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일요시사 대기획> 법의학으로 본 죽음의 격차 ⑥한국 법의학계 현실

과학수사? 꿈같은 얘기하고 있네!

[일요시사 취재1팀] 장지선 기자 =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한국 법의학계를 옭아매고 있는 뫼비우스의 띠가 20여년째 끊어지지 않고 있다. 인력 부족으로 허덕이고 제도로 들어가면 ‘주변인’에 불과한 신세다. 과학수사의 중심이라고 치켜세우지만 한꺼풀만 벗기면 결국 ‘마이너’라는 말이 나온다. 한국 법의학계의 딜레마, 인력 충원이냐 아니면 제도 개선이냐.

죽음의 순간 어떤 상황에 있었는지에 따라 후속 절차가 달라진다. 병원에서 사망하면 대개 병사로 처리된다. 병사일 경우 의사가 사망진단서를 발급하면 곧바로 장례를 치를 수 있다. 반면 변사는 절차가 복잡하다. 먼저 경찰이 개입하고 필요하면 검찰과 법원이, 더 나아가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하 국과수)이 등장한다. 

변사 처리
허점 있다

경찰청 훈령 ‘변사사건 처리규칙’에는 변사를 ‘원인이 분명하지 않은 죽음’이라 정의하고 있다. 세부적으로 ▲범죄와 관련됐거나 범죄가 의심되는 사망 ▲자연재해·교통사고·안전사고·산업재해·화재·익사 등 사고상 사망 ▲극단적 선택이나 극단적 선택을 했다는 의심이 드는 사망 ▲연행·구금·신문 등 법 집행 과정에서 발생한 사망 ▲보건·복지·요양 관련 집단 수용시설에서 발생한 사망 ▲마약·농약·알코올·가스·약물 등에 의한 급성 중독이 의심되는 사망 ▲그밖에 사인이 밝혀지지 않은 사망 등이다.

변사사건이 접수되면 경찰이 현장으로 출동해 사체를 살핀다. 경찰 소속 검시조사관과 검안의가 사체의 외표를 살피는 검안을 진행하고 사인을 찾는다. 뚜렷한 사인을 발견할 수 없을 때는 부검 여부에 대한 소견을 밝힌다. 경찰은 부검 진행을 위해 ‘변사사건 발생 보고 및 지휘 건의서’를 작성해 검사에게 보고한다.

검사는 ‘변사사건 발생보고 및 지휘건의에 대한 지휘서’를 토대로 부검을 지휘한다. 이때 법원은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한다. 


수십년째 변사사건 현장에 적용되고 있는 시스템이다. 실제 부검을 담당하는 법의관은 이 과정에 개입할 수 없다. 형사소송법 제222조(변사자의 검시)는 ‘변사체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가 있을 때에는 그 소재지를 관할하는 지방검찰청 검사가 검시(檢視)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검시 권한을 검사에게 독점적으로 부여한 것이다. 

검시는 변사자나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를 포함해 현장 상황 등 사건 장소에 있는 모든 것을 조사하는 과정이다. 검시를 통해 치명적 질병이 분명하게 밝혀지거나 범죄 의심점이 드러나면 오히려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다. 사인이 뚜렷하면 병사로 처리해 장례를 치르면 되고, 범죄 피해라는 판단이 서면 부검을 하면 된다. 

문제는 사인이 아리송할 때 발생한다. 한국에서 사망을 법적으로 인정받으려면 사망진단서와 시체검안서가 필요하다. 둘 다 의사, 치과의사, 한의사 자격을 가진 자만 발급할 수 있다. 병원에서 사망한 환자를 대상으로 치료한 의사가 발급하는 사망진단서와 달리 변사사건은 대체로 시체검안서로 갈음된다.

검사에 독점적 권한 부여
법의학자 아무 권한 없어

이때 검안의의 전문성에 따라 사인이 널을 뛰는 경우가 생긴다. 

법의학계에서 개선을 요구하는 지점이 바로 이 부분이다. 검시 과정에 ‘사체에 대한 전문성’을 가진 전문가를 투입하자는 주장이다.

