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3대 동물권 단체 ‘케어’ 후원금 목매는 속사정

‘자업자득 적자’ 피하려 기부 장사

[일요시사 취재1팀] 남정운 기자 = 이제 케어는 동물들의 생존이 아닌, 자신의 생존을 위해 후원금을 긁어모은다. 후원금을 걷기 위해서라면 허위 모금을 하고, 타 단체의 활동 실적을 뺏어 오는 일에도 거리낌이 없다. 모두 ‘업보 청산’을 위해서다. 무리한 구조-밀어내기식 안락사의 순환으로 유지되던 균형이 깨지자, 케어 보호소를 가득 채운 동물들은 막대한 고정 지출 부메랑이 돼 돌아왔다. 

“그 C 이사가 구조한 애가 있는데 (부상이)완전 심하다. 그래서 모금이 잘될 것 같다. 그래서 모금이 잘되면 케어도 좀 갖고, 뭐 일부 또 주고 이러면 되지 않겠냐 그래서(중략)… 일단 뭐 모금이 고양이가 요즘 잘되긴 하는데.” 2021년 4월, 박소연 전 대표는 당시 케어 회계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이같이 말했다. 박 전 대표는 한 고양이를 위한 모금액을 두고 ‘치료’보다 ‘분배’를 먼저 입에 올렸다.

치료보다 
분배 먼저?

‘인영이’는 발견 당시 하반신 피부에 큰 상처를 가지고 있는 고양이었다. 인영이는 케어 C 이사가 따로 운영하는 D 고양이 보호단체가 길고양이 중성화사업(TNR)을 위해 설치한 포획 틀 안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인영이 치료를 위한 모금이 열린 곳은 D 단체가 아닌 케어였다. 

당시 박 전 대표가 회계담당자에게 설명한 바에 따르면, C 이사는 케어 측에 “자신의 D 단체는 돈이 필요 없으니, 케어가 모금해 후원금을 모두 가져라”는 뜻을 전했다. 케어 운영진과 C 이사는 논의 끝에 후원금을 반씩 나누기로 합의했다.

이달 케어는 “인영이의 몸이 회복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게시글을 올렸다. “튀김을 만든 끓는 기름에 들어갔다 나왔다고 생각하면 딱 맞을 것”이라는 수의사 소견도 인용했다.


약 석 달 뒤 인영이 근황 사진을 공유하며 재차 후원을 독려하기도 했다. 인영이 앞으로 모인 후원금은 대략 540만원. 앞서 합의한 대로, 케어와 C 이사는 이를 270만원씩 나눠 가졌다. 

케어는 인영이를 돌본 적이 한 번도 없다. 인영이는 구조된 이래로 계속 D 단체서 치료받았다. 케어는 D 단체가 제공한 사진과 동영상을 토대로 모금 요청 게시글을 작성했을 뿐이다. 

이는 일종의 공동모금, 대리 모금으로 인정받기도 어렵다. 당시 케어 회계담당자 증언에 따르면 케어는 자신들 몫으로 분배한 후원금을 인영이를 위해선 한 푼도 쓰지 않았다. 또한 현행법상 대상을 밝히지 않은 ‘대리 모금’ 행위는 불법이다.

하지만 케어의 게시글에는 ‘인영이는 케어가 직접 보호하고 있지 않다’거나 ‘모금액 중 일부를 타 단체와 나눌 예정’ 등과 같은 상황 설명이 없다.

결과적으로 비교적 영세한 D 단체의 모금활동을 케어가 대행해주고, 수수료로 모금액 절반을 떼간 모양새다. 동물권 활동가 사이에서는 케어가 사실상 허위 모금을 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케어와 D 단체의 ‘부당거래’ 때문에, 인영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이중생활을 시작했다. 한 고양이를 두고 케어는 인영이, D 단체는 ‘도리’라고 불렀다. 허위 모금이 발각될 때를 대비해 서로 다른 이름으로 부른 게 아니냐는 의심이 나올만한 대목이다.

