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파만파’ 배구계 학폭 막전막후

때리고 괴롭히고 사람 좋은 척

[일요시사 취재1팀] 차철우 기자 = 칼로 협박하고, 중요 부위를 발로 찼다. 공이 아닌 사람을 때렸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피해자들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꿈은 포기했다. 피해자들은 몸과 마음에 입은 상처를 평생 지울 수 없다. 
 

▲ 학폭 논란의 중심에 선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 소속의 이재영·이다영 자매

연예계를 강타했던 학폭(학교 폭력) 논란은 배구계로도 크게 번졌다. 배구계는 연속된 학폭 폭로 글로 혼란에 빠졌다. 프로 배구선수 이다영·이재영 자매, 송명근, 심경섭은 학폭 가해자로 논란에 휩싸였다. SNS를 통해 자필 사과문을 올리고 피해자에게 사과했지만, 대중의 반응은 냉담했다. 

지난 16일 이다영·이재영 자매는 소속팀인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로부터 무기한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송명근, 심경섭은 잔여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구단에 전달했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네 선수의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다. 

스타 선수
과거에 발목

스타 배구선수 이다영의 개인 SNS에서부터 시작됐다. 불화설이 일었다. 이다영은 “괴롭히는 사람은 재미있을지 몰라도 괴롭힘을 당하는 사람은 죽고 싶다”는 말로 주어 없이 누군가를 저격했는데, 대상은 바로 전 세계적으로 추앙받는 월드스타 김연경이었다. 이후 배구 관계자들의 말을 통해 이다영과 불화를 겪고 있는 선수가 김연경이라는 게 밝혀졌다. 

논란이 식지 않을 무렵 이다영·이재영의 학폭 폭로 글이 한 커뮤니티에 게재됐다. 고교 시절 이다영, 이재영과 함께 선수생활을 했다는 피해자들은 함께 찍었던 단체 사진과 함께 피해를 구체적으로 나열했다. ‘시킨 것을 하지 않자 칼로 위협했다’ ‘운동할 때 기합을 넣지 않는다며 전체를 때렸다’ 등 피해 사례는 21가지에 달했다. 


이다영·이재영은 “과거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뒤늦게 심각성을 인지하고 이렇게 자필로 전한다”며 피해자들을 직접 찾아 사과하겠다고 밝혔다. 

과거의 고통이 너무 컸던 탓일까. 두 사람의 사과는 피해자의 마음을 녹이지 못했다. 피해자는 허무하며, 그들의 사과에 진정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다는 심경을 전했다. 여론은 진정성이 부족하다는 피해자의 발언에 공감했다. 대중의 분노는 더 커졌다.

그 결과 이다영과 이재영의 소속팀 흥국생명 핑크스파이더스는 이들에게 남은 잔여 연봉 미지급(이다영 연봉= 6억원, 이재영 연봉= 4억원)과 무기한 출전정지 징계를 내렸다. 대한민국배구협회는 국가대표 자격 박탈 징계를 내렸다. 

맞아가면서 배워야 한다?
스포츠계 만연한 손찌검

남자 선수들도 학폭 논란에 휩싸였다. OK금융그룹 읏맨 소속 에이스 송명근과 심경섭, 배홍희(2015년 은퇴) 선수가 이번에 지목된 당사자다.

지난 13일 오전 한 커뮤니티에 학교 폭력 폭로 글이 올라왔다. 피해자는 학창시절 세 선수와 같이 배구를 했다. “폭력은 세월이 흘러도 정당화될 수 없다”며 피해 내용을 게시했다.

피해자는 “아직도 그날을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며 “선배들은 후배들을 불러 노래를 시켰다. 노래를 하라며 욕설과 폭행을 했다. 중요 부위를 맞아 잘못됨을 느낀 피해자는 이날 저녁 응급실에 실려 가 고환 봉합 수술을 받았다. 가해자들은 폭행을 가하고도 사과는커녕 피해자의 고환이 터졌다며 놀렸다”고 밝혔다.


해당 게시물은 순식간에 일파만파 퍼졌다. 많은 언론이 보도했고 여론은 비판의 목소리를 높였다.
 

▲ 학폭 논란이 일자 시인하고 잔여경기 출전을 포기한 송명근 선수 ⓒKOVO

논란이 일자 송명근은 곧바로 사과문을 발표했다. “자신은 학교 폭력 가해자가 맞다며 모든 사실을 인정한다. 얼마나 심각하고 위험하고 나쁜 행동이었는지 처절하게 느끼고 있다”며 가해자임을 시인했다. 

