 상대로 현재 특수상해죄로 고소장을 접수해 수사가 진행 중이다. 문제는 이 사건의 공소시효가 5월과 11월이라는 점이다. 그전에 있었던 사건은 이미 공소시효가 지났다.


경찰 신고해도 막을 수 없는 가해자
“잔혹성은 나이를 가리지 않아” 지적

피해자가 보호받지 못하는 사례도 있다. B양은 지난해 4월, 한 학년 위 선배로부터 학교폭력을 당했다. 그 선배는 B양이 다니던 학원에 장애가 아이를 향해 신체 비하 발언을 했고, 지나다니며 치거나, 욕을 했다. 선배는 계속해서 욕하면서 길을 막았다.

B양이 지나가다가 선배 얼굴에 오른쪽 팔 옷이 스쳤다. 순간 선배는 “너 애미가 그렇게 가르쳐서 행동이 그렇냐?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했다.

옆에 있던 아이들이 놀라 관리자에게 말했고, 가해자에게 사과하라고 했지만 사과하지 않았다. 오히려 B양을 보면 “죽여버린다. 한쪽 팔이 없어져야 한다”고 협박했다. 하원 후 가해자는 B양을 따라와 팔을 때리며 “집에 가서 말하면 죽는다. 경찰에 신고한다”고 협박했다.

가해자는 B양의 집까지 찾아와 유리창에 돌을 던져 금이 가게 했다. B양 부모가 학교에 해당 사실을 전달했지만 연락이 오지 않았다. 경찰서에 신고한 후에도 마찬가지였다.

이처럼 학교폭력 피해자는 무방비하게 폭력 상황에 노출된다. 부모가 직접 나서도 피해를 막기 힘들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학교폭력에만 ▲공소시효 폐지 ▲촉법소년 폐지 ▲무죄추정의 원칙에서 피해자 입장 중시 ▲사실적시 명예훼손 폐지 ▲가해자로부터 피해자 완벽 분리를 주장하고 있다.

결국 학교폭력은 ▲피해자와 가해자가 한 공간에 만날 수밖에 없는 것 ▲피해자가 학생일 때 문제 제기를 하기 어려움 등의 공통점 때문에, 일반 사건과 동일한 법을 적용하면 안 된다는 의견이다.

이제 와서?
반성은커녕…

A씨는 “학교폭력의 잔혹성은 나이를 가리지 않는다. 나는 고등학생 때 당한 학교폭력이 가장 최근이지만, 기억은 초등학생 때 겪은 학교폭력이 가장 선명하다. 제발 어리다고 법의 잣대를 피해 가지 않길 바란다. 내가 겪은 사건은 8~9년 지난 사건”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소시효가 지났는데, 그 당시 가해자는 반성은커녕 ‘기억이 안 난다’ ‘지어내지 말라’ ‘스토커 신고하겠다’고 말한다. 이건 가해자의 부모도 마찬가지”라며 “나는 재난을 겪었다고 생각한다. 재난에는 이유가 없다. 그러니 앞으로 내 아이가 학교폭력에 노출되지 않도록 도와달라. 사람이 만든 재난은, 사람이 막을 수 있다”고 호소했다.

<alswn@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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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계엄 비선’ 노상원·명태균 오버랩

