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 3대 동물권 단체 ‘케어’ 위증교사 의혹

판결 직전 뒤늦은 고백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우리나라 3대 동물권 단체 ‘케어’의 무분별 안락사 논란이 불거진 지도 어느덧 4년이 지났다. 논란의 ‘핵심’ 박소연 전 대표의 1심 선고는 일주일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꾸준히 본인의 무고함을 호소해왔다. 그런데 재판 막판, 한 증인의 ‘양심선언’이 나왔다. 박 전 대표가 자신에게 위증을 지시해 이에 따랐다는 주장이다. 해당 증인은 법정서 박 전 대표에게 유리하고, 공익제보자 A씨에게 불리한 증언을 남긴 바 있다.

“2011년부터 (케어 내)안락사는 없습니다.” 4년 전, 거짓으로 무장한 박소연 케어 전 대표를 막아선 건 한 내부고발자의 ‘양심선언’이었다. 그리고 지금, 박 전 대표의 거짓말을 다시 막기 위해 또 다른 양심선언이 등장했다. 

98마리

박 전 대표는 2019년 말 기소된 이래로 지금까지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받아왔다. 이 재판에 병합된 사건만 해도 6건에 이른다. 법원에 따르면 박 전 대표는 현재 ▲특수절도 ▲동물보호법 위반 ▲공동주거침입 ▲명예훼손 ▲형사소송법 위반 등의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박 전 대표에게 징역 2년6월을 구형했다. 이에 관한 1심 판결은 오는 14일 선고될 예정이다.

박 대표는 3년이 넘도록 자신이 무고하다는 주장을 펼쳐왔다. 특히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무분별 안락사 사건(동물보호법 위반)에 관해서는 공익신고자 A씨에게 모든 책임을 넘겼다. 자신은 강제로 안락사를 지시한 바 없었고, A씨가 안락사 관련 업무를 실질적으로 전담해왔다는 것.


검찰은 박 전 대표와 A씨가 공모해 동물 98마리를 안락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A씨는 케어 동물관리국장으로 재직하며 안락사를 직접 시행하다 죄책감을 느끼고 내부 폭로를 감행한 인물이다. A씨는 국민권익위원회 결정에 따라 공익신고자가 됐지만, 반성의 의미로 피의자 전환을 자처한 바 있다. 검찰은 지난달 A씨에게 벌금 300만원을 구형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달 19일 진행된 최후진술에서 기존 주장을 정리·반복했다. 이날 그는 재판장에게 “이 재판은 굉장히 특이하다. 안락사에 깊게 관여한 사람을 두고 대표라는 이유로 내게 책임을 묻는다”며 “A씨는 안락사 대상을 선정하고 (안락사를)직접 참관했으며, 과거에 보고 없이 안락사를 하기도 했다. 심지어 케어와 상관 없는 개들을 몰래 안락사한 사실도 ○○○ 증인이 나와서 주장했다”고 발언했다.

박 전 대표가 언급한 증인은 박 전 대표 측 요청에 따라 재판에 참여했다. 그는 2021년 여름 경, 재판에 출석해 박 전 대표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진술을 남겼다. 이를테면 “A씨가 자의적으로 안락사하는 것을 목격했다” “A씨가 평소 개들을 보며 안락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는 식의 증언이었다.

박 전 대표는 이 같은 증언을 기반 삼아 “A씨는 자신의 지시 여부와 상관없이 안락사했던 것”이라고 주장했다. 

‘무단 안락사 사건’ 오는 14일 판결
박 전 대표 1심 도중 증언 개입했나

하지만 박 대표가 이 증언을 근거로 최후진술을 이어나가던 그때, 증언은 이미 정반대로 뒤집혀 있었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해당 증인은 최후진술이 있던 날로부터 약 열흘 전쯤 자신의 위증 사실을 털어놓는 의견서를 담당 검사와 재판부에 발송했다. 며칠 뒤엔 이들에게 “의견서가 도착했다”는 회신도 받았다. 


결국 박 전 대표는 자신의 위증 지시 의혹을 인지한 검사와 판사 앞에서, 신빙성이 의심되는 증언을 근거로 재차 본인 주장에 나섰던 셈이다.

<일요시사>는 발송된 의견서 내용 중 일부를 확보했다. 의견서에는 “본인 ○○○이 증언한 안락사에 관한 내용은 과장된 것입니다…(중략) 박소연씨의 증인으로 출석해 증언한 모든 것을 취하하고자 합니다.”라고 기재됐다.