피해자는 소속팀과 송명근의 사과문을 접한 뒤 “사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양심이 있고 생각이 있다면 본인도 사과했다고 인지하지 않을 것”이라며 사과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글을 게시했다. 송명근과 심경섭은 잔여경기에 출전하지 않겠다는 뜻을 구단에 전달했다. 배구협회로는 이다영·이재영과 마찬가지로 국가대표 자격을 박탈했다.

이어진
폭행사건

과거에도 배구계는 폭력으로 몸살을 앓았다. 무려 국가대표 선수가 훈련 도중 심한 폭행을 당한 적도 있었다. 피해자는 뛰어난 공격수로 인정받은 박철우, 가해자는 이상렬 현 KB손해보험의 감독이다. 박철우의 얼굴과 배에 피멍이 들었다. 이 감독은 2009년 국가대표 코치 시절 박철우를 폭행해 무기한 자격정지를 받았다.

이 감독은 박철우를 구타한 이유로 “요즘 젊은 선수들은 대표팀 코치를 무시한다. 이번 일도 선수가 대드는 바람에 이성을 잃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 감독의 말은 배구계를 향한 수많은 비판의 대상이 됐다. 박철우는 국가대표팀에서 하차했다. 결국, 이 감독은 한국배구협회로부터 무기한 자격정지를 받았다. 

언론이 잠잠해졌을 무렵 이 감독은 2년 만에 경기운영위원으로 복귀했다. 대학 배구 지도자와 해설위원을 거쳐 2020년 KB손해보험 감독이 됐다. 이 감독의 과거 발언은 운동을 하며 폭행하는 것이 당연하냐는 비판의 화살로 돌아왔다.

과거부터 배구계는 이슈가 돼야 조치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번 이슈가 논란이 되지 않았다면 배구계는 이후로도 또 다른 이다영·이재영을 양성했을 것이다. 관행이라 불렸던 폭행은 오랜 시간 끊어지지 않고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 심경섭 선수 ⓒKOVO

피해자들이 폭력의 세계에서 벗어나려면 스스로 꿈을 포기하는 수밖에 없었다. 학폭 사건은 아마추어, 프로를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드리워져 있다. 

꿈을 위해 뛰던 선수들이 운동을 포기한 뒤에야 규정은 신설된다. 스포츠협회와 연맹, 국회는 선수들을 잃고 난 뒤에 징계나 규정을 신설했다. 현재 스포츠계에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력을 관리하겠다는 새 장치만 생겼을 뿐, 학폭과 관련한 통합 규정을 마련하지 않고 있다. 비단 이는 단순한 배구계의 문제만은 아니다.

감독이 선수에
선배가 후배에

일각에선 종목별로 서로 다른 협회, 연맹의 규정을 통합된 규정으로 관리·마련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해외 언론에까지 보도됐을 만큼, 배구계 학폭 논란은 크고 거세다. 영국 신문 <데일리 메일>은 “한국은 스포츠 강국이지만, 스포츠계에선 여전히 신체적·언어적 폭력이 만연하다”고 보도했다.

배구계를 포함해 스포츠 강국으로서의 망신이 크다. 여론은 “무기한이면 결국에는 돌아온다는 것 아니냐”는 반응과 “강력한 선례를 남겨 재발을 방지해야 한다”며 한국배구연맹(KOVO)의 결정에 비판적인 반응을 보였다. 학폭 가해자를 엄벌해야 한다는 비판 여론도 많다. 

지난 16일 리얼미터에서 실시한 여론조사(<오마이뉴스> 의뢰) 학폭 선수 국가대표 자격 박탈 관련 여론조사에서 10명 중 7명이 ‘일벌백계가 필요하다’는 응답이 나왔다. 여론은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라며 많은 비판을 쏟아냈다.
 

▲ 이다영·이재영 선수의 자필 사과문 ⓒSNS

신무철 한국배구연맹(KOVO) 사무총장은 “관련 규정은 신설 직후 효력을 가지게 된다. 가해 사실이 밝혀진 선수들에겐 관련 징계를 내리기 어렵다. 이미 4명의 선수는 중징계를 받았다”고 적용하지 않은 이유를 설명했다. 