[일요시사 취재1팀] 오혁진 기자 =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이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윤석열 대통령의 안보 공약과 정치적 스탠스 등에 조언을 아끼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윤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직접적으로 연락하면서 국정 전반에 개입한 의혹을 받는 명태균씨의 모습과 맞닿아 있는 대목이다. 일각에서는 노 전 사령관이 군 인사뿐만 아니라 국방정책과 사업에까지 손을 댔을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통상 비선 실세는 외부서 활동한다. 대통령으로부터 보직을 받지 않았음에도 최측근으로 꼽히는 인사들과 정부의 정책과 정치적 활동에 상당한 영향을 끼친다. 윤석열정부서 이 같은 행위를 한 이들은 주로 ‘무속 관련자’들이었다. 정치 브로커 명태균씨와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 등도 정부 정책 및 인사에 개입한 의혹의 당사자들이다. 안보 분야 대책 조언 노 전 사령관은 윤석열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 김용현 전 국방부 장관을 통해 안보 공약이나 지지율 상승 방안 등을 조언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5일 <한겨레> 단독 보도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해 12월11일 경찰 조사에서 “(2022년)윤 대통령이 대선 캠프를 구성했을 때, 김 전 장관이 제게 일을 도와달라 부탁했는데 성 관련 범죄 경력 때문에 전면에 나서지 못했다”며 “(그 대신에)대선 토론 때 안보 관련 분야 질문 및 답변 내용에 대해 초안을 잡아주면, (상대 후보의)역공 대비 등 세밀히 검토해서 수정하는 작업을 했다”고 진술했다. 그는 윤 대통령 취임 이후에도 “(김 전 장관이)‘대통령 지지도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냐’고 묻길래 ‘검사 출신이라 말이 친화적이지 않다. 국민에게 다가가는 모습을 보여줘라’고 했다”며 “(시장에 가서)생선 같은 것도 만지면서 친근하게 대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또 “광주 5·18(행사)에 참석해라. 그들도 같은 국민”이라며 “일단 내려가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부르라 건의해라. 이왕 대통령이 됐으면 전라도도 품을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고 한다. 실제 윤 대통령은 지난 2023년 7월엔 부산엑스포 유치 홍보를 위해 부산을 찾은 뒤 자갈치시장서 붕장어를 맨손으로 만졌다. 또 2022년 5월 취임 이후 지난해까지 3년 연속 광주를 찾아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했다. 노 전 사령관은 “나중에 티브이(TV)를 보니까 제 말대로 다 하는 것 같았다”고 했다. 이 같은 상황을 볼 때 윤 대통령은 노 전 사령관의 존재를 수년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도움을 받은 김 전 장관은 노 전 사령관을 윤 대통령에게 인사시키려 했으나 성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 전 사령관은 “김 전 장관이 몇 번 (윤 대통령에게 자신을) 인사시키려 했는데, 저 스스로 성 관련 범행에 대한 멍에가 있어서 안 본다고 했다”며 “(김 전 장관이)군인공제회 산하단체 비상근 사외이사 자리를 주겠다고 했는데 (국회)국방위원회서 다 밝혀질 거라 사양했다. 공기업 임원 얘기도 했지만 같은 이유로 사양했다”고 진술했다. 노 전 사령관의 의혹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은 노 전 사령관이 자신의 인맥을 활용해 국방사업에도 개입했다는 의혹을 제기한 바 있다. 민주당 추미애 의원은 지난 1월16일 “12·3 내란 핵심 주동자인 김용현(전 국방부 장관), 노상원(전 정보사령관), 여인형(방첩사령관), 김용군(예비역 대령)은 방위산업을 고리로 한 경제공동체”라고 주장했다. 추 의원에 따르면 노 전 사령관은 지난 2022년 김 전 장관이 경호처장 시절 그의 영향력으로 국가정보원 예산 500억원이 육군 전자전 무인 정찰기(UAV) 사업 예산으로 편성 추진했다. 당시 이 예산은 ‘김용현 처장 꼬리표 예산’으로 불렸다는 게 추 의원의 주장이다. 노, 윤 대선후보 시절부터 감 놔라 배 놔라 실제 김 통해 일부 이행…윤 직접 접촉 시도 추 의원은 “2023년 이 사업에 도입될 기종은 노상원이 (당시)재직 중이던 일광공영이 국내 총판인 이스라엘 항공우주산업(IAI)의 헤론으로 결정됐다. 