실제로 2021년 8월 말, 한 D 단체의 한 활동가는 자신의 SNS에 “4월에 입소한 길천사 도리”라는 글과 함께 치료 중인 고양이 사진을 게시했다. 이 고양이는 케어의 인영이와 무늬 상처 부위가 일치했다. 심지어 사용 중인 물건의 색깔과 디자인마저 모두 같았다. 


돈을 나눠 가진 과정도 매끄럽지 않았다. C 이사는 2021년 8월 당시 회계담당자에게 병원비와 위탁비 명목으로 278만원을 요구했다. 이에 담당자는 회계 처리를 위해 C 이사에게 병원 청구서 등 지출 증빙자료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대신 C 이사는 “안면이 있는 병원에서 진료비를 할인받았는데, 청구서를 끊으면 세금 문제로 비용이 할인 없이 청구될 것”이라며 “위탁·검사·수술을 일임한 것으로 해서 D 단체에 비용을 일괄 지급하라. 내 사업자 명의로 전자계산서를 발행해주겠다”고 제안했다.

담당자는 진료비를 병원에 직접 지급하는 걸 한사코 거부하는 C 이사를 수상히 여겼다. 결국 “돈을 달라”는 C 이사와 “함부로 줄 수 없다”는 회계담당자 사이에 설전이 벌어졌다.

몰래 ‘대리 모금’ 짬짜미…나눠 가져 
도살장 폭파? 실상은 활동 실적 뺏기 

당시 케어 내부에서 인영이 모금의 내막을 아는 이는 극히 소수에 불과했다. 이 중 반대자는 당시 회계담당자뿐이었다. 반면 박 전 대표와 C이사는 후원금 분배에 적극적이었다. 김영환 현 케어 대표는 이를 알면서도 방관했다. 

내친 김에 이들은 완전범죄를 기획했다. 양측이 모두 돈을 원하는 곳에 쓰고도 회계상 오점을 남기지 않도록, 이른바 ‘세탁’할 방법을 살핀 것이다. 

당초 이들은 ‘모금 대행’ 명목으로 돈을 나누려 했지만 실패했다. 그러자 케어는 일단 모금된 540만원 전액을 C 이사에게 지급했다. 돈이 오고 간 표면적 명분은 인영이 ‘위탁비’였다. 당시 C 이사는 회계담당자에게 “인영이를 지난 석 달간 돌봤고, 앞으로 약 석 달 더 돌봐야 할 것으로 예상되므로 6개월치 위탁비를 달라”고 요구했다.

C 이사는 위탁비로 하루 3만원, 한 달 90만원을 청구했다. 결국 6개월 위탁비는 540만원으로 인영이 모금액과 딱 맞아떨어지는 액수다.

한 달에 90만원이면 케어 단가(?)로는 개 18마리와 맞먹는 금액이다. 케어는 동두천 보호소에 개 한 마리에 5만원 남짓한 위탁비를 달마다 지급하고 있다.

회계담당자는 “위탁비가 너무 과도하다”고 반발했다. 그는 <일요시사>와의 통화에서 “인영이가 장기치료를 요하긴 했지만, 병원비는 얼마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C 이사가 ‘고양이 치료 경험이 많다’며 자가 치료를 고집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그달 중순 위탁비 지급을 완강히 반대하는 담당자를 전화로 설득하며 진땀을 흘렸다. 그는 전화 도중 “(위탁비 3만원은)말이 안 되는 이야기 아니냐” “일당 3만원이 무슨 소리냐”고 말했다. 자신 역시 위탁비 산정 기준을 납득할 수 없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하지만 김 대표는 약 1시간 뒤 회계담당자에게 “C 이사 개인계좌로 후원금을 모두 이체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C 이사는 위탁비로 540만원을 지급받았다.


C 이사는 돈을 받기 직전, 케어에 차명으로 270만원을 후원했다. 입금 내역에는 ‘와치독에만 써주세요’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케어는 와치독 후원금을 동물 구조비나 치료비 등에 보태지 않는다. 와치독 후원금은 와치독 ‘활동 지원비’라는 명목 아래 단원 인건비, 커피값 등으로 비교적 자유롭게 지출된다.

