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인물> 학폭 논란 속 하차한 황영웅

‘트로트 왕’ 꿈 과거에 막히다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옛말에 때린 사람은 발 뻗고 못 자도 맞은 사람은 발 뻗고 잔다고 했다. 말 그대로 ‘옛말’이 된 걸까? 가수 황영웅이 폭력적인 과거사가 드러난 뒤에도 오디션 프로그램 <불타는 트롯맨> 결승 1차전에서 1위 자리를 지켜냈다. 프로그램 막판 하차를 선언하긴 했지만, 명확한 사과나 자숙 의사는 밝힌 바 없다. 어린 시절에 휘둘렀던 폭력은 모두에게 비극이 됐다. TV를 보며 다시 가슴 졸인 피해자도, 과거에 발목잡힌 황영웅도 발 뻗고 잘 수 없는 날이 이어진다.

황영웅은 결국 마지막 한 걸음을 내딛지 못했다. 그는 MBN 트로트 오디션 <불타는 트롯맨> 최종회, 결승 2차전 방영을 앞두고 프로그램 하차 의사를 직접 밝혔다. 황영웅은 결승 2차전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사전 녹화분은 통편집됐다. 

최종 우승자는 황영웅이 아닌 손태진이었다. 손태진은 하차한 황영웅 대신 1차전 1위로 올라섰고, 2차전서도 호성적을 기록하며 최종 누적 상금 6억2967만7200원의 주인공이 됐다.

인생 역전
과거 발목

처음부터 대세는 황영웅이었다. 1984년생으로 울산 출신인 황영웅은 자동차 부품 하청업체에서 6년간 일하다 <불타는 트롯맨>에 출연했다. TV조선 <미스터트롯> 우승자 임영웅과 이름이 같아 이목을 끌었다. 노래 실력도 출중했다.

황영웅은 대표단 예심에서 진미령의 ‘미운 사랑’을 불러 본선에 직행했다. 호소력 짙은 목소리로 설운도, 이석훈 등 선배 가수에게 호평받은 무대였다. 


뒤이은 본선 1차 무대에선 나훈아의 ‘영영’을 불러 팀과 함께 우승했다. 본선 2차 라이벌전에서는 남진의 ‘빈지게’를 선곡해 승리했고, 이후 디너쇼 미션에서도 호평을 받으며 준결승에 안착했다.

<불타는 트롯맨>과 황영웅은 함께 승승장구했다. <불타는 트롯맨>은 12주 연속 동 시간대 시청률 전 채널 1위 기록을 이어나갔고, 황영웅은 1주 차부터 국민응원투표 1위 자리에 안착하며 대세를 굳혔다. 

반전은 프로그램 내부가 아닌 외부에서 터졌다. 황영웅이 과거 상해 혐의로 재판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지난달 22일 연예부 기자 출신 유튜버 이진호는 ‘<불타는 트롯맨> 황영웅의 두 얼굴…충격 과거 실체’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영상에는 자신이 황영웅에게 폭행을 당한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A씨 인터뷰가 담겼다.

그는 이진호와의 대화에서 “제 생일에 황영웅한테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A씨는 두려움에 떠는 모습이었다. 그는 황영웅 측이 어떤 식으로 보복할지 몰라 처음에는 제보를 피하려 했다고 밝혔다.

A씨는 폭행 당시 상황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그는 “10명이 모여 1차로 술집에서 생일파티를 하고, 술을 싫어하는 모임과 술을 마시는 모임이 나뉘어 놀기로 했다”며 “저는 술을 안 마시는 모임에 가려고 했는데, 황영웅이 ‘술을 마시러 가자’고 해서 말다툼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그때가 울산 모처에서 욕을 했다거나 실랑이가 있었던 상황은 아니었다. 제가 다른 방향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주먹이 날아오더라. 그래서 내가 주먹에 맞고 쓰러졌는데 발로 제 얼굴을 찼다. 친구들은 황영웅을 말렸고, 제 얼굴에서 피가 나서 친구들이 피를 닦아줬다. 이후 경찰이 왔고 황영웅은 집으로 귀가했다”고 밝혔다.


