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국내 3대 동물권 단체 ‘케어’ 보호소 비참한 현실

더러운 개농장과 다를 것 없는데…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케어의 ‘내로남불’식 잣대는 유별나다. 같은 법을 어겼지만 남의 개 농장은 철폐 대상, 자신들 보호소는 수호 대상이다. 개 농장에서 개가 죽으면 학대지만, 보호소에서 죽으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더군다나 케어에게 구조‘당한’ 동물 중 일부는 구조 이후에도 비참한 삶만 살다 떠난 것으로 드러났다. 면죄부는 아무나 받을 수 있는 게 아니다. 입맛대로 재단한 ‘공익’ 아래 ‘셀프 부여’할 수 있는 건 더더욱 아니다. 

‘와치독’은 2021년 여름, 정식으로 결성된 케어 산하의 개 농장 철폐 조직이다. 이들의 목표는 전국의 모든 개 농장을 문 닫게 하는 것. 무허가 개 농장, 불법 도살 등을 자행하는 불법 개 농장뿐만 아니라 동물보호법 위반 소지가 없는 개 농장 역시 이들에겐 ‘타도 대상’이다. 

똥 묻은 개
겨 묻은 개

케어와 와치독은 “모든 개 농장이 동물 학대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다른 동물권 단체들도 개 식용 반대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서지만, 대부분의 개 농장 철폐 시도는 불법 개 농장에 국한된다. 관련 규정을 모두 준수하는 개 농장은 없앨 근거가 마땅치 않은 탓이다. 이보다 더 과격한 활동 목표를 내건 와치독의 후원 규모는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케어 출신 활동가들은 “과거 ‘무단 안락사 사태’로 부침을 겪던 케어가 와치독 결성을 계기로 반등에 성공했다”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김영환 케어 대표는 지난해 3월 열린 총회서 “회원이 늘었다. 이대로라면 연말쯤 케어가 정상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와치독은 결성 직후부터 케어를 떠받치는 핵심 축으로 자리 잡은 모양새다. 이를 방증하듯 케어의 전·현직 대표와 이사 등은 스스로 ‘와치독 기획자’ 자리에 올라 적극적으로 활동에 참여 중이다. 와치독이라고 해서 없는 문제를 새로 만들어낼 수는 없다.

대신 이들은 일종의 ‘우회 공격’을 통해 개 농장을 사냥한다. 이들은 개 농장이 위치한 땅·건물에 넣어볼 수 있는 모든 민원을 마구잡이로 제기한다.

<일요시사>는 와치독이 국민신문고를 통해 한 지자체에 보낸 민원서 원문을 확보했다. 와치독은 한 개농장 주소를 특정한 뒤 ▲건축법 ▲국토계획법 ▲농지법 ▲동물보호법 ▲폐기물관리법 ▲사료관리법 ▲가축분뇨법 ▲액화석유가스법 ▲물환경보전법 ▲하수도법 ▲지방세법 위반 여부를 판단, 처분을 요구했다. 

민원 답변에 따르면 해당 농장에선 동물보호법, 가축분뇨법 등에 관한 위반사항이 발견되지 않았다. 하지만 가스·수도·재산세 법 위반을 이유로 행정처분이 예고됐다. 

와치독은 이 같은 주객전도적 상황도 개의치 않는다. 어떤 ‘빈틈’이라도 포착하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진다. 와치독은 지자체에겐 엄한 행정처분을 내리라고 압박하고, 개 농장주에겐 “계속 버티면 막대한 벌금을 내야 할 것”이라며 폐업을 종용한다. 지난달 와치독은 후원자들에게 “지난해 개농장 218곳을 타격했다”고 보고했다.

물론 와치독의 이 같은 행보가 상식과 동떨어져 보일 수는 있다. 다만 이를 문제 삼기는 어렵다. 부차적인 내용이라 할지라도 위법 사항은 조속히 개선돼야 한다는 게 상식이다. 

진짜 문제는 케어와 와치독의 ‘이중잣대’다. 케어가 직접 운영하는 보호소들은 각종 위법 사항들을 안은 채 수년째 운영 중이다. 와치독 활동 경험이 있는 한 동물권 활동가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만약 와치독이 케어 보호소를 친다면 즉시 문을 닫아야 할 것”이라고 비꼬았다.


이외에도 동물권 활동가 다수가 케어 보호소의 위법 요소를 지적했다.