돈세탁
수법은?

케어가 모금액을 끌어올리기 위해 자극적인 표현을 고집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또 다른 동물권 활동가는 “인영이 상처가 기름에 튀겨 생겼다고 주장하지만 확실치 않다. 피부병 병변이 심해져도 상처가 저런 식으로 나타날 수 있다”면서 “모금 게시물이 올라간 뒤로 여러번 지적이 나왔지만, 끝내 단정적인 표현은 고쳐지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일요시사>는 한 수의학 교수에게 인영이 사진을 보내, 상처 발생 원인을 물었다.

익명을 요구한 해당 교수는 “일명 길고양이 환부가 외부환경에 오염된 지 오래 되면 원인 구분이 어렵다”며 “화상병변과 유사한 피부병변을 나타내는 질환은 수없이 많다. 작은 상처에 간단한 감염이 이뤄진 후 2차 손상에 노출된 경우에도 화상에 준하는 수준의 피부병변이 발생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상처 발생 원인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또 케어는 다른 동물권 단체의 활동 성과를 가로채 모금을 유도하기도 한다. <일요시사> 취재를 종합하면, 케어는 지난해 12월 지역활동가가 포착한 불법 도살 현장을 자신들이 적발·철폐한 것처럼 꾸몄다.

지역활동가 두 명은 지난해 12월 중순 경기도 모처의 개 농장에서 잠복하던 중, 불법 개 도살 현장을 포착했다. 이들은 증거 영상을 촬영한 뒤 경찰과 현장을 급습했다. 이들은 대형 단체에 지원 요청을 남겼다. 한 단체가 이에 호응하면서 사건은 며칠 만에 널리 알려졌다.

관할 지자체에는 관련 민원이 빗발쳤다. 지자체는 개 농장에 각종 행정처분을 내렸다.

지역활동가와 해당 단체는 함께 개 농장주를 설득했다. 이들은 개 농장주에게 소유권을 양도받고, 개 농장 부지에 임시 보호소를 조성해 입양 절차를 밟을 계획을 세웠다. 개 농장주 역시 이 같은 계획에 협조하겠다는 의사를 전해왔다.

당시 이들은 자유롭게 현장을 드나들면서 개들을 보살폈다. 개 농장주에게 통보한 뒤 몇몇 개와 동물병원에 다녀오기도 했다. 개 농장 폐쇄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었다. 

내가 했다?
“방해만…”

그런데 케어 A 이사와 와치독이 현장에 등장한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A 이사는 개 농장주를 만나 각종 위반사항을 열거하며 “막대한 벌금을 내고 고발될 것”이라 압박했다. 그러면서 “오는 4월까지 말미를 줄 테니 개 농장을 자진 폐쇄하라”고 요구했다.

당초 개 농장 폐쇄를 위해 노력하던 활동가와는 별다른 논의도 없었던, 케어의 일방적인 ‘돌발행동’이었다. 

불의의 공격을 받은 개 농장주는 격노했다. 결국 그는 나름의 ‘협조’를 모두 중단했다. 활동가들이 개 농장에 들어가는 것은 물론, 주변에 접근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개도, 사람도 모두 난처해진 상황이었다.

하지만 케어는 되레 자신의 SNS에 “와치독, 도살자 법률로 압박해 무릎 꿇렸다. 해당 도살장을 영구히 폭파”라고 홍보했다. 게시글 말미에는 와치독 후원을 독려하는 문구가 달렸다. 심지어 이들은 해당 게시물에서 지역활동가가 찍은 증거 영상을 출처 표기 없이 무단 활용했다.

“케어가 게시물에 ‘케어 활동가들이 현장을 적발했다’고 썼다가 은근슬쩍 지웠다”는 ‘목격담’도 나왔다.

지역활동가가 케어의 이 같은 행태를 비판하는 댓글을 남기자, 케어는 “법적으로 문제된다. 경고한다”며 해당 활동가를 위협했다.

