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 3대 동물권 단체 ‘케어’ 보호소 비참한 현실

더러운 개농장과 다를 것 없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케어의 ‘내로남불’식 잣대는 유별나다. 같은 법을 어겼지만 남의 개 농장은 철폐 대상, 자신들 보호소는 수호 대상이다. 개 농장에서 개가 죽으면 학대지만, 보호소에서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케어에게 구조‘당한’ 동물 중 일부는 구조 이후에도 비참한 삶만 살다 떠난 것으로 드러났다. 면죄부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입맛대로 재단한 ‘공익’ 아래 ‘셀프 부여’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와치독’은 2021년 여름, 정식으로 결성된 케어 산하의 개 농장 철폐 조직이다. 이들의 목표는 전국의 모든 개 농장을 문 닫게 하는 것. 무허가 개 농장, 불법 도살 등을 자행하는 불법 개 농장뿐만 아니라 동물보호법 위반 소지가 없는 개 농장 역시 이들에겐 ‘타도 대상’이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케어와 와치독은 “모든 개 농장이 동물 학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다른 동물권 단체들도 개 식용 반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대부분의 개 농장 철폐 시도는 불법 개 농장에 국한된다. 관련 규정을 모두 준수하는 개 농장은 없앨 근거가 마땅치 않은 탓이다. 이보다 더 과격한 활동 목표를 내건 와치독의 후원 규모는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케어 출신 활동가들은 “과거 ‘무단 안락사 사태’로 부침을 겪던 케어가 와치독 결성을 계기로 반등에 성공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김영환 케어 대표는 지난해 3월 열린 총회서 “회원이 늘었다. 이대로라면 연말쯤 케어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와치독은 결성 직후부터 케어를 떠받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이를 방증하듯 케어의 전·현직 대표와 이사 등은 스스로 ‘와치독 기획자’ 자리에 올라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 중이다. 와치독이라고 해서 없는 문제를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대신 이들은 일종의 ‘우회 공격’을 통해 개 농장을 사냥한다. 이들은 개 농장이 위치한 땅·건물에 넣어볼 수 있는 모든 민원을 마구잡이로 제기한다.

<일요시사>는 와치독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한 지자체에 보낸 민원서 원문을 확보했다. 와치독은 한 개농장 주소를 특정한 뒤 ▲건축법 ▲국토계획법 ▲농지법 ▲동물보호법 ▲폐기물관리법 ▲사료관리법 ▲가축분뇨법 ▲액화석유가스법 ▲물환경보전법 ▲하수도법 ▲지방세법 위반 여부를 판단, 처분을 요구했다. 

민원 답변에 따르면 해당 농장에선 동물보호법, 가축분뇨법 등에 관한 위반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스·수도·재산세 법 위반을 이유로 행정처분이 예고됐다. 

와치독은 이 같은 주객전도적 상황도 개의치 않는다. 어떤 ‘빈틈’이라도 포착하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와치독은 지자체에겐 엄한 행정처분을 내리라고 압박하고, 개 농장주에겐 “계속 버티면 막대한 벌금을 내야 할 것”이라며 폐업을 종용한다. 지난달 와치독은 후원자들에게 “지난해 개농장 218곳을 타격했다”고 보고했다.

물론 와치독의 이 같은 행보가 상식과 동떨어져 보일 수는 있다. 다만 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부차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위법 사항은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진짜 문제는 케어와 와치독의 ‘이중잣대’다. 케어가 직접 운영하는 보호소들은 각종 위법 사항들을 안은 채 수년째 운영 중이다. 와치독 활동 경험이 있는 한 동물권 활동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와치독이 케어 보호소를 친다면 즉시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외에도 동물권 활동가 다수가 케어 보호소의 위법 요소를 지적했다.