<일요시사>는 케어 직영 보호소 두 곳의 위법 사항을 직접 살펴봤다. 이때 ‘와치독이 케어를 치는’ 상황을 상정하기 위해 와치독의 민원서 양식을 그대로 차용했다. 문맥을 고려한 최소한의 수정을 거친 뒤 케어 보호소 주소를 적어넣었다. 민원서 분량은 A4용지 2페이지를 가뿐히 채웠다.

<일요시사>는 지난해 말 각 지자체로부터 답변을 받았다. 이들 설명에 따르면 충북 충주시와 충남 홍성군에 위치한 케어 보호소 두 곳은 모두 건축법과 농지법을 위반해 꾸준히 행정처분을 받아왔다. 이에 더해 충주시는 충주 보호소가 가축분뇨법까지 위반 중이라고 알려왔다.

불법 현장 사냥…확인해보니 ‘내로남불’
각종 위법·행정처분 폭탄 “방법이 없다”

케어는 보호소를 지을 수 없는 곳에 보호소 건축을 강행했다. 현행법상 농지 소유자는 농지를 농업용으로만 활용해야 한다. 농지를 허가 없이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건 ‘농지 불법전용 행위’로 명명된 금지사항이다.

같은 맥락에서 농지에는 건축물을 세울 수 없다. 일명 ‘농막’이라 불리는 작은 휴게시설을 제외하고는 천장이 막힌 건축물이 존재하는 것 자체가 불법이다. 하지만 케어는 건축법을 수차례 위반했다. 케어는 과거 충주 보호소에서 위반건축물이 적발된 뒤 이행강제금 부과 직전에 시정한 바 있다.

하지만 지난해 말 충주시 현장점검에서 또다시 위반건축물 2~3동이 발견됐다. 

설령 두 보호소 부지가 농지가 아니라고 해도, 케어는 보호소를 지을 수 없었다. 두 땅 모두 가축사육 제한구역이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국토 대부분은 가축사육 제한구역이다. 물론 케어와 와치독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들은 불과 지난달에도 케어 홈페이지 공지사항에서 “개 농장을 없애면 다시는 회복되지 않는다”고 주장한 뒤 근거로 가축사육 제한구역을 언급했다.

일단 개 농장을 없애면 옮겨갈 곳을 찾기 어렵다는 이야기다. 

와치독 활동이 본격화된 뒤에도, 케어는 “위법 사항을 시정하라”는 지자체 권고를 줄곧 무시해왔다. 이에 각 지자체는 케어에 이행강제금 부과, 폐쇄 명령, 고발 등 각종 행정처분으로 대응 중이다.

특히 충주 보호소는 2017년 처음 행정처분이 내려진 이래로 꾸준히 시설 폐쇄 및 퇴거 요구가 이어지고 있다. 케어 측은 충주시에 “보호소 이전 부지가 확보되는 대로 나가겠다”며 폐쇄 명령 이행기간 연장을 신청했다. 하지만 케어는 보호소를 옮기지 않았다.

충주시는 “폐쇄 노력이 보이지 않는다”며 폐쇄 명령을 재개했고, 케어는 2021년 4월과 지난해 6월 연이어 내려진 폐쇄 명령에 모두 불응했다.


수년간 법을 어겨온 대가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충주시는 박소연 전 대표를 농지법 위반으로, 김 대표를 가축분뇨법 위반으로 각각 고발했다. 아울러 박 전 대표는 충주 보호소 부지 문제로 이행강제금 4000만원을 부과받았다.

도긴개긴
동물 방치

박 전 대표는 압류를 막기 위해 이행강제금을 한 달에 200만원씩 분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충주시는 박 전 대표에게 이행강제금을 추가 부과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케어가 위법 사항을 조속히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사실 케어는 수년 전부터 보호소 이전을 추진해왔다. 이를 위해 케어는 2021년 충청권 모처에 김 대표 명의로 부지를 매입했다. 하지만 케어는 이곳에도 보호소를 지을 수 없었다. 이곳 역시 가축사육 제한구역이기 때문이다.

케어는 관할 지자체에 보호소 건립 허가를 수차례 요구했지만, 끝내 반려당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와 관련해 한 동물권 활동가는 <일요시사>에 “결국 부지 매입도, 이행강제금 납부도 후원금으로 하지 않겠느냐”며 “운영진 역량 부족 때문에 후원금이 계속 낭비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보호소 건립 부지를 선정할 때 가축사육 가능 여부를 파악하는 건 상식이다. 인터넷에서 간단히 검색만 해도 확인할 수 있다”며 “보호소를 지으려고 보호소 못 짓는 땅을 사는 게 말이 되는 일이냐”고 꼬집었다.