김장한 대한법의학회 회장은 “변사자를 한곳으로 모아 부검 여부를 기준으로 검시할 수 있는 공시소 같은 물적 시설이 필요하다”며 “변사체가 오면 전문가가 밤새 약‧독물 검사 등을 진행해 1차 분류작업을 진행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경찰이 현장을 수사한 자료를 공유해주면 우리는 변사체를 육안으로 검사한 뒤 피를 뽑고 엑스레이와 CT를 찍는 거다. 이때 의무기록까지 확인할 수 있으면 시체검안서의 사망원인 부분을 진단명으로 채울 수 있다. 지금 이걸 못하니까 전부 부검으로 넘어가는데 이렇게 되면 또 과부하가 걸린다. 악순환의 연속”이라고 토로했다.

대한법의학회는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하는 검시제도 입법을 위해 수십년째 국회 문을 두드리고 있다. 2005년 윤호중 의원(열린우리당)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부터 지난해 더불어민주당 진선미 의원이 대표 발의한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까지 20여년 동안 검시제도와 관련해 7개 법안이 발의됐다. 

2005년 4월 윤 의원이 대표 발의한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은 검시 대상과 범위를 명확히 규정해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변사자 또는 변사의 의심이 있는 사체’로 검시 대상을 두루뭉술하게 정해둔 것을 ‘범죄행위에 의한 사망, 교도소, 경찰서 유치장, 기타 국가기관에 의해 시설에 수용된 자의 사망, 그 밖에 원인이 불분명한 사망의 경우’로 구체화했다.

검시전문가
양성 취지

담당 공무원의 자의적인 판단을 최소화하자는 취지다. 

2005년 10월 유시민 의원(열린우리당)이 대표 발의한 ‘검시를 행할 자의 자격 및 직무범위에 관한 법률안’은 검시관 제도 도입을 담았다. 검시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검시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는 취지다. 검시 전문가가 아닌 수사기관이나 경찰공의 등의 단순한 검안을 거쳐 사건이 종결되면서 ‘억울한 죽음’이 양산되고 있다고 발의 배경을 밝혔다. 

최규식 의원(민주당)은 2009년 2월 형사소송법 222조(변사자의 검시)에 4항을 신설하는 내용을 담은 ‘형사소송법 일부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검시권을 갖고 있는 검사가 검시를 진행할 때 유가족이나 법정대리인에게 사전고지의 의무를 하도록 했다. 검사의 검시권 독점에 제동을 거는 시도로 풀이됐다. 

19대 국회에서는 문정림 의원(새누리당)이 ‘법의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2014년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이 영향을 미쳤다. 사체 발견과 개인 식별 과정에서 미흡한 초동대처로 국민 불신과 사회 혼란이 크게 불거진 바 있다. 당시 사건으로 변사사건 현장에 법의학 지식이 있는 전문가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대두됐다.

법의관 법안은 법의관 양성과 검시 업무를 담당하는 기관의 업무를 관리·감독하는 검시위원회 설립을 골자로 한다. 검시와 검안, 해부의 주체를 법의관으로 하고 위원장을 비롯해 7명으로 구성된 검시위원회를 국무총리 산하에 둔다는 내용을 담았다. 범죄 예방과 검시 인력 양성을 위한 법이라고 명시했다. 

2017년 6월 정갑윤 의원(자유한국당)이 ‘법의관 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변사체에 대한 검안, 부검 여부의 결정과 시행, 사망원인과 종류 결정 등에 있어서 수사기관을 지원할 법의학 지식과 경험을 가진 전문 인력과 시설이 필요한데 국과수만으로는 부족한 형편이니 이를 위한 전문 인력을 양성하자는 내용이다. 

정부 부처
얽혀 있어

2018년 3월에는 진선미 의원(더불어민주당)이 ‘검시관의 자격과 직무 등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일반의사가 검안을 담당하는 사례가 많아 시체검안서와 부검감정서의 일치율이 크게 떨어지는 점을 개선하자는 취지다. 법의학 지식과 경험을 갖춘 검시관이 사망사건 발생 초기부터 사망원인 등을 전문적으로 밝혀 국민의 인권을 보호하자는 내용이다.