<불트> 강력 우승 후보 거론됐지만… 
과거 폭행·학폭 의혹 불거져 결국 낙마

A씨 주장에 따르면 그는 사건 이후로 황영웅에게 사과를 받은 적이 없다. 그는 “경찰이 저와 황영웅을 격리시킨 뒤 서로 대화는 하지 못했고,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다”고 설명했다.

황영웅 측이 사건을 무마하기 위해 무고와 회유를 일삼았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A씨는 황영웅이 진단서를 발급받은 뒤 쌍방폭행을 주장했다고 폭로했다. 사건 현장 주변에 CCTV가 없었던 점을 활용해, 일방적 폭행을 쌍방폭행으로 둔갑시키려 했다는 것.

또 황영웅과 어머니가 동석했던 친구들을 만나 밥을 사 먹여가면서 회유했다고도 밝혔다.

A씨는 당시 황영웅의 폭행으로 얼굴에 큰 부상을 입었다. “치열이 뒤틀릴 정도였다”는 설명이 이어졌다. 

아울러 “현재 검찰까지 넘어간 상황에서 법적인 책임을 물어야겠다. 합의는 필요 없다고 생각했다. 치료비 포함해서 300만원 정도 받았다. 하지만 돈은 필요 없었다”며 “공론화를 하게 된 이유나 배경은 ‘나를 친구라고 생각은 했나’라는 의문과 함께 사과가 없었기 때문이다. 많은 분한테 응원과 사랑을 받고 있는 황영웅은 그럴만한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반성하며 살아가야 한다. 과거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성인이 됐으면 좋겠다”고 맺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사건의 기초적인 사실관계가 A씨 주장과 부합한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A씨 폭로대로, 황영웅은 2016년 상해죄로 벌금형을 처벌받은 전력이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이외에도 황영웅은 학교폭력, 데이트폭력을 저질렀다는 의혹 등에도 휘말렸다. 나름의 인증을 거친 뒤 이뤄진 폭로에, 그 진위를 명확하게 파악할 수 없는 주장이 뒤엉키면서 혼란이 가중됐다.

이에 <불타는 트롯맨> 측 제작진이 입장을 밝혔다. 지난달 23일 제작진은 “최근 일각에서 제기한 저희 측 참가자 논란과 관련한 입장을 전달드린다”고 운을 뗐다.

이어 “제작진은 <불타는 트롯맨> 오디션 당시 참여를 원하는 이들의 동의를 얻어 결격 사유 여부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서약서를 받는 등 내부적 절차를 거쳐 모집을 진행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두 얼굴의
트롯맨

또 “논란이 된 참가자 또한 해당 과정을 거쳐 참가하게 되었으며, 이후 다른 참가자들과 마찬가지로 자신의 꿈을 위해 성실하게 노력하는 모습으로 많은 이에게 울림을 주었기에 제작진 역시 과거사와 관련해 갑작스레 불거진 논란이 매우 당황스러운 상황”이라며 “제작진이 한 개인의 과거사를 세세하게 파헤치고 파악하기에는 한계가 있으며, 이로 인해 사실 파악에 시간이 걸리고 있다는 점 양해 부탁드린다. 조속한 상황 파악 후 다시 말씀드리겠다”고 전했다. 


하지만 제작진은 달이 바뀌도록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그 사이 황영웅은 과거 논란이 불거진 와중에도 결승 1차전에 출전해 1위 자리를 수성했다. 그는 지난달 28일 오후 방송분에서도 편집 없이 등장했다.

이날 방영된 결승 1차전 1라운드에선 ‘한 곡 대결’이 펼쳐졌다. 한 곡 대결은 2인1조로 자유 선곡한 한 곡을 나눠 부르고, 둘 중 한 명에게 투표하는 방식이다. 연예인-국민 대표단 점수를 합산한 현장 점수 결과, 황영웅은 공훈, 손태진, 민수현 등과 함께 각 대결 승자가 됐다. 