<일요시사>는 케어 직영 보호소 두 곳의 위법 사항을 직접 살펴봤다. 이때 ‘와치독이 케어를 치는’ 상황을 상정하기 위해 와치독의 민원서 양식을 그대로 차용했다. 문맥을 고려한 최소한의 수정을 거친 뒤 케어 보호소 주소를 적어넣었다. 민원서 분량은 A4용지 2페이지를 가뿐히 채웠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말 각 지자체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이들 설명에 따르면 충북 충주시와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케어 보호소 두 곳은 모두 건축법과 농지법을 위반해 꾸준히 행정처분을 받아왔다. 이에 더해 충주시는 충주 보호소가 가축분뇨법까지 위반 중이라고 알려왔다.

불법 현장 사냥…확인해보니 ‘내로남불’
각종 위법·행정처분 폭탄 “방법이 없다”

케어는 보호소를 지을 수 없는 곳에 보호소 건축을 강행했다. 현행법상 농지 소유자는 농지를 농업용으로만 활용해야 한다. 농지를 허가 없이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건 ‘농지 불법전용 행위’로 명명된 금지사항이다.

같은 맥락에서 농지에는 건축물을 세울 수 없다. 일명 ‘농막’이라 불리는 작은 휴게시설을 제외하고는 천장이 막힌 건축물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하지만 케어는 건축법을 수차례 위반했다. 케어는 과거 충주 보호소에서 위반건축물이 적발된 뒤 이행강제금 부과 직전에 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충주시 현장점검에서 또다시 위반건축물 2~3동이 발견됐다. 

설령 두 보호소 부지가 농지가 아니라고 해도, 케어는 보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두 땅 모두 가축사육 제한구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토 대부분은 가축사육 제한구역이다. 물론 케어와 와치독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불과 지난달에도 케어 홈페이지 공지사항에서 “개 농장을 없애면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뒤 근거로 가축사육 제한구역을 언급했다.

일단 개 농장을 없애면 옮겨갈 곳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와치독 활동이 본격화된 뒤에도, 케어는 “위법 사항을 시정하라”는 지자체 권고를 줄곧 무시해왔다. 이에 각 지자체는 케어에 이행강제금 부과, 폐쇄 명령, 고발 등 각종 행정처분으로 대응 중이다.

특히 충주 보호소는 2017년 처음 행정처분이 내려진 이래로 꾸준히 시설 폐쇄 및 퇴거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케어 측은 충주시에 “보호소 이전 부지가 확보되는 대로 나가겠다”며 폐쇄 명령 이행기간 연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케어는 보호소를 옮기지 않았다.

충주시는 “폐쇄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며 폐쇄 명령을 재개했고, 케어는 2021년 4월과 지난해 6월 연이어 내려진 폐쇄 명령에 모두 불응했다.


수년간 법을 어겨온 대가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충주시는 박소연 전 대표를 농지법 위반으로, 김 대표를 가축분뇨법 위반으로 각각 고발했다. 아울러 박 전 대표는 충주 보호소 부지 문제로 이행강제금 4000만원을 부과받았다.

도긴개긴
동물 방치

박 전 대표는 압류를 막기 위해 이행강제금을 한 달에 200만원씩 분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충주시는 박 전 대표에게 이행강제금을 추가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케어가 위법 사항을 조속히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케어는 수년 전부터 보호소 이전을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케어는 2021년 충청권 모처에 김 대표 명의로 부지를 매입했다. 하지만 케어는 이곳에도 보호소를 지을 수 없었다. 이곳 역시 가축사육 제한구역이기 때문이다.

케어는 관할 지자체에 보호소 건립 허가를 수차례 요구했지만, 끝내 반려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한 동물권 활동가는 <일요시사>에 “결국 부지 매입도, 이행강제금 납부도 후원금으로 하지 않겠느냐”며 “운영진 역량 부족 때문에 후원금이 계속 낭비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호소 건립 부지를 선정할 때 가축사육 가능 여부를 파악하는 건 상식이다. 인터넷에서 간단히 검색만 해도 확인할 수 있다”며 “보호소를 지으려고 보호소 못 짓는 땅을 사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케어의 ‘자충수’와는 별개로, 케어의 위법 행위는 ‘동물권 보장’이라는 대의 아래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접촉한 복수의 케어 출신 활동가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케어 보호소의 열악한 실태를 문제 삼았다.