진 의원은 지난해에도 ‘검시를 위한 법의관 자격 및 직무에 관한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불명확한 사망원인을 과학적이고 전문적으로 밝혀 억울한 죽음을 방지할 수 있도록 법과 제도적인 기반을 마련하겠다는 내용이다. 검시 업무의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한 법의관을 양성해야 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하지만 7개 법안 중 지난해 발의한 진 의원 법안(계류 중)을 제외하고 모두 ‘임기만료 폐기’ 됐다. 17대부터 21대 국회까지 4년에 한 번씩 꼬박꼬박 관련 법안이 나왔지만 단 한 건도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진 의원 법안도 2번의 토론회를 거쳐 발의됐지만 큰 진전은 없는 상태다.

그동안 검시제도 관련 법안은 여야를 가리지 않고 발의됐다. 검시제도를 개선해야 한다는 큰 틀에서는 진영논리가 없었던 셈이다. 특히 검시제도 개선을 통해 국민의 인권을 보호한다는 법안의 취지는 모두 일맥상통했다. 역으로 말하면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제자리걸음을 걷는 동안 국민의 삶 특정 부분에 구멍이 생겼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장한 회장은 “검찰은 법무부, 경찰은 행정안전부, 군 사망사고는 국방부, 의무기록은 보건복지부 등 검시제도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여러 정부부처와의 협업이 필수”라며 “그런데 여러 부처가 관련돼있다 보니 추진 주체가 흔들리는 문제가 발생한다. 진행 과정에서 자꾸 브레이크가 걸리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피해자는 국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검시제도 관련 법안이 번번이 무산되자 법의학계에서는 ‘희망고문’ ‘법안 발의 개수를 채우기 위해 이용했다’ 등의 반응이 쏟아졌다. 여기에 법의학계의 고질적인 문제인 인력 부족이 부각되면서 검시제도 개선을 위한 동력이 식어가고 있다. ‘인력을 충원하기 위해서는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 ‘제도 개선을 위해서는 일정 수준의 인력이 필요하다’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진 것.

‘국민의 인권 보호’ 취지
법안 7개 중 6개 버려져


대한법의학회 학술이사를 맡고 있는 박종필 연세대 법의학과 조교수는 “10년 넘게 제도에 대해 말해왔지만 아마 다 안 될 거다. 제도를 가지고 가면 ‘그래서 사람은 어떻게 뽑을 건데’라는 말이 따라 붙는다”며 “지금 단계에서는 제도 개선이 아니라 법의관 양성이 문제라는 생각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법을 만들면 사람이 충원될 것이라 생각했는데 정원이 늘었는데도 채우질 못했다”고 덧붙였다. 

국과수 법의관 정원은 2014년 유벙언 전 세모그룹 회장 노숙자 오인 사건 등을 거치면서 크게 늘었다. 국과수에 따르면 2015년 28명이었던 법의관 정원은 2016년 38명, 2017년 47명, 2018년 54명으로 점차 확대됐다. 이후 2019년 55명까지 늘었다가 2020년부터 53명을 유지하고 있다. 

문제는 늘어난 정원을 채우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2015년 이후 현재까지 국과수 정원을 꽉 채운 적은 한 해도 없다. 올해 국과수에 근무 중인 법의관은 35명으로 충원율은 66%에 머물러 있다. 대학 법의학교실, 민간 법의의원 등으로 넓혀도 부검을 할 수 있는 인력은 60여명에 그친다.

대한법의학회가 2020년 국과수의 용역을 받아 내놓은 <법의학 전문 감정 연구 인력 인재 양성 방안 연구>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활동 중인 법의학자는 63명으로 파악됐다. 이 중 대학에 재직하거나 은퇴 후 촉탁부검을 하는 경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사법부검을 주 업무로 하는 법의의사는 전국적으로 32명(국과수 30명, 국방부과학수사연구소 2명)뿐이다. 

<일요시사>가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서치디앤에이에 의뢰해 전국 성인남녀 101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의 36.2%가 ‘법의학자 수는 200명 이상이 적당하다’고 응답했다. ‘100명 이상’으로 넓히면 73.8%에 이른다. 국민 10명 가운데 7명이 현재 법의학자 수와 비교해 2~3배 이상 더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이다.