또 증인은 자신이 위증한 이유도 함께 밝혔다. 증인은 의견서에서 위증의 대가로 케어 입사를 약속받았다고 주장했다. 

의견서엔 “박소연씨가 직원 채용시켜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에 저 또한 (위증에)적극적이었습니다” “본인은 증언 당시 케어 구조팀장 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업무(직책) 유지를 위해 70~80% 과장된 진술을 해야만 했습니다” “당시 ‘모든 책임과 악의는 A씨에게 있다’고 인식할 수 있도록 이야기해야만 했습니다”라고 적혀있다.

<일요시사>는 증인의 케어 근무 당시 함께 일했던 동물권 활동가들의 진술을 종합했다. 이들의 설명에 따르면, 증인은 2020년 연말 박 전 대표에게 ‘재영입’ 제의를 받았다. 이미 증인은 과거 박 전 대표 밑에서 A씨와 함께 일한 전력이 있었다. 안락사 준비 과정에도 깊숙이 관여했다.

제의 당시 증인이 일하던 단체는 해체를 앞두고 있었다. 이에 증인은 재영입 제의를 받은 지 약 일주일 만에 케어에 합류했다. 그는 케어와 정식 직원 계약 대신 프리랜서 계약을 체결했다. ‘구조팀장’이라는 직함을 받았지만 정작 외부 활동에는 동원되지 않은 채 단체 내 잡무를 처리했다.

이후 5월부터는 케어의 협력단체에 임시 파견돼 구조활동을 수행했으며, 이 중 박 전 대표의 재판에서 그에게 유리한 증언을 남겼다. 같은 해 10월에는 다시 케어로 복귀해 구조업무를 맡았다. 하지만 이듬해 3월, 증인은 박 전 대표와 업무상 갈등을 빚은 끝에 케어에서 나왔다.

한 동물권 활동가는 “급조된 채용, 증언 전 존재 숨기기, 증언 후 (케어)복귀, 토사구팽식 마무리까지 완벽하다”며 “하물며 본인 증언이 없어도 충분히 의심스러운 상황인데, 스스로도 그런 합의가 있었다고 하니 명명백백히 진상을 밝혀볼 필요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당시 케어에서 근무하며 증인의 입·퇴사 과정을 가까이서 지켜봤다.

증인 “입사 빌미로 거짓말 요구” 양심선언
박 “안락사 책임은 공익제보자” 주장 반박

증인은 의견서에서 A씨를 언급하기도 했다. 주로 증언 당시와 배치되는 내용이 담겼다. 그는 의견서에 “모든 활동은 A씨와 함께 했으며, A씨는 동물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적었다. 그러면서 “A씨와 함께 일할 때 지원이 없으면 개인 돈을 들여서 일해야 했다. 박소연씨는 보호소에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검사와 재판부가 증인의 새 의견서 내용을 사실로 받아들인다면, 박 전 대표의 혐의가 하나 추가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형사재판에서 증인선서 이후 증언에서 거짓을 고한 증인은 ‘위증죄’에 따라 5년 이하의 징역, 1000만원 이하의 벌금 처벌을 받는다.


만약 피고인이 이를 지시했다면 위증교사죄가 성립돼 처벌받는다. 이 경우 증인이 위증죄, 박 전 대표가 위증교사죄 혐의를 받을 수 있다.

박경수 법무법인 ‘지름길’ 대표변호사는 의견서 내용이 모두 사실이라는 전제 아래 “증인이 재판이 끝나기 전 증언을 번복했다고 하더라도, 이미 증인신문을 마쳤던 만큼 위증죄는 성립할 것으로 보인다”며 “증인의 위증 혐의가 인정되면 박 전 대표의 위증교사 혐의도 연쇄적으로 인정될 여지가 있다”고 짚었다.

<일요시사>는 해당 의혹에 대한 박 전 대표의 입장을 듣기 위해 다방면으로 연락을 시도했지만, 끝내 답변을 들을 수 없었다. 박 전 대표가 기자의 연락에 전혀 응하지 않은 탓이다. 

지난 1일 박 전 대표는 기자가 다른 기자의 번호를 빌려 건 전화는 받았다. 다만 “박 대표가 맞냐”고 물으니 “잘못 걸었다”며 황급히 전화를 끊었다. 박 전 대표는 부인했지만, 해당 번호로 등록된 카카오톡 계정에는 박 대표의 이름이 있었다.