케어에서 나온 뒤에도 한동안 케어 산하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는 한 활동가는 “사람들이 개 농장보다 보호소에 더 호의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 안에 있는 아이들(동물)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보호소 쪽이 훨씬 좋을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런데 케어 보호소의 아이들 처우는 개 농장에 갇혀 있던 시절에 비해 나아졌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시설부터 관리까지 모든 게 너무 열악하다”며 “간판 떼고 보면 (여기가)개 농장인지, 보호소인지 구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호된 공익이 없는데 어떻게 위법 사항을 눈감아 주겠느냐”고 되물었다.

케어 보호소의 열악한 환경은 이미 수년 전에도 지적된 바 있다. 박 전 대표의 무단 안락사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함께 도마에 올랐다. 턱없이 낮은 위탁 비용, 배정 예산 대비 초라한 시설 등이 주된 비판거리였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케어 보호소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요시사>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케어 보호소를 드나든 이들이 촬영한 보호소 내부 사진 수십장을 확보했다. 이를 기반으로 충주와 홍성 보호소는 물론, 동두천에 위치한 위탁보호소 내부 상황도 파악할 수 있었다.

장기간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것으로 의심되는 동물 사진이 대다수였다. 길고 떡져 오래된 솜처럼 뭉친 털과 걸을 때 방해될 정도로 자란 발톱은 예사다. 피부염과 교상 등이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이는데도, 마땅한 치료 없이 방치된 듯한 사례도 여럿이었다. 이끼와 진흙 범벅인 바닥에 온몸이 더럽혀진 모습도 보였다.

비공개
보호소

케어 보호소에선 유독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되는 개 시신이 많았다. 무리한 합사가 주된 원인이었다. 이미 수년 전 알려진 대로 박 전 대표는 새로운 구조활동에 나설 때마다 보호소에 안락사와 합사를 지시했다. 새로운 개들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개들에게는 어느 쪽이든 죽는 길이었다. 순화 교육이 미처 이뤄지지 않은 개들도 마구잡이로 합사됐다. 개들은 허술한 관리 아래 서로를 물어 죽였다. 성별 구분 없이 함께 밀어 넣은 탓에 종종 임신하는 개들도 생겨났다. 

사건이 터진 뒤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2019년 12월29일, 충주 보호소에서 개 한 마리가 또다시 물려 죽었다. 얼마 전 박 전 대표가 자유롭게 풀어놓은 개들이 서로를 공격한 것이다. 해당 소식을 접한 박 전 대표의 첫마디는 “낮에 이랬다고요? XX놈들”이었다.

이는 검찰이 박 전 대표를 동물보호법 위반 등 6개 혐의로 기소한 지 불과 이틀 뒤 벌어진 일이다.

활동가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보호소 속 개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줄곧 방치됐다. 동물 사체는 보호소 속 냉동창고로 옮겨졌다. 사체를 감싼 비닐이나 이불이 사체에 엉겨 붙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들은 냉동창고를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돈이다. 사체를 처리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어가다 보니, 처리를 미루고 냉동창고에 쌓아둔다. 지난해 동두천 보호소 냉동창고에선 사체 한 구가 후원받은 간식 상자 아래에 깔린 채로 발견됐다. 이를 발견한 활동가가 보호소장에게 항의하자, 소장은 “사체 처리비를 제때 주지 않는 케어 운영진에게 따져라”고 받아쳤다. 

떳떳하지 않으니 문을 열어둘 수도 없다. 케어는 해당 보호소 3곳을 사실상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다. 케어 후원자는 물론 활동가들도 정기적인 출입이 어렵다.

지난해 <일요시사>는 정확한 내부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한 후원자의 동두천 보호소 방문에 동행했다. 그는 케어의 오랜 후원자이지만, 보호소에 한 번 방문하기 위해 수년간 운영진을 설득했다고 한다. 내부 상황은 앞서 입수한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끼와 진흙이 가득했던 바닥만은 깨끗했다. 외부인이 온다고 급히 치운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견사 내·외부의 거미줄 등은 제대로 정리하지도 않았다.