국과수 원장(2012~2016년)을 지낸 서중석 에스제이에스법의학연구소 소장은 “법의관을 양성하려면 기존 인력을 유지한 상태로 새로운 인력을 충원해야 한다. 그런데 너무 힘들고 보수도 열악하다 보니 기존 인력이 많이 빠져나갔다”며 “음지에서 양지로, 덜 힘든 곳으로, 더 명예스러운 곳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국과수가 더 명예스럽고, 더 인정받는 곳이라면 왜 그곳을 떠나겠나”고 자조했다. 

내부에서도
자조 목소리

이어 “사회에는 생각보다 어려운 사람이 많다. 그런 사람들이 마지막 가는 길에 한 점 억울함도 없게 하려면 지금의 검시제도로는 무리다. 국과수에 있는 동안 ‘검시제도를 개선하고 인력을 키워서 국민에게 제대로 봉사하는 시스템을 갖추자’고 내내 주장했다. 하지만 그런 몸부림에도 아무것도 변한 건 없지 않나”고 반문했다.


<jsjang@ilyosis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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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용광로 내각’ 눈에 띄는 이재명 사람들

[일요시사 정치팀] 박희영 기자 = 이재명 대통령이 11개 부처 장관 후보자와 국무조정실장 인선을 발표했다. 취임 후 첫 개각인 만큼 이 대통령의 국정 철학과 정부의 방향성을 가늠할 수 있다. 초대 장관인 데다가 이력도, 배경도 독특한 이들이 합류하면서 주목도는 배로 높아졌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에는 배경훈 LG AI연구원장이, 외교부에는 조현 전 1차관이 후보자로 지명됐다. 이 밖에도 ▲통일부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 정동영 의원 ▲국방부 민주당 안규백 의원 ▲국가보훈부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 ▲환경부 민주당 김성환 의원 ▲고용노동부(이하 노동부) 김영훈 전 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하 민주노총) 위원장 ▲해양수산부 민주당 전재수 의원 ▲여성가족부 민주당 강선우 의원 ▲중소벤처기업부(이하 중기부) 한성숙 네이버 대표이사 ▲국무조정실장 윤창렬 LG글로벌 전략개발원장 등이 후보자로 임명됐다. 가리지 않고 사람만 보고 큰 폭의 내각 변화가 일어난 가운데 유독 주목을 받는 인물이 있다. 이력이 독특하거나 발탁 배경을 놓고 갑론을박이 이어지는 등 청문회 과정 역시 순탄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이슈는 국방부 장관으로 내정된 안규백 후보자다. 안 후보자는 5선 국회의원으로 약 20년 동안 국회 국방위원을 지내며 의정 활동 대부분을 국방 분야에서 보냈다. 내란 사태 당시 ‘윤석열정부의 비상계엄 선포를 통한 내란 혐의 진상규명 국정조사 특별위원회(내란 특위)’ 위원장 등을 맡기도 했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안 후보자는 국회 국방위 간사·위원장 등 5선 국회의원 이력 대부분이 국방위 활동이기에 군에 대한 이해도가 풍부하다”며 “64년 만에 문민 국방 장관으로 계엄에 동원된 군의 변화를 책임지고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후보자는 지난해 12월 <일요시사>와의 인터뷰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군은 문민통제가 돼야 한다. 비상계엄 당시 문민통제가 공고했다면 대통령이 내란을 지시하더라도 시작 단계부터 군이 반대해 따르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안 후보자가 청문회를 통해 최종 임명된다면 64년 만에 민간인 출신 국방부 장관이 탄생한다. 첫 민주노총 출신 장관이 탄생할지에도 이목이 쏠린다. 김영훈 후보자는 현직 철도 기관사로, 1992년 철도청(현 코레일)에 입사해 올해로 34년째 근무 중이다. 장관 후보로 지명되기 전날까지 김 후보자는 경부선 부산-서울 구간에서 새마을호 열차를 운행했다. 국민의힘은 김 후보자가 민주노총 출신인 점을 거론하며 이번 인선이 일종의 ‘청구서’라고 주장했다. 