일광공영은 무기 중개상 1세대로 불리며, 2000년 러시아 무기 도입 사업인 불곰사업으로 유명한 이규태가 운영하는 방산업체다. 노 전 사령관은 최근 3년간 일광공영에 근무했다”고 말했다. 통상 무기체계 등 전력사업은 육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가 관리한다. 그러나 해당 사업은 당시 육군 정보작전참모부장이던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이 관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사업은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중단됐다. 추 의원은 노 전 사령관과 윤 대통령 일가와의 연결고리 의혹도 제기했다. 그는 “노상원은 이미 2015∼2016년 박근혜정부 때부터 김충식과 후원을 주고받는 관계였다”며 “김충식은 윤석열의 장인 행세를 하는 분이고, 장모 최은순 여사와 사적인 관계 또는 경제공동체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노 전 사령관은 국방·안보 분야 조언에 그쳤다. 명씨는 정부 사업과 정치 권력 전반에 영향을 끼친 정황이 드러나고 있다. 굳이 둘을 놓고 비교하자면 노 전 사령관보다 명씨의 비선 실세 서열이 한 수 위인 셈이다. <시사IN>이 공개한 윤 대통령 일가와 명씨의 카카오톡·텔레그램 대화 원본을 보면 명씨는 사실상 국회의원 후보 선정과 경제 사업 추진에 판을 짜는 플래너였다. 실제 명씨는 지난 2021년 7월 윤 대통령이 국민의힘에 입당하기 전 이뤄진 국민의힘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원장, 당시 국민의힘 대표였던 개혁신당 이준석 의원과 가진 비공개 회동부터, 그 이후 진행된 윤 대통령의 정치인 접촉을 주도했다. 이 의원과 윤 대통령의 회동 당시 김 여사는 JTBC가 보도한 ‘윤석열·이준석 비공개 회동’ 기사 링크를 보냈다. 김 여사는 명씨에게 “큰일이네요. 왜 준석씨가 이렇게까지 발설했을까요. 남편에게는 완전 악재인데요ㅠ”라며 “선생님(명태균씨)께서 단단히 말씀하셨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했다. 닮은 듯 다른 듯 이들은 대선후보 여론조사 결과 보고서를 각각 여러 차례 주고받았다. 명씨가 윤 대통령 부부에게 여론조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그 대가로 2022년 6월 보궐선거서 국민의힘 김영선 전 의원 공천을 받았다는 의혹이 ‘명태균 게이트’의 핵심이다. 명씨는 윤 대통령의 일정과 행보에 대한 사후 보고, 평가, 조언도 김 여사에게 더 자주 했다. 예시로 2021년 7월29일,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부산 방문 당시 실언한 점을 포착한 영상 보도 링크를 보냈다. 당시 윤 대통령은 이한열 열사가 새겨진 1987년 6월 항쟁 기념 조형물을 보고 ‘1979년 부마항쟁이냐’라고 물어 논란이 된 상황이었다. 명씨는 말실수를 한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메시지를 보내 “미리 방문하는 곳 학습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021년 9월17일과 18일, 20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윤 대통령의 경북·경남지역 방문 관련 반응이 담긴 언론 기사와 여론조사 결과를 보냈다. 명씨는 이와 관련해 윤 대통령의 일정을 자신이 기획했다고 검찰에 진술하기도 했다. 명씨는 자신의 ‘기획물(지역 방문 일정)’ 결과를 김 여사에게 보고했다. 특히 윤 대통령의 경남 일정 이후 ‘창원 전·현직 도·시의원 33명이 윤석열 지지를 선언했다’는 내용의 기사 링크도 김 여사에게 먼저 보냈다. 대선 캠프에 소속되지 않은 명씨가 후보 일정에 개입한 것이다. 특히 명씨는 검찰서 자신이 기획한 경남 일정 가운데 창녕 방문을 자랑스럽게 설명했다. 당시 창녕 방문이 윤석열 후보자에게 가장 중요했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창녕은 국민의힘 대선 경선 경쟁자인 홍준표 당시 예비후보의 고향이다. 홍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창녕 방문 일정을 넣었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입 열면 쑥대밭 명씨는 윤석열 캠프 인사 개입 의혹도 받는다. 명씨와 김 여사의 대화를 보면, 이 의혹 역시 두 사람으로부터 시작됐다. 명씨가 김 여사와 캠프 인사 문제를 상의했고, 그 결과가 일부 실현된 사실이 확인된다. 2021년 7월16일 김 여사는 명씨에게 황준국 전 주영국 대사 프로필을 공유했다. 그러면서 “후원회장으로 어떤가요? 