불과 닷새 전 바뀐 프로필과 상태 메시지는 각각 박 대표 사진과 박 대표의 영문 이름(SoYounPark)이었다. 

발뺌


대신 <일요시사>는 의견서를 제출한 증인과 연락이 닿았다. 증인은 의견서 제출 여부와 <일요시사>가 제시한 의견서 제출 시점, 케어 근무 이력 등에 관해 “모두 사실”이라고 짧게 답했다. 다만 그는 구체적인 의견서 내용과 증언 번복 결심 배경에 관한 질문에는 답변하지 않았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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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탈세보다 무서운 산재와의 전쟁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산재와의 전쟁’을 선포했다.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사망하는 사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이 대통령이 칼을 휘두르자 기업은 납작 엎드렸다. 이 대통령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엇갈린다. 산재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 만큼 단호한 조치가 필요하다며 환영하는 의견과 구조적 문제를 뒤로하고 기업 ‘잡도리’만 하고 있다는 의견 등이다. 건설업계에 칼바람이 불고 있다. 미국발 관세나 국내 경기 문제가 아니다. 산업재해(이하 산재)가 건설 현장을 뒤흔드는 중이다. 대통령은 여러 현안 중 산재로 인한 사망사고 근절을 국정 과제 첫머리에 올린 듯한 모습이다. 대통령 한마디 이재명 대통령이 반복되는 산재 사망사고의 고리를 끊겠다고 나섰다. 산재 사망사고가 발생한 기업을 법과 제도를 통해 처벌하겠다고 선언했다. 발언 수위도 나날이 세지고 있다. 본보기가 된 기업은 대통령이 일으킨 칼바람을 온몸으로 맞는 모양새다. 지난 5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1분기 ‘산업재해 현황 부가 통계’에 따르면 올해 1~3월 재해 조사 대상 사고 사망자는 총 137명(잠정)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38명)보다 1명(0.7%) 줄었다. 사망사고 건수도 같은 기간 136건에서 129건으로 7건(5.1%) 감소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이 29명으로 지난해보다 2명, 기타 업종(건설업과 제조업 이외 업종)이 38명으로 6명 감소했지만 건설업은 71명으로 오히려 7명 늘었다. 노동부는 부산 기장군 건설 현장 화재와 서울-세종고속도로 교량 붕괴 등 대형 사고의 영향으로 건설업 사망자 수가 증가했다고 분석했다. 지난 2월14일 부산 기장군 반얀트리 리조트 신축 공사장에서 불이 나 6명이 숨졌다. 또 같은 달 25일, 경기도 안성시 서울-세종고속도로 건설 현장 교량 상판 구조물이 붕괴해 4명이 목숨을 잃는 사고가 일어났다. 규모별로는 상시 근로자 50인(건설 업종은 공사 금액 50억원) 미만 사업장에서 올해 1분기 사망자는 83명으로 지난해보다 5명(6.4%), 사망사고 건수는 83건으로 7건(9.2%) 늘었다. 반면 50인 이상 대형 사업장과 대규모 공사 현장에선 사망자 54명, 사고 건수 46건으로 각각 6명, 14건 줄었다. 사망사고 유형별로는 ‘추락’ 62명, ‘끼임’ 11명, ‘물체에 맞음’ 16명으로 지난해와 비교해 각각 1명, 7명, 5명 감소했다. 화재와 폭발로는 10명, ‘붕괴’ 사고로는 11명이 목숨을 잃었다. 지자체별로는 경기(31명), 서울(17명), 경북(15명), 부산·전남(12명), 경남(11명), 충남(9명), 강원·울산(6명) 순으로 많았다. 산재로 인한 사망은 건설 현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사고다. 정부는 산재 사망사고를 줄이기 위한 각종 대책을 내놨다. 2022년 1월부터 시행된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처법)도 그중 하나다. 중처법은 근로자의 사망사고 등 중대 재해가 발생했을 때 기업의 경영 책임자 등이 안전 보건 관리 체계 구축 등 의무를 위반한 것으로 확인되면 처벌하도록 하는 내용이 골자다. 취임 이후부터 직접 챙겨 국정 운영 계획에도 포함 문제는 실효성이다. 중처법이 시행된 이후에도 건설 현장에서 근로자가 죽는 일이 계속 일어나고 처벌은 ‘솜방망이’ 수준에 그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결국 이 대통령이 칼을 빼 들었다. 