국민의힘 송원석 원내대표는 “내각이 아니라 민주당 선대위 같다”며 “능력이나 전문성보다 논공행상이 우선된 거 아닌가 하는 국민적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동안 진행된 노동 개혁 성과는 후퇴하고, 노란봉투법(노조법 2·3조 개정안)과 중대재해처벌법 등 주요 현안에 대한 새 정부의 반 기업적 스탠스를 명확히 못 박아두는 인사 아닌지 우려된다. 민주노총의 정치적 청구서가 본격적으로 날아오는 신호탄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고 밝혔다. 김 후보자가 노동부 장관으로 임명된다면 지난 3년간 거부권에 가로 막혔던 노란봉투법을 비롯한, 주 4.5일 근무제 등이 거대 여당을 등에 업은 채 졸속으로 처리될 것이란 비판이 나온다. 민간 국방 장관, 기관사 노동 장관 파격 인사에 국민들 관심도 ‘쑥’ ↑ 이를 의식한 듯 김 후보자는 쟁점 법안에 대해 “반드시 가야 할 길”이라면서도 “명분만으로 밀어붙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주 4.5일 근무제가 어려운 기업이 있다면 무엇이 어렵게 하는지 정부가 잘 살펴보고 공동의 길을 모색해보겠다”고 설명했다. 교수 출신 인사가 없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하다. 이번 개각 명단을 보면 대부분 실무형 인사 위주로 곧바로 실전에 투입할 수 있는 실용성 있는 인재를 중용한 것으로 풀이된다. 기업인이 과기부·중기부 장관 후보자 등으로 내각에 포함된 것 역시 궤를 같이한다. 강 대변인은 “배경훈 과기부 장관 후보자는 AI 학자이자 기업가로서 초거대 AI 상용화로 은탑산업훈장을 받은 인물”이라며 “하정우 AI미래기획수석과 함께 AI 국가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앞서 이 대통령은 네이버 클라우드 AI 랩 소장, AI 미래포럼 공동의장 등을 지낸 하정우 수석을 대통령실 AI 미래기획 수석으로 지목했다. 이재명정부는 “100조를 투자해 AI 강국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만큼 하 수석과 배 후보자가 손발을 맞춰 글로벌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배 후보자는 서울 종로구 광화문우체국에 마련된 인사청문회 준비단 사무실로 출근하며 취재진과 만나 “이 대통령의 1호 공약인 AI 3대 강국이 되기 위해 3강의 정의부터 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그는 “(현재로선) 우리가 3위를 한다고 해도 미·중과 너무 차이가 크다. 1·2위에 근접한 3위가 돼야 하며 사실 시간이 많이 남아 있지 않다”며 “AI 3강 목표를 반드시 2∼3년 이내에 달성해야겠다는 사명감이 있고, 소속됐던 기업에서 좋은 사례를 만들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기부 장관 후보자로는 한성숙 네이버 고문이 내정됐다. 한 후보자는 지난 2017년 네이버 최초로 여성 최고경영자(CEO)에 선임됐으며 같은 해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제13대 회장을 맡은 인물이다. 역대 중기부 장관을 살펴보면 통상 관료나 정치인이 낙점된 만큼 민간 기업 출신 후보자라는 점에서 신선하다는 평이 나온다. 중소기업계는 한 후보자를 환영하는 분위기다. 일꾼도 실용주의 중소기업중앙회는 논평을 내고 “중소기업계는 이재명정부 초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으로 한성숙 후보자가 지명된 것을 환영한다”며 “한 후보자는 네이버 등 IT산업에 오랜 경험을 가진 기업인 출신으로 산업 대전환기에 중소기업·소상공인의 AI·디지털화를 촉진하는 등 디지털 생태계를 구축할 적임자”라고 평가했다. 이처럼 정부와 중소기업이 한 후보자에게 기대를 걸고 있지만 과거 국정감사 이력이 발목을 잡을 것이란 우려가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고용노동부 등 국정감사 ‘단골’로 불릴 만큼 여러 차례 소환됐기 때문이다. 