현장 지원을 나갔던 타 단체활동가는 “이번 사건에서 케어가 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오히려 방해만 됐다”고 털어놨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케어는 게시글을 올린 뒤에도 별다른 기여를 하지 않았다. 오히려 A 이사는 지역활동가를 향해 “왜 영상을 마음대로 올려서 일을 그르치냐. 저 많은 개는 알아서 책임져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A 이사가 구속되자 케어는 현장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한바탕 소동이 벌어진 뒤, 뒷수습은 처음부터 현장에 있었던 활동가들의 몫으로 남았다. 현재 이들은 인수계약을 마치고 개들을 임시 보호 부지로 옮길 준비에 한창이다.

“안락사 못 하는 동물들 고정 지출 높여”
기부금 모집 자격도…공익단체 지정 취소

앞선 두 사례의 공통점은 케어가 자신의 역할을 허위로, 혹은 과장해 주장했다는 것이다. 이는 박 전 대표의 과거 행적과도 일맥상통한다. 박 전 대표는 2008년 사기죄로 벌금 200만원을 선고받은 바 있다. 경기 구리, 남양주시에 허위 구조 실적을 제출해 보조금을 편취한 사실이 적발된 것이다.

박 전 대표는 재판에서 “약정된 동물보다 많은 수의 동물을 구조했고, 구조일지를 잘못 작성해 보고했지만 편취 의사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대법원마저 이를 인정하지 않으면서 형이 확정됐다. 

복수의 케어 출신 활동가는 케어가 후원금 확보에 혈안이 된 이유로 ‘과도한 고정 지출’을 꼽는다. 과거 케어가 보호소 수용 능력을 넘어설 정도로 무리한 구조활동을 추진했던 게 패착이라는 지적이다. 

한 케어 출신 활동가는 “예전에는 구조활동을 무리해서 벌이는 한편 보호소에선 밀어내기식 안락사를 진행했다. 이를 통해 개체 수를 조절하면서 고정 지출 비용도 통제 범위 안에 있었다”며 “그런데 공론화 이후 안락사를 마음대로 못하게 되자 개체 수와 고정 지출이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결국 자업자득”이라고 꼬집었다.

케어가 보호 중인 동물의 입양보다 당장 이슈가 되는 동물의 구조, 입양을 우선시한다는 점 또한 문제다.

그는 “입양 적기를 놓친 아이들은 평생 케어 보호소에서 살아야 한다. 케어 입장에서도 이들은 ‘평생 고정 지출’이 되는 건데, 당장의 모금을 바라보고 구조에 먼저 나선다. 악순환이 반복되지만 끊을 생각이 없다”고 안타까워했다. 

케어가 국세청에 제출한 연간 회계보고서에 따르면, 2019년과 2020년 케어의 고정 지출은 케어의 정기회비 수익을 넘어섰다. <일요시사>가 케어의 고정 지출이라 판단한 항목은 ▲인건비 ▲단체운영비 ▲보호소 운영비 등이다.

여기에 동물 병원비·동물 관리비 세목이 상당 비율을 차지하는 ‘동물구호사업비’도 고정 지출에 포함했다. 2021년에는 고정 지출이 정기회비 수입을 밑돌았지만, 이는 보호소 운영에 들어간 비용이 전년 대비 절반 수준으로 급감한 결과다.

일각의 지적대로 현재 케어는 정기후원금만으로는 적자를 면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추정된다. 원래 ‘계획 외 수입’이 돼야 할 비정기적 모금이 단체 존속을 위한 필수 요소로 자리매김한 이유다.

케어의 기부금 모집 자격도 점차 흔들리고 있다. 앞서 케어는 미등록 계좌를 통해 기부금을 모집하다 적발돼 증여세 수천만원을 추징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지난해 2월 서울시는 케어에 ‘기부금 모집단체 등록 취소’ 처분을 내렸다. 아울러 지난해 말 기획재정부는 케어의 공익단체 지정을 취소했다. 