손태진이 250점을 획득하며 1라운드 현장 점수 1위에 올랐고, 황영웅이 그 뒤를 이었다.

이어 치러진 2라운드는 ‘신곡 미션’이었다. 히트 작곡가의 신곡을 나눠받은 결승 진출자들은 각자의 곡으로 무대를 꾸몄다. 이때 황영웅은 작곡가 송광호, 김철인이 만든 ‘안 볼 때 없을 때’ 무대에 올라 연예인 대표단 점수 1위를 차지했다.

2라운드 국민 대표단 점수와 실시간 문자 투표를 합산한 결승 1차전 최종 결과는 생방송으로 공개됐다. 이번에도 1위는 황영웅이었다. 생방송 중 황영웅은 자신의 논란을 의식한 듯 계속 굳은 표정을 보였다.

1위 소감으로는 “감사드리고 죄송합니다. 제가 다음 주 최종 1위가 되면 상금에 대해서 사회에 기부를 하고 싶습니다. 이런 말씀 전해드리고 싶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결국 하차
늦은 사과

논란을 명확히 인정도, 부정도 하지 않는 애매한 이날 발언은 되레 구설에 올랐다. 일부 시청자들은 “2라운드가 시작도 하지 않았는데 우승을 논하며 기부 이야기를 꺼낸 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제작진의 편집 방향도 도마 위에 올랐다. 폭행 논란이 있는 출연자가 평소처럼 등장하는 게 온당하냐는 질타가 이어졌다. 실제로 황영웅은 이날 방영분에서도 얼굴 클로즈업, 미소 등의 장면이 지속적으로 등장했다. 황영웅의 무대에 대한 호평과 찬사 등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비중으로 전파를 탔다. 

일각에서는 제작진이 고의로 ‘소극적 결단’을 내렸다는 의심이 나왔다. 황영웅이 프로그램 흥행을 이끈 주요 참가자다 보니, 제작진이 시청률 하락을 우려해 그대로 방송에 내보낸 것이 아니냐는 것.

들불처럼 번진 논란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황영웅은 지난 3일 새벽 자신의 SNS에 글을 올려 하차 의사를 전했다.

그는 “결승에 들어간 상황에서 저로 인해 피해를 끼치면 안 되겠다는 생각에 지난 방송에 참여하면서 너무나 많은 생각이 들었다. 어린 시절 일이라고 변명하지 않겠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오해는 풀고, 진심으로 사과하겠다”며 “저로 인해 상처받으셨던 분들께 진심으로 용서를 구한다”고 적었다. 

같은 날 제작진은 공식 입장문을 내고 “어젯밤, 참가자 황영웅씨가 경연 기권 의사를 밝혀옴에 따라 본인의 의사를 존중하여 자진 하차를 받아들이기로 최종 결정했다. 그간 파악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보를 바탕으로 가능한 한 모든 경우의 수를 숙고했고, 최선의 경연 진행 방식이 무엇일지 고민했다”고 밝혔다.

이어 “마지막까지 공정하고 투명한 오디션이 되도록 만전을 기할 것을 약속드린다”며 “앞으로 제작진의 공정성에 대한 확인되지 않은 의혹과 사실이 아닌 부분에 대해서는 단호히 대처하겠다”고 밝혔다.

빗발치는 하차 요구 속 결승 1차전 강행 
결국 “용서 구한다” 입장문…뒤늦게 하차

제작진은 지난 7일 방영된 결승 2차전 방영분에서도 황영웅 논란과 관련해 재차 사과했다. 이날 MC 도경완은 “프로그램과 관련해 심려를 끼쳐드린 점 제작진을 대표해서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 드린다. <불타는 트롯맨> 전 출연자와 제작진은 끝까지 공정하게 마무리될 수 있도록 방송 종영 시점까지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고개를 숙였다.