특히 지난 2021년 네이버 직장 내 괴롭힘으로 한 직원이 극단적 선택을 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의원들의 질책이 잇따랐다. 민주당 노웅래 의원이 당시 네이버 대표였던 한 후보자에게 “최인혁 (네이버파이낸셜) 대표를 징계했느냐”고 묻자 “네이버에서 본인이 사임을 했다”고 짧게 답했다. 노 의원이 “징계를 했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 후보자는 “징계가 있었다”면서도 정확히 어떤 처분이 내려졌는지 답하지 않았다. 이를 두고 노동계 등에서는 “전형적인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나왔다. 이 밖에도 뉴스 편집 조작과 댓글 여론 조작 방조 의혹 등으로 2017년부터 4년 연속 국감 증인으로 소환됐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국민의힘 박상웅 의원은 한 후보자 지명과 관련해 “거대 포털과의 전략적 야합이라는 합리적 의심이 든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은 “한성숙 후보자 지명은 과거 민주당의 규제를 통한 견제가 아니라 포털과의 인사 유착을 통해 정권 영향력을 확대하려는 시도로 비쳐질 수 있다”며 “플랫폼 권력과 정치 권력의 야합이라는 심각한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는 것이 국민적 시각”이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2021년 국감을 언급하며 “직원들이 고통을 호소하고 극단적 선택까지 했던 괴롭힘의 현장을 방치한 책임자가 중소기업과 자영업자를 지원해야 할 부처의 수장으로 지명된 것은 납득할 수 없는 결정”이라며 “국민 신뢰를 저버린 매우 전략적이고 노골적인 이번 인사는 즉각 철회돼야 한다”고 거듭 지적했다. 성급했나? 잡힌 발목 실용과 통합을 위한 지명도 이뤄졌지만 여야 모두에게 질책을 받으면서 오히려 자충수라는 비판이 나온다. 윤석열정부 출신인 송미령 농식품부의 장관 유임과 한나라당 권오을 전 의원이 대표적인 케이스다.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은 송 장관이 유임된 배경에 대해선 “첫 국무회의에서 대부분 사의를 표한 후라 소극적이고 구체적이지 않은 답변이 많았던 반면, 송 장관은 상당히 구체적으로 대통령 질문에 답하고 국정 방향에 대해 미리 준비하고 적극적으로 반영할 수 있는 여러 안을 가지고 왔던 것으로 기억한다”며 “일할 수 있는, 준비된 현직 국무위원이라고 판단한 것 아닌가 하는 짐작을 해본다”고 설명했다. 강 대변인은 “이 대통령은 지난 24일 유임을 발표한 뒤 첫 국무회의에서 송 장관에게 ‘사회적 충돌, 혹은 이해관계에 있어서 다른 의견이 있다면 유임된 장관으로서 적극적으로 들어보고 갈등을 조정하는 데 직접 역할을 하는 것이 좋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부연했다. 아울러 “(송 장관이) 그에 대해서 수긍한 것으로 본다”며 “유임 결정까지는 대통령실에서 한 것이지만, 이후에 갈등 조정 기능도 내각에 임명 혹은 내정된 분들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송 장관의 유임을 두고 민주당, 특히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이하 농해수위) 소속 의원을 중심으로 반대의 목소리가 나오는 분위기다. 지난 3년 동안 양곡관리법 등을 반대하고 이를 ‘농망법’이라고 부르는 사람을 기용하는 건 국민 눈높이에 맞지 않다는 게 주된 이유다. 조국혁신당(이하 혁신당)과 진보당도 목소리를 높였다. 혁신당 박웅두 농어민위원장은 논평을 통해 “이재명정부의 ‘국민통합정부’ 의지를 높이 평가한다”면서도 “남태령 응원봉의 주역이자 이재명 대통령 당선에 뜻을 함께했던 농민들은 송 장관의 유임에 당혹감과 분노를 감추지 못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송 장관은 윤석열 농정에 대해 공식적으로 참회와 반성, 사과와 유감의 발언도 없었고 공개적인 평가의 과정과 책임의 경중을 논의한 바가 없는데 누가 송미령을 장관으로 추천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식량주권에 대한 손톱만큼의 애정이 있다면 유임 결정을 즉각 철회하라”고 밝혔다. 