케어는 서울시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아울러 후원자들에겐 “비영리민간단체 케어는 수익사업을 강화하는 쪽으로 활동 방향을 전환한다”며 “기부금 영수증을 발급받기 위해선 사단법인 동물권 단체 케어 회원으로 전환해달라”고 둘러댔다.

해명 요구
연락 두절

케어는 사실상 하나의 단체가 비영리민간단체와 사단법인으로 이원화된 기형적 조직 형태를 갖고 있다. 최근 문제가 불거진 것은 단체의 주축이 되는 비영리민간단체다. <일요시사>는 관련 입장을 묻기 위해 김 대표, C 이사 등에게 연락을 시도했으나 닿지 않았다.


<jeongun15@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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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이재명 덮치는 문재인 그림자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대통령선거는 전 정부의 공과를 통째로 평가받는 시험이다. 여당 후보는 전 정부의 공이 크면 후광을 입고, 반대로 과가 많으면 핸디캡을 안고 시험장에 들어서는 셈이다. 이번 대선 정국은 대통령 탄핵으로부터 시작됐다. 야당은 5년 만에 정권을 교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잡았다. 정권 창출에 성공한 대통령은 집권 1~2년 차에 가장 강한 힘을 발휘한다. 3~4년 차에 이르면 정부 안팎서 누수가 발생한다. 빠르면 이 시기에 레임덕이 시작된다. 임기 마지막 해에는 정권 재창출을 위해 몸을 사려야 한다. 지지율에 따라 차기 대선에 끼치는 입김도 달라진다. 5년 단임제 이후 대체로 나타나던 대통령의 모습이다. 주기설 깬 집값 폭등 국회의원 선거나 지방선거가 중간 평가의 성격을 띤다면 대선은 최종 시험에 가깝다. 모든 정당의 목표가 정권 창출인 만큼 대선의 무게감은 남다르다. 행정부 수장을 넘어 국가원수로서 대통령이 갖는 권한이 그만큼 어마어마하기 때문이다. 1987년 6월 민주항쟁의 결과로 대통령직선제가 도입됐다. 국민 모두에게 투표권을 부여하고 대통령을 ‘직접’ 뽑을 수 있도록 헌법이 개정된 것이다. 대통령직선제가 정착된 이후 정권교체는 10년 주기로 이뤄졌다. 보수 진영의 노태우·김영삼정부에 이어 진보 진영의 김대중·노무현정부가 들어섰다. 이후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의 당선으로 보수 진영이 다시 정권을 잡았다. 박 전 대통령이 탄핵으로 물러난 뒤 진보 진영의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수 끝에 청와대에 입성했다. 그대로 이어지는 듯했던 ‘10년 주기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의 등장으로 깨졌다. 5년 만의 정권교체가 진보 진영에 안긴 충격은 컸다. 문 전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퇴임 전까지 40% 안팎을 오르내렸다. 지지율 10~20%대를 오가며 레임덕에 시달렸던 과거 대통령 때와는 다른 양상이었다. 그럼에도 진보 진영은 정권 재창출에 실패했다. 득표율 차이는 1%도 되지 않았다. 지난 대선서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윤 전 대통령에게 0.73%p 차이로 졌다. 대선 전 여러 여론조사에서 보여준 윤 전 대통령이 이 후보를 넉넉하게 앞선다는 결과와 비교해서는 선전이었지만 문 전 대통령의 지지율을 고려하면 충격적인 패배였다. 게다가 당시 윤 전 대통령은 선출직 출마 경험이 단 한 번도 없는 ‘초보 정치인’이었다. 대선 패배, 서울이 결정적 역할 부동산 가격이 낙선에 영향 줘 민주당에서는 대선 패배의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이 과정서 레이더망에 걸려든 게 ‘부동산’ 문제였다. 정확하게는 문재인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도마 위에 올랐다. 문정부에서는 20번이 넘는 부동산 대책이 쏟아졌다. 정부 발표가 나올 때마다 부동산시장은 널뛰었다. 