열악한 보호소, 수년 전에도 입방아
“달라진 것 없어…처참한 죽음 계속”

수년 간의 설득 끝에 얻어낸 견학 시간은 채 30분도 되지 않았다. 보호소 내부를 자유롭게 살펴볼 수도 없었다. 보호소장이 집요하게 따라붙어 미리 정해둔 듯한 동선으로 유도했고, 보호소의 외국인 노동자와는 끊임없이 눈이 마주쳤다.

동행한 후원자는 결국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열했다. 그는 “말로만 들었는데 이 정도로 열악한 줄은 몰랐다. 집에서 데리고 있을 여건이 안 돼 ○○(개인 후원하는 개 이름)를 저기 맡겨둔 건데, 그동안 힘들게 지냈을 걸 생각하니 너무 죄스럽다”고 털어놨다.

케어 보호소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우선 보호소 상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케어 보호소들은 주로 소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관리한다. 그런데 이들이 동물 보호 업무의 전문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보니, 자원봉사자의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보호소에 들어갈 수 있는 봉사자들은 극히 소수다. 보호소 내부 사정을 보고도 함구할 정도로 ‘검증’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통상 노동자·동물 등 보호소 식구들과 오랜 유대감을 쌓아온 케어의 전·현직 활동가들이 비정기적인 봉사활동에 나선다. 또 긴 시간 봉사활동이 이뤄지지 않을 때마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사진과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부족한 인력과 전문성, 그리고 폐쇄성이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형태다. 케어의 보호소 관리가 유독 미진한 이유는 충분한 예산을 투입하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단적인 예로, 케어는 동두천 보호소에 개를 한 마리 위탁할 때마다 월 5만원 안팎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는 통상적인 ‘시세’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일요시사>가 복수의 동물권 단체에 문의한 결과, 평균적인 보호소 위탁비는 대형견 기준 월 20만원 안팎이다.

위탁 보호소 이용 경험이 있는 동물권 단체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위탁비로 월 5만원을 지급하면 (위탁 동물에게)최소한의 여건도 보장해주기 어렵다. 위탁 보호소 측이 필수적인 미용, 의료행위조차 거부할 수 있다. 이들 입장에서도 남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운영진의 무관심도 보호소 여건 개선의 걸림돌이다. 케어 출신 활동가들에 따르면 박 전 대표와 김 대표를 비롯한 대표·이사진은 보호소를 잘 찾지 않는다. “1년에 1~2번 방문해 사진을 찍는 게 전부”라는 비판 섞인 목격담도 나왔다.

연락 거부
답변 거절

<일요시사>는 케어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케어 홈페이지에 기재된 사무실 주소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케어 사무실은 보이지 않았다. 내부 상황을 봤을 때 리모델링 중인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일요시사>는 김 대표와 유선상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1일, 김 대표는 다른 기자 전화기로 건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내 김 대표는 “전화하지 말라”며 대차게 전화를 끊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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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단독] 한의대 졸업준비위 ‘강제 가입’ 논란