이 대통령은 지난 12일 “비용을 아끼기 위해 누군가의 목숨을 빼앗는 것은 일종의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 또는 사회적 타살”이라고 비판했다. 필요하면 법을 개정해서라도 ‘산재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겠다는 뜻도 밝혔다. 이 대통령은 이날 국무회의에서 “일상적으로 산업 현장을 점검해서 필요한 안전조치를 하지 않고 작업하면 엄정하게 제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며 “제도가 있는 범위 내에서 할 수 있는 최대의 조치를 해달라”고 주문했다. 사고 위험이 큰 업무를 하청과 외주를 통해 해결하는 ‘위험의 외주화’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이 대통령의 산재 사망사고 근절 ‘드라이브’는 점진적으로 거세지고 있다. 초기에는 주무 부처에 대책을 요구했다면 최근에는 직접 목소리를 내고 움직이는 식이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산재를 줄이라고 지시했는데도 불구하고 사망사고가 이어지자 특유의 행동력을 보이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이 대통령이 고용노동부에 산재 관련 종합 대책을 주문한 뒤에도 ▲인천 맨홀 작업 노동자 질식사 ▲포스코이앤씨 노동자 끼임사 ▲경기 의정부 아파트 신축 현장 노동자 추락사 등의 사고가 일어났다. 불과 한 달 새 일어난 일이다. 지난달 6일 인천 계양구 병방동의 한 도로 맨홀 안에서 지하 시설물 조사 작업 중이던 노동자 1명이 의식을 잃고 1명은 실종됐다. 이들은 결국 사망했다. 조사 결과 이 사고는 용역 계약 위반에 따라 허가 절차 없이 진행하다가 발생한 인재로 드러났다. 법으로도 안 됐는데… 숨진 근로자는 산소 마스크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착용하지 않은 채 작업하다 유독가스에 중독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이 대통령은 “현장 안전 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데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며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지난달 28일 포스코이앤씨가 시공하는 경남 함양-울산고속도로 의령나들목 공사 현장에서 사면 보강 작업을 하던 60대 근로자가 천공기(지반을 뚫는 건설기계)에 끼어 숨지는 사고가 일어났다. 포스코이앤씨 시공 현장에서만 올해 들어 4번째 일어난 사망사고다. 지난 1월 경남 김해 아파트 신축 현장 추락사고, 경기도 광명 신안산선 건설 현장 붕괴사고, 대구 주상복합 신축 현장 추락사고 등도 줄을 이었다. 이 대통령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망사고가 나는 것은 결국 죽음을 용인하는 것이고 아주 심하게 얘기하면 법률적 용어로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라고 질타했다. 그러면서 “(산재 사망사고가 나면) 여러 차례 공시하도록 해서 투자를 안 하고 주가가 폭락하게 (해야 한다)”고도 말했다. 여름휴가를 마치고 복귀 첫 일성도 산재 관련 발언이었다. 이 대통령은 “앞으로 모든 산업재해 사망사고는 최대한 빠른 속도로 대통령에게 직보하라”고 지시했다. 산재 사망사고를 직접 챙기겠다는 의지를 다시 한번 천명한 것이다. 사과문 내고 또 반복되다 지난 9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을 통해 전해진 이 대통령의 발언은 전날인 8일 경기 의정부 신축 아파트 공사 현장에서 안전망 철거 작업을 하던 50대 근로자가 6층 높이에서 떨어져 숨진 사고가 영향을 미쳤다. 이 대통령이 선포한 ‘산재와의 전쟁’에 기업은 바짝 얼어붙은 상황이다. 지난달 25일 경기 시흥 SPC 삼립 공장을 방문해 ‘중대산업재해 발생 사업장 현장 간담회’를 열었다. 해당 공장은 지난 5월 50대 여성 노동자가 작동 중인 컨베이어벨트에 끼어 사망했고 2022년과 2023년에도 여성 노동자가 각각 소스 교반기와 반죽 기계에 끼어 숨지는 등 중대 산재가 빈번하게 일어났던 곳이다. 이 대통령은 이날 간담회에서 SPC 근로자의 노동 시간 등을 자세히 물었다. 