이권과 연결도 안 돼있다”고 했다. 김 여사가 명씨에게 이 메시지를 받은 다음날인 7월17일, 황 전 대사는 윤석열의 후원회장으로 위촉됐다. 정통 외교관 출신 인사가 대선후보 후원회장을 맡는 사례는 매우 드물다. 2021년 7월19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임태희 경기도교육감 프로필을 보냈다. 그러면서 ‘총장님께서 물어보신 임태희 실장’이라며 장문의 설명을 덧붙였다. 윤 대통령이 먼저 명씨에게 임 교육감 세평을 물었는데, 명씨는 그 답을 윤 대통령이 아닌 김 여사에게 했던 것으로 보인다. 임 교육감은 2021년 12월 국민의힘 선거대책위원회에서 총괄상황본부장을 맡았다. 한 달여 뒤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자신이 국민의힘 의원이었던 박완수 경남도지사와 주고받은 문자메시지를 캡처해 보냈다. 박 지사는 “명 대표 나도 많이 도와주세요”라고 말했고, 8월1일 “윤 총장 전화 왔습니다. 열심히 할게요”라고 말했다. 7월31일, 명씨는 윤 대통령에게 박 지사 연락처를 전달하면서 “전화하면 총장님을 돕겠다고 할 것”이라고 했다. 이후 8월6일 박완수 당시 의원은 명씨와 윤 대통령 자택인 서울 아크로비스타에 방문했고 윤 대통령과 사진도 찍었다. 이 같은 명씨의 영향력이 정치권서 소문으로 퍼지기 시작한 이후에도 두 사람은 연락을 주고받았다. 2023년(연도 추정) 4월6일 김 여사가 명씨에게 ‘김건희 여사, 명태균과 국사를 논의한다는 소문’이라는 제목의 정보지 글을 공유했다. 김 여사가 천공 스승과 거리를 두고 명씨와 국사를 논의한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명 전부 무속 의혹 제기 “여사 연결고리?” 명, 침묵하는 노와 대조적 “30명 죽일 수 있다” 윤 대통령이 영국 엘리자베스 2세 여왕 장례식에 참석하지 않으려 했던 이유가 명씨의 조언 때문이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명씨는 웃으며 “세상에 천벌 받을 사람들이 많네요”라고 했다. 4월15일에는 명씨가 김 여사에게 네잎클로버 사진을 보냈다. 명씨는 “여사님 행운의 징표인 네잎클로버를 발견하고 여사님께 보내드린다”며 “윤석열정부 꼭 성공한 정부가 될 겁니다”고 했다. 김 여사는 V자 손가락 이모티콘으로 화답했다. 노 전 사령관은 가장 논란이 된 이른바 ‘노상원 수첩’과 관련된 내용에 대해서는 침묵을 지키고 있다. 검찰 조사에서까지 진술거부권을 행사하면서 국지전 유도와 북풍 공작 등의 음모론 같은 의혹은 아직 실체가 드러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명씨는 본인이 적극적으로 검찰 조사에 임하면서 국민의힘과 윤 대통령 일가의 ‘뇌관’을 자처하고 있다. 창원구치소에 수감 중인 명씨는 최근 노영희 변호사와의 접견서 “국민의힘 주요 정치인 30명을 죽일 수 있는 카드가 있다”며 “내가 한 말은 전부 증거가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명씨와 연루 의혹이 있는 인사들이 정치권 내에서 이른바 ‘명태균 리스트’로 분류되긴 했지만, 명씨가 직접 숫자를 밝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앞서 명씨 관련 의혹을 폭로한 강혜경씨는 지난해 10월 명씨와 연관됐다고 주장하며 여야 정치인 27명 명단을 공개하기도 했다. 명씨의 정치권 인맥은 ‘황금폰’이라고 불리는 명씨 휴대전화서 일부 포착된 적이 있다. 검찰은 지난해 12월 명씨의 휴대전화를 넘겨받아 포렌식을 진행했다. 당시 검찰은 명씨의 휴대전화에 연락처가 저장된 전·현직 정치인 140명을 파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관련, 명씨 측 남상권 변호사는 지난달 13일 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서 “명씨 황금폰 포렌식 과정서 너무 많은 정치인이 나와서 깜짝 놀랐다”며 “명씨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현직 국회의원이 140명이 넘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황금폰 포렌식 명씨는 “내가 최재형 전 감사원장을 국무총리로, 이준석 의원을 미국 대북특사로 추천을 했었다”면서 “당시 국민의힘 관련 윤한홍, 박완수, 김영선, 김종인 등에 대한 자료가 많다”고 유력 정치인들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거론했다. 특히 명씨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홍준표 대구시장에 대해 “(이들에 대해)얘기할 것이 아주 많다”며 “민낯을, 껍질을 벗겨 놓겠다”고 거친 언사를 쓴 것으로도 파악됐다. <hounder@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