내년부터 적용되는 신설 조항은, 학교 폭력에 연루된 선수는 프로입문 전 신인 드래프트 참여에 제한을 두겠다는 내용이다. 아마추어, 선수의 폭력 이력을 확인해 학폭과 관련한 서약서를 받는다. 만약 서약서 내용이 허위사실로 확인될 경우 영구제명 등 중징계를 내릴 수 있는 조항이다.

“일벌백계 필요” 수 차례 지적
 시간 지나도 바뀌지 않는 현실


문재인 대통령은 배구계 학폭 논란이 커지자 지난 17일, 황희 신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임명식에서 “체육 분야는 국민에게 많은 자긍심을 심어줬으나, 그늘에선 폭력이나 체벌, 성추행 문제 등 스포츠 인권 문제가 제기돼왔다”며 재발방지 및 대책 마련을 촉구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16일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 불거진 프로 스포츠 선수 학폭 사건과 관련해 학폭이나 (성)폭력 등 인권침해로 징계를 받은 적이 있는 경우에는 국가대표 선발을 제한한다”고 밝혔다. 

또 다른 문제는 선수 스스로 폭력은 당연하다고 느끼는 것이다. 국가인권위원회 ‘초중고 학생선수 인권실태 전수조사’ 결과에 따르면, 898명의 응답자는 신체폭력을 경험한 뒤 느낀 감정을 묻는 질문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폭력을 필요악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게 확인된다. 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폭력은 정당화 될 수 없다. 선수 스스로도 인지하고 악의 고리를 끊어 내야 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권고에도 불구하고 변화는 없었다.

지난해 8월 통과해 2차 개정된 국민체육진흥법이 지난 19일부터 시행됐다. 국민체육진흥법은 스포츠윤리센터 권한 및 기능 강화와 훈련시설 영상정보처리기기(CCTV) 설치, 실업팀 표준계약서 도입 등을 포함한 내용이다. 혼자서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강력한 처벌로
 재발 방지해야”

제도와 선수 자체의 의식 변화가 함께 이뤄져야 한다. 학교 폭력은 한 인간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피해자들은 아직도 그날의 기억을 잊을 수 없다고 호소한다. 배구계로 번진 학폭 논란은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다. 새로운 규정과 징계로 배구계의 오래된 악습 및 관행을 끊어 낼 수 있을지에 대한 여부가 주목된다. 


<ckcjfdn@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어느 야구선수의 고백
“학교 폭력은 일상”

비단 배구계뿐만 아니다. 스포츠계는 종목을 막론하고 광범위하게 폭력이 만연했다. 고등학교 시절 야구선수로 활동했던 A씨는 <일요시사>와의 전화통화에서 “학교 폭력은 일상다반사”라며 운동부의 현실을 털어놓았다. 얼차려와 폭력은 생활의 일부였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사우나에서 얼차려를 받고 씻기 전 양말을 벗기라고 시켰다. 나는 야구부에 1년 늦게 들어갔다. 선배와 동갑이었는데 선배라는 이유로 선배들이 자신의 빨래와 청소를 시켰다. 처음에는 ‘더 잘하라고 그런 거겠지’ ‘운동은 원래 맞으면서 하는 거니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가해자들 역시 한때는 피해자였다. 보상심리가 작용했다. “나도 당했으니까 너도 당해봐라”라는 심리다.

관리자들은 폭력의 심각성을 인지하지 않고 있었다. 오히려 감싸 안는 태도를 보였다. 

“누군가 용기를 내 피해자를 도와주려 하면 죄인 취급을 받았다. 문제가 되면 가해자까지 다 같이 불러놓고 조사했다. 학교 폭력이 발생하면 학교는 무조건 덮으려 한다. 감독은 입을 닫았다. 세상에 알려지면 운동부는 해체수순을 밟는다.”

그런 이유로 A씨는 “용기를 내고 싶어도 나 자신에게 피해가 올까 봐 무섭고 두려워 참았다. 하고 싶은 것은 운동뿐이었는데 꿈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털어놨다.

A씨는 “선수들이 이루고 싶은 목표와 운동에만 집중했으면 한다. 나는 운동을 포기했지만 현재 운동을 하고 있고 앞으로 운동을 해 나갈 선수들은 폭력 속에서 운동을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이상의 피해를 방지하려면 강력한 처벌과 규정도 중요하지만 선수들을 관리하는 어른들의 역할도 중요하다. 잘못된 관행과 악행을 선수들 역시 스스로 끊으려 하지 않으면 스포츠계의 학교 폭력은 끊이지 않을 것”이라며 선수들의 역할을 강조했다.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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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