그러면서 “(산재가) 심야에 대체적으로 발생하고 12시간씩 4일간 일하다 보면 사실 심야 시간에 힘들다. 주의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며 “심야 장시간 노동 때문에 생긴 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의 지적에 SPC 회장을 비롯해 그룹 관계자들이 쩔쩔맨 것으로 전해졌다. SPC그룹은 이 대통령이 다녀간 지 이틀 만인 지난달 27일, 8시간 초과 야근을 폐지하겠다는 대책을 내놨다. 제품 특성상 필수적인 품목 외에는 야간 생산을 최대한 없애 공장 가동 시간을 축소하겠다는 것이다. 또 주간 근무 시간도 점진적으로 줄여 장시간 근무로 인한 피로 누적, 집중력 저하, 사고 위험 등을 사전에 차단하겠다고 밝혔다. 포스코이앤씨는 지난달 29일 담화문을 내고 고개를 숙였다. 정희민 전 대표이사는 “어제(28일) 사고 직후 모든 현장에서 즉시 모든 작업을 중단했고 전사적 긴급 안전 점검을 실시해 안전히 확실하게 확인되기 전까지 무기한 작업을 중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협력업체를 포함한 모든 근로자의 안전이 최우선 가치가 되도록 필요한 자원과 역량을 총동원해 근본적인 쇄신 계기로 삼겠다”며 “또다시 이런 비극이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사즉생의 각오와 회사의 명운을 걸고 안전 체계의 전환을 이뤄내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 전 대표의 사과는 엿새 만에 또다시 일어난 사고로 빛이 바랬다. 지난 4일 오후 경기 광명시 옥길동 광명-서울고속도로 민간투자사업 제1공구 현장에서 미얀마 국적 30대 근로자가 감전돼 심정지 상태로 발견됐다. 이 근로자는 병원으로 이송된 지 8일 만인 지난 12일 의식을 회복했다. 높아진 발언 수위·제재 조치 “왜 기업만 잡도리?” 의견도 정 전 대표는 사의를 표명하고 물러났다. 연이어 산재사고가 일어난 포스코이앤씨는 ‘본보기’가 될 가능성이 커진 상황이다. 일단 이 대통령은 포스코이앤씨에 대한 건설 면허 취소, 공공 입찰 금지 등 법률상 가능한 방안을 모두 찾아서 보고하라는 지시를 내린 바 있다. 국내 건설 면허 취소는 현행 건설산업기본법상 최고 수위의 징계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 책임이 있던 동아건설산업에 내려진 사례가 유일하다. 건설 면허가 취소되면 신규 사업을 할 수 없고, 다시 면허를 취득한다고 해도 수주 이력이 없기 때문에 관급공사를 따내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 경찰은 사고 관련 수사 전담팀을 만들고 고용노동부 안양지청과 함께 포스코이앤씨와 하청업체에 대한 압수수색에 돌입했다. DL건설도 대표이사를 비롯한 임원진 전원이 공사 현장에서 발생한 사망사고에 책임을 지고 일괄 사표를 제출하는 등 납작 엎드렸다. 특히 이 대통령이 휴가에서 돌아와 산재 관련 발언을 한 직후 터진 사고여서 충격파가 더 컸다. DL건설에서 사표를 제출한 임직원은 80여명, 공사를 중단한 현장은 44곳에 이른다. 이재명정부는 산재사고로 인한 사망자 비율을 2030년까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만명당 0.29명까지 끌어내리는 방안을 추진하기로 했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 발생한 산재로 인한 사망자 비율은 1만명당 0.39명으로 OECD 평균을 크게 웃도는 실정이다. 이 같은 내용은 ‘이재명정부 국정 운영 5개년 계획’에 포함됐다. 이 대통령이 지난달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전 세계에서 또는 OECD 국가 중 산업재해율, 사망재해율이 가장 높다는 불명예를 이번 정부에서 반드시 끊어내겠다”고 의지를 드러낸 부분을 국정과제로 담은 것이다. 구조 문제 나 몰라라 일각에서는 이 대통령이 지나치게 건설업계만 잡고 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관련 법과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데도 사망사고가 끊이지 않는다면 구조적인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는 것이다. 수주 경쟁이 과열되면서 저가 입찰이 늘고 안전관리에 소홀해지는 점이 산재로 이어지는 식의 고리를 끊어야 진정한 의미의 ‘근절’이 이뤄질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