그렇다면 케어의 ‘자충수’와는 별개로, 케어의 위법 행위는 ‘동물권 보장’이라는 대의 아래 면죄부를 받을 수 있을까? <일요시사>가 접촉한 복수의 케어 출신 활동가들은 “절대 그럴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케어 보호소의 열악한 실태를 문제 삼았다.

케어에서 나온 뒤에도 한동안 케어 산하 보호소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는 한 활동가는 “사람들이 개 농장보다 보호소에 더 호의적인 이유는 간단하다. 그 안에 있는 아이들(동물)의 상황을 상상해보면, 보호소 쪽이 훨씬 좋을 것이란 기대가 있기 때문”이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런데 케어 보호소의 아이들 처우는 개 농장에 갇혀 있던 시절에 비해 나아졌다고 단언하기 어렵다. 시설부터 관리까지 모든 게 너무 열악하다”며 “간판 떼고 보면 (여기가)개 농장인지, 보호소인지 구별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보호된 공익이 없는데 어떻게 위법 사항을 눈감아 주겠느냐”고 되물었다.

케어 보호소의 열악한 환경은 이미 수년 전에도 지적된 바 있다. 박 전 대표의 무단 안락사 논란이 불거졌을 때 함께 도마에 올랐다. 턱없이 낮은 위탁 비용, 배정 예산 대비 초라한 시설 등이 주된 비판거리였다. 4년이 지난 지금도, 케어 보호소의 풍경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일요시사>는 2019년부터 지난해까지 케어 보호소를 드나든 이들이 촬영한 보호소 내부 사진 수십장을 확보했다. 이를 기반으로 충주와 홍성 보호소는 물론, 동두천에 위치한 위탁보호소 내부 상황도 파악할 수 있었다.

장기간 제대로 관리받지 못한 것으로 의심되는 동물 사진이 대다수였다. 길고 떡져 오래된 솜처럼 뭉친 털과 걸을 때 방해될 정도로 자란 발톱은 예사다. 피부염과 교상 등이 육안으로도 확연히 보이는데도, 마땅한 치료 없이 방치된 듯한 사례도 여럿이었다. 이끼와 진흙 범벅인 바닥에 온몸이 더럽혀진 모습도 보였다.

비공개
보호소

케어 보호소에선 유독 온몸이 피투성이가 된 채로 발견되는 개 시신이 많았다. 무리한 합사가 주된 원인이었다. 이미 수년 전 알려진 대로 박 전 대표는 새로운 구조활동에 나설 때마다 보호소에 안락사와 합사를 지시했다. 새로운 개들이 들어올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개들에게는 어느 쪽이든 죽는 길이었다. 순화 교육이 미처 이뤄지지 않은 개들도 마구잡이로 합사됐다. 개들은 허술한 관리 아래 서로를 물어 죽였다. 성별 구분 없이 함께 밀어 넣은 탓에 종종 임신하는 개들도 생겨났다. 

사건이 터진 뒤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다. 2019년 12월29일, 충주 보호소에서 개 한 마리가 또다시 물려 죽었다. 얼마 전 박 전 대표가 자유롭게 풀어놓은 개들이 서로를 공격한 것이다. 해당 소식을 접한 박 전 대표의 첫마디는 “낮에 이랬다고요? XX놈들”이었다.

이는 검찰이 박 전 대표를 동물보호법 위반 등 6개 혐의로 기소한 지 불과 이틀 뒤 벌어진 일이다.

활동가들의 증언을 종합하면, 보호소 속 개들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줄곧 방치됐다. 동물 사체는 보호소 속 냉동창고로 옮겨졌다. 사체를 감싼 비닐이나 이불이 사체에 엉겨 붙을 정도로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들은 냉동창고를 벗어날 수 없다.

문제는 돈이다. 사체를 처리하는 데에도 비용이 들어가다 보니, 처리를 미루고 냉동창고에 쌓아둔다. 지난해 동두천 보호소 냉동창고에선 사체 한 구가 후원받은 간식 상자 아래에 깔린 채로 발견됐다. 이를 발견한 활동가가 보호소장에게 항의하자, 소장은 “사체 처리비를 제때 주지 않는 케어 운영진에게 따져라”고 받아쳤다. 