농해수위 소속인 진보당 전종덕 의원 역시 “농망 장관”이라며 지명 철회를 촉구하는 1인 시위에 나섰다. 통합용 지명? 여야 모두 아우성 ‘윤의 사람’ 그대로 품은 이유는? 일부 야권에서도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국민의힘 안철수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송 장관은 민주당이 추진한 양곡법과 속칭 농민3법을 농업의 미래를 망치는 농망법이라며 대통령 거부권 행사까지 건의했다”며 “그런데 이재명정부의 농림부 장관으로 지명되니 ‘새정부 철학에 부합하는 방향으로 추진하겠다’고 답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장관을 오래하려면 송미령 같이’라는 자조가 공직사회 전반에 퍼지지 않겠느냐”며 “금번 인사를 보니 이 대통령이 말하는 실용주의의 정체를 알겠다. 그건 실용의 이름으로 포장된 기회주의이자 국익으로 덧발라진 밥그릇 챙기기”라고 꼬집었다. 논란에 대해 한 민주당 관계자도 “나름 탕평 인사로 가장 탈이 안 날 것 같은 인물을 유임시킨 것 같은데 아마 이 대통령도 뒷말은 예상했을 것”이라며 “내란 종식을 내걸고 정권을 잡은 만큼 모순된 면이 있다. 그날 밤(12월3일) 용산에 모인 국무위원을 내란 동조자, 내란 방관자라고 하더니 ‘일을 잘하니 함께 가겠다’라는 건 국민에게 조금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권 전 의원이 보훈부 장관으로 지목된 것 역시 탕평 인사로 분류된다는 해석이다. 권 후보자는 지난 4월 6·3 조기 대선 당시 이재명 후보 캠프에 합류에 눈길을 끌었다. 친유승민계로 분류되는 권 후보자는 한나라당과 새누리당을 거쳐 바른정당에서 최고위원을 지냈다. 보수 인사였던 그는 이재명 캠프에 합류하면서 “대구와 경북의 정치적 발언권을 보장하기 위해 참여하게 됐다”며 “민주당의 중도 보수 지향에 대해 힘을 보탤 것”이라고 설명했다. 강훈식 대변인은 권 후보자가 보훈부 장관으로 지명된 것에 대해 “경북 안동에서 3선 의원을 역임했다”면서 “지역과 이념을 넘어 특별한 희생에 특별한 보상이라는 보훈 의미를 살리고 국민통합을 이끌 것으로 기대한다”고 설명했다. 권 후보자는 보수와의 소통에 힘을 쏟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국민통합을 강조하며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면 광화문 태극기 부대와 촛불 부대가 서로 소통이 되고 이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국민통합이라면 소통의 장을 마련해 각자가 논리의 주장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해보고 들어봐서 반영하라고 하셨다”며 “그래도 자기 진영 논리에 충실할 수밖에 없다면, 이해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자주 마련하도록 하겠다”고 설명했다. 유임된 송 장관을 제외한 10개 부처에 대한 개각이 이뤄지면서 국회 역시 각 상임위가 바쁘게 돌아갈 예정이다. 시기상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7월 말에 진행될 가능성이 크다. 김민석 국무총리 후보자 청문회를 겪은 국민의힘은 남은 장관 후보자들에 대해서도 ‘송곳 검증’을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격돌의 7월 관전 포인트 다만 한 야권 관계자는 “김민석 후보자의 청문회가 이틀 동안 진행됐지만 총리로서의 자격 검증은 뒷전이고 돈 문제만 물고 늘어졌다”며 “물론 총리 후보자의 부도덕한 면을 부각시킬 수 있겠지만 총리 후보자 청문회인 만큼 더 다양한 각도에서 질문을 해야 했다. 곧 있으면 다른 장관에 대한 청문회도 진행될 텐데 지금처럼 (청문회를) 진행해서는 국민의힘도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할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hypak28@ilyosisa.co.kr>