[일요시사 취재1팀] 안예리 기자 = 전국 한의과대학교에는 ‘졸업준비위원회’가 존재한다. 말 그대로 졸업 준비를 위해 학생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조직이다. 하지만 내부에서는 “명목상 자발적인 가입을 독려하는 듯하지만 실질적으로는 강제로 가입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졸업준비위원회(이하 졸준위)는 졸업앨범 촬영, 실습 준비, 학번 일정 조율, 학사 일정과 실습 공지, 단체 일정뿐 아니라 국가시험(이하 국시) 대비를 위한 각종 자료 배포를 하고 있다. 매 대학 한의대마다 졸준위는 거의 필수적인 조직이 됐다. 졸준위는 ‘전국한의과대학졸업준비협의체(이하 전졸협)’라는 상위 조직이 존재한다. 자료 독점 전졸협은 각 한의대 졸업준비위원장(이하 졸장)의 연합체로 구성돼있으며, 매년 국시 대비 자료집을 제작해 졸준위에 제공한다. 대표적으로 ‘의텐’ ‘의지’ ‘의맥’ ‘의련’ 등으로 불리는 자료집들이다. 실제 한의대 학생들에게는 ‘국시 준비의 필수 자료’로 통한다. 국시 100일 전에는 ‘의텐’만 보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학생들 사이에서는 “졸준위가 없으면 국시 준비 자체가 어려워진다”는 말이 정설이다. 한의계 국시는 직전 1개년의 시험 문제만 공개되기 때문에 시험 대비가 어렵기 때문이다. 국시 문제는 오직 졸준위를 통해서만 5개년분 열람이 가능할뿐더러, 이 자료집은 공개자료가 아니라서 학생이 직접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실상 전졸협이 자료들을 독점하고 있는 셈이다. 이 자료집을 얻을 수 있는 경로는 단 하나, 졸준위를 결성하는 것이다. 졸준위가 학생들의 투표로 결성되면 전졸협이 졸준위에 문제집을 제공한다. 이 체계는 오랫동안 유지돼왔고, 학생들도 졸준위를 통해 시험 자료를 제공 받는 것이 ‘관행’처럼 받아들여왔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반드시 결성돼야만 한다는 기조가 강하다. 학생들의 반대로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시 전졸협은 해당 학교에 문제를 제공하지 않기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은 모든 학생들의 가입 동의를 얻어야 가능하다. 졸준위 가입 여부는 실질적으로 선택이 아니다. 자료집은 전졸협을 통해서만 제공되기 때문에, 졸준위에 가입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받는다는 인식이 학생들 사이에서 강하게 자리 잡았다. 학생들은 “문제를 얻기 위한 목적이 가장 크다”고 말한다. 졸준위가 결성되지 않을 경우 현실적으로 문제집을 받아볼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졸준위는 학생들의 해당 학년 학생들을 모두 가입시키는 것이 목적이다. 실제 한 대학교에서는 졸준위 결성을 위한 투표를 진행했는데 익명도 아닌 실명 투표로 진행됐다. 처음에는 익명으로 진행했지만 반대자가 나오자 실명 투표로 전환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는 반대 의견이 나오기 어렵다. 실명으로 투표가 진행되는 데다, 반대표를 던질 경우 이후 자료 배포·학년 일정에 불이익이 있을 수 있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졸준위 결성, 실명 투표로 진행 가입시 200만원 이상 납부 필수 문제는 이 졸준위 가입이 무료가 아니라는 점이다. 졸준위에 가입하면 졸업 준비 비용(이하 졸비) 명목으로 학생들에게 돈을 걷는데, 그 비용이 상당하다. <일요시사> 취재 결과 한 대학교의 졸비는 3차에 걸쳐 납부하도록 했는데 1차에 75만원, 2차에 80만원, 3차에 77만원 등 총 232만원 수준이었다. 이는 한 학기 등록금에 맞먹는 금액이다. 금액 산정 방식은 졸준위 가입 학생 수에 따라 결정되는데, 한 명이라도 빠지게 되면 나머지 인원의 비용 부담이 커지게 된다. 심지어 2명 이상 탈퇴하게 된다면 졸준위가 무산될 수도 있다. 이 모든 사안은 ‘졸장’의 주도 하에 움직인다. 졸장은 학년 전체를 대변하며 전졸협과 직접 소통하는 역할을 맡는다. 실제 졸장을 선발하는 과정에서 “한 명이라도 탈퇴하면 안 된다”는 취지의 발언이 오갔을 정도다. 