실제 윤 전 대통령 승리의 쐐기를 박은 서울 표심이 부동산 정책에 영향을 받았다는 분석이 개표 직후 제기됐다. 지난 대선은 말 그대로 양 진영을 ‘쥐어짠’ 선거였다. 국민의힘과 민주당의 ‘텃밭’인 영남과 호남 지역서 총결집했다. 당락을 가른 건 서울서의 격차였다. 윤 전 대통령은 서울서 31만여표를 앞섰다. 전체 표 차이인 24만표보다 많다. 윤 전 대통령은 마포·용산·성동 등 이른바 ‘마용성’으로 불리는 지역과 광진·강동·양천 등 아파트가 밀집돼있으면서 상대적으로 소득 수준이 높은 지역서 이겼다. 구별로 따지면 25개 구 중 14곳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더 많은 표를 몰아줬다. 21대 총선 때 민주당이 4곳을 빼고 21개 구를 이긴 것과 비교하면 엄청난 선방이었다. 노원·도봉·강북 등 ‘노도강’으로 불리는 지역서도 윤 전 대통령은 선전했다. 이 지역은 민주당 지지세가 강한 곳이다. 재건축·재개발 아파트가 밀집돼있다. 승부 자체는 이 후보가 이겼지만 표 차가 근소했다. 총선 때 20% 가까이 차이 났던 게 대선에서는 1% 안팎으로 줄었다. 부동산 문제에 따른 민심이반이 뚜렷하게 드러났다는 분석이다. 완전한 실패 최악의 실정 같은 해 8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발간한 <제20대 대통령선거 분석> 자료에도 부동산이 가른 표심이 언급돼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대선에서 유권자가 관심을 가진 의제는 경제 회복과 주거 안정 등 부동산 정책이었다. 대선 전 여론조사 전문기관 한국갤럽서 조사한 대선 주요 의제 관련 설문서도 경제 회복(32%), 부동산 문제 해결(32%)이 첫손에 꼽혔다. 40~50대보다 30대서 부동산 문제에 관한 관심이 컸다. 그러면서 이 후보가 과거 민주당 후보에 비해 수도권 득표가 낮았다며 부동산 가격 상승과 관련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민주화 이후 모든 대선서 민주당 계열 후보가 국민의힘 계열 후보에게 서울서 패한 적은 2007년밖에 없었다”며 “수도권은 인구가 집중된 탓에 득표율 차이가 작더라도 득표 차는 매우 크게 나타난다. 그만큼 선거 승패에 수도권 표심의 영향이 컸다”고 설명했다. 국회입법조사처는 부동산 이슈와 득표율의 상관관계를 보기 위해 동 단위로 서울 지역의 아파트 가격을 살폈다. 아파트 가격 변동에 따른 득표율을 본 것이다. 분석 결과 2021년 아파트 가격과 2020~2021년 가격 변동이 윤 전 대통령, 이 후보의 득표율과 상관성이 높았다. 가격 변동보다는 가격 자체가 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아파트 평(3.3㎡)당 평균 가격이 높은 지역일수록, 아파트 가격 증가폭이 큰 지역일수록 윤 전 대통령의 득표율이 이 후보보다 높았다. 또 재산세 부담이 증가한 지역서 윤 전 대통령에 대한 지지가 많았다. 재산세가 늘었다는 건 그만큼 부동산 가격이 올랐다는 뜻이다. 지지율도 무용지물 민주당서 지목한 패배 원인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민주당은 대선 패배 1년 뒤인 2023년 8월 녹서(Green Paper, 정책을 제안하고 다양한 의견 수렴 과정을 담은 대화록) <민주당 재집권 전략 보고서>를 발간했다. 민주당 을지키는민생실천위원회(을지로위원회) 출범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일종의 대선 패배 ‘반성문’이었다. 민주당은 해당 보고서에서 “오락가락하는 정책으로 집값 상승을 잡지 못했다”고 짚었다. 문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보수와 진보 양 진영서 ‘실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며 그 원인을 일관성 부족에서 찾은 것이다. 그러면서 “노무현정부 부동산 정책도 부족한 것이 많았지만 선거 대패와 당내 비난에도 철학과 원칙을 버리지 않은 점은 높게 평가된다”며 “문정부는 세제 개편 이후에도 집값이 계속 상승하면서 비판에 직면하자 전반적인 세제를 완화하는 정반대 조치를 취했다”고 지적했다. 