떳떳하지 않으니 문을 열어둘 수도 없다. 케어는 해당 보호소 3곳을 사실상 ‘비공개’로 운영하고 있다. 케어 후원자는 물론 활동가들도 정기적인 출입이 어렵다.

지난해 <일요시사>는 정확한 내부 실태를 확인하기 위해 한 후원자의 동두천 보호소 방문에 동행했다. 그는 케어의 오랜 후원자이지만, 보호소에 한 번 방문하기 위해 수년간 운영진을 설득했다고 한다. 내부 상황은 앞서 입수한 사진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만 이끼와 진흙이 가득했던 바닥만은 깨끗했다. 외부인이 온다고 급히 치운 기색이 역력했다. 심지어 견사 내·외부의 거미줄 등은 제대로 정리하지도 않았다.

열악한 보호소, 수년 전에도 입방아
“달라진 것 없어…처참한 죽음 계속”

수년 간의 설득 끝에 얻어낸 견학 시간은 채 30분도 되지 않았다. 보호소 내부를 자유롭게 살펴볼 수도 없었다. 보호소장이 집요하게 따라붙어 미리 정해둔 듯한 동선으로 유도했고, 보호소의 외국인 노동자와는 끊임없이 눈이 마주쳤다.

동행한 후원자는 결국 서울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오열했다. 그는 “말로만 들었는데 이 정도로 열악한 줄은 몰랐다. 집에서 데리고 있을 여건이 안 돼 ○○(개인 후원하는 개 이름)를 저기 맡겨둔 건데, 그동안 힘들게 지냈을 걸 생각하니 너무 죄스럽다”고 털어놨다.

케어 보호소가 안고 있는 문제는 한둘이 아니다. 우선 보호소 상주 인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케어 보호소들은 주로 소수의 외국인 노동자들이 관리한다. 그런데 이들이 동물 보호 업무의 전문성을 지닌 것도 아니다 보니, 자원봉사자의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대로, 보호소에 들어갈 수 있는 봉사자들은 극히 소수다. 보호소 내부 사정을 보고도 함구할 정도로 ‘검증’된 사람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활동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통상 노동자·동물 등 보호소 식구들과 오랜 유대감을 쌓아온 케어의 전·현직 활동가들이 비정기적인 봉사활동에 나선다. 또 긴 시간 봉사활동이 이뤄지지 않을 때마다 <일요시사>가 확보한 사진과 같은 일들이 반복된다는 주장도 나왔다.

부족한 인력과 전문성, 그리고 폐쇄성이 악순환으로 이어지는 형태다. 케어의 보호소 관리가 유독 미진한 이유는 충분한 예산을 투입하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단적인 예로, 케어는 동두천 보호소에 개를 한 마리 위탁할 때마다 월 5만원 안팎을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이는 통상적인 ‘시세’에 턱없이 미치지 못하는 금액이다. <일요시사>가 복수의 동물권 단체에 문의한 결과, 평균적인 보호소 위탁비는 대형견 기준 월 20만원 안팎이다.

위탁 보호소 이용 경험이 있는 동물권 단체 관계자는 <일요시사>에 “위탁비로 월 5만원을 지급하면 (위탁 동물에게)최소한의 여건도 보장해주기 어렵다. 위탁 보호소 측이 필수적인 미용, 의료행위조차 거부할 수 있다. 이들 입장에서도 남는 게 없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운영진의 무관심도 보호소 여건 개선의 걸림돌이다. 케어 출신 활동가들에 따르면 박 전 대표와 김 대표를 비롯한 대표·이사진은 보호소를 잘 찾지 않는다. “1년에 1~2번 방문해 사진을 찍는 게 전부”라는 비판 섞인 목격담도 나왔다.

연락 거부
답변 거절

<일요시사>는 케어 측 입장을 듣기 위해 케어 홈페이지에 기재된 사무실 주소로 향했다. 하지만 그곳에 케어 사무실은 보이지 않았다. 내부 상황을 봤을 때 리모델링 중인 것으로 추정됐다. 결국 <일요시사>는 김 대표와 유선상 연락을 시도했지만 닿지 않았다. 

그러던 지난 1일, 김 대표는 다른 기자 전화기로 건 연락을 받았다. 하지만 기자가 신분을 밝히자, 짧은 정적이 흘렀다. 이내 김 대표는 “전화하지 말라”며 대차게 전화를 끊었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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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