황영웅은 오디션 종료 후 예정된 참가자 전국 투어 콘서트에서도 빠지는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당장의 논란은 황영웅과 제작진이 종영 직전 하차를 선택하면서 일단락되는 모양새다.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다. 여론은 수많은 피해담 사이에서 여전히 옥석을 가려내고 있다. 제기된 의혹 중 몇 가지가 더 사실로 확인되면 황영웅은 추후 활동 가능성조차 불투명해진다. 

더군다나 황영웅은 이미 자숙 없이 활동을 이어가려는 낌새를 보이며 대중의 비판에 직면한 상황이다.

지난 7일 이진호는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자진하차 황영웅 <불타는 트롯맨> 결단 비하인드 | 김갑수 옹호에 분노하는 이유’라는 제목의 영상을 공개했다.

그는 영상에서 “공교롭게도 <불타는 트롯맨>의 우승자보다 황영웅의 비하인드를 궁금해하시는 분이 많다. 그래서 알려지지 않은 비하인드를 전하겠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영상에서 황영웅이 하차 당시 게시한 글 일부를 분석했다. 이진호는 “사과문에서 핵심적인 내용은 ‘저는 이제 경연을 끝마치려고 한다’”라며 “통상적으로는 ‘활동 중단’이라는 글귀가 들어간다. 하지만 피해자분들이 가장 화가 났던 게 자숙이라는 이야기가 전혀 없었다는 것”이라고 전했다.

또 “그러니까 이 글귀의 뜻은 ‘내가 결승전에 참가하지 않는 것으로 과오를 씻겠다’는 거다. 자숙? 없다. 피해자에 대한 사과도 하겠다고는 하지만 일주일이 지난 지금까지도 직접적인 연락은 없었다고 한다”고 주장했다.

발 뻗고
못 잔다

그는 ‘황영웅이 완전 퇴출됐다. 권선징악이라고 보는지’라는 누리꾼 질문에 “그렇지 않다”고 잘라 답했다. 이진호는 “실제로 황영웅은 팬들을 상대로 팬미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황영웅이) 방송에는 나오지 못하고 있다. 이 부분에 대해 팬들 사이에서 동정 여론이 일었다”며 “팬미팅이라도 진행되면 황영웅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는 상황”이라고 했다.

<jeongun15@ilyosisa.co.kr>

<기사 속 기사> ‘불타는 트롯맨’ PD 전작 살펴보니…학폭 ‘얼룩’ 여럿

대중은 황영웅의 과거사와 함께 <불타는 트롯맨> 제작진의 과거 이력에도 주목하고 있다.

연출을 총괄한 PD가 과거 맡았던 프로그램에서 출연자 학교폭력 의혹이 수차례 일었기 때문이다. 

해당 PD는 2013년 방영된 SBS 예능 <송포유> 제작에 참여했으며, 이후 2020년 방영된 <미스트롯2>, 올해 방영된 <불타는 트롯맨> 등을 연출했다. 

아울러 프로그램들이 해당 출연자들에 대한 ‘깔끔한 대처’를 보여주지 못한 것도 비판 대상이다.

해당 PD를 둘러싸고 “학교폭력 피해자에 관한 공감 능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우선 <송포유>는 일진과 비행청소년으로 팀을 꾸려 합창대회에 나가고, 이를 통해 이들의 ‘개과천선’을 꾀한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방영 당시 출연자에 관한 여러 논란이 터졌고, 프로그램은 ‘일진 미화 논란’에 휘말렸다.

특히 이들에게 학교폭력을 당한 피해자들은 이들이 방송에 나온 모습을 보고 “2차 가해를 당해 고통스럽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진다.

<미스트롯2> 역시 재소환됐다.

이번 황영웅 사태와 마찬가지로, 당시 유력 우승 후보였던 진달래 또한 학교폭력 가해 의혹이 불거지면서 자진 하차했다.

이때도 제작진의 편집 방향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방송 통편집이 대신, 학폭 가해자가 프로그램에 피해가 가면 안 된다는 선의를 보이며 하차하는 모습을 담았다는 지적이다. <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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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