문정부는 부동산, 즉 집이 투자가 아닌 거주의 대상이라는 점을 시장에 각인시키는 데 정책 방향을 맞췄다. 당연히 투기 수요를 때려잡는 데 모든 역량이 집중됐다. 부동산으로 재산을 불리려는 세력이 많아지면서 집값이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른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이 벌어졌다. 문정부는 세금 부과, 대출 규제 등으로 돈줄을 조였다. 2017년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대출 규제 강화 등의 정책이 시행됐고 2018년에는 주택을 보유한 사람이 규제 지역서 새집을 사려 할 경우 주택담보대출을 받지 못하도록 했다. 서울 25개 구, 분당·과천·하남·세종 등이 규제 지역으로 묶였다. 규제가 심해질수록 집값은 천정부지로 뛰었다. 부동산이 ‘우상향 안전자산’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시중에 풀린 돈이 몰리고 또 몰렸다. 저가의 낡은 집 여러 채보다 고가의 좋은 집 한 채를 사자는 ‘똘똘한 한 채’ 이론도 생겨났다. ‘자고 일어나면 집값이 오른다’는 말이 돌면서 부동산 심리를 크게 자극한 것이다. 당시 ‘영끌족’ 지금은 곡소리 통계 조작으로 검찰 수사까지 부동산을 움직이는 건 ‘심리’라는 말이 있듯 너도나도 집을 사는 데 혈안이 되면서 집값이 요동쳤다. 집값이 오르는데도 수요가 있으니 계속 상승하는 구조였다. 이 과정서 ‘벼락 거지’ 등의 말이 생겨났다. 부동산 등 자산 가치가 급격하게 오르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일컫는 표현이다. 동시에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어느 정부든 출범하자마자 제일 먼저 손대는 게 부동산 정책일 정도로 우리나라 국민의 ‘집’ 사랑은 남다른 데가 있다. 문정부 역시 임기 내내 ‘집값 잡기’에 몰두했다. 하지만 끝내 실패했다. 몇몇 전문가는 문정부의 가장 큰 패착으로 부동산 정책을 꼽을 정도다. 그 여파가 대선까지 이어졌다는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후폭풍이다. 문정부 당시 ‘갭투자(전세 끼고 매수)’ 방식으로 집을 마련한 이들이 현재 파산 지경에 이르고 있다. 폭탄 돌리기를 하다가 더 버티지 못하고 폭발한 것이다. ‘영끌족’의 몰락이다. 영혼까지 끌어모아 집을 산 사람은 높아진 금리를 견디지 못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문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펴면서 통계를 조작했다는 의혹이 제기돼 수사가 진행 중이다. 당시 정책을 주도했던 대통령 비서실장, 국토교통부 장관 등은 감사원의 의뢰로 전부 수사 대상에 올라 있다. 이들은 정부 정책을 뒷받침하는 통계를 만들어내라고 통계청, 한국부동산원 등을 압박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감사원에 따르면 문정부가 통계를 조작한 횟수는 102회에 달한다. 2018년 1월부터 2021년 10월까지 일어난 일이다. 청와대와 국토교통부는 한국부동산원에 주택 가격 변동률을 하향 조정하도록 하거나 부동산 대책이 효과가 있는 것처럼 통계 수치 조정을 지시했다. 민주당은 ‘전 정권에 대한 탄압’이라면서 반발 중이다. 이번에도 이슈 될까? 이 후보와 국민의힘 김문수 후보는 재건축·재개발을 활성화해 공급을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개혁신당 이준석 후보의 공약도 비슷하다. 후보별로 차이가 미미해 이번 대선에서는 부동산 이슈가 생각보다 대망론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하지만 일부 전문가들은 문정부의 정책 후폭풍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있는 만큼 또다시 문정부에 이 후보가 발목을 잡히는 형국이 반복될 수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jsjang@ilyosis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