문제는 이뿐만이 아니다. 졸준위가 결성되면 가입한 모든 학생들은 졸준위의 통제를 받는다.<일요시사>가 입수한 한 학교의 규칙문에 따르면 졸준위는 다음과 같은 규정을 두고 있었다. ▲출석 시간(8시49분59초까지 착석 등) ▲교수·레지던트에게 개인 연락 금지 ▲지각·결석 시 벌금 ▲회의·행사 참여 의무 ▲병결·생리 결 확인 절차 ▲전자기기 사용 제한 ▲비대면 수업 접속 규칙 ▲시험 기간 행동 규칙 ▲기출·족보 자료 관리 규정 등이다. 학생들이 이 규정을 어길 시 졸준위는 ‘벌금’을 부과해 통제하고 있었다. 금액도 적지 않았다. 규정 위반 시 벌금 2만원에서 50만원까지 부과할 수 있도록 정해져 있었다. 가장 논란이 되는 부분은 병결이다. 졸준위는 병결을 인정하기 위해 학생에게 진단서 제출을 요구하고, 그 내용(질병명·진료 소견·감염 여부 등)을 직접 열람해 판단했다. 제출 병원에 따라 병결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공지도 있었다. 한 병원의 진단서가 획일적이라는 이유에서였다. 단체가 학생의 개인 의료 정보를 열람해 병결 여부를 자체적으로 결정하는 방식은 학생들 사이에서 부담과 압박으로 작용했다. 질병이 있어도 벌금이 부과될 수 있고, 병결을 얻기 위한 절차가 학습보다 더 어렵다는 말도 나왔다. 규정에 대해 문제 제기를 하면 졸준위는 대면 면담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 과정에서 3:1로 면담을 진행하는 등 학생이 위축될 수 있는 방식을 행하기도 했다. 전자기기 사용 불가 규칙 어기면 벌금도 이 같은 문제로 탈퇴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실제 A 대학 졸준위 전체 학번 회의에서 밝혀진 내용에 따르면 한 학생은 규정에 문제를 느껴 졸준위 측에 탈퇴를 의사를 밝혀왔다. 이 회의에서는 그간 탈퇴 의사를 밝힌 학생과의 카톡 대화 전문이 학생들에게 공개됐다. 공개된 카톡 내용에는 탈퇴 과정이 담겨있었는데 순탄하지 않았다. 졸준위 측은 탈퇴 의사를 즉각적으로 승인하지 않았고, 재고를 요청하거나 면담하는 방식으로 요청을 지연했다. 해당 학생이 다시 한번 탈퇴 의사를 명확히 밝힌 뒤에도, 졸장은 “만나서 얘기하자”며 받아주지 않았다. 심지어는 이 대화를 공개한 뒤 학우들에게 ‘졸준위에서 이탈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서약서를 받아내기도 했다. 졸준위 운영이 조직 이탈 자체를 문제로 판단하고, 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압박을 가한 정황이 확인되는 대목이다. 해당 학우는 탈퇴 확인 및 권리 포기 동의서에 서명한 뒤에야 졸준위를 탈퇴할 수 있었다. 탈퇴 이후에도 갈등은 지속됐다. 목격자에 따르면 시험 기간 중, 강의실 앞을 지나던 탈퇴 학생은 졸준위 임원 두 명에게 “제보가 들어왔다”며 불려 세워졌다. 임원들은 이 학생이 학습 플랫폼 ‘퀴즐렛’을 사용한 점을 언급하며, 그 자료 안에 졸준위에서 배포한 기출문제가 포함돼있는지를 확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후, 졸준위에서는 퀴즐렛에 학교 시험 내용이 있다며 탈퇴자가 보지 못하도록 사용자를 색출하기도 했다. 한편, 전졸협은 10년 전 자체 제작한 문제집으로 논란된 적이 있다. 당시 한의사 국가고시 시험문제가 학생들 사이에서 사용되는 예상 문제집과 지나치게 유사하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경찰이 수사에 착수했다. 시험이 끝난 직후 시험장 앞에서 수험생 60여명을 상대로 참고서와 문제집을 압수했고, 국가시험원까지 압수수색해 기출문제와 대조 작업에 들어갔다. 기형적 구조 문제가 된 교재는 ‘의맥’ ‘의련’ 등 졸준위 연합체인 전졸협이 제작·배포해 온 자료들이다. 학생들은 교재에 일련번호를 붙이고 신분증을 확인한 후 배포하는 등 통제된 방식으로 유통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제보자는 “학생들이 전졸협을 통해서만 기출문제를 구할 수 있는 구조는 기형적”이라며 “국가고시를 위해 몇백만원씩 돈을 받고 문제를 제공하는 건 문제를 사고파는 것”이라고 말했다. <imsharp@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